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 일반]21세기의 대학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태재대학교라는 실험을 통해 다시 묻는 대학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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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 일반 · 교육  · 시스템변화
21세기의 대학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대학혁신 특별호



사회혁신랩(김지환, 최정은, 하서연, 함채원), 노승희, 이예슬, 정소영, 한채원



Summary. 21세기에 만들어진 태재대학교라는 실험을 통해 대학의 본질을 묻다.



서양과 동양의 분위기가 절묘하게 조화된 공간, 모두 노트북을 사용하고 자유롭게 오가며 업무를 하는 공간, 대학교지만 학생들은 없는 공간. 필자들이 태재대학교를 방문하여 본 풍경은 일반적인 '대학'의 모습이라고 하기엔 낯섦이 앞섰다. 2023년 9월에 개교한 태재대는 '온라인 기반 하이브리드' 대학이고, 학생들은 '글로벌 도시순환 체제' 내에서 교육을 받는다. 분명 대한민국의 사립 대학에 대한 설명인데 낯선 문화가 느껴진다.


이러한 낯섦은 단지 새로운 형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대학이 20세기에 형성된 제도와 전통 위에서 운영되고 있는 반면, 태재대학교는 21세기의 조건 속에서 '지금, 여기에서' 대학을 새롭게 만들어보려는 실험이기 때문이다. 태재대는 기존 대학을 개선하거나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변화한 사회 조건 속에서 대학이라는 제도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처음부터 다시 묻고 있다.


사회가 변화하는 속도는 이미 대학이 변화하는 속도를 앞서고 있다. 지식은 더 이상 강의실에서만 전수되지 않고, 기술은 정답을 찾는 일에서 인간을 앞서고 있다. 태재대가 다른 대학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무엇을 더 많이 가르칠 것인가보다, 학생이 어떻게 배우고 질문하며 성장할 수 있는지를 중심에 두고 대학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려 한다는 데 있다. 태재대는 대학의 역할을 다시 묻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대학은 여전히 익숙한 교육 방식과 제도를 의심 없이 고수한다. 한양대학교의 학생인 필자들은 대학에서 학생의 존재가 그저 이미 만들어진 지식을 학습하는 데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시작했고, 그 물음의 연장선에서 태재대학교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태재대의 낯섦은 어떤 동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태재대의 실험은 대학이 지향해야 할 미래에 대한 답일까?


이러한 질문을 품고 태재대학교의 염재호 총장, 데이터과학과 인공지능학부의 학부장인 곽지영 교수, AI 교육 연구를 담당하는 이나연 교직원을 만났다. 태재대의 구성원들과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대학교육이 앞으로 만날 수 있는 미래의 한 단면을 들여다본다.



자각 | 우리는 왜 20세기의 강의실 속에 갇혀 있는가

"태재대학교는 21세기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됐습니다."


염재호 총장은 태재대의 출발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가 먼저 떠올린 것은 '미래'가 아니라, 우리가 너무 오래 당연하게 여겨온 20세기의 대학 모델이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며 전 세계는 대량 생산 체제의 시스템으로 들어섰다. 이러한 흐름 속에 대학의 모델은 대량생산의 모습을 띠었고, 1945년 이후 대학은 대형화되며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대형 강의실, 전공 중심 커리큘럼, 시험과 학점으로 학습을 관리하는 방식은 그 시대에는 유효한 해법이었다. 우리가 익숙하게 경험해온 대학의 모습은 바로 이 20세기 대량생산 체제에 최적화된 결과물이다.


문제는 그 모델이 성공적으로 작동했던 시기의 논리가 별다른 의심 없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그는 말한다. 21세기에 들어서며 지식의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미디어가 발달하고,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은 많아졌다. 교수가 강의에서 가르치는 지식은 다른 곳에서도 얻을 수 있게 됐고, 반복학습은 이제 AI가 더 잘 수행한다. 그럼에도 많은 대학의 강의실에서는 여전히 형식지의 전달과 암기가 학습의 중심에 놓인다. 학생은 배움의 주체라기보다, 설계된 커리큘럼을 따라가는 존재로 남아 있다.


태재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진다. 20세기 대량생산 체제에 맞춰 설계된 대학의 모델이 더 이상 21세기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자각, 그리고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보다 학생이 스스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이 교육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이러한 자각은 염재호 총장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나연 교직원 역시 이전 대학에서 근무하며 비슷한 문제의식을 품고 있었다. "학생들이 자기가 무엇을 배우는지에 대한 자각이 거의 없다는 걸 느꼈어요." 커리큘럼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10년 전 자신이 배웠던 내용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교직원으로서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의사결정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어 있었어요. 혁신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구조였습니다."


종로구에 위치한 태재대학교는 코호트(같은 기수)끼리 1년간 기숙사에서 공동체 생활을 한 뒤, 이후 3년 동안 미국·중국·일본·러시아를 오가며 학기를 보낸다. 수업은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되지만, 강의 전달이 아니라 토론과 문제 해결을 중심으로 한 액티브 러닝 방식으로 구성된다. 염재호 총장의 말처럼, 태재대학교는 20세기 대학 모델을 전제로 한 개선이 아니라, 그 모델에서 벗어나는 방향으로 설계를 시도하는 대학이다. 그 결과 태재대학교는 학생뿐 아니라 교수와 교직원에게도, 이전 대학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존재와 역할을 요구하는 공간이 되었다.



재정의 |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vs. 어떻게 배우게 할 것인가

21세기에 대한 자각은 곧 질문의 방향을 바꾼다. 대학의 역할은 무엇이며,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고 싶어 하는가. 태재대와의 인터뷰는 대학의 본질을 다시 정의하게 만든다. 염재호 총장은 기존 대학이 규정과 관료주의에 묶여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려운 현실을 짚으며, 정답을 외우는 교육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기술이 정답을 더 잘 찾아내는 시대에 대학이 해야 할 일은, 학생 스스로 사고하고 선택할 수 있는 사람으로 기르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성과나 돈보다, 자신의 능력을 키워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이다.


이 문제의식에서 태재대가 재정의한 대학의 핵심은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학생들이 스스로 배울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장소에 가깝다. 'Education'의 어원인 Educe가 '끌어내다'라는 뜻을 지니는 것처럼, 교육은 무언가를 주입하는 행위가 아니라 각자가 가진 잠재력과 역량을 드러나게 하는 과정이라는 관점이다. 전환된 정의는 수업의 풍경도 바꿔놓았다. 모든 수업은 사전 학습을 전제로 진행되며, 강의실에서는 토론과 발표가 중심이 된다. 100분 수업에서 교수의 설명은 20분을 넘기지 않는다. 가르치기보다 학생의 사고를 듣고, 그 사고에 개입하는 것이 교수의 역할이 된다. 이는 '질문하는 능력을 갖춘 배움의 주체'를 기르기 위한 태재대가 선택한 교육 방식이다.


곽지영 학부장은 대학을 '지식을 저장하는 공간'이 아니라 '운영체제'에 비유한다. Windows처럼, 다양한 프로그램이 작동할 수 있도록 기본 구조를 만들어주는 곳이라는 의미다. 대학의 역할은 지식을 쌓아주는 메모리가 아니라, 학생이 미래 사회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있으며 태재대의 교육과정은 이 관점에서 설계되었다고 그는 설명한다.


이나연 교직원은 대학의 역할을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적 차원에서 바라본다. "대학의 본질을 정의하는 건 쉽지 않지만,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명확해요." 그녀가 생각하는 대학의 첫 번째 역할은 이곳을 선택해 온 학생들이 자기 잠재력을 최대한 펼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동시에 대학은 단순히 경제적 효율이나 성과만 따지는 곳이 아니라, 문제를 건강하게 다루고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사회가 빠르게 변하면서 대학도 재정이나 성과 논리에 휩쓸리기 쉬운데, "그럴수록 대학은 그 흐름을 한 번 멈춰서 사회 전체를 '정화'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변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대학은 흐름을 잠시 멈추고 사회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존재여야 한다. 태재대가 재정의하는 대학은 지식을 전달하는 기관이 아니라, 배움의 조건을 설계하는 장소다.



능동적 페르소나 | 스스로 학습을 설계하는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태재대의 커리큘럼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보다, 학생이 '무엇을 배울 것인가'에서 출발했다. 곽지영 학부장이 강조하듯, 중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사고의 역량이었다. 이를 위해 태재대는 먼저 어떤 학생을 길러내고 싶은지, 하나의 '페르소나'를 설정하는 데서 출발했다. 단순히 기술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본주의적 감각을 바탕으로 사람과 사회를 기준 삼아 문제를 바라보는 존재. 배운 것을 통해 세상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려는 학습자. 문제 해결자이자 디자인 씽커로서 자신의 학습을 스스로 설계하고 판단하는 사람, 이것이 태재대가 상정한 학생의 모습이다. 이를 위해 수업 모델과 커리큘럼은 처음부터 다르게 설계되었다.


이러한 전환은 학생들의 학습 태도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태재대 1기 재학생인 최지훈과 김혜인은 공통적으로 '정해진 답을 잘 따라가는 학생'보다는, 스스로 길을 탐색하는 학습자로 자신을 설명한다. 남아공에서 태어나 모델 활동을 하며 불확실한 시간을 보냈던 그는 태재대에 들어온 뒤 실패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팀 프로젝트나 맡은 역할에서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 그는 그것을 회피해야 할 사건이 아니라 되짚고 분석해야 할 경험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시행착오를 거쳐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감각이 몸에 남았기 때문이다.


김혜인의 경험 역시 '능동적 페르소나'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녀는 샌프란시스코에 머무는 동안 온라인 수업의 자유를 활용해 스탠퍼드와 버클리, 산호세를 오가며 세미나와 학회 현장을 직접 찾았다. 무엇을 배우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더 알고 싶은지를 기준으로 학습의 동선을 스스로 설계했다. 옥스퍼드 석사과정 학생들과의 토론 경험은, 소속보다 질문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확신으로 이어졌다.


두 학생의 이야기는 하나의 공통된 변화를 가리킨다. 태재대의 능동성이란 단지 더 많은 선택지를 주는 것뿐만 아니라, 선택의 책임까지 학생에게 돌려주는 방식을 이야기한다. 태재대는 학생들이 무엇을 할지 정해주지 않는다. 대신 그들이 왜 그것을 선택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환경을 만든다. 그렇게 태재대는 학생들에게 정답이 아닌 질문하는 법을, 지식이 아닌 능동적으로 배우는 법을 가르친다. 이를 통해 '배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학습을 운영하는 사람'으로 학생들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태재대의 시도를 엿볼 수 있다. 



실험 | 불편함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태재대학교라는 거대한 교육 실험실 안에서 학생들은 새로운 시도로 인한 여러 불편함을 경험하고 있다. 이 낯선 불편함은, 역설적으로 태재가 지향하는 교육의 과정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느끼는 태재 교육의 불편함 중 하나는 수업 전후 에너지 소모에서 오는 피로감이다. 액티브 러닝을 위해 학생들은 수업 전후로 여러 자료를 살펴보아야 하는 등 매 수업이 전쟁터 같은 에너지 소비를 요구하다 보니, 한 수업을 위해 쏟은 노력이 다음 수업 준비를 방해하기도 한다. 여기에 동료들의 준비도에 따라 수업의 질이 변동되는 불확실성과 온라인 수업으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이 존재한다. 또한, 태재대의 넓은 분야 기반 전공 구조는 유연성이 좋은 만큼 전통적인 전공 체계에 비해 학문적 깊이가 얕다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종종 사회로 나갔을 때 이로 인한 불이익은 없을지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흥미로운 지점은 불편함과 불안이 학생들을 무너뜨리는 대신, 학생들을 성장시키는 촉매제가 된다는 것이다. 최지훈 학생은 막대한 에너지 소모라는 단점 속에서도, 생각하는 법과 소통 능력, 그리고 동료와의 마찰을 해결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체득했다. 김혜인 학생 또한 온라인 수업의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면서도, 온라인 기반이기에 주어지는 이동의 자율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성장의 공간을 확장했다. 이 외에도 학교의 구조가 모든 학문적 깊이를 대신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인식은, 역설적으로 학생들의 자기 주도적 학습력을 길러주었다. 학생들은 유데미나 코세라 같은 외부 플랫폼을 찾아 스스로 지식을 보완하는 한편, 글로벌 로테이션 운영 체제 속에서 마주하는 예상치 못한 경험들을 지식과 연결하며 한층 밀도 높은 학습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험실 속 학생들의 고군분투와 그에 따른 성장은 학교 측의 의도된 설계로도 보인다. 태재대는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 회로를 돌리는 프로세서가 되도록 설계한 불편함 속에 그들을 방치한다. 그렇기에 학교 생활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문제점을 느끼고 그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한 각자의 방식을 찾아나가게 된다. 이것이 태재대가 길러내고자 한 인재이며, 방향이다. 따라서, 이런 불편함은 곧 태재대의 지향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태재대는 이제 불편함을 던져주는 단계를 넘어, 그 속에서 피어난 학생들의 성장을 더욱 키워줄 수 있는 '99에서 100의 디테일'을 함께 채워가야 한다. 이 실험의 의미는 학생들의 학습과 성장이 단순한 경험담에 머무르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 어떤 역량의 변화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관찰하고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분명해질 것이다. 태재대학교의 실험은 학생들의 변화 속에서 그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 성장이 어떤 학습 조건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하며 의미를 축적해 가야 할 과제를 함께 안고 있다.



관성 | 우리는 왜 스스로 만든 규칙에 묶여 있는가

알고 있다는 것과 바꾼다는 것은 다르다. 태재대를 만들기 전, 염재호 총장은 고려대학교 총장으로서 이 간극과 이미 마주해 있었다. 규정에 묶여 새로운 시도를 추진할 수 없는 현실.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규칙들, 왜 지켜야 하는지 묻지 않는 관행들. 대학이라는 조직은 그렇게 스스로 만든 관성 속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태재대는 이 관성에 질문을 던지는 하나의 실험이다. "사회혁신은 관성이 불편해져야 일어난다." 염재호 총장의 이 말은 선언이라기보다 전제에 가깝다. 조직은 문제에 계속 집중하도록 설계되었고, 관성대로 움직이는 것을 그냥 두지 않는 문화를 택했다. 편안함이 아니라 불편함을 동력으로 삼는 선택. 익숙함에 안주하는 순간, 조직은 정체된다는 판단이었다.


이 불편함은 교수와 교직원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곽지영 학부장이 마주한 가장 큰 관성은 '정답을 말하고 싶은 욕구'였다. "그건 이게 아니야"라고 말하는 대신,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묻고 기다리는 연습. 교수는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조력자가 되어야 했다.


교직원에게 요구되는 변화는 더욱 총체적이었다. 'SD(솔루션 디자이너)'로 명명된 그들에게 "규정상 안 됩니다"는 더 이상 답이 될 수 없었다. 대신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그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였다. 태재대학교에서 교직원의 역할은 관리자가 아니라 학생과 세상을 연결하는 인터페이스다. 문제를 막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사람. "관성은 구조가 편안할 때 유지되므로, 혁신을 위해서는 관성이 불편해지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태재대는 조직 안의 누구도 익숙함에 안주할 수 없도록 설계되었다. 불편함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을 통해 다음 질문을 찾아가는 구조였다.



태재대의 실험이 우리에게도 유효한가?

태재대의 실험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 실험이 남기는 것은 결론이 아니라 질문이다. 조직의 관성이 불편해질 때, 그다음 질문이 시작된다. AI를 활용한 교육을 이끌어가고 있는 태재대의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반복한 화두는 '불편함'이었다. 그 불편함은 성장을 향한 정직한 반응이자 낯선 자극에 응답하는 동력이었다. 인터뷰를 회고하며 필자들은 다시 질문 앞에 섰다. 태재대의 실험을 대학 혁신의 완결된 해답으로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깨부수고 있는 20세기의 관성이 우리 교육 시스템이 짊어진 숙제라는 사실이다. 이제 대학의 역할은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관성에 저항하며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는 그 역동적인 과정 자체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사회혁신랩(김지환, 최정은, 하서연, 함채원), 노승희, 이예슬, 정소영, 한채원

한양대학교 경영대 비즈니스랩의 사회혁신랩 6기를 비롯한 학생들과 한양 SSIR Korea센터의 교직원이 모여 이루어진 팀이다. '대학혁신'을 주제로 "진짜 배움은 어디에서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다양한 현장을 방문하고, 대화의 장을 열며 사회혁신을 위한 대학의 역할과 의미를 다시 묻는 탐구를 이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