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란트로피]공공의 실패 비용을 떠안는 일이 자선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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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란트로피 · 임팩트금융
공공의 실패 비용을 떠안는 일이
자선은 아니다

2026-1


PIERRE R. BERASTAÍN



Summary. 임팩트 투자에서 필란트로피의 역할에 대한 케빈 스타의 주장에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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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iStock/Rudzhan Nagiev)


케빈 스타의 임팩트 투자 비판은 투자 자본과 실제 성과를 명확하게 연결하기 어려운 현장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하다. 추가성additionality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선한 의도intentionality는 보여 주기 식 행위에 그칠 수밖에 없다. 시장수익률을 추구하는 자본은 ‘위험이 실제로 존재하고, 수익 여력은 제한적이며, 사람들의 삶과 직결된’ 곳으로는 좀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수익성·유동성·위험성 측면의 희생 없이도 깊은 사회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정은 소셜 임팩트 생태계의 중간 지대를 약화시켰다. 그 결과 높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회혁신가들은 필란트로피스트에게는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투자자에게는 지나치게 위험하게 여겨지며 두 영역 사이에서 표류하게 되었다. 애매한 표현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양허적 자본concessionary capital을 있는 그대로, 즉 필란트로피라고 부르는 일은 도덕적 명확성과 실행의 규율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케빈 스타의 지적은 옳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사회적 임팩트의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며, 그로 인해 발생한 수익이 실제로 어디에 귀속되는지에 대해 일정한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 즉 투자자가 시장 수준의 재무적 수익을 확보하지 못하면 그 활동을 필란트로피로 분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임팩트 분야에서는 우리의 활동이 공공 비용을 절감하는 성과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다른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떤 개입은 투자자가 그 성과를 직접 회수할 수 없더라도 경제적으로 충분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수익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이 투자자에게 돌아가지 않을 뿐이다.


텍사스주 오스틴의 사례는 이러한 차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현재 SAFE 얼라이언스SAFE Alliance의 CEO로 일하고 있다. SAFE 얼라이언스는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아동학대 피해자를 지원하는 미국 남부 최대 규모의 기관이다.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공공 시스템의 비용을 연간 1억 2천만 달러 절감한다. 이는 추정이나 가정이 아니다. 이미 축적된 연구들은 위기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삶을 안정적으로 지원할 경우 의료, 주거, 사법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공공 지출이 1인당 연간 약 2만 달러 감소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SAFE가 매년 약 6,000명을 지원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공공 비용 절감 효과는 매우 크다.


그러나 이러한 막대한 비용 절감 효과에도 불구하고, 그 혜택은 대부분 공공 시스템에 돌아간다. 문제는 이들이 SAFE의 활동이 만들어낸 가치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SAFE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위기 상황으로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줄어든 의료기관, 처리해야 할 사건이 감소한 경찰과 법원, 위탁가정 배치를 줄일 수 있게 된 아동복지 시스템, 그리고 장기적인 의료 및 정신건강 비용 부담을 덜게 된 공공 재정이 그 대표적인 수혜자들이다. 수익은 분명 존재한다. 다만 그 수익이 돌아가는 곳이 다를 뿐이다. 그 혜택은 이를 만들어낸 조직이나 투자자에게 귀속되지 않고, 성과의 결과를 누리는 공공기관으로 흘러간다.


이러한 역학 관계는 프로그램별로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SAFE의 집중 가족 안정화 프로그램인 SAFE 퓨처스SAFE Futures는 연간 약 70만 달러의 예산으로 운영되며, 아동들이 위탁보호에 들어가지 않고 부모나 친족과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는다. SAFE 퓨처스는 한 해 동안 149명의 아동이 위탁보호에 들어가지 않도록 지원했다. 사례 관리와 법원 절차, 메디케이드 지원 등을 포함한 위탁보호 및 아동복지 시스템 비용은 아동 1인당 월 5,000~10,000달러로 추산된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SAFE 퓨처스는 한 해에만 900만~1,800만 달러의 공공 비용을 절감한 셈이다. 이는 해당 아동들의 장기적인 교육·건강·경제적 성과를 고려하기 전의 수치다. 그럼에도 투자 1달러당 약 12~25달러의 공공적 수익이 발생하는 셈이다.


성폭력 생존자를 위한 SAFE의 법의학 센터에서도 비슷한 패턴을 확인할 수 있다. 병원들은 성폭력 관련 법의학 검사를 수행하면서 높은 비용을 부담하지만, 이에 대한 보상은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인건비와 시설 운영비, 약품비, 검사비 등을 포함하면 검사 1건당 비용은 보수적으로 잡아도 1만 달러에 이른다. SAFE는 생존자 중심의 전문 환경에서 연간 500건 이상의 검사를 수행함으로써 병원 시스템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줄이고 보다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돕고 있다. 그 결과 연간 최소 500만 달러의 공공 비용 절감 효과가 발생한다. 또한 응급실 혼잡을 줄이고, 증거의 질을 높이며, 반복적인 진료로 이어질 수 있는 재트라우마retraumatization를 최소화하는 효과도 있다. 지난 10년간 SAFE의 법의학 서비스는 100만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직접 투자로 약 5,000만 달러의 공공 비용 절감 효과를 만들어냈다. SAFE는 해당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성폭력 법의학 검사의 85~95%를 생존자 중심의 전문 환경에서 수행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에서도 보기 드문 수준의 체계적인 협력 일관성을 보여준다. 이 서비스의 연간 운영비 약 300만 달러를 충분히 지원한다면, 보다 효율적인 서비스 제공과 시스템 부담 및 법적 책임 감소, 성폭력에 대한 책임성 강화를 가능하게 하는 검증된 대응 체계를 지속할 수 있다. 또한 오스틴은 파편화된 응급실 중심 대응을,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면서도 공공 비용을 절감하는 통합적 지원 모델로 전환한 미국 내 소수 지역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어떤 개입이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 공공 비용 절감 효과를 만들어낸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한 자본을 과연 ‘필란트로피’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 SAFE 얼라이언스의 연간 운영 예산은 약 2,800만 달러에 이르지만, 이를 통해 약 1억 2천만 달러의 공공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이는 투자 1달러당 시스템 차원에서 약 4달러의 사회적 편익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이 경우 문제는 해당 사업이 경제적 수익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공공재정 시스템이 이미 얻고 있는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고, 이를 예산에 반영하며, 다시 투자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조직의 관점에서는 양허적 자본concessionary capital처럼 보이는 자금도 사실은 모두가 혜택을 얻지만 정작 투자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는 조정 실패coordination failure의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국가는 결국 그 비용을 부담하고 있지만, 피해가 발생한 뒤에야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임팩트 투자가 필란트로피와 시장 사이에 어색하게 놓여 있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예방과 조기 개입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공공 예산은 위기 이후의 대응에 집중되어 있고, 시장은 예방으로 막아낸 피해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예방과 조기 개입은 바로 이 두 체계 사이에 놓여 있다.


물론 내가 설명한 사례 역시 케빈 스타의 정의에 따르면 필란트로피에 해당한다. 자본은 여전히 사회적 임팩트를 위해 일정한 손실을 감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 임팩트가 원래는 공공 재정이 부담했어야 할 영역에서 발생한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필란트로피는 오랫동안 정부가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일을 지원하며 공공 시스템의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해왔다. 문제는 여기서 논의를 멈출 때 발생한다. 이미 공공 시스템이 혜택을 얻고 있음에도 그 가치가 제대로 환원되지 않는 모든 활동을 ‘필란트로피’라고 부른다면, 필란트로피는 어느새 공공재정의 실패를 대신 떠받치는 수단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이 경우 필란트로피가 감수하는 ‘손실’은 해당 사업이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공공 시스템이 이미 얻고 있는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그 가치가 다시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도록 설계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에 가깝다. 정부는 결국 그 비용을 부담한다. 다만 세금이나 적절한 공공투자를 통해 예방 단계에서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응급실과 법원, 위탁보호 시스템, 장애 관련 서비스 등 훨씬 비용이 많이 드는 방식으로 뒤늦게 그 대가를 치르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필란트로피의 문제로만 바라보면, 본질적으로는 공공 거버넌스의 실패를 도덕적 선행의 문제로 축소하게 된다. 또한 경제적 수익 자체가 없는 활동과 수익은 존재하지만, 그 가치가 잘못 배분되고 있는 활동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든다.


성과연계지불 모델Pay for Success, 예방·조기 개입 협약, 성과 기반 계약은 이러한 실패에 대한 불완전하지만 의미 있는 대응이다. 이러한 제도가 등장한 이유는 비용 절감 효과가 실제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공 시스템은 여전히 그 가치를 인정하고, 예산에 반영하며, 예방 단계에 다시 투자할 안정적인 방식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은 필란트로피와 시장의 경계가 혼란스럽다는 증거라기보다, 공공 시스템이 예산과 책임 구조를 현대화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증거에 가깝다. 진정한 위험은 필란트로피가 ‘연결 다리’가 아니라 ‘영구적인 대체재’가 되는 데 있다. SAFE와 같은 조직의 활동이 공공 가치 창출이 아니라 단순한 선의나 기부로 이해될 때, 효과가 입증된 일에 공적 자원을 투입하도록 시스템을 재설계해야 할 책임은 점차 사라진다. 대신 우리는 기부자들이 계속해서 선의를 베풀어주기를 기대하게 된다. 그 결과 누가 보호와 안정을 누릴 수 있는지를 둘러싼 불평등이 고착된다.


시장만으로는 우리를 구할 수 없으며, 임팩트 투자로 통용되는 많은 것들에 자기기만이 깔려 있다는 케빈 스타의 지적은 옳다. 그러나 공공 비용 절감 사례들은 필란트로피와 시장 사이에도 분명 또 다른 영역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자본에 어떤 이름을 붙일 것인가가 아니다. 이미 효과가 입증된 활동에 공공 시스템이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가치를 반영할 수 있도록 예산과 책임 구조를 재설계할 수 있는지 묻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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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RE R. BERASTAÍN

피에르 R. 베라스타인 박사는 텍사스주 오스틴에 위치한 SAFE 얼라이언스의 최고경영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