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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미션 이코노미>
미션을 중심으로
경제 재구성하기
2025-4
Reviewed by 이가람
Summary. 전환의 시대, 어떤 미션을 세우고 어떻게 이룰 것인가?

미션 이코노미: 정부와 시장의 담대한 혁신(Mission Economy: A Moonshot Guide to Changing Capitalism),
Mariana Mazzucato 저(이가람 역), 238쪽, 이음, 2025년
경제에도 미션이 존재할까? 흔히 '경제가 살아야 사람이 산다'는 말을 떠올려보면, 경제의 사명은 결국 인간의 삶을 지켜내는 데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 경제는 그 미션을 얼마나 충실히 수행하고 있을까? 전 세계적으로 경제의 역할과 한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아마르티아 센 같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와 세계 경제 질서를 이끌어온 석학들까지 21세기에는 기존과 다른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1인당 GDP가 3만 달러를 넘어섰음에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경제 성장의 논리에 지배되고 있다. 그러나 성장 중심적 경제는 사람들의 삶을 지켜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 같은 전 지구적 충격이 닥칠 때마다 경제는 불안에 흔들리고, 정작 사람들을 보호하는 역할에는 무력해 보인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사회 불평등은 더욱 깊어지고 있고, 생태 위기는 한층 더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 경제학의 지식과 실천은 이러한 문제들 앞에서 번번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한국 경제 역시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요구가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
마리아나 마추카토, 국가의 역할을 재정의하다
이탈리아 출신의 경제학자이자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혁신 및 공공목적 연구소IIPP의 설립자 및 소장인 마리아나 마추카토Mariana Mazzucato의 최근 저서 <미션 이코노미: 정부와 시장의 담대한 혁신Mission Economy: A Moonshot Guide to Changing Capitalism>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경제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길 제안한다. 마리아나 마추카토는 전작 <기업가적 국가>와 <가치의 모든 것>에서부터 국가가 시장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혁신을 이끌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주체일 수 있다는 주장을 꾸준히 펼쳐왔고, 세계보건기구WHO 모두를 위한 보건경제위원회 의장, 유럽위원회EC 과학혁신 분야 특별 자문위원, 스코틀랜드 경제자문위원회 등 전 세계 여러 혁신정책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미션 이코노미>는 저자의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션 중심 경제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과 전환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를 정리한 책이다.
나는 사회적 경제, 대안경제, 사회적 가치에 관한 연구를 이어가던 중 <미션 이코노미>의 내용에 매료되어 이 책을 한국어로 직접 번역하게 되었다. 나는 연구자이자 번역자로서 이 책이 오늘날 한국 사회, 특히 미션 중심의 전환을 꿈꾸는 혁신의 주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소개하고자 한다.
경제의 미션 vs 미션을 위한 경제
<미션 이코노미>를 처음 접한 것은 2021년 말이었다. 코로나19가 여전히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던 시기였고, 동시에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도 커지고 있었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사회적 경제, 사회적 가치, 사회혁신 같은 담론이 이미 10년 넘게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경제 주체가 사회적 미션을 달성하는 일이 과연 가능한가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했고, 현장에는 미션을 이루려는 노력이 사회적으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해 답답해하는 이들도 많아 보였다. 나 역시 그 무렵 미션 드리프트mission drift―조직이나 정책이 본래의 목적과 가치에서 서서히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 시기 '미션 이코노미'라는 개념을 접하면서 나는 이 책이 사회적 가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환기가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미션 이코노미>는 1960~70년대 미국의 아폴로 달 탐사moonshot 프로젝트를 상기시키며, '미션 중심 경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얼핏 보기에는 '경제의 미션'과 '미션 중심 경제'가 비슷하게 들릴 수 있지만, 두 개념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기존 경제학에서 말하는 경제의 미션은 부의 총량을 늘리고, 최소 자원으로 최대 효용을 창출하며, 규모를 키우는 것에 맞춰져 있다. 이러한 목표는 경제 자체의 성장에 방점을 두었고, 사회 전반에서 나타난 불평등이나 기후위기 같은 문제는 경제가 인간의 삶과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드러냈다. 반면 미션 중심 경제는 사회적으로 이루어야 할 공동의 목표를 중심에 둔다. 여기서 '경제'는 단순한 성장 지표가 아니라, 공공경제, 시장경제, 영리와 비영리 부문을 아우르며 가용한 자원을 동원하고 조정하는 전체적 과정이다. 따라서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재정, 계약, 조직 운영, 노동 형태, 보상 체계, 제도와 파트너십까지 경제 전반의 요소를 종합적으로 다루게 된다.
이 차이는 미묘해 보이지만 결코 작지 않다. 200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역할, 사회적 기업, 사회연대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많은 조직들이 한계에 부딪혔다. 사회적 미션을 가진 기업과 단체는 시장 논리에 맞춰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았고, 새로운 가치 창출을 뒷받침할 정책과 제도는 부족했다. 마추카토는 이러한 한계를 '경제'라는 개념이 쌓아온 신화적 전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즉, 혁신은 기업의 몫이고 정부는 뒤에서 지원만 해야 한다는 생각, 정부가 혁신을 하려면 기업처럼 움직이거나 외주화해야 한다는 믿음은 근거 없는 신화라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이런 신화들이 정부의 손발을 묶어 시장 의존적 정책을 낳았고, 그 결과 자본주의는 기후위기, 복지 공백, 불평등이라는 난제를 키워왔다고 진단한다.
달 탐사 성공의 진짜 교훈
<미션 이코노미>는 제목과 표지 이미지부터 아폴로 달 탐사의 모티브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책의 내용을 과학기술 혁신과 관련지어 해석하는 이들이 많았다. 테슬라, 아마존 같은 민간기업 주도의 우주 개발이나 '한국판 NASA'를 표방한 항공우주청 설립 논의가 들려오는 상황에서는 그럴 만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의 강점은 단순히 달 탐사 성공의 성과를 나열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각 주체들이 내린 고민과 결정들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폴로 프로젝트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던 목표를 현실로 만든 사례였다. 이 책은 어느 누구도 가능성을 예측도, 확신도 할 수도 없던 프로젝트가 성공하기까지 적나라한 실패의 순간들과 그 순간에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내렸던 고민과 결정을 보여준다. 미국 정부는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며 위험을 감수했고, 그 결과 대기업과 수천 개의 중소기업, 대학, 연구기관, 사회 조직들이 협력하는 혁신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우주 산업이라는 새로운 시장 역시 그 과정에서 태어났다. 마추카토가 강조하듯, "'얼마가 들든' 해내겠다는 마음가짐을 사회문제 해결에 적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미션 이코노미>, 203쪽) 달 탐사의 교훈은 과학기술 혁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 기후위기, 복지, 불평등 같은 대규모 사회, 경제적 과제도 충분히 '미션'이 될 수 있다.
이 책에서 정부의 역할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부만의 주도'가 아니라 '목표 지향적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시장 중심으로는 공공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자원을 조정하고 협력을 촉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신자유주의 정부가 기능을 축소하거나 외주화에 의존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고 해서 국가 주도의 국책사업 모델을 재현하자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정부만이 아니라 다양한 부문의 자원을 모아내는 조정자, 협력 촉진자로서 정부를 이해해야 한다.
마추카토는 아폴로 프로젝트가 남긴 여섯 가지 교훈을 정리한다. ① 분명한 비전과 목적에 기초한 정부의 리더십 ② 위험을 감수한 실험 속에서 태어난 다양한 혁신 ③ 이를 뒷받침한 민첩하고 유연한 조직 ④ 우연과 협력을 통해 확산된 혁신 ⑤ 성과 기반 예산을 통한 재정 분배 ⑥ 협력자로서 재정립된 기업–국가 관계가 그것이다. NASA의 운영 방식은 정부가 '최초 투자자initial investor'이자 '혁신가innovator'로서 목표에 맞는 과감하고 현실적인 투자를 할 때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정부의 동적 역량dynamic capability이다. 변화하는 환경과 예기치 못한 문제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실패를 학습으로 전환하고 조직 구조와 운영 방식을 유연하게 만드는 힘이 필수적이다.
아폴로의 경험은 정부가 '위험 감수자risk taker'이자 '시장 창조자market shaper'로서 책임감 있게 상상력을 발휘할 때, 거대한 혁신이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한다. 마추카토는 말한다. '수십 년 전, 인간을 달에 보내는 불가능해 보였던 프로젝트도 실현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지금이라고 왜 담대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수 없겠는가.' 21세기 정부 역시 새로운 미션을 세우고, 그에 맞는 도구, 조직, 문화를 다시 발명할 수 있으며, 반드시 그래야 한다. 이 책을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읽는다면, 중요한 것은 정부만이 아니라 정부를 중심으로 한 협력의 방식이다. 그것이야말로 미션 경제를 현실로 만드는 출발점일 것이다.
미션지도-미션경제의 로드맵
<미션 이코노미>에서 소개하는 미션지도Mission map는 미션경제를 지탱하는 일곱 가지 원리를 시각화한 개념이다. 이는 마추카토가 여러 국가 프로젝트의 자문으로 참여하면서 실제로 활용해 온 방법이기도 하다. 미션지도는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기업, 소셜 섹터, 시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자원의 방향을 조정하는 '협력 로드맵'으로서 전략적 설계도의 역할을 한다.

미션지도는 해결해야 할 거대한 난제를 중심에 두고, 여러 부문의 참여가 이루어지는 현장 기반 실험들의 포트폴리오로 구성된다. 이 접근은 미션 달성이 부문 간 협력을 통해 공동으로 창출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따라서 이해관계자들이 목적을 공유하는 가치 중심의 공생적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비영리단체 등을 주변에 머물게 하지 않고, 오히려 핵심 주체로 포섭하는 과정과도 맞닿아 있다.
미션경제가 작동하려면 미션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도록 목표 지향적 투자와 포용적 거버넌스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부와 사회 각 부문은 시장을 단순히 '발견'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창출하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 이 과정에서는 승자가 아니라 미션 달성을 해낼 의지가 가장 강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직 차원에서는 협업, 혁신, 확산을 뒷받침하는 동적 역량이 필요하다. 이는 기존 자원 기반의 정적 역량과 달리,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실험할 수 있는 힘, 불확실한 조건 속에서 학습을 이어가는 힘, 장기 목적 수행을 위해 금융을 활용할 수 있는 힘을 뜻한다. 동적 역량을 갖춘 조직은 장기적 관점의 공공 투자를 통해 미션을 지지하고 성장을 유도할 수 있다.
아폴로 프로젝트의 교훈이 보여주듯, 미션이 클수록 달성은 불확실하다. 그렇기에 장기적 관점의 재정 지원과 함께, 성과를 기반으로 한 보상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위험을 함께 감수한 주체들이 성과도 함께 공유하는 구조여야 한다. 예컨대 공공 투자의 혜택을 본 기업의 지분을 국부펀드에 적립해 시민배당으로 분배하는 방식처럼, 사회 전체의 노력이 창출한 가치를 공정하게 나누는 제도가 필요하다.
끝으로 미션 중심 협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시스템이 피드백과 학습에 열려 있어야 한다. 혁신의 성과를 소수가 독점하지 않도록 다양한 주체가 실험에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해야 하며, 그 차이에서 나온 학습이 제도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전환의 시대, 어떤 미션을 세우고 어떻게 이룰 것인가?
냉전 시기 미국이 인류를 달에 보내겠다는 '미션'을 설정한 배경에는 소련과의 패권 경쟁이라는 국제정치적 맥락이 자리했다. 이러한 목표는 대규모 투자와 협력, 혁신을 촉발하여 역사적 성과를 이끌어냈으며, 동시에 다양한 과학기술의 발전을 촉진했다. 그러나 '개발'과 '압도'라는 가치가 사회 전반에 항상 긍정적 효과만을 남기지 않았다는 점도 분명하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미션을 설정해야 할까? 우리가 직면한 난제들은 기후위기, 인구 구조의 변화, 불평등 심화, 성장 동력의 고갈 등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다. 이와 같은 문제는 단일한 부문이나 시장의 힘만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따라서 분명한 미션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 협력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접근은 한국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저출생, 고령화, 디지털 격차, 에너지 전환, 지방 소멸 등의 문제에도 적용 가능한 틀을 제공한다.
마추카토의 제안처럼, 이제는 사회 전체가 함께 과감한 목표를 세우고 구체적인 '미션 경제'의 설계도를 그려야 할 때다. 중요한 것은 정부 주도의 일방적 설계가 아니라, 부문 간 동의와 혁신적 협력이다. '예산이 없어서, 여건이 갖춰지지 않아서 할 수 없다'가 아니라, '야심 차고 전환적인 변화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결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도 상상력과 장기적 관점을 불어넣는다. 불확실한 실험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국 경제의 새로운 미션을 함께 그려 나가기를 기대한다.
이가람
이가람은 일상의 사소한 발견이 주는 의미를 살피는 일, 두 세계 사이의 존재와 연결 가능성, 다름 너머의 소통에 관심이 많은 사회학 연구자이자 <미션 이코노미>의 역자이다. 사회적 가치, 사회연대경제, 사회혁신, 지속가능한 사회발전 등을 주 관심사로 두고 '사람들의 관계와 제도가 만나는 방식을 바꾸면 삶도, 세상도 조금 더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사회변화를 향한 작은 발걸음을 내딛는 중이다. 현재는 씨닷에서 '모-두를 위한 사회로의 전환'을 꿈꾸는 동료들과 함께 새롭게 일하는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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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 일반 · 시스템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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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전환의 시대, 어떤 미션을 세우고 어떻게 이룰 것인가?
미션 이코노미: 정부와 시장의 담대한 혁신(Mission Economy: A Moonshot Guide to Changing Capitalism),
Mariana Mazzucato 저(이가람 역), 238쪽, 이음, 2025년
경제에도 미션이 존재할까? 흔히 '경제가 살아야 사람이 산다'는 말을 떠올려보면, 경제의 사명은 결국 인간의 삶을 지켜내는 데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 경제는 그 미션을 얼마나 충실히 수행하고 있을까? 전 세계적으로 경제의 역할과 한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아마르티아 센 같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와 세계 경제 질서를 이끌어온 석학들까지 21세기에는 기존과 다른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1인당 GDP가 3만 달러를 넘어섰음에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경제 성장의 논리에 지배되고 있다. 그러나 성장 중심적 경제는 사람들의 삶을 지켜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 같은 전 지구적 충격이 닥칠 때마다 경제는 불안에 흔들리고, 정작 사람들을 보호하는 역할에는 무력해 보인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사회 불평등은 더욱 깊어지고 있고, 생태 위기는 한층 더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 경제학의 지식과 실천은 이러한 문제들 앞에서 번번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한국 경제 역시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요구가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
마리아나 마추카토, 국가의 역할을 재정의하다
이탈리아 출신의 경제학자이자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혁신 및 공공목적 연구소IIPP의 설립자 및 소장인 마리아나 마추카토Mariana Mazzucato의 최근 저서 <미션 이코노미: 정부와 시장의 담대한 혁신Mission Economy: A Moonshot Guide to Changing Capitalism>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경제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길 제안한다. 마리아나 마추카토는 전작 <기업가적 국가>와 <가치의 모든 것>에서부터 국가가 시장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혁신을 이끌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주체일 수 있다는 주장을 꾸준히 펼쳐왔고, 세계보건기구WHO 모두를 위한 보건경제위원회 의장, 유럽위원회EC 과학혁신 분야 특별 자문위원, 스코틀랜드 경제자문위원회 등 전 세계 여러 혁신정책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미션 이코노미>는 저자의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션 중심 경제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과 전환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를 정리한 책이다.
나는 사회적 경제, 대안경제, 사회적 가치에 관한 연구를 이어가던 중 <미션 이코노미>의 내용에 매료되어 이 책을 한국어로 직접 번역하게 되었다. 나는 연구자이자 번역자로서 이 책이 오늘날 한국 사회, 특히 미션 중심의 전환을 꿈꾸는 혁신의 주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소개하고자 한다.
경제의 미션 vs 미션을 위한 경제
<미션 이코노미>를 처음 접한 것은 2021년 말이었다. 코로나19가 여전히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던 시기였고, 동시에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도 커지고 있었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사회적 경제, 사회적 가치, 사회혁신 같은 담론이 이미 10년 넘게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경제 주체가 사회적 미션을 달성하는 일이 과연 가능한가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했고, 현장에는 미션을 이루려는 노력이 사회적으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해 답답해하는 이들도 많아 보였다. 나 역시 그 무렵 미션 드리프트mission drift―조직이나 정책이 본래의 목적과 가치에서 서서히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 시기 '미션 이코노미'라는 개념을 접하면서 나는 이 책이 사회적 가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환기가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미션 이코노미>는 1960~70년대 미국의 아폴로 달 탐사moonshot 프로젝트를 상기시키며, '미션 중심 경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얼핏 보기에는 '경제의 미션'과 '미션 중심 경제'가 비슷하게 들릴 수 있지만, 두 개념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기존 경제학에서 말하는 경제의 미션은 부의 총량을 늘리고, 최소 자원으로 최대 효용을 창출하며, 규모를 키우는 것에 맞춰져 있다. 이러한 목표는 경제 자체의 성장에 방점을 두었고, 사회 전반에서 나타난 불평등이나 기후위기 같은 문제는 경제가 인간의 삶과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드러냈다. 반면 미션 중심 경제는 사회적으로 이루어야 할 공동의 목표를 중심에 둔다. 여기서 '경제'는 단순한 성장 지표가 아니라, 공공경제, 시장경제, 영리와 비영리 부문을 아우르며 가용한 자원을 동원하고 조정하는 전체적 과정이다. 따라서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재정, 계약, 조직 운영, 노동 형태, 보상 체계, 제도와 파트너십까지 경제 전반의 요소를 종합적으로 다루게 된다.
이 차이는 미묘해 보이지만 결코 작지 않다. 200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역할, 사회적 기업, 사회연대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많은 조직들이 한계에 부딪혔다. 사회적 미션을 가진 기업과 단체는 시장 논리에 맞춰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았고, 새로운 가치 창출을 뒷받침할 정책과 제도는 부족했다. 마추카토는 이러한 한계를 '경제'라는 개념이 쌓아온 신화적 전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즉, 혁신은 기업의 몫이고 정부는 뒤에서 지원만 해야 한다는 생각, 정부가 혁신을 하려면 기업처럼 움직이거나 외주화해야 한다는 믿음은 근거 없는 신화라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이런 신화들이 정부의 손발을 묶어 시장 의존적 정책을 낳았고, 그 결과 자본주의는 기후위기, 복지 공백, 불평등이라는 난제를 키워왔다고 진단한다.
달 탐사 성공의 진짜 교훈
<미션 이코노미>는 제목과 표지 이미지부터 아폴로 달 탐사의 모티브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책의 내용을 과학기술 혁신과 관련지어 해석하는 이들이 많았다. 테슬라, 아마존 같은 민간기업 주도의 우주 개발이나 '한국판 NASA'를 표방한 항공우주청 설립 논의가 들려오는 상황에서는 그럴 만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의 강점은 단순히 달 탐사 성공의 성과를 나열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각 주체들이 내린 고민과 결정들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폴로 프로젝트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던 목표를 현실로 만든 사례였다. 이 책은 어느 누구도 가능성을 예측도, 확신도 할 수도 없던 프로젝트가 성공하기까지 적나라한 실패의 순간들과 그 순간에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내렸던 고민과 결정을 보여준다. 미국 정부는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며 위험을 감수했고, 그 결과 대기업과 수천 개의 중소기업, 대학, 연구기관, 사회 조직들이 협력하는 혁신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우주 산업이라는 새로운 시장 역시 그 과정에서 태어났다. 마추카토가 강조하듯, "'얼마가 들든' 해내겠다는 마음가짐을 사회문제 해결에 적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미션 이코노미>, 203쪽) 달 탐사의 교훈은 과학기술 혁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 기후위기, 복지, 불평등 같은 대규모 사회, 경제적 과제도 충분히 '미션'이 될 수 있다.
이 책에서 정부의 역할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부만의 주도'가 아니라 '목표 지향적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시장 중심으로는 공공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자원을 조정하고 협력을 촉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신자유주의 정부가 기능을 축소하거나 외주화에 의존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고 해서 국가 주도의 국책사업 모델을 재현하자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정부만이 아니라 다양한 부문의 자원을 모아내는 조정자, 협력 촉진자로서 정부를 이해해야 한다.
마추카토는 아폴로 프로젝트가 남긴 여섯 가지 교훈을 정리한다. ① 분명한 비전과 목적에 기초한 정부의 리더십 ② 위험을 감수한 실험 속에서 태어난 다양한 혁신 ③ 이를 뒷받침한 민첩하고 유연한 조직 ④ 우연과 협력을 통해 확산된 혁신 ⑤ 성과 기반 예산을 통한 재정 분배 ⑥ 협력자로서 재정립된 기업–국가 관계가 그것이다. NASA의 운영 방식은 정부가 '최초 투자자initial investor'이자 '혁신가innovator'로서 목표에 맞는 과감하고 현실적인 투자를 할 때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정부의 동적 역량dynamic capability이다. 변화하는 환경과 예기치 못한 문제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실패를 학습으로 전환하고 조직 구조와 운영 방식을 유연하게 만드는 힘이 필수적이다.
아폴로의 경험은 정부가 '위험 감수자risk taker'이자 '시장 창조자market shaper'로서 책임감 있게 상상력을 발휘할 때, 거대한 혁신이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한다. 마추카토는 말한다. '수십 년 전, 인간을 달에 보내는 불가능해 보였던 프로젝트도 실현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지금이라고 왜 담대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수 없겠는가.' 21세기 정부 역시 새로운 미션을 세우고, 그에 맞는 도구, 조직, 문화를 다시 발명할 수 있으며, 반드시 그래야 한다. 이 책을 한국 사회의 맥락에서 읽는다면, 중요한 것은 정부만이 아니라 정부를 중심으로 한 협력의 방식이다. 그것이야말로 미션 경제를 현실로 만드는 출발점일 것이다.
미션지도-미션경제의 로드맵
<미션 이코노미>에서 소개하는 미션지도Mission map는 미션경제를 지탱하는 일곱 가지 원리를 시각화한 개념이다. 이는 마추카토가 여러 국가 프로젝트의 자문으로 참여하면서 실제로 활용해 온 방법이기도 하다. 미션지도는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기업, 소셜 섹터, 시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자원의 방향을 조정하는 '협력 로드맵'으로서 전략적 설계도의 역할을 한다.
미션지도는 해결해야 할 거대한 난제를 중심에 두고, 여러 부문의 참여가 이루어지는 현장 기반 실험들의 포트폴리오로 구성된다. 이 접근은 미션 달성이 부문 간 협력을 통해 공동으로 창출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따라서 이해관계자들이 목적을 공유하는 가치 중심의 공생적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비영리단체 등을 주변에 머물게 하지 않고, 오히려 핵심 주체로 포섭하는 과정과도 맞닿아 있다.
미션경제가 작동하려면 미션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도록 목표 지향적 투자와 포용적 거버넌스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부와 사회 각 부문은 시장을 단순히 '발견'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창출하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 이 과정에서는 승자가 아니라 미션 달성을 해낼 의지가 가장 강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직 차원에서는 협업, 혁신, 확산을 뒷받침하는 동적 역량이 필요하다. 이는 기존 자원 기반의 정적 역량과 달리,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실험할 수 있는 힘, 불확실한 조건 속에서 학습을 이어가는 힘, 장기 목적 수행을 위해 금융을 활용할 수 있는 힘을 뜻한다. 동적 역량을 갖춘 조직은 장기적 관점의 공공 투자를 통해 미션을 지지하고 성장을 유도할 수 있다.
아폴로 프로젝트의 교훈이 보여주듯, 미션이 클수록 달성은 불확실하다. 그렇기에 장기적 관점의 재정 지원과 함께, 성과를 기반으로 한 보상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위험을 함께 감수한 주체들이 성과도 함께 공유하는 구조여야 한다. 예컨대 공공 투자의 혜택을 본 기업의 지분을 국부펀드에 적립해 시민배당으로 분배하는 방식처럼, 사회 전체의 노력이 창출한 가치를 공정하게 나누는 제도가 필요하다.
끝으로 미션 중심 협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시스템이 피드백과 학습에 열려 있어야 한다. 혁신의 성과를 소수가 독점하지 않도록 다양한 주체가 실험에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해야 하며, 그 차이에서 나온 학습이 제도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전환의 시대, 어떤 미션을 세우고 어떻게 이룰 것인가?
냉전 시기 미국이 인류를 달에 보내겠다는 '미션'을 설정한 배경에는 소련과의 패권 경쟁이라는 국제정치적 맥락이 자리했다. 이러한 목표는 대규모 투자와 협력, 혁신을 촉발하여 역사적 성과를 이끌어냈으며, 동시에 다양한 과학기술의 발전을 촉진했다. 그러나 '개발'과 '압도'라는 가치가 사회 전반에 항상 긍정적 효과만을 남기지 않았다는 점도 분명하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미션을 설정해야 할까? 우리가 직면한 난제들은 기후위기, 인구 구조의 변화, 불평등 심화, 성장 동력의 고갈 등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다. 이와 같은 문제는 단일한 부문이나 시장의 힘만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따라서 분명한 미션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 협력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접근은 한국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저출생, 고령화, 디지털 격차, 에너지 전환, 지방 소멸 등의 문제에도 적용 가능한 틀을 제공한다.
마추카토의 제안처럼, 이제는 사회 전체가 함께 과감한 목표를 세우고 구체적인 '미션 경제'의 설계도를 그려야 할 때다. 중요한 것은 정부 주도의 일방적 설계가 아니라, 부문 간 동의와 혁신적 협력이다. '예산이 없어서, 여건이 갖춰지지 않아서 할 수 없다'가 아니라, '야심 차고 전환적인 변화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결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도 상상력과 장기적 관점을 불어넣는다. 불확실한 실험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국 경제의 새로운 미션을 함께 그려 나가기를 기대한다.
이가람
이가람은 일상의 사소한 발견이 주는 의미를 살피는 일, 두 세계 사이의 존재와 연결 가능성, 다름 너머의 소통에 관심이 많은 사회학 연구자이자 <미션 이코노미>의 역자이다. 사회적 가치, 사회연대경제, 사회혁신, 지속가능한 사회발전 등을 주 관심사로 두고 '사람들의 관계와 제도가 만나는 방식을 바꾸면 삶도, 세상도 조금 더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사회변화를 향한 작은 발걸음을 내딛는 중이다. 현재는 씨닷에서 '모-두를 위한 사회로의 전환'을 꿈꾸는 동료들과 함께 새롭게 일하는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