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란트로피]재단도 평가의 대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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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란트로피 · 측정과 평가
재단도 평가의
대상이어야 한다

2023-4


CAROLINE FIENNES



Summary. 영국 재단의 운영 방식을 개선시키기 위해 재단 운영 평가 등급Foundation Practice Rating이 만들어졌다.



영국 자선재단들의 이사진은 주로 은퇴한 백인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대부분이 부유층 출신이며, 재단 직원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러한 재단 내부 구성원의 인구 특성은 재단이 지원하는 대상자 그룹의 인구 특성과 잘 맞지 않는다. 이와 같은 불일치는 재단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고, 재단이 지원하는 조직들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 또한 잠재적인 수혜자나 재단에서 일하고자 하는 구직자의 지원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사실, 재단은 유독 책무성으로부터 자유롭다. 대부분의 재단은 이미 자원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자원을 두고 경쟁할 필요가 없다. 정부는 재단의 성과나 관행에 대한 평가를 의무화하지 않으며, 재단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재단의 선택에 따라 이루어진다. 재단은 외부 평가를 받을지, 수혜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그 결과를 공개할지도 자체적으로 결정한다. 


영국의 일부 재단들은 이러한 평가 시스템으로는 미흡하다고 보면서, 외부 조사와 같은 방식을 도입해 더 진전된 조치를 마련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이들은 매해 영국의 커뮤니티 재단과 대형 재단 중 100곳을 선정해 다양성, 책임성, 투명성의 관점에서 재단을 평가하는 획기적인 프로그램 자선재단 운영 평가 등급Foundation Practice Rating, FPR에 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평가 기준 설정, 시스템 개발, 데이터 조사 및 분석은 필자가 운영하는 독립 연구 및 컨설팅 기관인 기빙 에비던스Giving Evidence가 담당했다. 이 연구는 재단 홈페이지나 공식 연차 보고서에 발표된 공개 자료, 즉 예비 수혜자나 구직자가 접할 수 있는 동일한 종류의 정보만을 활용해 수행되었다.


대상으로 선정된 재단은 평가에서 제외될 수 없고, 평가 과정이나 결과에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다. 평가를 받은 각 재단은 세 가지 세부 영역과 전체 영역에서 A(최고), B, C, D(최저) 중 한 개의 등급을 부여받게 되는데, FPR은 순위에 따른 등급이 아니며, 등급의 전체적인 분포 비율도 고려하지 않는다. 평가에 따라 모든 재단이 최고 등급인 A를 받을 수 있고, 최저 등급인 D를 받을 수도 있다. 한 재단의 등급이 올라간다고 해서 다른 재단의 등급이 떨어지지 않으며, 모든 결과는 분석 내용과 함께 공개된다.


이러한 평가는 막강한 재단들에 대해 이루어진 유례없는 감사audit였다. 우리 연구자들은 재단의 다양성과 책임성에 대한 회의와 논의가 지난 수년간 진행되었지만, 재단의 관행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점을 발견했다. 우리는 재단 평가 제도를 마련함으로써 재단들이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평가 방식과 결과

다양한 유형과 특성의 재단을 대상으로 하는 평가 방식을 개발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적용 가능하고, 외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다양성, 책임성, 투명성 기준을 검토했다. 평가 기준에 재단의 우선순위, 재단 직원, 재단에서 수혜자 피드백 제공 여부 및 방법 등 재단의 공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재단 센터Foundation Center에서 운영한 미국 웹사이트인 글래스포켓GlassPockets이나 국제 개발 분야에서 인종 평등에 대한 책임 의식을 높이기 위해 만든 지표인 인종 평등 지수Racial Equity Index같은 기존 등급 시스템을 참조해 최대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평가를 진행하고자 했다. 다양성을 평가하기 위한 특징은 자체적으로 정의하는 대신, 영국의 평등인권위원회UK Equality and Human Rights Commission가 임금 격차 리포트에서 권고하는 인종, 장애, 젠더라는 세 가지 특징을 따랐다.


우리는 지원금 규모나 제약 조건, 모니터링 과정과 같은 자금 지원 방식을 평가하지 않는다. 이런 부분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탁월한 운영 방식이라는 건 목적과 분야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고, 운영 방식은 외부에서는 쉽게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임팩트에 대해서도 조사하지 않는다. 재단의 임팩트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이지만, 기빙 에비던스와 같은 다른 단체가 이 부분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조사하지 않는다. 재단 100곳을 대상으로 임팩트 측정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고, 재단 업무의 이질성을 고려해 의미 있는 비교를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매년 설문 조사를 실시해 FPR 프로세스와 심사 기준을 정하고 구체화한다. 그리고 조사를 시작하기 전 심사 기준과 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방안을 함께 발표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FPR의 활동이 특정 대상을 가려내려는 목적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매년 100개의 재단 목록을 구성하는데, 여기에는 FPR에 자금을 지원하는 재단(누구도 FPR의 펀더들이 다른 재단을 비난한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원 규모를 기준으로 영국 내 5대 재단(수혜자의 경험을 크게 좌우하므로), 영국 커뮤니티 재단 중 무작위로 선정된 재단, 그리고 독자적으로 발표된 영국 내 가장 큰 재단 약 300곳이 포함된다. 독립적으로 일하는 두 명의 연구자가 각 재단을 조사하며, 조사 결과는 제3의 연구원이 비교해 조정한다. 관련이 없거나 해당하지 않는 기준에 대해서는 조사가 면제된다(예: 직원이 없거나 매우 작은 규모의 재단인 경우, 임금 격차 데이터 보고 대상에서 제외).


첫 해 데이터는 2021년 가을에 집계하여 2022년 3월에 발표했고, 2차 연도 데이터는 2022년 가을에 집계하여 지난 3월에 공개한 바 있다. 면제 기준 중 하나가 변경된 것을 제외하고는 2년 동안 기준을 동일하게 유지함으로써 혼선을 예방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제공해 전년 대비 비교가 가능하게 했다.


조사를 진행하며 발견한 가장 놀라운 사실은 재단들이 이러한 평가를 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재단이 이 새로운 시도가 재단 조직 내 혁신을 위한 원동력이 되었고, 일부 사안을 의제화했으며, 그동안 간과되었던 몇 가지 우려 사항을 부각했다고 밝혔다. 2년에 걸쳐 FPR 평가 기준을 활용해 재단 자체 평가 체크리스트로 활용하고 있다는 반응도 들을 수 있었다.


첫해에는 단 세 개의 재단만이 종합 등급 A를 받았으나, 두 번째 해에는 그 수가 7곳으로 늘어났다. 2년 연속으로 최고 등급을 받은 재단으로는 유럽 내 최대 규모인 웰컴 트러스트 재단Wellcome Trust Foundation, 소규모 출연 재단, 그리고 무작위로 선정된 목록에 올라와 있던 커뮤니티 재단이 포함되었다. 여기서 재단의 구조나 재정 규모와 관계없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어떤재단이든 적어도 한 가지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었는데, 이는 평가가 무리한 기준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보여준다.


다양성은 단연 지금까지 가장 취약한 영역이다. 많은 재단이 다른 두 영역에서는 A를 받았지만, 2년 동안 다양성에서 A를 획득한 재단은 전무하다. 그리고 두 해 모두 10개 기준 중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한 항목이 다양성과 관련이 있었다. 이 중에는 시각장애인이 재단 웹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는지와 같은 접근성 요소도 포함되었는데, 이는 재단의 활동에 참여할 사람들의 다양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측면에서 고려되었다.


실제 재단 직원과 이사진 구성의 다양성 부분은 해당 데이터를 공개하는 재단이 거의 없기 때문에 어떠한 의견도 제시할 수 없다. FPR이 도입된 첫해에는 성별, 인종 또는 장애 여부와 같은 직원의 다양성 관련 세부 정보를 공개한 재단이 4곳에 불과했다. 재단 이사진의 다양성에 대한 세부 정보를 공개한 재단도 한 곳뿐이었다. 2년 차에는 그 수가 약간 증가하여 6개 재단이 임직원의 다양성을, 5개의 재단이 이사진 구성원의 다양성을 보고했다. (캐나다 소재 흑인 커뮤니티 재단의 공동 설립자인 리반 아보코르Liban Abokor는 정부 차원에서 재단이 이사회의 다양성을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규정할 것을 제안했다.)


연락이 잘 닿지 않는 재단들도 많고, 웹사이트가 없는 재단도 많았다. 첫 해 조사에선 100곳의 평가 대상 재단 중 27곳에 웹사이트가 없었다. 여기에는 대형 다국적 투자 은행인 골드만삭스 산하 재단도 포함되어 있다. 2년차 평가에서는 웹사이트가 없는 재단이 22곳이었다. 평가받는 재단 대부분이 영국 내에서 가장 큰 재단에 속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의외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평가를 받은 각 재단에 해당 데이터를 보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재단이 공개적으로 게시한 연락처 정보를 사용했는데, 아쉽게도 많은 경우, 이메일 주소가 아닌 우편 주소를 제공하고 있었다. 이밖에도 이메일 주소가 info@ 또는 enquiries@ 처럼 재단 내 대표 공용 이메일 주소인 경우가 많았다. 재단들은 우리에게 자주 이메일을 받지 못했다고 말하곤 하는데, 이런경우 메일이 스팸 폴더로 들어가 확인되지 않은 채로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는 곧 예비 지원자를 포함한 외부자가 재단에 연락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연락처 정보로 연락해도 실제 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평가 등급과 재단의 총자산 혹은 후원금 예산에 따른 재정 규모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직원 수는 관계가 있었다. 두 해 모두 전체 D등급을 받은 재단은 모두 직원 수가 10명 이하였다. (직원 수가 13명이었던 재단 한 곳은 예외임). 이와 유사하게, 이사회의 경우도 일반적으로 더 많은 이사진을 보유할수록 더 좋은 성과를 나타냈다. 예를 들면, 2년 동안 10명 이상의 이사가 있는 재단 중 전체 D등급을 받은 재단은 단 한 곳뿐이었다. (한 번 더 언급하지만 직원 수나 이사진 구성원 수가 적은 재단은 일부 기준에서 제외된다.) 이러한 양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다양성, 책임성, 투명성 부문에서 좋은 관행을 실천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데, 인원이 너무 적으면 이러한 일을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

과연 FPR이 재단의 운영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결론짓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확실한 증거 자료도 아직 부족하다. 비교적 규모가 큰 영국 재단은 언제든지 FPR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고, FPR을 통해 재단 운영을 개선해 볼 수 있다. 또한 모든 재단은 이 기준을 살펴보고, 개선하는 데 활용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관련 자료 또한 참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전반적으로 볼 때, 두 해에 걸쳐 평가받은 재단들은 모든 영역에서 개선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무작위로 선정된 재단의 경우, 두 해 동안의 점수 변화가 엇갈렸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평가 과정과 기준이 재단에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일부 관계자들은 재단의 기금 지원 방식이나 환경 영향력 조사 등을 포함해 평가 범위를 확대할 것을 제안한다. 기빙 에비던스는 위에서 언급한 이유로 적어도 당분간은 평가 범위를 확대하지 않을 예정이다.


앞으로도 FPR은 매년 100개의 재단을 평가하여 그 결과를 발표하고, 효과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 사례를 지속해서 수집할 계획이다. 영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어떤 재단이라도 이 기준을 활용해 자체적으로 재단을 평가하고, 개선해야 할 부분을 파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국가에서도 자체적인 FPR을 개발할 수도 있다. 해당 국가의 재단에 대한 규제 방식, 재단이 사전에 공개해야 하는 내용, 기존 국가별 기준 및 정책 등에 따라 당사의 시스템을 조정해야 할 수도 있다. 현재까지 축적된 경험으로 볼 때, 공개적으로 재단을 평가하면 분명 변화의 인센티브가 생기고, 그 결과 3가지 중요한 영역에서 운영을 개선해 나간다는 가설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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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OLINE FIENNES

캐롤라인 피엔스(Caroline Fiennes)는 재단 실천 평가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기부자와 기금 제공자에게 합리적 근거에 기반한 기부에 대해 조언하는 기빙 에비던스의 이사이다. 현재 케임브리지대학교 전략적 자선센터의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트위터 주소는 @carolinefiennes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