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재단, 소멸을 선택하다
FARHAD EBRAHIMI
2년 전, 나는 ‘해야 할 일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라는 제목의 글을 더포지The Forge에 기고했다. 그 글은 후원자 조직화에 관해 코러스 재단이 품었던 의문을 가장 명확히 드러낸 글이었고, 당시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 단행본의 글들을 숙고하면서, 나는 당시 던졌던 질문들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지원할지 결정하려면 권력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필란트로피 영역에서 우리가 권력을 형성하고 이전하려면 권력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이 단행본의 서두에서 밝혔듯, 코러스 재단의 관심사와 전략은 시간이 흐르며 진화했다. 재단의 기금 전부를 소진하겠다는 결정은 개인적인 결심으로 시작되었지만, 어떻게 하면 기금을 혁신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에 우리는 점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우리는 기고문이나 재단의 활동을 소개하는 영상, 컨퍼런스 발표 등에서 이런 고민을 발전시키기도 했지만, 동료들과 나눈 무수히 많은 대화를 통해 이 고민을 공유하고 발전시켰다. 그 과정에서 이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영감과 자극을 주고받으리라는 기대를 갖고서 말이다. 우리는 권력에 대한 전환을 시도했다. 책임감 있게 권력을 유지하는 것에서 나아가, 권력을 공평하게 나누고 궁극적으로는 권력 전체를 이전하는 방식을 시도했다. 나는 우리의 사례가 공유해도 될 만큼 무르익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사례는 여전히 불완전하기도 하다.
나는 앞서 공유한 글에서 우리가 새로운 기금 배분을 개척해 온 길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두 가지 과제를 마주했다. 첫째, 우리의 배분 활동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필란트로피 영역의 동료들과 우리의 배분방식이 다른 재단들에도 확산되길 바라는 수혜단체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길 원했다. 둘째, 코러스 재단이 제한 없는 기금을 장기적으로 지원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민간재단으로 조직을 재편하면서,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기금 배분 업무에 이전만큼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혜단체들에게 그들의 활동을 더 잘 지원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더 하면 좋겠냐고 질문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명확하고 명쾌했다. 그것은 “여러분과 같은 방식으로 지원하는 재단들을 모아주세요”였다.
그래서 우리는 ‘현장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시도를 시작했다. 이를 위해 기본적으로 연구, 전략적 소통, 정치 교육, 스토리텔링과 같은 방법이 활용되었다. 이 모든 것은 필란트로피 영역의 동료기관들이 배분 방식을 혁신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었다.
아마 ‘현장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노력이 어떤 결과를 거뒀는지, 현장에 정말로 영향이 미쳤는지 궁금할 것이다. 몇몇 조직에서 약간의 움직임이 있었지만, 그 중 대부분은 내부에 이미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된 곳들이었다. 더포지에도 비슷한 경험을 소개했지만, 친절한 사업 담당자가 꾸준히 보고서를 읽고, 브리핑에 참석하고, 생각을 공유한다고 해서 재단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우리가 무엇을 놓친 걸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혹은 일어나지 않고 있는 걸까?’
우리는 재단의 새로운 모델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 했다. 그것은 더 나은 배분과 모금 모델을 만드는 일일 뿐 아니라, 필란트로피 영역 내부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역량을 키우며, 구조를 바꾸는 데 영향을 미치는 일이기도 했다. 우리는 더 유능한 기금 배분가를 기르는 데 그치지 않고, 후원자들을 제대로 조직할 수 있는 조직가들을 길러내야 했다. 이 시급한 과제는 배분 업무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역할이 되었다.
처음에 더포지에서는 대안적인 재단 모델에 대한 글을 써 달라고 요청했다. 재단이 무엇을 다르게 할 수 있고, 다르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이다. 코러스 재단이 현장에 영향을 미치고자 시도해 온 과정에서 경험한 바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일을 회고해보며, 나는 더포지에 조금 다른 방향으로 글을 써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필란트로피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방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전제에 대해 지적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 재단들과 고액 자산가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경쟁과 갈등에 대해 다루고 싶었다. 또한 필란트로피 영역에서의 리더십 개발, 기반 조성, 조직 및 캠페인 개발, 연대 형성의 필요성에 대해 밝히고 싶었다. 내가 다루고 싶었던 모든 것은 필란트로피 영역에 대한 것이었다. 더포지는 이를 수용해 주었을 뿐 아니라 내가 자랑스럽게 여길만한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주었다. (더포지의 훌륭한 특집기획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냉철한 평가
더포지에 실린 내 글은 호평을 받았지만. 우리 앞에는 현실적인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긍정적인 신호는 진정한 의미의 조직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필란트로피 영역에는 조직화를 훌륭하게 해내는 사람들이 존재하며, 나는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또한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특별히 리소스 제너레이션Resource Generation, 솔리데어Solidaire, 네이버후드 펀더스 그룹Neighborhood Funders Group을 언급하고 싶다. 이 커뮤니티들은 회원들이 조직화에 대한 질문을 이론과 실행 측면 모두에서 던져보도록 적극 지원한다. (나는 솔리데어의 공동설립자이자 이사회의 일원이지만, 활동가들이 이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는 데 내가 기여한 바가 전혀 없음을 밝힌다.)
풀뿌리 단체들은 후원금을 받는 것 이상의 목적을 갖고 정기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지원기관을 만난다. 미셸 마스카레냐스Michelle Mascarenhas가 자신의 글에서 밝혔듯이, 코러스 재단의 수혜단체들은 모금 이상의 목표를 위해 전략을 가지고 우리를 찾아왔다. 나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초대해 준 스토리리기반 전략 센터Center for Story-based Strategy, 기후정의 연대Climate Justice Alliance, 풀뿌리 지구정의 연대Grassroots Global Justice Alliance, 무브먼트 제너레이션 정의와 생태 프로젝트Movement Generation Justice & Ecology Project에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숙련된 조직가인 이들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해나가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힘만으로 우리 영역이 조직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노력에 동참할 책임이 있다. 적어도 기금 제공자로서의 역할만큼 기부자들이나 재단들을 조직화하는 역할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니나 루오Nina Luo는 올해 초 디센트Dissent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후원자들이나 지원기관들에게는 권력에 대한 분석 및 성과에 대한 분석을 기반으로 한 분명한 전략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구조와 역량에 대한 무의미한 대화가 되풀이된다.’ 하지만 다른 방식도 가능하다. 재단의 사업 담당자 중에는 조직가 출신이 많다. 재분배 활동에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기부자도 많다. 일관된 가치에 따라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자문가와 컨설턴트 또한 많다. 하지만 이들은 조직화되어 있지 않다. 진보적인 후원자들과 지원기관들을 조직화하지 못하기 때문에 진보진영에 더 큰 문제가 양산된다.
문제는 우리가 공통의 언어와 프레임워크, 조직화에 전념할 수 있는 기반, 전략적 캠페인에 대한 명확한 상 없이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지원기관의 구성원들과 우리가 지원하는 활동 사이에 충분한 조정이나 책임, 형평성 없이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작업에는 위험이 따른다. 지원기관들을 조직화하는 일은 일터 중심의 조직화로 실행되곤 하는데, 일터는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는 현장일 수 있다. 상사와 나의 관점이 다를 때는 해야 할 일을 안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일터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시도하다 실질적인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가령 이런 조직화 작업을 하다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는데, 그런 일이 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도전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필란트로피 영역에서 나타나는 한 가지 분명한 경향성을 강조하고 싶다. 여성과 유색인, 특히 흑인과 선주민 여성들은 현장에서 가장 많은 업무를 맡고 있으며, 동시에 가장 큰 리스크를 떠안고 있다. 조직화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에 대해 논의할 때, 우리는 가장 큰 리스크를 감당하는 사람들을 적절히 지원하고 뒷받침할 수 있는 여건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나 역시도 비공식적인 지원을 하기도 했다. 머지않아 이런 비공식적인 노력도 점점 더 필수적인 지원이 되리라 믿지만, 실질적이고 지속가능한 환경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아직 한참 뒤처져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가장 예민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그것은 우리에게 왜 필란트로피 영역을 조직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동의 비전이 없다는 것이다. 이 단행본의 서두에서도 썼듯이 나는 민간 재단에 대해 폐지론자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일찌감치 알리는 편인데, 이는 이념적인 투명성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고, ‘폐지’야말로 지원기관을 조직화하는 활동을 함께 하는 것의 잠재적 비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의 비전 없이 이루어 내는 조직화 작업의 결실은 개별 기관의 성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영역 전반의 변화를 기대한다면 비전은 과감해야 한다. 다른 지원기관, 수혜단체, 사회운동 그룹들과 협력할 수 있는 역량 또한 매우 높은 수준이어야 한다.
불편함이라는 영역 속으로
여러 문제와 도전들은 극복될 수 있다. 그러나 필란트로피 영역에서 권력이 행사되는 방식과 집중되는 위치를 변화시키려면 임계점을 넘겨야 한다.
현장에는 조직화에 사용되는 도구와 기술에 대한 거부감이 존재하기도 하다. 그 이유는 주로 조직화 과정에서 경쟁과 갈등이 공개적으로 다뤄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조직 내 대화를 위해 노동 조직화 노트Labor Note라는 프레임워크를 실험해 왔다. 이 프레임워크는 어떤 업무 환경에도 자연스럽게 적용될 정도로 효과가 검증되었지만, 필란트로피 맥락에서는 다소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이 프레임워크는 거리낌 없이 우리 조직 내 누군가에게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암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후원자들과 지원기관들을 혁신적으로 조직하면서도 이들을 소외시키지 않을 수 있는 전략이 있을지 자문하게 된다. 조직화 전략을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도 실제적인 갈등이 있다. 그것은 혁신적이고 파괴적인 방식을 택할 것인지, 참여적이고 포용적인 방식을 택할 것인지 사이의 갈등이고, 갈등과 책임을 비판적으로 묻는 방식calling out과 대화에 초대하고 공동의 기준을 높이는 방식calling in 사이에서의 갈등이다. 나는 후원자나 지원기관을 소외시키지 않으면서도 변화를 이뤄낼 방식이 있다고 믿기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러한 긴장을 창의적으로 해결하며 새로운 길을 탐색할 수 있는 생태계가 필요하다.
조직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고 지원기관들의 내부 문화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결함 있는 변화이론에 기반한 전략으로 계속 회귀할 것이다. 이 단행본과 같은 매체를 활용해 정보를 확산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또한 영향력 있는 풀뿌리 리더들의 전략적 스토리텔링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코러스 재단이 17년에 걸쳐 작업해 온 것처럼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일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필란트로피 영역을 진정으로 혁신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방식을 변화시켜야 하고, 그 권한이 누구에게 주어지는지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우리는 사적 이익에 대해 어떻게 사고하는가?
우리는 지난 2년간 지원기관들을 조직화하는 일이 다른 형태의 조직화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얘기를 수차례 들었다. 나도 이에 동의한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을까?
사람들은 우리가 후원자들이나 지원기관을 조직한다고 할 때, 특히 고액 자산가나 고액의 보수를 받는 필란트로피 전문경영인들을 모은다고 할 때, 그들에게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 말고 공익을 위해 사적 이익을 희생하길 요청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예술가이자 활동가인 릴라 왓슨Lilla Watson은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만약 나를 도우러 왔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한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과 나의 자유가 연결되어 있다면 우리는 협력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단기적이고 거래적인 사적 이익’과 ‘장기적이고 혁신적인 사적 이익’의 차이를 알 수 있다. 나의 경우, 아주 어린 나이에 주어진 자원과 권력을 지키는 것이 단기적이고 거래적인 사적 이익이라고 한다면, 장기적이고 혁신적인 사적 이익은 커뮤니티의 결정권을 위해 내가 가진 자원과 권력을 급진적이고 민주적인 과정과 구조로 이전하는 것이다.
자유는 권력을 쌓거나 행사하는 것의 결과일 수 있지만, 권력을 내려놓음으로써 실현되는 것일 수도 있다. 한 사람이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갖는 것은 대단히 해롭고 치명적이다. 오랫동안 압제당했던 이들에게 권력을 이양할 때 모두가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전략적인 문제이다. 우리가 필란트로피 기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집단적 역량을 가졌다는 점은 종종 과소평가 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결국 이사회가 결정할 문제’라거나 ‘가족 이사들이 원치 않는다면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누가 이사회를 조직화하고 있는가?’ 또는 ‘누가 가족 이사들을 조직화할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경우는 얼마나 되는가? 그들의 관점을 바꿀 수 있다고 믿거나 이사회나 가족 이사, 기타 거버넌스 구조에서 다른 생각을 가진 구성원들이 내부 조직화 작업을 해 낼 수 있다고 희망을 품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 이사회나 가족 이사진의 변화가 수혜 대상의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에겐 어떤 일들이 가능할까?
니나 루오는 이상적인 후원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바라는 기부자는 뛰어난 조직가입니다. 인내심, 감정 지능, 전략적 분석을 통해 부유층과 장기적 관계를 형성해 그들을 동반자로 만들 수 있는 사람 말이죠. 내가 바라는 기부자는 우리와 전략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단지 우리에게 돈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운동에 맞게 기금을 마련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는, 의미 있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 못지않게 감정을 쏟을 수 있는 진정한 동료여야 합니다.”
가장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는 후원자 조직화에서는 모든 당사자의 장기적이고 혁신적인 사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계층 간, 다인종 간 노력이 나타난다. 이런 조직화에는 계층 간 연대를 이루는 것뿐 아니라, 계급 체제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들을 길러내는 일도 포함된다. 이는 일터의 단기적이고 거래적인 계급적 이해관계에 초점을 맞춘 많은 조직화 도구 및 프레임워크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다행히 자유와 해방이라는 공동의 비전을 위해 다양한 기반을 조직화한다는 발상은 전례가 없지 않으며, 다인종적이고 반인종차별주의적인 조직화의 핵심 전략이기도 하다. 내가 더포지의 글을 통해 밝힌 일터 조직화에 관한 주장에 더해, 우리는 필란트로피의 맥락에서 범 계층적이고, 다인종적이며, 반인종차별적이고 반계층차별적인 (감히 말하자면 반자본주의적인) 조직화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그려내야 한다. 이는 단지 후원자 조직가에게만 해당하는 질문이 아닌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더 넓은 범위의 아젠다이기도 하다.
우리 안의 모순을 찾아서
무브먼트 제너레이션이 밝혔듯,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전환은 모순을 탐색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정의로운 전환을 이루려면 우리가 향하는 방향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그곳에 도달하도록 도와줄 잘 조율된 도덕적 나침반이 필요하다.
이 단행본에서 보았듯 필란트로피 영역에는 모순이 가득하다. 어떤 필자는 이런 모순을 분명히 짚어냈고, 이 글처럼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긴장을 드러낸 글도 있다. 정의로운 전환이 모순을 탐색하는 과정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후원자 조직화에 내재한 모순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정의로운 전환을 지향하는 커뮤니티에서 우리는 소위 해법이라는 것이 의사결정 과정, 물질적 혜택, 전반적인 영향, 권력의 역학 면에서 현 상태를 강화하는 데 기여할 때, 그것을 ‘거짓 해법’으로 규정한다. 거짓 해법이 명확히 구별될 때도 있지만, 때로는 거짓 해법을 지적하는 것이 상당한 논쟁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기준으로 보면 분명 거짓 해결책인 것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기준으로 보면 전략적으로 조직화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필란트로피 영역을 조직화하기 위해 들여다보아야 할 모순의 유형이다.
이 단행본의 서두에서 나는 코러스 재단이 기껏해야 ‘과도기적 형태’라고 말한 바 있다. 폐지론자인 내가 기대하는 미래상에는 민간 필란트로피 기관이 없다. 이 점에서 보면 민간 필란트로피 기관, 특히 코러스 재단은 거짓 해법인 셈이다. 그렇긴 해도 코러스 재단은 풀뿌리 조직화 영역에 자원을 동원하고, 필란트로피 영역 내부에서 판을 흔들며 조직화할 전략적 기회를 제공했다. 과도기적 형태는 특별한 유형의 모순으로, 우리가 품은 내일의 비전에는 결코 용납될 수 없지만 오늘날에는 전략적으로 필요하다.
정의로운 전환의 관점에서 민간 필란트로피 기관은 기껏해야 모두 과도기적 형태에 불과하다. 오드리 로드Audre Lorde가 가르쳐 주었듯, 주인의 도구는 절대 주인의 집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민간 필란트로피 기관은 착취와 수탈 그리고 부와 권력의 독점 위에 구축된 경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좋은 소식이 있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미래에는 민간 필란트로피 기관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민간 필란트로피 기관을 포기하는 과정, 달리 말해 권력을 완전히 이양하는 과정이 신뢰할 만한 여정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엔 모순이 담겨있지만 나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무브먼트 제너레이션이 지적했듯이, 그것은 오직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그곳으로 우리를 데려다줄 잘 조율된 도덕적 나침반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서두에도 썼듯이 이 단행본은 여러모로 20여 년에 걸친 활동의 결과물이며, 우리가 몹시 자랑스럽게 여기는 결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겨우 출발점을 지났을 뿐이다. 이 작업은 대단히 불편할 수 있지만 동시에 엄청난 해방감을 안겨줄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나아가려는 방향에 집중해야 한다. 수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필란트로피 영역은 전환적 운동에 필요한 자원을 내어줄 현금인출기로서만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필란트로피 영역은 혁신하고 조직화할 가치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 원문 기사 보기
FARHAD EBRAHIMI
파하드 에브라히미는 코러스 재단의 설립자이자 대표이다.
댓글
필란트로피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재단, 소멸을 선택하다
FARHAD EBRAHIMI
2년 전, 나는 ‘해야 할 일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라는 제목의 글을 더포지The Forge에 기고했다. 그 글은 후원자 조직화에 관해 코러스 재단이 품었던 의문을 가장 명확히 드러낸 글이었고, 당시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 단행본의 글들을 숙고하면서, 나는 당시 던졌던 질문들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지원할지 결정하려면 권력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필란트로피 영역에서 우리가 권력을 형성하고 이전하려면 권력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이 단행본의 서두에서 밝혔듯, 코러스 재단의 관심사와 전략은 시간이 흐르며 진화했다. 재단의 기금 전부를 소진하겠다는 결정은 개인적인 결심으로 시작되었지만, 어떻게 하면 기금을 혁신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에 우리는 점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우리는 기고문이나 재단의 활동을 소개하는 영상, 컨퍼런스 발표 등에서 이런 고민을 발전시키기도 했지만, 동료들과 나눈 무수히 많은 대화를 통해 이 고민을 공유하고 발전시켰다. 그 과정에서 이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영감과 자극을 주고받으리라는 기대를 갖고서 말이다. 우리는 권력에 대한 전환을 시도했다. 책임감 있게 권력을 유지하는 것에서 나아가, 권력을 공평하게 나누고 궁극적으로는 권력 전체를 이전하는 방식을 시도했다. 나는 우리의 사례가 공유해도 될 만큼 무르익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사례는 여전히 불완전하기도 하다.
나는 앞서 공유한 글에서 우리가 새로운 기금 배분을 개척해 온 길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두 가지 과제를 마주했다. 첫째, 우리의 배분 활동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필란트로피 영역의 동료들과 우리의 배분방식이 다른 재단들에도 확산되길 바라는 수혜단체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길 원했다. 둘째, 코러스 재단이 제한 없는 기금을 장기적으로 지원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민간재단으로 조직을 재편하면서,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기금 배분 업무에 이전만큼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혜단체들에게 그들의 활동을 더 잘 지원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더 하면 좋겠냐고 질문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명확하고 명쾌했다. 그것은 “여러분과 같은 방식으로 지원하는 재단들을 모아주세요”였다.
그래서 우리는 ‘현장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시도를 시작했다. 이를 위해 기본적으로 연구, 전략적 소통, 정치 교육, 스토리텔링과 같은 방법이 활용되었다. 이 모든 것은 필란트로피 영역의 동료기관들이 배분 방식을 혁신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었다.
아마 ‘현장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노력이 어떤 결과를 거뒀는지, 현장에 정말로 영향이 미쳤는지 궁금할 것이다. 몇몇 조직에서 약간의 움직임이 있었지만, 그 중 대부분은 내부에 이미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된 곳들이었다. 더포지에도 비슷한 경험을 소개했지만, 친절한 사업 담당자가 꾸준히 보고서를 읽고, 브리핑에 참석하고, 생각을 공유한다고 해서 재단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우리가 무엇을 놓친 걸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혹은 일어나지 않고 있는 걸까?’
우리는 재단의 새로운 모델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 했다. 그것은 더 나은 배분과 모금 모델을 만드는 일일 뿐 아니라, 필란트로피 영역 내부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역량을 키우며, 구조를 바꾸는 데 영향을 미치는 일이기도 했다. 우리는 더 유능한 기금 배분가를 기르는 데 그치지 않고, 후원자들을 제대로 조직할 수 있는 조직가들을 길러내야 했다. 이 시급한 과제는 배분 업무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역할이 되었다.
처음에 더포지에서는 대안적인 재단 모델에 대한 글을 써 달라고 요청했다. 재단이 무엇을 다르게 할 수 있고, 다르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이다. 코러스 재단이 현장에 영향을 미치고자 시도해 온 과정에서 경험한 바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일을 회고해보며, 나는 더포지에 조금 다른 방향으로 글을 써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필란트로피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방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전제에 대해 지적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 재단들과 고액 자산가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경쟁과 갈등에 대해 다루고 싶었다. 또한 필란트로피 영역에서의 리더십 개발, 기반 조성, 조직 및 캠페인 개발, 연대 형성의 필요성에 대해 밝히고 싶었다. 내가 다루고 싶었던 모든 것은 필란트로피 영역에 대한 것이었다. 더포지는 이를 수용해 주었을 뿐 아니라 내가 자랑스럽게 여길만한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주었다. (더포지의 훌륭한 특집기획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냉철한 평가
더포지에 실린 내 글은 호평을 받았지만. 우리 앞에는 현실적인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긍정적인 신호는 진정한 의미의 조직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필란트로피 영역에는 조직화를 훌륭하게 해내는 사람들이 존재하며, 나는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또한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특별히 리소스 제너레이션Resource Generation, 솔리데어Solidaire, 네이버후드 펀더스 그룹Neighborhood Funders Group을 언급하고 싶다. 이 커뮤니티들은 회원들이 조직화에 대한 질문을 이론과 실행 측면 모두에서 던져보도록 적극 지원한다. (나는 솔리데어의 공동설립자이자 이사회의 일원이지만, 활동가들이 이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는 데 내가 기여한 바가 전혀 없음을 밝힌다.)
풀뿌리 단체들은 후원금을 받는 것 이상의 목적을 갖고 정기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지원기관을 만난다. 미셸 마스카레냐스Michelle Mascarenhas가 자신의 글에서 밝혔듯이, 코러스 재단의 수혜단체들은 모금 이상의 목표를 위해 전략을 가지고 우리를 찾아왔다. 나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초대해 준 스토리리기반 전략 센터Center for Story-based Strategy, 기후정의 연대Climate Justice Alliance, 풀뿌리 지구정의 연대Grassroots Global Justice Alliance, 무브먼트 제너레이션 정의와 생태 프로젝트Movement Generation Justice & Ecology Project에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숙련된 조직가인 이들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해나가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힘만으로 우리 영역이 조직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노력에 동참할 책임이 있다. 적어도 기금 제공자로서의 역할만큼 기부자들이나 재단들을 조직화하는 역할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니나 루오Nina Luo는 올해 초 디센트Dissent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후원자들이나 지원기관들에게는 권력에 대한 분석 및 성과에 대한 분석을 기반으로 한 분명한 전략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구조와 역량에 대한 무의미한 대화가 되풀이된다.’ 하지만 다른 방식도 가능하다. 재단의 사업 담당자 중에는 조직가 출신이 많다. 재분배 활동에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기부자도 많다. 일관된 가치에 따라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자문가와 컨설턴트 또한 많다. 하지만 이들은 조직화되어 있지 않다. 진보적인 후원자들과 지원기관들을 조직화하지 못하기 때문에 진보진영에 더 큰 문제가 양산된다.
문제는 우리가 공통의 언어와 프레임워크, 조직화에 전념할 수 있는 기반, 전략적 캠페인에 대한 명확한 상 없이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지원기관의 구성원들과 우리가 지원하는 활동 사이에 충분한 조정이나 책임, 형평성 없이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작업에는 위험이 따른다. 지원기관들을 조직화하는 일은 일터 중심의 조직화로 실행되곤 하는데, 일터는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는 현장일 수 있다. 상사와 나의 관점이 다를 때는 해야 할 일을 안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일터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시도하다 실질적인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가령 이런 조직화 작업을 하다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는데, 그런 일이 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도전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필란트로피 영역에서 나타나는 한 가지 분명한 경향성을 강조하고 싶다. 여성과 유색인, 특히 흑인과 선주민 여성들은 현장에서 가장 많은 업무를 맡고 있으며, 동시에 가장 큰 리스크를 떠안고 있다. 조직화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에 대해 논의할 때, 우리는 가장 큰 리스크를 감당하는 사람들을 적절히 지원하고 뒷받침할 수 있는 여건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나 역시도 비공식적인 지원을 하기도 했다. 머지않아 이런 비공식적인 노력도 점점 더 필수적인 지원이 되리라 믿지만, 실질적이고 지속가능한 환경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아직 한참 뒤처져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가장 예민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그것은 우리에게 왜 필란트로피 영역을 조직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동의 비전이 없다는 것이다. 이 단행본의 서두에서도 썼듯이 나는 민간 재단에 대해 폐지론자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일찌감치 알리는 편인데, 이는 이념적인 투명성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고, ‘폐지’야말로 지원기관을 조직화하는 활동을 함께 하는 것의 잠재적 비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의 비전 없이 이루어 내는 조직화 작업의 결실은 개별 기관의 성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영역 전반의 변화를 기대한다면 비전은 과감해야 한다. 다른 지원기관, 수혜단체, 사회운동 그룹들과 협력할 수 있는 역량 또한 매우 높은 수준이어야 한다.
불편함이라는 영역 속으로
여러 문제와 도전들은 극복될 수 있다. 그러나 필란트로피 영역에서 권력이 행사되는 방식과 집중되는 위치를 변화시키려면 임계점을 넘겨야 한다.
현장에는 조직화에 사용되는 도구와 기술에 대한 거부감이 존재하기도 하다. 그 이유는 주로 조직화 과정에서 경쟁과 갈등이 공개적으로 다뤄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조직 내 대화를 위해 노동 조직화 노트Labor Note라는 프레임워크를 실험해 왔다. 이 프레임워크는 어떤 업무 환경에도 자연스럽게 적용될 정도로 효과가 검증되었지만, 필란트로피 맥락에서는 다소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이 프레임워크는 거리낌 없이 우리 조직 내 누군가에게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암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후원자들과 지원기관들을 혁신적으로 조직하면서도 이들을 소외시키지 않을 수 있는 전략이 있을지 자문하게 된다. 조직화 전략을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도 실제적인 갈등이 있다. 그것은 혁신적이고 파괴적인 방식을 택할 것인지, 참여적이고 포용적인 방식을 택할 것인지 사이의 갈등이고, 갈등과 책임을 비판적으로 묻는 방식calling out과 대화에 초대하고 공동의 기준을 높이는 방식calling in 사이에서의 갈등이다. 나는 후원자나 지원기관을 소외시키지 않으면서도 변화를 이뤄낼 방식이 있다고 믿기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러한 긴장을 창의적으로 해결하며 새로운 길을 탐색할 수 있는 생태계가 필요하다.
조직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고 지원기관들의 내부 문화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결함 있는 변화이론에 기반한 전략으로 계속 회귀할 것이다. 이 단행본과 같은 매체를 활용해 정보를 확산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또한 영향력 있는 풀뿌리 리더들의 전략적 스토리텔링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코러스 재단이 17년에 걸쳐 작업해 온 것처럼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일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필란트로피 영역을 진정으로 혁신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방식을 변화시켜야 하고, 그 권한이 누구에게 주어지는지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우리는 사적 이익에 대해 어떻게 사고하는가?
우리는 지난 2년간 지원기관들을 조직화하는 일이 다른 형태의 조직화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얘기를 수차례 들었다. 나도 이에 동의한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을까?
사람들은 우리가 후원자들이나 지원기관을 조직한다고 할 때, 특히 고액 자산가나 고액의 보수를 받는 필란트로피 전문경영인들을 모은다고 할 때, 그들에게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 말고 공익을 위해 사적 이익을 희생하길 요청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예술가이자 활동가인 릴라 왓슨Lilla Watson은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만약 나를 도우러 왔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한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과 나의 자유가 연결되어 있다면 우리는 협력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단기적이고 거래적인 사적 이익’과 ‘장기적이고 혁신적인 사적 이익’의 차이를 알 수 있다. 나의 경우, 아주 어린 나이에 주어진 자원과 권력을 지키는 것이 단기적이고 거래적인 사적 이익이라고 한다면, 장기적이고 혁신적인 사적 이익은 커뮤니티의 결정권을 위해 내가 가진 자원과 권력을 급진적이고 민주적인 과정과 구조로 이전하는 것이다.
자유는 권력을 쌓거나 행사하는 것의 결과일 수 있지만, 권력을 내려놓음으로써 실현되는 것일 수도 있다. 한 사람이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갖는 것은 대단히 해롭고 치명적이다. 오랫동안 압제당했던 이들에게 권력을 이양할 때 모두가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전략적인 문제이다. 우리가 필란트로피 기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집단적 역량을 가졌다는 점은 종종 과소평가 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결국 이사회가 결정할 문제’라거나 ‘가족 이사들이 원치 않는다면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누가 이사회를 조직화하고 있는가?’ 또는 ‘누가 가족 이사들을 조직화할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경우는 얼마나 되는가? 그들의 관점을 바꿀 수 있다고 믿거나 이사회나 가족 이사, 기타 거버넌스 구조에서 다른 생각을 가진 구성원들이 내부 조직화 작업을 해 낼 수 있다고 희망을 품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 이사회나 가족 이사진의 변화가 수혜 대상의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에겐 어떤 일들이 가능할까?
니나 루오는 이상적인 후원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바라는 기부자는 뛰어난 조직가입니다. 인내심, 감정 지능, 전략적 분석을 통해 부유층과 장기적 관계를 형성해 그들을 동반자로 만들 수 있는 사람 말이죠. 내가 바라는 기부자는 우리와 전략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단지 우리에게 돈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운동에 맞게 기금을 마련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는, 의미 있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 못지않게 감정을 쏟을 수 있는 진정한 동료여야 합니다.”
가장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는 후원자 조직화에서는 모든 당사자의 장기적이고 혁신적인 사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계층 간, 다인종 간 노력이 나타난다. 이런 조직화에는 계층 간 연대를 이루는 것뿐 아니라, 계급 체제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들을 길러내는 일도 포함된다. 이는 일터의 단기적이고 거래적인 계급적 이해관계에 초점을 맞춘 많은 조직화 도구 및 프레임워크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다행히 자유와 해방이라는 공동의 비전을 위해 다양한 기반을 조직화한다는 발상은 전례가 없지 않으며, 다인종적이고 반인종차별주의적인 조직화의 핵심 전략이기도 하다. 내가 더포지의 글을 통해 밝힌 일터 조직화에 관한 주장에 더해, 우리는 필란트로피의 맥락에서 범 계층적이고, 다인종적이며, 반인종차별적이고 반계층차별적인 (감히 말하자면 반자본주의적인) 조직화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그려내야 한다. 이는 단지 후원자 조직가에게만 해당하는 질문이 아닌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더 넓은 범위의 아젠다이기도 하다.
우리 안의 모순을 찾아서
무브먼트 제너레이션이 밝혔듯,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전환은 모순을 탐색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정의로운 전환을 이루려면 우리가 향하는 방향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그곳에 도달하도록 도와줄 잘 조율된 도덕적 나침반이 필요하다.
이 단행본에서 보았듯 필란트로피 영역에는 모순이 가득하다. 어떤 필자는 이런 모순을 분명히 짚어냈고, 이 글처럼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긴장을 드러낸 글도 있다. 정의로운 전환이 모순을 탐색하는 과정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후원자 조직화에 내재한 모순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정의로운 전환을 지향하는 커뮤니티에서 우리는 소위 해법이라는 것이 의사결정 과정, 물질적 혜택, 전반적인 영향, 권력의 역학 면에서 현 상태를 강화하는 데 기여할 때, 그것을 ‘거짓 해법’으로 규정한다. 거짓 해법이 명확히 구별될 때도 있지만, 때로는 거짓 해법을 지적하는 것이 상당한 논쟁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기준으로 보면 분명 거짓 해결책인 것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기준으로 보면 전략적으로 조직화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필란트로피 영역을 조직화하기 위해 들여다보아야 할 모순의 유형이다.
이 단행본의 서두에서 나는 코러스 재단이 기껏해야 ‘과도기적 형태’라고 말한 바 있다. 폐지론자인 내가 기대하는 미래상에는 민간 필란트로피 기관이 없다. 이 점에서 보면 민간 필란트로피 기관, 특히 코러스 재단은 거짓 해법인 셈이다. 그렇긴 해도 코러스 재단은 풀뿌리 조직화 영역에 자원을 동원하고, 필란트로피 영역 내부에서 판을 흔들며 조직화할 전략적 기회를 제공했다. 과도기적 형태는 특별한 유형의 모순으로, 우리가 품은 내일의 비전에는 결코 용납될 수 없지만 오늘날에는 전략적으로 필요하다.
정의로운 전환의 관점에서 민간 필란트로피 기관은 기껏해야 모두 과도기적 형태에 불과하다. 오드리 로드Audre Lorde가 가르쳐 주었듯, 주인의 도구는 절대 주인의 집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민간 필란트로피 기관은 착취와 수탈 그리고 부와 권력의 독점 위에 구축된 경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좋은 소식이 있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미래에는 민간 필란트로피 기관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민간 필란트로피 기관을 포기하는 과정, 달리 말해 권력을 완전히 이양하는 과정이 신뢰할 만한 여정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엔 모순이 담겨있지만 나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무브먼트 제너레이션이 지적했듯이, 그것은 오직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그곳으로 우리를 데려다줄 잘 조율된 도덕적 나침반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서두에도 썼듯이 이 단행본은 여러모로 20여 년에 걸친 활동의 결과물이며, 우리가 몹시 자랑스럽게 여기는 결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겨우 출발점을 지났을 뿐이다. 이 작업은 대단히 불편할 수 있지만 동시에 엄청난 해방감을 안겨줄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나아가려는 방향에 집중해야 한다. 수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필란트로피 영역은 전환적 운동에 필요한 자원을 내어줄 현금인출기로서만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필란트로피 영역은 혁신하고 조직화할 가치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 원문 기사 보기
FARHAD EBRAHIMI
파하드 에브라히미는 코러스 재단의 설립자이자 대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