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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신뢰를 재건하려면
퓨처메이커를 위한 조망과 상상
JANE WALES
Summary. 신뢰는 민주주의의 바탕이 되는 사회적 접착제이다.
1990년, 한 이집트 공군 사령관은 필자에게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야구장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야구장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며 핫도그를 파는 상인을 보았다. 가운뎃 줄에 앉아 있던 한 야구팬이 큰소리로 핫도그를 달라고 외치고는 5달러 지폐를 옆에 있는 낯선 사람에게 건넸다. 그러자 주변 야구팬들이 자발적으로 양동이 여단Bucket Brigade을 만들고 옆 사람에게 5달러 지폐를 전달해 핫도그 판매상에게 주었다. “아무도 5달러를 훔치지 않더군요!” 5달러를 전달해 주었던 사람들이 핫도그를 받아 다시 건네주는 걸 보았을 때도 그는 비슷한 감명을 받았다. “핫도그를 한 입 먹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는 “미국은 폭격기와 미사일도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미국을 강력하게 유지하는 진짜 힘은 시스템과 서로에 대한 신뢰일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옳다. 신뢰는 민주주의에 필요한 사회적 접착제이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오늘날, 신뢰는 사상 최저의 수준을 보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미국인들은 우리가 구축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적어도 자신들을 위해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사회학자와 정치학자들은 현재의 신뢰 부족이 수십 년에 걸친 사회적 연결성 및 사회적 자본의 감소와 관련 있다고 보았다. 이들은 끊임없는 변화로 만연해진 정체성의 상실이 불러온 불안과 두려움, 관리 능력의 상실을 그 원인으로 지적했다.
실제로 사회는 정보혁명, 경제의 세계화, 인구 통계학적 변화라는 세 가지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 놓여 있다. 그것은 대부분이 달가워하지 않는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정보혁명은 의사결정과 권한을 탈중앙화시켰고, 분열을 조장하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소셜 미디어를 탄생시켰다. 세계화는 생산성을 재분배하고 부를 집중시켜, 미국의 중산층을 축소시켰다. 인구통계학적 변화로 인해 정치권력 및 경제적 이득과 같은 특권과 주류로서의 지위를 상실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졌다.
이러한 변화는 어떤 섹터도 완전히 해결할 수 없는 시급한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악화시키고 있다. 신종 전염병의 등장, 기후변화, 소득 및 자산 불균형의 확대, 교육·문화·당파적 노선을 따라 형성되는 극심한 분열 등이 그 예다. 인종적 편견은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때로는 노골적으로, 그리고 정당하지 않은 방향으로 결정에 영향을 미쳐왔다. 이는 무시할 수 없고, 무시해서도 안 되는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시스템은 이러한 변화를 관리하거나 그것의 결과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각에서 이 시스템을 아무리 그럴듯하게 설명하더라도, 시스템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거버넌스 문제에 대처하지 못한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이는 조직들에 대한 자신감과 신뢰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도전은 매우 위협적이다. 하지만 미국은 공공·영리·비영리 섹터가 각각의 역할을 자치self-governance하는 독특한 형태로 작동해 왔으며, 이는 미국이 가진 훌륭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매일 지역사회에서 이러한 자치를 경험하고 있으며, 우리가 직면한 문제로 인해 시스템에 변화가 필요할 때는 이를 적절하게 반영한다. 이제는 그 자산에 기대야 할 때이다. 세 섹터가 협력하며 각자의 핵심 역량을 발휘할 때, 섹터들의 교차점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필자는 이를 '인터섹터intersector'라고 부르는데, 이 용어는 투자자이자 자선사업가인 프랭크 웨일Frank Weil이 처음 사용했다.
커뮤니티 차원의 신뢰 구축
신뢰도가 높은 사회를 구축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지역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자원봉사자와 기부자이다. 이들은 자원봉사 단체에 가입하거나 비영리조직을 후원한다. 모금함에 동전을 넣고 지역 여성 쉼터를 지원하기도 한다. 헌혈에 참여하거나 학부모회PTA, 소방대 등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이들은 비즈니스 리더, 교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주부인 동시에 유권자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안정성, 긍정성, 주체성의 원천이었으며,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커뮤니티 자원을 관리하기 위해 공공포럼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들이 만들고 점유하는 공간에서 민주적인 의사결정과 집단행동이 일어난다. 문자 그대로 또는 은유적으로 양동이 여단이 결성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적극적인 사회참여는 신뢰를 높이고, 커뮤니티를 구축하며, 문제해결과 자치 역량을 강화한다.
점점 더 많은 커뮤니티 구성원이 ‘컬렉티브 임팩트’라는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 방식은 교육 성과 개선책 마련과 같이 기존 시스템의 운영 방식을 재검토하는 난제에 적합하다. 또한 컬렉티브 임팩트 방식은 커뮤니티 전반에 관여하며, 참여자들에게 선입견이나 의제를 제쳐둘 뿐 아니라 관심 있는 화제에 대해서도 기꺼이 내어놓을 것을 요구한다.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협업을 통해 섹터를 넘나들 수 있는 근육을 키운다.
코로나가 보여준 가능성
코로나19의 유행은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야기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을 새로운 시스템으로 대체할 의지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기업, 비영리단체, 정부 기관의 주체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협력했다. 다음은 이 새로운 접근 방식이 대규모로 실행되었을 때 나타나는 모습의 사례이다.
제약회사들이 기록적인 기간 내에 백신을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은 과학자와 기술자들의 천재성 뿐 아니라,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전략 투자 기금 덕분이었다. 이 기금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질병에 대한 백신 접종 플랫폼 역할을 하는 메신저 RNAmRNA 기술을 연구하는 회사에 체계적인 투자를 진행했다. HIV, 결핵, 말라리아 등 남반구를 파괴하는 기타 질병에 대한 해결책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지만,1 mRNA는 코로나19 백신을 위한 이상적인 플랫폼이었다.
게이츠 재단의 전략은 영리 섹터의 R&D 역량을 활용해 시장이 자체적 진전을 이루지 못하는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검사 및 보호 장비가 부족해지자 재단은 보조금과 대출을 통해 생산에 박차를 가했으며, 가정용 항원 검사 키트 생산을 위해 애보트 연구소Abbott Laboratories에 2천만 달러를 대출해 주었다.
섹터 간에 일어난 또 다른 혁신 사례는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의 설립이다. 제네바에 기반을 둔 민관 파트너십은 정부, 국제기구, 기업, 재단의 기부금을 모아 전 세계 빈곤층 대상 백신 공급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한다. Gavi는 2000년 설립 이래 전 세계 어린이의 절반에게 아동 질병 예방 백신을 접종해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현재는 코로나19 백신의 지역 생산과 공평한 분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더불어 남반구 저개발국의 백신 생산량을 늘리는 데 집중함으로써 즉각적인 필요를 해결할 뿐 아니라, 발병과 전염을 예방할 수 있는 지역의 장기적 역량에 투자하고 있다.
세 번째 섹터 간 혁신 사례는 예방접종 채권immunization bonds의 개발이다. 이것은 백신 구매를 위한 정부의 향후 지출 약속을 바탕으로 투자자가 매입하는 채권이다. 이 채권을 활용하면 Gavi는 적시에 백신을 제공할 수 있도록 원조 자금을 선집행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연간 예산과 예산 집행 절차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사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코로나19 백신의 개발, 생산, 배포, 투여 과정에는 그야말로 여러 분야가 얽혀있다. 백신의 배포와 투여가 소매 약국 체인과 비영리병원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지역사회 재단과 비영리 서비스 제공업체는 취약 계층에게 백신이 질병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예방하는 것이라고 설득하며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백신 접종을 주저하는 사람들로 인해2 완전한 집단 면역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대부분의 대상자가 백신을 제공받았다.
팬데믹은 보건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같은 규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재단은 팬데믹 발생 이후 늘어난 서비스 수요를 지원하기 위해 비영리단체에 대한 기부를 크게 늘렸다. 캔디드Candid가 설문조사한 재단의 3분의 2가 2020년과 2021년에 기부를 늘렸다고 답했다. 그중 일부는 커뮤니티 재단에 기금을 조성해 현장의 필요를 파악하고 있는 주체들이 기금을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캔디드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2020년에 커뮤니티 재단의 보조금이 전년 대비 53% 증가했고, 2021년에는 전년 대비 보조금이 20% 증가했다.
그러나 문제의 규모는 자선 기부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고, 상당한 규모의 공적 자금 투입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의회는 사회계약의 균형을 새롭게 조정하고, 정부와 시민과의 관계를 적어도 단기적으로 변화시킬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했다. 그 결과로 탄생한 연방법안인 CARES, 미국 구조 계획법, 가족우선법은 수십 년만에 연방 아동복지 정책에 가장 중요한 개혁을 가져왔다.
이러한 정부혁신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아동 빈곤율을 절반으로 줄인 아동세액공제일 것이다. 정책 기간이 연장되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지식은 여전히 존재하며 반드시 다시 검토될 것이다.3
기업 및 자선 활동의 역할 재해석하기
20세기 동안 기업은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좁은 의미로 바라봤다. 주주를 위한 사적 이익 추구가 공익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투자자, 고객, 직원, 가치사슬을 통해 만나는 커뮤니티의 기대가 높아짐에 따라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은 크게 높아졌다.
2011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마이클 포터Michael E. Porter 교수와 마크 크레이머Mark R. Kramer 교수는 ‘공유 가치’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이러한 트렌드를 대변했다. 4 이들은 공익의 발전이 기업의 가치사슬에 내재해 있을 때(예를 들어 친환경 기술 개발이나 빈곤층 대상 금융 서비스 제공 등) 기업이 손해를 보지 않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사회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들은 고객, 직원, 투자자를 유치할 때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2019년에 이 분야의 표준을 제시한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Business Roundtable은 기업의 사명을 주주에 대한 가치 제공 그 이상으로 확장한 ‘기업의 목적purpose of a corporation’에 대한 새로운 선언문을 채택했다. 기업의 새롭고 광범위한 목적은 고객, 직원, 상호작용하는 커뮤니티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위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기업이 ESG 표준을 준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은 기업과 투자자들에게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목적에 있어서는 영리 섹터가 소셜섹터와 훨씬 가까워졌지만, 방법론에 있어서는 소셜섹터가 비즈니스 세계와 가까워졌다. 영리 섹터에서 개발되고 활용되는 금융 도구를 소셜섹터에서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백신 개발에 대한 게이츠 재단의 접근 방식에서 알 수 있듯 재단은 지분 투자, 사회적 채권, 구매 보증, 대출과 같은 금융 도구들을 수용했다.
1960년대 후반에 프로그램 관련 투자를 창안한 포드 재단Ford Foundation은 특히 새로운 도구에 있어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2017년에는 10억 달러의 기금을 조성해 재정적 수익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제공하는 기업의 미션에 투자했다. 그리고 2020년에는 10억 달러 규모의 임팩트 채권을 발행해 팬데믹과 인종차별에 대응하는 보조금을 우선적으로 집행했다. 다른 예로 록펠러 재단Rockefeller Foundation은 대규모 공공 민간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데 앞장서 왔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녹색혁명Green Revolution으로부터 시작해, 최근에는 아프리카 녹색혁명 연합Alliance for a Green Revolution in Africa, AGRA을 설립하는 데 기여했다.
기후변화와 빈곤 완화, 질병 치료 등에서 한 섹터의 성공이 다른 섹터의 성공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기업 및 자선단체 리더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제 협업과 파트너십은 그들에게 중요한 전략으로 자리잡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통제하기 위한 노력을 통해 우리는 공공정책, 자선활동, 시장이 함께 모여 공동의 목표를 위해 노력할 때 사회혁신이 일어난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새로운 접근 방식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것도 경험했다. 사회는 민주정부의 투명성과 책임성, 비즈니스의 효율성과 규모, 비영리단체의 민첩성과 대응력, 자선단체의 위험 감수성과 장기적 관점 등 각 섹터의 속성을 통해 이점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섹터 간 협력은 시급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조직과 기관의 역량을 입증하고, 시민들의 신뢰와 믿음을 회복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우리 사회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맞서고,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줄이는 것처럼 많은 과제에 직면해 있다. 신뢰 회복은 이러한 과제 중 하나이자 우리가 바라는 사회와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의 근본적인 노력이다.
참고
1 . 2004년에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mRNA 백신은 쥐의 결핵에 대해 ‘소폭이지만 상당한 방어 효과’를 발휘한다. 조지 워싱턴 대학의 연구팀은 말라리아 감염과 전염을 줄이기 위한 두 가지 mRNA 백신 후보를 개발했다고 보고했다.
2. 백신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거리낌은 이윤을 챙기려는 사기꾼들이나 명성을 얻고자 하는 기회주의적 정치인들이 만들어 낸 불신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일부는 종교적 우려나 많은 흑인들의 경우 참여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상시험을 실시하는 비윤리적 관행에 대한 집단적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3. 애니 E. 케이시 재단(Annie E. Casey Foundation)은 아동의 건강과 복지에 관한 풍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키즈카운트(KidsCount)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의회로부터 권위 있는 지식의 출처로 자주 인용된다.
4. 마이클 E. 포터(Michael E. Porter)& 마크 R. 크레이머(Mark R. Kramer), <공유 가치 창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2011년 2월. 포터와 크레이머는 비영리 컨설팅 회사인 FSG를 설립해 조직의 전략과 관행에 대한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저자는 포터의 뒤를 이어 FSG의 이사회 의장을 맡아 현재도 그 직책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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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E WALES
제인 웨일즈는 아스펜 연구소(Aspen Institute)의 부회장이자 자선 및 사회혁신 프로그램의 총괄 책임자이다. 그녀는 글로벌 자선 포럼(Global Philanthropy Forum)의 창립자이며 국립공영라디오(National Public Radio)의 인터뷰쇼 ‘월드 어페어’의 진행자로도 활동했다. 그녀는 클린턴 행정부의 대통령 특별 보좌관, 국가안보위원회 수석 보좌관, 백악관 과학기술 정책국 부국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관대함 위원회(Generosity Commission)의 공동 의장, FSG 이사회 의장, 새로운 미국안보센터와 ID인사이트(IDinsight)의 이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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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 일반 · 사회
사회적 신뢰를 재건하려면
퓨처메이커를 위한 조망과 상상
JANE WALES
Summary. 신뢰는 민주주의의 바탕이 되는 사회적 접착제이다.
1990년, 한 이집트 공군 사령관은 필자에게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야구장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야구장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며 핫도그를 파는 상인을 보았다. 가운뎃 줄에 앉아 있던 한 야구팬이 큰소리로 핫도그를 달라고 외치고는 5달러 지폐를 옆에 있는 낯선 사람에게 건넸다. 그러자 주변 야구팬들이 자발적으로 양동이 여단Bucket Brigade을 만들고 옆 사람에게 5달러 지폐를 전달해 핫도그 판매상에게 주었다. “아무도 5달러를 훔치지 않더군요!” 5달러를 전달해 주었던 사람들이 핫도그를 받아 다시 건네주는 걸 보았을 때도 그는 비슷한 감명을 받았다. “핫도그를 한 입 먹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그는 “미국은 폭격기와 미사일도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미국을 강력하게 유지하는 진짜 힘은 시스템과 서로에 대한 신뢰일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옳다. 신뢰는 민주주의에 필요한 사회적 접착제이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오늘날, 신뢰는 사상 최저의 수준을 보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미국인들은 우리가 구축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적어도 자신들을 위해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사회학자와 정치학자들은 현재의 신뢰 부족이 수십 년에 걸친 사회적 연결성 및 사회적 자본의 감소와 관련 있다고 보았다. 이들은 끊임없는 변화로 만연해진 정체성의 상실이 불러온 불안과 두려움, 관리 능력의 상실을 그 원인으로 지적했다.
실제로 사회는 정보혁명, 경제의 세계화, 인구 통계학적 변화라는 세 가지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 놓여 있다. 그것은 대부분이 달가워하지 않는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정보혁명은 의사결정과 권한을 탈중앙화시켰고, 분열을 조장하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소셜 미디어를 탄생시켰다. 세계화는 생산성을 재분배하고 부를 집중시켜, 미국의 중산층을 축소시켰다. 인구통계학적 변화로 인해 정치권력 및 경제적 이득과 같은 특권과 주류로서의 지위를 상실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졌다.
이러한 변화는 어떤 섹터도 완전히 해결할 수 없는 시급한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악화시키고 있다. 신종 전염병의 등장, 기후변화, 소득 및 자산 불균형의 확대, 교육·문화·당파적 노선을 따라 형성되는 극심한 분열 등이 그 예다. 인종적 편견은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때로는 노골적으로, 그리고 정당하지 않은 방향으로 결정에 영향을 미쳐왔다. 이는 무시할 수 없고, 무시해서도 안 되는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시스템은 이러한 변화를 관리하거나 그것의 결과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각에서 이 시스템을 아무리 그럴듯하게 설명하더라도, 시스템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거버넌스 문제에 대처하지 못한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이는 조직들에 대한 자신감과 신뢰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도전은 매우 위협적이다. 하지만 미국은 공공·영리·비영리 섹터가 각각의 역할을 자치self-governance하는 독특한 형태로 작동해 왔으며, 이는 미국이 가진 훌륭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매일 지역사회에서 이러한 자치를 경험하고 있으며, 우리가 직면한 문제로 인해 시스템에 변화가 필요할 때는 이를 적절하게 반영한다. 이제는 그 자산에 기대야 할 때이다. 세 섹터가 협력하며 각자의 핵심 역량을 발휘할 때, 섹터들의 교차점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필자는 이를 '인터섹터intersector'라고 부르는데, 이 용어는 투자자이자 자선사업가인 프랭크 웨일Frank Weil이 처음 사용했다.
커뮤니티 차원의 신뢰 구축
신뢰도가 높은 사회를 구축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지역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자원봉사자와 기부자이다. 이들은 자원봉사 단체에 가입하거나 비영리조직을 후원한다. 모금함에 동전을 넣고 지역 여성 쉼터를 지원하기도 한다. 헌혈에 참여하거나 학부모회PTA, 소방대 등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이들은 비즈니스 리더, 교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주부인 동시에 유권자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안정성, 긍정성, 주체성의 원천이었으며,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커뮤니티 자원을 관리하기 위해 공공포럼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들이 만들고 점유하는 공간에서 민주적인 의사결정과 집단행동이 일어난다. 문자 그대로 또는 은유적으로 양동이 여단이 결성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적극적인 사회참여는 신뢰를 높이고, 커뮤니티를 구축하며, 문제해결과 자치 역량을 강화한다.
점점 더 많은 커뮤니티 구성원이 ‘컬렉티브 임팩트’라는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 방식은 교육 성과 개선책 마련과 같이 기존 시스템의 운영 방식을 재검토하는 난제에 적합하다. 또한 컬렉티브 임팩트 방식은 커뮤니티 전반에 관여하며, 참여자들에게 선입견이나 의제를 제쳐둘 뿐 아니라 관심 있는 화제에 대해서도 기꺼이 내어놓을 것을 요구한다.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협업을 통해 섹터를 넘나들 수 있는 근육을 키운다.
코로나가 보여준 가능성
코로나19의 유행은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야기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을 새로운 시스템으로 대체할 의지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기업, 비영리단체, 정부 기관의 주체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협력했다. 다음은 이 새로운 접근 방식이 대규모로 실행되었을 때 나타나는 모습의 사례이다.
제약회사들이 기록적인 기간 내에 백신을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은 과학자와 기술자들의 천재성 뿐 아니라,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전략 투자 기금 덕분이었다. 이 기금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질병에 대한 백신 접종 플랫폼 역할을 하는 메신저 RNAmRNA 기술을 연구하는 회사에 체계적인 투자를 진행했다. HIV, 결핵, 말라리아 등 남반구를 파괴하는 기타 질병에 대한 해결책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지만,1 mRNA는 코로나19 백신을 위한 이상적인 플랫폼이었다.
게이츠 재단의 전략은 영리 섹터의 R&D 역량을 활용해 시장이 자체적 진전을 이루지 못하는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검사 및 보호 장비가 부족해지자 재단은 보조금과 대출을 통해 생산에 박차를 가했으며, 가정용 항원 검사 키트 생산을 위해 애보트 연구소Abbott Laboratories에 2천만 달러를 대출해 주었다.
섹터 간에 일어난 또 다른 혁신 사례는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의 설립이다. 제네바에 기반을 둔 민관 파트너십은 정부, 국제기구, 기업, 재단의 기부금을 모아 전 세계 빈곤층 대상 백신 공급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한다. Gavi는 2000년 설립 이래 전 세계 어린이의 절반에게 아동 질병 예방 백신을 접종해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현재는 코로나19 백신의 지역 생산과 공평한 분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더불어 남반구 저개발국의 백신 생산량을 늘리는 데 집중함으로써 즉각적인 필요를 해결할 뿐 아니라, 발병과 전염을 예방할 수 있는 지역의 장기적 역량에 투자하고 있다.
세 번째 섹터 간 혁신 사례는 예방접종 채권immunization bonds의 개발이다. 이것은 백신 구매를 위한 정부의 향후 지출 약속을 바탕으로 투자자가 매입하는 채권이다. 이 채권을 활용하면 Gavi는 적시에 백신을 제공할 수 있도록 원조 자금을 선집행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연간 예산과 예산 집행 절차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사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코로나19 백신의 개발, 생산, 배포, 투여 과정에는 그야말로 여러 분야가 얽혀있다. 백신의 배포와 투여가 소매 약국 체인과 비영리병원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지역사회 재단과 비영리 서비스 제공업체는 취약 계층에게 백신이 질병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예방하는 것이라고 설득하며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백신 접종을 주저하는 사람들로 인해2 완전한 집단 면역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대부분의 대상자가 백신을 제공받았다.
팬데믹은 보건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같은 규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재단은 팬데믹 발생 이후 늘어난 서비스 수요를 지원하기 위해 비영리단체에 대한 기부를 크게 늘렸다. 캔디드Candid가 설문조사한 재단의 3분의 2가 2020년과 2021년에 기부를 늘렸다고 답했다. 그중 일부는 커뮤니티 재단에 기금을 조성해 현장의 필요를 파악하고 있는 주체들이 기금을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캔디드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2020년에 커뮤니티 재단의 보조금이 전년 대비 53% 증가했고, 2021년에는 전년 대비 보조금이 20% 증가했다.
그러나 문제의 규모는 자선 기부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고, 상당한 규모의 공적 자금 투입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의회는 사회계약의 균형을 새롭게 조정하고, 정부와 시민과의 관계를 적어도 단기적으로 변화시킬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했다. 그 결과로 탄생한 연방법안인 CARES, 미국 구조 계획법, 가족우선법은 수십 년만에 연방 아동복지 정책에 가장 중요한 개혁을 가져왔다.
이러한 정부혁신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아동 빈곤율을 절반으로 줄인 아동세액공제일 것이다. 정책 기간이 연장되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지식은 여전히 존재하며 반드시 다시 검토될 것이다.3
기업 및 자선 활동의 역할 재해석하기
20세기 동안 기업은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좁은 의미로 바라봤다. 주주를 위한 사적 이익 추구가 공익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투자자, 고객, 직원, 가치사슬을 통해 만나는 커뮤니티의 기대가 높아짐에 따라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은 크게 높아졌다.
2011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마이클 포터Michael E. Porter 교수와 마크 크레이머Mark R. Kramer 교수는 ‘공유 가치’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이러한 트렌드를 대변했다. 4 이들은 공익의 발전이 기업의 가치사슬에 내재해 있을 때(예를 들어 친환경 기술 개발이나 빈곤층 대상 금융 서비스 제공 등) 기업이 손해를 보지 않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사회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들은 고객, 직원, 투자자를 유치할 때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2019년에 이 분야의 표준을 제시한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Business Roundtable은 기업의 사명을 주주에 대한 가치 제공 그 이상으로 확장한 ‘기업의 목적purpose of a corporation’에 대한 새로운 선언문을 채택했다. 기업의 새롭고 광범위한 목적은 고객, 직원, 상호작용하는 커뮤니티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위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기업이 ESG 표준을 준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은 기업과 투자자들에게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목적에 있어서는 영리 섹터가 소셜섹터와 훨씬 가까워졌지만, 방법론에 있어서는 소셜섹터가 비즈니스 세계와 가까워졌다. 영리 섹터에서 개발되고 활용되는 금융 도구를 소셜섹터에서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백신 개발에 대한 게이츠 재단의 접근 방식에서 알 수 있듯 재단은 지분 투자, 사회적 채권, 구매 보증, 대출과 같은 금융 도구들을 수용했다.
1960년대 후반에 프로그램 관련 투자를 창안한 포드 재단Ford Foundation은 특히 새로운 도구에 있어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2017년에는 10억 달러의 기금을 조성해 재정적 수익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제공하는 기업의 미션에 투자했다. 그리고 2020년에는 10억 달러 규모의 임팩트 채권을 발행해 팬데믹과 인종차별에 대응하는 보조금을 우선적으로 집행했다. 다른 예로 록펠러 재단Rockefeller Foundation은 대규모 공공 민간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데 앞장서 왔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녹색혁명Green Revolution으로부터 시작해, 최근에는 아프리카 녹색혁명 연합Alliance for a Green Revolution in Africa, AGRA을 설립하는 데 기여했다.
기후변화와 빈곤 완화, 질병 치료 등에서 한 섹터의 성공이 다른 섹터의 성공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기업 및 자선단체 리더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제 협업과 파트너십은 그들에게 중요한 전략으로 자리잡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통제하기 위한 노력을 통해 우리는 공공정책, 자선활동, 시장이 함께 모여 공동의 목표를 위해 노력할 때 사회혁신이 일어난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새로운 접근 방식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것도 경험했다. 사회는 민주정부의 투명성과 책임성, 비즈니스의 효율성과 규모, 비영리단체의 민첩성과 대응력, 자선단체의 위험 감수성과 장기적 관점 등 각 섹터의 속성을 통해 이점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섹터 간 협력은 시급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조직과 기관의 역량을 입증하고, 시민들의 신뢰와 믿음을 회복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우리 사회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맞서고,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줄이는 것처럼 많은 과제에 직면해 있다. 신뢰 회복은 이러한 과제 중 하나이자 우리가 바라는 사회와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의 근본적인 노력이다.
참고
1 . 2004년에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mRNA 백신은 쥐의 결핵에 대해 ‘소폭이지만 상당한 방어 효과’를 발휘한다. 조지 워싱턴 대학의 연구팀은 말라리아 감염과 전염을 줄이기 위한 두 가지 mRNA 백신 후보를 개발했다고 보고했다.
2. 백신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거리낌은 이윤을 챙기려는 사기꾼들이나 명성을 얻고자 하는 기회주의적 정치인들이 만들어 낸 불신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일부는 종교적 우려나 많은 흑인들의 경우 참여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상시험을 실시하는 비윤리적 관행에 대한 집단적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3. 애니 E. 케이시 재단(Annie E. Casey Foundation)은 아동의 건강과 복지에 관한 풍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키즈카운트(KidsCount)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의회로부터 권위 있는 지식의 출처로 자주 인용된다.
4. 마이클 E. 포터(Michael E. Porter)& 마크 R. 크레이머(Mark R. Kramer), <공유 가치 창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2011년 2월. 포터와 크레이머는 비영리 컨설팅 회사인 FSG를 설립해 조직의 전략과 관행에 대한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저자는 포터의 뒤를 이어 FSG의 이사회 의장을 맡아 현재도 그 직책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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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E WALES
제인 웨일즈는 아스펜 연구소(Aspen Institute)의 부회장이자 자선 및 사회혁신 프로그램의 총괄 책임자이다. 그녀는 글로벌 자선 포럼(Global Philanthropy Forum)의 창립자이며 국립공영라디오(National Public Radio)의 인터뷰쇼 ‘월드 어페어’의 진행자로도 활동했다. 그녀는 클린턴 행정부의 대통령 특별 보좌관, 국가안보위원회 수석 보좌관, 백악관 과학기술 정책국 부국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관대함 위원회(Generosity Commission)의 공동 의장, FSG 이사회 의장, 새로운 미국안보센터와 ID인사이트(IDinsight)의 이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