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 일반]협력은 어떻게 실패하고, 어떻게 성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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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 일반 · 거버넌스
협력은 어떻게 실패하고,
어떻게 성공하는가

<임팩트 네트워크>가 제시하는 길


2025-3

REVIEW BY 이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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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팩트 네트워크, David Ehrlichman 저(이명희 역), 308쪽, 박영스토리, 2024



사람들은 혼자서 하기 힘든 일을 해내야겠다고 생각할 때, 협력을 쉽게 결심한다. 나 혼자는 어렵겠지만, 함께라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 심지어 내가 고삐를 늦추어도 누군가가 대신 목표를 이뤄줄 것이라는 근거 없는 희망도 갖는다.


특히 함께하려는 일이 사회적 미션을 띠고 있을 때, 타인과 타 조직에 거는 기대는 더 커진다. "이게 나 좋자고 하는 일인가? 세상이 나아지려는 것은 우리 모두의 바람 아닌가? 그렇다면 당연히 나만큼, 어쩌면 우리 조직보다 더 열심히 일하겠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 중 일부는 그다음의 쓰라린 상황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차라리 혼자 했다면 작더라도 성과를 냈을 텐데" 혹은 "성과가 나지 않았더라도 속이라도 편했을 텐데"하는 후회 말이다. 협력의 과정과 결과가 늘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며, 상처로 남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런데도 우리가 '협력'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오늘날의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초연결된 세상을 한 조직, 한 사람만으로는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임팩트 네트워크>는 바로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저자 데이비드 에를리히먼David Ehrlichman은 10년간 50개가 넘는 임팩트 네트워크와 일하며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네트워크들이 다루는 주제와 전략은 서로 다르지만, 네트워크를 생성하는 원칙과 프로세스에는 상당한 일관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간의 경험을 통해 발견한 임팩트 네트워크 육성 방식을 이 책에 A부터 Z까지 차근히 정리했다.


서문부터 1장까지는 임팩트 네트워크를 기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임팩트 네트워크의 형태와 네트워크를 작동시키는 '관계'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임팩트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가꾸는 데 필요한 철학과 가치의 영역인 네트워크 마인드셋과 네트워크 리더십을 다룬다. 여기에서 네트워크를 '짓는다building'고 하지 않고 '가꾼다gardening'고 이야기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네트워크가 벽돌을 쌓는 일처럼 인풋 대비 아웃풋이 명확한 일이 아니라, 농부가 뿌린 씨앗이 자라는 일과 같다고 설명한다. 씨앗에서 새싹이 나올 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농부가 정성을 들인 만큼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네트워크는 가꿈이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저자의 네트워크 철학을 바탕으로 2장에서는 임팩트 네트워크를 실제로 가꾸는 방법에 대해 소개한다. 임팩트 네트워크의 존재 이유인 목적과 네트워크의 운영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원칙을 분명히 하는 법, 임팩트 네트워크를 시작하고 조직하기 위해 사람을 모으고 네트워크 안에 개인과 조직이 머물도록 하는 법, 임팩트 네트워크가 실제로 작동하도록 다양한 활동을 조율해 구성원들이 임팩트 네트워크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하도록 촉진하는 법, 단발적 변화가 아닌 시스템 차원의 변화를 상상하고 임팩트 네트워크가 시스템 변화를 위해 함께 움직이도록 하는 법, 임팩트 네트워크가 유지되기 위한 여건을 조성하는 법이 제시되어 있다.


임팩트 네트워크 개념이, 존 카니아와 마크 크레이머가 SSIR을 통해 제시한 컬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와 어떻게 다른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우리에게 또 다른 용어가 필요한가? 그러나 이 책이 제시하는 요소들은 협력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컬렉티브 임팩트의 원칙이 제시하는 바가 공동의 목표를 위해 모인 주체들이 '지켜야 할 요소'에 가깝다면, 임팩트 네트워크는 그 결심이 서기 전부터 협력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과정과 방법'을 제시한다. 컬렉티브 임팩트와 궤를 같이하면서도 임팩트 네트워크가 강조하는 지점은 다음과 같다. 이는 동시에 임팩트 네트워크를 실제 구성하는 데 있어 세심히 추진되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첫째, 임팩트 네트워크는 '네트워크에 누구를 초대할 것인가'에서부터 시작한다.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지닌like-minded 사람들 혹은 협력의 필요를 느끼는 개인과 조직만으로는 오늘날의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사회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고자 한다면, 그 시작점에서부터 영역을 넘나드는 다양한 조직과 사람들, 협력의 필요가 당장은 크지 않더라도 그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해관계자를 초대하고 조직하는weaving 것이 필요하다. 궁극적인 목적이 같더라도 생각하는 문제해결의 수준이 다르거나 해결 전략이 다른 사람과 조직을 모아야 한다. 특히 집단이 형성되는 초기 구조는 이후에도 지속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네트워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다양한 참여자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임팩트 네트워크는 구성원이 협력을 결심하기 전부터 네트워크가 구성된 이후까지, 지속적인 '신뢰'를 어떻게 구축하고 유지할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신뢰가 없다면 아무리 거대한 네트워크라도 정보와 자원, 사람의 연결이 흐르지 않는다. 저자는 허울 좋은 네트워크보다 실제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네트워크가 낫다고 말한다. 작더라도 효용감과 신뢰를 축적하는 임팩트 네트워크는 하나의 프랙털fractal이 되어, 전에 없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신뢰를 쌓는 데 들이는 시간을 가장 큰 투자로 여긴다. 그러한 맥락에서 행동을 통해 변화를 만드는 '액션 네트워크'를 바로 구축하고 싶은 야망이 있더라도, 강력한 '학습 네트워크'를 가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것을 조언한다. 활기찬 학습 네트워크가 사람들이 실제 참여하지 않는 미적지근한 액션 네트워크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다. 가벼운 신뢰부터 쌓아야 고도의 신뢰로 나아갈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네트워크를 바삐 추진하면서 우리가 잊지 않았는지 반추해볼 일이다.


셋째, 임팩트 네트워크는 상호보완적 활동을 통해 구성원 간의 역동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백본 조직backbone organization에 한정하지 않는다. 임팩트 네트워크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유기적인 과정을 통해 허브hub가 될 수 있으며, 공동의 목표 아래 자기주도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임팩트 네트워크의 허브는 하나가 아닌 여럿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허브들이 긴밀히 관계 맺으며 네트워크의 중심을 형성하고, 정보를 네트워크 말단까지 순환시키고, 자원을 흐르게 하며, 공동의 액션을 도모한다. 이러한 구조는 단일한 조직에 의존할 때 발생하는 정보, 자원, 인적 연결의 병목 현상을 완화하고, 백본 리더십 부재로 초래되는 위기를 예방한다. 저자가 임팩트 네트워크의 허브와 리더십을 컬렉티브 임팩트에서의 백본 조직과 구분해 그 차이를 설명했더라면, 네트워크 리더십에 대한 이해가 좀 더 쉬웠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 책이 협력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흡인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네트워크 구성원들이 결심과 약속 이전에 진심으로 자발적인 참여를 하도록 만드는 기제를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협력이라는 '아이디어'를 사랑한다. 그러나 협력은 그런 (이상적인) 아이디어로 작동하지 않는다." 협력은 정확함보다 모호함 속에서 작동하며, 통제권과 확실성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임팩트 네트워크에서 리더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임팩트 네트워크에서 자신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행동하는 사람과 조직은 모두 리더십의 자격이 있다고 말하며, 네트워크 구성원의 자기주도성과 리더십을 강조한다. 이는 다시 저자가 강조하는 네트워크 마인드셋의 개념과 이어져 진다. 임팩트 네트워크의 중심은 리더십이 아닌 구성원 공동의 목적이기에, 구성원 각자가 공동의 목적에 따라 자기주도적으로 역할을 하면서 리더십이 필요한 경우 리더로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임팩트 네트워크로 기능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이 가능해 질 때 임팩트 네트워크는 오늘날처럼 정답 없이 급변하는 세상에서 필요한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먼 데까지 가닿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임팩트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할 일 목록'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가장 유익하게 받아들일 부분은 다음이다. 네트워크 구성원이 공동의 목적을 중심에 두고 자기주도적으로 일하며, 자신에게 리더십이 요구되는 순간이 찾아올 때, 스스로 임팩트 네트워크의 리더십이 될 수 있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 <임팩트 네트워크>는 바로 그런 이들에게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 줄 것이다.





이명희

마이오렌지의 임팩트 부문 대표Chief Impact Officer로 동료들과 함께 AI/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소셜섹터 조직 임팩트 측정 및 성과관리 통합 솔루션 '오렌지임팩트'를 만들고 있다. 기업, 소셜벤처, 비영리조직 및 정부기관과 협력해 소셜임팩트 프레임워크를 설계하고, 지표 측정 가능성을 살피는 일을 주로 한다. 사업의 결과적 성과뿐 아니라 사회변화를 만드는 과정의 성과에도 주목하고 있으며, 다양한 단위의 임팩트 네트워크 조직에 관심이 있다. 책 <임팩트 네트워크>를 한국어로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