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란트로피]전략적 필란트로피, 어디서 잘못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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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란트로피 · 임팩트금융
전략적 필란트로피,
어디서 잘못되었나?

2025-4


MARK KRAMER ·  STEVE PHILLIPS



Summary. 전략적 필란트로피가 큰 규모로 성장하고 고도화되었음에도 국가 차원의 사회적 여건은 실질적으로 개선되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임파워먼트 필란트로피Empowerment philanthropy를 제안한다. 임파워먼트 필란트로피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해결책을 찾고, 효과적인 다인종 민주주의를 보장하도록 지원함으로써 정치적, 경제적 자기결정권을 증진할 새로운 접근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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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자선 기부 모델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학술·문화·의료 기관을 세우고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를 해결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해 구조적이고, 지속가능한 해법을 만들고자 했던 전략적 필란트로피의 성과는 놀라울 정도로 미미했다. 지난 40여 년 동안 미국의 자선 기부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대부분의 사회·환경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거나 오히려 악화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전략적 필란트로피의 실패가 100여 년 전 형성되어 오늘날까지 비영리 부문의 작동 방식을 규정하는 몇 가지 오래된 전제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그 전제란, 지원의 수혜자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고, 부유한 기부자는 복잡한 사회문제를 풀 지혜와 동기를 갖고 있으며, 비영리 부문은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있어 정부를 대체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정이 사실과 다르다는 증거는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빈곤에 처한 사람들조차 소액의 제약 없는 현금 지원과 또래 및 지역사회의 도움만으로도 스스로 삶을 개선할 수 있음이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다.1 반면, 부유한 기부자는 자신이 해결하려는 문제를 깊이 이해할 만큼의 실제 경험이 부족한 경우가 많고, 자신의 부와 특권을 위협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외면하곤 한다.2 그리고 사회·환경 문제를 국가 단위로 해결할 역량은 궁극적으로 정부에만 존재한다.


자선 활동만으로는 정부가 전 국민의 필요를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하는 현실을 보완할 수 없다. 그러나 최근 조지아, 애리조나 등 여러 주에서 나타난 유권자 참여 확대 사례는, 자선 활동이 유권자를 조직하고 대표성을 갖는 정부의 선출을 돕는 방식으로,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자선 활동은 보편적 기본소득 지급, 경제적 촉진, 시민 주도 변화와 같은 방식으로 개인의 성취를 지원하는 동시에, 사회적 진전을 가로막아온 파괴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내러티브를 약화시키며, 자기결정권을 강화할 수 있다. 우리가 임파워먼트 필란트로피라고 부르는 이 접근은 기존 전략적 필란트로피 모델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한다. 기존 모델은 비영리단체가 혁신적인 해결책을 구현하고, 기금제공자가 그중 뛰어난 사례를 발굴·평가·확대한다는 전제 위에 작동해 왔다. 앞으로 자선가는 당사자를 대신해 선택을 내려주는 역할에서 벗어나, 당사자가 경제적·정치적으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하고, 그들의 성취를 축하하고 확산하여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퍼뜨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러한 전환을 통해 자선 활동은 보다 넓고, 지속적인 사회·환경적 변화를 가속화하는 데 훨씬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략적 필란트로피를 오랜 기간 지지하고 실천해 온 우리로서는 이러한 결론을 받아들이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마크는 25년 넘게 필란트로피의 효과성을 높이는 방안을 연구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며, 필란트로피 분야에 자문을 제공해 왔다. 스티브와 작고한 그의 아내 수잔 또한 주요 자선 기부자로 활동해 왔다.


마크는 그의 조부모와 부모가 설립한 세 개의 소규모 가족 재단에서 이사로 활동했고, 여러 비영리단체의 이사회에도 참여했다. 또한 유대인 기금투자자 네트워크에서 두 차례 의장을 맡아 기금투자 컨퍼런스를 기획했다. 이러한 경험은 자선 활동이 큰 선을 만들어낼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왜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그를 이끌었다. 1990년대에 그는 필란트로피의 실행 방식을 개선하는 데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으며, 효과적인 비영리 프로그램에 안정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사회 발전의 핵심이라고 확신했다. 이후 그의 관점은 글로벌 비영리 컨설팅 기관인 FSG에서 함께 일한 동료들과 더불어 진화했다. 개별 프로그램 지원을 넘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스템 변화 중심의 연구 기반 기금전략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전략은 더 높은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략적 필란트로피는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규모의 변화를 실현하지는 못했다.


마크는 오래전부터 자선가의 가장 효과적인 역할은, 사회문제의 해법을 직접 고안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개방적 프로세스를 가능하게 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은 20년 전 그가 론 하이페츠, 존 카니아와 함께, 2004년 스탠퍼드 소셜 이노베이션 리뷰에 발표한 글 '대담한 리더십Leading Boldly'에서 처음 제시되었다. 어댑티브 리더십adaptive leadership을 다룬 이 아티클은 기금제공자의 역할이 이해관계자들이 스스로 해결책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필요한 조건을 조성하고 유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2011년 카니아와 함께 발표한 '컬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는 지속적인 변화란 좋은 프로그램 하나로 이루어지기 어렵고, 여러 조직과 분야가 계속적으로 협력해야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후 발표된 여러 연구에서는 구조적으로 뿌리 깊은 인종차별과 다양한 형태의 차별이 어떻게 현 상태를 고착화하는지 그리고 이를 정당화하며 유지시키는 잘못된 사회적 통념, 즉 사회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인종적, 성차별적 서사가 어떻게 자선가의 판단을 왜곡할 수 있는지 분석했다.3


그러나 최근 들어 마크는 여러 사회문제를 다루는 필란트로피의 노력이 정부의 영향력에 압도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법률·정책·법원 판결을 통해 나타나는 정부의 조치가 규모 면에서나 효과의 즉각성 면에서 비영리단체의 활동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른바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개혁법Affordable Care Act과 코로나19 구호 정책은 정부가 수백만 명의 질병과 빈곤을 단기간에 완화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한편, 이념적 반대편에서는 보수 정치인과 판사들이 기업 로비스트들과 손을 잡고, 인종 평등, 재생산권, LGBTQ+ 권리, 빈곤, 아동 노동, 총기 안전, 유권자 보호, 환경 규제 등에서 지난 수십 년간 쌓아온 사회적 진전을 놀라울 만큼 빠르게 되돌리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마크로 하여금 필란트로피가 지닌 내재적 한계를 직시하고, 정치 과정에 훨씬 더 깊이 관여하지 않고서는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도록 했다. 이후 그는 진정한 다인종 민주주의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과 가능성을 다룬 스티브의 최근 저서 <내전에서 승리하는 법How We Win the Civil War>을 읽은 뒤, 필란트로피가 정치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더 깊이 이해하고자 스티브에게 연락을 취했다.


스티브는 네이션과 가디언의 정기 칼럼니스트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인 <유색인종은 새로운 백인이다Brown Is the New White>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그는 미국의 선거 전략이 오랫동안 경합주의 백인 유권자 공략에 집중해 온 관행을 비판하며, 인구 변화로 유색인종 유권자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새로운 다수가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유색인종 유권자와 진보적 성향의 백인 유권자를 합치면 전체 유권자의 51%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스티브는 또한 데모크라시 인 컬러Democracy in Color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이 단체는 인종과 정치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정치 전략과 분석을 수행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스티브는 성장기 전반에 걸쳐 시민권 운동의 영향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시민권과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할아버지가 목회하던 흑인 교회를 다니며 자랐는데, 1960년대 그의 부모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하이츠의 백인 거주 지역으로 이주를 결심했다. 하지만 그 계획은 그들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집주인이 매각을 거부하면서 난관에 부딪쳤다. 그의 부모는 한 백인 시민권 운동가와 협력해, 그가 먼저 집을 구입한 뒤 소유권을 넘기는 방식으로 이사를 성사시켰다. 1984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흑인학생연합 대표로 활동한 스티브는 제시 잭슨의 대통령 선거 캠페인과 무지개 연합Rainbow Coalition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메시지 전략, 조직화, 유권자 동원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처음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스티브와 고인이 된 그의 아내 수잔 샌들러는 선거 정치와 인종정의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요 기부자로 활동해 왔다. 2005년, 이들은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 성향 기부자들이 기부를 보다 체계적으로 조율하기 위해 만든 민주주의 연합Democracy Alliance의 초기 구성원으로 참여했다. 스티브는 또한 프로퍼블리카ProPublica 그리고 미국 최대의 진보 정책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를 포함한 여러 진보적 기관의 설립과 자금 지원에 관여했다. 2006년에는 유색인종 커뮤니티에 공동 투자하기 위해 조직된 후원자 네트워크인 캘리포니아 기부자 테이블California Donor Table을 만들기도 했다. 수잔이 2022년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 부부는 수잔 샌들러 기금의 총 2억 달러 기부 약정의 일환으로 인종정의 단체에 2천만 달러가 넘는 자금을 지원했다.


스티브와 수잔이 진보적 시민단체에 투자해 온 활동은 필란트로피가 정부와 선거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2016년, 그들이 지원한 애리조나의 리빙 유나이티드 포 체인지Living United for Change는 최저임금을 시간당 12달러로 인상하는 주민발의안을 통과시키는 데 기여했다. 또한 뉴 버지니아 다수 연합New Virginia Majority에 대한 이들의 지원은 유권자 조직화와 투표 참여 확대를 뒷받침하여 민주당 다수의 의회 구성을 가능하게 했다. 그 결과 2019년에는 버지니아의 40만 명이 넘는 저소득층 주민이 의료보험 지원 자격을 얻었고, 2021년에는 약 80만 명의 노동자가 최저임금 인상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간의 모든 활동과 경험을 통해 스티브는 지금이야말로 필란트로피에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퓰리처상 수상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이자벨 윌커슨의 표현처럼, 우리는 지금 '세상에 퍼져버린 독성 병원균'을 극복하고, 사회적 규범은 물론 민주주의 자체를 잠식해 온 붕괴의 흐름을 되돌려야 하는 순간에 있기 때문이다.



카네기의 전제는 틀렸다

오늘날 전략적 필란트로피의 원류로 거론되는 앤드루 카네기의 <부의 복음Gospel of Wealth>은 1889년에 발간된 책으로, 현재 전략적 필란트로피 방식에 내재한 가부장적 관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카네기는 "부가 소수의 손을 거쳐 전달될 때, 그것은 대중에게 소액으로 직접 분배될 때보다 인류를 더 크게 발전시키는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중에게 직접 분배되면 "욕망을 충족하는 데 낭비될 것"이라고도 단언했다. 결국 그는 "부유한 사람은 자신의 우월한 지혜와 경험, 관리 능력을 활용해 가난한 형제들의 대리인이 되어 그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요컨대 카네기는 '가난한 형제들'은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알지 못하며, 제약 없는 지원금을 책임 있게 사용할 수도 없다고 보았다. 그렇다고 해결책을 정부 관료에게 맡기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대신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이야말로 해법을 고안하기에 가장 적합한 위치에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카네기의 관점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신화에 의해 더욱 공고해진다. 이 신화는 모든 사람이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경제적 성공을 이룰 수 있으며, 빈곤은 개인의 책임이기 때문에 가난한 이들은 결국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탓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서사는 너무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를 내면화하고, 그 결과 자기 주체성과 자신에 대한 믿음은 약화된다.4


빈곤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이러한 서사에는 인종차별이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미국 경제가 언제나 유색인종의 노동을 기반으로 백인들의 번영을 구축해 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빈곤층은 여전히 불균형적으로 유색인종에 집중되어 있다.5 스티브가 <유색인종은 새로운 백인이다>에서 지적했듯, "미국 역사 초기부터 유색인종은 집단적으로 빈곤 상태에 놓였고, 정부가 승인하고 조장한 정책들에 의해 그 상태에 머물도록 만들어졌다.… 반면 백인은 집단으로서 끌어올려지고, 특권을 누리고, 보호받아 왔다." 구조적 인종차별이 신발을 바닥에 단단히 고정해 놓은 상황이라면, 아무리 신발끈을 당겨 스스로 일어서려 해도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다는 의미다.


이 나라의 대부분의 자선가들은 자각하든 그렇지 않든 여전히 카네기를 모델로 삼고 있다. 1조 달러 규모에 이르는 비영리 부문의 구조 자체가 카네기의 관점을 기반으로 형성되었고, 그 결과 비영리 자원은 사람보다 프로그램에 우선 배분된다. 또한 어떤 프로그램에 자금을 지원할지는 선의를 가진 (대부분 백인인) 부유한 기부자들에 의해 결정한다. 전략적 필란트로피를 다룬 이후의 여러 연구도 기금제공자가 사회적 조건을 변화시키기 위한 개입을 가장 잘 설계할 수 있다는 카네기의 관점을 강화해 왔다.6 그러나 과연 카네기의 생각이 옳았을까?


비즈니스를 성공시키는 능력과 사회 변화를 이끄는 지혜가 동일한 것일까? 많은 자선가들은 사업에서 얻은 재정적 성공을 자신의 탁월한 판단력의 증거로 여기며, 그 판단력이 사회변화를 이끄는 데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암묵적으로 믿어왔다. 그러나 사업적 역량과 사회적 진보를 촉진하는 역량이 서로 호환된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전문성이 다른 분야로 전이되지 않는 경우는 흔하다. 아인슈타인은 그림을 잘 그리지 못했고, 피카소는 수학을 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카네기 역시 동시대의 사회 변혁가였던 마하트마 간디에게 사업 조언을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카네기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방법을 이해했다고 또는 오늘날의 억만장자들이 이해하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일까? 사업적 성공을 이끄는 명령–통제식 접근과,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사회변화를 촉발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 공감, 삶의 경험의 조합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카네기의 해결책에는 자신의 비즈니스 관행을 바꾸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고, 그 결과 그의 부와 특권은 그대로 보호되었다. 실제로 특정 자선단체를 지원함으로써 그 단체가 돕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사회문제를 만들어낸 더 넓은 범위의 구조적 조건을 직면하는 일과는 별개일 수 있다. 예컨대, 누군가는 푸드뱅크에 기부하면서도 기업의 이윤 구조와 저임금의 상관관계에는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있고, 사회안전망 프로그램과 세수 구조의 연결 또한 외면할 수 있다. 사회적 진보를 부유층이 주도하는 방식에서는 자선 활동이 너무 쉽게 위약 효과처럼 작동할 위험이 있다. 선의의 도움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기부자에게 불편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개혁으로부터 사회적 관심을 돌리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부유층의 '지혜'에 사회적 진보를 의존할 때 나타나는 교묘하고도 의도치 않은 결과다. 저널리스트 아난드 기리다라다스가 <승자독식Winners Take All>에서 지적했듯, 부유층은 지속가능한 변화를 위해 필요한 구조적 개혁에는 손대지 않은 채 '자신의 역할을 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가난한 형제들'은 현금을 현명하게 사용할 수 없다는 카네기의 가정 역시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제약 없는 현금 지원과 보편적 기본소득에 관한 연구가 축적되면서 명확히 입증되고 있다.7 예를 들어, 비영리단체 기브다이렉틀리GiveDirectly는 2008년 이후 전 세계 140만 명에게 5억 8천만 달러 이상의 제약 없는 현금을 지원해 왔으며, 그 효과를 면밀히 추적해왔다. 분석 결과, 수혜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지원금을 삶을 개선하는 데 현명하게 사용했고, 카네기가 말한 '사치와 낭비'에 쓰인 비율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무작위 대조군 실험에서도 제약 없는 현금 지원은 저축, 영양, 교육, 정신건강이 향상되고, 스트레스, 조혼, 10대 임신, 가정폭력이 감소하는 등 삶의 질 개선에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8 또한 캘리포니아 스톡턴에서 실시된 보편적 기본소득 무작위 대조군 실험을 포함한 여러 연구는 현금 지원이 수혜자에게 '고용이나 돌봄 관련 새로운 기회를 탐색할 수 있는 더 큰 주체성'을 갖게 한다는 점도 보여주었다.9


요약하자면 "부유하기 때문에 현명하고, 가난하기 때문에 무지하다"는 카네기의 믿음은 오늘날까지 지속되어 온 가부장적 자선 모델의 토대를 이루었다. 그런 관점이 지배해 온 만큼, 필란트로피의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도 어찌 보면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필란트로피는 정부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미국의 자선 기부 규모는 1980년 550억 달러에서 2022년 4,850억 달러로 9배 증가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더라도 약 300% 늘어난 수치다. FSG, 브릿지스팬Bridgespan, 아라벨라Arabella와 같은 소셜임팩트 컨설팅 회사들, 대학 연구센터, SSIR과 같은 전문 출판물은 점점 더 정교한 자선 전략과 개념을 제시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곤, 만성 질환, 교육 격차, 주택 부족, 인종 불평등, 기후변화 등 국가적 긴급 과제에서는 뚜렷한 진전을 찾아보기 어렵다. 기빙USA에 따르면, 매년 미국 자선 기부금의 약 3분의 2는 종교 기관, 대학, 예술·문화 기관, 의학 연구, 국제적 목적에 사용되며, 대부분 이러한 문제를 간접적으로만 다룬다. 더욱이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직접 겨냥하는 연간 약 1,500억 달러 규모의 기부금조차도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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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 기부와 빈곤율의 변화(1980–2022) | 인플레이션을 반영해 조정한 금액 기준으로 자선 기부는 크게 증가했지만, 빈곤율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출처: 미국 인구조사국, 기빙USA)



1980년에서 2022년 사이 자선 기부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빈곤율은 사실상 변화가 없었다. 같은 기간 노숙자는 약 600% 증가했고, 인종 간 부의 격차는 연평균 0.1%씩 꾸준히 벌어졌다. 2022년 전체 사망률은 1980년보다 3% 높아졌으며, 산모 사망률은 두 배로 증가했다. 특히 흑인 여성의 산모 사망률은 백인 여성의 세 배에 달했다.10 탄소 배출량은 2007년 정점을 찍은 이후 감소했지만, 2022년에도 여전히 1980년보다 약 5% 높은 수준이었다. 교육 수준은 수십 년간 점진적으로 개선되었으나 이는 자선 기부 증가와는 무관한 흐름이었고,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모든 아동이 학습 후퇴를 겪었다. 지난 40년 동안 대학 졸업률은 17%에서 35%로 두 배 증가했지만, 빈곤율은 여전히 제자리였고, 4,400만 명은 1조 8천억 달러에 달하는 학자금 부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전히 가장 많은 기부금을 받는 종교 단체 역시 예외가 아니다. 종교적 소속감과 참여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으며, 수천억 달러의 기부금으로도 이러한 추세를 뒤집지 못했다.


자선 활동이 없었다면 사회적·환경적 조건이 훨씬 더 악화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실제로 자선은 수백만 명에게 도움을 준 수많은 유의미한 프로그램을 지원해 왔다. 그러나 자선 활동만으로는 국가적 규모의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 역시 충분하다. 미국은 1인당 자선 기부액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지만, 여러 사회복지 지표에서는 OECD 국가 중 하위권에 머물고 있으며, 많은 사회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나라로 기록되고 있다. 1990년부터 2022년까지 실질 기부액이 두 배로 증가했음에도, 미국의 사회적 진보 순위는 전 세계 8위에서 31위로 크게 하락했다. 기부 규모와 사회성과 간의 불일치는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 캐나다, 영국과 같이 1인당 자선 기부액이 가장 많은 국가들은 사회적 진보 지표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성과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반면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독일, 일본처럼 사회적 진보 지표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국가들은 1인당 기부액이 미국의 약 2% 수준에 불과하며, 자선보다 정부를 중심으로 사회적 필요를 충족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미국은 긍정적 사회 성과에서 최하위권에 속한다순위미국 앞, 뒤에 위치한 국가
최저 소득 보장 수준의 적정성39루마니아와 헝가리
기대수명35폴란드와 에스토니아
정부에 대한 신뢰35체코와 리투아니아
유권자 투표율31그리스와 콜롬비아
교육에 대한 공공 지출21한국와 에스토니아
경제적 이동성16아르헨티나와 스위스


그리고 부정적 지표에서는 상위권에 속한다순위미국 앞, 뒤에 위치한 국가
고용 장벽으로 작용하는 육아 비용12위인 스위스보다 30% 높음
빈곤율2코스타리카와 이스라엘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노동시간2슬로베니아와 슬로바키아 공화국
소득 불평등5튀르키예와 불가리아
비만율5루마니아와 헝가리
자살률6에스토니아와 헝가리
탄소 배출8오스트레일리아와 캐나다
영아 사망률13루마니아와 불가리아


OECD 국가 대비 미국의 사회 지표 순위 | OECD, 퓨 리서치 센터, 스탠퍼드 빈곤·불평등 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긍정적 사회 성과에서는 OECD 국가 중 하위권에, 부정적 지표에서는 상위권에 위치해 있다. 미국과 보통 동등한 비교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는 국가들과도 비슷한 수준을 보인다.


미국의 사례는 정부가 자선 활동으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빈곤을 완화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1960년대 존슨 대통령이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했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에 대해, 마사 베일리와 니콜라스 뒤케트는 <경제사학회지Journal of Economic History> 논문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의회는 미국의 공교육 체제를 혁신하고, 메디케어Medicare와 메디케이드Medicaid를 도입했으며, 주택 보조금, 도시개발 프로그램, 고용·직업훈련 프로그램, 식비 지원, 사회보장 및 복지 혜택을 확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조치로 "건강·교육·복지 분야의 실질 연방 지출은 세 배 이상 늘어났으며, 1970년에는 연방 예산의 15%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 결과 빈곤율은 24%에서 12%로, 절반으로 감소했다. 더 최근에는 코로나19 긴급 구호 지급 덕분에 1,200만 명이 일시적으로 빈곤에서 벗어났고, 자녀 세액공제 확대를 통해 아동 빈곤율이 절반으로 줄었다. 하지만 2023년 의회가 확대된 세액공제를 철회하자, 컬럼비아대학교 빈곤·사회정책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아동 빈곤율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증가했다. 어떤 자선 프로그램도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이러한 수준의 변화를 만들어낸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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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사회진보지수(SPI)에 포함되어 있으나 자선 기부 데이터가 없는 국가는 차트에서 제외했다. 자선 기부 데이터는 2016년 기준, SPI 데이터는 2023년 기준이지만, 2016년 SPI 데이터를 사용하더라도 추세선은 유사하게 나타난다. (출처: 소셜 프로그레스 임퍼러티브Social Progress Imperative, 채리티스 에이드 파운데이션Charities Aid Foundation)


정부가 사회적 진보를 앞당기거나 가로막을 수 있는 능력은 자선 활동과 로비 활동의 비용 대비 효과를 비교해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연간 자선 기부액은 정치 후원금이나 기업 로비 지출을 크게 웃돈다. 예컨대 2020년 선거 주기 동안 자선 기부액은 정치 후원금보다 약 40배 많았다.11 그러나 영향력의 크기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2022년 미국 화석연료 업계는 연방 보조금을 유지하고 기후 규제를 저지하기 위해 연방 로비와 정치 후원에 1억 8천만 달러를 지출했다. 같은 해 기후변화 대응 비영리단체들이 받은 자선 기부는 75억 달러에 달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어느 쪽 돈이 더 큰 영향을 미쳤을까?


사실 의회는 이미 60여 년 전, 자선 부문의 정치 자금 지출이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1960년대 여러 재단이 민권운동을 지원하자, 보수 성향의 의원들은 자선 부문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지 못하도록 1969년 세제개혁법Tax Reform Act of 1969을 통과시켜, 재단의 로비 활동과 당파적 정치 참여를 제한했다. 특히 포드 재단이 유색인종 유권자 참여를 지원해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미국 최초의 흑인 시장인 칼 스톡스의 당선을 도운 사례는, 재단의 정치 개입이 위험하다는 대표적 근거로 의회에서 직접 언급되었다.


오늘날 개인도 로비스트를 고용할 수는 있지만 그 비용은 세액 공제 대상이 아니다. 반면 기업은 종종 공익과 배치되는 방향으로 로비를 하면서도 해당 비용을 과세소득에서 공제받을 수 있다. 재단의 로비 활동을 제한한 1969년 규정은 비영리 부문이 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억제했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보호하려는 노력조차 위축시키는 결과를 불러왔다.


정부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아무리 자금이 풍부하고 성과가 뛰어난 자선 단체라 하더라도 국가적 규모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12 예를 들어, 티치 포 아메리카Teach for America는 2013년 활동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매년 약 40만 명의 학생에게 교사를 제공했지만, 이는 무료급식 자격이 있는 2천만 명의 저소득층 학생 가운데 고작 2%에 불과했다. 또 다른 사례로 벤처 필란트로피의 대표적 성공 모델로 평가받는 간호사–가족 파트너십Nurse Family Partnership, NFP이 있다. NFP는 저소득층 초산모에게 가정 간호 지원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지난 30년 동안 수백만 달러의 보조금과 견고한 경영·컨설팅 지원을 받아 빠르게 성장해 왔다. 현재는 미국 40개 주에서 매년 5만 5천 명의 산모를 지원하는 성과를 내고 있지만, 이 역시 매년 저소득 가정에서 태어나는 약 150만 명의 신생아 중 4%에도 미치지 못한다.


비영리 부문을 통해 사회적 진보를 이루려는 도전은 단순히 규모의 한계를 넘어, 자선 활동이 문제의 증상을 완화하는 수준 이상으로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느냐는 본질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빈곤은 구조적 인종차별의 역사가 만들어낸 정부 정책과 기업 행태의 직접적인 산물로, 어떤 비영리 프로그램으로도 이를 근본적으로 바로잡을 수 없다. 또한 미국의 빈곤층 중 54%는 어린이, 노인, 장애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노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미국 연방정부가 이 인구집단에 제공하는 지원은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13 이 격차만 해도 미국의 연간 자선 기부 총액의 두 배가 넘는다.14


취업이 가능한 나머지 46% 가운데 상당수는 저임금 일자리에 머물러 있다. 또한 미국의 18세~64세 노동자 중 44%는 연간 중위소득이 1만 8천 달러에 미치지 못한다. 최저임금 이상을 받는 시간제 노동자라 하더라도, 불규칙한 근무 일정 때문에 주 40시간을 채워 일하거나 추가 일자리를 갖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지난 10여 년 동안 저임금 일자리는 미국 경제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직종군이었다. 그 결과, 미국에는 전체 노동인구가 생활임금을 받을 수 있을 만큼의 양질의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15


요약하자면, 미국 정부는 취업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충분한 생계를 보장하지도 않았고,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근무 환경을 제공하고, 예측가능한 일정 속에서 생활임금을 지급하도록 기업에 요구하지도 않는 의도적 선택을 해왔다.16 그 선택이 초래한 결과는 어떤 비영리 프로그램으로도 상쇄할 수 없는 수준이다.


기후변화와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 문제나, 비만 문제와 가공식품에 사용되는 옥수수 시럽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농업법 역시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사회·환경 조건은 정부의 정책적 선택과 기업의 행동으로 크게 좌우되는데, 비영리 부문은 이러한 구조적 조건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데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다. 이는 전략적 필란트로피가 다루려는 대부분의 문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실이다.


실제로 현재의 필란트로피 모델은 사람들을 오도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자선가들이 사회문제 해결을 비영리 부문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제대로 작동하고 대표성을 갖춘 다인종 민주주의가 얼마나 절박하게 필요한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희석된다. 이러한 민주주의 없이는 보다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우리가 자선 활동을 '해결책'으로 부각할수록, 정부와 기업이 변화해야 할 책임에서 벗어날 여지를 더 많이 제공하게 된다. 정부를 최소한의 역할만 수행하는 존재로 축소하려는 자유지상주의적 구상도 비영리 부문이 정부를 대신해 사회적 요구를 충족할 수 있다는 가정 위에 성립하지만, 실제로 소셜섹터는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진정으로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우리는 다인종 민주주의의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전략적 필란트로피는 오랫동안 각 사회적 난제의 '근본 원인'을 찾겠다고 주장해 왔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미국이 직면한 모든 사회·환경적 문제의 가장 중요한 근본 원인이, 전체 인구의 웰빙을 보장하지 못하는 정치 시스템의 실패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표성이 결여된 정부

오늘날 정부가 취하는 조치와 대부분의 미국인이 원하는 결과 사이에는 뚜렷한 간극이 존재한다. 미국인의 3분의 2는 기후변화가 국가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보고, 정부가 더 강력히 대응하기를 바란다. 85%는 낙태할 권리를 지지하고, 80%는 LGBTQ+ 권리가 법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또한 다수는 성평등과 인종적 평등에 동의하며, 더 엄격한 총기 규제를 선호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특정 도서를 금지하는 조치에 반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각급에서 통과되는 수백 건의 입법과 법원 판결은 이러한 여론과 점점 더 반대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정치적 결정과 여론 사이에 이러한 간극이 발생하는 이유는, 유권자 참여 과정 전반에 인종적·경제적·연령 기반의 구조적 편향이 뚜렷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들어 유색인종 유권자를 배제하려는 조치들이 이어지면서 이러한 패턴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여기에 2013년 미국 대법원의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 무력화, 엄격한 주별 유권자 신분확인법,선거구 경계 조작(게리맨더링), 투표소 폐쇄, 조기투표 제한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유권자 억압 조치들은 이미 과거 여러 선거에서 승패를 가른 표차보다 더 큰 규모의 투표율 감소를 가져왔다. 시간제 근로자, 특히 유색인종이 많은 직군은 근무 시간 중 투표를 하면 소득 감소를 감수해야 하고, 지역 내 투표소가 적어 긴 대기열을 겪기 쉽다. 반면 고소득 월급제 근로자와 은퇴자는 더 많은 투표소에 접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대기 시간도 짧고, 투표를 위해 시간을 내더라도 경제적 손실을 입지 않는다. 그 결과, 정기적으로 투표하는 인구는 전체 인구 구성에 비해 현저히 더 고령이고, 백인 비중이 더 높으며, 더 부유하다는 특징을 보인다.


스티브는 <내전에서 승리하는 법>에서 이렇게 말한다. "수 세기에 걸쳐 구조적 인종차별과 억압의 역사를 가진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에 참여하는 일을 소비 활동만큼 쉽게 만들려는 관심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백인 유권자층은 한 세기 넘게 정치인들이 구조적 인종차별과 경제적 불평등을 강화하는 선택을 하도록 압력을 가해왔다. 심지어 백인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는 선택을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 모두의 합The Sum of Us>의 저자이자 정책 옹호자인 헤더 맥기는 수십 년 전 미국 남부의 수백 개 도시에서 벌어진 일을 소개한다. 이들 도시는 법원의 인종 통합 명령을 받아들이느니 아예 공공 수영장의 물을 빼거나 시멘트로 메워버리는 길을 택했다. 그 결과, 흑인 아동보다 훨씬 더 많은 백인 아동이 수영할 기회를 잃었다. 오늘날의 차별 패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건강보험개혁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지난 2020년에도 10개 주는, 흑인보다 백인 주민이 더 큰 혜택을 받을 수 있음에도 연방정부의 무상 재정을 거부했다. 올해에도 15명의 공화당 주지사는 여름철 학생 급식 제공을 위한 연방 무상 지원금을 거부했다. 빈곤층의 42%가 비 히스패닉계 백인이고, 흑인은 24%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는 더욱 놀라운 결정이다.17 맥기는 이러한 사례들이 보여주듯, 미국이 체계적 인종차별에 대한 고집스러운 충성심 때문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었던 수많은 기회를 스스로 포기해왔다고 결론짓는다.



사회 진보를 위한 권한 강화 접근법

이제 카네기의 모델을 뒤집어, 가난한 사람들의 지혜를 신뢰할 때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일정한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이 기꺼이 해결책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선가의 역할은 타인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이 선택한 방식으로 삶을 개선할 수 있도록 그들의 권한을 강화하는 데 있다. 하지만 이것이 사람들이 아무런 도움 없이 스스로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현재의 많은 자선 활동 및 비영리 관행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지원과 상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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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사회를 지향하는 자선가들은 우리 사회의 인구 구성을 반영하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보장하고, 여론을 왜곡하는 사회적 서사를 거부하며, 빈곤층의 경제적 자기결정권을 강화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진정한 다인종 민주주의 보장 │ 정부만이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킬 힘과 규모를 갖고 있다면, 자선가들은 정부의 행동에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배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종 불평등, 세금 정책, 투표 방해, 기업 규제, 최저임금, 노동 조건과 같은 '정치적 금기 영역'에 정면으로 맞설 필요가 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권한을 강화하려면, 현재 권력을 가진 이들의 권한을 일정 부분 제한하는 조치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야말로 결국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더 활기차고 공정한 경제를 만들어가는 길이다.


진정한 다인종 민주주의가 작동하려면 정치 과정이 인구의 다양성을 정확하게 반영해야 한다. 미국 선거는 경합 주에서 몇천 표 차이로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필란트로피는 재단과 501(c)(3) 단체에 법적으로 허용된 두 가지 활동, 즉 유권자 참여 촉진과 이슈별 유권자 교육을 통해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활동에 대한 재단의 자금 지원은 극히 미미하다. 2022년 재단 보조금 총액 1,050억 달러 가운데, 유권자 참여 및 교육에 투입된 금액은 81개 재단이 지원한 4억 800만 달러로, 전체의 0.5%에도 미치지 못한다.18


문제는 자금의 부족뿐 아니라, 그 자금이 비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데 있다. 백인 남성은 미국 인구의 31%, 민주당 유권자의 23%에 불과하지만, 민주당 정치와 진보적 옹호 활동의 약 90%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19 그 결과, 선거 캠페인은 백인 남성 컨설턴트에게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고, 주로 백인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TV 광고에 수백만 달러를 투입하는 관행을 반복해 왔다. 이러한 전술은 유권자 참여를 높이는 데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스테이시 에이브럼스가 이끈 뉴 조지아 프로젝트New Georgia Project, NGP의 시민참여 활동은, 훨씬 더 효과적이고, 대안적인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NGP는 활동 지역의 주민들로 구성된 유권자 등록·동원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10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연구와 실천을 병행했다. 이들은 투표율 데이터를 면밀히 분석하고, 주요 선거구의 유권자 태도와 인구통계를 세밀한 스프레드시트로 추적하며 전략을 정교화했다. 그 결과는 매우 뚜렷했다. 유색인종 유권자의 투표 참여는 2016년 62만 5천 명에서 2020년 91만 5천 명으로, 거의 50% 가까이 증가했다.20 이 추가 투표율은 민주당의 라파엘 워녹과 존 오소프가 미국 상원의원에 당선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조지아에서 흑인 상원의원과 유대인 상원의원이 선출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두 후보의 승리로 민주당은 상원 다수당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이는 2022년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의 통과로 이어졌다. 이 법은 청정에너지 전환 지원, 의료비 절감, 세수 개선 등을 위해 약 5천억 달러 규모의 재원을 마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간 예산이 불과 1,300만 달러 수준인 조직이 거둔 성과로는 놀라운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버지니아애리조나노스캐롤라이나텍사스에서도 유권자 참여를 확대하려는 유사한 흐름이 전개되고 있다. 수잔 샌들러의 말처럼, "정부가 불평등과 불공정의 가장 큰 피해를 겪는 사람들에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심지어 그들을 두려워하게 될 때, 비로소 더 나은 우선순위와 실행 방식, 정책이 뒤따르게 된다."


유권자의 인식을 왜곡하는 거짓된 사회적 서사를 바로잡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한 과제다. 극단적 당파 대립이 심화되고, 허위 정보가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며, 소셜미디어의 필터 버블 속에서 유사한 의견만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는 오늘의 환경에서는, 유권자의 태도를 변화시키고 잘못 형성된 멘탈모델을 깨뜨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모든 미국인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선거에 참여한다면, 극단주의적 견해가 차지하는 영향력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더 나아가 전략적 필란트로피가 유권자 교육과 참여를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큰 진전을 이룰 가능성도 열릴 것이다.


재단의 연간 보조금 중 단 5%인 50억 달러만이라도 NGP 방식의 유권자 참여 활동에 투입된다고 상상해 보자. 이는 미국의 선거 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뿐 아니라, 지금까지 재단들이 비영리 프로그램을 통해 어렵게 이루려 했던 성과를 전국 단위 정책 수준에서 구현할 기회를 열어줄 것이다.


재단은 정부에 미치는 영향의 범위를 넓힐 수도 있다. 비록 재단의 로비 활동은 일반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유일한 예외인 자기방어 조항self-defense clause에 따라, 재단은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 의회에 로비할 수 있다. 즉, 공익을 위한 로비 활동을 허용받기 위해 로비할 수 있는 셈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러한 변화는 훨씬 적은 비용으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다만 이런 조항의 확장은 지금과는 매우 다른 성격의 의회에서만 비로소 실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정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더라도, 자선 활동은 개인의 주체성을 강화하는 임파워먼트 접근법을 채택함으로써 빈곤층을 지원하는 데 훨씬 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자기결정권 강화 │ 정부 재원으로 제공되는 보편적 기본소득은 미국의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유력한 해법 중 하나이며, 기부자들이 지지해야 할 과제이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그의 마지막 저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Where Do We Go from Here?>에서 "개인의 존엄성은 자신의 삶에 관한 결정권을 스스로 가질 때, 소득이 안정적이고 확실하다는 보장을 받을 때 그리고 자기발전을 추구할 수단이 있을 때 비로소 꽃핀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구호 기금의 규모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보편적 기본소득을 열 번 이상 시행할 수 있을 정도였다는 사실은, 충분한 정치적 의지만 있다면, 전국적인 보편적 기본소득이 재정적으로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21


보편적 기본소득이 없더라도, 필란트로피는 사람들이 지닌 자아실현에 대한 보편적 열망을 활용해 경제적 권한을 강화할 수 있다. 맥아더 재단의 천재 기금Genius Grant 수상자인 마우리치오 밀러가 개발한 동료 주도 변화 모델은 그 한 가지 접근 방식을 제시한다. 2001년, 밀러는 정부나 필란트로피의 기존 개입 방식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빈곤 완화 모델을 도입하며, 패밀리 인디펜던스 이니셔티브Family Independence Initiative(2021년 업투게더UpTogether로 명칭 변경)를 시작했다. 그는 오클랜드에서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던 저소득 가정 25가구를 대상으로 매월 모임을 조직했다. 참여자들은 프로그램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지 않았고, 외부 전문가의 조언도 제공받지 않았으며, 다른 비영리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지 않았다.22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은 서로의 희망과 목표를 나누고, 진행 상황을 공유하며, 조언과 격려를 건네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교육을 다시 받기 시작하거나, 더 건강한 식습관을 갖추거나, 부채를 갚는 데 성공하면, 그 경험은 다른 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영감을 주었다. 매월 저축, 건강, 개인 목표에 대한 변화를 기록하고 보고하도록 한 구조는 참여자들의 집중력을 높이고, 결의를 더욱 단단하게 했다. 공동체적 유대감이 형성되면서, 이들은 육아와 집수리, 새로운 일자리 찾기 등 실질적인 도움을 서로 주고받기 시작했다. 밀러는 이러한 과정이 '부유한 가정이 개인적, 직업적 성취를 위해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사회적 네트워크를 저소득 가정이 스스로 재현해낸 것'이라고 설명한다. 성과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오클랜드에서는 3년 후 가계 소득이 40% 증가했다. 이 모델은 샌프란시스코와 하와이, 보스턴에서도 동일하게 진행되었고,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프로그램 참여 2년 만에 소득이 23% 증가하고, 저축은 240% 늘어났다. 또한, 정부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하던 참여자 중 약 4분의 1은 더 이상 지원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23


이후 밀러는 피어 드리븐 체인지 센터Center for Peer Driven Change를 설립해, 전 세계의 어려움을 겪는 지역사회에 이 접근법을 확산하고 있다. 이 모델에서 참여자들은 서로의 지식과 네트워크를 공유하고, 격려를 주고받으며, 각자의 목표 달성을 돕는다. 같은 공동체 구성원이 자신과 동일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외부인이 제공할 수 없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사람들은 주변 동료들의 성공을 모방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스스로를 발전시키기 때문에, 동료의 성공뿐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성취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리처드 파스칼, 제리 스터닌, 모니크 스터닌이 <긍정적 이탈자의 영향력The Power of Positive Deviance>에서 설명하듯, 어떤 문제를 가진 공동체든 그곳에는 이미 그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한 긍정적 이탈자positive deviants가 존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구성원은 이러한 비정형적 행동을 알지 못하거나, 설령 알더라도 그 효과에 대해 회의적이다. 공동체를 면밀히 관찰하면 긍정적 이탈자를 발견할 수 있고, 그들이 문제해결 방식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도록 지원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권한 강화 방식으로는 경제 촉진economic facilitation 접근법이 있다. 경제개발 자문가이자 작가인 에르네스토 시롤리가 개발한 이 접근법은,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사업을 시작하도록 돕고 수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기여해 왔다.24 이 방식은 대규모 경제개발 계획을 세우기 위해 외부 전문가와 자금을 대거 투입하는 대신, 지역사회 내부의 소규모 로컬 비즈니스를 활성화하는 데 초점을 둔다. 퍼실리테이터로서 시롤리가 따르는 원칙은 매우 단순하다. 자신이 먼저 사업을 시작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사업을 권유하지 않는다. 대신 누군가가 사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찾아오면, 그 아이디어가 경제적으로 실현 가능하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어떤 파트너가 함께해야 할지 함께 따져본다. 아이디어가 타당하지 않거나 당사자가 관심을 잃으면, 퍼실리테이터는 또 다른 아이디어를 가지고 찾아올 누군가를 기다릴 뿐이다.


하나의 비즈니스가 성공하면, 지역사회의 다른 구성원들 역시 퍼실리테이터의 도움을 받아 자신만의 기업가적 아이디어를 시도해 보고자 하는 동기를 얻게 된다. 이렇게 탄생한 비즈니스는 공급과 유통, 시장 확장 등 다양한 방식으로 또 다른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주민들의 구매력을 높인다. 이는 더불어 추가적인 기업 활동을 가능하게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지역사회가 가진 기술과 자원에 기반한 강력한 지역경제 생태계를 형성한다. 시롤리가 강조하듯, 경제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은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샤롤리가 말한 것처럼 "클라이언트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25 여기에는 기본적인 생계 소득의 부재, 상호부조의 부족, 비슷한 처지의 성공 사례(롤모델)의 부재, 주체성의 결여 등이 포함된다.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 도우며, 그 힘으로 경제적 성공을 이룬다는 발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860~1870년대 미국 재건기에는 오클라호마 털사의 블랙 월스트리트Black Wall Street를 비롯해 수백 개의 흑인 공동체가 정부나 비영리단체의 도움 없이도 번성했다. 흑인들은 스스로 상점과 은행을 세우고, 흑인 변호사와 의사들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자립적 경제를 구축했다. 하지만 오늘날 이러한 사례는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나 있다. 블랙 월스트리트를 파괴한 백인의 폭력, 유색인종을 지속적으로 배제하고 권한을 약화시키는 정치적 전략 그리고 자조적 역량을 약화시키고 의존성을 강화하는 사회 프로그램들이 그 역사를 지웠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접근 방식들도 자선 기금을 통해 실행되었다. 다만 이 기금들은 특정 지역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성공 모델을 발굴하기 위한 문화인류학적 탐색에 투입되었고, 이후 수년에 걸쳐 지원하고 촉진하는 과정을 통해 발견한 인사이트를 주변에 공유했다. 이러한 방식은 본질적으로 지역 기반의 작업이다. 사람들은 신뢰를 쌓고, 서로에게서 동질감을 느끼며, 동료로부터 배움을 얻는 과정을 통해 솔루션을 확산시킨다. 그 결과, 변화는 점진적이지만 꾸준히 축적된다. 물론 이 과정에도 인력과 예산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더 큰 규모로의 확장을 위해 대규모 자금을 지속적으로 투입하는 기존 비영리 프로그램과 다르게, 영향력을 자연스럽게 확장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기존의 지원금 배분 관행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를 요구한다. 필란트로피 분야는 수혜자의 자립을 촉진하고, 주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자금을 제공하는 새로운 방식을 학습해야 한다. 이와 관련된 혁신적 사례로 2021년에 설립된 비영리단체 오너십 웍스Ownership Works를 들 수 있다. 이 단체는 사모펀드와 협력해 시간제 직원들에게 주식 소유권을 줌으로써, 소득 보전을 넘어 부를 축적할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무조건적 현금 이전 모델을 확장하고 있다.


보편적 기본소득을 포함해 앞서 언급한 여러 접근은 물론, 컬렉티브 임팩트나 어댑티브 리더십 역시 사전에 정해진 성과 지표를 전제하지 않는다. 이처럼 결과를 제시하지 않는다는 특성은, 신뢰할 수 있고 예측가능한 성과를 낼 솔루션에 자금을 투입하는 기존의 지원금 배분 관행과 근본적으로 충돌한다. 자립을 촉진하는 권한 강화 접근은 최근의 혁신적 기법들, 예컨대 비영리단체가 미션을 자율적으로 추진하도록 신뢰하는 신뢰 기반 필란트로피, 지역사회 구성원이 직접 지원 결정을 내리는 참여형 지원금 배분보다도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이 접근에는 거창한 전략도, 복잡한 변화이론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제안하는 것은, 기금제공자가 사람들이 스스로 목표를 정의하고, 각자의 필요와 맥락에 맞는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방형 프로세스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결책이 부유한 기부자나 외부 전문가에게는 결코 떠올리기 어려운 방식일 수 있다.


한편, 다른 측면의 전환도 필요하다. 오늘날 필란트로피 시스템은 성공을 보상하기보다 '필요'를 기준으로 자원을 배분한다. 즉, 필요가 클수록 더 설득력 있는 지원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개인의 성장과 주체성, 성취에 대한 자부심을 약화시키는 왜곡된 유인 구조를 만들어낸다. 개입이 성공하더라도 그 공로는 지원을 통해 성과를 만들어낸 개인이나 공동체가 아니라, 비영리단체나 기금제공자에게 돌아가기 쉽다. 이제 우리는 이 관행을 바꿔, 개인과 공동체가 주도하는 이니셔티브에 보상을 돌려야 한다. 기금제공자는 가장 큰 필요를 가진 사람을 찾는 데 집중하기보다, 이미 성공의 경로를 구축해 가는 사람들과 공동체 내부의 작은 진전의 징후를 발견해야 한다. 그들의 노력을 지원하고, 그 성취가 공동체 전체에 공유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오늘날 혁신적이고, 성공적인 비영리 프로그램 리더에게 제공되는 인정, 펠로우십, 각종 지원을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개선해낸 지역사회 구성원들에게도 동일하게 제공해야 한다. 사회적기업가나 자선가뿐 아니라, 자기 삶의 변화를 실현한 개인들 역시 소셜섹터의 영웅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기금제공자들에게 비영리 프로그램과 기관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최신 사회혁신을 좇거나, 조직을 전국 규모로 확장하려 하거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거대한 비전에 과도한 자원을 투입하기보다, 그 일부를 상호 주도적인 변화peer-driven change와 유권자 참여 촉진에 재배분할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사실 권한 강화 접근은 오늘날 비영리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데 필요한 비용에 비해 훨씬 적은 자원을 요구한다. 현재 자금의 일부만 이동시켜도 변화의 폭은 매우 클 것이다. 게다가 정부가 시민의 요구에 충분히 대응하거나 보편적 기본소득 지급을 승인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 사이에도 수백만 명은 현재의 비영리 서비스에 의존할 것이다.



방향을 재설정하다

필자들은 필란트로피 분야에서 활동해오며, 사회 진보를 위한 자금 지원 방식에 단 하나의 정답이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다양한 접근 방식이 저마다 그 효과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갖추고 있으며, 자선 기부가 추구하는 목표와 상황이 매우 다양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일한 정답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카네기 역시 사회적 진보에 기여한 바가 분명 있다.26


그러나 모든 자선 활동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의존해 온 필란트로피 모델이, 우리가 절실히 바라온 국가적 규모의 사회적 개선을 달성하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달성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노력은 이제, 민주주의가 인구 전체의 목소리를 온전히 대표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긴급한 과제에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아울러 사람들 스스로 해결책을 발견하고, 주체성을 강화하며,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를 구축해 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우리는 정부를 이용해 자신의 권력과 특권을 지키고, 그 대가를 다른 모든 사람에게 전가하려는 세력과 국가의 미래를 두고 맞서고 있다. 그들의 도구가 통제, 억압, 왜곡된 서사라면, 우리가 활용해야 할 도구는 권한 강화, 참여 확대 그리고 인종차별과 같은 구조적 장벽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형성해왔는지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이다. 개인의 경제적·정치적 주체성을 강화하는 일은, 기부자들이 더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국가의 미래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참고

1 . These ideas have been well articulated by others. See Mauricio L. Miller, The Alternative: Most of What You Believe About Poverty Is Wrong, self-published, 2023; Richard Pascale, Jerry Sternin, and Monique Sternin, The Power of Positive Deviance: How Unlikely Innovators Solve the World’s Toughest Problems, Cambridge, Mass.: Harvard Business Review Press, 2010; Ernesto Sirolli, Ripples from the Zambezi: Passion, Entrepreneurship, and the Rebirth of Local Economies, British Columbia, Canada: New Society Publishers, 1999.

2. Anand Giridharadas, Winners Take All: The Elite Charade of Changing the World, New York: Alfred A. Knopf, 2018. See also Mark R. Kramer, “Are the Elite Hijacking Social Change?,” Stanford Social Innovation Review, Fall 2018.

3. See John Kania et al., “Centering Equity in Collective Impact,” Stanford Social Innovation Review, Winter 2022; the Stanford Social Innovation Review Fall 2014 supplement, “Collective Insights on Collective Impact”; the Stanford Social Innovation Review 2022 supplement, “Collective Impact 10 Years Later”; and John Kania, Mark Kramer, and Peter Senge, The Water of Systems Change, FSG, May 2018.

4. Joe J. Gladstone et al., “Financial Shame Spirals: How Shame Intensifies Financial Hardship,”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vol. 167, November 2021.

5. The poverty rate among Blacks is 19 percent, compared with 7 percent among non-Hispanic whites. Mark R. Rank, Lawrence M. Eppard, and Heather E. Bullock, Poorly Understood: What America Gets Wrong About Povert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21.

6. See, for example, Paul Brest and Hal Harvey, Money Well Spent: A Strategic Plan for Smart Philanthropy, Stanford, Calif.: Stanford University Press, 2018; Peter Frumkin’s Strategic Giving: The Art and Science of Philanthropy,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6, and The Essence of Strategic Giving: A Practical Guide for Donors and Fundraiser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0; Helmut K. Anheier, Adele Simmons, and David Winder, eds., Innovations in Strategic Philanthropy: Local and Global Perspectives, Heidelberg, Germany: Springer, 2007; Joel Fleishman, The Foundation: A Great American Secret; How Private Wealth Is Changing the World, New York: Public Affairs, 2007; and Rajiv Shah, Big Bets: How Large-Scale Change Really Happens, New York: Simon Element, 2023.

7. UCTs can be one-time or episodic payments, while UBI refers to steady ongoing financial assistance.

8. Jade Sui, Olivier Sterck, and Cory Rodgers, “The Freedom to Choose: Theory and Quasi-Experimental Evidence on Cash Transfer Restrictions,” Journal of Development Economics, vol. 161, March 2023. See also Jason DeParle, “Cash Aid to Poor Mothers Increases Brain Activity in Babies, Study Finds,” New York Times, January 24, 2022.

9. Stacia West and Amy Castro, “Impact of Guaranteed Income on Health, Finances, and Agency: Findings from the Stockton Randomized Controlled Trial,” Journal of Urban Health, vol. 100, April 10, 2023.

10. Recent research suggests that the increase may be due to a change in data collection methods, although that does not account for the racial disparity.

11. Data compared from Giving USA and Open Secrets.

12. This point was made earlier by Steven H. Goldberg, Billions of Drops in Millions of Buckets, Hoboken, N.J.: John Wiley & Sons, 2009.

13. 평균적으로 OECD 국가들의 정부 지출이 빈곤을 63%나 줄인 데 비해, 미국의 정부 프로그램은 빈곤을 35%만 줄였다. 정부 지출 이전의 빈곤율은 OECD 평균과 거의 같지만, 모든 정부 지출을 포함한 후의 빈곤율은 평균의 두 배에 이른다. 랭크, 에파드, 불록의 Poorly Understood참조. 

14. GDP의 2.2%만이 빈곤 완화에 사용되며, 나머지 2.2%는 의료지원에 쓰인다. OECD 평균에 도달하기 위해 이 지출을 두 배로 늘리려면 1조 2천억 달러가 필요하다. 같은 책 참조. 

15. Peter Georgescu, Capitalists Arise!: End Economic Inequality, Grow the Middle Class, Heal the Nation, Oakland, Calif.: Berrett-Koehler Publishers, 2017.

16. 로스앤젤레스는 소매업 근로자의 교대근무 일정을 좀 더 예측 가능하고 인도적으로 만들기 위한 도시 조례를 통과시켰다.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는 이직률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여 고용주의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Zeynep Ton, The Good Jobs Strategy: How the Smartest Companies Invest in Employees to Lower Costs and Boosts Profits, Seattle: Lake Union Publishing, 2014 참조. 

17. 흑인의 빈곤율은 백인보다 더 높은데 백인 인구의 수가 더 많다는 것은, 빈곤에 처한 백인의 수가 흑인의 수보다 훨씬 적다는 의미이다. 랭크, 에파드, 불록의 Poorly Understood  참조. 

18. See Foundation Funding for US Democracy; see also Kelly Born, “The Role of Philanthropy and Nonprofits in Increasing Voter Turnout,” Stanford Social Innovation Review, Winter 2016. 

19. Steve Phillips, Brown Is the New White, New York: The New Press, 2016.

20. Steve Phillips, How We Win the Civil War, New York: The New Press, 2022.

21. 세금 인상 없이 시행된 5조 9천억 달러 규모의 코로나 구호기금은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는 3천 8백만 명의 성인에게 10년 동안 매달 1,300달러를 충분히 지급할 수 있는 규모였다. 

22. 처음에는 참가자들이 수입, 저축, 건강, 교육, 보고를 하는 데 대해 월 200달러를 지급했지만, 이 해법에 필수적인 부분이 아님이 분명해지면서 지급은 1년 후에 중단되었다. 

23. 같은 책.

24. Sirolli, Ripples from the Zambezi.

25. 같은 책.

26. See Maribel Morey, White Philanthropy: Carnegie Corporation’s ‘An American Dream’ and the Making of a White World Order, Chapel Hill, N.C.: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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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KRAMER

마크 크레이머는 SSIR과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오랫동안 글을 써왔다. 그는 FSG의 공동 창립자이자 전 상무이며, 현재 이사로 재직 중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전임 강사로 활동하기도 한 그는 마터널 뉴본 헬스 이노베이션Maternal Newborn Health Innovations의 공동 창립자이자 이사이며, 임팩트투자 펀드인 컨그루언스 캐피탈Congruence Capital의 파트너이기도 하다.


STEVE PHILLIPS

스티브 필립스는 가디언과 네이션의 칼럼니스트이며,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도 글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팟캐스트 '스티브 필립스와 함께하는 다채로운 민주주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인 <유색인종은 새로운 백인이다: 인구 혁명은 어떻게 새로운 미국 다수파를 만들어냈는가>와 <내전에서 승리하는 법: 다인종 민주주의 확보와 백인 우월주의의 영구 종식>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