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 일반]디자인씽킹, 과녁을 빗나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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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 일반
디자인씽킹,
과녁을 빗나가다

2024-1


ANNE-LAURE FAYARD · SARAH FATHALLAH



Summary. 가장 어려운 사회문제들을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디자인씽킹이 지역사회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비판적으로 디자인 사고를 적용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비영리단체, 정부, 국제기구는 종종 디자인씽킹을 통해 복잡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혁신적 해결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디자인씽킹의 해결책들은 사람들을 ‘위한’ 해결책이 되기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만든 해결책에 그치곤 한다. 디자인씽킹은 40년 전 디자이너 나이젤 크로스Nigel Cross에 의해 개념화되었으며, 1982년에 발행된 학술지 디자인 연구Design Studies에 실린 기사 “디자이너의 이해법Designerly Ways of Knowing”을 통해 알려졌다. 이후 이 방법론은 디자인 및 혁신 분야의 세계적 컨설팅 회사 IDEO에 의해 대중화되었다. 디자인씽킹은 기업 영역의 혁신 툴킷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디자인씽킹은 국제 개발과 소셜섹터에서도 자주 쓰이는 혁신 툴킷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는데, 이는 디자인씽킹이 커뮤니티를 중심에 두고 협력적인 디자인 프로세스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당시 IDEO의 CEO였던 팀 브라운Tim Brown과 IDEO.org(감수자주: IDEO의 비영리 자회사로, 임팩트를 창출하는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행함)의 전신인 IDEO 사회혁신 그룹의 리더였던 조슬린 와이어트Jocelyn Wyatt는 2010년 스탠퍼드 소셜 이노베이션 리뷰에 실렸던 기사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씽킹Design Thinking for Social Innovation”을 통해 소셜섹터를 위한 디자인씽킹을 다뤘고, 이는 소셜섹터에서 참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남았다.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의 공동창립자 멜린다 게이츠Melinda Gates나 어큐먼Acumen의 창립자이자 CEO인 재클린 노보그라츠Jacqueline Novogratz 같은 유명 자선가들이 디자인씽킹을 받아들인 후, 디자인씽킹은 사회에 큰 변화를 이끌어내리라는 기대를 받으며 더욱 인기를 얻었다. 브라운은  2014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에서 디자인씽킹이 민주적 자본주의를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디자인씽킹은 이런 높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2023년 MIT 테크놀로지 리뷰MIT Technology Review에서 작가이자 디자이너인 레베카 애커먼Rebecca Ackerman은 ‘디자인씽킹은 세상을 고쳐야’했지만, 조직이 디자인씽킹 과정에서 도출된 아이디어를 제대로 실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아이디어를 구현에 실패한 이유는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제도적, 문화적 맥락의 복잡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애커먼은 2013년 IDEO에게 교육구 내 학생식당 재설계를 의뢰했던 샌프란시스코 통합 교육구San Francisco Unified School District, SFUSD의 사례를 근거로 들었다. 그들은 5개월에 걸친 디자인씽킹 프로세스를 통해 공유 주방 구축과 식당 대기 줄을 줄이기 위한 기술 활용 등을 포함한 10가지 아이디어를 도출했다. 그러나 아이디어 구현을 위해 SFUSD에 고용되었던 컨설턴트 안젤라 맥키 브라운Angela McKee Brown은 IDEO가 도출된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실행적 측면이나 규제 조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필자들은 디자인씽킹이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독자적인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것을 반대한다. 지금부터는 전형적으로 행해지는 디자인씽킹이 복잡한 사회 문제에 대해 영향력 있고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우리는 디자인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취할 것을 촉구한다. 여기서 ‘비판적’이란 ‘분별력을 가지는 것’과 ‘중요성을 파악하는 것’ 모두를 의미한다. 우리는 학자이자 활동가인 안젤라 데이비스Angela Davis가 말한 “끊임없이 비판적이고 끊임없이 의식하는 상태에 있기를 요구하는 사고방식,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디자이너들이 갖추기 원한다. 끊임없이 성찰하고 질문하는 자세 말이다. 


비판적 디자인 관점은 관계 지향적이고 성찰 지향적이며, 정치적인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가치와 지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런 관점은 디자인씽킹 방법론을 사용할 때 지침이 되는 원칙을 제공해 준다. 뿐만 아니라 비판적 디자인 관점을 취하면 디자인씽킹을 왜, 어떻게, 언제, 누가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유연하게 결정할 수 있다. 우리는 비판적 디자인 관점이 어떻게 실행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이 관점에 충실하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디자인씽킹을 활용한 소셜섹터의 프로젝트를 살펴보았다.



환원주의적 사고 

소셜섹터는 서로 다른 맥락, 시간대, 정치적 환경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주체가 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복잡한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복잡성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접근 방식은 효과적이지 않다. 디자인씽킹은 적어도 세 가지 측면에서 과도한 단순화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디자인씽킹은 하나의 공식과 같다 | 디자인씽킹은 일반적으로 일련의 단계, 표준화된 템플릿, 프로세스를 제공하는 단일한 툴킷이다. 그리고 이러한 단계, 템플릿, 프로세스는 따라 하거나 복제될 수 있으며 컨설팅 결과를 도출할 수도 있다. 각 접근 방식에서 단계의 수와 이름은 다양하지만, 디자이너와 비디자이너 모두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쉬운 단계별 공식을 제공하겠다는 목표는 동일하다. 이 과정은 일반적으로 연구와 문제 정의에서 시작해서 아이디어 도출 단계를 거쳐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실행 전 반복적인 테스트 과정으로 구성된다. 디자인씽킹은 각 활동을 위해 호기심, 긍정성, 초심자의 마음가짐과 같은 태도를 갖추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 디자인씽킹이 가진 공식과 같은 특징은 그 적용법이 간단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지난 12년 동안 소셜섹터에서 연구자, 디자이너, 교육자로 활동했던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조직은 복잡한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디자인씽킹의 단순성을 반긴다. 예를 들어 어떤 조직은 의료 접근성이나 성차별과 같이 여러 세대에 걸쳐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디자인씽킹 프로젝트에 참여하고는 몇 달 만에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디자인씽킹을 하나의 공식으로 포장하면, 디자인씽킹을 실행할 수 있는 올바른 조직 문화와 역량을 갖추는 일의 중요성이 축소된다. 위험을 회피하고 강한 위계질서를 유지하며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책임을 외부 컨설턴트에게 맡기는 문화를 가진 조직은 디자인씽킹의 필수 요소인 실험, 협업, 아이디어 도출 과정에서 수혜자를 중심에 두는 인간 중심적 접근 방식을 실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디자인씽킹은 맥락을 제거한다 | 디자인씽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맥락에 민감하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그들이 해결하려는 문제가 어떻게 더 큰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고, 공동체의 역사 속에 뿌리내리고 있는지에 대해서 체계적이고 구조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맥락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하면 의도치 않게 공동체와 환경에 피해를 줄 수 있는데, 이는 문제를 시스템 차원의 실패가 아닌 개인의 실패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탈맥락화는 디자인씽킹이 객관적이고 비정치적인 접근 방식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강화한다. 이 근거 없는 믿음 속에서 디자이너는 스스로를 프로젝트 안의 공정한 행위자로 인식한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중립적이지 않다. 그들의 편견과 신념이 세상에 대한 인식과 해석, 그리고 그들의 작업에 영향을 미친다. 사라 파탈라Sarah Fathallah 는 디자인 뮤지엄 매거진Design Museum Magazine의 치안policing을 주제로 한 특별판 기사1에서 디자이너가 사법기관과 협업한 디자인씽킹 프로젝트들을 분석하면서 탈맥락적 접근 방식이 갖는 한계를 설명한다. 이 프로젝트들은 경찰에 대한 지역사회의 신뢰를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이를 위해 지역사회 회의 진행, 일일 경찰 체험ride-along (감수자주: 일반인이 경찰관과 함께 순찰차를 타고 경찰의 일상을 직접 체험하는 프로그램), 경찰 업무를 간접체험하는 가상현실 툴 사용과 같은 방식을 사용했다. 이와 같은 해결방식은 지역사회가 경찰을 불신하는 원인을 단순한 공감 부족이나 경찰 업무 분야에 대한 무지 때문으로 가정했다고 파탈라는 설명한다. 하지만 불신의 이유에 대해 좀 더 포괄적인 분석이 이루어졌다면 치안의 구조적 실패를 다루었을 것이라고 파탈라는 말한다. “일상적 폭력, 차별, 빈곤의 범죄화, 성희롱과 성폭행을 들여다보며 현재 치안이 어떠한 상황인지, 그리고 역사적으로 치안이 어떠했는지”를 보면 지역사회의 뿌리 깊은 불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 수 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영국과 인도에서 진행된 연구 프로젝트인 메이크라이트 이니셔티브The Makeright Initiative는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디자인씽킹의 한계를 보여준다. 이 프로젝트에서 영국과 인도의 교도소 수감자 각 85명과 25명이 디자인씽킹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도난 방지 가방 제작법을 배우는 워크숍에 참여했다.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Central Saint Martins의 디자인 교수이자 프로젝트의 책임 연구자인 로레인 개먼Lorraine Gamman과 애덤 소프Adam Thorpe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는 수감자들에게 공감, 협력, 문제 해결 능력을 개발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2018년 <쉬 지 : 디자인, 경제, 혁신 저널She Ji: The Journal of Design, Economics, and Innovation>에 실린 메이크라이트 이니셔티브에 관한 기사에서 개먼과 소프는 이런 기술을 배우면 '수감자들이 출소 후 자영업을 시도할 의욕을 높일 수 있으며', 그들의 '사회 참여를 높이고 사회 재진입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라고 주장2했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 통합'과 '재범 방지'가 개인적 발전의 문제라는 프레임을 씌우며 애초에 개인을 수감되게 한 근본적인 원인을 간과했다. 그리고 전과 기록이 취업이나 거주, 그 외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는 데 어떤 방해가 되는지 등 사회로 복귀하는 데 있어 구조적 장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범죄를 개인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으로만 묘사하고, 특정 하위 집단을 겨냥해 처벌하기 위한 일련의 정치적 선택이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디자인씽킹은 단기적이다 | 디자인씽킹 프로젝트는 보통 짧은 일정에 맞춰 고안된 컨설팅 작업이며, 실질적인 아이디어의 구현이 아닌 제안서를 결과물로 도출한다. 이런 디자인씽킹 컨설팅 모델을 국제 개발이나 소셜 영역에서 기간을 지정해서 지원하는 프로젝트 자금과 결합하면 효율성과 간결성 측면에서 매우 유용해진다.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Social Innovation에서 디자이너이자 교육자인 마리아나 아마툴로Mariana Amatullo브라이언 보이어Bryan Boyer제니퍼 메이Jennifer May앤드류 셰이Andrew Shea는 여섯 대륙의 다양한 부문에서 45개 디자인 프로젝트를 조사하여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을 성공적으로 구현하는 데 필요한 문화적, 경제적, 조직적 요소를 파악했다. 이들은 여러 요인이 디자인씽킹의 장기적 임팩트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프로젝트 진행 속도에만 집중한다거나, 복잡한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 임팩트에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IDEO.org의 디바 센터Diva Centres 프로젝트는 잠비아의 청소년들이 네일숍에서 생식 건강reproductive health과 피임 접근성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했지만, 이 프로젝트는 공공 보건 자금과 전달 채널의 복잡성으로 인해 확산되지 못했다.


IDEO와 IDEO.org의 리더인 조슬린 와이어트, 팀 브라운, 쇼나 캐리Shauna Carey는 2021년 스탠퍼드 소셜 이노베이션 리뷰 기사에서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씽킹의 진화에 대해 논하며 이 프로젝트를 회고했다.3 그들은 디바 센터 프로젝트가 여러 공공 및 민간 서비스 제공자와 공공 보건 자금 조달의 복잡한 층위를 고려하지 않아 프로젝트 확장을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비싸고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빠른 혁신에 대한 욕구는 해커톤과 오픈 이노베이션 챌린지처럼 한정된 시간 안에 디자인씽킹을 활용하는 이벤트를 확산시켰다. 단기적 이벤트는 아이디어 도출에 집중하지만, 이후에 아이디어를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글의 공동 저자인 앤 로르 파야드의 2023년 조직 과학Organization Science을 비롯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해커톤과 오픈 이노베이션 챌린지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데는 성공적이었지만 프로토타입을 제작하고 구현하는 데는 실패했다.4 운영진과 후원사는 공식적인 챌린지나 해커톤이 종료된 후에도 개인이나 팀에 대한 지원책을 고려해 장기적 임팩트를 가진 아이디어의 프로토타입 제작과 구현을 장려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소셜섹터의 디자이너와 실무자는 업무가 지향하는 가치에 근거해 일정을 수립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고 신뢰를 구축하는 데 시간을 할애해야 할 때도 있고,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지역사회의 우선순위와 마일스톤에 부합하는 방법과 시기를 결정하게 할 수도 있다. 



비판적 관점 받아들이기

사회혁신의 문제들은 복잡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는 방식도 그런 속성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씽킹을 하나의 툴킷으로 여기는 생각을 버리고, 다른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보다 섬세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디자인을 사용하게 하는 비판적 디자인 관점을 길러나가기를 권한다. 


비판적 디자인 관점은 지역사회와 시스템과의 깊이 있는 통합과 대화를 중시하는 디자인 전통과 사상가들의 계보를 따른다. 디자인 분야의 석학 에치오 만치니Ezio Manzini는 그의 저서 ‘모두가 디자인하는 시대의 디자인Design, When Everybody Designs’에서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에게도 디자인을 개방하고 디자이너가 지역사회를 위한 대화의 촉진자이자 자원 연결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예로 만치니는 인구 고령화 문제를 다루는 디자이너는 노인들의 필요와 역량을 인식하고, 이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서비스를 만드는 작업에 노인들을 참여시켜 직접 변화의 주체가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밀라노에 본사를 둔 비영리단체인 메글리오 밀라노Meglio Milano의 테이크 미 홈Take Me Home 프로그램과 같은 세대 간 공동주거 프로그램은 디자인 프로세스에 노인을 참여시킴으로써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은 집을 소유한 노인과 방을 구하는 학생을 연결해 노인과 학생 모두의 주거 비용을 줄이고 사회적 고립을 완화했다. 


인류학자 아르투로 에스코바르Arturo Escobar는 이러한 솔루션 구현에 필요한 자원과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디자이너의 도움을 받아 자체적인 솔루션을 개발하는 지역사회의 역량을 '디자인의 관점 전환re-orientation of design'5이라 부른다. 디자이너 사샤 코스탄자 척Sasha Costanza-Chock은 선한 의도를 넘어, 지역사회와 사회 운동에 기여하고 싶은 디자이너라면 이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6 이 같은 사상가들은 우리에게 디자인 관행을 새롭게 조정하도록 요구한다. 필자들은 이에 더불어 비판적 디자인 관점을 기를 때 관계성relationality, 성찰성reflexivity, 정치적 책임political commitment이라는 세 가지 가치를 고려할 것을 제안한다. 


관계성Relationality인디언들의 지혜에 따르면 인간, 동물, 자연과 같은 모든 생명체는 서로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정의된다. 탈식민적 디자인 방법론을 연구하는 연구자와 디자이너는 이런 관계적 관점이 ‘아는 자(소위 '전문가')와 알지 못하는 자, 주체와 객체,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는’ 서구의 구분 방식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디자인의 맥락에서 보았을 때, 관계적 관점은 디자인의 근본적 활동인 질문, 상상, 창조의 행위가 전문 디자이너에게 국한된 영역이 아님을 인정하고 있다. 관계적 관점을 수용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전문성, 기술, 지식이 포함되거나 배제되는지, 왜곡되거나 잘못 표현되는지, 침묵하거나, 저평가되거나, 신뢰받지 못하는지 묻는 것을 의미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디자인씽킹 과정에서 디자이너는 듣는 사람이자 퍼실리테이터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지역사회 구성원과 상호 소통하는 장에서 서로의 지식과 전문성을 존중하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성찰성Reflexivity디자이너의 작업에는 그 자신의 가정assumptions과 사회적 위치positionalities가 반영된다. 그리고 이는 디자이너가 어떻게 지역사회와 소통할지, 디자인 프로세스에 어떤 투자를 할지에 영향을 미친다. 성찰성이란 자신의 정체성, 관점, 가정을 인식하고 검토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성찰성은 디자이너가 중립성의 신화myth of neutrality(감수자주: 중립성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나 환상, 일반적으로 중립적이라고 믿어지는 것이 실제로는 진실이 아니거나 도덕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를 내포함)에 도전하고,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입장을 인식하고, 작업에 대한 책임감을 갖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런 비판 의식을 높이기 위해서는, 성찰이 몇 차례의 실습이나 광범위한 질문들에 답하는 점검 수준을 넘어, 지속적이고 진화하는 실천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와 관련한 예로, 디자인 연구원 하지라 카지Hajira Qazi는 <권력과 참여: 참여적 디자인 실천에서 불평등한 권력 역학 전환을 위한 안내서Power and Participation: A Guidebook to Shift Unequal Power Dynamics in Participatory Design Practice>에서 디자이너에게 자신의 정체성이 권력 역학에 따라 어떻게 작동하고, 그들의 작업을 통해 어떻게 이해관계 상충이 일어날 수 있는지 숙고해보기를 권했다.  


정치적 책임Political commitment: 디자인은 항상 정치적 의제 가운데 놓인다. 디자인이 가진 정치적인 역할을 인식하지 못하면, 디자이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 정치적 책임이란 '객관성'이나 '중립성'이라는 환상 뒤에 숨지 않고 그 작업에 참여하는 이들의 정치적 입장을 명확히 밝히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정치적 책임은 지역사회와 사회 운동의 목표에 부합하는 일련의 정치적 목표를 채택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 디자인은 오랜 시간 동안 정치에 관여해 왔다. 1960년대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학교The Scandinavian school of design는 업무 환경을 개선하고 직장 내 민주주의를 고취하는데 대중을 참여시키겠다는 정치적 사명을 바탕으로 설립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성향은 지속 가능성과 정의에 초점을 맞춘 디자이너들의 작업으로 이어졌다. 또한 탈식민지화, 반자본주의, 제도 폐지 등과 같이 디자인과 구체적인 해방 정치 프로젝트의 접점에 대해 논하는 디자이너들의 작업으로도 이어졌다.7



비판적으로 사고하기

비판적 디자인 관점은 처방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특정 디자인 프로젝트의 접근 방식과 결과를 제한하기보다는 어떤 접근 방식을 적용할지 탐색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어 언급할 사례들은 참여, 보상, 규모, 임팩트, 자금 조달과 같은 디자인 결정 요소에 대해 좀 더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다만 비판적 디자인 관점은 디자이너가 특정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여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이 사례들을 '최고의 모범 사례'나 규범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참여에 대해서 비판적 사고하기 | 관계적 관점을 적용하려는 디자이너는 지역사회 구성원을 디자인 과정에 참여시키고 싶다는 유혹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전략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지역사회 구성원을 디자인 참여자로 참여시킬 때,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피해를 분석하고 대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역사회로부터 자신의 경험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도록 요구받으면서도 정작 조직이 약속한 변화는 확인할 수 없을 때, 구성원들의 참여는 형식적이고 억지스러워질 수 있으며 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실행을 동반하지 않은 형식적인 참여는 사람들의 지혜를 평가절하하고 참여에 대한 피로와 트라우마를 유발한다.



디자인에 참여하는 지역사회 구성원은 여러 가지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물질적 측면에서는 지출이 발생할 수 있고, 자녀를 돌보지 못하거나 일을 하지 못하는 시간과 같은 기회비용이 발생할 수도 있으며, 이에 대한 배상이나 보상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지식 공유의 측면에서는 지역사회 구성원이 자신의 이야기와 아이디어를 공유하더라도 그 정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할 수 있다. 또한 디자이너나 전문가와 교류는 하지만 그들의 기술을 배우지 못할 수 있다. 잠재적인 피해 측면으로는 지역사회 구성원이 참여 과정에서 정서적 부담감을 느낄 수 있다. 지역사회 구성원이 의미를 느끼며 책임감 있게 참여하도록 하려면 디자이너는 이런 비용을 균형 있게 다뤄야 한다. 참여자의 시간과 전문성에 대한 보상을 제공하거나, 참여자가 다른 방식으로는 접하기 어려운 자원 또는 기회를 제공하거나, 트라우마를 인식하고 대응하는 방식을 활용해 지역사회 구성원을 보호해야 한다.8


디자인 프로젝트가 지역사회 구성원에게 유의미한 주체성과 의사결정 권한을 부여하지 못하는 참여 방식을 채택할 수도 있다. 디자이너 빅터 우도에와Victor Udoewa는 워싱턴 DC 공립학교 교육구와 협력하고 있는 비영리단체로부터 고등학생 국제 여름 봉사 학습service-learning 프로그램의 커리큘럼을 재설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프로젝트는 지역사회 구성원이 디자인 과정의 모든 단계에 참여하는 급진적 참여형 디자인radical participatory design 접근 방식을 사용했다. 프로젝트팀에는 두 명의 디자이너와 프로그램 소속 학생 네 명이 참여했다. 그러나 우도에와는 2022년, 인지 기반 시스템 변화 저널Journal of Awareness-Based Systems Change 기사에서 비영리단체가 학생들의 결정을 거부하면서 이 프로젝트는 실패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해당 프로젝트는 학생들에게 디자인 과정에 참여할 기회는 제공했지만 솔루션의 실행에 대한 의사결정 권한은 주지 않았고, 이로 인해 학생들은 환멸 느꼈다. 


권력의 불균형도 참여의 잠재력을 저해한다. 비판적 디자인 관점은 관계성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이해를 넓혀준다. 단지 지역사회 구성원들을 참여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디자이너가 프로젝트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참여하는 주체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 성찰적인 질문을 던지며 관계성을 이해하도록 한다. 이런 노력은 참여가 지닌 잠재적인 부정적 결과를 인식하고 대응하는 데 필수적이다. 임팩트 투자기관 시카고 비욘드Chicago Beyond는 누가 의미 있는 힘을 가지고 있고, 누가 가지고 있지 않은지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지역사회 조직, 연구자, 자금 제공자에게 여러 요소를 고려해 보기를 권한다. 예를 들어 누가 프로세스를 결정하는지, 누가 사람과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지, 누가 아이디어에 타당성과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지, 누가 저작자로서의 권리와 인정을 받고 있는지, 누가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는지 등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9


문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기 | 디자인씽킹 프로세스에서는 문제를 개념화하는 초기 작업을 프로젝트를 맡은 조직이나 실무를 진행하는 전문 디자이너가 담당한다. 하지만 문제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외부자는 문제의 정확성, 타당성, 상대적 중요성을 판단하기 위해 가설들에 의존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디자인 프로세스 초반에 가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 후 과정은 지역사회에 무의미한 결과를 낼 수밖에 없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가설에 도전하는 한 가지 방법은 문제로 인해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직접 자신의 언어로 문제를 정의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파탈리가 함께 작업했던 국제구조위원회IRC의 마할리랩Mahali Lab이라는 프로그램은 시리아 난민과 요르단 취약계층을 초청해 지역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개발하도록 했다. 이들의 기본 전제는 간단했다. 모든 결정은 프로세스의 각 단계에서 지역사회가 주도한다는 것이다. 2017년에서 2018년까지 18개월에 걸쳐 마할리랩은 지역사회 참가자에게 코워킹 스페이스와 재정을 지원하고 멘토와 전문가를 연결해 주었다. 또한 체계적인 연구, 프로토타입 제작, 실행 계획을 통해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IRC는 지역사회 구성원과 전문가들이 가장 유망하다고 여기는 아이디어를 확장시킬 수 있도록 자금을 주고 지원했다. 무엇보다도 마할리랩은 프로젝트의 시작 단계에서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가장 해결이 시급한 문제에 대해 정의할 수 있도록 3개월간의 탐색 작업을 진행했다. 탐색 작업은 요르단에서 도시 난민이 밀집해 있는 암만Amman, 이르비드Irbid, 마프라크Mafraq 세 지역에서 이루어졌는데, 이들 지역사회의 리더이자 네트워크 접근성을 가진 지역 담당자를 찾아내는 지역조사가 탐색의 시작이었다. 이후에는 지역사회 구성원과의 개방형, 반구조화 인터뷰와 집단 심층 토론이 이어졌다. 초기 인터뷰는 지역 담당자가 지역사회 구성원의 집에서 일대일로 진행했고, 이후 마할리랩팀이 좀 더 큰 규모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은 지역사회 구성원이 파악한 문제를 팀이 분석하고 지역사회 구성원들에게 발표하는 과정을 통해 우선순위를 결정하였다. 이 과정은 요르단에 거주하는 시리아인의 왓츠앱WhatsApp이나 페이스북Facebook 그룹을 통해 대면과 온라인으로 이루어졌다. 지역사회가 가장 시급하다고 느낀 문제는 소득 창출, 지원 서비스, 아동 학습이었다. 이렇게 발견된 시급한 문제들이 마할리랩 프로젝트의 업무가 되었다.


혁신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기 | 디자인씽킹 프로젝트에서 아이디어를 선정해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파일럿 테스트를 진행할 때는 보통 ‘새로움’이나 ‘독창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그러나 ‘혁신’을 ‘참신함’으로 해석하면, 새롭지는 않지만 효과가 검증된 아이디어를 희생시키고 새로워 보이는 아이디어에 힘을 실어 줄 위험이 있다.


비판적 디자인 관점은 질문을 던진다. ‘새로움’을 중시함으로써 지역사회의 필요와 욕구보다, 수행기관의 우선순위와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우위에 두게 되는 건 아닌지 말이다. 임팩트가 반드시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 개발에서 기인하는 건 아니다. 임팩트는 오히려 자원을 적절히 활용해 지역사회의 이니셔티브를 지원하는 것을 통해 창출될 수 있다. 이는 런던의 지방 정부 조직인 사우스워크 카운슬Southwark Council이 2009년 컨설팅 회사 엔진 서비스 디자인Engine Service Design과 협력해 임팩트를 실현했던 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엔진은 의회 및 시민들과 협력해 건강과 가정 환경 분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했다. 주민들이 새로운 서비스나 기술을 요청하리라 예상한 사우스워크 팀의 생각과 달리, 주민들의 아이디어 중 일부는 이미 존재하는 지역 전문가와 자원을 활용하는 방법이었다. 예를 들어 저녁 식사나 스포츠 활동 같은 커뮤니티 구축 활동을 위해 사우스워크의 많은 공간과 건물을 활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도출되었다. 또 다른 아이디어는 로컬 푸드와 건강 전문가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 전문가들이 가족을 대상으로 건강한 식사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칠 것을 제안했다. 두 아이디어의 공통점은 지역사회 구성원들은 새로움이 아닌 기존 자원에 대한 접근을 통한 지역사회의 목표 달성을 원한 것이다.10


비판적으로 지역사회 책임community accountability에 대해 사고하기 | 진지하게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는 디자이너들은 업계 이해관계자들이 달가워하지 않는 정치적 목표를 추구해야 될 때도 있다. 2021년 아동 복지 비영리단체 씽크 오브 어스Think of Us는 그룹홈이나 공동 시설 같은 기관에서 거주하는 위탁 청소년들의 경험을 분석하기 위한 디자인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연구를 통해 시설 수용의 심각한 문제점과 청소년을 학대하고 트라우마를 유발하고 있는 관행들이 드러났다. 청소년들은 신체적 구속이나 학대를 당하기도 하고, 향정신성 약물을 강제 복용 당하기도 했으며, 친구나 가족과의 접촉을 금지 당했다. 씽크 오브 어스 팀은 이런 시설에서의 청소년 경험 개선을 위한 좋은 침대, 더 많은 외출 기회 제공과 같은 솔루션을 제안하지 않았다. 연구 결과 요약 보고서에서 연구팀은 '이 같은 개선 사항 중 일부가 청소년들에게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줄 수도 있지만, 이중 어떤 것도 시설 퇴소 후 청소년들의 실질적 환경과 삶을 유의미하게 개선하지 못할 것'11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연구팀은 시설 입소 폐지를 촉구했다. 이 결과는 위탁 양육 시설의 축소 또는 종료를 요구하는 지역사회의 주체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인데, 그 주체들에는 위탁 보호 시스템의 영향을 받는 엄마들과 가정들, 위탁 청소년 단체, 장애 인권 커뮤니티 지지자들이 포함된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의 반발이 있었지만, 이 프로젝트는 여러 주에서 시설 입소 감축과 폐지에 관한 약속을 받아 냈으며, 현재 그 절차를 설계하고 테스트하고 구현하는 과정에 있다.


규모와 임팩트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기 | 비영리단체와 사회적기업가는 자금 확보를 위해서 잠재적인 자금 제공자에게 임팩트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확장적 태도는 수혜자 수를 지속적으로 증가시키려는 자본주의 논리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는 기술 플랫폼이 사용자 수 증가를 목표로 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비판적 디자인 관점은 확장의 의미를 수혜자 수 증가와 동일시해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조직이 기존의 대상자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공고히 하거나 개선하는 일이 더 중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 비영리단체나 사회적기업가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규모 확장의 필요를 인식하게 되면서 수혜자의 삶에 변화를 일으켜 '임팩트를 실현하는 것do impact'보다 숫자를 통해 '임팩트를 보여주어야 한다show impact'는 압박감을 더 크게 느끼게 된다는 걸 보게 된다. 


하지만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임팩트를 보여준 조직도 있다. 바로 인도네시아 시골 지역의 여성 주도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P2Ppeer-to-peer 대출 플랫폼 아마르사Amartha이다. 아마르사는 2010년 서부 자바Java 지역의 도시 보고르Bogor의 작은 마을에서 전통적인 소액금융 회사로 시작했다. 사업을 시작한 후 초반 5년 동안 아마르사는 기존 고객과의 관계를 깊게 다지는 데 집중했는데, 이는 한정된 자원으로 높은 퀄리티의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기 위해서였다. 이 기간에 아마르사의 설립자인 안디 타우판 가루다 푸트라Andi Taufan Garuda Putra는 여성 대출자와 그 가족들에게 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신생 조직으로서 자금이 부족했고 대출 수요도 충족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 고객들의 대출 유지율은 90%에 달했고, 대부분의 고객이 더 큰 대출을 요청하고 있었다. 푸트라는 인도네시아 다른 지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기보다 아마르사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던 기존 여성들을 위해 교육을 포함한 종합 서비스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그 후 그는 더 많은 개인 투자자와 은행을 유치할 수 있는 시장 모델을 모색했고, 결국 2016년에 아마르사를 P2P 대출 플랫폼으로 전환했다. 서부 자바의 마을 몇 곳에서 서비스를 깊이있게 실행하는 데 성공하고 나서, 아마르사는 마침내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까지 서비스를 확장했다. 아마르사는 수혜자 수를 늘려 임팩트를 입증하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한 지역에서 지역사회를 위해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깊이 있는 임팩트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자금과 기한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기 | 디자인씽킹을 통한 시범 사업이나 개선 사업과 같은 자금 지원을 받은 프로젝트들을 평가할 때, 투자자들은 일반적으로 성공을 선형적인 것으로 정의하고 기준을 정한다. 반면 국제 개발 및 소셜섹터에서의 디자인 프로젝트는 성공을 수혜자의 발전과 행동 변화로 생각하거나 장기적인 사회 변화의 관점에서 평가한다. 노섬브리아 대학교Northumbria University의 디자인 및 사회혁신 교수인 조이스 이Joyce Yee는 사회혁신을 위해 디자인을 활용하는 실무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실무자들이 투자자가 사전에 정의한 평가 기준(비용 기반 모델과 효율성 및 수치에 기반)과 지역사회와 함께 진행하는 실무 간의 괴리를 마주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12 그녀는 평가를 성공을 측정하는 엄격한 잣대로 사용하기보다 프로젝트 결과를 지속적으로 재정의하고 지역사회와 함께 만들어 나가는 배움의 기회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사전에 정해진 결과에 얽매이지 않는, 보다 유연한 자금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하면 평가 보고에 대한 부담을 덜어지고, 변화하는 상황에 보다 민첩하고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소셜섹터와 국제개발 분야의 자금 조달 구조는 지역사회를 지속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판적 디자인 관점은 지역사회와 협력하려면 신뢰와 관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보자. 달버그 디자인Dalberg Design과 인도의 프로젝트 컨선 인터내셔널Project Concern International은 가족계획 및 영양 문제에 대한 남성의 참여를 높이기 위한 두 가지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진행했는데, 이 프로젝트는 2020년 1월에 시작되어 2년 이상 지속되었다. 인도 동부 비하르Bihar 주의 2,000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한 파일럿 프로그램은 아동의 식단 다양성, 현대식 피임약 사용, 일반적으로 성별에 따라 분업화된 노동에 대한 남성의 참여 증가 측면에서 잠재적 임팩트를 보여주었다. 달버그 디자인의 공동 창립자인 로버트 패브리컨트Robert Fabricant는 '지역사회 기반 조직과의 장기적 파트너십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말하면서도 '소규모 팀과 제한된 자원으로 이런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속적인 지역사회 참여와 신뢰에는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비영리단체가 이에 필요한 충분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건 아니다.



당신의 관점을 실행해보라

이제 디자인씽킹에 대한 비판은 새롭지 않다. 시스템 디자인씽킹systems design thinking과 같은 여러 대안이 제시되어 왔고, 이런 대안은 스탠퍼드 소셜 이노베이션 리뷰에서도 이미 다룬 적이 있다.13 여러 대안이 우리와 유사한 비판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그런 주장들은 대체로 새롭고 보강된 방법론적 툴킷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필자들은 새로운 툴킷을 제안하는 대신, 디자인씽킹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비판적 디자인 관점에 기반을 두고 작업의 의도, 행동, 효과에 대해 성찰적이고 신중한 태도를 취하기를 권고한다. 이를 위해 다음의 질문과 권장 사항을 고려해 보기 바란다.


프로젝트에 누가, 어떤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는가?

• 당신의 프로젝트에서 참여가 어떤 모습인지, 지역사회가 그 과정에 어떻게 참여하고 관계 맺는지를 정의하라.  

• 디자이너가 중립적 매개자라는 통념에 도전하라. 불평등한 권력 역학을 인정하고, 다루며 자신의 사회적 위치, 가정, 편견이 프로젝트와 지역사회와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성찰하라.

• 잠재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역사회가 작업에 참여하는 데 드는 비용과 트라우마 대응에 드는 비용을 고려하라. 

•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지역사회의 물질적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라. 프로젝트 예산에 적절한 보상을 포함해 모든 참여자가 공정하게 보상받을 수 있게 하라.


누가 프로젝트의 틀과 범위를 설정해야 하는가?

• 모든 이해관계자, 특히 지역사회 구성원이 프로젝트의 틀과 범위를 결정하는 데 참여하게 하고, 이들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시간을 계획하라. 


어떤 결과가 우선되어야 하는가?

• 혁신을 위한 혁신을 추구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라. 참신하지 않더라도 지역사회에 효과적일 수 있는 결과에 열린 자세로 임하라.


프로젝트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 함께 일하는 단체와 이해관계자를 조사해 그들이 어떤 동기를 가지고 있는지, 프로젝트를 통해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파악하라. 프로젝트가 가장 소외된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시스템을 정당화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지 판단하라.

• 당신의 프로젝트가 지역사회의 목표와 부합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에 대비하라. 지역사회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결과가 고려되거나 실행되지 않도록 책임을 부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


프로젝트의 임팩트를 어떻게 측정해야 하는가?

• 프로젝트의 성공이 어떤 모습인지 생각해 보고, ‘깊이 있는 질적 임팩트’와 ‘시장에서의 양적 규모’ 사이의 균형을 맞춰보라. 임팩트와 규모에 대한 정의를 재검토하고, 그 정의에 따라 자원을 어디에 투자할지 결정하라.


지속적인 임팩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금 조달 메커니즘과 타임라인은 무엇인가?

• 자금 조달과 일정에 대한 구조를 짤 때, 종료 시점을 유연하게 설정하여 변화하는 현실에 대비하고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라. 

• 지역사회와의 관계 구축에 투자하라. 지역 기반 조직을 찾아 연대하고, 프로젝트의 일정 안에 관계와 신뢰 구축을 위한 시간을 포함하라. 프로젝트의 수명을 뛰어넘는 장기적인 파트너십 구축에 에너지와 노력을 우선으로 투자하라. 


비판적 디자인 관점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탈식민주의적이며 억압에 반대하는 해방적 디자인 실천과 운동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이를 작업의 중심에 두기를 권한다. 디자인 정의design justice탈식민주의 디자인decolonizing design다원적 디자인pluriversal design 같은 것들이 그런 운동의 예이다. 우리는 여러분이 도구와 방법이 지닌 규범적 속성을 넘어서길 기대한다. 당신의 업무와 당신이 지역사회에 대해 갖고 있는 책임감의 근간이 되어 줄 수 있는 가치들에 당신이 주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

1 .     사라 파탈라(Sarah Fathallah) & A.D. 션 루이스(A.D. Sean Lewis), <당신(디자이너)의 머릿속 경찰을 폐지하라: 디자인과 경찰 행동의 연결고리 풀기(Abolish the Cop Inside Your (Designer’s) Head: Unraveling the Links Between Design and Policing)>, 디자인 뮤지엄 매거진, 18권, 2021년.

2.     로레인 개먼(Lorraine Gamman) & 애덤 소프(Adam Thorpe), <메이크라이트—연결의 가방: 공감적이고 회복력 있는 지역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교도소 안에서 디자인씽킹과 메이킹 가르치기(Makeright—Bags of Connection: Teaching Design Thinking and Making in Prison to Help Build Empathic and Resilient Communities)>, 쉬 지 : 디자인, 경제학, 혁신 저널, 4권, 1호, 2018년.

3.     조슬린 와이어트(Jocelyn Wyatt) 외.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의 다음 단계(The Next Chapter in Design for Social Innovation)>, 스탠퍼드 소셜 이노베이션 리뷰, 19권, 1호, 2021년

4.     안-로어 파이야르(Anne-Laure Fayard), <사회혁신을 위한 시간 만들기 : 오픈 IDEO가 시계 시간과 이벤트 시간을 결합해 아이디어 발산과 소셜 임팩트를 키우는 방법

5.     아르투로 에스코바르Arturo Escobar, <생명망의 치유를 위해 미래적 방식으로 디자인하기(Designing as a Futural Praxis for the Healing of the Web of Life)>, 위기의 디자인 : 새로운 세상, 철학, 실천, 토니 프라이 & 아담 노첵 편집, 런던 라우틀리지 출판사, 2020년

6.     사샤 코스탄자 척(Sasha Costanza-Chock), <디자인 정의 :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커뮤니티 기반 실천(Design Justice: Community-Led Practices to Build the Worlds We Need)>,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 MIT 출판부, 2020년

7.     여러 디자인 이론가와 실천가의 작업이 언급될 수 있지만, 간결하게 3명만 소개한다.

- 지속가능성 :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 <진짜 세상을 위한 디자인 : 인간 생태학과 사회 변화(Design for the Real World: Human Ecology and Social Change)>, 뉴욕 판테온 출판사, 1971년

- 탈식민화 : 엘리자베스 턴스톨(Elizabeth Tunstall), <디자인 탈식민화하기 : 문화적 정의에 대한 가이드(Decolonizing Design: A Cultural Justice Guidebook)>,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 MIT 출판부, 2023년

- 반자본주의 : 매튜 위진스키(Matthew Wizinsky), <자본주의 이후의 디자인 : 오늘의 디자인을 내일의 공정성으로 전환하기(Design After Capitalism: Transforming Design Today for an Equitable Tomorrow)>,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 MIT 출판부, 2022년

8.     사라 파탈라(Sarah Fathallah), <디자인 연구자가 참가자에게 보상해야 하는 이유(Why Design Researchers Should Compensate Participants)>, 노츠 오브 더 그리드, 미디엄, 2020년 4월 7일, 사라 파탈라, <디자이너들이 행사하는 권력에 맞서기(Confronting the Power Designers Wield)>, UX 콜렉티브, 2021년 9월 10일, 사라 파탈라, <참여 연구에서 트라우마 존중(Trauma Responsiveness in Participatory Research)>, 씽크 오브 어스, 2022년 9월 9일, 사라 파탈라, <트라우마 생존자 연구 참가자를 돌보는 윤리(An Ethic of Care for Research Participants as Trauma Survivors)>, 씽크 오브 어스, 2023년 4월 3일

9.    시카고 비욘드(Chicago Beyond), <나는 왜 항상 연구되어야 하죠?(Why Am I Always Being Researched?)>, 형평성 시리즈, 1권, 2018년

10.     앤 로르 파야드(See Anne-Laure Fayard) 외, <엔진에서의 서비스 디자인(B) : 건강과 가정 환경을 위한 공동 디자인(Designing Services at Engine (B): Co-designing for Health and the Domestic Environment)>, 케이스 레퍼런스 411-021-1, 케이스 센터(the Case Centre), 2011년

11.     사라 파탈라(Sarah Fathallah) & 사라 설리반(Sarah Sullivan), <집 밖에서 : 위탁 보호를 위한 청소년 기관 배치 경험(Away From Home: Youth Experiences of Institutional Placements in Foster Care)>, 씽크 오브 어스, 2021년 7월 21일.

12.     조이스 이(Joyce Yee) 외, <임팩트 측정(Measuring Impact)>,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 전 세계 사례 연구, 마리아나 아마툴로 외 편집, 뉴욕: 라우틀리지, 2022년

13.     토마스 보스(Thomas Both), <인간 중심, 시스템 지향 디자인(Human-Centered, Systems-Minded Design)>, 스탠퍼드 소셜 이노베이션 리뷰, 2018년 3월 9일.

14.     이 글에서 언급된 참고 사례에 더해, 추가 탐색을 위해 아래 작품을 소개한다.

- 아르투로 에스코바르(Arturo Escobar), <다원우주를 위한 디자인: 급진적 상호의존성, 자율성, 그리고 세상 만들기(Designs for the Pluriverse: Radical Interdependence, Autonomy, and the Making of Worlds)>, 채플 힐, 노스캐롤라이나: 듀크 대학교 출판부, 2018년

- 바바티아 프리드먼(Batya Friedman) & 데이비드 G. 헨드리(David G. Hendry), <가치 민감형 디자인: 도덕적 상상력으로 기술 형성하기(Value Sensitive Design: Shaping Technology with Moral Imagination)>,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 MIT 출판부, 2019년

- 캣 홈즈(Kat Holmes), <불일치: 어떻게 포용성이 디자인을 형성하는가(Mismatch: How Inclusion Shapes Design)>,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 MIT 출판부, 2020년

- 클라우디아 마레이스(Claudia Mareis) 외 편집, <디자인 투쟁: 교차하는 역사, 교육학, 그리고 관점(Design Struggles: Intersecting Histories, Pedagogies, and Perspectives)>, 암스테르담, 발리즈 출판사, 2021년

- 론 와카리(Ron Wakkary), <인간 중심 세계 너머를 위해 우리가 디자인할 수 있는 것들(Things We Could Design for More Than Human-Centered Worlds)>,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 MIT 출판부, 2021년

- 이미 언급되었던 파파넥의 <인간 세상을 위한 디자인>과 프라이(Fry) & 노첵(Nocek)의 <위기의 디자인(Design in 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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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E-LAURE FAYARD  

앤 로르 파야드는 노바 경영대학(NOVA School of Business)의 사회혁신 분야 ERA(European Research Area) 의장이자 뉴욕 대학교(New York University, 이하 NYU)의 객원 연구교수이다. 또한 노바 경영대학의 사회혁신 및 지속 가능성 디자인 연구소의 코디네이터이자 NYU 메이커스페이스 디자인 연구소와 NYU 디자인 포 아메리카(Design for America)의 창립 교수진이다.


SARAH FATHALLAH

사라 파탈라는 연구와 디자인 분야의 윤리와 트라우마 대응(trauma responsiveness)에 대해 글을 쓰고 강의하는 소셜 디자이너, 연구자, 교육자이다. 씽크 오브 어스(Think of Us)의 선임 연구원이자 캘리포니아 예술대학(California College of the Arts), UC 버클리(UC Berkeley) 평생교육원,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의 교수진으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