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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2025-1
REVIEW BY ANDREW J. HOFFMAN
Summary. 토머스 헤일은 그의 저서 <장기적 문제>에서 기후변화에 효과적인 정치적 해법을 도출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 중 하나는 장기간에 걸쳐 정책을 조율해야 하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장기적 문제: 기후변화와 시대를 넘어서는 거버넌스의 과제>
토마스 헤일, 256페이지, 프린스턴 대학교 출판부, 2024
옥스퍼드대학교의 토마스 헤일Thomas Hale 교수가 쓴 <장기적 문제들: 기후변화와 시대를 넘어서는 거버넌스의 과제Long Problems: Climate Change and the Challenge of Governing Across Time>를 읽으며, 필자는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의 말을 계속 떠올렸다. "우리는 ‘지능’이라는 놀라운 진화적 우연 덕분에 지구 생명의 지속성을 책임지는 관리자가 되었다. 우리가 이 역할을 자청한 것은 아니지만 피할 길 또한 없다. 우리가 이 책임을 감당할 만한 존재인지 확신할 순 없지만, 어쨌든 우리는 이 자리에 서 있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기후변화를 기존의 분석 모델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사악한 문제wicked problem’로 분류해 왔다. 우리에게는 이 난제를 해결할 역량이 없을지도 모르고, 해결이 요원하다는 생각에 좌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헤일 교수는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때 보다 효과적인 대응 방법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헤일 교수는 자신의 저서 <장기적 문제들>에서 일부 정치적 사안은 국가 간 경계를 넘나들 뿐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기반으로 논지를 전개한다. 그의 핵심 주장은 기후변화가 한 세대의 시간 범위를 넘어서는 대표적인 ‘장기적 문제’라는 것이다. 기후변화 문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 시간적 지속성만이 유의미한 요소는 아니지만, 이 속성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만으로도 정치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는 더 먼 미래를 내다보며 정책을 수립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미래를 고려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날 장기적 문제가 점점 더 만연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정책을 재구상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이유로는 첫째, 기술의 발전으로 인류가 환경이 가진 한계에 근접해 가고 있고, 둘째, 기후변화와 같은 문제가 갖는 장기적 영향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있으며, 셋째, 미래의 필요를 현재의 정책에 반영하려는 의지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헤일 교수는 장기적 문제가 ‘선거 주기나 분기별 수익 보고와 같은 단기적 시각을 넘어, 시간의 흐름을 관통하는 장기적 관점의 거버넌스’를 요구한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장기적 거버넌스를 무시하면 문제에 대응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장기적 문제에 대한 해결이 시급해질수록, 우리의 정치적 시야는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방향으로 좁아진다. 마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상황에서 홍수의 원인을 해결하기보다 당장 살아남는 것이 급선무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헤일 교수는 이를 두고 ‘기후변화의 여러 잔인한 아이러니 중 하나’라고 말하며, 기후변화가 심각해질수록 정작 그것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장기적 거버넌스에 대해서는 정치적 지원이 줄어드는 현상을 지적한다.
이 책은 장기적 문제에 대한 의미 있는 논의를 제공하며,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장기적 문제라는 개념이 학문 연구와 정부 정책 양 측면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조명한다. 그러나 이 책의 핵심 논지를 파악하려면 독자가 스스로 흩어져 있는 내용들을 연결해 그 의미를 해석해야 하는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장기적 문제에 대한 정의는 여러 페이지에 걸쳐 부분적으로 제시되다 보니 정의 자체가 단편적으로 느껴지고, 이해도 쉽지 않다. 헤일 교수에 따르면, 장기적 문제란 ‘서로 다른 여러 문제가 결합한 복합적인 형태’로, ‘점점 늘어나는 개입 요소’와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과정’을 수반하는 확장된 인과 관계의 사슬을 형성하고, 종종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특성을 갖는다.
또한, 헤일 교수가 리스트를 지나치게 활용하는 점도 독자가 논리적 흐름을 따라가는 데 방해가 된다. 첫 번째 장에서만 최소 8개의 리스트가 등장하는데, 이것들은 이야기의 흐름을 자주 끊는 느낌을 준다. 그뿐 아니라, 지나치게 세부적인 내용에 집중하는 대목은 비전공자 독자에게 혼란을 주고, 반대로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을 반복하는 부분은 해당 분야 전문가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물론 다양한 독자를 아우르려는 저자에게는 피하기 어려운 딜레마이다.
이러한 몇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기후변화에 대한 접근 방식에 깊이를 더하는 유익한 저작이다. 헤일 교수는 장기적 문제가 우리 사회에 세 가지 중대한 정치적·거버넌스적 도전을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장기적 문제는 결과가 나타나기 훨씬 이전에 선제적 대응을 요구한다. 그런데 현재의 행동에 투입되는 비용은 명확히 계산할 수 있는 데 비해 그 결과로 미래에 돌아올 이익은 현재 시점에서 불확실하다. 그는 이를 ‘조기 행동의 역설early action paradox’이라 부르며, 특히 현재 시점에서 비용 지불 부담이 큰 이들이 이러한 조기 조치를 방해하거나 저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한다. 실제로 기후변화 대응이 화석연료 산업의 존립을 위협한다고 판단하는 석유 회사들은 막대한 자금을 들여 기후변화를 둘러싼 논의를 방해하고, 왜곡해 왔다. 둘째, 오늘날의 정책 결정이 미래 세대에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정작 그들은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정책 논의에 어떠한 목소리도 낼 수 없다. 헤일 교수는 이를 ‘그림자 이해관계shadow interests’라 부르며, 미래 세대의 이해관계가 정책 결정 과정에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셋째, 현재 시행되는 모든 정치적 대응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는 ‘장기적 문제’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책에서는 이를 ‘제도적 지연institutional lag’이라 부르며, 초기의 제도가 시간이 지나며 실질적 효과를 잃게 되는 정책의 한계를 지적한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헤일 교수는 학자들이 기후변화를 분배나 비용의 문제가 아닌 전환의 문제로 정의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최종 결과보다는 변화의 속도’에 초점을 맞추고, ‘미래에 대한 확률 기반의 지식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실증적 기법’을 적용하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사회과학계에 특히 큰 도전이 될 수 있다. 사회과학 연구는 대체로 기존 모델과 이론에 기반하여 이루어지며, 전통적으로 미래를 예측하기보다는 과거의 패턴을 분석하는 데 집중해 왔다. 또한 미래 예측에 대해서도 소극적이거나 회피적인 경향을 뚜렷하게 보여왔다. 하지만 헤일 교수의 제안은 장기적 문제가 기존의 방식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새로운 유형의 도전을 제기하며, 이에 따라 연구는 물론 거버넌스 전반에 걸쳐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헤일 교수는 서두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새로운 정책 해법을 제시하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도구들을 평가해 이들이 세 가지 주요 과제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다루고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밝힌다. 그러나 그는 당초의 이런 입장을 넘어, 새로운 형태의 거버넌스를 위한 시의적절하고 도발적인 제안을 던져 논의를 확장한다. 그는 정부가 SF 작가 킴 스탠리 로빈슨Kim Stanley Robinson이 창안한 ‘미래부Ministry for the Future’ 개념을 참고해, 단기적인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장기적 이익을 고려하는 조직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조직은 정부가 정보 기반 도구를 활용해 미래를 더 잘 이해하고, 그 중요성을 현재의 정책에 반영하도록 돕는 한편, 장기적으로 사회적 선호를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장기적인 유연성을 유지하면서도 미래 대비 계획을 토대로 확고한 목표를 설정하고, 상황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갱신할 수 있는 정책 설계를 가능하게 한다.
단기적 사고가 지배적인 현실에서 미래를 고려한 장기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대담한 시도이다. 헤일 교수는 이로 인해 불가피하게 발생할 긴장과 이해 충돌에 대해 솔직하게 짚는다. 그는 자신의 제안이 때로 장기적 이익을 현재 세대의 이익보다 지나치게 우선시할 수 있으며, 미래를 예측하는 시도 가운데 일부는 필연적으로 오류를 수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장기적 문제가 지속되는 동안 필요한 자원이 소진될 수 있고, 무엇보다 ‘미래부’ 역시 일반적인 조직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기 이익과 기존 질서 유지에 몰두해, 변화의 필요성에 저항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헤일의 아이디어는 또 다른 흥미로운 쟁점을 제기하며, 논의의 폭을 넓혀준다. 예를 들어, 우리의 행동이 미래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고, 그 부정적인 결과를 완화하려는 노력은 단지 시간적 제약뿐 아니라 정치적 제약으로 인해 애초부터 인간의 능력 범위를 넘어서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생태계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것은 기후학자 폴 N. 에드워즈Paul N. Edwards가 ‘거대한 기계vast machine’라고 부른 체계 덕분이다. 헤일 교수는 기후변화처럼 복잡한 문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교한 모델과 방대한 데이터 세트를 가리키는 데 이 용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델과 데이터가 점점 더 복잡해짐에 따라, 일반 대중이나 비전문가가 이를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무언가를 사실로 받아들이려면 신뢰가 필요한데, 오늘날 우리는 신뢰가 부족한 사회를 살고 있다. 이 때문에 의심과 부정은 더욱 확산된다. 특히 일부 보수 성향 그룹은 기후 과학을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고,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도구로 인식하기도 한다. 이러한 정치적 저항은 비인간 생명체를 고려한 정책 논의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헤일 교수는 ‘그림자 이해관계’의 개념을 언급하며 비인간 생명체의 이익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았지만, 관련 사례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에콰도르는 2008년 헌법 개정을 통해 자연물에 법적 주체로서의 권리를 부여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이 외에 볼리비아, 우간다, 미국, 캐나다, 브라질, 뉴질랜드, 멕시코, 북아일랜드 등 여러 국가들에서도 자연의 권리를 일정 부분 법적으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더 나아가 ‘생태학살ecocide’을 법적 처벌이 가능한 범죄로 규정하고, 전 세계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률을 제정하려는 국제적 노력이 진행 중이다.
이러한 논의는 미래 세대에 대한 우리의 의무가 무엇인지에 대해 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예를 들어, 약한 지속가능성weak sustainability을 주장하는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우Robert Solow와 존 하트윅John Hartwick은 우리에게 미래 세대가 직면할 문제를 직접 해결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그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자원을 제공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입장은 자연 자본natural capital과 인공 자본manufactured capital이 상호 대체 가능하며, 미래 세대에게 총체적인 복지 수준의 향상만 보장된다면, 어떤 형태의 자본을 물려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전제에 기반한다. 미래 세대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 더 많은 부와 더 발전된 기술을 갖추기만 한다면, 현세대가 재생 불가능한 자원을 고갈시키거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강한 지속가능성strong sustainability의 입장을 취하는 이들은 이러한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연 자본과 인공 자본은 상호 대체 불가능하며, 자연환경은 우리가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고 주장한다. 헤일 교수가 이 부분을 명확히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의 논지를 보면 강한 지속 가능성의 입장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연 자원의 고갈이나 과도한 오염 부담이 미래 세대에 전가될 경우, 의도하지 않더라도 환경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으며, 결국 미래 세대가 감당할 수 없는 회복 불가능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과학자들은 2030년까지 현재의 온실가스 증가 경로를 되돌리지 않으면, 기후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 주장에 동의해 왔는데, 아이러니하지만 약한 지속가능성을 주장한 솔로우도 1992년에 ‘어느 세대도 다른 세대보다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비용 평가에서 일반적으로 할인율을 적용하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타협이자, 편의를 위한 기술적 가정(실제로도 그렇다)에 불과하다’고 말한 바 있다.
궁극적으로 기후변화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실존적 위협을 가하며 사회 제도에 전례 없는 방식으로 도전하고 있다. 우리는 굴드가 제시한 이 도전 과제들을 극복하며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헤일 교수가 인용한 시스템 과학자 제프리 비커스 경Sir Geoffrey Vickers의 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인류 문명이 생존하려면 ‘기후변화를 지금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깊이 있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이를 위한 정치적 제도도, 문화적 태도도 갖추지 못했다.” <장기적 문제>는 기후변화 문제에 내포된 시간적 복합성에 주목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정치 구조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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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W J. HOFFMAN
앤드류 J. 호프먼은 미시간대학교 스티븐 M. 로스 경영대학과 환경 및 지속가능성 대학의 지속가능경영 분야 홀심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글로벌 사회 비즈니스 연구소의 2023-2024년 기후 펠로우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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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 일반 · 환경 · 거버넌스
사악한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2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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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토머스 헤일은 그의 저서 <장기적 문제>에서 기후변화에 효과적인 정치적 해법을 도출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 중 하나는 장기간에 걸쳐 정책을 조율해야 하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장기적 문제: 기후변화와 시대를 넘어서는 거버넌스의 과제>
토마스 헤일, 256페이지, 프린스턴 대학교 출판부, 2024
옥스퍼드대학교의 토마스 헤일Thomas Hale 교수가 쓴 <장기적 문제들: 기후변화와 시대를 넘어서는 거버넌스의 과제Long Problems: Climate Change and the Challenge of Governing Across Time>를 읽으며, 필자는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의 말을 계속 떠올렸다. "우리는 ‘지능’이라는 놀라운 진화적 우연 덕분에 지구 생명의 지속성을 책임지는 관리자가 되었다. 우리가 이 역할을 자청한 것은 아니지만 피할 길 또한 없다. 우리가 이 책임을 감당할 만한 존재인지 확신할 순 없지만, 어쨌든 우리는 이 자리에 서 있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기후변화를 기존의 분석 모델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사악한 문제wicked problem’로 분류해 왔다. 우리에게는 이 난제를 해결할 역량이 없을지도 모르고, 해결이 요원하다는 생각에 좌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헤일 교수는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때 보다 효과적인 대응 방법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헤일 교수는 자신의 저서 <장기적 문제들>에서 일부 정치적 사안은 국가 간 경계를 넘나들 뿐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기반으로 논지를 전개한다. 그의 핵심 주장은 기후변화가 한 세대의 시간 범위를 넘어서는 대표적인 ‘장기적 문제’라는 것이다. 기후변화 문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 시간적 지속성만이 유의미한 요소는 아니지만, 이 속성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만으로도 정치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는 더 먼 미래를 내다보며 정책을 수립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미래를 고려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날 장기적 문제가 점점 더 만연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정책을 재구상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이유로는 첫째, 기술의 발전으로 인류가 환경이 가진 한계에 근접해 가고 있고, 둘째, 기후변화와 같은 문제가 갖는 장기적 영향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있으며, 셋째, 미래의 필요를 현재의 정책에 반영하려는 의지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헤일 교수는 장기적 문제가 ‘선거 주기나 분기별 수익 보고와 같은 단기적 시각을 넘어, 시간의 흐름을 관통하는 장기적 관점의 거버넌스’를 요구한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장기적 거버넌스를 무시하면 문제에 대응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장기적 문제에 대한 해결이 시급해질수록, 우리의 정치적 시야는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방향으로 좁아진다. 마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상황에서 홍수의 원인을 해결하기보다 당장 살아남는 것이 급선무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헤일 교수는 이를 두고 ‘기후변화의 여러 잔인한 아이러니 중 하나’라고 말하며, 기후변화가 심각해질수록 정작 그것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장기적 거버넌스에 대해서는 정치적 지원이 줄어드는 현상을 지적한다.
이 책은 장기적 문제에 대한 의미 있는 논의를 제공하며,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장기적 문제라는 개념이 학문 연구와 정부 정책 양 측면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조명한다. 그러나 이 책의 핵심 논지를 파악하려면 독자가 스스로 흩어져 있는 내용들을 연결해 그 의미를 해석해야 하는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장기적 문제에 대한 정의는 여러 페이지에 걸쳐 부분적으로 제시되다 보니 정의 자체가 단편적으로 느껴지고, 이해도 쉽지 않다. 헤일 교수에 따르면, 장기적 문제란 ‘서로 다른 여러 문제가 결합한 복합적인 형태’로, ‘점점 늘어나는 개입 요소’와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과정’을 수반하는 확장된 인과 관계의 사슬을 형성하고, 종종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특성을 갖는다.
또한, 헤일 교수가 리스트를 지나치게 활용하는 점도 독자가 논리적 흐름을 따라가는 데 방해가 된다. 첫 번째 장에서만 최소 8개의 리스트가 등장하는데, 이것들은 이야기의 흐름을 자주 끊는 느낌을 준다. 그뿐 아니라, 지나치게 세부적인 내용에 집중하는 대목은 비전공자 독자에게 혼란을 주고, 반대로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을 반복하는 부분은 해당 분야 전문가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물론 다양한 독자를 아우르려는 저자에게는 피하기 어려운 딜레마이다.
이러한 몇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기후변화에 대한 접근 방식에 깊이를 더하는 유익한 저작이다. 헤일 교수는 장기적 문제가 우리 사회에 세 가지 중대한 정치적·거버넌스적 도전을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장기적 문제는 결과가 나타나기 훨씬 이전에 선제적 대응을 요구한다. 그런데 현재의 행동에 투입되는 비용은 명확히 계산할 수 있는 데 비해 그 결과로 미래에 돌아올 이익은 현재 시점에서 불확실하다. 그는 이를 ‘조기 행동의 역설early action paradox’이라 부르며, 특히 현재 시점에서 비용 지불 부담이 큰 이들이 이러한 조기 조치를 방해하거나 저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한다. 실제로 기후변화 대응이 화석연료 산업의 존립을 위협한다고 판단하는 석유 회사들은 막대한 자금을 들여 기후변화를 둘러싼 논의를 방해하고, 왜곡해 왔다. 둘째, 오늘날의 정책 결정이 미래 세대에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정작 그들은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정책 논의에 어떠한 목소리도 낼 수 없다. 헤일 교수는 이를 ‘그림자 이해관계shadow interests’라 부르며, 미래 세대의 이해관계가 정책 결정 과정에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셋째, 현재 시행되는 모든 정치적 대응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는 ‘장기적 문제’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책에서는 이를 ‘제도적 지연institutional lag’이라 부르며, 초기의 제도가 시간이 지나며 실질적 효과를 잃게 되는 정책의 한계를 지적한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헤일 교수는 학자들이 기후변화를 분배나 비용의 문제가 아닌 전환의 문제로 정의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최종 결과보다는 변화의 속도’에 초점을 맞추고, ‘미래에 대한 확률 기반의 지식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실증적 기법’을 적용하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사회과학계에 특히 큰 도전이 될 수 있다. 사회과학 연구는 대체로 기존 모델과 이론에 기반하여 이루어지며, 전통적으로 미래를 예측하기보다는 과거의 패턴을 분석하는 데 집중해 왔다. 또한 미래 예측에 대해서도 소극적이거나 회피적인 경향을 뚜렷하게 보여왔다. 하지만 헤일 교수의 제안은 장기적 문제가 기존의 방식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새로운 유형의 도전을 제기하며, 이에 따라 연구는 물론 거버넌스 전반에 걸쳐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헤일 교수는 서두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새로운 정책 해법을 제시하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도구들을 평가해 이들이 세 가지 주요 과제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다루고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밝힌다. 그러나 그는 당초의 이런 입장을 넘어, 새로운 형태의 거버넌스를 위한 시의적절하고 도발적인 제안을 던져 논의를 확장한다. 그는 정부가 SF 작가 킴 스탠리 로빈슨Kim Stanley Robinson이 창안한 ‘미래부Ministry for the Future’ 개념을 참고해, 단기적인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장기적 이익을 고려하는 조직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조직은 정부가 정보 기반 도구를 활용해 미래를 더 잘 이해하고, 그 중요성을 현재의 정책에 반영하도록 돕는 한편, 장기적으로 사회적 선호를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장기적인 유연성을 유지하면서도 미래 대비 계획을 토대로 확고한 목표를 설정하고, 상황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갱신할 수 있는 정책 설계를 가능하게 한다.
단기적 사고가 지배적인 현실에서 미래를 고려한 장기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대담한 시도이다. 헤일 교수는 이로 인해 불가피하게 발생할 긴장과 이해 충돌에 대해 솔직하게 짚는다. 그는 자신의 제안이 때로 장기적 이익을 현재 세대의 이익보다 지나치게 우선시할 수 있으며, 미래를 예측하는 시도 가운데 일부는 필연적으로 오류를 수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장기적 문제가 지속되는 동안 필요한 자원이 소진될 수 있고, 무엇보다 ‘미래부’ 역시 일반적인 조직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기 이익과 기존 질서 유지에 몰두해, 변화의 필요성에 저항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헤일의 아이디어는 또 다른 흥미로운 쟁점을 제기하며, 논의의 폭을 넓혀준다. 예를 들어, 우리의 행동이 미래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고, 그 부정적인 결과를 완화하려는 노력은 단지 시간적 제약뿐 아니라 정치적 제약으로 인해 애초부터 인간의 능력 범위를 넘어서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생태계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을 더 잘 이해하게 된 것은 기후학자 폴 N. 에드워즈Paul N. Edwards가 ‘거대한 기계vast machine’라고 부른 체계 덕분이다. 헤일 교수는 기후변화처럼 복잡한 문제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교한 모델과 방대한 데이터 세트를 가리키는 데 이 용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델과 데이터가 점점 더 복잡해짐에 따라, 일반 대중이나 비전문가가 이를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무언가를 사실로 받아들이려면 신뢰가 필요한데, 오늘날 우리는 신뢰가 부족한 사회를 살고 있다. 이 때문에 의심과 부정은 더욱 확산된다. 특히 일부 보수 성향 그룹은 기후 과학을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고,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도구로 인식하기도 한다. 이러한 정치적 저항은 비인간 생명체를 고려한 정책 논의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헤일 교수는 ‘그림자 이해관계’의 개념을 언급하며 비인간 생명체의 이익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았지만, 관련 사례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에콰도르는 2008년 헌법 개정을 통해 자연물에 법적 주체로서의 권리를 부여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이 외에 볼리비아, 우간다, 미국, 캐나다, 브라질, 뉴질랜드, 멕시코, 북아일랜드 등 여러 국가들에서도 자연의 권리를 일정 부분 법적으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더 나아가 ‘생태학살ecocide’을 법적 처벌이 가능한 범죄로 규정하고, 전 세계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률을 제정하려는 국제적 노력이 진행 중이다.
이러한 논의는 미래 세대에 대한 우리의 의무가 무엇인지에 대해 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예를 들어, 약한 지속가능성weak sustainability을 주장하는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우Robert Solow와 존 하트윅John Hartwick은 우리에게 미래 세대가 직면할 문제를 직접 해결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그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자원을 제공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입장은 자연 자본natural capital과 인공 자본manufactured capital이 상호 대체 가능하며, 미래 세대에게 총체적인 복지 수준의 향상만 보장된다면, 어떤 형태의 자본을 물려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전제에 기반한다. 미래 세대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 더 많은 부와 더 발전된 기술을 갖추기만 한다면, 현세대가 재생 불가능한 자원을 고갈시키거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강한 지속가능성strong sustainability의 입장을 취하는 이들은 이러한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연 자본과 인공 자본은 상호 대체 불가능하며, 자연환경은 우리가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고 주장한다. 헤일 교수가 이 부분을 명확히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의 논지를 보면 강한 지속 가능성의 입장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연 자원의 고갈이나 과도한 오염 부담이 미래 세대에 전가될 경우, 의도하지 않더라도 환경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으며, 결국 미래 세대가 감당할 수 없는 회복 불가능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과학자들은 2030년까지 현재의 온실가스 증가 경로를 되돌리지 않으면, 기후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 주장에 동의해 왔는데, 아이러니하지만 약한 지속가능성을 주장한 솔로우도 1992년에 ‘어느 세대도 다른 세대보다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비용 평가에서 일반적으로 할인율을 적용하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타협이자, 편의를 위한 기술적 가정(실제로도 그렇다)에 불과하다’고 말한 바 있다.
궁극적으로 기후변화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실존적 위협을 가하며 사회 제도에 전례 없는 방식으로 도전하고 있다. 우리는 굴드가 제시한 이 도전 과제들을 극복하며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헤일 교수가 인용한 시스템 과학자 제프리 비커스 경Sir Geoffrey Vickers의 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인류 문명이 생존하려면 ‘기후변화를 지금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깊이 있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이를 위한 정치적 제도도, 문화적 태도도 갖추지 못했다.” <장기적 문제>는 기후변화 문제에 내포된 시간적 복합성에 주목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정치 구조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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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W J. HOFFMAN
앤드류 J. 호프먼은 미시간대학교 스티븐 M. 로스 경영대학과 환경 및 지속가능성 대학의 지속가능경영 분야 홀심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글로벌 사회 비즈니스 연구소의 2023-2024년 기후 펠로우로도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