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임팩트]실행을 촉진하는 페이스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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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임팩트 · 커뮤니티 · 기업가정신
실행을 촉진하는
페이스메이커

2025-1


안지혜 · 박대은 · 정홍래



Summary. 로컬라이즈 군산 프로젝트는 실행 중심의 액트프러너십으로 쇠퇴하는 지역에 새로운 활기를 불러일으켰다.



“군산에 남을 생각이라 회사를 그만뒀어요. 로컬라이즈 군산에서 사용했던 건물을 제가 직접 임대해서 뭐라도 해보려고 해요. 이젠 저도 창업이죠. 서울이 아닌 군산에 사는 게 조금 더 재밌고 좋아서 그래보려고요.” - 이슬기 로컬라이즈 군산 전 운영자


2022년, 군산에서 청년 창업가를 3년 동안 양성하고 지원했던 ‘로컬라이즈 군산’ 프로젝트의 공식적인 교육 과정이 종료됐다. 더 이상 초기와 같은 집중적인 지원도, 교육도 없지만 10여개 팀의 청년 창업가들과 운영자였던 이슬기는 오늘도 군산에 남아, 함께 공간을 공유하며 일한다. 


저출생, 고령화에 수도권 인구 집중 문제까지 맞물리며, 한국 전체 지역의 53%는 지역 소멸 위기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소멸 위기 속에서 지자체는 지원금은 물론 각종 정책으로 청년 인구를 유입하려 애쓰지만, 실질적인 정착까지 쉽사리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로컬라이즈 군산 출신의 창업가들이 군산을 떠나지 않고, 창업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는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지역 소멸 위기에 대한 대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요즘, 단순히 청년을 유입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안에서 주체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플레이어로 성장시키는 전략적 페이스메이킹 사례로서 로컬라이즈 군산을 소개하고자 한다.



지역의 쇠퇴, 위기와 기회를 모두 증강시키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한국 GM 군산 공장이 한창 가동되던 2009년, 군산시는 생산액 12조 원, 전북 지역 수출액의 43%를 점유하며 호황기를 누렸다. 하지만 호황기는 길지 않았다. 2018년 한국 GM과 현대중공업이 철수하면서 군산시의 경제는 급속도로 위축되었다.


이는 비단 군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수도권 지방 도시들은 산업화 시기를 지나며 제조업에 주력했고, 대기업의 생산 시설이 지방에 들어섬에 따라 지역 경제는 대기업에 의존해 성장하는 구조가 되었다. 지역의 산업 구조와 고용 시장은 대기업 중심으로 단일화되었기 때문에 지역에는 대기업의 철수라는 리스크를 분산해 감당할 기반이 없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이 철수하는 경우 실업률이 급증하고, 지역 인구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지역 밖으로 유출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인구 감소는 지역의 소비 생태계, 교육, 문화, 생활 인프라의 위축으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지방 도시는 순식간에 도미노처럼 무너지게 된다. 


하지만 오히려 빠르게 활력을 잃어가는 지방 도시에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한 이들도 있다. 창업교육 전문 기관인 언더독스는 창업가들이야말로 지방 도시의 잃어버린 활력을 되찾을 주체라고 보았다. 언더독스가 바라보는 창업가란 문제pain point를 해결할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실행을 통해 그것을 실현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군산이 직면한 수많은 문제는 오히려 창업가들이 자신만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로써 활용할 수 있다고 그들은 판단했다. 또한 점점 더 가속화되는 지역의 청년인구 유출 위기 속에서 청년 창업가라는 대상은 그 자체로 지역의 소중한 인적 자산이기 때문에, 청년 창업가의 지역 유입이 지역과 청년 창업가 모두에게 윈윈 전략win-win strategy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창업가로서 나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언더독스의 교육 과정을 통해 청년 창업가들은 저마다의 고유한 관점으로 군산이 직면한 사회문제를 포착한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창업 아이템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도, 성공과 실패의 서사, 새로운 관계와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 언더독스는 이 과정에서 생기는 역동의 에너지가 쇠퇴하던 지역에 활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가설을 갖고 있었다.



청년 창업가에게 필요한 기회를 구조화하다

“‘내가 군산을 변화시키겠어!’라기보다는 ‘재밌는, 다른 도전을 한번 해보고 싶어!’라고 오신 분들이 많아요.” 언더독스 조상래 대표는 로컬라이즈 군산에 지원했던 청년 창업가들의 지원 동기가 ‘지역 위기 극복’보다는 ‘자신의 삶을 새롭게 바꾸고 싶은 시도’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이처럼 가능성을 탐색하는 청년들에게 지역은 새로운 실험과 시도를 펼칠 기회의 공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역이 매력적인 기회의 공간으로 인식되려면 그 시도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원과 지원이 수반되어야 한다.


2019년 로컬라이즈 페스티벌,

청년 창업가들이 자신의 부스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로컬라이즈 군산은 청년 창업가들에게 매력적인 제안으로 여겨질만한 조건들을 갖추었다. SK 이노베이션 E&S가 주도하는 사회공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의미 있는 창업을 시도한다는 점, 대기업의 자본으로 안정적인 투자를 받으며 창업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청년들이 새로운 도전에 대한 자극을 받기에 충분했다. 또한 낯선 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주거 및 업무 공간, 사업 자금, 창업교육 등 종합적이고 현실적인 지원 방안을 제공해, 도전의 진입장벽을 낮추었다.  


그러나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창업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차원의 설계와 전략이 필수적이었다. 창업은 이상적인 도전이지만, 생존이 걸린 현실이기도 하다. 특히 창업 경험이 없는 예비 창업가와 1~3년 차의 신규 창업가들이 관성을 뚫고, 지역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 창업을 시도해 생존하려면 실전 중심의 효과적인 창업교육 과정, 즉 강도 높은 페이스메이킹 전략이 필요했다. 언더독스는 로컬라이즈 군산의 운영 기관으로서 액트프러너십이라는 페이스메이킹 전략을 통해 청년 창업가들이 지역의 관성을 돌파해 내도록 지원했다. 



관성을 돌파하는 액트프러너십

청년 창업가들이 군산에서 지역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양한 종류의 관성을 돌파해야 했다. 먼저 지역사회의 관성으로는 쇠퇴해 가는 지역 경제와 침체된 분위기, 가속이 붙는 청년 인구 유출과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이 있었다. 청년 창업가 개인에게는 실패에 대한 불안과 안정을 유지하고 싶은 심리적 관성과 기존의 지식에 대한 확신, 학습된 사고 패턴과 같은 인지적 관성이 있었다. 


지역의 위기를 둘러싼 다층적인 관성을 돌파하는 데 있어 언더독스의 실행을 촉진하는 액트프러너십Act-preneurship1은 효과적이었다. 로컬라이즈 군산은 프로젝트의 가설을 입증하듯, 지역에 다양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3년간 로컬라이즈 군산의 거점공간에는 17,774명이 다녀갔다. 502개의 군산 관련 콘텐츠 및 서비스가 개발되었고, 26개 팀이 군산의 유휴 공간을 활용해 매장과 공간을 열었다. 로컬라이즈 군산을 통해 인큐베이팅 및 엑셀러레이팅된 26개 창업팀은 모두 데스밸리death valley로 불리는 마의 3년을 넘겨 프로그램을 완주했다. 초기 창업가들의 1년 차 생존율이 62.7%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인구 유출 및 고용 위기 지역에서 청년 창업가들을 이러한 수준으로 키워낸 점은 인상적이다. 


SSIR에 소개된 아티클 ‘기업가의 성공을 돕는 페이스메이커Pacing entrepreneurs to success’에서는 신흥 시장의 기업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지원조직을 페이서pacers라는 개념으로 소개한다. 기존 시장에서 생존하는 일도 쉽지 않지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목표를 달성하는 일은 기업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다. 페이서는 1년부터 평생에 이르기까지 기업가를 위한 장기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지속적인 학습 기회 제공, 비즈니스 네트워크 확장, 동료 연결, 수요 기반 맞춤형 지원 서비스 제공 등을 통해 기업가들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역이라는 신흥 시장을 개척하는 청년 창업가들이 지역 활성화라는 목표를 달성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언더독스의 액트프러너십은 한국적 맥락에서 주목할 만한 페이서 모델이다. 페이스메이커로서 역할을 한 언더독스는 물론 청년 창업가들이 어떻게 다양한 관성의 벽을 넘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었는지, 로컬라이즈 군산의 현장 사례를 통해 액트프러너십의 작동 방식과 성공 요인을 들여다보려 한다.



몰입을 설계하다 

창업은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업이다. 그리고 그 창조의 과정은 밀도 높은 몰입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언더독스는 프로그램의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창업가들의 몰입을 촉진하는 구심점이 될 3층짜리 건물을 임대했다. 창업가들이 언제든 일할 수 있는 공간,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로컬라이즈 군산의 거점공간, ‘로컬라이즈 타운’은 청년 창업가들의

코워킹스페이스로서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는 기반이 되었다.


이 건물의 1층은 카페이자 창업교육 공간으로, 2층은 코워킹 스페이스로, 3층은 함께 밥을 해먹을 수 있는 공유 주방으로, 옥상은 파티를 열기 좋은 공간으로 꾸며졌다. 또한 인근 게스트하우스를 섭외해 타지에서 군산으로 온 창업가들이 생활할 거주공간을 마련했다. 일하고, 교육을 받고, 먹고, 쉬고, 만나는 일이 집약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사무실은 24시간 이용이 가능했고, 숙소는 사무실로부터 1분 거리에 있어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언더독스 김정헌 대표는 말한다. “처음엔 창업가들이 불만도 많았어요. 하지만 창업가들의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절대적인 시간을 함께 많이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거점공간 1층에는 24명이 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이 있어요. 이 테이블에 다함께 둘러앉아 노트북으로 작업을 했죠. 과제가 많으니까 숙소에선 잠만 자고요. 날이 새도록 같이 일하고, 이야기도 하는 거죠.” 


언더독스는 이 거점공간이 몰입을 만드는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기능하도록, 군산에 상주하며 커뮤니티의 호스트가 되어줄 운영자를 배치했다. 커뮤니티 운영자가 외지인이라는 점은 지역에 대한 정보와 네트워크를 확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외지인 운영자는 지역 내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창업가 지원에만 집중할 수 있고, 창업가들의 입장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로컬라이즈 군산의 운영자였던 언더독스 이슬기는 말한다. “새로운 지역에서의 삶을 새롭게 시작했으니, 창업과 관련된 지원뿐 아니라, 군산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종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몰입에는 많은 에너지가 든다. 이슬기는 창업가들이 온종일 일하고, 먹고, 자고를 함께 하다 보니 체력과 에너지가 떨어지는 것을 빠르게 감지했다. 로컬라이즈 군산이 시작 된 첫해는 창업  교육에 집중했지만, 이듬해부터는 창업가들이 잘 쉬고, 놀 수 있도록 동아리 소모임을 운영했다. 최적화된 공간만으로는 지속적인 몰입을 이끌어낼 수 없다. 공간이라는 하드웨어가 몰입을 시작하도록 만든다면, 관계라는 소프트웨어는 몰입을 지속시키는 상호작용, 문화, 정서적 유대감을 만든다. 



피어러닝으로 역량을 키우다
지역의 인구 감소는 지역 내 인재, 정보, 자원, 네트워크의 약화와 직결된다. 그리고 이러한 기반 약화는 지역 경쟁력을 낮추는 악순환의 원인이 된다. 한편,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한 지자체의 지원 프로그램은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한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약해진 지역 기반 위에서 시도가 이뤄지기 때문에, 효과적이고 창의적인 솔루션을 만들기란 더욱 어렵다. 언더독스는 고용 및 산업 위기로 인한 자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창업가들의 소셜믹스
social mix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지역적으로는 군산 출신 11개 팀과 군산 외 출신 15개 팀이 고르게 선발되었다. 창업 단계로는 신규 창업가와 기창업가를 함께 선발해 인큐베이팅 트랙과 엑셀러레이팅 트랙으로 나누었다. 창업가들의 아이템 또한 다양했다. 지역 특산물 개발, 관광객을 위한 게임 콘텐츠, 소도시 여행 잡지, 사진 스튜디오, 영상 프로덕션, 시각 디자인, 시니어 여행, 한일 국제 교류, 고양이 친화마을, 지역 창작자 협동조합, 푸드트럭 협동조합, 무장애 여행, 폐건물 리모델링, 커뮤니티 호텔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분야가 모여 작은 사회를 이루었다. “소셜믹스가 잘 이뤄지면서 로컬라이즈 군산 프로젝트의 성과가 났어요. 창업 단계와 아이템, 지역 차원에서 창업가들이 가진 다양한 배경이 믹스 되었어요.” 언더독스 김정헌 대표는 관점의 다양성이 성장을 이끈 피어러닝peer learning의 핵심이었다고 말한다. “개별적인 성공이나 실패와 무관하게 서로가 어떻게 성과를 만드는지 보고 배우면서 피어러닝이 일어났습니다.”  


로컬 라이즈 군산을 통해 사진 스튜디오를 연 한 창업가는 이렇게 말한다. “다른 창업가들이 없었다면 혼자서 공간을 계약하고, 사진관을 열 생각을 못했을 거예요. 소비자로서 완성된 제품과 서비스에만 익숙했던 제가 다른 팀의 창업 과정을 지켜보면서 ‘다들 그렇구나. 시작은 다 이렇게 하는 거구나. 창업은 하나씩 쌓아나가야 하는 거구나’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언더독스는 교육 과정에서 코칭을 통해 창업팀 간의 협업이 일어나도록 유도했다. 다른 팀과의 콜라보 기획을 과제로 내주거나, 동일한 문제를 겪는 팀들은 함께 문제를 해결하도록 팀을 구성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창업가들은 서로에 대한, 또 서로의 사업 아이템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한 창업가는 상호 이해가 협력으로 이어진 경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다른 팀이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지 잘 알기 때문에 우리 팀의 비즈니스와 시너지가 날 포인트를 정확히 짚을 수 있었어요.” 효과적인 피어러닝을 위해 환경과 구조 설계는 필수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은 피어peer의 구성이다. 환경과 구조가 접촉 빈도와 관계 밀도를 만든다면, 피어의 구성은 학습의 깊이와 성장의 퀄리티를 결정한다. 



말이 아닌 행동을 촉진하다 

“처음 군산에 왔을 때 지역사회에서는 경계의 눈빛을 보이셨어요. 지역 현안 도출 위원회는 분위기가 싸늘했죠. 지역의 기존 창업가들과 업종이 겹칠까봐 우려도 크셨고요.” 언더독스 박대은 파트너는 로컬라이즈 군산의 시작을 앞두고 지역의 네트워크를 파고들어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청년 창업가들로 군산을 활성화시키겠다는 목표에 대해 처음부터 지역의 신뢰를 얻기 어려웠기 때문에 신뢰를 쌓는 노력이 필요했다. 우선 지역 소상인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닌 협력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하기 위해 외식 업종을 희망하는 지원자들을 선발 과정에서 제외했다. 대신 군산 출신 창업가와 지역사회와 상생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팀들을 선발했다. 


창업가들은 군산에 도착한 첫날 짐을 풀고, 이튿 날부터 오리엔테이션으로 거점공간이 있는 월명동 지역주민들에게 인사를 다니며 무지개떡을 돌렸다. 주민을 만나면 먼저 웃으며 인사하기, 하루에 군산 시민 한 사람씩 사귀기, 주민들과 친절하게 소통하기 등 구체적인 생활 수칙까지 만들어 공유했다. 한 창업가는 이 과정을 통해 지역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지역주민분들과 소통할 땐 주의 깊게 경청하고, 강렬하게 반응해요. 이런 태도가 다른 곳에서 일할 때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능구렁이가 된 것도 같은데, 노련해지고 유연해진 거죠. 이제 단골이 된 편의점 사장님도 처음엔 ‘여기 왜 있냐. 그냥 서울 가라’고 말씀하셨어요. 지금은 연휴에 군산에 남아 있으면 ‘군산이 살기는 좋지’ 하면서 저를 챙겨주세요.” 이렇게 지역과의 접점을 늘리려는 꾸준한 노력을 통해 지역주민들과의 관계도 바뀌었다.


로컬라이즈 군산 거점공간의 루프탑에 군산 지역 소상공인과 로컬라이즈 군산 청년 창업가들이 함께 모여 맥주를 마시는 파티 ‘비어 데이‘가 열렸다.

청년, 창업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이들이 고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말이 아닌 행동이 신뢰를 만든다’는 원리는 지역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런 점에서 언더독스가 가장 강조한 ‘실행’은 지역사회에서 신뢰를 쌓는 속도를 높였다. 실행은 아이디어와 계획을 머릿속에서 고도화하는 것이 아닌 현장에 나가 직접 부딪히며 보완해 나가는 과정을 뜻한다. 사무실에 앉아 노트북으로 제안서의 언어를 다듬는 것보다 거리로 나가 지역주민, 이해관계자, 관광객을 직접 만나며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보완해 가는 모든 행동이 창업가의 성장과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만든다. 이 과정을 지켜본 군산 토박이 창업가이자 지역 코치를 맡은 조권능 대표는 실행을 강조하는 언더독스의 코칭 강도가 ‘지독하다’고 말한다. “친구처럼 대하다가도 코칭할 땐 확 몰아세워요. 창업가들이 아이디어를 내면 ‘현장에서 테스트해 와라’, ‘사람들을 불러서 증명하라’고 하더군요. 새벽이든 밤이든 창업가들을 면담하며 체크하더라고요.”


액트프러너 언더독스의 끊임없는 압박과 촉진을 통해 26개의 창업팀은 지역에서 빨리 움직이고, 많이 움직이며, 꾸준히 움직였다. 창업가는 프로그램 참여자를 넘어 지역사회의 노드node가 되었고, 그들이 만든 수많은 실행의 움직임은 지역사회와 연결되는 경로link가 되었다. 지역에서의 실행은 비즈니스 모델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테스트로 끝나지 않는다. 지역사회와 관계 맺는 효과적인 방법으로서 실행은 사업의 지속가능성과 확장성을 만드는 연결 행위이다.



COVID-19, 모든 것은 바뀔 수 있다 

매년 로컬라이즈 군산 창업가들이 주축이 되어 지역 소상공인들과 함께 여는 축제 ‘로컬라이즈 페스티벌’은 언더독스 스타일의 실행을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일반적인 창업교육 프로그램은 시장이라는 현장을 만나기 전, 데모데이demoday를 열어 시뮬레이션을 거치고 심사위원의 피드백을 받아 완성도를 높인다. 그러나 언더독스는 13주간의 정규 교육 과정이 끝난 후, 군산의 거리에서 로컬라이즈 페스티벌이라는 현장 무대를 만들었다. 창업가들은 자신의 아이템을 군산 거리 곳곳에서 선보이며 지역주민, 이해관계자, 관광객이라는 심사위원으로부터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받았다. 축제는 매출, 방문객 수, 언급된 기사 수 등 정량적인 성과를 냈지만, 측정되지 않은 성과도 있었다. 그것은 26개 팀이라는 참가팀의 규모감과 청년들만의 에너지로 군산의 텅 빈 거리에 감돌던 소멸의 위기감을 반전시키는 강렬한 장면들이다. 군산의 청년 창업가들은 이 축제를 통해 로컬라이즈 군산을 이루는 문화의 일부로서 지역 안팎에 대대적으로 소개되었다. 더불어 지역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높아졌다.


창업팀들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첫해를 보내고, 본격적인 성과를 내고자 했던 이듬해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COVID-19 팬데믹이었다. 지역을 활성화한다는 목표 아래 오프라인 매장 위주로 활동하던 창업가들에게는 모든 것이 멈추는 시간이었다. 지역 간 이동이 제한되었고, 관광객의 발길도 뚝 끊겼다. 실행을 통해 결과를 확인하고, 수정, 보완하는 언더독스의 코칭 방식도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줄어든 매출과 발길이 끊긴 관광객, 예측 불가능한 전망이 더해져 창업가들의 지속가능성은 위협받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장에서 부딪히며 보완하는 유연함과 지역에 대한 이해가 진가를 발휘하기도 했다. 창업가들은 오지 않는 관광객을 기다리며 불평하는 대신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사업 방향을 수정했다. 관광객에게 컨셉 사진을 찍어주던 창업팀 월명 스튜디오는 군산 시민들이 증명사진을 찍기 위해 전주, 익산까지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군산 지역주민들을 위한 증명사진 서비스를 시작했다. 


창업가뿐 아니라 운영자인 언더독스도 위기에 유연하게 적응했다. 특히 로컬라이즈 군산의 시그니처 프로그램인 ‘로컬라이즈 페스티벌’을 온라인 방식으로 전환했다. 군산의 특산품인 김을 판매하는 팀은 참여자들에게 미리 김을 보내주고, 실시간 방송을 통해 김 굽는 방법을 알려줬다. 군산, 강릉, 제주 지역의 창업가들과 협력해, 로컬 브랜드를 소개하는 전시회를 서울의 언더독스 본사에서 열기도 했다. 언더독스는 위기 속에서도 창업가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로컬 라이즈 군산이라는 프로젝트를 홍보하는 매거진, 투어, 워크숍 프로그램을 기획해 창업가들에게 외주를 주기도 했다.


로컬라이즈 군산의 코로나 위기 극복 과정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그것은 정교한 예측이나 완벽한 계획이 아닌 변화를 감지하고 재빠르게 적응하는 능력의 체화이다. K팝 가수들이 데뷔를 위해 강도 높은 연습생 시절을 보내며 실력을 기르듯이 언더독스의 강도 높은 코칭 과정은 창업가들에게 변화 적응력이라는 실력을 키워준다. 생존하기 위해 진화해야 하듯 변화 적응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측 불가능한 위기를 넘기 위한 필수적인 역량이다. 



다양한 페이스메이커가 있어야 생태계가 형성된다 

로컬라이즈 군산의 청년 창업가들은 저마다의 관점으로 군산의 문제를 정의하고, 비즈니스를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업 아이템을 구현했다. 지역의 특색을 담은 대표 브랜드가 없다는 문제의식과 군산에서 재배된 아버지의 김이 타지역 특산물이 되어 유통되는 것에 안타까움을 갖고 김 브랜드를 만든 ‘군산섬김’, 밤에는 더욱 사람이 없는 지역에서 청년들이 즐길만한 문화 컨텐츠가 없다는 아쉬움으로 군산 관광지 중심에 푸드존을 오픈해, 월드컵 응원전과 야외 음악회 등 주민과 관광객을 위한 즐길거리를 제공한 ‘군산밤 협동조합’, 3대째 대를 이어온 목수로서 군산의 역사와 세월을 간직한 건물들이 폐건물로 방치되는 모습에 문제의식을 느껴, 폐건물을 로컬라이즈 군산 창업팀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망치 디자인’까지. 그 밖에도 3년간 군산 관련 콘텐츠 및 서비스가 502개 개발되었고, 26개 팀이 군산의 유휴 공간을 활용해 매장과 공간을 열며 지역을 활성화했다.

로컬라이즈 군산의 창업가들이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플레이어로서 다양한 비즈니스를 실행하고,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언더독스 외에도 다양한 주체들의 역할이 있었다. 이들의 강점이 상호 보완적으로 발휘되고, 유기적인 협력이 이뤄지면서 창업가들이 지속할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SK 이노베이션 E&S는 로컬라이즈 군산 프로젝트에 3년간 자본을 투자하며,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청년 창업가들의 기반을 조성했다. 자사 네트워크를 활용해 청년 창업가들을 SOVAC, SK행복나눔재단 등과 연결했고, 판로 개척을 지원해 지역을 넘어 전국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페이스페이커로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과 3년간 투자한다는 약속을 지켰다.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SK 이노베이션 E&S는 성장을 페이스메이킹하는 언더독스와 빠르게 의사결정을 하며, 언더독스 특유의 속도감이 제대로 발휘되도록 했다. 청년 창업가들에게도 빠른 성과를 요구하는 대신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성장과 관련된 KPI를 설정하도록 권유했다. 또한 로컬라이즈 페스티벌이 매년 개최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청년 창업가들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조력하고 있다. SK 이노베이션 E&S는 민간 기업의 기민함과 유연함, 대기업이 가진 자본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창업가가 실력을 키우며 성장할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었다. 


로컬프렌들리는 로컬라이즈 군산 창업팀 중 하나로 지역과 창업가를 묶는 커뮤니티 메이커 역할을 담당했다. YWCA 활동가 출신의 창업가가 이끄는 로컬프렌들리는 수익성 위주의 비즈니스를 추구하기보다 ‘지역 청년 커뮤니티’ 모델을 실험하는 다채로운 활동을 진행했다. 떡볶이 파티, 복날 삼계탕 파티와 같은 즐거운 식사 자리를 열거나 지역 청년들과 창업가들이 모여 폐건물을 고치는 도시재생 방식의 DITDo It Together 프로젝트를 총괄하기도 했다. 다른 창업가들로부터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로컬프렌들리가 가진 비영리 활동가적 정체성은 활동 곳곳에 묻어있다. 이들이 만든 환대와 연결은 로컬라이즈 군산 창업가들이 하나의 청년 커뮤니티로서 끈끈하게 연합하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이 생태계에서 함께 달리는 동시에 서로에게 활력을 불어넣었다. 


로컬라이즈 군산의 지역 코치인 조권능 대표와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윤주선 교수의 역할도 컸다. 특히 윤주선 교수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하는 현장 연구자로서 언더독스와 창업가들에게 국내외 도시재생 사례를 소개하고, 로컬라이즈 군산 프로젝트가 가진 차별점과 의미를 이론적으로 해석하며, 방향성에 대한 확신을 주었다. 또한 국내 로컬 생태계와 공공영역에 로컬라이즈 군산 프로젝트를 주목할 만한 도시재생 모델로 소개하며, 연결의 가능성을 높이기도 했다. 연구자가 커뮤니티에 속해 있을 때, 현장과 지식은 더욱 활발하게 교차되며 시너지를 낸다. 현장의 플레이어는 실험을 지속할 지식적 근거를 얻고, 연구자는 생태계에 필요한 현장 중심의 지식을 발전시킬 수 있다. 


한편, 군산시는 로컬라이즈 군산의 창업가들이 엑스트라 마일extra mile을 갈 수 있도록 추가적인 지원을 제공했다. 창업가들은 전입신고를 통해 군산 시민이 되고 지원 자격을 충족하면서,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군산시는 청년 창업가들에게 지원금을 제공하는 창업 희망 키움 사업, 군산의 비어 있는 원룸을 무상에 가깝게 제공하는 청년 스테이 사업을 진행했다. 특히 청년 스테이 사업은 군산시가 청년 창업가를 위한 지원 방안을 모색하던 중, 한 청년 창업가에 의해 주거 문제에 대한 창업가들의 고충이 전해지면서 기획되었다. 공공기관이 청년의 목소리를 통해 현장의 필요를 파악하고, 정책으로까지 구현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로컬라이즈 군산 창업팀인 로컬프렌들리(구. 와이랩컴퍼니)가

공간 완공을 기념하며 개업식을 열었다. 


What’s Next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사회혁신은 관성을 돌파해 새로운 해법을 제시한다. ‘하던대로’라는 관성은 지금의 문제를 만든 구조를 유지하는 강력한 중력이다. 관성을 돌파하지 못하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틀에 갇힌 채 실패를 반복하게 될 뿐이다. 사회혁신은 결국 관성이라는 중력을 돌파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시도로부터 시작된다. 


오늘날의 지역 쇠퇴 위기는 인구 유입 정책이나 재정 지원, 일회성 프로그램으로 대응이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행 중심의 페이스메이킹 방식인 액트프러너십은 청년 인구를 유입 및 성장시키고, 신뢰 기반의 네트워크를 확장하며, 협력을 촉진해 지역에 새로운 역동을 만들 수 있다. 즉 액트프러너십은 지역이 가진 관성을 돌파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효과적인 접근 방식이 될 수 있다. 


액트프러너십은 페이스메이커조차 조력자의 역할에 머물러 있지 않게 한다. 액트프러너십을 탑재한 페이스메이커는 지역 현장의 또 다른 플레이어가 되어 실행을 통해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때 페이스메이커는 지역에 변화를 만드는 액트프러너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한다. 액트프로너로서 페이스메이커는 청년 창업가들과 성장과 위기의 순간을 함께 맞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며, 진한 소속감을 나누는 동료 커뮤니티를 이룬다. 이러한 액트프러너십 중심의 커뮤니티는 상호 간에 실행을 촉진하는 선순환을 만들며, 지속적으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지역 쇠퇴라는 구조적 문제를 둘러싼 관성은 여전히 복합적이고 완강하다. 이를 극복하며 만들어낸 지역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페이스메이커를 포함한 통합적이고 유기적인 지원 생태계가 지속되어야 한다. 액트프러너십은 외부 자원과 청년 창업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단기적이고 집중적인 변화를 만드는 데 유효했다.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지역 활력 솔루션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지역 내부의 인적 자원(지역주민, 마을 공동체, 교육기관, 지역 기업, 시민사회 단체 등)을 중심으로 한 페이스메이킹 전략과 그에 따른 지원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안도 균형 있게 다뤄져야 한다.


액트프러너십이라는 실행 중심 문화를 내재화한 창업가 커뮤니티가 군산에 남아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지금, 분명한 질문이 남아 있다. 이들이 지역의 액트프러너로서 실행을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다음 단계의 페이스메이킹은 무엇인가? 초기 설계자와 페이스메이커는 어떤 역할로 전환되어야 하는가? 통합적이고 유기적인 지원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자원은 어떻게 지속적으로 확보할 것인가? 지역의 활력을 유지하고 높이기 위한 다음 페이스를 고민할 때이다.




참고

1. 액트프러너십은 실행을 의미하는 액트(act)와 기업가정신을 뜻하는 앙트프러너십(entrepreneurship)의 합성어로, 창업가에게 가장 중요한 실행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마인드셋을 의미한다. 액트프러너(act-preneur)란 이런 마인드셋을 탑재하고 ‘실행을 통해 변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안지혜

안지혜는 진저티프로젝트의 CCO로서 질적연구와 내러티브 탐구를 기반으로 지역 변화의 임팩트를 기록해왔다. 부산 영도, 밀양, 군산, 포천 등지에서 청년, 창업, 마을 공동체를 주제로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2019년 ‘로컬라이즈 군산’ 아카이빙을 통해 현장 중심의 변화를 담아냈다.


박대은

박대은 언더독스 파트너는 언더독스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 생태계 관련 프로젝트와 연구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현재는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정홍래

정홍래 대표는 소셜벤처 웰바이 엑싯 후 언더독스 창업코치로 활동했으며, KAIST와 한양대에서 사회적기업가 MBA와 사회적경제학 박사를 마쳤다. 현재 지역연구소 비커넥트랩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