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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프로젝트를
기록하다
2020-1
Summary. 시민 저널리즘 활동인 '왓 웬트 롱?'은 프로젝트 수혜자들의 제보를 통해 실패한 원조 프로젝트를 조사하고 개선점을 찾는 이니셔티브이다.
젊은 여성이 강간을 당해도 법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일이 케냐 북동부에서는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메리가명에게 일어난 일은 달랐어야 했다. 그녀와 같은 소녀들이 정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비영리기관들이 성폭력 피해 신고를 위한 핫라인을 몇 년 전 개설했기 때문이다. 핫라인은 머시 콥스Mercy Corps와 같은 대형 원조기관과 영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구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핫라인으로 전화를 걸어도 응답이 없는 경우가 빈번했다.
나이로비 주재 기자 안소니 랑앗은 말한다. “메리의 이야기는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원조 실패가 개개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깨닫게 됐습니다.” 그는 해외 원조사업의 실패 사례를 연구하는 시민 저널리즘 이니셔티브인 <왓 웬트 롱 (What Went Wrong?: 무엇이 잘못되었는가?)>의 일환으로 해당 핫라인을 조사했다.
2018년 <왓 웬트 롱?>은 6개월 동안 케냐에서 142개의 실패한 원조 프로젝트의 사례를 모았다. 이때 해당 사업의 수혜자가 되었어야 했던 사람들로부터 전화 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실패 사례를 수집했다. 이는 해외 원조의 지출 및 논의 관련 기존의 방식을 뒤집어보기 위한 시도였다. 원조기관들은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를 평가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혜대상자들은 종종 제외되곤 한다.
조사에 참여한 사진 기자, 피터 디 캄포는 “심각한 힘의 불균형이 존재합니다.”라고 말한다. “해외 원조를 받는 수혜대상자들은 보통 발언권이 별로 없습니다. 어떤 도움, 개입을 원하는지, 어떤 원조가 가장 큰 혜택을 줄지 그들에게는 스스로 선택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이러한 대화가 이뤄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해외 원조를 받는 사람들의 손에 힘을 실어주기 위함입니다.”
<왓 웬트 롱?>은 8개의 실패 사례를 데벡스가 3월에 발간한 조사 시리즈investigative series에 게재한 바 있다. 케냐의 최대 슬럼가 키베라에 있는 공중화장실의 경우 위생 환경을 개선하고자 구축됐지만 상하수도 연결에 실패해 후에 교회로 용도가 변경됐다. 또 다른 사례로는, 슬럼가의 전력망 통제권을 두고 월드뱅크the World Bank와 현지폭력조직/지역깡패 간에 분쟁이 벌어진 경우도 있었다.
<왓 웬트 롱?>은 지역 라디오에 우선적으로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홍보했으며, 그 지역에서 실패한 프로젝트를 자신들에게 제보할 수 있도록 장려했다. 망가진 우물, 텅빈 학교 건물과 같이 실패한 프로젝트를 누군가 제보하면 제보자에게 간단한 서베이 문자를 보내고 저널리스트팀에서 그 제보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확인 작업이 완료되면, 프로젝트에 관여했던 관련기관에게 그들 이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실패 사실을 통보했다.
실패한 많은 프로젝트들이 해당 지역에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실패한 프로젝트들을 찾으려는 이러한 메커니즘이 없었다면 해당 사례들이 국제적인 미디어에 보도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라고 디캄포는 말한다.
실패한 프로젝트를 찾자는 아이디어는 그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됐다. 2007년 가나의 시골에서 피스 콥스의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던 그는 가정용 피트 즉, 재래식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확보했다. 자원만 제공하면 누군가는 화장실을 지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몇 년 후 그가 이 지역을 다시 방문했을 때, 마을 곳곳에는 온통 미완의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흩어져 있었다. 단 한 가정도 화장실 설치를 완료하지 못했다.
디캄포는 아프리카에서 실패한 다른 여러 프로젝트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마을 길을 다니거나, 걸어 다니다 보면 실패한 원조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문화적 소통의 실패, 부패, 아이디어 자체 시작의 실패 등이다. 그런데 디캄포가 빈번히 마주하게 되는 또 한 가지의 실패 원인은 바로 원조에 대한 논의가 일방적이었다는 점이다.
디캄포는 “원조 기관들은 일반적인 회사가 고객 서비스에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만약 당신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면, 고객이 다른 회사 제품 대신 당신 회사 제품을 선택했다는 것은 당신이 자신의 일을 잘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대외 원조에는 그런 메커니즘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여기에 피드백 메커니즘을 도입한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 이라고 설명한다.
“독립적인 검증 과정에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라고 글로벌 디벨롭먼트 센터Center for Global Development의 선임 연구원, 빌 세이브도프는 말한다. 또한 “이는 그들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이며, 좋은 시민이 될 수 있는 길입니다. 또한 힘의 불균형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라며, 그러나 쉬운 길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실패 사례로 보고된 프로젝트에 대해 책임을 갖고 있는 원조기관으로부터 응답을 듣는 것이 때로는 어렵다. 그리고 제보플랫폼을 유지하는 데에는 많은 비용이 들고, 확장이 까다롭다. 그러나 타깃한 수혜대상자를 돕는 일에 종종 실패하곤 하는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는 수혜대상자들과의 대화를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알고 있다. 저널리스트 랑앗은 “이 프로젝트들 중 일부는 사업 수행기관이 기획단계에서부터 프로젝트의 타깃 수혜 대상자들과 상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실패했습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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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IGAIL HIGGINS
애비게일 히긴스(ABIGAIL HIGGINS)(@ABBYHIGGINS)는 워싱턴DC에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이다. 글로벌헬스, 젠더, 인권과 국제개발협력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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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협력
실패한 프로젝트를
기록하다
2020-1
ABIGAIL HIGGINS
Summary. 시민 저널리즘 활동인 '왓 웬트 롱?'은 프로젝트 수혜자들의 제보를 통해 실패한 원조 프로젝트를 조사하고 개선점을 찾는 이니셔티브이다.
젊은 여성이 강간을 당해도 법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일이 케냐 북동부에서는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메리가명에게 일어난 일은 달랐어야 했다. 그녀와 같은 소녀들이 정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비영리기관들이 성폭력 피해 신고를 위한 핫라인을 몇 년 전 개설했기 때문이다. 핫라인은 머시 콥스Mercy Corps와 같은 대형 원조기관과 영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구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핫라인으로 전화를 걸어도 응답이 없는 경우가 빈번했다.
나이로비 주재 기자 안소니 랑앗은 말한다. “메리의 이야기는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원조 실패가 개개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깨닫게 됐습니다.” 그는 해외 원조사업의 실패 사례를 연구하는 시민 저널리즘 이니셔티브인 <왓 웬트 롱 (What Went Wrong?: 무엇이 잘못되었는가?)>의 일환으로 해당 핫라인을 조사했다.
2018년 <왓 웬트 롱?>은 6개월 동안 케냐에서 142개의 실패한 원조 프로젝트의 사례를 모았다. 이때 해당 사업의 수혜자가 되었어야 했던 사람들로부터 전화 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실패 사례를 수집했다. 이는 해외 원조의 지출 및 논의 관련 기존의 방식을 뒤집어보기 위한 시도였다. 원조기관들은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를 평가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혜대상자들은 종종 제외되곤 한다.
조사에 참여한 사진 기자, 피터 디 캄포는 “심각한 힘의 불균형이 존재합니다.”라고 말한다. “해외 원조를 받는 수혜대상자들은 보통 발언권이 별로 없습니다. 어떤 도움, 개입을 원하는지, 어떤 원조가 가장 큰 혜택을 줄지 그들에게는 스스로 선택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이러한 대화가 이뤄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해외 원조를 받는 사람들의 손에 힘을 실어주기 위함입니다.”
<왓 웬트 롱?>은 8개의 실패 사례를 데벡스가 3월에 발간한 조사 시리즈investigative series에 게재한 바 있다. 케냐의 최대 슬럼가 키베라에 있는 공중화장실의 경우 위생 환경을 개선하고자 구축됐지만 상하수도 연결에 실패해 후에 교회로 용도가 변경됐다. 또 다른 사례로는, 슬럼가의 전력망 통제권을 두고 월드뱅크the World Bank와 현지폭력조직/지역깡패 간에 분쟁이 벌어진 경우도 있었다.
<왓 웬트 롱?>은 지역 라디오에 우선적으로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홍보했으며, 그 지역에서 실패한 프로젝트를 자신들에게 제보할 수 있도록 장려했다. 망가진 우물, 텅빈 학교 건물과 같이 실패한 프로젝트를 누군가 제보하면 제보자에게 간단한 서베이 문자를 보내고 저널리스트팀에서 그 제보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확인 작업이 완료되면, 프로젝트에 관여했던 관련기관에게 그들 이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실패 사실을 통보했다.
실패한 많은 프로젝트들이 해당 지역에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실패한 프로젝트들을 찾으려는 이러한 메커니즘이 없었다면 해당 사례들이 국제적인 미디어에 보도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라고 디캄포는 말한다.
실패한 프로젝트를 찾자는 아이디어는 그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됐다. 2007년 가나의 시골에서 피스 콥스의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던 그는 가정용 피트 즉, 재래식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확보했다. 자원만 제공하면 누군가는 화장실을 지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몇 년 후 그가 이 지역을 다시 방문했을 때, 마을 곳곳에는 온통 미완의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흩어져 있었다. 단 한 가정도 화장실 설치를 완료하지 못했다.
디캄포는 아프리카에서 실패한 다른 여러 프로젝트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마을 길을 다니거나, 걸어 다니다 보면 실패한 원조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문화적 소통의 실패, 부패, 아이디어 자체 시작의 실패 등이다. 그런데 디캄포가 빈번히 마주하게 되는 또 한 가지의 실패 원인은 바로 원조에 대한 논의가 일방적이었다는 점이다.
디캄포는 “원조 기관들은 일반적인 회사가 고객 서비스에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만약 당신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면, 고객이 다른 회사 제품 대신 당신 회사 제품을 선택했다는 것은 당신이 자신의 일을 잘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대외 원조에는 그런 메커니즘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여기에 피드백 메커니즘을 도입한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 이라고 설명한다.
“독립적인 검증 과정에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라고 글로벌 디벨롭먼트 센터Center for Global Development의 선임 연구원, 빌 세이브도프는 말한다. 또한 “이는 그들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이며, 좋은 시민이 될 수 있는 길입니다. 또한 힘의 불균형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라며, 그러나 쉬운 길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실패 사례로 보고된 프로젝트에 대해 책임을 갖고 있는 원조기관으로부터 응답을 듣는 것이 때로는 어렵다. 그리고 제보플랫폼을 유지하는 데에는 많은 비용이 들고, 확장이 까다롭다. 그러나 타깃한 수혜대상자를 돕는 일에 종종 실패하곤 하는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는 수혜대상자들과의 대화를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알고 있다. 저널리스트 랑앗은 “이 프로젝트들 중 일부는 사업 수행기관이 기획단계에서부터 프로젝트의 타깃 수혜 대상자들과 상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실패했습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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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IGAIL HIGGINS
애비게일 히긴스(ABIGAIL HIGGINS)(@ABBYHIGGINS)는 워싱턴DC에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이다. 글로벌헬스, 젠더, 인권과 국제개발협력을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