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아시아재단 정책 담당관
현 예일대학교 Management MBA 과정 재학
Q. 안녕하세요 재명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한양대학교에서 13학번 경영학부를 졸업했고, 사회혁신융합전공 1기로 활동한 이재명입니다. 현재는 예일대학교 MBA 과정을 앞두고 있으며, 그 전에는 아시아재단이라는 국제 NGO에서 정책 담당관으로 6년간 근무했습니다.
그동안 비즈니스와 사회혁신, 국제개발의 교차점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아시아재단에서 관련된 일들을 진행했습니다. 특히 아시아재단의 내부 전략과 지속가능하고 임팩트 있는 조직 경영에 기여했고, 탈북민이나 경력단절 여성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 지원 사업을 기획하고 리드했습니다.
Q. 사회혁신융합전공 1기라고 알고 있는데, 전공을 선택하신 계기가 궁금해요.
어릴 때부터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사회복지학과를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로 남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는데, 주변의 권유로 우선은 경영학부에 진학했습니다.
당시 경영학은 주주 이익 극대화가 강조되던 시기였고, 제가 원래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수업에서 배우는 내용이 충돌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공부는 재미있었지만, 가치관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이 많았습니다.
군대 전역 후 신현상 교수님을 통해 사회혁신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면서, 재미있게 공부하고 있는 경영학과 제가 그동안 살면서 가지고 왔던 가치관이 처음으로 일치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사회혁신이라는 개념이 공식적인 전공으로 출범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연스럽게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Q. 사회혁신융합전공에서 인상 깊었던 수업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사회적 기업가 정신 수업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경영학과 사회혁신을 융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알 수 있었고, 추상적인 사회혁신 개념을 전 세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실제적으로 구현되는 모습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국내에서 사회혁신을 구현하고 있는 분들의 실제 경험도 들을 수 있었고, 조별 프로젝트를 통해 관심 있는 분야의 해결 방안을 실제적으로 고민해 볼 수 있어서 의미 있었습니다.
Q. 사회혁신융합전공에 대한 애정이 크신 것 같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대학교에서 정말 마음이 맞고 결이 맞는 친구들을 만나기 어려운데, 사회혁신을 함께했던 친구들이 그런 공동체였습니다. 똑똑한 친구들이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저 스스로도 많은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세상이 좋아지려면 후배들이 선배보다 잘하면 된다는 것이 제 철학입니다. 선배들의 시행착오와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은 더 나은 문제해결 역량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과 정보가 계속 축적되면 다음 세대는 더 좋은 문제해결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그래서 선배들에게 받은 것들을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후배들도 다시 다음 세대에게 전수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우울한 미래가 아니라 조금 더 좋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선순환 구조를 함께 만들어 갈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자기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고 전문성을 확실하게 가져야 합니다. 사회혁신 수업을 많이 들었어도 본 전공에서의 역량이 없으면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6년간 사회혁신 부문에서 활동하면서 느낀 점은, 가장 큰 목소리를 내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자기 영역에서의 전문성이 확실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변호사든 정책 전문가든 경영 전문가든 기술자든, 자기 분야에서의 전문성이 있어야 사회혁신 분야에서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꼭 NGO나 국제기구에 국한될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폰도 세상에서 가장 큰 사회혁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부든 기업이든 어디에 있던지 자신의 자리에서 가진 역량으로 사회혁신을 구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Q. 재명 님께서는 졸업 이후 아시아재단에서 커리어를 시작하셨는데, 그때의 경험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사회혁신융합전공에서 진행하는 임팩트 컨설팅 캠프에서 베트남의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위한 투자 산업 프로젝트를 1박 2일 만에 준비해 세계은행 관계자들에게 발표했습니다. 발표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당시 세계은행 IFC 팀장님이셨던 아시아재단 한국지부 김광욱 대표님의 제안으로 인턴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지부에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며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한국지부 폐쇄 위기를 극복한 일입니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인데 왜 국제 NGO가 활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있었고, 폐쇄 소문이 심각하게 돌았습니다.
CEO가 한국 방문을 앞두고 있을 때, 저는 단순한 기관 소개가 아니라 핵심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아시아재단 지부는 미국 정부 펀딩이 60%를 차지하는데, CEO가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미국의 세금을 왜 한국지부에 투자해야 하는가'였습니다. 이 질문을 중심으로 발표 자료를 만들어 전체 18개 지부 중 1등을 차지했고, 폐쇄 예정이던 지부가 존속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제게 MBA 진학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6년간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입니다.
그때 저는 NGO나 좋은 일을 하려는 기관들의 고질적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얘기하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상대방이 정말로 궁금해 하고 알고 싶어 하는 정보는 따로 있습니다. 대부분 NGO들은 "우리가 정말 멋지고 중요한 일을 하기 때문에 우리를 도와주세요"라는 일방향적 메시지를 던지는데, 실제로는 이해관계자가 정말로 궁금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하고 싶어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줘야 합니다. 맞춤형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중요하며, 답을 전달하기 전에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질문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인사이트를 해당 경험을 통해 얻었기 때문에 더 인상 깊은 경험인 것 같습니다.
Q. 경영학부나 사회혁신융합전공을 통해 배우신 내용들이 실무에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경영학과 사회혁신융합전공에서 배운 이해관계자 중심 사고가 실무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NGO는 기업은 아니지만 수혜자, 도너, 내부 이해관계자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좋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수혜자 중심으로만 가면 도너들의 관심사를 놓칠 수 있고, 도너 중심으로만 가면 수혜자에게 진정성 있는 임팩트를 창출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두 가지에만 집중하면 내부 관계자들을 놓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놓치기 쉬운 부분입니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와 3년간 협업했는데, 이들은 한국, 일본, 중국 세 나라에만 집중했습니다. 이는 가장 큰 시장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글로벌 IT 기업과의 프로젝트에서는 소상공인들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경영을 효율화 할 수 있는 앱과 교육을 보급했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수많은 사람들을 그 플랫폼으로 유입시키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기업들이 단순히 좋은 일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경영학적 관점에서 보면 분명한 비즈니스 의도가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이해하고 프로젝트를 기획하거나 운영하면 파트너십이 훨씬 원활하고 지속가능해집니다.
Q. 현재 재학 중이신 예일대 MBA 진학을 결심한 계기와 향후 계획에 대해서도 듣고 싶어요.
6년간 비영리 분야에 있으면서 경영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MBA 졸업 직후에는 경영 컨설팅에서 3-5년간 다양한 직무와 산업을 큰 그림에서 접근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려고 합니다.
그 후 사회혁신 부문으로 돌아와서 경영 역량을 접목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세 가지 진로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비영리 부문의 경영 전략을 담당하는 임원진, 두 번째는 비즈니스적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가치를 모두 평가할 수 있는 임팩트 투자 분야, 마지막은 세계은행 IFC와 같은 곳에서 각국의 지속가능한 창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자문 역할입니다.
예일대학교는 탑 스쿨 중에서 가장 사회혁신에 진정성 있게 집중하고 있는 학교입니다. 다른 MBA 과정들이 '비즈니스 스쿨'이라는 이름을 쓰는 반면, 예일은 의도적으로 'School of Management'라는 이름을 사용합니다. 정부, NGO, 교육기관 등 다양한 분야의 경영 리더를 키우려는 목적입니다.
수업도 이해관계자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하나의 기업을 중심으로 다양한 관점(회계, 재무 등)에서 어떻게 바라보는지 통합적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사회혁신융합전공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결이 맞는 학생들이 많았던 것도 선택 이유였습니다.
Q.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선배님께 어떤 고민이 있으셨나요?
사회혁신은 매우 추상적이고 넓은 분야로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방향성이지 툴은 아닙니다. 개발자는 코딩을, 재무 담당자는 재무적 역량을, 생물학자는 생물학 지식을 기반으로 사회혁신을 구현할 수 있지만, 경영학과 사회혁신 모두 넓은 분야이다 보니 어떤 뾰족한 전문성을 키워야 할지 계속 고민해 왔습니다.
아시아재단에서 4년간 사업 기획과 운영을 담당하면서, 특히 전략 발표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경영 전략 분야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외부적 요인에 의해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가령 트럼프 대통령 부임 후 국제개발 펀딩이 대폭 축소되면서 아시아재단도 큰 영향을 받았었는데요, 대량 구조조정이 있었고 임팩트 있는 사업들이 중단되거나 축소되었습니다. 정책 변화에 따라 큰 타격을 받는 구조는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기업들은 정책이 바뀌어도 망하지 않지만, 사회적 기업이나 NGO들은 정부 자금에 너무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즈니스의 혁신적인 펀딩 모델이나 수익 모델을 접목시켜야 외부의 예상치 못한 변화에도 지속가능하게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Q. 지금의 선배님이 되기까지 중요하게 생각했던 마음가짐이나 동력은 무엇이며, 어떤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고 싶으신가요?
저에게 가장 큰 동력은 함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신현상 교수님이나 아시아재단 한국지부 대표님과 꾸준히 멘토링 관계를 이어왔고, 사회혁신융합전공 동기들과도 몇 달에 한 번씩 만나 서로에게 좋은 자극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대학 시절 함께했던 연합동아리 친구들과도 여전히 만나며, 각자 바쁘게 살면서도 ‘우리가 왜 이런 일을 시작했는지’를 상기합니다. 무엇보다 후배들과의 만남은 저를 다시 다잡게 해주는 중요한 계기입니다.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기 위해 직접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이런 시간이 저에게도 큰 리마인드가 됩니다. 앞으로 예일대에서도 같은 뜻을 가진 동료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한양대학교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서로에게 선한 자극을 주고받으며 성장해 나가고 싶습니다. 또한 진정성 있게 좋은 일을 하려는 부문(NGO, 국제개발)과 지속가능하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부문(비즈니스)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이 두 가지가 융합되어야만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들을 효과적이고 지속가능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제 가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