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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이타주의의 사례
퓨처메이커를 위한 조망과 상상
ASHA CURRAN
Summary. 넘치는 이타주의는 기부에 대한 새로운 생각으로써 현재와 미래에 대한 희망과 낙관의 궁극적인 원천이 될 수 있다.
우리 앞에 놓인 분열과 양극화, 사회·환경 분야의 과제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미래에 대해 절망하기 쉽다. 그러나 희망은 소셜섹터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확실히 마주할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희망과 낙관을 잃지 않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연결되어 있고 서로 의존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더 밝고, 안전하며, 의미 있는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 갈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품는다.
상호연결성을 끌어내는 가장 보편적이고 강력한 가치는 ‘너그러움generosity’이다. 너그러움은 상호의존성과 연대, 호혜의 표현이다. 이는 단순히 가진 자가 갖지 못한 자에게 베푸는 자비가 아니라, 개인의 실천·관계·가치관에 깊이 뿌리내린 신념이다. 필자는 우리가 소셜섹터의 일원이자 세계시민으로서 넘치는 이타주의effusive altruism를 갖길 바란다. 이 넘치는 이타주의란 공동체를 중심에 두고, 사람들이 주도해 나가는 진심과 기쁨으로 충만한 행동으로, 서로를 돌보는 역량에 굳건한 뿌리를 두고 있다.
넘치는 이타주의를 기빙투스데이GivingTuesday, 추수감사절 직후인 11월 마지막 주 화요일에 기부로 감사를 표현하는 기부 캠페인에서는 ‘급진적인 너그러움radical generosity’이라고 표현한다. 넘치는 이타주의는 이웃이나 낯선 이의 행복이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의 행복만큼이나 중요하며, 우리의 일상적인 작은 행동이 타인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더 많은 행동 변화와 시스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된다.1 소수가 아닌 다수의 나눔문화로써 이 운동이 갖는 힘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는 공동의 비전으로부터 나온다. 이를 위해 기빙투스데이는 너그러움을 바탕으로 한 규범과 사례를 만들기도 하고, 전 세계의 다양한 나눔의 사례를 기념하는 일도 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거나 소셜섹터의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말이다.
나눔은 돈 그 이상이다
비영리단체에 기부하는 것은 중요하다. 매년 11월 마지막 주 화요일, 기빙투스데이가 되면 비영리단체 활동에 필요한 지원이 쏟아져 나온다. 특히 개인 기부가 감소하고 재정 지원이 중요해진 미국의 상황에서 이러한 지원은 절실하다. 하지만 비영리조직에 너그러움을 표현하는 데 있어 현금 기부가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사랑이 물질적 선물로만 표현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너그러움은 수많은 방식으로 발현될 수 있는 가치이다. 지지를 보내고, 시간을 나눠주고, 활동을 옹호하고, 멘토링을 제공하고, 관심을 쏟고, 함께 있어 주고, 기술을 나눠주는 등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어떤 방식도 가능하다.
우리가 타인과 커뮤니티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하는 일상적인 행동도 나눔이 될 수 있다. 가령 누군가에게 당신이 그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거나 아픈 친구에게 도움을 주는 일, 새로운 이웃의 문 앞에 화분 선물을 놓는 일처럼 약간의 시간이 드는 작고, 의미 있는 행동도 너그러움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런 배려심 깊은 행동은 공식적인 기부 데이터로 잡히지는 않지만, 우리의 삶과 커뮤니티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부를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너그러움은 실제로 확산하고 있다. 2021년 기빙투스데이의 데이터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사람들은 나눔에 대해 매우 강하고 일관된 동기가 있다. 그리고 현금 기부를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든 나눔을 실천하고 있으며,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전 세계 조사 대상의 85%가 나눔을 실천했고, 그중 현금만 기부한 사람은 5%에 불과했다.2
너그러움을 비영리단체에 대한 금전적 기부로 좁혀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 뿐만 아니라 감소하고 있는 기부 추세를 반전시키려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관점이 나눔을 거래적이고, 위계적이며, 냉소적이고 영감이 없는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공동체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고, 공동체의 필요를 잘 이해하는 다수의 사람이 권력과 주체성으로부터 멀어진다. 반면 어떤 나눔이 좋은 나눔이고, 효과적인 나눔인지, ‘감정’이 아닌 데이터에 기반해 판단을 내리는 소수의 ‘전문가’에게 권력과 주체성이 집중된다. 또한 너그러움을 금전 기부로 치환해 바라보는 관점은 고유한 문제와 해결책, 전문성, 나눔의 전통을 가진 건강한 커뮤니티의 주체성을 약화한다.
기부하는 미국 내 가구 수가 줄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의 너그러움이 감소하고 있다고 결론 내리기 쉽지만, 이는 매우 불합리한 판단이다. 하지만 이런 근시안적 관점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무엇이 관용적인 행동을 불러일으키는지,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지 여러 알고 있다. 필자는 넘치는 이타주의를 이루는 중요한 실천 방법을 몇 가지 배울 수 있었다. 이 실천 방법은 너그러움이 인간의 필수 조건이라는 믿음과 인류애를 공유하는 미래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넘치는 이타주의의 필수조건
주체성
우리의 미래가 인간답고 풍요롭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자기 삶과 공동체의 변화를 만들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다수의 필요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소수에게 맡겨 둘 수 없다. 또한 우리는 나눔을 부자와 빈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단순한 이분법적 상호작용으로 보지 않는다. 이런 왜곡된 관점으로 인해 많은 사람은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익명의 지원사업 대상자로 전락한다. 누구나 금전적 자산을 비롯한 모든 형태의 자산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또한 그들의 전문성, 지식, 지역에서의 경험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데 발휘될 수 있으며, 그들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 더불어 시민 참여가 가진 무한한 잠재력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다. 이렇듯 넘치는 이타주의는 자선이라는 힘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부여한다.
축하
문제로 인한 고통과 필요가 압도적이라고 해서 나눔까지 엄숙할 필요는 없다. 나눔이 더 즐겁고, 더 큰 영감을 주고, 더 협력적이고, 더 매력적일 때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싶고 나누고 싶은 동기가 생긴다. 전 세계의 고통과 어려움에 직면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축하할 수 있을까? 함께 변화를 만들어 내는 우리의 능력을 축하할 수 있다. 서로에 대해, 우리가 가진 회복력과 가능성에 대해 축하하며 우리는 마음껏 나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나눔을 넘치는 이타주의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집단성
개인이 주체성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그러움을 강력하게 만들고 심지어 마법처럼 만드는 것은 집단성이다. 흩어져 있으면서도 서로 연결된 개인들이 이루고 있는 시스템은 가장 기능적이면서 아름답고, 신비로운 자연계와 닮았다. 곰팡이, 개미 군집, 나무뿌리의 비범한 태피스트리, 찌르레기 떼의 울음소리처럼 말이다. 이들 시스템에는 저마다 부분의 합보다 더 큰 전체가 존재한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이머전스emergence’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시스템의 요소들 사이에서 일어난 어떤 일이 전체가 하는 일의 중요한 일부가 된다는 개념이다. 사람들이 관대함을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 개선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는 것은 넘치는 이타주의의 필수 요소이다.
공동의 상상력
사회운동은 사람들이 함께 사는 모습에 대한 상상에서 출발한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하며 함께 그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맥스 헤이븐과 알렉스 카나비시의 저서 <급진적 상상력The Radical Imagination>에서는 "급진적인 상상력은 우리의 사회적 삶과 관계를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사물을 변화시키며,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죠. 이를 위해 우리는 대안적인 사회 구조와 제도를 만듭니다.... 급진적 상상력은 오직 집단적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라고 말했다. 공동의 상상력과 넘치는 이타주의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이 둘은 모두 집단성에 바탕을 두고, 인간성에 대한 공통의 인식과 책임성, 주체성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한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단순히 시간상으로 구분하는 대신 서로 깊게 연결된 것으로 바라본다.
우리 각자가 너그러움을 표현하는 방식은 판단하거나 비교할 수 없다. 모든 나눔의 표현은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의 일부가 되고, 선한 일에 기여하고자 하는 인간 본성의 발현이다. 우리는 사회혁신 분야 안팎에서 너그러움을 각기 다르게, 그리고 총체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너그러움은 항상 풍부하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사랑이나 우정, 우리의 다른 소중한 가치들만큼이나 인간 본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너그러움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쓰며 우리는 커뮤니티를 점점 더 강화하게 되고, 스스로를 사회적으로 선한 일에 참여하는 존재로 바라보게 된다. 내일, 10년 후, 더 나아가 100년 후에 보고 싶은 세상은 현재의 우리가 매일 행하는 수많은 작은 행동들로 만들어진다. 더 나은, 더 안전한, 더 공정한 미래는 우리 각자에게 달려있을 뿐 아니라 함께하는 우리 모두에게 달려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현재와 미래에 대한 희망과 낙관의 궁극적인 원천이 되길 바란다.
참고
1 . 아샤 쿠란, <급진적인 너그러움 혁명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 미디엄, 2020. 1. 14.
2. <결핍에서 풍요로: 나눔 생태계 맵핑> 기빙투스데이 데이터 커먼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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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HA CURRAN
아샤 쿠란은 기빙투스데이(GivingTuesday)의 CEO이자 가디언지(Guardian.org)의 이사회 의장이다. 스탠포드 필란트로피 및 시민사회 센터(Center on Philanthropy and Civil Society)의 펠로우인 그녀는 하버드 케네디스쿨 사회혁신과 변화 이니셔티브(Social Innovation and Change Initiative)의 말라 앤 배리 벡 객원 사회혁신가(Marla and Barry Beck Visiting Social Innovator)이기도 하다. 그녀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논프로핏 타임즈(Nonprofit Times)가 선정한 50대 파워 및 영향력(Top Fifty Power and Influence)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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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란트로피 · 사회
넘치는 이타주의의 사례
퓨처메이커를 위한 조망과 상상
ASHA CURRAN
Summary. 넘치는 이타주의는 기부에 대한 새로운 생각으로써 현재와 미래에 대한 희망과 낙관의 궁극적인 원천이 될 수 있다.
우리 앞에 놓인 분열과 양극화, 사회·환경 분야의 과제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미래에 대해 절망하기 쉽다. 그러나 희망은 소셜섹터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확실히 마주할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희망과 낙관을 잃지 않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연결되어 있고 서로 의존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더 밝고, 안전하며, 의미 있는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 갈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품는다.
상호연결성을 끌어내는 가장 보편적이고 강력한 가치는 ‘너그러움generosity’이다. 너그러움은 상호의존성과 연대, 호혜의 표현이다. 이는 단순히 가진 자가 갖지 못한 자에게 베푸는 자비가 아니라, 개인의 실천·관계·가치관에 깊이 뿌리내린 신념이다. 필자는 우리가 소셜섹터의 일원이자 세계시민으로서 넘치는 이타주의effusive altruism를 갖길 바란다. 이 넘치는 이타주의란 공동체를 중심에 두고, 사람들이 주도해 나가는 진심과 기쁨으로 충만한 행동으로, 서로를 돌보는 역량에 굳건한 뿌리를 두고 있다.
넘치는 이타주의를 기빙투스데이GivingTuesday, 추수감사절 직후인 11월 마지막 주 화요일에 기부로 감사를 표현하는 기부 캠페인에서는 ‘급진적인 너그러움radical generosity’이라고 표현한다. 넘치는 이타주의는 이웃이나 낯선 이의 행복이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의 행복만큼이나 중요하며, 우리의 일상적인 작은 행동이 타인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더 많은 행동 변화와 시스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된다.1 소수가 아닌 다수의 나눔문화로써 이 운동이 갖는 힘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는 공동의 비전으로부터 나온다. 이를 위해 기빙투스데이는 너그러움을 바탕으로 한 규범과 사례를 만들기도 하고, 전 세계의 다양한 나눔의 사례를 기념하는 일도 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거나 소셜섹터의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말이다.
나눔은 돈 그 이상이다
비영리단체에 기부하는 것은 중요하다. 매년 11월 마지막 주 화요일, 기빙투스데이가 되면 비영리단체 활동에 필요한 지원이 쏟아져 나온다. 특히 개인 기부가 감소하고 재정 지원이 중요해진 미국의 상황에서 이러한 지원은 절실하다. 하지만 비영리조직에 너그러움을 표현하는 데 있어 현금 기부가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사랑이 물질적 선물로만 표현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너그러움은 수많은 방식으로 발현될 수 있는 가치이다. 지지를 보내고, 시간을 나눠주고, 활동을 옹호하고, 멘토링을 제공하고, 관심을 쏟고, 함께 있어 주고, 기술을 나눠주는 등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어떤 방식도 가능하다.
우리가 타인과 커뮤니티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하는 일상적인 행동도 나눔이 될 수 있다. 가령 누군가에게 당신이 그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거나 아픈 친구에게 도움을 주는 일, 새로운 이웃의 문 앞에 화분 선물을 놓는 일처럼 약간의 시간이 드는 작고, 의미 있는 행동도 너그러움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런 배려심 깊은 행동은 공식적인 기부 데이터로 잡히지는 않지만, 우리의 삶과 커뮤니티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부를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너그러움은 실제로 확산하고 있다. 2021년 기빙투스데이의 데이터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사람들은 나눔에 대해 매우 강하고 일관된 동기가 있다. 그리고 현금 기부를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든 나눔을 실천하고 있으며,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전 세계 조사 대상의 85%가 나눔을 실천했고, 그중 현금만 기부한 사람은 5%에 불과했다.2
너그러움을 비영리단체에 대한 금전적 기부로 좁혀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 뿐만 아니라 감소하고 있는 기부 추세를 반전시키려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관점이 나눔을 거래적이고, 위계적이며, 냉소적이고 영감이 없는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공동체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고, 공동체의 필요를 잘 이해하는 다수의 사람이 권력과 주체성으로부터 멀어진다. 반면 어떤 나눔이 좋은 나눔이고, 효과적인 나눔인지, ‘감정’이 아닌 데이터에 기반해 판단을 내리는 소수의 ‘전문가’에게 권력과 주체성이 집중된다. 또한 너그러움을 금전 기부로 치환해 바라보는 관점은 고유한 문제와 해결책, 전문성, 나눔의 전통을 가진 건강한 커뮤니티의 주체성을 약화한다.
기부하는 미국 내 가구 수가 줄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의 너그러움이 감소하고 있다고 결론 내리기 쉽지만, 이는 매우 불합리한 판단이다. 하지만 이런 근시안적 관점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무엇이 관용적인 행동을 불러일으키는지,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지 여러 알고 있다. 필자는 넘치는 이타주의를 이루는 중요한 실천 방법을 몇 가지 배울 수 있었다. 이 실천 방법은 너그러움이 인간의 필수 조건이라는 믿음과 인류애를 공유하는 미래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넘치는 이타주의의 필수조건
주체성
우리의 미래가 인간답고 풍요롭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자기 삶과 공동체의 변화를 만들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다수의 필요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소수에게 맡겨 둘 수 없다. 또한 우리는 나눔을 부자와 빈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단순한 이분법적 상호작용으로 보지 않는다. 이런 왜곡된 관점으로 인해 많은 사람은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익명의 지원사업 대상자로 전락한다. 누구나 금전적 자산을 비롯한 모든 형태의 자산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또한 그들의 전문성, 지식, 지역에서의 경험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데 발휘될 수 있으며, 그들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 더불어 시민 참여가 가진 무한한 잠재력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다. 이렇듯 넘치는 이타주의는 자선이라는 힘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부여한다.
축하
문제로 인한 고통과 필요가 압도적이라고 해서 나눔까지 엄숙할 필요는 없다. 나눔이 더 즐겁고, 더 큰 영감을 주고, 더 협력적이고, 더 매력적일 때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싶고 나누고 싶은 동기가 생긴다. 전 세계의 고통과 어려움에 직면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축하할 수 있을까? 함께 변화를 만들어 내는 우리의 능력을 축하할 수 있다. 서로에 대해, 우리가 가진 회복력과 가능성에 대해 축하하며 우리는 마음껏 나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나눔을 넘치는 이타주의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집단성
개인이 주체성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그러움을 강력하게 만들고 심지어 마법처럼 만드는 것은 집단성이다. 흩어져 있으면서도 서로 연결된 개인들이 이루고 있는 시스템은 가장 기능적이면서 아름답고, 신비로운 자연계와 닮았다. 곰팡이, 개미 군집, 나무뿌리의 비범한 태피스트리, 찌르레기 떼의 울음소리처럼 말이다. 이들 시스템에는 저마다 부분의 합보다 더 큰 전체가 존재한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이머전스emergence’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시스템의 요소들 사이에서 일어난 어떤 일이 전체가 하는 일의 중요한 일부가 된다는 개념이다. 사람들이 관대함을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 개선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는 것은 넘치는 이타주의의 필수 요소이다.
공동의 상상력
사회운동은 사람들이 함께 사는 모습에 대한 상상에서 출발한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하며 함께 그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맥스 헤이븐과 알렉스 카나비시의 저서 <급진적 상상력The Radical Imagination>에서는 "급진적인 상상력은 우리의 사회적 삶과 관계를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사물을 변화시키며,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죠. 이를 위해 우리는 대안적인 사회 구조와 제도를 만듭니다.... 급진적 상상력은 오직 집단적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라고 말했다. 공동의 상상력과 넘치는 이타주의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이 둘은 모두 집단성에 바탕을 두고, 인간성에 대한 공통의 인식과 책임성, 주체성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한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단순히 시간상으로 구분하는 대신 서로 깊게 연결된 것으로 바라본다.
우리 각자가 너그러움을 표현하는 방식은 판단하거나 비교할 수 없다. 모든 나눔의 표현은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의 일부가 되고, 선한 일에 기여하고자 하는 인간 본성의 발현이다. 우리는 사회혁신 분야 안팎에서 너그러움을 각기 다르게, 그리고 총체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너그러움은 항상 풍부하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사랑이나 우정, 우리의 다른 소중한 가치들만큼이나 인간 본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너그러움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쓰며 우리는 커뮤니티를 점점 더 강화하게 되고, 스스로를 사회적으로 선한 일에 참여하는 존재로 바라보게 된다. 내일, 10년 후, 더 나아가 100년 후에 보고 싶은 세상은 현재의 우리가 매일 행하는 수많은 작은 행동들로 만들어진다. 더 나은, 더 안전한, 더 공정한 미래는 우리 각자에게 달려있을 뿐 아니라 함께하는 우리 모두에게 달려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현재와 미래에 대한 희망과 낙관의 궁극적인 원천이 되길 바란다.
참고
1 . 아샤 쿠란, <급진적인 너그러움 혁명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 미디엄, 2020. 1. 14.
2. <결핍에서 풍요로: 나눔 생태계 맵핑> 기빙투스데이 데이터 커먼스, 2021
> 원문 기사 보기
ASHA CURRAN
아샤 쿠란은 기빙투스데이(GivingTuesday)의 CEO이자 가디언지(Guardian.org)의 이사회 의장이다. 스탠포드 필란트로피 및 시민사회 센터(Center on Philanthropy and Civil Society)의 펠로우인 그녀는 하버드 케네디스쿨 사회혁신과 변화 이니셔티브(Social Innovation and Change Initiative)의 말라 앤 배리 벡 객원 사회혁신가(Marla and Barry Beck Visiting Social Innovator)이기도 하다. 그녀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논프로핏 타임즈(Nonprofit Times)가 선정한 50대 파워 및 영향력(Top Fifty Power and Influence)에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