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란트로피]문화권력 생태계 조성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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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권력
생태계 조성하기

재단, 소멸을 선택하다


AISHA SHILLINGFORD



Summary. 미래를 위한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상상력에 기반한 운동이 필요하다. 서로를 돌보고 재생시키는 문화로 전환시킬 새로운 운동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인텔리전트 미스치프Intelligent Mischief의 목적은 발명과 상상을 촉진하고, 활동의 논리를 정립하며, 변화를 촉진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문화와 시민사회를 실험하는 것이다. 인텔리전트 미스치프의 설립자 테리 마셜Terry Marshall은 에이드리엔 마리 브라운Adrienne Maree Brown의 2017년 저서 <이머전트 스트래터지Emergent Strategy>에서 활동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가 활동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이 상상력 전쟁을 치르고 있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이 전쟁은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싸움이다. 우리의 활동은 사랑, 돌봄, 재생, 상호의존에 기반한 집단적인 정치적 상상력을 발전시키는 것이며, 이를 위해 노동 계층과 흑인 커뮤니티의 세력을 구축하는 상상력 중심의 행동주의이다.


인간의 삶은 본래 추하고, 거칠며, 짧고, 자원은 한정된 것이기 때문에, 살아남으려면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고독한 개인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이러한 관념이 우리 정치경제의 근간에 널리 퍼져 있으며, 소수의 생존을 위해 모두의 삶을 상품화하고, 악용하며, 착취하는 자본주의의 패권을 강화하고 있다.


이 패러다임 안에서 문화는 자본주의적 세계관과 그에 결부된 가치, 규범, 행동, 구조를 표준화하며,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퍼트린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경쟁은 사회적 상상 속에 가장 널리 퍼져있는 가치일 것이다. 우리는 시장 점유율, 일자리, 주택, 사랑, 관심, 건강을 위해 경쟁하고, 소셜섹터에서는 기금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한다. 경쟁과 희소성이라는 서사가 우리 문화의 안팎을 가득 채우고 있다. 경쟁과 희소성의 구조는 대결을 강요하면서, 모두가 살아남을 수는 없지만 나 자신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믿음을 강화한다. 상상력 전쟁의 전제는 개인주의, 소비주의와 함께 이데올로기로서의 경쟁을 내포하기도 한다.


하지만 또 다른 하나의 혹은 더 많은 상상이 존재한다. 그것은 삶이 창발적이고, 아름다우며, 혼란스럽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믿음 그리고 자원은 공유될 때 풍요로워지며, 우리는 서로, 대지와, 다른 존재들과 상호의존적인 관계 속에서 다함께 생존하고 번성할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하는 상상이다.


이처럼 풍요, 돌봄, 공동체의 가치에 기반한 세계관은 선주민 공동체에 널리 퍼져 있다. 현대 미국 문화에서도 나눔과 돌봄에 대해 다루는데, 특히 어린이들에게 협력과 협동에 대해 가르치며 노래, 책, 게임 등을 통해 이러한 세계관을 강화한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문화가 이러한 상상의 조합으로 형성되었다. 때로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이러한 상상은 여전히 우리의 정치, 경제, 문화적 갈등의 바탕을 이루며, 미래에 대한 우리의 가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친사회적인 생각들이 우리의 상상을 얼마나 강하게 사로잡느냐에 따라 그것이 우리의 행동, 가치,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달라진다. 상상 전쟁은 소셜미디어, 엔터테인먼트, 놀이와 여가, 교육체계, 종교 영역을 비롯한 여러 문화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인텔리전트 미스치프는 2016년 ‘꿈의 공간을 위한 투쟁Contending for Dreamspace’이라는 글을 통해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좌파 진영이 문화 전략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우리는 오픈소사이어티 재단에 모인 예술가와 사회정의 운동가들을 대상으로 같은 제목의 대담을 가졌다. 이 대담에서 우리는 우리 목적 선언문의 핵심 요소인 변화의 환경에 대해 다루었다. 변화의  환경이란 사랑, 돌봄, 재생, 상호의존이라는 가치를 기반으로 한 상상력을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중심으로 문화 권력을 키우는 전략이다.


우리는 문화를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관통하며, 틈을 메우는 공기 또는 환경으로 본다. 문화는 우리가 사회 또는 사회문화로 부르는 것을 이루는 전부이다. 우리의 신념, 사상, 가치, 가설, 신화, 행동, 구조, 체계, 제도, 정체성, 일터, 취미, 경제 등이 모두 첨가된 돌멩이 수프stone soup(번역자주: 마을에서 배고픈 이방인에게 음식을 나눠주기 위해 큰 냄비에 돌을 넣고 끓이자, 이웃들이 각자 식재료를 가져다 넣어 맛있는 수프를 만들었다는 유럽의 설화에 등장함)이다. 문화는 우리의 정치, 경제 체제를 뒷받침한다. 또한 우리의 정치, 경제적 결정을 표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화는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드러내준다.


문화가 우리가 믿고, 소중히 여기며, 행하고, 창조하는 그 모든것이라면, 문화 권력은 우리가 믿고, 소중히 여기며, 행하고, 창조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상상에 기반해 사회를 이룰지 결정하는 힘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주요 자선단체와 기관들이 좌파의 서사적 역량을 지원하기 위해 투자하고 있다. 이것이 성공한다면, 하나의 사회로서 우리가 누구이며, 누구를 포함하고, 대표하는지에 대한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가설과 견해를 촉진하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이 향상될 것이다. 팝컬처 컬래버레이티브Pop Culture Collaborative와 같은 기금 지원 협력체와 내러티브 이니셔티브Narrative Initiative 같은 단체에서는 진보적 견해를 주류화하기 위해 다원적인 서사를 발전시키고, 서사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좌파 진영을 혁신하고 있다.


그렇다고 서사의 힘만으로 문화 권력이 구축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서사의 힘에 투자하면서 이야기와 견해를 형성하면 행동과 관행에 변화가 일어나고 결국 기관과 체제도 바뀔 것이라는 암묵적인 기대를 품는다. 하지만 서사를 형성하는 역량을 구축하는 일은 문화 권력을 구축하는 작업의 한 요소에 불과하다. 사회를 전환하려면 서사를 전환해야 할 뿐 아니라, 그러한 서사와 행동의 전환을 오래 이어나갈 수 있는 광범위하고 강력한 관계망, 제도, 생태계를 조성해, 행동 규범과 체제를 재형성해야 한다. 예를 들어 토지 인정과 같이 선주민 주권을 상기시키는 언론의 서사는 소고리아 테 토지신탁Sogorea Te Land Trust과 같은 토지 귀환 운동 사례를 통해 훨씬 더 강력해진다.


주류 문화 제도는 통제, 착취, 폭력의 체제가 정상적이며, 용인 가능하다고 보는 지배적이고 패권적인 문화를 강화하는 정치경제적 구조와 나란히 존재한다. 이 패러다임에서 서사의 힘은 언론, 헐리우드, 종교, 교육과 같은 제도를 통해 매개된다. 이러한 지배적 서사와 제도에 도전하는 하위문화적 서사와 기반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힘이 약하다.


진보적이고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하는 좌파가 가장 시급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정도로 문화를 변화시킬 권력을 형성한 상태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문화 권력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바라는 미래를 제시하는 형태의 문화 권력을 만들어야 한다. 이 문화 권력 생태계는 상호의존적이고 재생 가능하며 생명을 긍정하고 길러낸다.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경제적, 정치적 현실을 전환할 능력이 있다. 그리고 지배, 경쟁, 추출의 권력 구조를 멀리 하고 체제적 전환을 모색하는 데 필요한 복원력을 생성한다.



이 생태계는 어떤 모습일까?

문화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예술, 엔터테인먼트, 공연과 같은 문화 산업 및 부문에서 가장 뚜렷이 드러나지만, 우리가 세계관을 체화하고 집단적으로 강화하는 공간인 사회, 경제, 정치적 제도에도 문화는 내재한다. 우리의 가족, 학교, 종교기관, 일터, 거버넌스 영역 등 많은 것이 여기에 포함된다.


진보적 좌파가 사랑, 돌봄, 재생, 상호의존이라는 세계관을 의도적이고 체계적으로 제도를 통해 길러내, 이러한 세계관에 기반한 미래가 저항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고 궁극적으로 불가피해지도록 만드는 생태계를 조성한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이미 진행되고 있고, 더 넓게 확장, 복제, 공유될만한 사례로는 무엇이 있을까?


문화의 형태별로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예술  |  어떻게 하면 예술 생태계를 조성해 진보적 운동의 서사, 비전, 가정을 예술의 주제와  창작, 공유, 소유의 전 과정에서 발전시킬 수 있을까? 예술, 문화, 사회정의 부문에서 흑인, 선주민, 유색인 예술가와 문화 전승자의 역량을 키우는 문화권력센터CCP 작업을 참고할 만하다. CCP에서는 유색인 예술가와 문화 전승자를 지원하는 별자리 기금Constellations Fund을 조성하고 있다.


건축  |  우리는 어떻게 형평성, 접근성,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건물에 반영하고, 사용자가 건물의 소재를 통해 흑인의 해방과 선주민의 주권을 구체적으로 경험하도록 설계할 수 있을까? 또 건물이 들려주는 과거, 현재, 미래의 이야기를 전하고, 건물을 통해 치유를 제공하며, 그밖의 다른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을까? 예술, 디자인, 학문 분야에서 백인 우월주의와 패권적 백인성을 해체하는 데 집중하는 흑인 재건설 컬렉티브The Black Reconstruction Collective의 사례를 살펴볼 수 있다. 이들은 2021년 뉴욕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에서 흑인의 번영을 중심에 두고 구축한 가상의 건축 개념을 선보였다.


학문  |  우리는 해방적 세계관과 선주민 중심의 구조, 학문, 지속가능성 그리고 회복과 치유를 위한 재생적 실천을 발전시키는 학술 기관과 사업을 어떻게 개발할 수 있을까? 이제루카Ijeruka 모델을 참고해볼 수 있다. 이 모델은 자기 자신과 사회 그리고 시스템 변화에 대해 통찰력 있는 아프리카인, 아프리카계 디아스포라 사상가들과 함께 몰입형 온라인 강의와 대화를 큐레이팅하는 디지털 학습 커뮤니티이다.


연예오락  |  사랑, 재생, 상호의존을 북돋우고 우리 이야기의 다양성을 드러내는 서사를 발전시킬 매체는 어떻게 육성할 수 있을까? 또 모든 노동자의 존엄성을 높이고 우리의 역사와 미래를 정확히 묘사하는 매체를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여성, 퀴어, 트랜스젠더, 장애인을 중심으로 유색인, 이주민, 난민, 무슬림, 선주민에 대한 서사 영역을 변화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미국의 자선 정보 및 후원자 학습 커뮤니티 팝컬처 컬래버레이티브를 참고해볼 수 있다.


의례, 의식, 영적 전통  |  우리를 치유로 이끌고, 선주민적 세계관을 되살리며, 조상들의 다채로운 전통과 다시 연결되게 하는 의례와 의식 그리고 영성 중심의 삶을 누릴 기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아프리카계 디아스포라 구성원이 땅에 기반한 생활 양식과 다시 연결되도록 북돋우는 앤세스터스 인 트레이닝Ancestors In Training을 참고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 기반 스토리텔링  |  공동체 극장, 퍼레이드, 축제, 모임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담기도록 지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976년부터 미국에서 가장 큰 노예해방 기념일 행사를 개최해 왔고, 현지 흑인 커뮤니티가 자신들을 주제로 한 연극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는 우지마 극단Ujima Theater Company의 발상지이기도 한, 뉴욕 주 버펄로시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유흥문화  |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보살피며, 노동자에게 동일임금을 보장함으로써 우리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구현하는 유흥문화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유색인 퀴어와 트랜스젠더의 삶을 긍정하고 기리기 위해 활동하는 예술집단 파피주스Papi Juice를 참고해볼 수 있다.


음악  |  음악 산업 종사자의 존엄과 가치를 옹호하고, 업계에서 창출되는 막대한 부를 공정하게 분배하며, 모든 공연자에게 돌봄과 치유를 제공함으로써 우리의 세계관을 구현하는 음악 산업은 어떻게 육성할 수 있을까? 최초의 공동체 소유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이자 음악가, 청취자, 노동자 조합원이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다중이해관계자 플랫폼 협동조합 레저네이트 쿱Resonate Coop을 참고해보자.


소매업  |  어떻게 하면 경제 부문이 외부화된 공급망을 내부화하고, 지속가능성과 형평성을 주장하며, 돌봄, 공동체, 연결의 통로로써 우리의 세계관을 구현할 기회를 만들도록 발전시킬 수 있을까? 노동자 협동조합과 민주적 노동 현장을 위한 전국적인 풀뿌리 회원조직인 미국 노동자 협동조합 연맹US Federation of Worker Cooperatives을 참고해볼 수 있다.


소셜미디어  |  공정한 노동 관행과 지속가능한 에너지 사용, 민주적 소유를 실천해 돌봄과 공동체의 서사를 개발하며, 구현하는 소셜미디어와 기술 부문은 어떻게 육성할 수 있을까? 디자이너와 기술자를 연결해 번영하는 디지털 공간을 구축하는 플랫폼 뉴 퍼블릭New Public을 살펴볼 수 있다.


이들을 포함한 여러 활동 사례들을 고려해 볼 때, 나는 진보적 문화 권력 생태계의 핵심부는 이미 존재한다고 본다. 모든 문화 영역에 걸쳐 사랑, 상호의존, 재생의 서사를 키워내고 이러한 가치를 오래 지켜나가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와 기관이 존재한다. 하지만 실험적인 수준은 넘어섰을지 몰라도 지배적인 문화 제도에 비하면 아직 그 수가 적고 규모도 작다.


이러한 시도를 확장, 복제, 공유하고, 지역의 정치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문화를 형성할 만큼 힘을 갖추려면 자선 부문의 투자가 지금보다 훨씬 더 늘어야 한다. 상상의 투쟁에 대대적으로 참여할 문화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과감하고, 강력한 투자가 필요하다. 전환의 과정에서 의미 있게 작동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형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수 있는 유연한 법적 구조를 구축하는 데 투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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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SHA SHILLINGFORD

아이샤 실링퍼드는 인텔리전트 미스치프의 예술국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