[필란트로피]휴식과 즐거움 그리고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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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란트로피
휴식과 즐거움 
그리고 신뢰

재단, 협력을 우선하다


CARRIE AVERY · STELLA CHUNG · SARAH WALCZYK



Summary. 휴식과 즐거움은 필수적이다. 리더뿐 아니라 팀과 조직 전체 더 나아가 그들이 지원하는 지역사회에도 휴식과 즐거움은 중요하다.



데브라 수Debra Suh는 안식년 동안 하와이로 떠나, 아이들과 남편이 파도 타는 모습과 부모님이 해변에서 책을 읽으며 쉬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녀의 아버지는 가정폭력의 생존자로, 데브라 수가 가정폭력 예방 분야에서 일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이듬해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해변에서의 기억은 더욱 마음 깊이 남게 되었다. 


데브라 수는 부모이자 배우자, 딸이면서 동시에 아시아 태평양 섬 주민 커뮤니티 내 가정폭력과 성폭력을 종식하기 위해 활동하는 아시아태평양 가정센터Center for the Pacific Asian Family, CPAF의 대표이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일과 팀을 사랑했지만, 센터 운영과 어린 두 자녀를 돌보는 데 온 힘을 다하다 보니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2007년, 데브라 수는 로스앤젤레스의 지역사회 변화를 이끄는 리더에게 투자하는 더피 재단Durfee Foundation으로부터 3개월간의 안식년 지원금을 받았다. 


안식년은 데브라 수와 센터 모두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휴가를 떠나기 전, 데브라 수는 조직을 재편하고 본인의 부재중에도 조직을 원활하게 관리할 유능한 팀을 꾸렸다. 안식년이 끝난 이후에도 이들에게 더 많은 책임을 맡기며, 일상 업무를 처리하도록 했다. 덕분에 그녀는 보다 발전적인 리더십을 고민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고, 복귀 이후 대표의 역할과 부모의 역할 사이에서 더욱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었다. 이후로도 그녀는 수년간 리더십 자리에 있으면서, CPAF 예산 규모를 약 160만 달러에서 5백만 달러 이상으로 성장시켰고,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안식년 정책도 도입했다.


23년 만에 CPAF의 대표직에서 물러날 때도 그 과정은 순조로웠다. 안식년 동안 훗날 CEO가 될 직원이 팀에 합류해 리더십 역량을 키워온 덕분이었다. 



왜 휴식을 지원해야 할까?

재단의 리더로서 우리는 비영리단체의 활동과 사회운동이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는 믿음이 있다. 우리는 안식년을 비롯한 몇 가지 형태로 재충전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여러 통찰을 얻었다. 다른 지원기관들 또한 사회혁신 분야에서 휴식과 즐거움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이를 지원하는 사려 깊은 접근을 보여주었고, 그들의 실천은 우리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휴식은 변화를 불러온다. 데브라 수의 사례처럼, 안식년은 개인뿐 아니라 조직, 넓게 보면 지역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연구에 따르면, 비영리단체의 리더가 3개월간 업무에서 완전히 벗어나면, 새로운 목적의식을 갖고 돌아와 더 오랫동안 그 자리를 유지하며, 새로운 에너지와 영감의 원천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개인의 휴식은 단순히 번아웃을 예방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분야 전반에 걸쳐 집단적 돌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클레어 로즈 재단Clare Rose Foundation이 발행한 2020년 비영리단체 안식년 프로그램 보고서를 보면, 비영리단체 4곳 중 단 1곳만이 리더십 승계 계획을 세워 놓았는데, 그에 반해 리더의 3분의 2는 2~5년 이내 자리에 물러날 계획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조직들은 그동안 비영리단체의 인재 유지에 충분한 투자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비영리 영역의 안식년 제도 

“열심히 일하기보다 똑똑하게 일하라”는 조언을 주위에서 흔히 듣게 된다. 그런데 일을 멈추고 온전히 쉬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면 어떨까? 다소 역설적일 수 있지만, 더피 재단은 1997년에 안식년 프로그램을 도입해 지금까지 이 방식을 이어오고 있다.


더피 재단의 안식년 ‘공식'은 간단하다. 참가자가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는 코치를 배정하고, 이전 더피 재단 안식년 수혜자들의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며, 안식년 동안 참가자의 모든 업무 및 관련 연락을 차단하는 것이다. 또한 더피 재단은 안식년과 재충전 지원금이 단체나 조직이 아닌 개인에게 제공되는 만큼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도록 국세청IRS에 별도 승인을 구했다. 


더피 재단이 이 프로그램을 처음 도입했을 때, 지원조직 커뮤니티의 반응은 당혹스러움에서 우려까지 다양했다. 일부는 이러한 지원이 경솔하다고 생각했고, 과로에 지친 비영리단체 리더들이 휴식을 맛본 뒤 아예 일을 그만두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질문은 달랐다. 우리는 ‘비영리단체 직원들이 필요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계속 일하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에 대해 고민했다.


27년 동안 120회 이상 안식년을 지원한 결과, 더피 재단은 안식년이 변화를 위한 놀랍도록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휴식과 즐거움은 생산성의 적이 아닌 원천이었다. 데브라 수 대표가 안식년을 보낸 후 CPAF에서 일어난 프로그램 확대, 인력 확충, 예산 증가라는 변화는 우연이 아니었다. 재단은 로스앤젤레스 전역의 수십 개 단체에서 리더가 안식년을 보낸 이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


안식년은 꽃을 피울 씨를 심는 일과도 같았다. 데브라 수와 같은 다른 더피 재단 안식년 수혜자들도 조직 차원의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500명 이상의 직원이 일하는 아동법 센터The Children’s Law Center는 최근 장기근속 직원을 위한 1개월 웰니스 휴가 제도를 도입했다.


대표를 위한 3개월의 안식 제도가 휴식과 재충전에 대한 비영리 분야의 필요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더피 재단은 안식년 프로그램과 더불어 ‘라크 어워드Lark Awards’를 통해 소규모 지역사회 단체들이 전 직원의 복지에 지원할 수 있도록 3만 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지원을 받은 단체는 조직문화와 필요에 맞게 지원금을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휴식할 수 있는 역량이 확대되어야 한다

최근 몇 년간, 새터버그 재단Satterberg Foundation은 파트너 단체들이 더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사회와 환경을 구축할 수 있는 최적의 지원 방안을 찾기 위해 단체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 왔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의 피로와 번아웃이라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많은 직원이 업무로 인한 정서적, 육체적 피로를 호소했으며, 일부는 퇴사를 고려하고, 또 다른 이들은 비영리 영역을 완전히 떠나고 싶어 했다. 이러한 결정은 도미노 효과를 일으켜, 리더십 교체로 인한 직원 역량의 저하, 조직 차원의 지식 상실을 야기하고, 궁극적으로 모금의 어려움을 낳을 수 있다.


지원을 받는 단체들은 재단의 역할이 ‘지역사회와 비영리단체에 자금을 제공해, 자체적으로 안식년 프로그램과 수상 제도를 만들 수 있도록 돕고, 다른 지원기관들도 비슷한 투자를 하도록 권장하는 것’이 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요구에 화답하며, 새터버그 재단은 직원들이 휴식, 즐거움, 재충전을 누릴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지원 파트너에게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재단은 워싱턴 주에서 흑인, 원주민 및 유색인 임원 연합회Black, Indigenous, and People of Color Executive Director, BIPOC ED가 안식년 프로그램을 설계할 수 있도록 초기 자금과 다년간의 지속적인 지원을 제공했다. 이 연합은 유연한 지원을 바라는 지역사회의 필요에 맞춰, 3개월이 일반적인 안식 기간을 3~5일의 짧은 휴가로 나누는 등 다양한 선택지를 마련했다. 또한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는 웰니스 리트릿을 주 전역에서 진행하며, 리더들이 교통편 계획, 비용 부담, 장기간의 육아나 노인 돌봄에 대한 걱정 없이 온전히 휴식과 재충전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누가 휴식을 누릴 수 있을까? 

특정 직위나 나이에 국한되지 않고 누구나 리더십을 수행하지만, 우리가 조사한 대부분의 안식년 프로그램은 주로 단체의 대표이사나 대표를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리더는 외롭고 끊임없는 책임감 속에서 일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만이 휴식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조직의 리더는 업무 문화의 기준을 설정하는 데 있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대표를 대상으로 하는 안식년 프로그램은 확실한 상향 효과trickle-up effect를 가져온다. 리더가 자기 관리를 실천하고, 적절히 휴식을 취하며, 부재중에도 직원들을 신뢰한다면 이는 일과 삶의 건강한 균형을 보여주는 조직 내 좋은 사례가 된다. 반면 리더가 24시간 연중무휴로 업무에 매달리고 휴가조차 가지 않는다면, 이는 조직에 자기희생을 강요하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이처럼 비영리단체의 대표는 안식년을 가짐으로써 조직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휴식을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인종, 성별, 계급에 따른 권력 불균형의 영향을 받는다. BIPOC ED 연합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인종적으로 소외된 비영리단체 임원들이 겪는 특별한 어려움을 완화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연합이 발표한 <2022년 BIPOC 리더를 위한 안식년 보고서2022 Sabbaticals for BIPOC Leaders report에서는 이러한 어려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BIPOC 리더는 부족한 자원으로 시급한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억압에 맞서 정의와 공감의 문화를 조성한다. 여러 세대에 걸쳐 누적된 트라우마와 씨름하고, 구조적인 경제적 어려움과 자원 접근성의 한계를 겪으며 … 문화적인 공감대가 없는 시스템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부담을 짊어진 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비영리단체와 사회운동의 리더들은 인종 자본주의에 맞서기 위해 휴식의 중요성을 재조명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점점 더 많은 지원기관들이 휴식과 즐거움이 일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마음의 여유를 갖고 꿈꾸는 시간 없이는 발전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히든 리프 재단Hidden Leaf Foundation은 사회정의 단체의 마음챙김과 웰니스에 투자하고 있고, 보레알리스Borealis의 장애 포용 기금은 장애인의 행복과 권리를 증진하기 위해 현재까지 45만 달러 규모의 기금을 지원했다. 리브라 재단Libra Foundation은 서류나 보고서 제출 의무 없이 지원 대상자에게 5만 달러의 웰니스 기금을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알래스카의 라스무손 재단Rasmuson Foundation은 비영리단체 및 지역 부족 리더를 대상으로 5만 달러 규모의 안식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테네시의 힐링 트러스트Healing Trust에서는 2만 달러의 안식년 지원금을 지원한다. 이처럼 비영리단체 직원들의 휴식과 행복에 더 많은 지원기관이 투자하고 있다. 



휴식에는 신뢰가 필요하다

지원기관들이 안식년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 신뢰의 문화를 조성하는 것은 비영리단체와 사회운동단체의 휴식을 지원하는 데 필수적이다. 새터버그 재단의 안식년 프로그램은 직접 지원 방식에서 벗어나, 지원 대상 파트너들이 자신의 필요를 스스로 판단하며, 섹터 전반의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더피 재단은 비영리단체 대표가 자신만의 안식년을 자유롭게 계획할 수 있도록 신뢰를 보내고, 각자의 필요에 따라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조용히 휴식을 취하거나 또는 세상을 활기차게 모험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여유를 누리도록 돕고 있다. 


지치고 고갈된 개인은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변화를 이끌 수 없다. 지원기관들은 비영리 파트너들이 휴식과 기쁨을 누리도록 도움으로써 그들을 지원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필란트로피 영역은 파트너를 신뢰해야 한다. 그리고 재충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이해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역량에 투자해야 한다. 더피 재단과 새터버그 재단은 이러한 노력을 지속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신뢰는 늘 긍정적인 결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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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RIE AVERY

캐리 에이버리는 신뢰 기반 필란트로피 프로젝트(Trust-Based Philanthropy Project) 운영 위원회의 의장을 맡고 있으며, 더피 재단의 전 이사장이다.


STELLA CHUNG

스텔라 정은 더피 재단의 프로그램 및 운영 디렉터로 스탠튼 펠로우십(Stanton Fellowship)과 안식년 펠로우십(Sabbatical Fellowship)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다.


SARAH WALCZYK

사라 왈칙은 새터버그 재단의 상임이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