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 일반]모두를 위한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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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 일반 · DE&I
모두를 위한 놀이터

2021-4


MARIANNE DHENIN



Summary. 포용적 디자인을 통해 장애아동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놀이터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 전역의 학교와 공원에는 수십만 개의 놀이터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놀이터는 장애아동이 이용하기 어렵게 설계되어, 본래 목적대로 모든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인구조사국US Census Bureau에 따르면, 미국 내 장애인은 4천만 명 이상이며, 이 중 7백만 명 이상의 아동이 자폐스펙트럼부터 뼈, 관절, 근육 관련 장애까지 다양한 이유로 공립학교 내에서 편의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기존의 놀이터에는 나무 조각이나 자갈 등 울퉁불퉁한 바닥재가 사용되어 휠체어나 보행기 같은 이동보조기구를 이용하는 아이들의 접근을 제한한다. 이 외에도 놀이터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문제 요소들이 존재하는데, 예를 들어, 조용한 공간이 없는 놀이터에서는 자폐스펙트럼과 같이 감각처리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자극을 조절할 필요가 있을 때 머물만한 곳이 없다. 또한 울타리가 없는 놀이터는 자폐아동에게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미국 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ADA에 따라 미국에서 새롭게 조성되거나 개보수되는 놀이터는 반드시 접근성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하지만 이 기준은 장애아동의 놀이 경험보다 단순한 이동 편의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실제로 놀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데에는 한계를 갖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놀이터 디자인 업체인 어스케이프 플레이Earthscape Play의 수석디자이너 네이선 슐라이허Nathan Schleicher는 이에 대해 'ADA 기준은 놀이의 경험을 고려하지 않는다'며, '이동가능성circulation에 초점을 맞춘 기준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미네소타의 놀이터 디자인 및 제작 회사 랜드스케이프 스트럭처스Landscape Structures의 포용적 놀이 전문가 질 무어Jill Moore도 어린 시절 휠체어 사용자로서 놀이터를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고 회상한다.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어요. 놀이 경험이 기준에 반영되지 않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최소한의 요소만이 고려되었거든요”라고 그는 말한다.


놀이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은 발달 과정에 있는 아동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놀이는 사회적, 정서적, 학업적 학습의 기초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놀이터는 아이들이 상상력을 발휘하고, 운동 능력을 익히며, 또래와의 교감 속에서 감성 지능을 키우는 공간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단순 접근성을 넘어 ‘진정한 포용’을 실현한다는 목표를 가진 단체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모든 아동이 원하는 방식으로 놀이터에서 놀 수 있도록 이동성이 뛰어나고 감각적 경험이 풍부한 공간을 설계하고 있다.



사명감으로 시작하다

'포용적 놀이'를 추구하는 운동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랜드스케이프 스트럭처스는 이러한 변화를 선도하는 단체 중 하나이다. 이 회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스콧 로스키Scott Roschi는 '포용적 놀이터 디자인이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은 장애인 커뮤니티의 적극적인 목소리와 협력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랜드스케이프 스트럭처스가 처음 포용적 디자인을 도입한 것은 2002년으로 당시 캘리포니아 기반 비영리단체인 셰인스 인스퍼레이션Inclusion Matters by Shane’s Inspiration과 협력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 단체는 놀이를 통해 장애아동을 위한 편견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포용적 놀이터 디자인과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비영리단체 하퍼스 플레이그라운드Harper’s Playground도 10여 년 전 이 운동에 동참했다. 공동창립자인 G. 코디 Q. J. 골드버그G. Cody Q. J. Goldberg는 모든 것이 2009년 공원을 산책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당시 네 살이었던 그의 딸 하퍼Harper는 보행기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보행기의 바퀴가 놀이터의 나무 조각 바닥에 걸리는 일을 겪었다. 이 일을 계기로 골드버그는 이듬해 하퍼스 플레이그라운드를 설립하고,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포용적 놀이터를 조성하는 첫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한 기금은 완전히 풀뿌리 운동의 방식으로 마련되었다. 골드버그 부부는 빵 바자회를 열어 지역 기업들에 기부를 요청했으며, 각종 보조금 사업에 지원하고, 유명인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 결과, 3년 만에 120만 달러가 모였고, 2012년 하퍼스 플레이그라운드의 첫 번째 놀이터가 문을 열었다.


이후 단체의 모금 전략은 기업 파트너십과 보조금 중심으로 발전했고, 현재까지 미국 전역에서 수십 개의 놀이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골드버그는 다섯 명의 직원이 '자원봉사자 군단legion of volunteers'과 협력하고 있으며, 열한 명의 이사들로 구성된 이사회가 조직을 이끌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수준으로 지역사회와 협업하고 있다. 하퍼스 플레이그라운드는 디자인 기준을 충족하는 놀이터에 인증 마크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 인증의 목표는 '환대의 3요소three layers of inviting'로 일컬어지는 신체적, 사회적, 정서적 측면에서 모든 아이들이 환대받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


골드버그는 '포용적inclusive'이라는 단어가 종종 ‘접근가능한accessible’이라는 단어와 혼용된다고 말한다. 그는 접근성이 중요한 요소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포용적인 디자인의 한 가지 측면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동보조기구를 사용하는 아이들도 접근할 수 있도록 놀이터를 설계하는 것은 골드버그가 말하는 '신체적으로 환대하는 디자인physically inviting design'의 요건을 충족한다. 하지만 그의 단체는 디자인이 사회적, 정서적으로도 사람들을 환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천연 건축 자재를 사용하고, 원형 좌석 공간, 깔끔한 선, 예술 작품, 악기와 같은 요소를 활용해 공간에 들어서는 모든 사람이 환대받고 영감을 얻도록 설계한다.


하퍼스 플레이그라운드가 이처럼 '환대하는 공간inviting spaces'을 설계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은 포용적 놀이터 디자인이 자연친화적 놀이터의 증가와 더불어 발전해 온 과정을 잘 보여준다. 자연친화적 놀이터는 지역의 자연 환경을 존중하며, 나무나 밧줄 같은 천연 재료로 만들어지고, 모래나 물과 같은 감각을 자극하는 요소를 포함해 사회적 놀이와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준다.


어스케이프 플레이는 포용적 놀이터 디자인을 중심에 두지만 동시에 천연 건축 자재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그들이 나무로 제작하는 놀이 구조물은 대체로 높고, 동물을 테마로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다른 놀이터 업체가 동일한 재료로 만드는 것보다 훨씬 크고 복잡한 형태를 띤다.


2005년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주거용 조경 회사로 설립된 어스케이프는 2010년부터 놀이터를 디자인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회사의 커뮤니케이션 디렉터인 로라 힐리어드Laura Hilliard는 말한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놀이터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조경 회사는 2016년 어스케이프 플레이가 독립적인 사업체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현재 어스케이프 플레이는 40명 이상의 정규직 직원을 두고 있다.


이 세 단체들에게 있어 장애인 커뮤니티와의 협업은 여전히 핵심적이다. 어스케이프 플레이의 모든 디자이너들은 기본적인 접근성 요구 사항을 반영하도록 훈련받으며, 팀의 선임들은 디자인이 창의적인 방식으로 접근성과 포용성을 구현했는지 검토한다. 또한 팀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지역 대표들과도 협력한다. 플로리다주 세인트피터즈버그의 장애인 권익 옹호 위원회Committee to Advocate for Persons with Impairments는 2019년 개장한 어스케이프의 수상 이력이 있는 놀이터, 세인트 피트 피어St. Pete Pier의 디자인을 검토하고 피드백을 제공했다.


랜드스케이프 스트럭쳐스는 무어와 같은 포용적 놀이 전문가로 구성된 팀을 운영하고 있다. 무어는 이 팀이 '장애인을 위해(for) 설계하는 것이 아닌 장애인과 함께(with) 설계한다'는 조직의 철학을 구현한다고 말한다. 이들의 비전은 디자인 과정에서 장애아동을 중심에 두는 것이다. "아이들은 도전을 좋아하고, 높은 구조물과 움직이는 놀이기구 그리고 그네처럼 앞뒤로 흔들리는 것을 좋아합니다"라고 무어는 설명한다. "우리는 장애 아동이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을 요소를 발견하고, 그 분야에서 혁신을 이루려 합니다."


혁신적인 놀이기구의 대표사례로는 랜드스케이프 스트럭쳐스의 위-고-스윙We-Go-Swing이 있다. 이 놀이기구는 휠체어 사용자가 휠체어에서 내리지 않고도 이용할 수 있는 개방형 곤돌라와 사용자가 직접 잡고 밀거나 당겨서 그네를 흔들 수 있는 레버로 구성되어 있다. 위-고-스윙은 놀이터 환경에 호환이 가능하며, 양쪽에 여러 사용자를 태울 수 있어 장애 유무와 무관하게 모두가 그네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글로벌 시장으로

위-고-스윙 같은 혁신적이고, 포용적인 놀이 요소가 도입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식의 부족과 비용 문제에 있다. 포용적 놀이터의 이점을 잘 모르는 지역사회를 위해 디자인 단체들은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무어와 골드버그는 대중연설을 중요한 활동으로 여기고 있으며, 랜드스케이프 스트럭쳐스는 놀이터 디자인의 장점을 강조하는 팜플렛을 배포한다. 로스키는 이러한 자료가 홍보의 역할을 하며,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지지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포용적 놀이 시설을 위한 자금은 지역사회 모금 활동을 통해 조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퍼스 플레이그라운드 역시 수년간 이러한 방식으로 기금을 마련해 왔다. 지지자들은 포용적 디자인이 점점 더 보편화되면서 앞으로는 도시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비용을 부담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로스키는 지난 10년간 이러한 변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트렌드 중 하나입니다. 지역사회는 포용적 디자인을 통해 더 많은 주민이 혜택을 누리고 있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플로리다주 세인트피터즈버그, 오리건주 포틀랜드,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등 여러 도시가 포용적 놀이터 프로젝트를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전용 예산을 배정했다.


포용적 놀이터 디자인의 미래는 무궁무진하다. 2020년, 어스케이프 플레이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사무실을 열고, 유럽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랜드스케이프 스트럭쳐스는 이미 러시아, 호주, 싱가포르 및 유럽 여러 지역에서 매년 3,000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지난해 일본 도쿄에서 첫 번째 해외 프로젝트를 수행한 하퍼스 플레이그라운드 역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골드버그는 현재 국제 시장으로의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


로스키는 이러한 움직임이 지금 티핑포인트에 있다고 믿는다. "저는 포용적 디자인이 더 이상 틈새 시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5년 안에 포용적 놀이는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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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ANNE DHENIN

마리안느 데닌은 사회 및 환경정의, 정치, 중동에 대한 글을 쓰는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