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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을
당사자에게
재단, 소멸을 선택하다
SADAF RASSOUL CAMERON · ARIANNE SHAFFER
Summary. 우리는 십 년 넘게 여러 방식의 권한 공유 모델을 킨들 프로젝트(Kindle Project)에 적용해 왔다. 그동안 새로운 통찰이 많이 축적되었지만, 지원기관이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커뮤니티와 권한을 공유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은 변함이 없다.
부와 기회의 불평등이 극심한 세상에서 권한 공유는 필란트로피의 혁신적인 접근 방식으로 부상했다. 이제 권한 공유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더 많은 후원자와 기부자가 지속적인 방식으로 권한을 공유할 수 있을까? 그리고 왜 그래야 할까?
킨들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십 년 넘게 신뢰에 기반해 권한을 공유하는 기부 모델과 참여형 의사 결정 방식을 육성하고자 노력해 왔다. 또한 이 작업이 커뮤니티와 기부자 양측 모두에게 미치는 영향을 확인했다. 어느 커뮤니티 단체 리더는 권한 공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자선 활동을 둘러싼 권력의 벽을 무너뜨려 더 생산적이고 활용가능하며, 투명하고 인간성을 중시하는 자선 기관으로 나아가기 위한 작업의 출발점입니다.”
권한 공유는 커뮤니티를 중심에 두고 무엇이 얼마나 필요한지, 어떤 방식으로 지원을 받아야 좋을지, 무엇을 성공으로 정의할지 스스로 결정하게 만든다. 커뮤니티의 자기 결정권이 없으면 우리가 변화시키고자 하는 시스템을 뒤흔들기란 불가능하다. 하이랜더센터의 공동사무국장이자 무브먼트포블랙라이브스의 리더인 애쉬-리 헨더슨은 “우리가 승리하기를 바란다면 후원하라”고 말한다. 권한이 공유되었을 때만 영구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권한 공유란 무엇인가?
권한 공유는 참여형 배분 방식이라고도 말한다. 권한 공유는 커뮤니티 구성원이 의사결정권자가 되도록 하여 자선기관을 민주화한다. (의사결정권자는 커뮤니티 의사결정권자, 자원흐름 촉진자, 커뮤니티 자문가 등으로도 부를 수 있다.)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배분 관련 결정을 내리고, 변화를 만들 영역을 설정하고, 예산을 검토하고, 전략을 수립하고, 영향력 있는 직책을 맡게 된다. 권한 공유 방식에서는 이해가 충돌하던 관계를 상호호혜적으로 만들고, 기존의 신뢰 관계를 활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높게 평가한다. 권한 공유는 (필란트로피 영역을 포함하여) 커뮤니티 안팎으로 관계망을 형성해, 의사결정권자가 전통적인 자선사업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던 방식으로 자원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다.
권한 공유는 실제적이고, 학습적이고, 관계적이다. 권한 공유는 과학이 아니기에 이 과정을 알고리즘으로 만들 수는 없다. 이는 관계와 신뢰에 관한 것이다.
권한 공유는 전통적인 모델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전통적으로 대부분 백인 남성의 기부자들이 폐쇄적인 방식으로 부를 통제하며 자선 활동의 방향을 좌우하고, 전략과 성공의 기준을 정해왔다. 아래의 몇 가지 통계를 통해 그 실상을 알 수 있다.
• 미국에는 127,595개의 재단이 있으며 자산 총액은 1조 2천억 달러이다. 기부금 총액은 900달러인데, 최소 분배 의무 기준인 5%까지만 기부금을 사용하는 재단들의 관행으로 인해 1조 1,100억 달러가 묶여있는 상황이다.
• 현재 미국 재단의 대표 92%, 상근직원 83%, 프로그램 담당자 68%가 백인이다.
• 미국 인구 중 40% 이상이 비백인이지만, 유색인 커뮤니티에 이로운 활동을 지원하는 기금 총액은 7%에 못 미친다. (권한 공유를 염두에 두고 집행하는 기금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 기부자, 커뮤니티, 현장 활동 단체 사이에 보다 공평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권한 공유의 최소한의 목표이다. 엘리트가 주도하는 필란트로피 영역에는 창조적 상상력과 다양한 접근방식이 절실히 필요하다.
진보적 필란트로피 영역에서는 여러 가지 과감한 시도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러한 시도를 가리키는 유행어가 넘쳐 난다. 신뢰 기반 필란트로피trust-based philanthropy, 참여형 기금 배분participatory grantmaking, 탈자본주의 필란트로피post-capitalist philanthropy, 사회정의 필란트로피social justice philanthropy, 탈식민화 필란트로피decolonizing philanthropy,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필란트로피just-transition philanthropy, 대담한 기부bolder giving, 독립 자선indie philanthropy, 커뮤니티 기반 필란트로피community-based philanthropy 등이 그것이다. 이런 트렌드들은 이미 수 세대에 걸쳐 실천해 온 커뮤니티나 재단들의 관행을 적용하거나 재구성한 경우가 많다. 필란트로피 영역이 “혁신”해야 한다는 압박에 내몰리면 좁은 시야에 갇힐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과거 여러 재단과 기부자가 시도했던 정의의 가치에 부합하는 관행을 탐색하고 실행하는 필수적인 과정을 생략하게 된다.
물론 새로운 유행어나 유명 인사를 통해 지지자들을 결집하는 것도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본래의 의도가 희석될 수도 있고, 참여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힘을 잃을 수 있다. 또한 간단한 가입만으로 누구나 신뢰 기반 후원자나 사회정의 기부자, 참여형 기금배분가를 자처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실질적인 권한을 넘겨주는 방식으로 이 부문의 낡은 구조를 해체하고자 노력하는 개인과 집단들이 여전히 많다. 매리언 록펠러 웨버는 30여 년 전에 플로우펀딩Flow Funding1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현재 다양한 형태로 권한을 공유하는 우수 기관 사례가 나타나고 있으며, 그 예로는 국제적인 플로우펀딩 프로그램인 리제너러시티Regenerosity, 커뮤니티 자문위원회인 래디컬이매지네이션가족재단Radical Imagination Family Foundation, 커뮤니티 대표성을 반영한 이사회를 구성한 판타레아재단Panta Rhea Foundation, 현지화된 의사결정 모델을 활용하는 국제 중개기관인 글로벌그린그랜츠Global Greengrants, 커뮤니티 긴급 대응 프로그램인 긴급행동기금Urgent Action Fund, 활동가가 주도하여 전략 수립 및 의사결정을 하는 재단인 게릴라재단Guerrilla Foundation, 재단이 창설한 기빙 클럽을 가지고 있는 노스스타재단North Star Fund 등이 있다. 이렇게 점차 늘어나는 사례들에는 필란트로피 영역 자체를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사회정의 투자자 조직화 기관들도 포함된다. (저스티스펀더스Justice Funders, 솔리데어Solidaire, 에지펀더스얼라이언스EDGE Funders Alliance, 체인지필랜트로피Change Philanthropy를 비롯해 일일이 나열하지 못한 여러 기관이 있다.)
왜 권한을 공유해야 하는가?
권한을 공유해야 할 이유는 다양하다. 일부 기관에서는 권한을 넘기는 것이 옳으며, 정의로운 방향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기 위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극심한 부의 불평등을 초래한 시스템을 인식하게 되면, 권한을 공유하여 현 상태를 뒤흔들려는 의지를 발휘할 수 있다. 한편, 권한 공유를 배상의 한 형태로 보거나 기본적인 원칙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재단의 사업 효과성을 검토한 결과, 비공개적 의사결정 방식이 성과를 떨어뜨리고 해악을 발생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 재단은 폐쇄적으로 내부에서 진행되는 일과 외부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 사이의 간극에 줄이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권력을 공유하기도 한다.
개인 기부자가 권한을 공유하려는 동기는 좀 더 개인적이다. 기부가 익명성의 보호막 아래에서 비밀리에 이루어지곤 하기 때문에, 기부자 중 고립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계급적 역학으로 인해 부유층에게는 차별화된 정체성이 생성되는데, 이는 부유층과 그 외의 사람들을 가르는 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부자는 공동체를 찾기 위해, 자신이 믿는 가치대로 살기 위해, 공동체적 가치에 동참하기 위해 권한 공유에 관심을 가진다. 권한을 공유하기 위해 행동하면 기부자와 커뮤니티 구성원 사이를 가로막던 장벽이 무너지고, 공감이 발휘되어 상대의 입장에 서 보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어느 플로우 펀딩 참여자는 “함께 행동할 때, 우리는 함께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2021년에는 재단들의 기금 총액의 절반가량이 수혜기관 1%에게 집중적으로 배분되었다. 참여형 기금배분방식은 이런 관행을 깨뜨린다. 다른 어떤 곳보다 시급한 일을 하고 있음에도 주류 자선 기관의 시야에서 비껴나 있는 집단으로 기금이 흘러갈 자리를 만든다. 커뮤니티 의사결정권자는 평소 현장에 가까이 접하기 때문에 이렇게 최전선에서 일어나고 있는 활동들을 잘 알고 있다. 특히 지역 중심 후원자의 경우, 기금배분 권한을 커뮤니티 구성원에게 넘겨주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이롭다. 예를 들어, 뉴멕시코주 중심의 젠더 정의 참여형 기금인 킨들프로젝트 슬로우퓨즈펀드Kindle Project Slow Fuse Fund에서는 의사결정에 참여한 몇 명의 여성들을 통해 우리가 15년 동안 주 내에서 활동하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여러 단체에 투자할 수 있었다. 권한을 공유하면 시야를 넓어져 기금이 필요한 곳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어떤 해법을 추구할지는 커뮤니티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코러스재단의 네트워크책임자이자, 저스티스펀더스의 정의로운전환 조직가로 활동했던 시드니 팽Sydney Fang은 코러스재단과 리치먼드아워파워연합Richmond Our Power Coalition이 장기간에 걸쳐 참여형 기금배분 사업을 함께 추진하도록 촉진했다. 특히 팽은 지역에 기반한 기금에서 커뮤니티 의사결정권자가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위원회에 누가 있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 이들은 주민들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운동의 지형이 어떠한지를 이해하고 매일 캠페인에 관여하는 사람들입니다. 지원대상자의 기금 지원신청서가 완벽하지 못해도 위원회 구성원들은 바로 알아볼 수 있어요. 이들은 커뮤니티의 일원이 아니고서는 접할 수 없었을 직접적인 정보를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죠. ‘아, 이 단체가 유권자를 모으고 투표율을 높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건 이미 잘 알지’하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킨들프로젝트의 모든 기금에서 이처럼 상호 이익이 증진되도록 노력한다. 2020년에 시작한 선주민여성플로우펀드Indigenous Women’s Flow Fund, IWFF에서는 선주민 여성 6명이 의사결정권자로서 자신들의 비전에 따라 기금의 방향을 설정하게 했다. 커뮤니티 의사결정권자로 킨들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과 동일하게, 이 여성들은 활동에 참여하는 만큼 충분히 보상받는다. 유사하게, 기부자도 기부자 학습 모임에 참여한다. 현재까지 이런 방식을 통해 선주민이 참여로 진행되는 80여 개 사업에 1,800만 달러 이상이 미전역에서 배분되었다. 선주민 여성집단은 자기 공동체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배분 관련 결정에 의문이 있으면 서로 의견을 구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에 대한 기부자의 신뢰가 쌓이면서 기금을 더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게 된다.
필란트로피 기부금 중에서 선주민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0.4%에 불과하다. 미국 필란트로피 전문가의 43%가 유색인인데, 그중 선주민은 0.8%에 불과하다. 이런 수치만 봐도 권한을 넘길 필요가 뚜렷해진다.
커뮤니티들이 자원을 주고받고 서로 북돋울 때, 외부의 구원자에 의지할 필요가 사라지고 결과적으로 복원력이 강해진다. 또한 더 역동적이고 다양한 생태계가 형성되어 자선 기관이 판에 박힌 틀에 갇힐 위험이 제거된다. 예상 가능한 단체를 지원하는 것은 안전해 보여도, 우리가 고치고자 하는 시스템의 약점을 강화할 뿐이다.
우리 앞의 과제들
돈에는 불편한 권력관계와 역사적 트라우마가 엮여있다. 특정 집단이 의사결정의 테이블을 독차지하게 되면, 그 외 다른 집단은 제외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긴급한 상황에 비해 참여의 속도가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한 기관이 추구하고자 하는 전략에 맞지 않는 기부금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해결할 과제가 쌓여 있다.
기부자와 재단들이 기본적으로 맞닥뜨리는 과제를 몇 가지 살펴보자.
• 기부자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접촉하고 긴밀히 공유하는 관계를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돈과 권한을 넘긴다고 해서 꼭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돈으로 진정한 관계를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 돈에 대한 결정권은 넘겼지만, 커뮤니티 구성원이 내린 배분 관련 결정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 (가족재단, 기부자조언기금 등) 기존 재정 구조를 유지한 채로 권한 공유 방식을 도입하려 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 참여형 방식을 경험해 본 인력이 부족한 재단에서는 권한 공유 방식을 도입하고자 해도 방법을 모르고 경험도 부족할 수 있다. 권한 공유를 실행하려는 기부자는 그 일을 담당할 팀을 꾸려야 할 수도 있다.
• 돈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면, 기부 목적에 대한 의식이나 자부심이 흔들리는 기부자도 있다. (하지만 권력을 공유할 마음의 준비가 된 기부자라면 이 정도 문제는 대부분 이미 극복했을 것이다.)
한편, 커뮤니티 의사결정권자가 마주할 수 있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 재정 관련 결정에 처음 참여하는 커뮤니티 구성원도 기부자가 맞닥뜨리는 위와 같은 문제들을 똑같이 겪곤 한다. 고립감과 압박감을 느끼고 기존의 기금 배분 관행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경우가 흔하다.
• 커뮤니티 구성원에게 넘어간 권한은 리더 직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커뮤니티의 역학은 복잡 미묘하며, 돈을 좌우할 수 있는 권한으로 인해 균형이 깨질 수 있다. 그래서 익명으로 활동하는 것을 선택하는 의사결정권자들도 있다. 익명성이 안전성을 보장해 준다면, 투명성은 신뢰를 강화하고 역사적 트라우마를 덜어줄 수 있다.
• 생업과 커뮤니티에서 맡은 임무를 수행하는 것과 프로그램과 의사결정과정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병행하기 어려울 수 있다.
• 의사결정과정의 어느 시점부터, 커뮤니티 의사결정권자는 익숙한 범위를 넘는 정도까지 권한을 필요로 하거나 권한을 가지고 싶어 할 수 있다.
• 돈의 흐름과 방향을 조정하는 일은 신중하게 해야 하지만, 변화의 과정에 여러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기억해야 한다.
권한 공유에 대한 근본적 이해
권한 공유는 계속되는 과정이기에 정형화될 수 없다. 이것은 최소한의 시간 내에, 미리 정해놓은 '바람직한' 방식으로, 긴급하게 자원을 배분하여, 위기에 대응하는, 소위 ‘크로스핏형 필란트로피’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권한 공유는 실제적이고, 학습적이고, 관계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커뮤니티가 필요하고, 책임있는 주체가 필요하며, 실험할 의지가 필요하다. 권한 공유의 시작부터 끝까지,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권한 공유는 공식이 존재하는 과학이 아니다. 그러나 이 방식을 실험해 온 사람들은 권한 공유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지혜를 보탤 수 있다.
가치 | 참여형 기금배분을 윤리적으로 수행하려면 파트너 간에 공통의 가치를 공유해야 하고, 형평성을 기반으로 협력해야 한다. 이러한 가치가 결여될 경우, 참여형 기금배분은 평등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는커녕 평등을 해치는 반민주적 행위가 되어 두려운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편견에 사로잡힌 후원자와 커뮤니티 의사결정권자는 참여형 기금배분과 유사한 도구를 사용하여 포퓰리즘 사상을 조장하는 극단주의 풀뿌리/가짜시민단체를 키울 수 있다. 이런 도구는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사회 및 경제 정의에 부합하는지 명시해야 하며, 이러한 사회 및 경제 정의가 모든 시도를 평가하는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
권한 공유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의사결정의 기준점이 될 수 있는 비전이 잘 구축되었을 때 효과적으로 실행된다. 또한 의사결정권을 가진 구성원들이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가치를 공감할 때 제대로 실행될 수 있다. 참여형 기금배분을 실행할 때 커뮤니티의 가치가 구현되어야 하며, 비전은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 커뮤니티와 기부자 모두 어떤 가치가 활동의 근간이 되는지, 더 큰 규모의 사회 운동의 가치로 확장될 만한 가치는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구현해야 한다. 한 커뮤니티 의사결정권자는 자신에게 기준점이 되는 비전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구성원 모두를 포용하고, 지구와 동물을 우리의 가족으로 여기며, 이성적이고 인지적인 사고뿐 아니라 감정적 지능과 경험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신체적 자아의 충만함을 누리며 살고, 불의와 고통의 근원을 해결하는 치유와 정의의 기법을 실천하는 세상이다.”
시간을 할애하고 기다리기 | 건전한 민주주의가 그러하듯이 참여형 기금배분을 구현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며, 구성원들은 그때그때 발생하는 변수에 대응할 여력을 준비해야 한다. 권한과 돈에 수반되는 복잡성을 다룰 수 있는 여유 시간이 없으면 고치고자 하는 시스템을 도리어 답습할 위험이 있다. 커뮤니티에는 문화적으로 좀 더 적합한 관행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 예를 들어 IWFF에 참여하는 선주민 여성 집단은 자연과 계절의 주기에 맞춰진 커뮤니티의 문화적 관행을 따라 의사결정을 한다. 문화적 관행을 고려하기 위해 킨들프로젝트에서는 내부 사업 운영 계획을 유연하게 실행한다. 긴급히 대응해야 할 상황으로 판단되더라도 커뮤니티 고유의 절차를 존중하는 것이 기부자와 재단의 역할이다.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복합적인 긴장 관계가 이어질 수 있지만, 호기심과 열린 자세로 불편을 감수할 때 후원자들은 필요와 위기에 대응하는 또 다른 방식을 익히게 될 것이다.
시드니 팽은 코러스재단과 리치먼드아워파워연합의 협업을 촉진하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 시간을 고려하는 것이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제가 듣기로, 참여형 기금배분을 어렵게 하는 문제 중 하나는 사람들이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여형 기금배분에 함께 하려면, 다른 활동이나 캠페인을 진행할 시간과 커뮤니티에 관여할 시간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래서 이 일을 추진하는 동안 저희는 참여자들이 위원회에서 지원서나 수치만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기금배분을 하면서 자신의 활동 또한 진전시킬 수 있도록 고민하였습니다. 진행 중인 운동에 어떤 방식으로 협력자들을 참여시킬지 숙고하면서 기금배분에 참여하면, 커뮤니티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끈끈히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중재자 | 권한을 넘기려는 노력은 능숙한 중재자와 촉진자의 도움이 있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이들은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건강한 공간을 형성해 준다. 뿐만 아니라 원대한 비전을 구체적인 성과로 실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다. 중재자와 촉진자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한 기금 지원이 부족하고 이들의 중요성 또한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
IWFF의 경우, 킨들프로젝트가 수행한 중자재로서의 역할은 기부자와 플로우펀더 모두 각자의 속도에 맞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고, 자신과 유사한 동료들과 함께 안전하게 학습하도록 보장하는 것이었다. 무엇이 가장 시급한 문제인지를 파악하고 탐구할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리는 행정 업무를 전담하여 선주민여성들이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기부자와 커뮤니티 구성원이 한자리에 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권력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노력하였다. 킨들프로젝트 사업의 어느 기부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자원과 권한에 대한 결정권을 내려놓고 나니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모든 사업에 정답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이죠. … 또한 우리를 연결해 주는 중개자와 통역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권한 공유는 한 사람의 힘으로 실현될 수 없다. 필란트로피 영역의 중재자는 연결성을 형성하고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유연성 | 권한 공유는 관계를 형성하고 지속적인 신뢰를 구축하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서는 커뮤니티 나름의 기준에 맞도록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참여형 기금배분이 수동적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능동적인 접근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참여형 기금배분은 공동체의 지혜를 중심에 두는 방식이며, 투명성과 견고한 구조, 명료한 기준을 기반으로 했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실행되는 능동적인 접근 방식이다. 이를 다시 설명하자면, 기부자가 시간적인 여유를 충분히 두고, 조정 가능한 유연한 체계에 따라 권한 공유를 추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새로운 사업을 착수하는 단계에서부터 의사결정권을 얼마나 공유할지, 한계선을 어디까지 둘 것인지에 대해 기본적인 합의를 거치는 것이 특히 도움이 된다. 물론 시간이 흘러 사업이 진전되면서 이 균형은 바뀔 수 있다. 유연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더 탁월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초기에는 예상치 못한 방식에 대해서도 허용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아갈 길
권한 공유는 계속 발전하고 있지만, 한계도 있는 방식이다. 권한 공유를 통해 한 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말고, 알 수 없고 통제 불가능한 상황의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자선 활동가는 외부에서 들어온 영웅이나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는 대신, 커뮤니티의 주체성을 북돋우며 함께 일해야 한다. 커뮤니티의 요청이 있을 때 참여하는 방식을 유지하면서 말이다. 권한 공유는 도덕적 의무인 동시에 필수적 전략이다.
참고
1 . 플로우 펀딩 Flow Funding은 자금 배분 권한을 중앙 집중형에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Flow Funder)에게 위임하여, 지역사회나 현장의 필요에 맞게 유연하고 분산적으로 기부 자금을 배분하는 필란트로피 모델이다. 이는 현장 전문가의 지식과 민첩성을 활용해 더 효과적이고 혁신적인 지원을 가능하게 하며, 신뢰와 협력에 기반한 접근법으로, 전통적 기부 방식의 한계를 보완한다.
> 원문 기사 보기
SADAF RASSOUL CAMERON
사다프 라솔 캐머런은 킨들프로젝트의 공동창립자이자 사무국장이다. 인디 필란트로피 이니셔티브의 공동창립자이기도 하다.
ARIANNE SHAFFER
아리안 셰퍼는 킨들프로젝트 사업국장이며 인디 필란트로피 이니셔티브의 공동창립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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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란트로피
권한을
당사자에게
재단, 소멸을 선택하다
SADAF RASSOUL CAMERON · ARIANNE SHAFFER
Summary. 우리는 십 년 넘게 여러 방식의 권한 공유 모델을 킨들 프로젝트(Kindle Project)에 적용해 왔다. 그동안 새로운 통찰이 많이 축적되었지만, 지원기관이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커뮤니티와 권한을 공유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은 변함이 없다.
부와 기회의 불평등이 극심한 세상에서 권한 공유는 필란트로피의 혁신적인 접근 방식으로 부상했다. 이제 권한 공유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더 많은 후원자와 기부자가 지속적인 방식으로 권한을 공유할 수 있을까? 그리고 왜 그래야 할까?
킨들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십 년 넘게 신뢰에 기반해 권한을 공유하는 기부 모델과 참여형 의사 결정 방식을 육성하고자 노력해 왔다. 또한 이 작업이 커뮤니티와 기부자 양측 모두에게 미치는 영향을 확인했다. 어느 커뮤니티 단체 리더는 권한 공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자선 활동을 둘러싼 권력의 벽을 무너뜨려 더 생산적이고 활용가능하며, 투명하고 인간성을 중시하는 자선 기관으로 나아가기 위한 작업의 출발점입니다.”
권한 공유는 커뮤니티를 중심에 두고 무엇이 얼마나 필요한지, 어떤 방식으로 지원을 받아야 좋을지, 무엇을 성공으로 정의할지 스스로 결정하게 만든다. 커뮤니티의 자기 결정권이 없으면 우리가 변화시키고자 하는 시스템을 뒤흔들기란 불가능하다. 하이랜더센터의 공동사무국장이자 무브먼트포블랙라이브스의 리더인 애쉬-리 헨더슨은 “우리가 승리하기를 바란다면 후원하라”고 말한다. 권한이 공유되었을 때만 영구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권한 공유란 무엇인가?
권한 공유는 참여형 배분 방식이라고도 말한다. 권한 공유는 커뮤니티 구성원이 의사결정권자가 되도록 하여 자선기관을 민주화한다. (의사결정권자는 커뮤니티 의사결정권자, 자원흐름 촉진자, 커뮤니티 자문가 등으로도 부를 수 있다.)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배분 관련 결정을 내리고, 변화를 만들 영역을 설정하고, 예산을 검토하고, 전략을 수립하고, 영향력 있는 직책을 맡게 된다. 권한 공유 방식에서는 이해가 충돌하던 관계를 상호호혜적으로 만들고, 기존의 신뢰 관계를 활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높게 평가한다. 권한 공유는 (필란트로피 영역을 포함하여) 커뮤니티 안팎으로 관계망을 형성해, 의사결정권자가 전통적인 자선사업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던 방식으로 자원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다.
권한 공유는 실제적이고, 학습적이고, 관계적이다. 권한 공유는 과학이 아니기에 이 과정을 알고리즘으로 만들 수는 없다. 이는 관계와 신뢰에 관한 것이다.
권한 공유는 전통적인 모델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전통적으로 대부분 백인 남성의 기부자들이 폐쇄적인 방식으로 부를 통제하며 자선 활동의 방향을 좌우하고, 전략과 성공의 기준을 정해왔다. 아래의 몇 가지 통계를 통해 그 실상을 알 수 있다.
• 미국에는 127,595개의 재단이 있으며 자산 총액은 1조 2천억 달러이다. 기부금 총액은 900달러인데, 최소 분배 의무 기준인 5%까지만 기부금을 사용하는 재단들의 관행으로 인해 1조 1,100억 달러가 묶여있는 상황이다.
• 현재 미국 재단의 대표 92%, 상근직원 83%, 프로그램 담당자 68%가 백인이다.
• 미국 인구 중 40% 이상이 비백인이지만, 유색인 커뮤니티에 이로운 활동을 지원하는 기금 총액은 7%에 못 미친다. (권한 공유를 염두에 두고 집행하는 기금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 기부자, 커뮤니티, 현장 활동 단체 사이에 보다 공평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권한 공유의 최소한의 목표이다. 엘리트가 주도하는 필란트로피 영역에는 창조적 상상력과 다양한 접근방식이 절실히 필요하다.
진보적 필란트로피 영역에서는 여러 가지 과감한 시도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러한 시도를 가리키는 유행어가 넘쳐 난다. 신뢰 기반 필란트로피trust-based philanthropy, 참여형 기금 배분participatory grantmaking, 탈자본주의 필란트로피post-capitalist philanthropy, 사회정의 필란트로피social justice philanthropy, 탈식민화 필란트로피decolonizing philanthropy,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필란트로피just-transition philanthropy, 대담한 기부bolder giving, 독립 자선indie philanthropy, 커뮤니티 기반 필란트로피community-based philanthropy 등이 그것이다. 이런 트렌드들은 이미 수 세대에 걸쳐 실천해 온 커뮤니티나 재단들의 관행을 적용하거나 재구성한 경우가 많다. 필란트로피 영역이 “혁신”해야 한다는 압박에 내몰리면 좁은 시야에 갇힐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과거 여러 재단과 기부자가 시도했던 정의의 가치에 부합하는 관행을 탐색하고 실행하는 필수적인 과정을 생략하게 된다.
물론 새로운 유행어나 유명 인사를 통해 지지자들을 결집하는 것도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본래의 의도가 희석될 수도 있고, 참여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힘을 잃을 수 있다. 또한 간단한 가입만으로 누구나 신뢰 기반 후원자나 사회정의 기부자, 참여형 기금배분가를 자처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실질적인 권한을 넘겨주는 방식으로 이 부문의 낡은 구조를 해체하고자 노력하는 개인과 집단들이 여전히 많다. 매리언 록펠러 웨버는 30여 년 전에 플로우펀딩Flow Funding1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현재 다양한 형태로 권한을 공유하는 우수 기관 사례가 나타나고 있으며, 그 예로는 국제적인 플로우펀딩 프로그램인 리제너러시티Regenerosity, 커뮤니티 자문위원회인 래디컬이매지네이션가족재단Radical Imagination Family Foundation, 커뮤니티 대표성을 반영한 이사회를 구성한 판타레아재단Panta Rhea Foundation, 현지화된 의사결정 모델을 활용하는 국제 중개기관인 글로벌그린그랜츠Global Greengrants, 커뮤니티 긴급 대응 프로그램인 긴급행동기금Urgent Action Fund, 활동가가 주도하여 전략 수립 및 의사결정을 하는 재단인 게릴라재단Guerrilla Foundation, 재단이 창설한 기빙 클럽을 가지고 있는 노스스타재단North Star Fund 등이 있다. 이렇게 점차 늘어나는 사례들에는 필란트로피 영역 자체를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사회정의 투자자 조직화 기관들도 포함된다. (저스티스펀더스Justice Funders, 솔리데어Solidaire, 에지펀더스얼라이언스EDGE Funders Alliance, 체인지필랜트로피Change Philanthropy를 비롯해 일일이 나열하지 못한 여러 기관이 있다.)
왜 권한을 공유해야 하는가?
권한을 공유해야 할 이유는 다양하다. 일부 기관에서는 권한을 넘기는 것이 옳으며, 정의로운 방향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기 위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극심한 부의 불평등을 초래한 시스템을 인식하게 되면, 권한을 공유하여 현 상태를 뒤흔들려는 의지를 발휘할 수 있다. 한편, 권한 공유를 배상의 한 형태로 보거나 기본적인 원칙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재단의 사업 효과성을 검토한 결과, 비공개적 의사결정 방식이 성과를 떨어뜨리고 해악을 발생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 재단은 폐쇄적으로 내부에서 진행되는 일과 외부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 사이의 간극에 줄이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권력을 공유하기도 한다.
개인 기부자가 권한을 공유하려는 동기는 좀 더 개인적이다. 기부가 익명성의 보호막 아래에서 비밀리에 이루어지곤 하기 때문에, 기부자 중 고립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계급적 역학으로 인해 부유층에게는 차별화된 정체성이 생성되는데, 이는 부유층과 그 외의 사람들을 가르는 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부자는 공동체를 찾기 위해, 자신이 믿는 가치대로 살기 위해, 공동체적 가치에 동참하기 위해 권한 공유에 관심을 가진다. 권한을 공유하기 위해 행동하면 기부자와 커뮤니티 구성원 사이를 가로막던 장벽이 무너지고, 공감이 발휘되어 상대의 입장에 서 보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어느 플로우 펀딩 참여자는 “함께 행동할 때, 우리는 함께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2021년에는 재단들의 기금 총액의 절반가량이 수혜기관 1%에게 집중적으로 배분되었다. 참여형 기금배분방식은 이런 관행을 깨뜨린다. 다른 어떤 곳보다 시급한 일을 하고 있음에도 주류 자선 기관의 시야에서 비껴나 있는 집단으로 기금이 흘러갈 자리를 만든다. 커뮤니티 의사결정권자는 평소 현장에 가까이 접하기 때문에 이렇게 최전선에서 일어나고 있는 활동들을 잘 알고 있다. 특히 지역 중심 후원자의 경우, 기금배분 권한을 커뮤니티 구성원에게 넘겨주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이롭다. 예를 들어, 뉴멕시코주 중심의 젠더 정의 참여형 기금인 킨들프로젝트 슬로우퓨즈펀드Kindle Project Slow Fuse Fund에서는 의사결정에 참여한 몇 명의 여성들을 통해 우리가 15년 동안 주 내에서 활동하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여러 단체에 투자할 수 있었다. 권한을 공유하면 시야를 넓어져 기금이 필요한 곳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어떤 해법을 추구할지는 커뮤니티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코러스재단의 네트워크책임자이자, 저스티스펀더스의 정의로운전환 조직가로 활동했던 시드니 팽Sydney Fang은 코러스재단과 리치먼드아워파워연합Richmond Our Power Coalition이 장기간에 걸쳐 참여형 기금배분 사업을 함께 추진하도록 촉진했다. 특히 팽은 지역에 기반한 기금에서 커뮤니티 의사결정권자가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위원회에 누가 있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 이들은 주민들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운동의 지형이 어떠한지를 이해하고 매일 캠페인에 관여하는 사람들입니다. 지원대상자의 기금 지원신청서가 완벽하지 못해도 위원회 구성원들은 바로 알아볼 수 있어요. 이들은 커뮤니티의 일원이 아니고서는 접할 수 없었을 직접적인 정보를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죠. ‘아, 이 단체가 유권자를 모으고 투표율을 높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건 이미 잘 알지’하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킨들프로젝트의 모든 기금에서 이처럼 상호 이익이 증진되도록 노력한다. 2020년에 시작한 선주민여성플로우펀드Indigenous Women’s Flow Fund, IWFF에서는 선주민 여성 6명이 의사결정권자로서 자신들의 비전에 따라 기금의 방향을 설정하게 했다. 커뮤니티 의사결정권자로 킨들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과 동일하게, 이 여성들은 활동에 참여하는 만큼 충분히 보상받는다. 유사하게, 기부자도 기부자 학습 모임에 참여한다. 현재까지 이런 방식을 통해 선주민이 참여로 진행되는 80여 개 사업에 1,800만 달러 이상이 미전역에서 배분되었다. 선주민 여성집단은 자기 공동체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배분 관련 결정에 의문이 있으면 서로 의견을 구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에 대한 기부자의 신뢰가 쌓이면서 기금을 더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게 된다.
필란트로피 기부금 중에서 선주민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0.4%에 불과하다. 미국 필란트로피 전문가의 43%가 유색인인데, 그중 선주민은 0.8%에 불과하다. 이런 수치만 봐도 권한을 넘길 필요가 뚜렷해진다.
커뮤니티들이 자원을 주고받고 서로 북돋울 때, 외부의 구원자에 의지할 필요가 사라지고 결과적으로 복원력이 강해진다. 또한 더 역동적이고 다양한 생태계가 형성되어 자선 기관이 판에 박힌 틀에 갇힐 위험이 제거된다. 예상 가능한 단체를 지원하는 것은 안전해 보여도, 우리가 고치고자 하는 시스템의 약점을 강화할 뿐이다.
우리 앞의 과제들
돈에는 불편한 권력관계와 역사적 트라우마가 엮여있다. 특정 집단이 의사결정의 테이블을 독차지하게 되면, 그 외 다른 집단은 제외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긴급한 상황에 비해 참여의 속도가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한 기관이 추구하고자 하는 전략에 맞지 않는 기부금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해결할 과제가 쌓여 있다.
기부자와 재단들이 기본적으로 맞닥뜨리는 과제를 몇 가지 살펴보자.
• 기부자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접촉하고 긴밀히 공유하는 관계를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돈과 권한을 넘긴다고 해서 꼭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돈으로 진정한 관계를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 돈에 대한 결정권은 넘겼지만, 커뮤니티 구성원이 내린 배분 관련 결정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 (가족재단, 기부자조언기금 등) 기존 재정 구조를 유지한 채로 권한 공유 방식을 도입하려 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 참여형 방식을 경험해 본 인력이 부족한 재단에서는 권한 공유 방식을 도입하고자 해도 방법을 모르고 경험도 부족할 수 있다. 권한 공유를 실행하려는 기부자는 그 일을 담당할 팀을 꾸려야 할 수도 있다.
• 돈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면, 기부 목적에 대한 의식이나 자부심이 흔들리는 기부자도 있다. (하지만 권력을 공유할 마음의 준비가 된 기부자라면 이 정도 문제는 대부분 이미 극복했을 것이다.)
한편, 커뮤니티 의사결정권자가 마주할 수 있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 재정 관련 결정에 처음 참여하는 커뮤니티 구성원도 기부자가 맞닥뜨리는 위와 같은 문제들을 똑같이 겪곤 한다. 고립감과 압박감을 느끼고 기존의 기금 배분 관행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경우가 흔하다.
• 커뮤니티 구성원에게 넘어간 권한은 리더 직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커뮤니티의 역학은 복잡 미묘하며, 돈을 좌우할 수 있는 권한으로 인해 균형이 깨질 수 있다. 그래서 익명으로 활동하는 것을 선택하는 의사결정권자들도 있다. 익명성이 안전성을 보장해 준다면, 투명성은 신뢰를 강화하고 역사적 트라우마를 덜어줄 수 있다.
• 생업과 커뮤니티에서 맡은 임무를 수행하는 것과 프로그램과 의사결정과정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병행하기 어려울 수 있다.
• 의사결정과정의 어느 시점부터, 커뮤니티 의사결정권자는 익숙한 범위를 넘는 정도까지 권한을 필요로 하거나 권한을 가지고 싶어 할 수 있다.
• 돈의 흐름과 방향을 조정하는 일은 신중하게 해야 하지만, 변화의 과정에 여러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기억해야 한다.
권한 공유에 대한 근본적 이해
권한 공유는 계속되는 과정이기에 정형화될 수 없다. 이것은 최소한의 시간 내에, 미리 정해놓은 '바람직한' 방식으로, 긴급하게 자원을 배분하여, 위기에 대응하는, 소위 ‘크로스핏형 필란트로피’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권한 공유는 실제적이고, 학습적이고, 관계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커뮤니티가 필요하고, 책임있는 주체가 필요하며, 실험할 의지가 필요하다. 권한 공유의 시작부터 끝까지,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권한 공유는 공식이 존재하는 과학이 아니다. 그러나 이 방식을 실험해 온 사람들은 권한 공유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지혜를 보탤 수 있다.
가치 | 참여형 기금배분을 윤리적으로 수행하려면 파트너 간에 공통의 가치를 공유해야 하고, 형평성을 기반으로 협력해야 한다. 이러한 가치가 결여될 경우, 참여형 기금배분은 평등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는커녕 평등을 해치는 반민주적 행위가 되어 두려운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편견에 사로잡힌 후원자와 커뮤니티 의사결정권자는 참여형 기금배분과 유사한 도구를 사용하여 포퓰리즘 사상을 조장하는 극단주의 풀뿌리/가짜시민단체를 키울 수 있다. 이런 도구는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사회 및 경제 정의에 부합하는지 명시해야 하며, 이러한 사회 및 경제 정의가 모든 시도를 평가하는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
권한 공유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의사결정의 기준점이 될 수 있는 비전이 잘 구축되었을 때 효과적으로 실행된다. 또한 의사결정권을 가진 구성원들이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가치를 공감할 때 제대로 실행될 수 있다. 참여형 기금배분을 실행할 때 커뮤니티의 가치가 구현되어야 하며, 비전은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 커뮤니티와 기부자 모두 어떤 가치가 활동의 근간이 되는지, 더 큰 규모의 사회 운동의 가치로 확장될 만한 가치는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구현해야 한다. 한 커뮤니티 의사결정권자는 자신에게 기준점이 되는 비전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구성원 모두를 포용하고, 지구와 동물을 우리의 가족으로 여기며, 이성적이고 인지적인 사고뿐 아니라 감정적 지능과 경험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신체적 자아의 충만함을 누리며 살고, 불의와 고통의 근원을 해결하는 치유와 정의의 기법을 실천하는 세상이다.”
시간을 할애하고 기다리기 | 건전한 민주주의가 그러하듯이 참여형 기금배분을 구현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며, 구성원들은 그때그때 발생하는 변수에 대응할 여력을 준비해야 한다. 권한과 돈에 수반되는 복잡성을 다룰 수 있는 여유 시간이 없으면 고치고자 하는 시스템을 도리어 답습할 위험이 있다. 커뮤니티에는 문화적으로 좀 더 적합한 관행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 예를 들어 IWFF에 참여하는 선주민 여성 집단은 자연과 계절의 주기에 맞춰진 커뮤니티의 문화적 관행을 따라 의사결정을 한다. 문화적 관행을 고려하기 위해 킨들프로젝트에서는 내부 사업 운영 계획을 유연하게 실행한다. 긴급히 대응해야 할 상황으로 판단되더라도 커뮤니티 고유의 절차를 존중하는 것이 기부자와 재단의 역할이다.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복합적인 긴장 관계가 이어질 수 있지만, 호기심과 열린 자세로 불편을 감수할 때 후원자들은 필요와 위기에 대응하는 또 다른 방식을 익히게 될 것이다.
시드니 팽은 코러스재단과 리치먼드아워파워연합의 협업을 촉진하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 시간을 고려하는 것이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제가 듣기로, 참여형 기금배분을 어렵게 하는 문제 중 하나는 사람들이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여형 기금배분에 함께 하려면, 다른 활동이나 캠페인을 진행할 시간과 커뮤니티에 관여할 시간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래서 이 일을 추진하는 동안 저희는 참여자들이 위원회에서 지원서나 수치만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기금배분을 하면서 자신의 활동 또한 진전시킬 수 있도록 고민하였습니다. 진행 중인 운동에 어떤 방식으로 협력자들을 참여시킬지 숙고하면서 기금배분에 참여하면, 커뮤니티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끈끈히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중재자 | 권한을 넘기려는 노력은 능숙한 중재자와 촉진자의 도움이 있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이들은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건강한 공간을 형성해 준다. 뿐만 아니라 원대한 비전을 구체적인 성과로 실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다. 중재자와 촉진자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한 기금 지원이 부족하고 이들의 중요성 또한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
IWFF의 경우, 킨들프로젝트가 수행한 중자재로서의 역할은 기부자와 플로우펀더 모두 각자의 속도에 맞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고, 자신과 유사한 동료들과 함께 안전하게 학습하도록 보장하는 것이었다. 무엇이 가장 시급한 문제인지를 파악하고 탐구할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리는 행정 업무를 전담하여 선주민여성들이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기부자와 커뮤니티 구성원이 한자리에 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권력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노력하였다. 킨들프로젝트 사업의 어느 기부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자원과 권한에 대한 결정권을 내려놓고 나니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모든 사업에 정답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이죠. … 또한 우리를 연결해 주는 중개자와 통역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권한 공유는 한 사람의 힘으로 실현될 수 없다. 필란트로피 영역의 중재자는 연결성을 형성하고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유연성 | 권한 공유는 관계를 형성하고 지속적인 신뢰를 구축하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서는 커뮤니티 나름의 기준에 맞도록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참여형 기금배분이 수동적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능동적인 접근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참여형 기금배분은 공동체의 지혜를 중심에 두는 방식이며, 투명성과 견고한 구조, 명료한 기준을 기반으로 했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실행되는 능동적인 접근 방식이다. 이를 다시 설명하자면, 기부자가 시간적인 여유를 충분히 두고, 조정 가능한 유연한 체계에 따라 권한 공유를 추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새로운 사업을 착수하는 단계에서부터 의사결정권을 얼마나 공유할지, 한계선을 어디까지 둘 것인지에 대해 기본적인 합의를 거치는 것이 특히 도움이 된다. 물론 시간이 흘러 사업이 진전되면서 이 균형은 바뀔 수 있다. 유연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더 탁월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초기에는 예상치 못한 방식에 대해서도 허용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아갈 길
권한 공유는 계속 발전하고 있지만, 한계도 있는 방식이다. 권한 공유를 통해 한 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말고, 알 수 없고 통제 불가능한 상황의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자선 활동가는 외부에서 들어온 영웅이나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는 대신, 커뮤니티의 주체성을 북돋우며 함께 일해야 한다. 커뮤니티의 요청이 있을 때 참여하는 방식을 유지하면서 말이다. 권한 공유는 도덕적 의무인 동시에 필수적 전략이다.
참고
1 . 플로우 펀딩 Flow Funding은 자금 배분 권한을 중앙 집중형에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Flow Funder)에게 위임하여, 지역사회나 현장의 필요에 맞게 유연하고 분산적으로 기부 자금을 배분하는 필란트로피 모델이다. 이는 현장 전문가의 지식과 민첩성을 활용해 더 효과적이고 혁신적인 지원을 가능하게 하며, 신뢰와 협력에 기반한 접근법으로, 전통적 기부 방식의 한계를 보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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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AF RASSOUL CAMERON
사다프 라솔 캐머런은 킨들프로젝트의 공동창립자이자 사무국장이다. 인디 필란트로피 이니셔티브의 공동창립자이기도 하다.
ARIANNE SHAFFER
아리안 셰퍼는 킨들프로젝트 사업국장이며 인디 필란트로피 이니셔티브의 공동창립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