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 일반]대학에는 토론이 아닌 숙의가 많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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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 일반 · 교육 · 시스템변화
대학에는
토론이 아닌 숙의가
많아져야 한다

2025-1


JEFFREY KENNEDY · SIMON PEK



Summary. 대학들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시급한 사안을 다룰 때 토론보다 숙의를 이상적인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북미 전역의 대학들은 학교 공동체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점점 더 양극화된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해 가자지구 전쟁과 관련한 시위는 혐오 발언에 대한 고발과 징계, 경찰 개입과 시위대에 대한 공격에 이어 의회 청문회, 심지어 대학 총장들의 사임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런 논란이 벌어지기 전에도 대학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방식을 놓고 갈등이 있었다. 그리고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 DEI 옹호 프로그램을 둘러싼 충돌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미국에서 진행되는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대학생 집단 간의 심각한 당파성이 드러나고 있으며, 대학으로 대표되는 고등교육에 대한 신뢰도 역시 대중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한편, 토론의 적절한 범위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지만, 의견 차이를 다루는 수단으로써 토론이 이상적이라는 생각은 대학 내에서 거의 의문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연 토론은 캠퍼스에서 이러한 특권적 지위를 누릴 만한 가치가 있을까?


이성적으로 진행되는 토론조차 결국은 상대방을 이기고, 논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대립적 구조를 띨 수밖에 없다. 토론에서는 참여자들이 시간을 들여 상대의 생각을 깊이 성찰하고, 자기 생각을 기꺼이 수정하거나, 실수를 인정하고, 상대의 통찰을 바탕으로 성장하려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 유튜브에 넘쳐나는 토론 영상 제목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제목에는 한쪽이 상대를 ‘쓸어버렸다’, ‘박살 냈다’, ‘이겼다’ 같은 표현들이 넘쳐난다.


물론 토론은 시위처럼 공적 담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고등교육에 대한 입장차와 신뢰도 하락이 만연한 상황에서, 학내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토론debate이 아닌 더 많은 숙의deliberation이다. 숙의는 토론과 마찬가지로 합리적인 의견 교환의 방식이지만, 단순히 논쟁에서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사안과 선택지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가능한 대안 간 절충점을 모색하며, 서로 다른 입장 사이에도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찾아 결국 가장 타당한 방안을 도출하는 과정이다. 숙의에는 고집스러운 태도나 수사적 기교보다 겸손한 태도와 경청하는 자세 그리고 그 사안이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인식하는 공동 책임이 필요하다.


대학은 이러한 숙의형 참여를 촉진하고, 이를 지원할 역량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 양극화를 완화하고 보다 생산적인 대화를 촉진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대학은 학생, 교직원, 동문 그리고 일반 대중의 관점에서 정당성을 잃을 위험이 있다. 또한 숙의는 대학이 교육적, 민주적 사명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숙의적 소통은 겸손한 태도를 갖고 정보에 기반해 사고하며,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러한 숙의의 속성을 통해 우리는 사안을 제대로 파악하고, 참가자들이 제시하는 다양한 관점을 고려할 수 있다. 대학이 배출하는 시민과 미래 지도자들은 숙의를 통해 민주주의 사회에 필요한 자질을 기를 수 있다.



대학 혁신

토론이 여전히 대학에서 정통의 지위를 누리고 있긴 해도, 대학 강의실 안팎에서 숙의형 접근법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것이 내부 의사결정을 위한 것이든, 교육적 목적이든, 공동체 대화를 촉진하기 위함이든, 이러한 시도는 민주주의적으로 필요한 교육과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숙의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최근에는 숙의형 ‘미니퍼블릭mini-public(소규모 공론장)’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미니퍼블릭은 대학 공동체나 학생 단체에서 추첨으로 선출된 대표단으로 구성된다. 그들은 사안을 파악하고, 전문가 의견을 청취하며, 독립적인 퍼실리테이터의 도움을 받아 숙의한 후 방향을 결정한다. 이 방식의 주된 목적은 분열을 야기할 수 있는 쟁점에 대해 공동의 해답을 도출하는 데 있다. 그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변혁적이고 교육적인 민주주의를 경험하게 되고, 이를 지켜보는 이들 역시 새로운 규범과 담론의 모델을 얻을 수 있다.


일례로 영국 런던정경대학교London School of Economics 학생회는 민주적인 구조 개혁을 추진하는 핵심 과정으로 학생 주도 미니퍼블릭을 활용했다. 영국 퀸메리런던대학교Queen Mary University of London 법학부에서는 이 방식으로 팬데믹 기간 중 교육에 관한 학생들의 의견을 취합했다. 캐나다의 빅토리아대학교University of Victoria, 호주의 스윈번공과대학교Swinburne University of Technology, 프랑스의 파리-에스트 크레테이유대학교Université Paris-Est Créteil에서도 미니퍼블릭 방식이 성공적으로 활용되었다. 한편, 호주에서는 여러 대학의 법학 교수들이 참여하는 미니퍼블릭이 조직돼, 법학 교육 내 선주민 문화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기 위한 공동 기준을 마련했다.


이미 완료되었거나 진행 중인 여러 연구가 미니퍼블릭의 잠재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미니퍼블릭 참여자들은 활동 과정에서 지식, 비판적 사고, 경청하기와 같은 숙의적 역량이 향상됐다. 또한 집단 정체성에 대한 한층 높은 감각과 성찰적인 태도로 다른 활동에 참여할 자신감을 얻는 등 다양한 혜택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현재 진행 중인 공동연구 프로젝트 중 런던정경대학교 사례의 초기 데이터에 따르면, 이 과정을 기획한 관계자들이 미니퍼블릭 이후에 취한 접근 방식도 숙의적이었다. 특히 미니퍼블릭의 결과로 이뤄진 개혁은 더 많은 학생의 숙의적 참여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흐름은 강의실에서 숙의적 역량과 태도를 기르려는 교육적 시도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숙의형 교육학deliberative pedagogy은 새롭게 떠오르는 교육 철학이자 교수법이다. 이러한 교수법은 특정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학습을 촉진하는 동시에 경청, 문제 해결, 논리적 주장과 같은 핵심적인 사회적 기술 개발을 목표로 한다. 정치학, 정보통신공학, 과학, 공학, 여성학 등 다양한 전공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 이 교수법은 한 학기 내내 진행되거나 몇 차시의 수업으로 진행되기도 하며, 특별한 자원이나 퍼실리테이터, 전문가가 없이도 실행이 가능하다.


한 예로, 인디애나주의 와배쉬칼리지Wabash College에서는 학부 과정의 생물학과 화학 수업에 숙의형 활동을 결합시켰다. 학생들은 여러 수업을 통해 기후변화와 에너지 정책을 다루면서 다양한 접근법과 각각의 장단점에 대한 정보를 얻고, 숙련된 학생 및 교수 퍼실리테이터의 도움을 받아 숙의를 진행했다. 연구에 따르면, 숙의형 교수법은 지식 습득, 기존 입장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정교화, 보다 참여적이고 협력적인 태도의 형성, 학내외 사회적 활동 참여 의지 증가 등 다양한 이점을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교육은 대학을 넘어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숙의를 촉진할 수 있다. 숙의에 대해 배우는 수업은 학생들이 사회 전반의 공적 대화에서 그 지식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예를 들어, 애틀랜타의 유서 깊은 흑인 여성 대학교인 스펠만칼리지Spelman College의 교육학과 학생들은 수업에서 퍼실리테이터 훈련을 받았다. 이 훈련은 일반 시민들이 공적 사안에 대해 배우고, 토론하는 공동체 기반의 숙의형 공론장에서 이뤄졌는데, ‘교육에서의 인종 불평등’을 주제로 진행된 학내 공론장에서 참여 학생들이 퍼실리테이션을 해보는 실습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배운 바를 지역사회와 연결하고, 숙의적 사고와 소통을 촉진하는 기술을 익히게 된다. 이들의 학습 성과는 대학을 넘어 사회적인 숙의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토론 대체하기

숙의는 사회 문제를 생산적으로 해결하고, 학생들에게 풍부한 교육 경험을 제공하며, 민주주의에서 대학이 맡은 역할을 회복하는 데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현재 고등교육에서 숙의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미미하다. 예를 들어, 공공영역에서는 지금까지 약 750건에 달하는 숙의형 미니퍼블릭이 운영되었지만, 대학 내에서 찾을 수 있는 유사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미니퍼블릭이 갖는 더 넓은 범위의 영향에 대해 과소평가하더라도 실질적인 참여 인원이 제한적인 것은 사실이다. 런던정경대학교의 사례에서는 24명의 학생만이 패널로 참여했고, 이보다 더 열린 방식으로 진행된 파리 학생 시민의회Parisian Convention Citoyenne Étudiante 참가자도 450여 명에 불과했다.


숙의의 잠재력을 실현하려면 대학은 다양한 숙의형 시도가 더 일상적으로 이뤄지도록 하고, 이것이 대학의 지적, 교육적, 정치적 문화의 중심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교육기관은 기금, 제도적 기반, 인지도를 비롯한 여러 자원을 동원해 이러한 형태의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육성해야 한다. 더불어 교육적이고 민주적인 사명을 구현하는 데 숙의형 교수법이 지니는 중요성을 고려하여 집중적이고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학은 숙의형 교육학 및 의사결정 방식을 지원할 전문 인력을 육성하고, 학생처와 같은 부서에 이같은 활동을 촉진할 공적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콜로라도 북부 지역에서 숙의형 교수법과 역량 강화를 지원하는 허브로 기능하고 있는 콜로라도주립대Colorado State University 공공 숙의 센터Center for Public Deliberation는 모범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 이 센터에서는 통합 수업과 실습을 통해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지역사회 의사결정 과정에 퍼실리테이터로 참여해, 공정하고 엄정한 데이터를 구축해 제공하도록 훈련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숙의형 교수법이 대학 내에서 제도로 자리 잡고, 더 넓은 범위의 공동체에 기여할 권한과 역량을 갖출 수 있다.


그러나 대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숙의를 위한 시도를 촉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조직 운영 방식을 포함해 대학 자체가 숙의의 장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향식 관리나 이기적인 경쟁보다 포용적이고, 선의가 담긴 대화, 면밀한 검토, 경청에 기반한 의사결정 방식을 구현하려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대학은 더 이상 토론을 교육적으로 가장 우수하고 민주적인 참여 방식으로 추켜세워선 안 된다. 대신 숙의를 토론만큼 인정받는 개념이자 일반적인 교수법으로 자리 잡도록 해, 숙의가 토론 못지않게 활용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숙의 동아리가 학생 토론 동아리를 대신하는 미래를 상상해 볼 수도 있다. 유튜브에서는 사려 깊은 숙의 영상의 제목이 이목을 끌지 못할 수 있지만, 숙의는 분명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래이다. 대학의 미래와 정당성, 대학이 지원하고자 하는 민주주의가 모두 숙의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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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REY KENNEDY

제프리 케네디는 맥길대학교의 법학부 조교수이다.


SIMON PEK

사이먼 펙은 빅토리아대학교 구스타프슨 경영학부의 경영사회학 부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