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란트로피]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부하는가? 필란트로피의 13가지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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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란트로피· 기금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부하는가?
필란트로피의 13가지 의도

2026-1


ARIEL SIMON



Summary. 필란트로피 영역이 지나온 지난 격변의 시기는 자선·기부 생태계에서 획일화된 접근이 지닌 위험을 드러냈고, 임팩트와 효과성, 규모에 대한 기존의 전제들을 뒤흔들었다. 사람들을 기부에 나서도록 이끄는 다양한 의도와 동기를 이해하는 것은, 보다 회복력 있고 다원적인 길을 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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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Vicki Turner)


몇 달 전, 나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실을 겪은 한 사람을 만났다. 그에게 누구보다 소중했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던 가족 한 명이, 전 세계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총기 난사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비극이 일어난 뒤, 그는 그녀를 기리기 위해 자신이 지향하는 목적과 가치에 관한 선언문을 썼고, 그 선언을 어떻게 실천으로 옮기고, 지속적인 의미를 지닌 무언가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의 선언은 바이럴된 링크드인 게시물이나 세련되게 꾸민 재단 보고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인간적이고, 더 큰 울림을 주었다. 어쩌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 선언이 담고 있던 공동체적이고 인간적인 비전과 열망이 규모scale, 레버리지leverage, 권력power, 집합적 임팩트collective impact, 혹은 그 밖의 유행하는 필란트로피 담론이나 유행어와는 거의 관련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 선언은 내 시야를 넓혀주었고, 내 마음을 열어주었다.


그가 사랑했던 그 사람에게는 여러 특별한 면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아름다웠던 것은 돌봄을 실천하는 태도였다. 그녀는 매일 “내가 누군가를 위해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잠들기 전 그것을 실제로 해냈다고 한다. 나는 그녀의 그런 실천에서 영감받아, 다음 날이 가기 전 그에게 자세한 이메일을 보내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그 이메일에 사람들이 왜 기부하는지, 그리고 성공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이 어떻게 서로 다른 기부 방식으로 이어지는지 보여주는 ‘자선을 실천하는 의도philanthropic intentions’ 목록을 담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그 목록을 살펴보며 자신의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초안을 쓰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다. 나는 이런 유형론이 이미 책이나 온라인에 얼마든지 정리되어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늦은 밤까지 자료를 뒤지고, 현장과 학계에 있는 동료들에게 다급히 확인해 본 끝에 알게 되었다. 약속을 지키려면, 결국 내가 처음부터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새로 알게 된 그 사람의 신념 선언문은 성공을 바라보는 더 온전하고 설득력 있는 관점을 보여주었다. 사실 일상의 기부자든 오랜 역사를 지닌 재단이든, 무엇을 성공이라고 여기는지는 기부를 이끄는 의도intentions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의도에는 인간을 오래전부터 움직여온 충동, 다시 말해 미덕과 어리석음이 함께 담겨 있다.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와 공동체,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도 그 안에 반영된다. 풍부하고 다양한 문화적 가르침과 종교적 전통 역시 마찬가지다. 기부를 의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세상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 미국 필란트로피가 그 이념과 임팩트 이론, 나아가 세제 혜택의 정당성까지도 도전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보다 일관되고 담대하며 다원적인 미래상을 제시할 수 있다.


밤늦게 메일 ‘전송’ 버튼을 누르면서, 이 모든 작업을 시작하게 만든 바로 그 질문이 우리 영역에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영리 섹터 전반이 깊은 혼란을 지나온 지금,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우리가 더 해볼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우리가 기부를 하는 많은 이유들

이디시어 속담에는 “사람은 계획하고, 신은 웃는다Der mentsh trakht, un G-t lakht”라는 말이 있다. 아이러니와 회복의 지혜를 담고 있는 이 표현은 요즘 재단, 비영리단체, NGO가 처한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연방정부가 예측하기 어려운 파트너가 되어 지원을 반복적으로 철회하면서, 우리가 공들여 세운 수많은 계획과 변화 이론은 흔들리거나 무너져 내렸다. 비영리단체들은 재정 압박에 놓여 있고, 해고의 물결이 섹터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지역사회는 점점 더 취약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이러한 냉혹한 현실은 지난 수십 년간 많은 재단과 기부자들이 당연하게 여겨온 사회변화의 접근법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바로 정부를 통해 규모를 확장하는 ‘정부 이양 모델government hand-off model’이다. 이 접근의 논리는 단순하다. 자선·기부가 새로운 시도를 시작하고, 정부가 그것을 더 큰 규모로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이 모델이 잘 작동할 때는 매우 효과적이다. 백신은 수백만 명에게 전달되고, 기아 문제는 완화되며, 유아교육은 더 많은 사람에게 제공된다. 한때 기부금으로 유지되던 사업은 공공 예산에 포함되어 안정적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정부가 손을 떼는 순간, 이 모델은 흔들린다. 그리고 그 부담은 결국 비영리단체와 지역사회가 떠안게 된다.


이런 상황을 보며 누군가는 이를 오만함 때문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재단들이 대담하게도 무엇이 효과적인지 자신들이 안다고 전제하며, 수백만 달러를 투입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공공 자금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만과 성급한 낙관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글로벌 보건과 같은 분야에서는 여전히 공공 부문이나 민간 부문을 통해 규모를 확장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소아마비 백신을 맞을수록 좋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모델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이 모델이 “좋은 일을 한다”라는 의미를 ‘규모를 키운다’거나 ‘임팩트를 극대화한다’는 말과 거의 같은 말로 만들어버렸다는 데 있다. 그렇게 자선·기부 안에는 일종의 도덕적 단일문화monoculture가 자리 잡았다. 효과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이들을 포함해 일부 흐름에서는, 이것이 자선·기부가 추구할 만한 좋은 목표일 뿐 아니라 정당화될 수 있는 유일한 목표라고까지 주장한다. 그러나 모든 단일 문화가 그렇듯, 이러한 접근은 환경이 변하면 쉽게 취약해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것과 같은 충격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규모를 확장하는 것’이 대형 재단과 기부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큰 부에는 그에 상응하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가진 자원으로 빈곤이나 말라리아, 기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가능성이 있는데도, 그 돈을 박물관 건물에 이름을 붙이는 데만 사용한다면(게다가 세제 혜택까지 받으면서), 누군가는 당신이 기부를 더 의미 있게 활용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더 큰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낼 기회를 놓친 셈이다. 이와 비슷한 논리는 지역 무료급식소보다 말라리아 예방 모기장 사업에 기부해야 한다거나, 종교단체보다 풀뿌리 사회운동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고방식 안에 얼마나 많은 전제가 깔려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글로벌 문제를 ‘해결한다’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부를 기부하는 것과 축적하는 것 사이의 차이는 무엇인지, 문화·종교 기관은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그리고 도덕적 행동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전제들 말이다. 세상에 긍정적 변화를 만드는 올바른 방법이 단 하나뿐이라고 믿는 것에는 커다란 어리석음meshuggaas이 담겨 있다. 위대한 랍비 모세 마이모니데스는 체다카tzedakah, 즉 자선에도 여러 단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중 가장 높은 단계는 익명으로 베푸는 것, 그리고 상대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오늘날 사회변화 담론을 놓고 보면 이 둘은 아마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유대 전통은 이를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많은 친구와 동료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우리가 칸트, 마틴 루서 킹 주니어, 공자, 예수, 붓다, 마이모니데스보다 더 뛰어난 도덕적 지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도덕적 전통들은 누군가의 순위 매기기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20세기 중반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도덕적 행동에 관한 여러 설득력 있는 비전이 공존할 때, 가장 좋은 대응은 내가 옳다고 믿는 관점이 반드시 정답은 아닐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그에 맞게 자신을 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이 옳고 선한지에 대한 강한 확신을 품고 소셜임팩트 영역에 들어온 이들에게, 이런 태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지닌 다양한 도덕적 의도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다원적 완충 장치가 없다면, 우리는 서로를 비난하고 도덕적으로 훈계하는 사람들의 무리가 되기 쉽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그런 모습은 보기에도 좋지 않을뿐더러, 최근의 여러 논란이 보여주듯품위 있지도 효과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더 나은 길을 선택할 수 있다.



의도의 종류

최근 몇 년 사이 영향력을 키워온 필란트로피의 한 흐름은 권력의 공유와 형성을 중요한 의제로 끌어올렸다. 이 흐름은 ‘부의 탈식민화decolonizing wealth’와 같은 관점을 제시하고, 참여적 기금 배분participatory grantmaking이나 신뢰 기반 필란트로피trust-based philanthropy 같은 실천을 확산시켰다. 다소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이 접근의 의도는 자금 지원자에게 집중된 권력과 자원을 역사적으로 권력을 갖지 못했거나 박탈당했던 집단과 지역사회로 이전하는 데 있다. 이를 통해 그들이 스스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이 관점에서의 성공은 정량적 규모의 임팩트를 달성하는 것에 달려 있지 않다.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어떻게 이루었는가, 그리고 누가 결정권을 가졌는가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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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Vicki Turner)


이 접근은 지역사회 개발과 같은 분야를 크게 바꾸어놓았다. 동네의 자산이나 공공 안전과 관련해서는, 그곳에 사는 주민들이야말로 자신들의 우선순위와 필요를 가장 잘 정의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표가 팬데믹을 막기 위한 백신 개발이라면 같은 논리는 전혀 다른 접근으로 이어진다. 그런 상황에서는 과학적 전문성과 속도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핵심은 추상적인 차원에서 어느 한 접근은 옳고, 다른 접근은 틀렸다는 데 있지 않다. 어떤 전략이 적절한지, 그리고 무엇을 성공으로 볼 것인지는 결국 기부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의도에 달려 있다.


미국의 자선·기부를 움직이는 의도는 적어도 13가지가 있다. 각각의 의도는 성공을 바라보는 고유한 관점과, 무엇을 선한 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도덕적 논리를 갖고 있다. 나는 이 유형론의 여러 버전을 실천 현장과 학계의 동료들에게 검토받았다. 그 과정에서 목록에 포함된 각각의 의도는 서로 분명히 구별될 만큼 고유하고, 실제로 중요하게 다룰 만큼 충분히 널리 존재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목록이 더 짧았으면 좋았겠지만, 여러 의도를 하나로 묶으려 할 때마다 중요한 무언가가 빠진다는 점도 발견했다.


나는 13가지 의도를 각각의 정의, 사례, 전략, 성공에 대한 관점과 함께 표로 정리했다. 아래에는 수정·축약한 버전을 수록했고, 전체 표는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의도들은 서로의 연결성을 보여주기 위해 공동체적communitarian, 변혁적transformative, 선언적declarative, 인도주의적humanitarian이라는 네 가지 계열로 묶었다. 돌이켜보면, 이는 ‘도구적instrumental 기부’와 ‘표현적expressive 기부’로 나누는 방식보다 더 적절한 구분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기부 행위에는 무언가를 이루려는 도구적 측면과 무언가를 표현하려는 측면이 함께 존재하며, 다만 그 비중이 다를 뿐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모든 기부 행위를 억지로 하나의 틀에 끼워 넣는 데 있지 않다. 기부를 움직이는 의도가 얼마나 다양한지, 그리고 그중 일부만이 성공을 규모와 연결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 있다.


물론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인 의도에 의해 기부할 수도 있다. 개인적 이득, 심리적 만족, 대가를 기대한 기부, 홍보, 평판 세탁, 심지어 장기적으로는 자신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계산까지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냉소적인 사람이라면, 사실 이런 의도야말로 기부의 가장 흔한 동기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부를 하면서 아무런 만족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무엇이 성공인지도 비교적 분명하고 투명하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이 문제를 더 길게 다루지 않으려 한다.



필란트로피의 13가지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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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적’이라는 말의 의미

표에 제시한 유형론은 필란트로피에 대한 서로 다른 접근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효과성effectiveness’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보다 넓고, 더 나은 방식도 함께 제안한다. 이 유형론은 ‘효과적’이라는 말의 의미가 본질적으로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어떤 의도가 가진 성공의 기준을 다른 의도에 억지로 적용하는 오류를 피하게 해준다. 결국 봉사나 기부 행위의 효과성을 가장 잘 판단하는 방법은, 그것이 애초에 왜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무엇을 이루고자 했는지를 묻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규모 확장scaling은 결핵을 퇴치하거나 안전한 식수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의도 6: 중대한 문제 공략하기). 그러나 비극의 희생자들을 기리고 그 교훈이 잊히지 않도록 하려는 기부자들(의도 2: 보답하기 또는 기억하기), 지역 공동체의 결속력과 회복탄력성을 키우고자 하는 블록 클럽과 동네 모임을 지원하는 후원자들(의도 1: 공동체 강화하기), 우주의 신비를 밝히고자 이론 연구를 지원하는 자금제공자들(의도 5: 혁신 가속화하기), 혹은 이웃의 굶주림을 목격하고 연대와 공동의 인간성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지역 푸드뱅크에 시간과 돈을 할애하는 사람들(의도 12: 도움의 손길 건네기)에게 규모화는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이러한 기부를 두고 ‘최적화되지 않았다suboptimized’고 규정하는 것은 애초에 왜 주려고 했는지, 즉 기부의 동기와 의도를 완전히 놓치는 일이다.


지난 세기 동안 필란트로피가 남긴 가장 의미 있는 유산들 가운데 상당수는 바로 이 교훈을 증명한다. 다음의 세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이들 중 어느 것도 ‘규모화’나 ‘임팩트 극대화’를 정량적으로 계산하는 논리를 갖고 실행되지 않았지만, 모두 변혁적인 결과를 만들어냈다.


1. 포드재단의 시민권운동 지원 | 1960년부터 1968년까지 포드재단은 시민권 단체에 대한 지원을 연간 기부액의 2.5%에서 36.5%로 늘렸고, NAACP, 법률방어기금Legal Defense Fund, 내셔널 어번 리그National Urban League와 같은 단체들의 역사적인 활동을 뒷받침했다. 이러한 투자는 시민권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자 했던 재단의 의지(의도 10: 입장 분명히 하기), 그리고 미국 내 소수집단의 힘을 키우고자 했던 목적(의도 9: 권력 구축하기)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 포드재단이 이들 조직의 변혁적 성취에 상대적으로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정량화하려는 시도는 무리일 뿐 아니라, 핵심에서도 크게 벗어난 일이다.


포드재단의 지원이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주는 더 나은 지표는 따로 있다. 몇 해 전, 나는 뉴욕 고서 박람회New York Antiquarian Book Fair를 둘러보다가 뉴올리언스 시민위원회Citizens Council of Greater New Orleans가 제작한 전단지 한 장을 발견했다. 그 전단지는 ‘모든 백인 시민들’에게 포드 자동차 구매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었다. “우리 남부의 삶의 방식을 파괴하는 데 사용되는 자금의 한 원천이라도 말려버리기 위해서”라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이것이 필란트로피 임팩트를 보여주는 놀라운 역사적 기록이라고 생각해 그 사진을 포드재단의 한 지인에게 보냈다. 몇 분 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포드재단 이사장 대런 워커Darren Walker였다. 그는 그 전단지를 직접 보고 싶다며 박람회로 달려오고 있었고,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그 전단지는 지금도 포드재단 본부에 걸려 있다.


2. 줄리어스 로젠월드와 부커 T. 워싱턴의 미국 남부 학교 설립 | 사업가이자 자선가였던 줄리어스 로젠월드는 저명한 교육자이자 시민권운동 지도자였던 부커 T. 워싱턴과 협력해, 20세기 초 미국 남부의 흑인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 5,000개가 넘는 로젠월드 학교를 세웠다. 이 파트너십은 현대 미국 필란트로피의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 로젠월드의 재단은 지역사회가 매칭 펀드를 조성하도록 요구했는데, 이는 공동체의 소유와 참여를 통해 오래 지속될 시민적 자산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의도 3: 공동의 자산을 만들고 지속시키기), 그리고 공교육에서 배제되었던 수천 명의 아동과 청년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의도(의도 13: 잠재력 촉진하기)를 반영한 것이었다. 로젠월드와 워싱턴에게 성공이란 단지 얼마나 많은 학교를 세웠는지, 얼마나 많은 학생을 지원했는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그 숫자들도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성공은 존엄, 주도성, 잠재력, 지역사회의 투자,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공교육의 부정의한 현실을 바꾸는 일이었다. 이들의 노력은 임팩트 최적화의 계산법을 갖추고 있지는 않았지만, 미국 필란트로피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3. 디트로이트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 | 수십 년에 걸친 인구 감소와 투자 위축을 겪어온 디트로이트는 2013년, 주정부가 임명한 긴급관리인이 파산을 신청하면서 도시의 미래가 중대한 기로에 놓였다. 채권자들은 도시의 자산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디트로이트로 몰려들었다. 그 대상은 디트로이트 미술관Detroit Institute of Arts의 역사적 명작들뿐 아니라 동물원의 나무늘보 ‘호머’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도시의 모든 자산이었다. 은퇴자들은 연금이 대폭 삭감될 위기에 처했고, 디트로이트 미술관이 소장한 귀중한 작품들은 매각 대상에 올랐다. 또한 도시는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장기 소송전에 휘말릴 위험에 직면해 있었다.


이후에 일어난 일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재단과 비영리조직들로 구성된 연합은 8억 달러가 넘는 자금을 모아 디트로이트가 파산 보호 절차를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그 결과 연금은 보호되었고, 대체 불가능한 문화적 자산들도 지켜낼 수 있었다. 이 파트너십의 중심에는 공동체를 지키려는 의지가 있었다. 모든 후원 기관은 각기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던 디트로이트 공동체를 지키고자 했으며(의도 1: 공동체 강화하기, 의도 2: 보답하기), 동시에 미국의 위대한 도시 가운데 하나가 겪고 있던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 중요한 시민적 자산과 사회적 약속을 보호하고자 했다(의도 3: 공동의 자산을 만들고 돌보기, 의도 11: 위기에 대응하기).


당시 나는 그 연합에 참여했던 한 재단의 대표에게 누구나 떠올릴 법한 질문을 던졌다. 그 재단이 내놓은 지원금은 설립 이후 가장 큰 규모의 기부였기 때문이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선례와 기회비용의 문제였다. 만약 캘리포니아주의 스톡턴에서 비슷한 요청이 들어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 8억 달러면 세계 기아 문제 해결에 훨씬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비판에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저는 선례가 될까 봐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특별한 책임이 있습니다. 이곳은 우리가 출발한 곳이며, 이 재단이 존재하게 된 이유의 중요한 일부이기도 합니다.” 그는 기아 문제에 대한 질문도 비슷하게 보았다. 그 질문은 기부를 불필요하게 제로섬으로 바라보는 것이며, 논점에서도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이 일에 동참한 재단들이 디트로이트를 지원하지 않았더라면 세계 기아 문제에 집중했을 것이라거나, 고향에서 벌어진 일생일대의 위기 때처럼 기아 문제를 위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힘을 모았을 것이라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사례는 예외적일 만큼 큰 변화를 만들어냈지만, 사실 그 출발점이 된 의도는 상당히 보편적인 것이었다. 이와 비슷한 의도들은 클라라 바턴이 적십자와 함께 개척한 활동부터 지하철도에서 상호부조 단체들이 수행한 핵심적 역할에 이르기까지, 미국 필란트로피의 가장 상징적인 순간들을 만들어왔다. 이는 또한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기부를 이끄는 힘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의도들이 추상적으로 다른 기부 동기보다 더 낫거나 더 효과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앞서 든 사례들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만은 않다. 어떤 의도든 서툴게, 또 이념적 편견에 갇힌 채 추구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런 경우도 많다. 안타깝게도 우리 분야의 적지 않은 운동들은 자신들의 방식만이 필란트로피를 실천하는 유일하게 올바른 길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큰 변화를 만들어낸 그런 의도들을 두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방식보다 본질적으로 덜 ‘효과적’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다양한 관점을 허용하지 않는 폐쇄적인 사고에 가깝다.


유형화를 활용하기

이 유형화는 일종의 도구 역할을 하기도 한다. 기부의 이유why와 기부의 방식how 사이에 존재하는 일정한 패턴을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아래 표는 서로 다른 의도가 어떻게 각기 다른 기부 접근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중요한 가치나 규범, 혹은 일·삶·예술에서의 탁월함에 대한 비전을 확산하고자 하는 기부자들은 노벨상, 부커상, 아카데미상처럼 모범적 성취를 기리는 상에 끌리는 경우가 많다(의도 8: 가치 고양하기). 잘 설계되고 운영될 경우, 이러한 상은 ‘무엇이 탁월한가’를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관심을 모으고 새로운 내러티브를 확산하는 데 매우 강력한 도구가 된다. 그러나 공원이나 도서관처럼 시민이 함께 누리는 공동 자산을 유지하고 지속시키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의도 3: 공동의 자산을 만들고 돌보기).


그 핵심은 단순하다. 적절한 도구를 선택하려면 먼저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 그리고 왜 그것을 하려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기쁨과 축하를 나누고자 하는 기부자들(의도 4)이나 인간의 번영을 증진하고자 하는 기부자들(의도 7)은 예술과 문화 분야에서 창작 지원, 펠로우십, 기본소득 형태의 지원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예술은 개인의 삶은 물론 공동체와 문명의 역사 속에서도 변화와 의미, 목적을 만들어내는 가장 강력한 힘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작위 대조실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과 같이 합리적으로 여겨지는 평가 방법으로도 예술이 만들어내는 영향 전체를 온전히 포착하기는 어렵다. 또한 얼마를 투자하면 얼마만큼의 효과가 나온다는 식으로 양적 측정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러한 지원이 낭비라고 결론짓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판단이다. 측정 가능한 성과가 이 지원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목적은 의미와 아름다움, 그리고 인간의 번영에 있다.


필란트로피가 하나의 정답이나 접근만을 강조하게 되면, 오히려 순서가 뒤바뀌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마치 망치를 먼저 들고 나서 못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펀더들은 장애보정생존연수DALYs(질병으로 잃는 건강한 삶의 시간을 측정하는 지표)를 최대한 높이는 데 관심을 두고, 또 어떤 펀더들은 특정 이슈를 미리 정하지 않은 채 참여형 기금 배분 방식을 시도한다. 이런 접근들은 대체로 충분히 타당하며, 어떤 경우에는 매우 설득력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특정 지역이나 문제에 깊은 애정을 가진 사람들, 또는 기부에 참여하는 이유가 전혀 다른 사람들을 이 방식으로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재단들이 다른 펀더들에게 자신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이슈에, 자신들이 선호하는 방식과 전략으로 함께 투자하자고 설득했지만, 한계에 부딪힌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은 사람들이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기부하는지가 왜 기부하는지와 별개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삶의 많은 일이 그렇듯, 사람들이 왜 기부하려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들에게 다가가면, 그들이 기부하는 방식을 바꾸기는 어렵다. 결국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고, 대화는 어긋날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는 이러한 의도들이 서로 겹치거나 뒤섞이는 경우가 많다. 기부자들은 대개 하나의 의도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여러 의도가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에, 같은 이슈나 같은 조직을 지원하더라도 그 이유는 서로 다를 수 있다. 실제 대부분의 비영리조직도 자신들의 활동을 설명할 때 하나의 이유만을 제시하지 않는다. 연합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입장과 목표가 있더라도, 그보다 더 크게 작동하는 공통의 의도가 없다면 대부분의 연합은 쉽게 무너지거나 애초에 형성되기 어렵다. 이런 중첩은 이 유형화의 결함이 아니라 오히려 중요한 특징이다. 현실의 기부는 원래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청소년 성장 프로그램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어떤 기부자는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장학금을 지원할 수도 있고(의도 6: 중대한 문제 공략하기), 자신의 삶을 바꾸어놓은 프로그램이 계속 운영되도록 후원할 수도 있으며(의도 2: 보답하기 또는 기억하기), 특정 그룹의 학생들이 더 넓은 가능성을 상상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도 있다(의도 13: 잠재력 촉진하기). 물론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작용할 수도 있다. 이 의도들은 모두 기부를 이끄는 강력한 동기가 될 수 있으며, 하나의 기부 안에서도 함께 드러날 수 있다. 각각은 서로 보완적이기는 해도, 성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저마다 다른 상을 전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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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Vicki Turner)


개인 안에 여러 의도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것처럼, 사회혁신 분야 안에도 서로 다른 의도를 가진 기부자들이 함께 변화를 만든다. 많은 경우 우리는 그것을 의식조차 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달리 말하면, 어떤 의도를 추구하든 당신의 성공은 거의 언제나 다른 동기를 가진 사람들의 노력과 그들이 선택한 다양한 전략과 접근에 의존하고 있다.


효과적 이타주의에 대한 논의를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안내견 훈련보다 말라리아 예방용 모기장을 보급하는 것이 비용 대비 훨씬 효과적이라는 주장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먼 나라의 한 아이가 모기장을 지원받은 뒤 어느 날 학교에 가는 길에 모기에게 물린다면 어떨까? 그 아이는 어디에서 약을 구할 수 있을까? 어떤 병원을 찾아가야 할까? 누가 그 아이를 치료해줄까?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런 질문이 남는다. 당신은 그 특정한 아이를 정말로 돌보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물론 그 아이의 가족과 공동체는 그 아이를 돌본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그 지역에 뿌리를 두고 활동하는 지역 기반 후원자들(의도 2), 해당 국가의 보건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국제 NGO들(의도 6), 그리고 당신이 보급하려는 이중 살충제 처리 모기장과 새로운 치료법 개발을 위한 응용연구를 지원한 혁신 지향적 기부자들(의도 5)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장애보정생존연수 지표에서 만들어낸 성과는 사실 전혀 다른 의도와 전략을 가지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성공을 측정해 온 기부자들의 노력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의도에 깊이 헌신하면서도, 다른 의도들 역시 강력하고, 정당하며, 저마다 다른 성공의 모습을 제시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고, 또 받아들여야 한다. 다원주의를 사유한 캐나다 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진정성의 윤리The Ethics of Authenticity>에서 이러한 균형을 아름답게 포착했다. “역사든, 자연의 요구든, 동료 인간의 필요든, 시민으로서의 의무든, 신의 부르심이든, 혹은 이와 비슷한 어떤 것이든 내가 중요하다고 여길 수 있는 세계 안에서만, 나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의미 있는 답을 할 수 있다. 내면의 진정성은 자아 밖에서 오는 요구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요구를 전제한다.”


펀더가 답할 수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 가운데 하나는 “나는 왜 이 일에 관심을 갖는가?”이다. 그러나 펀더의 신뢰성은 그 이유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그리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도 중요하다. 따라서 ‘무엇을’ 할 것인가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갈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떤 의도를 그 목적에 맞게 실현하기 위해 최선의 방법을 두고 논쟁하는 것은 충분히 필요한 일이다. 모든 의도 안에는 다양한 변화이론과 암묵적이거나 명시적인 시간표, 선택 가능한 다양한 전략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과학혁신을 위해 상금을 내건 경진대회를 여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경력 초기의 과학자들을 지원하는 것이 나은지를 두고 토론할 수 있다. 초중등 교육 성과를 높이기 위해 어떤 정책 접근이 더 효과적인지를 두고도 의견이 갈릴 수 있다. 안경의 보급 규모를 넓히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하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정부가 이어받도록 하는 것이 나은지를 두고도 논쟁할 수 있다. 이런 논쟁들은 오히려 이 분야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각자의 열정을 품고, 세상의 다원성을 받아들이기

이 유형론을 적용하자는 것이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대한 열정을 내려놓으라는 제안이 아니다. 그보다는 필란트로피 영역이 보다 분명하게 다원성을 받아들이자는 제안에 가깝다. 지금까지 나는 이러한 제안의 원칙적 근거를 중심으로 설명해 왔지만, 서로 다른 필란트로피의 방식과 결을 더 열린 태도로 받아들여야 할 현실적 이유 또한 있다.


더 많은 바구니에 나눠 담기 | 정부 이양 모델government hand-off model의 약점 가운데 하나는 정치적 변화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이는 재단들이 지나치게 정치적이거나 이념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솔직히 말하면 정치적·이념적 입장 때문에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든 경우도 있다) 오히려 한 행정부의 핵심 정책이 다음 행정부에서는 폐기하거나 공격해야 할 대상으로 바뀌는 일이 점점 더 잦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초이스 네이버후드Choice Neighborhoods, 메디케이드 확대Medicaid expansion, 학자금 대출 탕감student-debt relief 등이 모두 그런 사례다.


정치적 변동성이 일상이 된 지금,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기대와 부담을 정부 이양 모델 하나에만 걸어온 면이 있다. 이것은 단지 여러 가능성에 분산 투자하자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에 가깝다. 하나의 방식만이 지배하는 획일적 구조는 우리를 더욱 취약하게 만들고, 그 대가는 결국 비영리 조직과 그들이 지원하는 공동체가 감당하게 되어 있다.


더 강한 방어 논리 | 최근 필란트로피 영역의 존재 이유를 옹호할 때 가장 강조되는 것은 공동체를 돌보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역할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오픈소사이어티재단에 대한 형사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는 보도에 대해, 전미비영리협의회National Council of Nonprofits의 다이앤 옌텔은 “비영리 조직은 미국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돕는다. 비영리 조직은 안전한 주거, 건강한 식사, 필수 의료서비스 등을 이웃들에게 연결하며 우리 공동체가 제대로 작동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재단협의회Council on Foundations, 인디펜던트 섹터Independent Sector, 전미비영리협의회, 유나이티드 필란트로피 포럼United Philanthropy Forum도 공동 성명을 통해 “다양한 생각과 정보는 정부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는 다원주의의 원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필란트로피 영역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설명할 때 공동체와 다원주의의 언어를 사용한다. 반면 개별 재단의 리더들은 국가적·세계적 차원에서 시스템 체인지를 말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전문적인 변화 이론들을 활용한다.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 역시 자선보다는 권력 구축하기, 혁신 가속하기, 투자 대비 장애보정생존연수 극대화하기, 또는 정의 실현하기 같은 목표에 더 큰 동기를 느낄 수 있다.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영역에 대한 대중적 지지의 기반이 여전히 사람들의 일상적인 자선과 돌봄의 감각 위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필란트로피를 실천하고, 경험하고, 이해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신뢰할 만한 근거와 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재단 임원들조차 개인적으로 기부할 때는 대체로 이런 ‘자선적’ 의도에 의해 움직인다. 이는 위선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미 여러 의도가 모두 중요하고 정당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증거이다. 다만 필란트로피 영역은 특정한 방식만이 옳은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전문적 규범과 폐쇄적인 담론 구조를 만들어왔다.


일상의 기부 돌아보기 | 마지막으로, 필란트로피 영역의 규범은 실제 사람들이 일상에서 실천하는 기부의 모습과 어느 정도 닮아 있어야 한다. 생각해보자. 왜 재단의 임원들은 자신이 이끄는 조직이 배분하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개인 기부를 할까? 아마도 많은 재단들이 창립자가 세상을 떠난 뒤 방향을 바꾸거나, 이사회가 전문화되면서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이유와 비슷할 것이다. 그것은 그 돈이 더 이상 ‘자신의 돈’이 아니기 때문이며, 그 결과 어떤 기부 의도가 정당한지에 대한 암묵적 가정이 선택지를 좁혀버리기 때문이다. 합리적 판단에만 집중하다 보면, 우리가 처음 이 일에 마음을 두었던 이유를 잊기 쉽다.


나는 여기서 이 논의를 지나치게 확대하고 싶지는 않다. 많은 대형 펀더들이 거대한 글로벌 문제를 해결하는 일(의도 6)이나 혁신적 돌파구를 앞당기는 일(의도 5)에 집중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실제로 이들은 그러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는 데 큰 기여를 해왔다. 나 역시 바로 그런 문제의식에 이끌려 필란트로피 분야에 들어왔다. 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드는 방법은 그것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지난 10년 동안 많은 대형 기관 펀더들, 심지어 오랫동안 익숙한 방식을 고수해 온 곳들조차도 자신들이 속한 지역사회에 기여하거나, 평소 집중해 온 분야 밖에 있는 이슈를 지원하기 위해 ‘기회 기금opportunity fund’이나 ‘재량 기금discretionary fund’을 조성해 왔다. 이것은 원래의 원칙에서 벗어난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이들 역시 변화를 만들어내는 또 다른 방식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다. 재단들은 흔히 자신들의 지원 활동을 이슈 포트폴리오의 관점에서 설계한다. 이제는 그 포트폴리오를 의도의 관점에서도 구성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액 기부자든, 자신의 기금을 직접 운용하는 고액 기부자든 의미 있게 기부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돈을 낭비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인 것처럼, 좋은 기부를 하는 방법 또한 여러 가지다. 그렇기에 무엇이 좋은 기부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필란트로피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단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기부를 이끌었던 의도에 비추어 판단되어야 한다.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기부해야 한다는 생각이야말로 오늘날 필란트로피가 처한 여러 문제를 낳은 원인 중 하나였다. 다양한 기부 의도와 접근법을 받아들이는 것은 필란트로피 영역의 힘과 회복탄력성을 높여줄 뿐 아니라, 지금처럼 우리 공동체가 독선보다 연대를 더 필요로 하는 시대에 다원주의적 태도를 강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질문을 다시 던지기

2025년에는 정부 주도의 확장 모델을 충실하고 신중하게 따라온 비영리 조직과 리더들마저 어려움을 겪었다. 그 길을 권장해 온 펀더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은 현재 행정부를 비난하고, 지금의 혼란이 결국 예전의 정상 상태로 돌아가기 위한 과도기에 불과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떨까?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이 일시적 혼란이 아니라, 변동성이 일상이 된 새로운 현실이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사명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사회변화에 대한 이론과 가정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기부 의도에 주목하는 것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설령 그 과정이 필란트로피가 익숙하게 여겨온 방식을 벗어나게 만들더라도 말이다. 예를 들어 규모 확장을 위해 정부 주도의 방식을 당연하게 여기기보다 시장 기반의 접근을 검토할 수도 있다. 다른 주체의 자원을 ‘레버리지’하는 데만 집중하기보다, 재단 스스로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해 확장을 지원할 수도 있다. 또는 규모 확대만을 유일한 목표로 삼지 않고, 보다 다양한 목표를 추구할 수도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왔지만, 지금은 단 하나의 임팩트 이론에 지나치게 의존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뼈아프게 배우고 있다.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우리를 더 다원적이고 회복탄력적인 미래로 향하게 만든다. 설령 지금의 혼란을 어떻게든 버텨낸다 하더라도, 지난 1년은 획일적인 필란트로피가 생각보다 훨씬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었음을 드러내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야심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좋은 일을 하는 것’과 ‘규모를 확장하는 것’이 반드시 같은 의미는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 또한 서로 다른 의도와 가치 지향을 가진 필란트로피 생태계 자체가 일종의 사회적 안전장치가 될 수 있음을 이해하는 일이다. 이러한 다양성은 앞으로 어떤 변화가 닥치더라도 우리가 더 잘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원성은 강점이다. 그것은 오만과 예기치 못한 충격, 그리고 무력한 정체 상태에 빠지는 위험을 줄여주는 완충장치이기도 하다. 필란트로피 영역의 건강성과 시민사회의 활력은 다양한 의도와 방식의 기부가 함께 존재할 때 비로소 유지될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펀더마다 다를 수 있다. 대형 재단이라면 지원 영역만이 아니라 기부 의도까지 고려해 균형 있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볼 수 있다. 개인 기부자라면 ‘좋은 기부’의 기준을 정해놓은 경직된 틀에서 출발하기보다, 자신이 왜 기부하려 하는지,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무엇에 끌리는지와 같은 자신의 의도에서 출발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자신과 다른 방식의 기부를 만났을 때, 가상의 코치 테드 래소Ted Lasso의 조언을 떠올려볼 수 있다. “판단하기보다 호기심을 가져라.”


나는 필란트로피가 던져야 할 핵심 질문이 언제나 “어떻게 가장 큰 변화를 만들 것인가”라는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때로는 “어떻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 것인가”가 더 중요한 질문일 수 있다. 내 친구는 그것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비극을 겪은 뒤 그는 “어떻게 임팩트와 규모를 극대화할 수 있을까?”라고 묻지 않았다. 대신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과 가치를 어떻게 기릴 수 있을지를 물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그녀가 평생 실천해 온 질문,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도 담겨 있었다. 사랑에서 비롯된 이 질문은, 레버리지나 효율성이 아니라 관계와 책임감에 뿌리를 둔 질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필란트로피 전체가 귀 기울일 만한 지혜가 담겨 있다. “우리는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단지 공공–민간 파트너십이나 장애보정생존연수에 관한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을 지키고, 공동체를 돌보며, 우리가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사실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일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필란트로피가 이 질문과 그 함의를 더 진지하게 받아들일수록, 필란트로피의 미래는 그 이름에 더 걸맞은 모습이 될 것이다. 인류애philanthropy, 곧 인간에 대한 사랑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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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EL SIMON

아리엘 사이먼은 탬버린 필란트로피스Tambourine Philanthropies의 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