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란트로피]인종정의를 구현하려면 신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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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란트로피
인종정의를
구현하려면 
신뢰가 필요하다

재단, 협력을 우선하다


NAT CHIOKE WILLIAMS · LIZ BONNER



Summary. 인종정의를 위해서는 기존의 관행을 넘어 신뢰 기반 필란트로피를 실천해야 한다. 



지난 수년간, 많은 지원기관들이 힐-스노든 재단Hill-Snowdon Foundation에서 일하는 우리들에게 “여러분은 정말 훌륭한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특히 미국 남부 지역에서 전개된 조직화 활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파트너와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여기며, 인종정의를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추구한 것에 대해 주목했다.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는 우리가 제대로 활동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었고, 우리의 활동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낼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안주하지 않았다. 사실 우리의 방향성과 관행 사이에는 간극이 있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합치하지 않는 낡은 관행들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많은 필란트로피 조직처럼 우리 역시 오랜 관습에 의존해 왔고, 특정 관행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기회 없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뢰 기반 필란트로피trust-based philanthropy라는 새로운 철학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인종정의와 세력 형성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변화가 필요했다. 


필자들은 힐-스노든 재단의 상임이사와 이사회 의장이다. 우리 두 사람은 힐-스노든 재단이 걸어온 여정에 대한 성찰을 나누고자 한다. 이 글은 정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지만, 비효율적인 기존 관행에 여전히 얽매여 있는 지원기관들에게 로드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애매모호한 거절을 멈추다 

2020년은 변화가 절실한 해였다. 당시는 팬데믹, 인종정의 운동, 정치적 격변 속에서 오랫동안 기존 방식을 고수해온 지원기관들도 전례없는 지역사회의 요구를 마주하며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해 봄, 우리는 파트너 단체들과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하며 재단이 무엇을 지원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 한 번은 재단의 오랜 파트너인 블랙 오거나이징 프로젝트Black Organizing Project와 통화를 했는데, 통화가 끝나갈 무렵 상대방은 재단으로부터 장기적인(다년간의) 지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당시 힐-스노든 재단은 장기 지원금을 제공하더라도 매년 갱신하는 방식을 고수해오고 있었다. 재단 입장에서 지원금이 갖는 지속기간의 길고 짧음은 단순히 기술적 문제일 뿐이고, 우리의 책임은 동일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파트너들의 입장은 달랐다. 2005년 재단의 전략계획 수립 과정에서 장기 지원금으로의 전환을 요청한 지역사회 파트너들에게는 장기 지원이 활동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핵심 요소였다. 


당시 우리는 이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전략적인 차원에서의 의견 불일치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따라온 관행 때문이었다. 지원금을 다년간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려면 회계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했는데, 이는 번거롭고 기술적인 문제를 동반했기 때문에 우리는 전환을 주저했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돌아볼 때, 위기와 혼란의 시기에 장기 지원금 요청을 ‘거절'한 우리의 결정이 오판이었음을 깨닫는다. 그 결정이 지역사회 파트너가 아닌 우리 재단의 편의를 우선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서비스를 재구성하다

1년 단위의 지원금에서 다년 단위의 지원금으로 전환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질문과 가능성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를 전략적 재구성strategic reorientation이라 명명했다. 이것은 재단의 기금을 지역사회 파트너에게 단순히 이전하는 것을 넘어, 그 과정 자체를 재단의 핵심 가치에 완전히 부합하도록 조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우리는 파트너를 단순히 지원하는 것에서 그들의 역량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서비스를 재구성하는 과정은 우리의 업무를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때부터 우리는 ‘이것이 파트너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를 질문하기 시작했다. 만약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도움이 되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고민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직원들이 이사회 회의를 위해 길고 상세한 자료를 작성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는데, 그 과정이 파트너를 지원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것을 없앴다. 그 결과, 직원들은 그 시간을 지역사회 파트너와 소통하고 효과적인 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데  더 많이 활용하게 되었다.



변화를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힐-스노든 재단의 변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요소는 권력 구조와 인종정의에 대한 우리의 가치관을 명확히 한 것이었다. 파트너들과 굳건한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일은 항상 우리에게 최우선 과제였는데, 이는 상임이사인 냇 치오케 윌리엄스Nat Chioke Williams가 커뮤니티 및 청소년 조직가로서 쌓아온 경험의 핵심이기도 했다. 우리는 소외된 계층을 직접 지원하고, 그들의 리더십을 존중하며, 모두에게 공평한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하는 일에 전념했다. 


힐-스노든 재단의 확고한 인종정의 지향성 덕분에 우리는 조직의 변화를 모색하고 실현할 수 있었다. 신뢰 기반 필란트로피를 실행하면서 우리는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가치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기금 지원 방식에는 우리가 파트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책임감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년간 지원되는 기금을 도입하거나 불필요한 문서 작업을 없애는 변화를 통해 우리는 조직의 활동이 가치관과 더욱 밀접하게 일치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전략적 재구성 과정에서 우리는 네 가지의 중요한 배움을 얻었다. 이 경험이 인종정의와 신뢰 기반 접근 방식을 강화하고자 하는 다른 재단의 이사회 그리고 직원들에게 유용한 통찰을 제공하길 바란다.


이사회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고려하라  |  상임이사로서 윌리엄스의 주요 역할 중 하나는 이사회와 커뮤니티 간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사들이 직접 현장을 방문하거나, 이사들의 개인적인 경험과 인종정의 문제를 연결지을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제공할 때 이러한 관계의 강화가 이루어진다. 윌리엄스는 이를 자신의 핵심 역할로 삼았고, 그렇게 신뢰를 쌓았다. 그 결과 이사회가 가족 구성원을 넘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외부 인사들에게 개방되어 이사회의 다양성이 높아졌다. 


2020년에는 가족 구성원이 아닌 커뮤니티 인사 3명이 이사진에 합류했다. 이들은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유색인종 리더들이었다. 이사의 모집과 선발, 합류 과정에는 많은 고민과 신중함이 필요했다. 우리는 단일 인종으로 구성된 이사회를 다인종 이사회로 전환하는 방법을 이해하고자 애썼고, 흑인 주도의 조직화를 지원하기 위해 이사회의 역할을 재정의했다. 


여기에 더해 2022년 11월, 힐-스노든 재단 이사회는 의사결정 권한의 일부를 위임하기로 결정했다. 그 회의에서 우리는 다년 단위의 일반운영 지원금 지급 방식으로 전환하고, 10만 달러 이하의 모든 지원금에 대한 의사결정 권한을 재단 직원들에게 이양하기로 합의했다.


조직 내 인종정의 활동을 강화하라  |  힐-스노든 재단은 인종정의와 사회적 형평성을 위한 기금을 지원하는 일에 이미 상당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활동에 조직이 헌신하려면 우리 스스로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백인 위주로 구성된 이사회가 흑인 중심 단체를 지원하는 것의 의미와 영향을 깊이 성찰해야 했다. 단순히 재단의 가치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기금을 지원하거나 이사회가 지역사회 파트너와 연대하는 수준으로는 부족했다.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조직 내부에 잠재된 편견을 찾아보고, 업무와 관련된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이 중요한 과제를 실행하려는 의지가 조직 안에 이미 있었지만, 당시는 체계적인 성찰과 학습을 위한 구조나 지원이 부재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재단은 인종 평등 컨설턴트를 영입해, 매년 이사회에 참여하는 가족 이사들과 심도 있는 성찰의 과정을 가졌다. 이 과정을 통해 가족 이사들은 인종차별과 자신의 관계를 깊이 탐구하는 대화를 나누고, 가문이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인종차별적 요소가 없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조직 내부의 신뢰를 구축하라  |  우리는 탈권위적인 관계와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모든 직원은 이사회 회의에 참석할 수 있으며, 팀원 각각의 전문성과 경험, 지식을 존중한다. 가족 신탁의 수탁자인 리즈 보너Liz Bonner는 윌리엄스를 배분 전문가로서 신뢰하고, 그가 지역 파트너 및 다양한 지원기관과 맺고 있는 깊은 유대 관계를 높이 평가한다. 단순하게 들릴 수 있지만, 각 사람의 기여를 인정하며 장기간 협력해왔기 때문에 조직 내부에 상호신뢰와 존중이 축적되었다. 


2014년, 미주리 주 퍼거슨에서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이 경찰에 의해 사망하고,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주류 사회의 주목을 받기 시작할 무렵, 윌리엄스는 ‘흑인의 생명이 소중해지도록 만들기Making Black Lives Matter’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이 글에서 그는 흑인 주도의 사회변화를 지원하는 자선단체의 역할에 대해 다루었다. 윌리엄스는 상임이사 자격으로 승인을 구하지 않고 힐-스노든 재단의 이름으로 이 글을 기고하겠다고 이사회에 알렸다. 당시 이사회는 그의 리더십을 전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에, 이 결정을 만장일치로 지지했다. 이것은 신뢰와 공유가치, 공동의 사명에 기반한 견고한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권력구조의 변화로 시작하라  |  더 평등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권력을 재분배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면, 우리의 업무와 절차 내에서 권력이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이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지원기관들은 더 큰 목표를 향해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변화를 추진해나갈 수 있다. 


우리는 재단의 접근 방식을 개선하면서 새로운 모델을 적용했을 때 예상되는 변화를 상세하게 그려보고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각 프로세스를 검토할 때마다 변화가 뒤따라왔다. 업무의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신중하고 유연한 대응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이사회 자료 준비를 없애기로 했을 때, 우리는 이사회의 회의 방식이나 직원의 역할 또한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했다. 이사회가 중요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수많은 요소들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깨어있어야 진정한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요즘 같은 때에 어떻게 신뢰를 기반으로 한 원칙들을 따르지 않는 인종정의 지원조직이 있을 수 있을까? 왜 우리는 여전히 사회정의에 헌신하겠다고 공언하면서도 파트너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기회를 놓치고 있는 지원기관들을 목격하게 되는 걸까?


이 작업이 기존의 위계질서를 해체하고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임을 이해할 때, 우리는 윌리엄스의 말처럼 지속적인 각성만이 진정한 해결책임을 깨닫는다. 우리의 정체성과 행동 양식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한다. 우리의 여정에는 끝이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의 인간성을 신뢰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결코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할 수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일부 지원기관들이 겉핥기 식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은 신뢰 기반 실행방식과 얼추 비슷하게 기금 배분 방식을 전환한다. 하지만 신뢰 기반 필란트로피의 본질은 단순히 다년간의 지원원금을 지급하거나 신청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인종정의와 신뢰를 활동의 근간으로 삼는 일에 마음을 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그대로 재생산할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특히 필란트로피 자체가 이 사회의 인종화된 권력 구조의 직접적인 산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각성은 더욱 중요하다. 우리가 활동하는 이 영역에서 관계의 본질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이는 더 광범위한 사회변화를 시작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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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 CHIOKE WILLIAMS

냇 치오케 윌리엄스는 힐-스노든 재단의 상임이사이다. 


LIZ BONNER

리즈 보너는 힐-스노든 재단의 가족 수탁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