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개발협력]대등한 파트너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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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협력 · 빈곤 · 거버넌스
대등한 파트너십

2024-1


JANE WEI-SKILLERN · ANNELIE STRATH



Summary. 국제 NGO CARE는 인도주의 구호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 이 접근법은 플랫폼을 구축하여 현지 파트너의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사회에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2023년 4월 HPP 총회 둘째 날, HPP 회원 조직의 여성 리더들이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있다.


인도주의 구호단체 CARE의 미국인 시민운동가 아서 링랜드Arthur Ringland와 링컨 클라크Lincoln Clark는 2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해진 유럽에 구호품을 보낼 비영리단체를 설립해달라고 미국 22개 자선단체에게 요청했다. 그 요청을 시작으로, CARE는 109개국에서 활동하는 국제단체로 성장했다. CARE는 위기 대응, 식량 및 영양, 보건, 경제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수행하며, 빈곤 종결이라는 미션을 추구하고 있다.


2013년 11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태풍으로 기록된 하이옌Haiyan이 필리핀에 상륙했다. 이 태풍은 7천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고, 백만 채 이상의 주택을 파괴했다. 1949년부터 필리핀에서 활동해 온 CARE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현지 파트너들은 31만 8천 명의 필리핀인들에게 쉼터와 식량, 재정 지원을 제공했다. 그러나 위기의 규모는 그들의 역량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커졌고, 해외에서 인력을 수급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한계에 부딪혔다. 2017년 내부 검토 결과, CARE는 재해 발생 후 72시간 내 식량을 전달하는 등의 재난 대응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필리핀에서 가장 외진 곳이자 태풍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에는 현지 파트너가 없어 식량 전달에 6일이 걸리기도 했다.


CARE는 내부 인력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현지 조직의 자원, 지식, 역량을 활용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CARE와 필리핀 현지 파트너 간의 계약 관계는 업무를 분산시키는 데 일정 정도 도움이 되었지만, CARE는 파트너와 이보다 더 강력한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CARE가 필리핀에서 시도한 변화는 글로벌 전략의 일환이었는데, 파트너십을 활용하는 동시에 신뢰, 평등, 상호 학습의 가치를 높이려는 것이었다. 필리핀과 그 밖의 지역에서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CARE는 지역 파트너와 계약 관계가 아닌 대등한 관계로 협력해야 했다.


2016년, CARE의 이러한 전략적 변화는 필리핀 내 인도주의 파트너십 플랫폼Humanitarian Partnership Platform, HPP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HPP는 CARE 필리핀과 4개 필리핀 NGO의 비공식 연합체로서, CARE의 모든 긴급 대응 이니셔티브를 관리한다. 2016년부터는 필리핀의 7천여 개 섬을 대표하는 30개 단체가 합류하며 그 수가 늘어났다.



HPP, 인도주의 역량 증폭기가 되다

HPP는 독립 조직도, 자원과 인력을 두고 경쟁하는 형식적인 연합체도 아니다. 대신 현지의 전문성과 리더십을 강화함으로써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 결성된 독립 조직들의 집합체이다. 대등한 파트너십과 인간성을 강조하는 HPP는 임팩트를 극대화하고, 중복 지원을 줄이며, 상호보완적인 인도주의 노력을 촉진하기 위해, CARE와 다른 NGO들 사이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활동을 조정한다.


"HPP에서 현지 파트너 조직은 대형 NGO로부터 지시를 받기만 하지 않습니다"라고 제니퍼 퓨리가이Jennifer Furigay는 말했다. 제니퍼는 HPP 설립 이전부터 CARE와 파트너십을 맺어온 비영리단체 ACCORDAssistance and Cooperation for Community Resilience and Development의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HPP에서는 한 파트너가 연합의 전체 전략을 통제하거나 불균형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CARE의 고위 경영진은 필리핀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파트너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이 같은 접근 방식을 적극 지지했다.


CARE의 회장이자 CEO인 미셸 넌Michelle Nun은 “CARE의 경영진은 이 네트워크 접근 방식이 가진 힘에 즉시 매료되었습니다”라면서, “이사회와 임원진 모두 이 접근 방식이 더 지속 가능하며 비용효율적일 뿐 아니라, 더 큰 영향력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팀의 한 구성원이 ‘네트워크는 우리가 일하는 방식일 뿐 아니라 우리의 존재 그 자체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HPP는 재무, 조달,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위원회를 소집한다. 또한 회원 조직들은 재난 대비 시뮬레이션과 같은 기술 훈련에 협력한다. 이 훈련은 지역 파트너 간의 합동 계획, 시뮬레이션, 프로젝트 기획 및 실행을 촉진한다. 민간 부문 파트너로는 위기 발생 시 공급망 및 현금 이체 지원을 맡는 팔라완 익스프레스Palawan Express, 세부아나 루이리에Cebuana Lhuillier 등 필리핀 금융 서비스 업체들이 협력하고 있다.


회원들은 HPP를 혼자일 때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비상사태에 대비하고 대응할 수 있게 하는 인도주의 역량 증폭기로 여긴다. HPP는 도움이 필요한 회원 조직에 신속히 자금을 지원하고, 지원 프로토콜에 따라 CARE 필리핀이 지원하는 긴급 대응 펀드를 관리한다. 파트너 조직은 자체 자금으로 먼저 평가 및 배분 사업을 수행하고, CARE는 조직당 최대 2천 달러까지 그 비용을 환급한다.


CARE가 HPP의 자금 대부분을 충당하지만, 자금 배분 방식에 대한 결정에는 CARE의 고위 경영진이 관여하지 않는다. 대신 CARE와 현지 파트너는 프로그램과 서비스 기획 및 운영 과정에서 협력한다. CARE USA는 HPP의 모든 운영 및 관리 비용을 부담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HPP의 성과를 바탕으로 티조리 재단Tijori Foundation 같은 외부 자금 제공자들도 유치하고 있다.


“HPP 이전에 우리는 위기에 홀로 대응했습니다.” HPP 회원 조직인 비영리단체 코르디예라 재난 대응 및 개발 서비스 전무이사 지미 카요그jimmy Khayog는 “HPP를 통해 우리는 이제 피해평가를 하는 동안에도 즉각적인 구호 활동을 할 수 있는 자원을 확보했습니다. 이것은 과거에 불가능했던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재난 발생 후 24시간 이내에 현장 대응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많은 생명을 구했을 뿐 아니라, 지역단체들에 대한 모금 활동도 활발해졌다.


HPP 회원 조직들이 현지 네트워크와 지식, 역량을 제공함으로써 CARE는 자원 조달, 회의 개최, 회원 조직의 전문성 개발 자금 지원 등 고유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또한 CARE는 국제적인 명성을 활용해 현지의 소규모 단체가 생소한 기부자들에게 공신력과 신뢰를 심어주고, HPP 파트너 조직을 위한 자원을 유치한다. 이러한 CARE의 역할은 현지 소규모 단체들의 네트워크에 기여하려는 기부자들에게 신뢰를 부여한다.


HPP는 필리핀 사업을 위한 CARE의 자금 제안서를 발전시켜 왔다. “CARE는 제안 작업을 주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역사회의 주민과 단체들이 이 과정을 주도하지요.”라고 CARE 필리핀의 사업 개발 매니저 랜스 구티에레즈Lance Gutierrez는 말했다. “이들의 제안은 커뮤니티의 요구, 관점, 전문성을 담고 있기 때문에 더 정확합니다.” 지역사회의 참여로 프로그램 및 서비스의 효율은 높아진다. 현지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잘못된 프로그램으로 낭비되는 자원이 줄기 때문이다. 또한 HPP 회원 조직들이 지속적으로 현장 역량을 개발하기 때문에 지속 가능성 역시 높다.


CARE 필리핀 사무소의 파트너십 코디네이터 리 푸엔테스Leigh Fuentes는 “CARE가 필리핀에서 성과 목표를 달성하는 유일한 방법은 HPP의 파트너들과 협력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현지 파트너들이 가진 명성과 뿌리, 지역사회와의 라포rapport는 우리가 지역사회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도와줍니다.”



스케일을 키우다

HPP는 CARE와 지역 파트너들에게도 중요하지만, 지역사회에는 더 중요하다. 필리핀 지역사회는 NGO의 인명 구조 서비스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2016년부터 HPP는 연평균 6건의 재난에 대응해 왔다. 2021년 태풍 라이Rai가 필리핀을 강타한 후, 필리핀 정부 관계자들은 CARE를 국제기구 중 적십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인도주의적 대응을 한 단체로 인정했다. CARE 필리핀의 직원은 49명이지만, 적십자의 직원 규모는 이보다 10배 가까이 많다. 상대적으로 적은 인력으로 큰 규모의 대응이 가능했던 것은 CARE에 필리핀 17개 지역에서 인도주의적 긴급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HPP 파트너 네트워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30개의 지역사회 기반 파트너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재난 발생 몇 시간 이내에 CARE 직원의 70배가 넘는 약 3,500명의 네트워크 직원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라고 전 CARE 필리핀 국가 책임자인 데이비드 가자쉬빌리David Gazashvili는 말했다. “현장에서 생활하는 파트너들은 현지의 필요를 더 잘 압니다. 그들은 현지 언어를 구사하며, 현지의 문화를 더 잘 이해합니다.”


HPP는 최근 인도주의적 대응을 넘어 경제 개발과 재난 대비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HPP 회원 조직들은 지역 정부와 협력하여 위기관리를 개발 계획에 통합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HPP 회원 조직들은 골판지, 특수 못, 망치, 알루미늄 스크린 같은 건축 자재를 지원해 주고, 위기 발생 후 지역사회 재건을 돕는 가이드라인이 포함된 '재건용build-back-better’ 대피소 수리 키트를 제공한다. 이러한 접근은 재난 발생 후 이재민들이 값비싼 업체에 비용을 지불하고 기다릴 필요 없이, 스스로 복구할 수 있는 자원과 지식을 제공함으로써 지역사회의 자력 복구를 가능하게 한다.


필리핀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CARE는 이미 말라위, 네팔, 남수단, 니제르에서 유사한 파트너십 플랫폼을 개발 중이며, 더 많은 국가로의 확장을 계획 중이다. 이는 단순히 HPP의 자원이나 구조를 복제하는 것이 아닌, 성공의 토대가 된 신뢰, 겸손, 상호협력이라는 핵심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다. HPP는 이러한 가치 기반의 네트워크가 어떻게 지역사회에 더 낫고, 지속 가능한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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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E WEL-SKILLERN

제인 위-스킬런은 UC 버클리 하스 경영대학원(UC Berkeley Haas School of Business)의 소셜섹터 리더십 센터(Center for Social Sector Leadership) 선임 연구원이다.


ANNELIE STRATH

아넬리 스트라스는 유네스코(UNESCO), 유니세프(UNICEF),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근무한 독립 교육 분야 정책, 개혁 및 평가 전문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