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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재단, 소멸을 선택하다
FARHAD EBRAHIMI
Summary. 코러스 재단(Chorus Foundation)이 설립된 지 20여 년이 흘렀다. 현 시점에서 코러스 재단과 파트너들이 필란트로피에 대해, 권력에 대해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대해 배운 것을 돌아본다.
이 단행본은 지난 20여년 간 축적된 재단 운영 경험의 결실이다. 2006년, 필자는 직접 관리하는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코러스 재단을 설립했다. 현재 코러스 재단과 액션 펀드는 기금을 배분하는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다. 이는 코러스 재단의 설립취지를 완성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매우 뜻깊은 시기지만, 이 시간이 코러스 재단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필란트로피 분야와 풀뿌리 조직 생태계의 일원으로 활동해왔다. 이번 단행본은 그동안 우리에게 혁신적인 영감을 준 사상가와 그들의 생각을 조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이란 무엇일까? 누가 권력을 가지며, 권력은 어떻게 이양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러한 권력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들이 모든 사회문제와 소셜섹터의 핵심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양한 형태의 권력이 당연시되거나 심지어 완전히 감춰지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는 물론 의도된 것이다. 권력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대로 질문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권력의 주체가 되기보다 권력에 종속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기존 권력관계가 스스로를 영속화해 온 방식이다.
우리만큼은 예외일 거라는 끊임없는 믿음에도 불구하고, 필란트로피 분야의 권력 작동방식 역시 다르지 않다. 오히려 필란트로피 분야의 권력은 어디에나 존재하면서도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의심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권력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필란트로피는 자원을 배분하고, 의제를 설정하며, 전략을 결정하기까지 하는 막대한 권력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필란트로피 영역 내부에도 권력의 생태계와 역학 관계가 존재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코러스 재단은 권력이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의 활동을 바라보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 이러한 관점을 갖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여정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이 단행본의 내용이다.
나는 누구인가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기부자로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간략히 소개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코러스 재단의 이야기는 어느 성공한 기술 사업가로부터 시작되지만, 그 주인공이 나는 아니다. 1980년대 중반 데스크탑 출판 업계에서 큰 성공을 거둔 나의 아버지가 바로 주인공이다. 나는 고액 자산가 집안의 아들로 재단 업무를 시작했다.
참고로 나는 전형적인 급진 좌파로, 집안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편이다. 나의 가치관은 부모님 모두가 난민이라는 가족사로부터 영향을 받아 형성됐다. 이란인 아버지와 쿠바인 어머니의 이야기는 내가 성장하고 정치적 성향을 형성하는 데 깊은 영향을 미쳤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늘 정치에 관해 이야기하셨고, TV로 뉴스 프로그램을 보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셨다. 특히 부모님은 미국의 외교 정책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갖고 계셨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이러한 성장 환경은 일종의 정치 교육의 장이었다. 그중에서도 ‘공동체 자결권community self-determination의 가치’라는 하나의 주제가 깊이 각인되었다. 부모님은 난민으로서의 경험을 고향과 삶의 터전을 잃는다는 측면에서 이야기하셨지만, 이는 동시에 공동체의 자결권이 훼손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이기도 했다. 이란과 쿠바 양국의 공동체 자결권은 미국을 비롯한 외세의 잦은 개입을 겪으며 약화됐다.
부모님의 이야기가 나에게 준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부모님의 이야기는 이란계 미국인으로서 내가 겪은 경험을 스스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동시에 정치적 탐구를 시작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 모든 청소년이 그렇듯 나 역시 부모님께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왜 우리는 인종 문제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지 않았을까요? 계급이나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왜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죠? 우리 가족은 이제 부유해졌는데, 그러면 난민 시절을 겪은 우리 가족은 공동체 자결권에 대해 어떤 역할이나 책임을 져야 하는 거죠?”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의 자산이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해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10대가 되기도 전, 자신이 일군 성공한 기업 중 한 곳의 주식 상당 부분을 증여하셨다. 그렇게 20대 중반에 이르러 내가 직접 관리하는 자산의 가치는 685억 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난 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사실 돈과 관련된 주제를 회피하고만 있었다.
코러스 재단의 탄생
여러 동료, 멘토들과 대화를 나누고, 깊은 고민 끝에 나는 개인 재단을 설립하기로 결심했다. 이 계획은 내가 직접 관리하는 모든 재산을 사회로 환원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사실 내가 물려받은 돈이 나의 것이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필란트로피 활동을 하며 알게 됐지만, 이런 감정은 고액 자산가 집안의 자녀들에게 흔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결정이 의도적인 정치 교육의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어릴 때부터 나는 우리 가족이 그렇게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의문을 품도록 배웠다. 나는 부모님을 사랑하고, 아버지의 노고를 안다. 아버지에게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하지만 한 개인이 그토록 많은 부를 축적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이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사회 시스템의 혜택 없이 이렇게 부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30살이 되기 전, 부를 재분배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겠다고 다짐했다. 30살 이전에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지만, 내게는 필란트로피 활동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데 필요한 명확한 프레임워크나 기준이 부족했다.
그래서 17년 전, 다소 전통적인 방식으로 코러스 재단을 시작했다. 먼저 짚고 넘어갈 점은 코러스 재단이 개인 재단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미 누군가 언급했듯) 이 형태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별도의 긴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당시 나는 활동중인 개인 기부자로서,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흔히 듣는 조언을 주변으로부터 들었다. 예를 들어 특정 문제를 선택하고, 측정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라거나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 낼’ 전략을 개발하고, 그 전략을 실행하도록 지원단체를 서비스 제공자처럼 대하라는 식의 조언이었다.
이러한 조언이 와닿지는 않았지만 처음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다 선택한 주제는 기후변화였다. 관심을 가진 유일한 문제는 아니었지만, 필란트로피는 한 번에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할 때, 해결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코러스 재단의 전략을 개발하며 기후 이슈를 지원하는 다른 지원기관들의 활동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많은 자금이 하향식 접근 전략에 투입되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물론 우리도 일을 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운이 좋게도 몇몇 주목할 만한 이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색이 바랜 데이비드 보위 셔츠를 입고 있던 나는 아마도 고액 기부자 컨퍼런스에서 눈에 띄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눈에 띈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필란트로피 분야의 진보적인 동료들이 우리를 알아보고 환영하며 도움을 주었다. 특히 초기 멘토링을 제공해 준 뉴 월드 재단New World Foundation, 솔리다고 재단Solidago Foundation 그리고 리소스 제너레이션Resource Generation과 엣지 펀더스 얼라이언스EDGE Funders Alliance의 직원과 회원 조직 리더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이 새로운 친구들은 기후 필란트로피 활동의 최신 유행을 쫓기보다 풀뿌리 조직의 리더들과 직접 소통하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공동체의 자결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정에서 자라온 만큼 내게 이 제안은 크게 와닿았고, 실제로 옳은 말이기도 했다. 예상대로 나는 기후 필란트로피 분야의 (주로 백인이고 특권층이며 현실과 동떨어진) 동료들보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유색인종BIPOC과 노동계층 리더들로부터 훨씬 많은 것을 배웠다.
스토리 기반 전략센터Center for Story-based Strategy, 기후정의 연합Climate Justice Alliance, 풀뿌리 정의 연합Grassroots Global Justice Alliance, 정의 및 생태 프로젝트를 위한 무브먼트 제너레이션Movement Generation Justice & Ecology Project이 우리 재단의 리더십에 다양한 방식으로 투자해 준 것에 감사를 표한다. 이들은 단순히 기부자로서뿐만 아니라, 조직가로서도 우리를 도와주었다. 풀뿌리의 관점에서 바라본 관계 구축과 리더십 개발, 조직화 노력에 대한 글을 이 단행본에 기고해준 무브먼트 제너레이션의 전 공동디렉터 미셸 마스카렌하스Michelle Mascarenhas에게 매우 감사드린다.
이들 조직과 아시아 태평양 환경 네트워크Asian Pacific Environmental Network, 커먼웰스를 위한 켄투키언Kentuckians For The Commonwealth, 서부 자원 협의회 조직Western Organization of Resource Councils과 같은 지역 기반 단체에서 배운 정치적 통찰 덕분에 우리는 기후위기의 핵심이 정책, 기술, 과학의 문제가 아닌 권력의 문제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명료한 인식에 힘입어 우리는 초기 ‘기후 이슈 중심의 문제 지향적인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자결권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권력을 구축하고 전환하는 포괄적인 프레임워크’를 채택하게 되었다.
권력의 본질에 대한 논의
우리가 ‘권력power’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그 권력은 무엇을 의미할까? 코러스 재단은 사업을 통해 권력에 대한 이해를 명확히 할 수 있었고, 재단 활동이 종료된 이후에도 그 이해를 계속 넓혀갈 것이다. 우리가 하려는 것은 권력에 대한 이론적 논의가 아니다. 권력을 새로운 방식으로 구축하고 변화시키는 사람이나 단체들과 함께 협력하는 것이다.
권력은 단일한 개념이 아니다. 권력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관계와 상호작용의 연결망을 포함한 복잡한 생태계이다. 이 광범위한 생태계에서 권력을 분류할 단일한 체계는 없지만, 코러스 재단은 정치, 경제, 문화적 권력을 우리가 중점적으로 다루는 세 가지 형태로 분류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판단했다. 우리에게는 이 세 가지 권력이 서로 교차하며 상호작용할 뿐 아니라, 각각이 독립적인 생태계로 존재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러한 권력의 복잡성을 고려해, 이번 단행본에서는 정치, 경제, 문화적 권력을 탐구하는 두 편의 글을 통해 다양한 주제와 관점을 엮어 ‘권력’의 의미에 대한 우리 모두의 이해를 넓히고자 한다.
‘권력'이라는 단어를 아무런 수식어 없이 사용할 때는 주로 정치적 권력을 의미한다. 대체로 정치적 권력은 집단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거나 통제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된다. 이와 관련해 단행본에서는 아시아 태평양 환경 네트워크Asia Pacific Environmental Network의 비비안 이 황Vivian Yi Huang, 하이암스 재단The Hyams Foundation의 리사 오웬스Lisa Owens, 청년 조직화를 위한 펀더 협력체Funders’ Collaborative on Youth Organizing의 모니카 코르도바Mόnica Cόrdova가 쓴 글을 통해 사례연구와 개념으로써 정치적 권력을 분석해 본다.
우리가 지원기관으로서 가장 기본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은 경제력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경제 민주화 센터Center for Economic Democracy의 아론 타나카Aaron Tanaka가 쓴 글은 이번 단행본의 핵심적인 글로 권력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경제 권력은 개인이나 집단이 가치 있는 자산 및 자원을 통제하는 능력을 의미하며, 그 사용에 대한 결정권을 포함한다. 이 밖에도 투자와 통합 자본에 대한 필란트로피적 접근에 있어 경제 권력이 갖는 역할에 대해 탐구한 카탈리 재단Kataly Foundation 느와마카 아그보Nwamaka Agbo의 글도 함께 소개한다.
문화 권력은 논의가 가장 적지만 가장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권력의 형태일 것이다. 우리가 ‘정치’나 ‘경제’의 의미를 이해하는 방식도 문화에 의해 형성된다. 문화 권력과 관련해서는 헬리콘Helicon의 알렉시스 프라즈Alexis Frasz와 인텔리전트 미스치프Intelligent Mischief의 아이샤 실링포드Aisha Shillingford가 쓴 두 편의 글을 소개한다. 우리는 이들의 집단 지혜를 근거로, 문화 권력을 특정 집단이 자신의 세계관과 선호하는 존재 방식에 부합하도록 믿음, 가치, 행동, 창작물을 형성하는 역량으로 이해할 수 있다.
권력에 대한 통찰이 필란트로피에 주는 의미
코러스 재단은 권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제를 다루는 조직들에 주목하고, 권력으로부터 피해를 입어온 커뮤니티에서 새롭게 권력을 구축하고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커뮤니티는 흑인, 원주민, 유색인종, 이민자 및 난민, 그리고 더 넓게는 노동 계층을 포함한다.
우리가 지원하는 단체들은 이제 ‘기후 해결책’이나 ‘기후 정의’를 넘어, ‘정의로운 전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주류 기후 필란트로피 기관을 포함한 여러 기후단체들도 ‘시스템 변화’의 필요성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스템은 늘 변화한다. 그리고 진정한 ‘시스템적 변화’는 정의롭고 올바른 권력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위태로울 수 있다. 무브먼트 제너레이션의 동료들이 알려준 것처럼 ‘전환은 불가피하지만, 정의는 그렇지 않다.’
이러한 권력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지원 대상뿐 아니라, 지원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원기관들 그리고 나와 같은 개인 고액 기부자는 상당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필란트로피 분야에서 이 권력이 공평하게 행사되지 않는 현실을 목격해 왔다. 때로는 필란트로피 활동과 기부 방식 자체가 혁신적인 활동의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올바른 목적에 잘못된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생각보다 흔히 일어나고 있다.
급진적 진보주의자의 관점에서 볼 때, 전통적인 의미의 필란트로피는 부와 권력의 착취 및 독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심지어 기금을 배분하는 방식에서도 이러한 추출적이고 착취적인 구조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더 중요한 질문은 “다른 방식으로 이 일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이다. 우리는 코러스 재단에서의 경험을 돌아보며 세 단계로 진행되는 분명한 경로를 확인했다. 그것은 권력을 책임 있게 다루고, 권력을 공평하게 공유하며, 최종적으로 권력을 완전하게 이양하는 것이다. 여기서 각 단계는 다음 단계의 전제 조건이 된다.
권력을 책임 있게 다루는 것에 대한 논의는 현재 ‘신뢰 기반’ 필란트로피로 불리는 접근방식에서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은 장기적이고 제한 없는 지원을 포함하는데, 코러스 재단의 경우 ‘장기적’ 기간을 8~10년으로 설정했다. 또한 신뢰 기반 필란트로피는 수혜단체 및 공동체 구성원과 개방적이고 정직하며 상호 의지하는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것은 권력을 공평하게 나누기 위한 신뢰 구축의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권력을 공평하게 나누는 방법으로 우선 ‘참여형’ 필란트로피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참여형 필란트로피의 방식에는 수혜단체 및 공동체 리더와 함께 전략을 설계하거나 자원 배분에 관한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과 구조를 만드는 것이 포함된다. 이번 단행본에 참여형 필란트로피에 관한 폭넓은 경험을 가진 킨들 프로젝트Kindle Project의 사다프 라소울 카메론Sadaf Rassoul Cameron과 아리앤 셰퍼Arianne Shaffer가 권력 공유에 관해 쓴 글을 소개할 수 있게 되어 뜻깊게 생각한다. 코러스 재단이 생각하는 권력 공유는 궁극적으로 권력이 공동체 구성원에게 완전히 이양되기 전 ‘그들이 권력을 제대로 발휘’하도록 훈련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권력을 완전히 이양한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코러스 재단에게 권력 이양은 지난 10년간 기금 전액을 소진하는 것을 의미했다. 기금을 소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기본 자산 조성, 토지 매입, 지역 대출 기금 등 수혜단체의 장기적인 재정 안정성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자금을 지원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재단이 사라진 후에도 자원 배분이 지속될 수 있도록 공동체가 스스로 자원을 배분할 수 있는 대안적인 인프라 구축에 지원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하고 싶은 바는 우리는 ‘소진형’ 필란트로피를 추구하지만, 이것이 모든 상황에 적합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결책은 전략적 고민을 거쳐 나와야 하며, 맹목적으로 따라야 할 것이 아니다. 이 주제에 대해 하이랜더 센터Highlander Center의 애쉬 리 헨더슨Ash-Lee Henderson과 함께 글을 쓰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정의로운 전환에서 민간 재단의 역할
코러스 재단은 민간 가족 재단으로서 일종의 과도기적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진정으로 혁신적인 일을 지원하고자 한다면, 우리 자신도 혁신에 열려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를 필란트로피 분야의 ‘정의로운 전환’으로 보고 있으며, 이러한 개념은 ‘정의로운 지원기관들Justice Funders’의 활동 덕분에 확장되고 구체화될 수 있었다. 정의로운 지원기관들의 로렌조 에레라 이 로자노Lorenzo Herrera y Lozano가 우리 재단을 포함한 필란트로피 기관들을 위해 기고한 글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 그의 글은 진정으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필요한 (재)생산적 리더십(re)generative leadership의 유형을 명확히 설명하였다.
이미 한 가지는 분명하다. 필란트로피 분야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서는 먼저 부의 불평등을 초래하고 민간 재단을 우선시하는 환경에 맞서야 한다. 이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거북하고 불편한 진실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더 공평하고 공정한 세상에서 필란트로피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필란트로피의 모습일까? 아니면 자원 배분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상상해 볼 수 있을까?”
여러 면에서 나는 스스로를 폐지론자Abolitionist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예제나 경찰 또는 감옥과 관련된 맥락에서 폐지론이라는 단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폐지론자이지만 나는 이분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경찰과 ‘나쁜’ 경찰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취하지 않는다. 대신 “왜 경찰이 우리의 기본적인 해결책이 되어야 하는가?”라고 질문한다. 민간 재단에 대해서도 나는 비슷한 입장이다. 코러스 재단과 같은 과도기적 형태에서는 ‘좋은’ 재단과 ‘나쁜’ 재단을 구분하는 논의가 실용적일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궁극적인 관심사는 자원과 권력이 처음부터 착취되지 않고 집중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있다. 나는 그것이 수혜단체뿐 아니라 나와 같은 고액 자산가 가족 그리고 기부자 모두에게 해방을 가져다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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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HAD EBRAHIMI
파하드 에브라히미는 코러스 재단의 설립자이자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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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란트로피
우리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재단, 소멸을 선택하다
FARHAD EBRAHIMI
Summary. 코러스 재단(Chorus Foundation)이 설립된 지 20여 년이 흘렀다. 현 시점에서 코러스 재단과 파트너들이 필란트로피에 대해, 권력에 대해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대해 배운 것을 돌아본다.
이 단행본은 지난 20여년 간 축적된 재단 운영 경험의 결실이다. 2006년, 필자는 직접 관리하는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코러스 재단을 설립했다. 현재 코러스 재단과 액션 펀드는 기금을 배분하는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다. 이는 코러스 재단의 설립취지를 완성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매우 뜻깊은 시기지만, 이 시간이 코러스 재단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필란트로피 분야와 풀뿌리 조직 생태계의 일원으로 활동해왔다. 이번 단행본은 그동안 우리에게 혁신적인 영감을 준 사상가와 그들의 생각을 조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이란 무엇일까? 누가 권력을 가지며, 권력은 어떻게 이양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러한 권력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들이 모든 사회문제와 소셜섹터의 핵심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양한 형태의 권력이 당연시되거나 심지어 완전히 감춰지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는 물론 의도된 것이다. 권력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대로 질문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권력의 주체가 되기보다 권력에 종속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기존 권력관계가 스스로를 영속화해 온 방식이다.
우리만큼은 예외일 거라는 끊임없는 믿음에도 불구하고, 필란트로피 분야의 권력 작동방식 역시 다르지 않다. 오히려 필란트로피 분야의 권력은 어디에나 존재하면서도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의심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권력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필란트로피는 자원을 배분하고, 의제를 설정하며, 전략을 결정하기까지 하는 막대한 권력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필란트로피 영역 내부에도 권력의 생태계와 역학 관계가 존재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코러스 재단은 권력이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의 활동을 바라보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 이러한 관점을 갖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여정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이 단행본의 내용이다.
나는 누구인가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기부자로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간략히 소개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코러스 재단의 이야기는 어느 성공한 기술 사업가로부터 시작되지만, 그 주인공이 나는 아니다. 1980년대 중반 데스크탑 출판 업계에서 큰 성공을 거둔 나의 아버지가 바로 주인공이다. 나는 고액 자산가 집안의 아들로 재단 업무를 시작했다.
참고로 나는 전형적인 급진 좌파로, 집안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편이다. 나의 가치관은 부모님 모두가 난민이라는 가족사로부터 영향을 받아 형성됐다. 이란인 아버지와 쿠바인 어머니의 이야기는 내가 성장하고 정치적 성향을 형성하는 데 깊은 영향을 미쳤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늘 정치에 관해 이야기하셨고, TV로 뉴스 프로그램을 보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셨다. 특히 부모님은 미국의 외교 정책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갖고 계셨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이러한 성장 환경은 일종의 정치 교육의 장이었다. 그중에서도 ‘공동체 자결권community self-determination의 가치’라는 하나의 주제가 깊이 각인되었다. 부모님은 난민으로서의 경험을 고향과 삶의 터전을 잃는다는 측면에서 이야기하셨지만, 이는 동시에 공동체의 자결권이 훼손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이기도 했다. 이란과 쿠바 양국의 공동체 자결권은 미국을 비롯한 외세의 잦은 개입을 겪으며 약화됐다.
부모님의 이야기가 나에게 준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부모님의 이야기는 이란계 미국인으로서 내가 겪은 경험을 스스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동시에 정치적 탐구를 시작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 모든 청소년이 그렇듯 나 역시 부모님께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왜 우리는 인종 문제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지 않았을까요? 계급이나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왜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죠? 우리 가족은 이제 부유해졌는데, 그러면 난민 시절을 겪은 우리 가족은 공동체 자결권에 대해 어떤 역할이나 책임을 져야 하는 거죠?”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의 자산이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해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10대가 되기도 전, 자신이 일군 성공한 기업 중 한 곳의 주식 상당 부분을 증여하셨다. 그렇게 20대 중반에 이르러 내가 직접 관리하는 자산의 가치는 685억 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난 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사실 돈과 관련된 주제를 회피하고만 있었다.
코러스 재단의 탄생
여러 동료, 멘토들과 대화를 나누고, 깊은 고민 끝에 나는 개인 재단을 설립하기로 결심했다. 이 계획은 내가 직접 관리하는 모든 재산을 사회로 환원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사실 내가 물려받은 돈이 나의 것이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필란트로피 활동을 하며 알게 됐지만, 이런 감정은 고액 자산가 집안의 자녀들에게 흔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결정이 의도적인 정치 교육의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어릴 때부터 나는 우리 가족이 그렇게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의문을 품도록 배웠다. 나는 부모님을 사랑하고, 아버지의 노고를 안다. 아버지에게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하지만 한 개인이 그토록 많은 부를 축적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이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사회 시스템의 혜택 없이 이렇게 부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30살이 되기 전, 부를 재분배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겠다고 다짐했다. 30살 이전에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지만, 내게는 필란트로피 활동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데 필요한 명확한 프레임워크나 기준이 부족했다.
그래서 17년 전, 다소 전통적인 방식으로 코러스 재단을 시작했다. 먼저 짚고 넘어갈 점은 코러스 재단이 개인 재단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미 누군가 언급했듯) 이 형태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별도의 긴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당시 나는 활동중인 개인 기부자로서,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흔히 듣는 조언을 주변으로부터 들었다. 예를 들어 특정 문제를 선택하고, 측정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라거나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 낼’ 전략을 개발하고, 그 전략을 실행하도록 지원단체를 서비스 제공자처럼 대하라는 식의 조언이었다.
이러한 조언이 와닿지는 않았지만 처음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다 선택한 주제는 기후변화였다. 관심을 가진 유일한 문제는 아니었지만, 필란트로피는 한 번에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할 때, 해결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코러스 재단의 전략을 개발하며 기후 이슈를 지원하는 다른 지원기관들의 활동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많은 자금이 하향식 접근 전략에 투입되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물론 우리도 일을 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운이 좋게도 몇몇 주목할 만한 이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색이 바랜 데이비드 보위 셔츠를 입고 있던 나는 아마도 고액 기부자 컨퍼런스에서 눈에 띄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눈에 띈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필란트로피 분야의 진보적인 동료들이 우리를 알아보고 환영하며 도움을 주었다. 특히 초기 멘토링을 제공해 준 뉴 월드 재단New World Foundation, 솔리다고 재단Solidago Foundation 그리고 리소스 제너레이션Resource Generation과 엣지 펀더스 얼라이언스EDGE Funders Alliance의 직원과 회원 조직 리더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이 새로운 친구들은 기후 필란트로피 활동의 최신 유행을 쫓기보다 풀뿌리 조직의 리더들과 직접 소통하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공동체의 자결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정에서 자라온 만큼 내게 이 제안은 크게 와닿았고, 실제로 옳은 말이기도 했다. 예상대로 나는 기후 필란트로피 분야의 (주로 백인이고 특권층이며 현실과 동떨어진) 동료들보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유색인종BIPOC과 노동계층 리더들로부터 훨씬 많은 것을 배웠다.
스토리 기반 전략센터Center for Story-based Strategy, 기후정의 연합Climate Justice Alliance, 풀뿌리 정의 연합Grassroots Global Justice Alliance, 정의 및 생태 프로젝트를 위한 무브먼트 제너레이션Movement Generation Justice & Ecology Project이 우리 재단의 리더십에 다양한 방식으로 투자해 준 것에 감사를 표한다. 이들은 단순히 기부자로서뿐만 아니라, 조직가로서도 우리를 도와주었다. 풀뿌리의 관점에서 바라본 관계 구축과 리더십 개발, 조직화 노력에 대한 글을 이 단행본에 기고해준 무브먼트 제너레이션의 전 공동디렉터 미셸 마스카렌하스Michelle Mascarenhas에게 매우 감사드린다.
이들 조직과 아시아 태평양 환경 네트워크Asian Pacific Environmental Network, 커먼웰스를 위한 켄투키언Kentuckians For The Commonwealth, 서부 자원 협의회 조직Western Organization of Resource Councils과 같은 지역 기반 단체에서 배운 정치적 통찰 덕분에 우리는 기후위기의 핵심이 정책, 기술, 과학의 문제가 아닌 권력의 문제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명료한 인식에 힘입어 우리는 초기 ‘기후 이슈 중심의 문제 지향적인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자결권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권력을 구축하고 전환하는 포괄적인 프레임워크’를 채택하게 되었다.
권력의 본질에 대한 논의
우리가 ‘권력power’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그 권력은 무엇을 의미할까? 코러스 재단은 사업을 통해 권력에 대한 이해를 명확히 할 수 있었고, 재단 활동이 종료된 이후에도 그 이해를 계속 넓혀갈 것이다. 우리가 하려는 것은 권력에 대한 이론적 논의가 아니다. 권력을 새로운 방식으로 구축하고 변화시키는 사람이나 단체들과 함께 협력하는 것이다.
권력은 단일한 개념이 아니다. 권력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관계와 상호작용의 연결망을 포함한 복잡한 생태계이다. 이 광범위한 생태계에서 권력을 분류할 단일한 체계는 없지만, 코러스 재단은 정치, 경제, 문화적 권력을 우리가 중점적으로 다루는 세 가지 형태로 분류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판단했다. 우리에게는 이 세 가지 권력이 서로 교차하며 상호작용할 뿐 아니라, 각각이 독립적인 생태계로 존재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러한 권력의 복잡성을 고려해, 이번 단행본에서는 정치, 경제, 문화적 권력을 탐구하는 두 편의 글을 통해 다양한 주제와 관점을 엮어 ‘권력’의 의미에 대한 우리 모두의 이해를 넓히고자 한다.
‘권력'이라는 단어를 아무런 수식어 없이 사용할 때는 주로 정치적 권력을 의미한다. 대체로 정치적 권력은 집단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거나 통제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된다. 이와 관련해 단행본에서는 아시아 태평양 환경 네트워크Asia Pacific Environmental Network의 비비안 이 황Vivian Yi Huang, 하이암스 재단The Hyams Foundation의 리사 오웬스Lisa Owens, 청년 조직화를 위한 펀더 협력체Funders’ Collaborative on Youth Organizing의 모니카 코르도바Mόnica Cόrdova가 쓴 글을 통해 사례연구와 개념으로써 정치적 권력을 분석해 본다.
우리가 지원기관으로서 가장 기본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은 경제력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경제 민주화 센터Center for Economic Democracy의 아론 타나카Aaron Tanaka가 쓴 글은 이번 단행본의 핵심적인 글로 권력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경제 권력은 개인이나 집단이 가치 있는 자산 및 자원을 통제하는 능력을 의미하며, 그 사용에 대한 결정권을 포함한다. 이 밖에도 투자와 통합 자본에 대한 필란트로피적 접근에 있어 경제 권력이 갖는 역할에 대해 탐구한 카탈리 재단Kataly Foundation 느와마카 아그보Nwamaka Agbo의 글도 함께 소개한다.
문화 권력은 논의가 가장 적지만 가장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권력의 형태일 것이다. 우리가 ‘정치’나 ‘경제’의 의미를 이해하는 방식도 문화에 의해 형성된다. 문화 권력과 관련해서는 헬리콘Helicon의 알렉시스 프라즈Alexis Frasz와 인텔리전트 미스치프Intelligent Mischief의 아이샤 실링포드Aisha Shillingford가 쓴 두 편의 글을 소개한다. 우리는 이들의 집단 지혜를 근거로, 문화 권력을 특정 집단이 자신의 세계관과 선호하는 존재 방식에 부합하도록 믿음, 가치, 행동, 창작물을 형성하는 역량으로 이해할 수 있다.
권력에 대한 통찰이 필란트로피에 주는 의미
코러스 재단은 권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제를 다루는 조직들에 주목하고, 권력으로부터 피해를 입어온 커뮤니티에서 새롭게 권력을 구축하고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커뮤니티는 흑인, 원주민, 유색인종, 이민자 및 난민, 그리고 더 넓게는 노동 계층을 포함한다.
우리가 지원하는 단체들은 이제 ‘기후 해결책’이나 ‘기후 정의’를 넘어, ‘정의로운 전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주류 기후 필란트로피 기관을 포함한 여러 기후단체들도 ‘시스템 변화’의 필요성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스템은 늘 변화한다. 그리고 진정한 ‘시스템적 변화’는 정의롭고 올바른 권력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위태로울 수 있다. 무브먼트 제너레이션의 동료들이 알려준 것처럼 ‘전환은 불가피하지만, 정의는 그렇지 않다.’
이러한 권력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지원 대상뿐 아니라, 지원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원기관들 그리고 나와 같은 개인 고액 기부자는 상당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필란트로피 분야에서 이 권력이 공평하게 행사되지 않는 현실을 목격해 왔다. 때로는 필란트로피 활동과 기부 방식 자체가 혁신적인 활동의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올바른 목적에 잘못된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생각보다 흔히 일어나고 있다.
급진적 진보주의자의 관점에서 볼 때, 전통적인 의미의 필란트로피는 부와 권력의 착취 및 독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심지어 기금을 배분하는 방식에서도 이러한 추출적이고 착취적인 구조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더 중요한 질문은 “다른 방식으로 이 일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이다. 우리는 코러스 재단에서의 경험을 돌아보며 세 단계로 진행되는 분명한 경로를 확인했다. 그것은 권력을 책임 있게 다루고, 권력을 공평하게 공유하며, 최종적으로 권력을 완전하게 이양하는 것이다. 여기서 각 단계는 다음 단계의 전제 조건이 된다.
권력을 책임 있게 다루는 것에 대한 논의는 현재 ‘신뢰 기반’ 필란트로피로 불리는 접근방식에서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은 장기적이고 제한 없는 지원을 포함하는데, 코러스 재단의 경우 ‘장기적’ 기간을 8~10년으로 설정했다. 또한 신뢰 기반 필란트로피는 수혜단체 및 공동체 구성원과 개방적이고 정직하며 상호 의지하는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것은 권력을 공평하게 나누기 위한 신뢰 구축의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권력을 공평하게 나누는 방법으로 우선 ‘참여형’ 필란트로피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참여형 필란트로피의 방식에는 수혜단체 및 공동체 리더와 함께 전략을 설계하거나 자원 배분에 관한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과 구조를 만드는 것이 포함된다. 이번 단행본에 참여형 필란트로피에 관한 폭넓은 경험을 가진 킨들 프로젝트Kindle Project의 사다프 라소울 카메론Sadaf Rassoul Cameron과 아리앤 셰퍼Arianne Shaffer가 권력 공유에 관해 쓴 글을 소개할 수 있게 되어 뜻깊게 생각한다. 코러스 재단이 생각하는 권력 공유는 궁극적으로 권력이 공동체 구성원에게 완전히 이양되기 전 ‘그들이 권력을 제대로 발휘’하도록 훈련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권력을 완전히 이양한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코러스 재단에게 권력 이양은 지난 10년간 기금 전액을 소진하는 것을 의미했다. 기금을 소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기본 자산 조성, 토지 매입, 지역 대출 기금 등 수혜단체의 장기적인 재정 안정성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자금을 지원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재단이 사라진 후에도 자원 배분이 지속될 수 있도록 공동체가 스스로 자원을 배분할 수 있는 대안적인 인프라 구축에 지원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하고 싶은 바는 우리는 ‘소진형’ 필란트로피를 추구하지만, 이것이 모든 상황에 적합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결책은 전략적 고민을 거쳐 나와야 하며, 맹목적으로 따라야 할 것이 아니다. 이 주제에 대해 하이랜더 센터Highlander Center의 애쉬 리 헨더슨Ash-Lee Henderson과 함께 글을 쓰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정의로운 전환에서 민간 재단의 역할
코러스 재단은 민간 가족 재단으로서 일종의 과도기적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진정으로 혁신적인 일을 지원하고자 한다면, 우리 자신도 혁신에 열려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를 필란트로피 분야의 ‘정의로운 전환’으로 보고 있으며, 이러한 개념은 ‘정의로운 지원기관들Justice Funders’의 활동 덕분에 확장되고 구체화될 수 있었다. 정의로운 지원기관들의 로렌조 에레라 이 로자노Lorenzo Herrera y Lozano가 우리 재단을 포함한 필란트로피 기관들을 위해 기고한 글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 그의 글은 진정으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필요한 (재)생산적 리더십(re)generative leadership의 유형을 명확히 설명하였다.
이미 한 가지는 분명하다. 필란트로피 분야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서는 먼저 부의 불평등을 초래하고 민간 재단을 우선시하는 환경에 맞서야 한다. 이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거북하고 불편한 진실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더 공평하고 공정한 세상에서 필란트로피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필란트로피의 모습일까? 아니면 자원 배분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상상해 볼 수 있을까?”
여러 면에서 나는 스스로를 폐지론자Abolitionist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예제나 경찰 또는 감옥과 관련된 맥락에서 폐지론이라는 단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폐지론자이지만 나는 이분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경찰과 ‘나쁜’ 경찰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취하지 않는다. 대신 “왜 경찰이 우리의 기본적인 해결책이 되어야 하는가?”라고 질문한다. 민간 재단에 대해서도 나는 비슷한 입장이다. 코러스 재단과 같은 과도기적 형태에서는 ‘좋은’ 재단과 ‘나쁜’ 재단을 구분하는 논의가 실용적일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궁극적인 관심사는 자원과 권력이 처음부터 착취되지 않고 집중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있다. 나는 그것이 수혜단체뿐 아니라 나와 같은 고액 자산가 가족 그리고 기부자 모두에게 해방을 가져다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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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HAD EBRAHIMI
파하드 에브라히미는 코러스 재단의 설립자이자 대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