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 일반]사회혁신적인 대학이 사회혁신가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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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 일반
사회혁신적인 대학이
사회혁신가를 키운다

2025-3


김현중



Summary. 사회혁신가를 양성하기 위한 대학의 시도에는 다양한 유형의 역할과 그들 사이의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이정인은 실내건축디자인 전공생으로 우연한 기회로 듣게 된 수업에서 사회혁신을 처음 접했다. 사회혁신은 실내건축디자인과 달리 다양한 방식으로 주변의 사회문제를 직접 해결해볼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 사회혁신융합전공을 선택한 그녀는 수업에서 수용자 자녀를 지원하는 단체인 세움을 인터뷰하며 수용자 자녀들이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실내건축디자인 전공 수업에서 수용자 부모가 자녀를 접견하는 공간을 디자인했다.


파이낸스경영학을 전공하던 조수연은 취업을 준비하다 '내가 정말 흥미를 느낄 분야를 공부해보자'는 생각으로 사회혁신융합전공 수업을 듣게 되었다. 사회혁신을 사회복지와 유사한 개념 정도로 이해하고 있던 그녀는 수업을 통해 사회혁신 영역의 전문성과 가치지향성을 경험했다. 그녀는 임팩트리서치랩에서의 인턴십을 거쳐, 졸업 후 삼성전자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안정적인 직장이었지만, 원하는 전문성을 쌓기 어려운 환경에서 효능감을 느끼기 어려웠고, 가치지향에도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때 사회혁신을 다시 떠올린 그녀는 삼성전자를 퇴사하고 임팩트리서치랩으로 돌아와 현재까지 일을 하고 있다.


산업공학을 전공한 백경은은 효율성과 최적화를 강조하는 산업공학과에서 '사회적 가치 창출과 경제적 가치 창출이 공존할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가졌다. 사회적기업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질문에 대한 고민을 이어간 그녀는 캠퍼스 내 자원순환을 촉진하는 기부 모델을 개발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임팩트 지향 조직에서의 인턴십 경험을 거쳐 영리 기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그녀는, 현재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자신의 업무를 임팩트 관점에서 해석하며 주도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한양대학교에서 사회혁신을 경험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한양대는 2018년 사회혁신융합전공을 신설하고, 교과 및 비교과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이니셔티브를 시작했다. 대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흐름 속에 추진된 이 이니셔티브는 성수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임팩트 생태계의 발전과 궤를 같이 했다. 한양대는 물리적으로 인접한 생태계와 도전과 실험의 정신, 지식과 경험 등을 공유하며 다양한 교육적 시도를 전개했다.


대학들이 사회적 역할을 모색하는 흐름 속에서 한양대의 사례는 분명 앞선 시도이지만, 완결적인 시도라고 보긴 어렵다. 대학이 가진 구조적, 문화적 조건 속에서 여러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양대의 지난 10여 년의 경험은 유사한 시도를 하려는 다른 대학이 참고할 만한 사례로써 유용성을 갖는다. 특히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사회혁신에 관한 시도를 할 때 어떤 유형의 역할이 필요한지, 그 역할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접근이 필요한지에 대해 유의미한 교훈을 제공할 수 있다.



대학과 사회혁신 사이의 간극

대학이 사회혁신을 교육의 주제로 받아들이는 건 쉽지만, 사회혁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내재화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사회혁신을 본질에 충실하게 가르치고 관련 역량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려면 대학 스스로가 먼저 '사회혁신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선결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사회혁신 교육은 대학 안에서 지속성을 갖는 이니셔티브로 추진되기 어렵다.


사회혁신은 본질적으로 모호하고 불안정하다.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결코 단선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사회혁신은 기존의 관념과 구조, 문화를 따르는 대신 새로운 관점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실험을 통해 더 나은 솔루션을 찾아나간다. 그 과정에서는 경계를 넘는 연결과 통합이 일어나고, 기존 질서와의 긴장이나 갈등이 촉발되기도 한다. 한편, 대학은 거대한 시스템으로서 안정성을 추구한다. 경계가 뚜렷하고 세분화된 기능들이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며, 대학이라는 공룡과도 같은 시스템을 움직인다.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규칙성과 예측가능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학을 지탱하는 이 핵심 기제를 지키기 위한 노력 속에서 변수는 혁신의 가능성보다 관리의 대상으로 여겨지기 쉽다.


사회혁신이 불안정하기만 한 것도, 대학에 혁신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지만, 대학과 사회혁신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혁신과 시스템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대학, 경계를 허물며 불확실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사회혁신과 구획된 역할과 규칙적인 상호작용으로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대학 사이의 간극은, 대학이 사회혁신 인재를 양성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의 도전들로 나타난다.


사회혁신 역량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시도가 대학 안에서 처음부터 쉽게 받아들여지기란 어렵다. 여전히 사회혁신은 대다수의 대학과 대학 구성원들에게 낯선 개념으로, 대학이 가진 기존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제도적인 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설득과 증명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앞서 언급한 간극을 좁히지 못할 경우 이니셔티브는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좌초될 위험이 있다.



사회혁신 이니셔티브를 촉진하는 역할 유형

한양대는 사회혁신 이니셔티브를 추진해오며 프로그램 및 구조적 차원의 조건들을 갖췄다. 사회혁신융합전공을 비롯한 교과와 비교과 프로그램, 이를 관장하는 행정 조직과 예산이 그것이다. 하지만 한양대 안에 사회혁신이 시스템 차원으로 깊이 뿌리내리거나 문화적으로 내재화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양대에도 여전히 여러 종류의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혁신이 아직 안정적으로 정착된 상태가 아니라면, 대학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개인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한양대에서도 이러한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유의미한 시도와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다. 한양대의 사례에서 발견한, 대학에서 사회혁신 시도를 촉진하는 역할은 다음과 같이 유형화해볼 수 있다.


1. 비저너리 이니시에이터Visionary Initiator l 비저너리 이니시에이터는 비전을 제시하며 새로운 시도를 촉발한다. 특히 다른 이들이 쉽게 이해하고 반응할 수 있는 언어로 비전을 제시하며 이니셔티브를 함께할 협력자들을 모은다. 사회혁신이라는 낯선 개념을 대학 안에 가져올 때는 일종의 중간 언어가 필요하다. 건학이념이나 핵심목표같이 대학의 맥락에서 통용되는 언어나 논리가 효과적일 수 있다. 시도의 결과를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비저너리 이니시에이터는 불확실성을 감내하고 비전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한다. 이러한 결정이 대학의 조건에서는 큰 관성을 이겨내야 가능하기 때문에, 이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은 결정 권한과 신뢰 자본을 갖추고 있을 때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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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무 총장은 한양대학교의 대표적인 비저너리 이니시에이터이다. 

(사진 출처: 한양대학교 미디어전략실)



한양대의 이영무 전임 총장은 비저너리 이니시에이터로서 사회혁신 이니셔티브를 촉발했다. 그는 다수의 특허를 보유한 저명한 공학자이자 적정기술연구회를 조직할 정도로 사회문제 해결에 관심이 많은 응용과학자였다. 2015년 총장 임기를 시작한 이영무 전 총장은 대학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변화하고 있음을 인식하며, 글로벌 사회문제에 대응하는 대학의 적극적인 역할을 새로운 방향성으로 제시했다. 그는 한양대가 적극적으로 실천해온 사회봉사를 고도화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한양대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건학이념이자 사회적 역할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근거인, '사랑의 실천'을 재해석하는 작업으로 정의했다. 그는 사랑의 실천자를 키워내기 위한 대학의 노력이 사회봉사에 머물러서는 안되며, 글로벌 지향성, 전공과의 연계성,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제시한 비전은 한양대가 사회혁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이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니셔티브가 본격화된 이후 그는 총장으로서 적극적인 지원을 하며, 사회혁신에 대한 내부의 학습과 실험을 촉진했다.


2. 시스템 전략가Systemic Strategist l 시스템 전략가는 구조적인 관점을 갖고 전략적으로 행동하며, 사회혁신이 대학 시스템에 안착할 수 있도록 길을 낸다. 사회혁신을 시도하는 초기 단계에서는 사회혁신과 대학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기보다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시도를 전개할 가능성이 높다. 이때 시스템 전략가는 대학 안팎의 가용한 기회를 포착하거나 구조적 이해를 바탕으로 비전을 구현할 효과적인 경로를 찾아, 사회혁신이라는 낯선 개념이 대학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개입한다. 미션에 대한 의지와 학습적 태도, 전략적 유연성은 시스템 전략가가 기반을 다지고, 길을 내는 과정에서 발휘되는 역량이다. 대학 밖에서 일어나는 사회혁신의 흐름을 파악하고, 유의미한 사례를 발굴해, 대학 구조 안에서 그것을 구현하는 일은 이 세 가지 역량이 균형을 이룰 때 가능하다.


한양대의 초대 사회혁신센터장을 맡았던 서진석 총무처장은 시스템 전략가로서 초기에 사회혁신 이니셔티브를 구체화하는 역할을 했다. 이영무 당시 총장은 '기획통'으로 통하는 서진석에게 사회봉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작업을 맡겼다. 그는 대학 밖에서 접한 SDGs가 이영무 총장의 비전과 맞닿아 있음을 발견하고, 한양대의 사회혁신 이니셔티브를 SDGs 기반으로 설계했다. 그는 빈곤, 기후위기 등의 글로벌 아젠다에 대해 학생들이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넓히고자 노력했다. 구체적으로 소셜벤처들이 기획한 봉사활동에 한양사회봉사단이 학생봉사팀을 파견하였고, 사회혁신센터의 설립과 사회혁신융합전공 개설 과정에 기여했다. 또한 아시아개발은행 등과 협력해 학생들이 아시아 지역의 사회문제를 탐구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프로그램인 APYEAsia Pacific Youth Exchange를 주도했다. 당시로선 실험적이었던 이 시도들은 미션에 근거해 대학 내외부의 자원을 효과적으로 연계하는 한편, 대학 구조 안에서 새로운 실험을 구조화하는 그의 역량을 잘 보여준다.


3. 애자일 어댑터Agile Adopter l 애자일 어댑터는 대학 밖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흐름과 탁월한 시도를 빠르게 포착해, 그것을 대학으로 들여온다. 기존 제도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함과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지적 호기심은 이 유형의 특징이자 동력이다. 대학의 사회혁신 이니셔티브는 변화하는 사회적 맥락이나 생태계의 흐름을 계속적으로 추적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이 가진 약점이기도 한 이 부분을, 상대적으로 관성의 영향을 덜 받는 애자일 어댑터는 극복할 가능성이 있다. 대학 밖에서 얻은 지위와 인적 네트워크, 지식 등을 바탕으로 애자일 어댑터는 대학을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으로 이끌 수 있다. 한편, 대학은 낯설고 새로운 시도에 대해 방어적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지적 권위를 가진 교수가 애자일 어댑터의 역할을 수행할 때 새로운 시도에 대한 수용이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현재 한양대의 글로벌사회혁신단장을 맡고 있는 신현상 교수는 경영학을 가르치고 있지만, 특유의 지적 호기심으로 사회혁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양대의 사회혁신 이니셔티브가 시작될 무렵부터 중심적인 역할을 한 그는 아쇼카 U 체인지메이커 캠퍼스 인증 과정을 주도하고, 동료 교수들과 사회혁신융합전공을 설계했다. 또한 스탠퍼드 소셜 이노베이션 리뷰SSIR의 가치를 일찍이 알아보고 이를 한양대로 들여오기도 했다. 한양대가 2018년부터 발간해오고 있는 SSIR 한국어판은 권위 있는 사회혁신 지식을 생산하는 대학으로서 한양대의 입지를 다져왔다. 교수창업제도를 활용해 임팩트 측정 전문 기업인 임팩트리서치랩을 창업한 그는 기업 및 임팩트 생태계에 축적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대학의 이니셔티브를 확장하는 데 필요한 연결을 만들어왔다. 대학 밖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인력과 기금을 비롯한 외부 자원이 대학 안으로 유입되는 결과를 이끌었다.


4. 임파워링된 맥락형 실무자Empowered Contextual Operator l 맥락 기반 오퍼레이터는 풍부한 맥락적 이해를 바탕으로 실무를 수행하는 유형이다. 대학의 사회혁신 이니셔티브가 실행되는 과정에서는 이들의 동기와 역량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이들은 사회혁신에 대한 긍정적 경험을 바탕으로 동력을 스스로 만들어내며, 주어진 역할을 수동적으로 수행하기보다 능동적으로 재정의하고 확장한다. 사회혁신 교육의 경험은 전통적인 대학 교육과 달리 비선형적이기 때문에, 실무자들이 자신의 역할을 능동적으로 재정의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학생들의 실질적인 경험 수준은 낮아질 수 있다. 이들은 대학 내외부의 다양한 맥락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실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맥락에 대한 이해는 순환근무가 이뤄지는 대학 환경에서 특히 중요하다. 사회혁신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개인 또는 팀 차원으로 축적되지 않으면, 사회혁신 이니셔티브는 추진력을 갖기 어렵다. 능동성과 맥락적 이해의 결합은 대학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안정적으로 전개하고, 변화를 지속시키는 데 있어 핵심적이다.


한양대학교 김은정 부장은 2017년 사회혁신센터에 합류하면서 사회혁신을 처음 접했다. 사회혁신센터에서 열정을 가진 학생들을 만나며 '좋은 교직원,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라는 마음을 품게 된 그녀는 당시가 자신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었다고 회상한다. 임팩트 지향 조직의 실무자들과 협업하는 과정에서는 사회혁신이 가진 에너지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만의 문제의식과 아이디어를 갖고 센터를 찾아오는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그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기회와 자원을 연결했다. 그녀의 도움으로 많은 학생들은 자신만의 사회혁신 실험을 실행해 볼 수 있었고, 센터는 회의하는 학생들로 늦은 밤까지 불이 켜져 있는 날이 많았다. 그녀는 한양대에서 사회혁신 관련 업무를 가장 오래 담당한 교직원으로, 이니셔티브와 사회혁신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높은 실무자이기도 하다. 현재는 글로벌사회혁신팀장으로 맥락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양대 사회혁신 이니셔티브가 이어온 미션을 계승하며 팀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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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역할 유형간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한양대에서 개최될 수 있었던 홈리스 월드컵의 한 장면. 

(사진 출처: 한양대학교 미디어전략실)



5. 역동을 만드는 개척가형 전문가Disruptive and Pioneering Professional l 역동을 만드는 개척가형 전문가 유형은 사회혁신에 대한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에서 사회혁신 이니셔티브를 촉진한다. 이들은 현장에서 쌓아온 풍부한 경험을 가진 전문가로, 사회혁신의 주체로서 대학이 가진 잠재력을 알아보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대학에서 활동한다. 모든 유형 중 사회혁신에 대한 이해가 가장 높은 이 유형은 대학이 사회혁신 역량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하며, 대학과 생태계 간 연결을 통해 변화를 만든다. 이들은 제도나 역할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고, 미션에 근거한다면 자신이 가진 지식과 네트워크를 기꺼이 공유하기도 한다. 현재로선 이들이 대학의 사회혁신 이니셔티브에 참여할 수 있는 경로가 매우 제한적이지만, 이 유형에 속한 실무자들의 참여가 활성화될 때, 대학의 사회혁신 교육은 실무 현장과의 연결성이 높아지고, 이니셔티브의 질적 수준이 한층 끌어올려질 수 있다. 특히 대학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구성원들과 신뢰 관계를 형성할 때, 이 유형은 대학 안에서 역동을 만들어내는 더욱 강력한 촉매가 될 수 있다.


한양대의 서현선 특임교수는 역동을 만드는 개척가형 전문가의 전형이다. 그녀는 아름다운재단 국제협력팀장, 진저티프로젝트 대표, 루트임팩트 이사 등을 지낸 사회혁신 전문가로, 2021년 한양대 겸임교수로 임용되었다. '사회혁신공감실습'을 강의해오고 있으며, 2024년부터는 SSIR 한국어판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그녀는 대학과 생태계를 잇는 가교로서, 사회혁신융합전공 커리큘럼 개발 과정에 참여하거나 실력 있는 생태계 실무자들을 겸임교수로 추천해, 한양대의 사회혁신 교육을 실무와 현장 중심으로 발전시키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녀는 미션에 기반해 대학이 가진 구조와 문화를 관찰하고 익하며, 능동적으로 행동한다. 이러한 전략적 유연성은 그녀가 대학 내 자원에 접근하고, 더 많은 협력과 권한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었다. 대학과 생태계의 언어를 동시에 이해하고 통역하는 역할은 대학과의 협력을 기대하는 생태계나 현장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대학 모두에 매우 필요하다.


이들 유형은 각각 고유한 역할과 특성이 있지만, 결코 독립적으로 기능할 수 없다. 한양대학교의 사회혁신 이니셔티브 역시 각 유형 간 적절한 긴장과 균형, 자원과 역량을 공유하는 협력을 통해 개별로선 기대하기 어려운 변화를 만들었다. 비저너리 이니시에이터 유형이 혁신의 방향과 철학을 제시하면 시스템 전략가 유형이 구조적 설계를 통해 그 비전이 실현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고, 애자일 어댑터 유형이 외부의 실험적인 사례를 대학으로 들여오면, 임파워링된 맥락형 실무자 유형은 그것을 대학 시스템 안에 안착시켰고, 역동을 만드는 개척가형 전문가 유형이 생태계의 문화를 접목시켰다. 또한 역동을 만드는 개척가형 전문가 유형은 대학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높은 임파워링된 맥락형 실무자 유형과 상호보완적인 협력을 하면서 대학과 생태계를 동시에 공략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이처럼 각각의 유형이 가진 한계를 보완하는 형태의 협력은 대학이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구조적 관성과 그로 인한 사회혁신과의 간극을 극복하는 데 핵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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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을 가로막는 허들과 해법

대학에는 이런 다양한 유형들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거나 협력을 가로막는 여러 장애물도 함께 존재한다. 그것들은 혁신의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면 긴장과 저항이 커지고,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면 사회혁신을 본질적으로 실현하기 어려워지는 딜레마 속에서 드러난다. 서로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나 대학이 가진 구조적, 문화적 특성에서 비롯되는 이 도전들은, 사회혁신을 시도하는 대학이라면 마주하게 되고 넘어야 할 산과 같다. 대표적인 도전의 유형과 해법을 살펴보자.


1. 대학 구성원들은 사회혁신적 태도와 역량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 l 대학 교직원들은 시스템에 대한 높은 이해와 안정적인 운영 역량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강점은 동시에 사회혁신적 시도에 있어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시스템 안정성에 대한 추구가 혁신을 가로막는 관성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사회혁신을 실행하는 과정에는 일반적인 행정 수행 과정과 다른 종류의 역량이 강조된다. 앞서 다룬 유형들이 공유하고 있는 개방성과 유연성, 학습력, 협력적 태도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사회혁신이 아직 낯선 교직원들에게는 이러한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인식되지 않거나, 인식되더라도 이를 실행할 동기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설령 의지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 의지를 펼칠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적절한 개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실무를 담당하는 교직원들은 쉽게 소진될 수 있고, 사회혁신적 시도는 공급자 중심의 형식적인 프로그램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직원들에게 사회혁신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고, 자신의 역할이 가진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학습과 임파워링의 기회가 필요하다. 특히 생태계와의 접점을 늘리고, 현장과의 긍정적인 협력을 경험하는 것은 교직원들의 동기를 높일 수 있다. 그리고 교직원들을 사회혁신 생태계의 일원으로 호명하고 그들의 역할을 임팩트 커리어로 규정하는 새로운 관점도 필요한데, 이는 대학뿐 아니라 생태계 차원에서도 영역을 확장한다는 측면에서 유의미한 시도가 될 수 있다. 구조적인 차원에서는 학습과 성장에 대한 동기를 높일 수 있는 유무형의 인센티브 체계가 필요하고, 경험의 축적을 가로막는 순환근무에 대한 제도적 개선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2. 대학 구성원들과 생태계 실무자들은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l 생태계 실무자들에게 대학과의 협업은 미지의 영역일 수 있다. 대학은 분명 다른 구조와 문화를 가진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유기적인 협력을 시도할수록 이들은 대학만의 고유한 문법과 절차, 의사결정 구조를 경험하게 되고, 그것들을 이해하고 적절히 반응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제가 된다. 생태계 실무자가 처음부터 대학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대학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대학을 이해하고, 협력한다는 건 더욱 어렵다.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제안해야 협력의 물꼬를 틀 수 있는지, 대학이 중요하게 여기는 핵심성과지표는 무엇인지 생태계 실무자들은 파악하기 어렵다.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고, 리스크 관리에 신경을 쓰는 대학 파트너를 상대하며 협력 의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있다. 반대로 대학의 교직원들에게 생태계 실무자들이 사용하는 언어나 일하는 방식은 익숙하지 않다. 미션과 신뢰를 기반으로 협력하는 생태계 실무자들이 형식을 무시한다거나 비전문적이라는 오해를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상호적인 이해의 어려움은 때로 오해와 갈등을 낳고, 협업 과정에서 비효율이나 위기를 초래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생태계 실무자들은 대학의 시스템을 존중하고, 그 문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대학도 생태계의 전문성과 역동성을 인정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생태계 실무자들이 가진 전문성이 발휘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협력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대학이 외부의 자원과 역량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사회혁신 이니셔티브를 심화시키는 데 핵심적인 기반이 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학과 생태계를 잇는 '중개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서로 다른 두 언어를 번역하고, 상호 간의 관점을 조율할 수 있는 생태계 출신의 대학 구성원은 협력의 효율성을 높이며, 대학에 핵심적인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다. 대학은 이러한 중개자의 전문성을 조직의 자산으로 인식하고, 그 기여에 상응하는 유무형의 보상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3. 전체를 조망하며 조정하는 역할이 부재할 수 있다 l 대학의 사회혁신 이니셔티브에서는 목적을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과 전략을 정렬하고, 변화의 흐름 속에서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오케스트레이터의 역할이 필요하다. 대학에서 사회혁신을 시도한다는 것은 통제된 조건의 실험실에서 진행되는 실험이 아니기 때문에, 대학 안팎에서 일어나는 변화 속에서 현재 위치를 정확히 판단하고, 반응적으로 방향성을 설정하며, 협력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역량이 핵심적이다. 그러나 대학이 가진 분업화된 구조는 이러한 유연하고 통합적인 대응을 어렵게 만든다. 부서와 부서, 예산과 예산, 교수와 직원 사이의 '칸막이'는 종종 분절적인 상황 인식과 개별적인 대응을 낳는다. 그 결과, 자원이 중복적으로 투입되거나, 정작 미션에 부합하는 시도에는 충분한 지원이 닿지 않는 비효율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학의 사회혁신 이니셔티브가 개별 프로그램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인 목적을 실현하거나 의미 있는 임팩트를 창출하기 어렵다. 경계를 넘나들며 자원을 유연하게 배분하고, 협력을 조율하며, 실행의 방향을 조정하는 오케스트레이션 기능은 미션에 대한 구성원들의 합의와 근거 기반의 접근을 바탕으로 이뤄질 때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대학이 추구하는 미션과 변화이론을 정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행 과정을 모니터링하며, 성과를 정기적으로 평가 및 측정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4. 대학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고정된 인식이 협력의 가능성을 제한할 수 있다 l 대학 구성원 사이에는 역할에 대한 고정된 인식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학생은 수동적인 교육의 대상으로, 직원은 보수적이며 변화를 바라지 않을 존재로, 교수는 실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대학 차원의 이니셔티브에 참여할 유인이 적은 존재로 여겨지곤 한다. 이러한 인식은 실제로 이니셔티브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협력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대학 내 뛰어난 역량과 다양한 자원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인식이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하고 있을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화'에 불과하다. 대학에는 더 많은 권한이 주어질 때 능동성을 발휘하며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내는 학생들이 있고, 변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 교직원들이 있다. 그리고 실무 감각을 갖추고 대학의 미션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교수들이 존재한다.


대학은 이들이 더 많이 발굴되고 그들 사이의 협력이 활성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학생들의 임팩트 비즈니스 모델을 평가하거나 자문하던 교수가 동업자 수준의 페이스메이커로 학생들과 협업한다면 어떨까? 사회혁신 전공의 학습 경험 설계를 학생들이 주도한다면 어떨까? 대학의 사회혁신 시도를 가로막는 구조적 개선 지점을 실무자들이 직접 제안하고, 그것이 대학 차원에서 반영된다면 어떨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새로운 상상과 그것을 실행으로 옮길 용기 그리고 실험과 실패를 기꺼이 허용하는 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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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사회혁신랩 학생들에 의해 기획되고 운영된 SSIR 먼슬리 콜로키움은 학생들의 잠재력을 확인시켜주었다.

(사진 출처: 한양 SSIR Korea 센터)



개인의 역할을 넘어 시스템으로

한양대의 사회혁신 이니셔티브는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회혁신을 교육하고 실천하는 대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비전을 품고, 구조를 설계하며, 현장과의 접점을 늘린 이들의 협력적 노력은, 대학과 사회혁신 간의 간극을 좁히며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대학의 사회혁신 이니셔티브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촉진되느냐는 결국 대학이 얼마나 사회혁신적 조직으로 거듭나느냐에 달려있다.


개인에 의존적인 초기 단계의 시도를 넘어, 사회혁신이 대학에 내재화되기 위해서는 개인들의 역할을 구조와 문화로 전환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 시스템적 전환은 관성을 깨고 협력을 가속화한다는 목표 아래 이뤄져야 한다. 학생과 교직원, 교수, 현장 실무자가 함께 상상하고 실험하는 사회혁신의 장을 열 때, 대학은 심화하는 사회문제들을 앞서 해결하는 혁신의 주체가 될 것이다.





김현중

김현중은 2023년부터 SSIR 한국어판의 에디터 및 콘텐츠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루트임팩트 임팩트베이스캠프와 임팩트커리어Y를 통해 임팩트 생태계에 진입한 그는 씨닷C.에서 동료들과 함께 시스템 변화를 촉진하는 다양한 연결을 만들었다. 이후 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혁신단 산하 한양 SSIR Korea 센터에서 근무하며, '현장 출신'으로 대학이 사회혁신 이니셔티브를 가속화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대학과 사회혁신 생태계를 연결하는 일과 사회혁신을 생태계적 관점에서 탐구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