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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와 문화의
힘으로 변화를 만들다
재단, 소멸을 선택하다
ALEXIS FRASZ
Summary. 시스템 변화를 이루려면, 커뮤니티의 힘을 키울 수 있는 문화에 투자해야 한다.
지난 십 년간, 필란트로피 영역의 리더들과 진보적인 활동가들 사이에서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시스템적이고 영구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계관, 생활양식, 규범, 사회적 관계, 가치관’ 같은 문화적 전환이 필요하고, 변화를 가속화하려면 문화를 활용한 전략이나 방법론이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재단과 자선가들은 문화 전략의 특정 영역에 투자해 왔다. 사회변화를 위해 문화를 활용하거나 문화 영역의 인력을 사회변화 활동에 참여시키기 위한 투자는 늘었지만, 그 밖의 분야는 훨씬 적은 투자를 받고 있다. 특히 커뮤니티의 힘을 키우기 위한 문화 활동에는 투자가 부족하다. 몇몇 풀뿌리단체와 조직활동가들이 그들의 활동에 문화를 접목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소외되고 자원이 부족한 커뮤니티들의 힘을 문화를 활용해 키울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투자자들의 이해가 낮을 뿐 아니라 지원도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두 가지 이유에서 우리는 중요한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사람들의 활발한 참여로 이뤄지는 운동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전환적인 변화를 이루는 데 대단히 효과적이라는 점은 이미 증명되었다. 둘째, 풀뿌리 문화 전략은 커뮤니티의 힘을 유의미한 방식으로 촉진하고 강화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커뮤니티의 영향력 확대라는 측면에서 문화의 핵심적인 특징과 기능에 대해 설명한다. 이 글을 통해 커뮤니티 역량 강화에 참여하는 자금제공자나 지원기관 실무자들이 깨닫게 되길 바란다. 문화 전략에 커뮤니티를 조직하고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증폭시킬 힘이 있다는 걸 말이다. 더 나아가 문화 전략을 지원하는 투자자들이 인식하게 되길 바란다. 커뮤니티의 힘을 확장하는 것이야말로 사회변화를 만드는 결정적인 수단임을 말이다.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는 사람들이 자신의 세계관, 정체성, 가치를 이해하고, 구현하며,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에 따라 정의될 수 있다. 커뮤니티 조직화라는 맥락에서 보면 문화의 두 가지 특성이 특히 중요하다.
첫째, 문화에는 내러티브가 포함되지만, 문화는 내러티브를 넘어선다. 내러티브 전략은 중요한 전술이지만, 모든 것이 내러티브의 형태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의미 있고 실재하지만 내러티브로 표현되지 않는 것이 있다. 또한 미래지향적이거나 혁명적이거나 불확실성을 가진 것들은 내러티브로 표현되기가 더욱 어렵다. 더 나아가 특정 현장에서는 내러티브 방법론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야기가 트라우마를 자극하고 권력관계를 강화시키거나 분열을 드러내는 경우, 또는 언어의 장벽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내러티브 방법론이 부적절하다. 예를 들어, 아시아 태평양 환경 네트워크Asian Pacific Environmental Network에서는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구성원 간의 소속감과 연대감을 북돋기 위해 음악이나 음식, 이미지를 활용한다. 통합적이고 포용적으로 문화전략을 구사하려면, 내러티브뿐 아니라 춤과 동작, 음악, 이미지, 공예, 의식과 같은 구체적이고 관계적인 방법도 활용해야 한다.
둘째, 커뮤니티가 성장하는 데에는 참여형 문화, 즉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고 실행하는 과정이 핵심적이다. 타인과 함께 문화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유대, 공동의 정체성, 주체성, 지역에 대한 애착 등 여러 핵심 역량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역량들은 커뮤니티를 강화하는 기반이 된다. 구조적으로 힘을 박탈당해 온 이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브루클린 이스트 윌리엄스버그East Williamsburg의 환경정의 단체 엘 푸엔테El Puente는 커뮤니티 예술 활동을 ‘무력감에 대한 해독제’로 활용한다. 단체의 공동설립자 프랜시스 루체르나Frances Lucerna는 말한다. “예술은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고, 내재된 창조적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변혁적입니다. 예술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해낼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게 합니다.” 커뮤니티 강화 활동의 주된 목표는 사람들을 ‘민주주의의 소비자에서 민주주의의 주체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문화활동 참여로 형성된 관계성과 주체성은 다른 상황에서도 발휘된다.
‘우리’ 형성하기
커뮤니티를 조직하고 강화하는 일은 장기적인 과업이다. 그래서 전략적인 변화를 향해 사람들의 에너지와 의지를 키우고 전달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 회복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책임감을 가진 단체가 필요하다. 커뮤니티를 효과적으로 조직하고 강화시켜 온 조직들은 다음 세 가지를 훌륭하게 해냈다.
‘우리’를 형성한다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서로의 다름을 뛰어넘어,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고 집단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를 형성한다.
미래지향적이며 분산적인 리더십을 키운다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공동의 이해를 가질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품을 수 있도록 미래지향적이고 분산적인 리더십을 키운다.
새로운 세계관을 만든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대안을 만들어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한다.
풀뿌리 문화 실천은 이 세 가지 영역의 활동을 모두 지원할 수 있다. 시민권 운동에서 낙태 반대 운동에 이르기까지, 효과적인 운동은 공동의 목적과 집단 정체성 또는 ‘우리’라는 공유된 감각을 통해 사람들을 움직인다.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강화하는 조직은 관계적 조직화를 통해 구성원 간에 깊고, 상호간 책임이 있는 관계를 형성하며 그것을 유지시킨다. 이로써 어려움이 닥칠 때나 전략을 변경해야 하는 순간에도 사람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게 만든다. 조직화를 통해 만들어진 ‘사회적 기반’으로 커뮤니티는 다가올 변화에 맞서 싸울 뿐 아니라, 현재 시점에서 사람들의 건강과 삶을 직접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문화 활동에 참여하면 유대감이 높아지고, 지역에 대한 소속감이나 확장된 ‘우리’에 대한 소속감이 생긴다. 이러한 ‘사회적 결속social cohesion’에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bonding’와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의 ‘연결bridging’이 있다. 유대와 연결은 모두 풀뿌리 조직화에 있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리더십은 불의를 경험한 적이 있는 지역사회 구성원들로부터 발휘되는데, 이들은 변화를 위해 기꺼이 싸우고자 하는 더 많은 유권자들과의 연대를 가능하게 만든다. 다양한 계층과 인종을 넘나들며 조직화할 때 창출되는 연대를 통한 이익solidarity dividend은 소외된 집단에 이로우면서도 모두를 위한 사회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많은 조직가가 관계성을 발전시키고,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문화 활동을 활용한다. 브루클린 선셋파크Sunset Park의 환경정의단체 업로즈UPROSE의 사무국장 엘리자베스 임피에르Elizabeth Yeampierre는 ‘우리가 누구인가를 깨닫고 기억하며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공동체 기반의 예술 활동을 활용한다고 말한다. 구조적인 억압을 겪는 집단이 문화적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것은 구성원들에게 자신들이 가진 힘과 영향력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확인시켜 주고, 투쟁을 장기적으로 지속하게 도와준다. 스탠딩락 보호구역Standing Rock Reservation의 세크리드 스톤 캠프Sacred Stone Camp의 사례를 들어보자. 세크리드 스톤 캠프는 다코타 액세스 파이프라인Dakota Access Pipeline 1설치에 반대하며 싸우는 과정에서 경마, 영성 의식, 전통 상차림과 같은 전통문화 관습을 가르쳤고, 이를 통해 원주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시켰다. 이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속력과 의지를 잃지 않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른 배경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문화적인 경험을 공유하면 이질적인 집단 간에도 신뢰가 쌓일 수 있고,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으며, 적은 리스크를 안고 협업할 수 있다. 합창단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거나 시를 함께 읽는 것처럼 정치적으로 보이지 않는 활동을 통해서도 신뢰를 구축할 수 있으며, 공동의 경험을 쌓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와 경험은 향후 집단행동을 함께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준다.
비전을 제시하는 분산형 리더십
미국의 민주주의가 쇠퇴하고 권력이 일부에게 집중되면서, 사람들은 현재 상태를 극복하는 것이 어렵고 변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에 빠지고 있다. 커뮤니티의 힘을 강화시키는 일의 핵심은 사람들이 왜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했는지에 대해 공동의 이해를 갖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공동의 비전을 발전시키도록 돕는 것이다. 많은 조직가는 비판적 스토리텔링 방법론을 활용해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누가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는지, 사회에서 누가 결정 권한을 갖는지에 대한 기존 관점에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도록 돕는다. ‘스토리 재구성하기re-storying’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투쟁에 얽힌 시스템적이고 불의한 원인을 파악하게 되고, 스스로를 변화의 주체로 여기게 된다. 그래스루츠 파워 프로젝트Grassroots Power Project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닌, 함께 고민하고, 다듬고, 시험해 보는 민주적인 과정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무브먼트 제너레이션Movement Generation, 더포인트The Point, 푸시 버팔로PUSH Buffalo와 같은 단체의 조직가들은 예술과 문화를 활동에 접목해, 사람들이 원치 않는 현실에 저항하고 풍요와 희망, 기쁨이라는 관점에서 더 나은 미래를 그려낼 수 있는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돕는다. 문화적 가치에 기반한 창작활동에 참여하면서, 공동체 구성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경험하고, 스스로를 창작자이자 세계를 구축하는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다. 심지어 그 창작 행위가 순수하게 예술적일지라도,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다른 영역에서 발휘될 수 있는 주체성이 고양된다. 문화적 가치나 창작활동이 제거되었거나, 억압되었거나, 강제되었던 경험을 가진 집단이 표현하는 능력을 되찾는다는 건 정치적인 행위일 수 있다. 그들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켄터키언스 포 더 코먼웰스Kentuckians for the Commonwealth의 사례를 살펴보면, 예술가들과의 파트너십을 추구하는 문화 전략이 탄광지역 조직화에 핵심이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석탄 산업에 대해 복잡한 관계성을 갖고 있다. 석탄 산업은 그들에게 위험 요소인 동시에 생계수단이기도 하고, 정체성을 규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복잡한 관계성 때문에 이 지역은 분열되고 갈등을 겪어왔다. 예술가 캐리 브렁크Carrie Brunk와 밥 마틴Bob Martin은 수년간 이 지역에서 기른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나누고, 함께 음악을 만드는 커뮤니티 모임을 열었다. 이 모임은 애팔래치아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하고, 이념의 차이를 넘어 주민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다. 주민들은 이야기 모임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나눴으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 직접 무대에 올랐다. 브렁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창작의 과정을 통해 솔직하고 기대에 찬 대화들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땅과 맺고 있는 관계, 맑은 물의 소중함, 풍요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농작물과 농장,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 우리가 만들어 갈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지역에서 셰일가스를 시추할 땅을 매입하기 위해 개발업자들이 주민들에게 접근했을 때, 문화 전략의 효용성은 또다시 증명되었다. 그동안 형성된 관계와 신뢰 덕분에 주민들은 하나로 뭉쳐 정보를 공유하고 저항했다. 문화를 통한 조직화로 커뮤니티는 ‘셰일가스 채굴, 기후변화, 성소수자 혐오, 인종차별, 그밖에 닥칠 수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해 더욱 창조적으로 대응하게 되었고, 보다 회복탄력적이고 유연한 모습’으로 변모했다고 마틴은 말한다.
새로운 세상 만들기
커뮤니티의 힘을 키우면 사람들은 스스로의 삶을 바꿀 수 있게 되고, 그에 따라 세상도 변화한다. 이를 위해서는 커뮤니티가 ‘불의에 맞서 싸우기 위한’ 역량뿐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그릴 수 있는’ 비전과 주체성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건 사람들이 바로 지금, 더 나은 모습으로 생활하고, 일하며, 자신의 영적, 사회적, 물질적 필요를 채울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상호부조 집단, 협동조합,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투자기금, 토지신탁, 대안화폐, 공유시설, 개방형 기술 플랫폼, 회복적 정의 공동체, 문화 생산지 등 다양한 형태의 실험들은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사람들의 인식과 역량을 변화시키며, 향후 더 넓은 범위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든다. 작은 규모나 범위로 진행되는 실험이더라도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면, 그 실험은 ‘변화를 강력하게 촉진하는 사례’가 된다.
문화를 기반으로 하거나 문화적 요소를 결합해 세계관을 구축한 사례는 여럿 있다. 미시시피 문화생산 센터Mississippi Center for Cultural Production, 잭슨 협동조합Cooperation Jackson, 유타 디네 비케야Utah Diné Bikéyah, 이스트베이 영구 부동산 협동조합East Bay Permanent Real Estate Cooperative, 보스턴 우지마 프로젝트Boston Ujima Project, 필리 평화공원Philly Peace Park, 썬더밸리 공동체개발조합Thunder Valley Community Development Corporation, 이군이풀리주Ekvn-Yefolecv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이 중 보스턴 우지마 프로젝트는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기금을 조성해 지역사회를 위해 필요한 사업에 투자하고 있는데, 보스턴의 노동자들과 유색인 커뮤니티는 이 기금의 운영주체인 동시에 수혜 대상이기도 하다. 이 조직의 사무국장인 니아 에반스Nia Evans는 기금을 통해 공동체의 규범이 달라졌다면서, “좀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적용해 가면서 진정한 민주주의와 권력이 점점 더 우리의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보스턴 우지마 프로젝트는 예술과 문화를 통해 의미 있고 즐거운 경험을 제공하며 공동체 구성원이 소속감을 느끼도록 한다. 그래서 ‘건조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고 예술과 문화가 사람들을 진지한 일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수단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상상할 때 문화적이고 창조적인 표현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조직화 활동은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인간의 잠재력이 최대한 발휘되고 개발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스트베이 영구부동산 협동조합The East Bay Permanent Real Estate Cooperative은 웨스트 오클랜드에서 커뮤니티가 운영하는 흑인 문화와 예술을 위한 공간을 개발하고, 지속가능하고 저렴한 주택을 개발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또한 썬더밸리 공동체개발조합Thunder Valley CDC은 라코타의 전통문화 가치를 구현하고 보존하는 방식으로 지역경제와 환경을 계획하고 있다.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하는 활동은 문화, 경제, 정치적 측면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와 세계관에 부합하도록(문화적 측면) 자원과 노동력을 관리하고 배분하는 방식(경제적 측면)을 결정하기 위해 집단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정치적 측면)한다. 이를 고려하면, 문화 역량은 ‘자신의 세계관과 가치, 선호하는 생활양식에 부합하며 이를 지지하는 형태의 물리적 환경 및 사회경제적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집단적 역량’으로 정의될 수 있다.
필란트로피 영역의 지원
그동안 문화 및 내러티브 전략을 투자해 온 자선기금은 대부분 전문가(전문 스토리텔러, 임팩트 지향성을 가진 PD, 문화전략가, 소통 컨설턴트 등)가 운영하는 대중매체나 대중문화 전략을 지원해 왔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전략적으로 만들어진 메시지를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이슈에 대한 캠페인이나 선거 캠페인에 효과를 발휘했다. 하지만 필란트로피 재단들은 전환적이고 지속적인 사회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커뮤니티 차원의 힘을 키우기 위한 문화 전략에는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이처럼 투자가 부족한 데는 몇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커뮤니티 조직화는 수십 년 또는 수세대에 걸쳐 일어나기 때문에, 대체로 1년에서 3년 주기를 갖는 재단의 지원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후원자가 커뮤니티 영향력을 형성하는 활동을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느낄 수도 있다. (현재 필란트로피 영역을 통해 풀뿌리 조직화에 투자되는 금액은 연간 기금 총액의 3%에 불과하다.) 풀뿌리 커뮤니티 형성을 위해 활동하는 조직은 대체로 여러 이슈를 동시에 다루고, 커뮤니티의 필요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재단이 가진 이슈의 구분이나 논리 모델에 들어맞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커뮤니티 조직화 활동은 소규모 지역 범위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둔 지원조직이 아닌 전국 단위로 활동하는 지원조직의 관심을 끌기란 쉽지 않다. 추측컨대,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풀뿌리 커뮤니티 형성의 목적이 엘리트에게 집중된 정치경제적 권력을 흔들고, 저항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필란트로피 영역 일부에 얽힌 이해관계에 위협이 될 수 있다.
풀뿌리 문화 활동을 지원하기 어렵게 만드는 장벽도 존재한다. 커뮤니티 기반의 문화 활동은 느리고, 확장성이 낮으며,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또한 성과를 정량화하기도 어려운 편이다. 이러한 활동의 성과 중에는 전문 예술의 기준에 못 미치는 ‘평범한 사람들’의 창작물이 포함되기도 한다. 게다가 커뮤니티 기반 문화 활동이 커뮤니티 밖 외부인에게는 난해하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어, 지원기관이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한 투자자는 자신이 지원하는 예술 활동이 지원을 받는 단체에는 중요할지 몰라도 “문화예술 영역 후원자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예술적’이지 않고, 정치적 영역 후원자가 보기에 충분히 ‘운동적’이지 않아 주목받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시급한 과제
사람들의 참여로 이뤄지는 운동을 조직하는 것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보다 공정하며, 서로를 돌보는,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최선의 방법이다. 커뮤니티 형성에 있어 문화 전략을 활용할 때, 풀뿌리단체는 연대를 형성하고 주체성을 강화할 수 있으며,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생생한 대안을 만들 수 있다. 문화적 역량은 단지 문화 영역 내에서만 발휘되고 드러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문화적 역량은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와 시스템을 자신만의 가치와 세계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형성할 수 있는 능력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문화 활동과 커뮤니티 조직화 활동이 교차하는 영역에 대해 조직 활동가와 지원기관, 문화계 종사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필자가 속해 있는 문화와 커뮤니티 파워 기금The Culture and Community Power Fund은 예술, 문화를 통해 커뮤니티 조직화 활동에 투자하고, 연결하며, 확장하기 위해 2022년에 설립됐다. 그 밖에도 타오 라이징Tao Rising, 코러스 재단Chorus Foundation, 서던 파워 펀드Southern Power Fund 같이 문화 기반 운동을 지원하는 기관들도 있다. 풀뿌리 커뮤니티 형성에 문화 전략을 활용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이다. 이 과제를 수행하는 조직과 조직가에 대한 지원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질 수 있고, 커져야 한다.
참고
1 . Dakota Access Pipeline(DAPL)은 노스다코타주에서 일리노이주까지 원유를 운반하는 파이프라인으로, 환경오염과 원주민 권리 침해 우려로 논란이 된 프로젝트이다. 스탠딩락 수(Sioux) 부족과 환경단체가 반대 시위를 벌였으나 2017년에 완공되었고, 여전히 법적, 사회적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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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IS FRASZ
알렉시스 프라스는 모두에게 더 정의롭고, 아름다운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 문화, 경제, 환경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활동하는 헬리콘 컬래버레이티브(Helicon Collaborative)의 공동사무국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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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란트로피
커뮤니티와 문화의
힘으로 변화를 만들다
재단, 소멸을 선택하다
ALEXIS FRASZ
Summary. 시스템 변화를 이루려면, 커뮤니티의 힘을 키울 수 있는 문화에 투자해야 한다.
지난 십 년간, 필란트로피 영역의 리더들과 진보적인 활동가들 사이에서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시스템적이고 영구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계관, 생활양식, 규범, 사회적 관계, 가치관’ 같은 문화적 전환이 필요하고, 변화를 가속화하려면 문화를 활용한 전략이나 방법론이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재단과 자선가들은 문화 전략의 특정 영역에 투자해 왔다. 사회변화를 위해 문화를 활용하거나 문화 영역의 인력을 사회변화 활동에 참여시키기 위한 투자는 늘었지만, 그 밖의 분야는 훨씬 적은 투자를 받고 있다. 특히 커뮤니티의 힘을 키우기 위한 문화 활동에는 투자가 부족하다. 몇몇 풀뿌리단체와 조직활동가들이 그들의 활동에 문화를 접목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소외되고 자원이 부족한 커뮤니티들의 힘을 문화를 활용해 키울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투자자들의 이해가 낮을 뿐 아니라 지원도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두 가지 이유에서 우리는 중요한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사람들의 활발한 참여로 이뤄지는 운동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전환적인 변화를 이루는 데 대단히 효과적이라는 점은 이미 증명되었다. 둘째, 풀뿌리 문화 전략은 커뮤니티의 힘을 유의미한 방식으로 촉진하고 강화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커뮤니티의 영향력 확대라는 측면에서 문화의 핵심적인 특징과 기능에 대해 설명한다. 이 글을 통해 커뮤니티 역량 강화에 참여하는 자금제공자나 지원기관 실무자들이 깨닫게 되길 바란다. 문화 전략에 커뮤니티를 조직하고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증폭시킬 힘이 있다는 걸 말이다. 더 나아가 문화 전략을 지원하는 투자자들이 인식하게 되길 바란다. 커뮤니티의 힘을 확장하는 것이야말로 사회변화를 만드는 결정적인 수단임을 말이다.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는 사람들이 자신의 세계관, 정체성, 가치를 이해하고, 구현하며,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에 따라 정의될 수 있다. 커뮤니티 조직화라는 맥락에서 보면 문화의 두 가지 특성이 특히 중요하다.
첫째, 문화에는 내러티브가 포함되지만, 문화는 내러티브를 넘어선다. 내러티브 전략은 중요한 전술이지만, 모든 것이 내러티브의 형태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의미 있고 실재하지만 내러티브로 표현되지 않는 것이 있다. 또한 미래지향적이거나 혁명적이거나 불확실성을 가진 것들은 내러티브로 표현되기가 더욱 어렵다. 더 나아가 특정 현장에서는 내러티브 방법론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야기가 트라우마를 자극하고 권력관계를 강화시키거나 분열을 드러내는 경우, 또는 언어의 장벽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내러티브 방법론이 부적절하다. 예를 들어, 아시아 태평양 환경 네트워크Asian Pacific Environmental Network에서는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구성원 간의 소속감과 연대감을 북돋기 위해 음악이나 음식, 이미지를 활용한다. 통합적이고 포용적으로 문화전략을 구사하려면, 내러티브뿐 아니라 춤과 동작, 음악, 이미지, 공예, 의식과 같은 구체적이고 관계적인 방법도 활용해야 한다.
둘째, 커뮤니티가 성장하는 데에는 참여형 문화, 즉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고 실행하는 과정이 핵심적이다. 타인과 함께 문화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유대, 공동의 정체성, 주체성, 지역에 대한 애착 등 여러 핵심 역량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역량들은 커뮤니티를 강화하는 기반이 된다. 구조적으로 힘을 박탈당해 온 이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브루클린 이스트 윌리엄스버그East Williamsburg의 환경정의 단체 엘 푸엔테El Puente는 커뮤니티 예술 활동을 ‘무력감에 대한 해독제’로 활용한다. 단체의 공동설립자 프랜시스 루체르나Frances Lucerna는 말한다. “예술은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고, 내재된 창조적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변혁적입니다. 예술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해낼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게 합니다.” 커뮤니티 강화 활동의 주된 목표는 사람들을 ‘민주주의의 소비자에서 민주주의의 주체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문화활동 참여로 형성된 관계성과 주체성은 다른 상황에서도 발휘된다.
‘우리’ 형성하기
커뮤니티를 조직하고 강화하는 일은 장기적인 과업이다. 그래서 전략적인 변화를 향해 사람들의 에너지와 의지를 키우고 전달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 회복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책임감을 가진 단체가 필요하다. 커뮤니티를 효과적으로 조직하고 강화시켜 온 조직들은 다음 세 가지를 훌륭하게 해냈다.
‘우리’를 형성한다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서로의 다름을 뛰어넘어,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고 집단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를 형성한다.
미래지향적이며 분산적인 리더십을 키운다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공동의 이해를 가질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품을 수 있도록 미래지향적이고 분산적인 리더십을 키운다.
새로운 세계관을 만든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대안을 만들어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한다.
풀뿌리 문화 실천은 이 세 가지 영역의 활동을 모두 지원할 수 있다. 시민권 운동에서 낙태 반대 운동에 이르기까지, 효과적인 운동은 공동의 목적과 집단 정체성 또는 ‘우리’라는 공유된 감각을 통해 사람들을 움직인다.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강화하는 조직은 관계적 조직화를 통해 구성원 간에 깊고, 상호간 책임이 있는 관계를 형성하며 그것을 유지시킨다. 이로써 어려움이 닥칠 때나 전략을 변경해야 하는 순간에도 사람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게 만든다. 조직화를 통해 만들어진 ‘사회적 기반’으로 커뮤니티는 다가올 변화에 맞서 싸울 뿐 아니라, 현재 시점에서 사람들의 건강과 삶을 직접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문화 활동에 참여하면 유대감이 높아지고, 지역에 대한 소속감이나 확장된 ‘우리’에 대한 소속감이 생긴다. 이러한 ‘사회적 결속social cohesion’에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bonding’와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의 ‘연결bridging’이 있다. 유대와 연결은 모두 풀뿌리 조직화에 있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리더십은 불의를 경험한 적이 있는 지역사회 구성원들로부터 발휘되는데, 이들은 변화를 위해 기꺼이 싸우고자 하는 더 많은 유권자들과의 연대를 가능하게 만든다. 다양한 계층과 인종을 넘나들며 조직화할 때 창출되는 연대를 통한 이익solidarity dividend은 소외된 집단에 이로우면서도 모두를 위한 사회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많은 조직가가 관계성을 발전시키고,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문화 활동을 활용한다. 브루클린 선셋파크Sunset Park의 환경정의단체 업로즈UPROSE의 사무국장 엘리자베스 임피에르Elizabeth Yeampierre는 ‘우리가 누구인가를 깨닫고 기억하며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공동체 기반의 예술 활동을 활용한다고 말한다. 구조적인 억압을 겪는 집단이 문화적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것은 구성원들에게 자신들이 가진 힘과 영향력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확인시켜 주고, 투쟁을 장기적으로 지속하게 도와준다. 스탠딩락 보호구역Standing Rock Reservation의 세크리드 스톤 캠프Sacred Stone Camp의 사례를 들어보자. 세크리드 스톤 캠프는 다코타 액세스 파이프라인Dakota Access Pipeline 1설치에 반대하며 싸우는 과정에서 경마, 영성 의식, 전통 상차림과 같은 전통문화 관습을 가르쳤고, 이를 통해 원주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시켰다. 이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속력과 의지를 잃지 않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른 배경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문화적인 경험을 공유하면 이질적인 집단 간에도 신뢰가 쌓일 수 있고,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으며, 적은 리스크를 안고 협업할 수 있다. 합창단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거나 시를 함께 읽는 것처럼 정치적으로 보이지 않는 활동을 통해서도 신뢰를 구축할 수 있으며, 공동의 경험을 쌓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와 경험은 향후 집단행동을 함께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준다.
비전을 제시하는 분산형 리더십
미국의 민주주의가 쇠퇴하고 권력이 일부에게 집중되면서, 사람들은 현재 상태를 극복하는 것이 어렵고 변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에 빠지고 있다. 커뮤니티의 힘을 강화시키는 일의 핵심은 사람들이 왜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했는지에 대해 공동의 이해를 갖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공동의 비전을 발전시키도록 돕는 것이다. 많은 조직가는 비판적 스토리텔링 방법론을 활용해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누가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는지, 사회에서 누가 결정 권한을 갖는지에 대한 기존 관점에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도록 돕는다. ‘스토리 재구성하기re-storying’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투쟁에 얽힌 시스템적이고 불의한 원인을 파악하게 되고, 스스로를 변화의 주체로 여기게 된다. 그래스루츠 파워 프로젝트Grassroots Power Project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닌, 함께 고민하고, 다듬고, 시험해 보는 민주적인 과정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무브먼트 제너레이션Movement Generation, 더포인트The Point, 푸시 버팔로PUSH Buffalo와 같은 단체의 조직가들은 예술과 문화를 활동에 접목해, 사람들이 원치 않는 현실에 저항하고 풍요와 희망, 기쁨이라는 관점에서 더 나은 미래를 그려낼 수 있는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돕는다. 문화적 가치에 기반한 창작활동에 참여하면서, 공동체 구성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경험하고, 스스로를 창작자이자 세계를 구축하는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다. 심지어 그 창작 행위가 순수하게 예술적일지라도,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다른 영역에서 발휘될 수 있는 주체성이 고양된다. 문화적 가치나 창작활동이 제거되었거나, 억압되었거나, 강제되었던 경험을 가진 집단이 표현하는 능력을 되찾는다는 건 정치적인 행위일 수 있다. 그들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켄터키언스 포 더 코먼웰스Kentuckians for the Commonwealth의 사례를 살펴보면, 예술가들과의 파트너십을 추구하는 문화 전략이 탄광지역 조직화에 핵심이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석탄 산업에 대해 복잡한 관계성을 갖고 있다. 석탄 산업은 그들에게 위험 요소인 동시에 생계수단이기도 하고, 정체성을 규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복잡한 관계성 때문에 이 지역은 분열되고 갈등을 겪어왔다. 예술가 캐리 브렁크Carrie Brunk와 밥 마틴Bob Martin은 수년간 이 지역에서 기른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나누고, 함께 음악을 만드는 커뮤니티 모임을 열었다. 이 모임은 애팔래치아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하고, 이념의 차이를 넘어 주민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다. 주민들은 이야기 모임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나눴으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 직접 무대에 올랐다. 브렁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창작의 과정을 통해 솔직하고 기대에 찬 대화들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땅과 맺고 있는 관계, 맑은 물의 소중함, 풍요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농작물과 농장,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 우리가 만들어 갈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지역에서 셰일가스를 시추할 땅을 매입하기 위해 개발업자들이 주민들에게 접근했을 때, 문화 전략의 효용성은 또다시 증명되었다. 그동안 형성된 관계와 신뢰 덕분에 주민들은 하나로 뭉쳐 정보를 공유하고 저항했다. 문화를 통한 조직화로 커뮤니티는 ‘셰일가스 채굴, 기후변화, 성소수자 혐오, 인종차별, 그밖에 닥칠 수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해 더욱 창조적으로 대응하게 되었고, 보다 회복탄력적이고 유연한 모습’으로 변모했다고 마틴은 말한다.
새로운 세상 만들기
커뮤니티의 힘을 키우면 사람들은 스스로의 삶을 바꿀 수 있게 되고, 그에 따라 세상도 변화한다. 이를 위해서는 커뮤니티가 ‘불의에 맞서 싸우기 위한’ 역량뿐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그릴 수 있는’ 비전과 주체성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건 사람들이 바로 지금, 더 나은 모습으로 생활하고, 일하며, 자신의 영적, 사회적, 물질적 필요를 채울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상호부조 집단, 협동조합,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투자기금, 토지신탁, 대안화폐, 공유시설, 개방형 기술 플랫폼, 회복적 정의 공동체, 문화 생산지 등 다양한 형태의 실험들은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사람들의 인식과 역량을 변화시키며, 향후 더 넓은 범위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든다. 작은 규모나 범위로 진행되는 실험이더라도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면, 그 실험은 ‘변화를 강력하게 촉진하는 사례’가 된다.
문화를 기반으로 하거나 문화적 요소를 결합해 세계관을 구축한 사례는 여럿 있다. 미시시피 문화생산 센터Mississippi Center for Cultural Production, 잭슨 협동조합Cooperation Jackson, 유타 디네 비케야Utah Diné Bikéyah, 이스트베이 영구 부동산 협동조합East Bay Permanent Real Estate Cooperative, 보스턴 우지마 프로젝트Boston Ujima Project, 필리 평화공원Philly Peace Park, 썬더밸리 공동체개발조합Thunder Valley Community Development Corporation, 이군이풀리주Ekvn-Yefolecv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이 중 보스턴 우지마 프로젝트는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기금을 조성해 지역사회를 위해 필요한 사업에 투자하고 있는데, 보스턴의 노동자들과 유색인 커뮤니티는 이 기금의 운영주체인 동시에 수혜 대상이기도 하다. 이 조직의 사무국장인 니아 에반스Nia Evans는 기금을 통해 공동체의 규범이 달라졌다면서, “좀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적용해 가면서 진정한 민주주의와 권력이 점점 더 우리의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보스턴 우지마 프로젝트는 예술과 문화를 통해 의미 있고 즐거운 경험을 제공하며 공동체 구성원이 소속감을 느끼도록 한다. 그래서 ‘건조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고 예술과 문화가 사람들을 진지한 일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수단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상상할 때 문화적이고 창조적인 표현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조직화 활동은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인간의 잠재력이 최대한 발휘되고 개발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스트베이 영구부동산 협동조합The East Bay Permanent Real Estate Cooperative은 웨스트 오클랜드에서 커뮤니티가 운영하는 흑인 문화와 예술을 위한 공간을 개발하고, 지속가능하고 저렴한 주택을 개발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또한 썬더밸리 공동체개발조합Thunder Valley CDC은 라코타의 전통문화 가치를 구현하고 보존하는 방식으로 지역경제와 환경을 계획하고 있다.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하는 활동은 문화, 경제, 정치적 측면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와 세계관에 부합하도록(문화적 측면) 자원과 노동력을 관리하고 배분하는 방식(경제적 측면)을 결정하기 위해 집단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정치적 측면)한다. 이를 고려하면, 문화 역량은 ‘자신의 세계관과 가치, 선호하는 생활양식에 부합하며 이를 지지하는 형태의 물리적 환경 및 사회경제적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집단적 역량’으로 정의될 수 있다.
필란트로피 영역의 지원
그동안 문화 및 내러티브 전략을 투자해 온 자선기금은 대부분 전문가(전문 스토리텔러, 임팩트 지향성을 가진 PD, 문화전략가, 소통 컨설턴트 등)가 운영하는 대중매체나 대중문화 전략을 지원해 왔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전략적으로 만들어진 메시지를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이슈에 대한 캠페인이나 선거 캠페인에 효과를 발휘했다. 하지만 필란트로피 재단들은 전환적이고 지속적인 사회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커뮤니티 차원의 힘을 키우기 위한 문화 전략에는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이처럼 투자가 부족한 데는 몇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커뮤니티 조직화는 수십 년 또는 수세대에 걸쳐 일어나기 때문에, 대체로 1년에서 3년 주기를 갖는 재단의 지원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후원자가 커뮤니티 영향력을 형성하는 활동을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느낄 수도 있다. (현재 필란트로피 영역을 통해 풀뿌리 조직화에 투자되는 금액은 연간 기금 총액의 3%에 불과하다.) 풀뿌리 커뮤니티 형성을 위해 활동하는 조직은 대체로 여러 이슈를 동시에 다루고, 커뮤니티의 필요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재단이 가진 이슈의 구분이나 논리 모델에 들어맞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커뮤니티 조직화 활동은 소규모 지역 범위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둔 지원조직이 아닌 전국 단위로 활동하는 지원조직의 관심을 끌기란 쉽지 않다. 추측컨대,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풀뿌리 커뮤니티 형성의 목적이 엘리트에게 집중된 정치경제적 권력을 흔들고, 저항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필란트로피 영역 일부에 얽힌 이해관계에 위협이 될 수 있다.
풀뿌리 문화 활동을 지원하기 어렵게 만드는 장벽도 존재한다. 커뮤니티 기반의 문화 활동은 느리고, 확장성이 낮으며,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또한 성과를 정량화하기도 어려운 편이다. 이러한 활동의 성과 중에는 전문 예술의 기준에 못 미치는 ‘평범한 사람들’의 창작물이 포함되기도 한다. 게다가 커뮤니티 기반 문화 활동이 커뮤니티 밖 외부인에게는 난해하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어, 지원기관이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한 투자자는 자신이 지원하는 예술 활동이 지원을 받는 단체에는 중요할지 몰라도 “문화예술 영역 후원자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예술적’이지 않고, 정치적 영역 후원자가 보기에 충분히 ‘운동적’이지 않아 주목받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시급한 과제
사람들의 참여로 이뤄지는 운동을 조직하는 것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보다 공정하며, 서로를 돌보는,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최선의 방법이다. 커뮤니티 형성에 있어 문화 전략을 활용할 때, 풀뿌리단체는 연대를 형성하고 주체성을 강화할 수 있으며,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생생한 대안을 만들 수 있다. 문화적 역량은 단지 문화 영역 내에서만 발휘되고 드러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문화적 역량은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와 시스템을 자신만의 가치와 세계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형성할 수 있는 능력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문화 활동과 커뮤니티 조직화 활동이 교차하는 영역에 대해 조직 활동가와 지원기관, 문화계 종사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필자가 속해 있는 문화와 커뮤니티 파워 기금The Culture and Community Power Fund은 예술, 문화를 통해 커뮤니티 조직화 활동에 투자하고, 연결하며, 확장하기 위해 2022년에 설립됐다. 그 밖에도 타오 라이징Tao Rising, 코러스 재단Chorus Foundation, 서던 파워 펀드Southern Power Fund 같이 문화 기반 운동을 지원하는 기관들도 있다. 풀뿌리 커뮤니티 형성에 문화 전략을 활용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이다. 이 과제를 수행하는 조직과 조직가에 대한 지원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질 수 있고, 커져야 한다.
참고
1 . Dakota Access Pipeline(DAPL)은 노스다코타주에서 일리노이주까지 원유를 운반하는 파이프라인으로, 환경오염과 원주민 권리 침해 우려로 논란이 된 프로젝트이다. 스탠딩락 수(Sioux) 부족과 환경단체가 반대 시위를 벌였으나 2017년에 완공되었고, 여전히 법적, 사회적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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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IS FRASZ
알렉시스 프라스는 모두에게 더 정의롭고, 아름다운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 문화, 경제, 환경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활동하는 헬리콘 컬래버레이티브(Helicon Collaborative)의 공동사무국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