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 일반]기술에 대한 역사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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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 일반 · 사회 · 기술


북 리뷰: <기술의 덫>

기술에 대한 역사의 교훈


2020-2


REVIEW BY OSCAR SCHWARTZ



Summary. 칼 베네딕트 프레이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기술과 조직,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며 통찰을 제공한다. 특히 역사에 대한 검토를 통해 디지털 혁명이 가져올 결과를 전망하고, 새로운 도전과 기회에 대해 설명한다. 



『테크놀로지의 덫: 자동화 시대의 자본, 노동, 권력』 저자 칼 베네딕트 프레이 480쪽, 프린스턴대학교 출판부, 2019년

<기술의 덫: 자동화 시대의 자본, 노동, 권력>

칼 베네딕트 프레이, 480쪽, 프린스턴대학교 출판부, 2019년


<기술의 덫: 자동화 시대의 자본, 노동, 권력>에서 칼 베네딕트 프레이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교수는 산업혁명 시대부터 오늘날의 디지털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루어져 온 자동화automation의 역사에 대해 전반적으로 기술한다. 프레이 교수는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이 장기적으로 사회에 진보를 가져오지만, 발전의 대가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생 동안 끔찍한 결과를 겪는 경우가 흔히 있다고 주장한다.


프레이 교수는 경제학자들이 기술의 역사에 대해 논할 때 과거에 기술이 야기했던 고통보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혜택에 비중을 두어 분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이 같은 ‘기술 애호’ 성향은 우리로 하여금 자동화로 인해 사람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를 무시하게 만들고, 기술적 혼란이 초래할 수 있는 정치적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을 보지 못하게 한다고 경고한다.


이러한 프레이 교수의 분석은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AI 시대에서 유의미한 역사적 교훈을 제공하지만, 한편으로는 정치 사회적 발전에 기술이 미치는 영향을 과장하고 있기도 하다.


<기술의 덫>은 2013년 프레이 교수가 옥스퍼드대학교 컴퓨터공학과의 마이클 오스본 교수와 공동으로 발표한 논문 「고용의 미래: 일자리는 컴퓨터화에 얼마나 민감한가」에 기반한다. 이 연구에서 두 교수는 AI와 머신러닝의 발달로 인해 수십 년 내 미국 전체 노동력의 47%가 기계로 대체될 심각한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 예상했다. 이 논문은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로봇이 당신의 일자리를 대체하러 온다.’, ‘AI는 인류에 위협적인가?’와 같은 선정적인 제목으로 대중 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주목을 끌었다.


이처럼 언론이 주목하는 가운데 어느 저명한 경제학자는 프레이 교수의 견해에 대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자동화의 물결은 예전에 영국에서 일어났던 산업혁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프레이 교수가 발표한 논문의 과도한 인기를 다음과 같이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기술 수준은 정교해졌다고 하더라도 노동이 대체되는 과정 자체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이는 이전에도 일어났던 일이며, 인류는 이를 이겨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전보다 더 번영했습니다.” 즉, 자동화 물결에 대해서 지나친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레이 교수는 “현재의 양상이 ‘그저’ 또 다른 형태의 산업혁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경종을 울려야만 하는 이유입니다.”라고 말한다. 1780년부터 1840년까지의 영국은 극도로 혼잡하고 양극화됐으며, 많은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고 그는 강조한다.


프레이 교수의 저서는 1만 년 전 농업의 발명부터 역사를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그의 주요 논점은 산업혁명을 다루는 2부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그는 리처드 아크라이트의 수력 방적기,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제임스 하그리브스의 다축 방적기 등 당대 가장 위대한 혁신은 모두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이었다고 설명한다. 기존의 고숙련 노동자들은 저숙련 노동자, 심지어는 아동들이 조작하는 기계로 대체됐다. 혁신을 통해 제조업자들은 단숨에 돈방석에 앉게 된 반면, 노동자들은 아무런 혜택을 얻지 못했다. 프레이 교수는 “많은 서민들의 삶이 더 열악해지고 잔인해지고 단축됐습니다.”라고 기술하면서, 그들의 삶이 산업화의 도래 이전에 훨씬 더 나았을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해서 기술의 진보가 노동자들에게 피해만 입혔다고 프레이 교수가 믿는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기술 진보로 인한 혜택이 매우 크기 때문에, 사회가 다수의 진보를 위해 소수의 희생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전기 사용의 대중화, 가정의 기계화 및 자동차의 보급이 이루어진 미국의 제2차 산업혁명을 ‘위대한 평준화 (혹은 평등화)the Great Leveling’라고 표현했다. 이 기간 동안 산업 발전의 결실이 노동자들에게 더 고르게 분배될 수 있었기 때문에 역동적인 중산층이 탄생했다. 당시에도 노동자와 기술 간의 불협화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늘어나는 중산층은 대체로 삶의 수준을 향상시켜주는 기술을 이롭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프레이 교수는 기술 진보로 인한 물질적인 혜택이 이처럼 고르게 분배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예외에 가까운 일이었으며,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보편적이라고 이야기한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컴퓨터의 시대에 우리는 노동을 대체하는 첨단기술로 인한 노동자층의 붕괴를 다시 한번 목도하고 있다. 산업혁명 시대의 경제적, 사회적 불안정성이 재현되고 있다. 생산성 향상은 노동시장의 악화, 임금의 감소, 부의 불평등 심화를 동반하고 있다. 프레이 교수는 인간의 제어에 의존하던 기계가 앞으로 빅데이터와 강력한 알고리즘으로 무장되면서 생산성이 증가하면 이 추세가 심화될 것이라고 본다. 향후 수십 년간 큰 혁신이 계속되겠지만, 이와 더불어 많은 노동자들이 보유하던 기존의 기술이 쓸모 없어지면서 탈숙련화de-skilling, 해고, 불평등으로 인한 고통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프레이 교수는 미래에 AI가 가져올 혜택과는 별개로, 고조되고 있는 노동자들의 불만을 지금 당장 직시하고 걱정 어린 눈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술이 단기적으로 고통을 야기할 때, 기술 자체에 대한 분노가 커지면서 극심한 사회적, 정치적 대변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방직기의 기계화에 의해 촉발된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다. 러다이트 운동은 1811년과 1816년 사이 영국 잉글랜드 중부지방에서 직물 노동자들이 일으킨 폭동이다. 단순한 오합지졸이 아니었던 러다이트 세력은 뛰어난 조직력을 바탕으로 영국 전역의 노동자들로부터의 지지를 얻었으며, 상당한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졌다.


프레이 교수는 이 같은 기술에 대한 적대감이 오늘날에도 미세하게 꿈틀대고 있다고 본다. 아직은 새로운 러다이즘Luddism, 기술혁신 반대주의이 상당히 억제된 상태이며, 주로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기술에 대한 대중의 태도를 바꾸려는 정도의 수준에서 희미하게 표출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산업혁명 시대의 소요를 상기시키며, ‘러다이즘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것’이라고 경고한다. 최근 테크 기업들에 대해 대중이 보이는 반발을 생각해 보면, 그의 우려가 타당할지도 모른다.


프레이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강성의 ‘기술결정주의technological determinism’이다. 신기술이 사회, 정치, 문화의 발전 방향을 결정짓는다는 관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프레임워크는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킬 수 있다. 프레이 교수는 러다이트 운동을 기계를 적으로 간주하는 기술 반대 운동으로 규정했지만 『러다이트의 기록』의 편집자인 영국의 케빈 빈필드 교수는 러다이트 운동의 타깃은 기술이 아니라, 기계를 기만적이며 부정직한 방법으로 사용하여 노동의 표준을 악화시킨, 자본을 가진 제조업자들이라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내놓았다.


프레이 교수가 이야기하는 AI 진보의 필연성에 대해 산업계 연구자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는다. 프레이 교수는 사람이 하는 대부분의 직업을 AI가 대체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보지만, 로봇공학의 선구자 로드니 브룩스는 프레이 교수의 예측을 히스테리에 가깝다고 일축하면서 기술 진보에는 언제나 예측 불가한 변수가 많다고 말한다. 실제로 AI의 부상은 인간과 컴퓨터 시스템의 일대일 대체가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영화감독 애스트라 테일러가 언급한 것처럼 ‘가짜 자동화fauxtomation’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테일러 감독은 소셜미디어 콘텐츠 조정social media content moderation 사례를 언급했는데, 이는 페이스북,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허위 정보, 선동성 정보, 잔인한 콘텐츠 등을 스크리닝하는 일이다. AI 알고리즘이 이러한 콘텐츠를 자동으로 선별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AI의 불완전함을 보완하기 위한 인력의 활용이 보편적이다. 예컨대 페이스북은 무려 3만 5천 명의 조정 인력을 기활용한다. 교수는 이와 같이 인간의 노동력을 AI의 신화 뒤에 감춤으로써 노동조건의 악화가 정당화된다고 이야기한다.


프레이 교수의 AI 발전에 대한 우려는 때로는 과장되어 보이는 부분이 있지만, 권력을 가진 자들을 통해서만 기술 진보가 실현될 수 있었다는 그의 통찰은 날카롭다. 거대한 테크 기업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는 현시점에서 특히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다. 러다이트들은 기계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활동했지만 정치적 영향력이 부족했다. 영국 정부는 국가 경쟁력 우위의 확보라는 명분 하에 혁신가와 제조업자들의 편에 서서 새로운 기계 도입을 지원했다. 프레이 교수는 정치권력과 기술 진보 세력이 이렇게 연대하는 일은 역사적으로 드문 일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인류 역사를 돌아볼 때 대부분의 권력자들이 “기술로 인한 권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기술에 거세게 저항해왔습니다.”라고 언급한다. 그런 면에서 영국 정부가 산업계의 편을 들었던 산업혁명은 역사의 전례를 뒤집은 것이었다. 이 동맹은 급격한 경제 성장을 가져왔고, 이후 서구에서는 정치권력이 반기술적anti-technology 성향을 띠지 않게 됐다.


하지만 프레이 교수는 이런 개념이 오늘날에 이르러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대중의 불만을 감지한 각국의 지도자들은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서 기술은 노동자 계층의 적이라는 프레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영국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과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은 로봇에 대한 과세를 약속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이에 동참했다. 프레이 교수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트럼프 정부의 슬로건은 제2차 산업혁명 시대의 공장지대 - 한때 찬란했으나 지금은 절망에 빠진 - 주민들을 분명하게 겨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소름 돋게도 프레이 교수는 자동화를 철저하게 반대한 유사한 역사적 인물로 아돌프 히틀러를 제시했다. 나치당의 포퓰리즘 슬로건 중 하나가 ‘노동자가 기계로 대체되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였다.


프레이 교수는 아직 반기술 포퓰리즘의 초기인 지금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기술 진보가 야기할 수 있는 고통과 불만을 직면해야 할 시기라고 말한다. 그는 해직자에게 교육과 재훈련을 제공하고, 부의 혁신적 재분배 방안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지만, 이와 같은 내용에 대해서는 저서의 말미에서 간략하게만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실제적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충분한 고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유사한 제언들을 여러 경제학자가 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이러한 정책의 도입은 요원해 보인다.


비록 프레이 교수가 혁신적인 대안을 내어놓지는 못했지만, 그의 주장이 시사하는 도덕적 교훈에는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기술 발전을 논할 때 미래는 과거나 현재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프레이 교수는 경제학자이지만, 그가 제시하는 관점은 철저히 인간 중심적이다. 사람들이 현재 고통을 겪고 있다면, 우리는 고통받는 이들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정책 결정 시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기술 발전이 결국 미래를 풍요롭게 하더라도, 프레디 교수는 “단기short run도 누군가에게는 한평생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는 죽습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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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CAR SCHWARTZ

오스카 슈워츠(OSCAR SCHWARTZ)(@SCAR-SCHWARTZ)는 기술, 과학, 정체성 분야를 연계하여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이다. 슈워츠는 <허니문 스테이지(THE HONEYMOON STAGE)>를 저술했으며, 영국 가디언(THE GUARDIAN)지와 미국 애틀랜틱(THE ATLANTIC)지 등에 기고하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