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오픈 소사이어티, 위기에 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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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 일반 · 사회 · 시스템변화
오픈 소사이어티, 
위기에 처하다



PAUL HOCKENOS



Summary. 30년 넘게 자유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해 노력해 온 오픈 소사이어티 재단이 수세에 놓여있다. 과연 재단은 전략적인 구조조정과 새로운 리더십을 통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까?



2022년 3월 3일,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폴란드 프제미슬에 기차를 타고 도착하고 있다.


2019년 10월 26일, 억만장자 금융가이자 자선사업가인 조지 소로스George Soros는 미국 공영 라디오 NPR의 ‘모든 것을 고려하다All Things Considered’에 출연했다. 자신의 신간 <열린 사회를 위한 변호In Defense of Open Society>를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89세였던 소로스는 자신이 많은 돈과 에너지를 들여 홍보했던 아이디어가 흔들리는 것을 직시하고 있었다.


소로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40여 년 전 내가 정치적 자선 활동에 뛰어들었을 때에는 열린 사회라는 개념이 떠오르고 있었고, 폐쇄적인 사회들이 개방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열린 사회가 위기에 처했고, 독재 정권이 부상하고 있습니다.…시류가 나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오픈소사이어티 재단Open Society Foundations, OSF은 1980년대 중앙 및 동유럽Central and Eastern Europe의 개방을 목전에 두고 소로스가 설립했던 선구적인 자선단체이다. 하지만 현재 오픈 소사이어티 재단은 대대적인 재평가 작업을 진행 중이며, 뒤늦은 전략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기부금 220억 달러, 연간 예산 약 14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자선단체 중 하나인 OSF는 그동안 원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의 독재자들은 자유주의 개발 커뮤니티의 발목을 잡았는데, 이 중에는 40년이 넘게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을 위한 활동을 끈질기게 펼치며 인정받아온 OSF도 포함되었다. 소로스는 오스트리아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의 ‘열린 사회’ 이념으로부터 자선활동에 대한 영감을 얻었는데, 국가를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정치체로 보는 ‘열린 사회’ 이념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공격을 받고 있다. 미국이나 해외에서 열린 사회를 지원하는 기관들이 공격을 받고 있지만, 뉴욕에 본부를 둔 OSF보다 더 맹렬한 공격을 받는 기관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원치 않는 관심은 OSF의 효과성을 반증하는 것일 수 있지만, 재단의 배분방식을 약화시키고 단체의 미션을 훨씬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을 잘 보여주는 사례는 바로 헝가리인데, 헝가리는 소로스의 출신국으로 소로스는 1947년 영국으로 이주하여 칼 포퍼 아래에서 수학했다. OSF는 1980년대부터 헝가리에 수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1998년 한 차례, 2010년 이후 네 차례나 당선된 권위주의 포퓰리스트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án의 정당이 시민 공간, 소수자, 독립 미디어를 탄압하며, 유럽연합의 보석과도 같았던 헝가리를 비주류 국가로 만들었다. 오르반 총리는 2018년 OSF의 대규모 지역 사무소를 베를린으로 쫓아냈고, 소로스의 기금으로 세워진 중앙 유럽 대학Central European University의 메인 캠퍼스를 비엔나로 강제 이전시켰다. 


다행히, OSF는 이 문제를 해결할 확실한 해법을 갖고 있지 않지만 문제가 가진 딜레마는 인식하고 있다. 2021년,  OSF의 신임 대표 마크 말로크-브라운Mark Malloch-Brown은 “주변 세상과 업무 환경이 변화하는데 우리만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라고 선언했다. 대표의 위치에 오르자마자 그는 조직 개편을 선언한 것이다. 말로크-브라운은 1993년부터 2012년까지 OSF의 회장을 역임한 인권 운동가 아리예 네이어Aryeh Neier와는 전혀 다른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영국의 외교관이자 노동당 당원으로 코피 아난Kofi Annan 유엔 사무총장 아래서 사무차장 등 고위직을 역임한 바 있다. 


말로크-브라운은 “40개의 개별 국가, 지역, 주제별 프로그램과 재단으로는 더 이상 전 세계적인 팬데믹이나 기후변화 같이 서로 얽혀 있는 오늘날의 도전과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글로벌 이사회, 8개의 지역 이사회, 17개의 이슈 중심 이사회로 구성된 OSF의 거버넌스 구조는 감당이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져버렸다. 


OSF가 조직의 내면을 깊이 성찰하고, 지나온 시간에서 얻은 깨달음을 되새기는 것은 바람직할 뿐 아니라, 필수적인 일이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이러한 쇄신은 OSF를 새로운 자선 영역으로 진입하게 만들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권위주의가 부활하는 가운데, OSF는 진보적 변화를 반대하는 전 세계적인 정치적 공격, 즉 ‘열린 사회를 위협하는 전 세계적 흐름’에 맞서고 있다. OSF가 사회 및 정치적 변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재평가하는 것은, 이러한 흐름을 장기적이고 실질적으로 억제해 낼 때 유의미할 것이다.



OSF 제국을 구축하다

OSF는 창립 이래로, 미션의 깊이와 넓이에 있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편 재단들이 비판적 자기성찰을 하는 힘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외부의 인식이 있다는 걸 고려하면, OSF가 조직을 개편해야겠다고 인식한 건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재단들처럼 OSF는 그 과정에 외부 평가자를 참여시키지 않았고,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룹이나 독립적인 감독 기관도 두지 않았다.


2012년 이탈리아 트렌토에서 열린 경제학 축제에서 OSF의 총재 조지 소로스가 연설하고 있다.


말로크-브라운이 발표한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조직 개편에서 볼 수 있듯, OSF는 그간에 얻은 교훈을 소화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십 년에 걸친 투쟁과 조직 확장을 통해 OSF는 전 세계 120개국에 44개 사무소와 프로젝트가 산재한, 비대하고 산만한 조직이 되었다. OSF가 지원하는 보조금의 50% 이상이 1년 미만의 기간을 갖고 있으며, 운영 비용은 전체 예산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OSF 관리자는 “OSF의 프로그램들이 조잡하게 기워진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조지 소로스가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라고 말했다. OSF 기금을 받았거나, 받고 있거나, 받기를 희망하는 다른 많은 인터뷰 대상들 역시 익명을 요구했다. 한때 OSF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외부 전문가들과 내부자들 모두 OSF가 둔화되었고, 미국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으며, 특히 너무 짧은 기간으로 점점 더 상위에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모든 특징은 소로스가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육성한, 빠르고 유연하며 탈중앙적이고 초지역적인 지원 모델을 배척하는 것이다. 


한때는 관료주의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에 자부심을 가졌던 재단이 이제는 관료주의에 빠져있다. 2021년 <인사이드 필란트로피Inside Philanthropy>는 “OSF는 오합지졸이다”라며, "OSF로부터 제안서를 요청받으면 답변을 받기까지 1년에서 2년이 걸린다. 또는 아예 답변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프로그램 담당자들은 풍부한 지식을 가졌지만, 항상 대응이 빠른 것은 아니다."라고 혹평했다. 


2022년 프로그램 및 보조금 지급을 위해 책정된 약 8억 7,700만 달러에 달하는 OSF의 프로그램 예산은 구조조정의 효과를 보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 이주, 공중 보건, 마약 정책, 여성 권리 등 9개의 주제별 프로그램이 새로운 프로그램 구조로 통합되고, 다른 2개의 프로그램은 외부 기관에 맡겨질 예정이다. 22개의 국가 및 지역 단위 재단이 폐쇄된 이후, OSF의 직원 수는 약 5분의 1로 줄었다. (2020~2021년에는 거의 1,700명에 달하는 직원에게 퇴직금 패키지가 제공되었다) 이를 통해 재단의 구조는 미국, 라틴 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유럽 및 유라시아, 아시아 태평양, 아프리카, 중동 등 6개의 지역 프로그램과 핵심 프로그램인 기후정의 및 국가 부채 개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글로벌 프로그램 팀으로 간소화되었다. 


초국가적인 애드보커시 활동과 로비를 펼치는 글로벌 팀의 임무는 남반구에 위치하며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유사한 특징을 지닌 남반구 국가들Global South 이슈가 논의되는 자리에서, 개발도상국의 목소리를 대신 내는 것이다. 또한 재단은 거의 모든 프로젝트에서 교차정의(불평등한 시스템에서 여러 형태의 차별이 교차하는 방식)를 핵심 기준으로 삼고 있다. OSF는 부채 탕감, 조세, 사회 보호, 기후 정의, 마약 정책, 이주 등 다양한 이슈에 개입하여 글로벌 사우스의 불리한 환경에 대응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인구 통계학적 변화를 수용하여 그레타 툰베리의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같이 젊은이들이 주도하는 사회운동을 지원하며 변화를 촉진한다. 마지막으로 OSF는 다른 재단 및 정부와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기후위기와 같이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하고, 다른 긴박한 문제들과도 교차하는 거대한 도전과제에 대규모로 투자하고 있다. 


2021년,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회담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OSF의 이러한 대담함과 위험 감수성은 1992년 영국 파운드화 공매도를 대규모 베팅해 ‘영국은행Bank of England을 파산시킨 사람’이라는 별명을 얻은 OSF의 설립자의 성격을 반영한다. 소로스는 공산주의 동유럽과 남아프리카의 학자 및 반체제 인사에게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한 이래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OSF가 지원한 수혜자들의 목록에는 국제 NGO, 시민교육 프로젝트, 독립 언론 매체 등 다양한 단체가 포함되어 있으며, 설립 이후 현재까지 5만 건 이상의 보조금을 통해 190억 달러 이상을 배분했다. 40년 동안 재단이 펼친 선구적인 활동과 모범 사례는 책 한 권을 가득 채울 정도이다. 설립 당시 파격적인 행보로 주목을 받았던 OSF는 특정 문제를 해결하고자 일회성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는 여느 단체들과 달랐다. OSF는 지역 재단들로 이뤄진 초국가적 네트워크로서 평화적이며 풀뿌리적인 방법으로 정치 사회적 변화 심지어 정권교체까지를 목표로 삼았다.


소로스는 소련 공산주의를 무너뜨리는 데 공을 세웠으며, 1990년대 보스니아 전쟁에서 포위된 사라예보 시민들을 지원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유라시아에서 일어난 색채 혁명color revolutions을 지원했으며, 2019년 슬로바키아 최초의 여성 반부패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키며 공로를 인정받았다.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전 조지아주 하원의원 겸 주지사 후보인 스테이시 에이브럼스Stacey Abrams 등 차세대 정치인과 전국의 수많은 진보적 검사들을 탄생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OSF는 또한 미국에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시작될 때부터 이를 지지했다. 1998년부터 2021년까지 OSF 네트워크는 전 세계 완화의료 분야를 육성하기 위해 약 5천만 달러를 투자했고, 전문가들은 이를 통해 완화의료가 전 세계 공중보건의 의제로 부상했다고 평가한다. 새로운 문제들에 뛰어드는 일에 소로스는 주저함이 없었다. 교도소 개혁이나 유럽에 거주하며 흔히 ‘집시’라고 불리는 소수민족의 공식 명칭인 로마Roma, HIV 감염인, 난민 등 극도로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소로스는 앞장섰다. 


OSF의 이런 시도들에 반대하는 강력한 적들도 생겨났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처럼 막강한 권력을 가진 지도자들은 OSF와 소로스의 막강한 영향력에 대해 비난한다. 우파 언론 매체를 통해 소로스를 비방하는 사람들은 소로스가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으며 급진 좌파를 선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헝가리와 러시아에서의 OSF 활동이 매우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그 국가의 지도자들은 OSF가 국가에 해를 끼쳤다는 혐의를 씌워 강제 퇴출시켰다.


공격의 대상이 되어 온 소로스가 자리에 물러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과연 OSF가 의사결정 권한을 넘기며 은퇴한 90대 창립자보다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  OSF가 창의적 혼란을 조성하고 뛰어난 유연성을 유지하며 논란을 유발하는 능력을 앞으로도 유지할 수 있을까? 버클리의 캘리포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소로스의 37세 아들 알렉산더Alexander는 최근 7명으로 구성된 OSF 이사회 의장이 되었다. 조지 소로스의 아내 타미코 볼튼 소로스Tamiko Bolton Soros와 딸 안드레아 소로스 콜롬벨Andrea Soros Colombel 등 다른 일가족도 이사회에 포함되었다. 26개 자문위원회의 대부분이 폐지되었거나 폐지될 예정이어서 이사회는 더 막강한 재량권을 갖게 될 전망이다. 외부 전문가가 아닌 알렉산더 소로스가 아버지의 뒤를 잇게 됨으로써 OSF는 대부분의 다른 재단들처럼 가족 위주의 재단으로 운영될 것이다. 소로스 일가의 변덕과 기질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향후 사업의 방향과 초점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유럽이 개방되다

OSF에게 이러한 전환의 시기가 처음은 아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고, 그 과정에서 여러 교훈이 있었다. 첫 번째 전환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로, 소로스 재단 부다페스트Soros Foundation Budapest와 오픈 소사이어티 재단의 전신인 오픈 소사이어티 인스티튜트Open Society Institute가 동유럽과 소련의 일당 국가 체제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같은 권위주의 환경에서 활동하던 시기이다. 민간 자선단체로는 이례적으로 소로스 재단들은 소비에트권 국가들에 합법적으로 자리 잡았고, 반체제 학자, 진보적 학생, 원조 NGO 및 흔들리는 독재국가에 생겨난 균열과 틈새에 자리 잡은 단체들을 지원했다. 


민간 자선단체로서 OSF는 관료적이지 않은 태도로 민첩하게 사업을 진행하여 국가나 개발기관이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을 해냈다. OSF이 해온 일들에는 개인뿐 아니라 반체제 운동을 후원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노동자의 권리와 사회변화를 위해 저항운동을 펼치는 폴란드의 독립적이고 반권위주의적인 노동조합, 솔리디티Solidarity를 지원한 것이 그러한 사례이다. 1989년부터 1991년까지 동구권에서 독재정권이 잇달아 무너지고 시민사회가 최전선에 나섰을 때는 소로스가 기대한 완벽한 시나리오가 펼쳐진 셈이었다.  


이 첫 번째 전환 단계는 1990년대 초까지 이어졌는데, 이 시기에는 신생 민주 국가들에서 OSF가 독립적인 주체로서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런던정경대학의 시민사회 및 글로벌 거버넌스 전문가 메리 칼도르Mary Kaldor는 "당시의 OSF 활동은 매우 중요하고 독창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중요한 방식으로 민주화에 기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조지 소로스는 동유럽과 구소련 전역에 독립 재단을 설립해, 조건 없이 일시불로 자금을 지원하고, 가능성을 가진 수백 개의 시민단체와 대의에 재량껏 배분하게 했다. 이런 과감한 투자는 개발기관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으로 신뢰를 기반으로 한 결정이었다.  


에밀리 탐킨Emily Tamkin은 2020년에 발간한 전기 <소로스의 영향력: 정치, 권력, 그리고 열린사회를 위한 투쟁The Influence of Soros: Politics, Power, and the Struggle for an Open Society>에서 "소로스와 OSF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동유럽의 시민사회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 어렵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내가 만난 이 지역 '시민사회' 구성원들의 대부분은 적어도 한 번쯤 OSF와 연결된 적이 있었다”라고 서술했다.



반격을 당하다

두 번째 단계는 이들 민주화를 이룬 국가들이 안정화되면서 OSF의 예산이 수억 달러로 늘어나던 때이다. OSF는 전환기 개혁의 파트너로서 정치적 정보를 기반으로 유연하게 운영하며 현장의 목소리에 항상 귀를 기울이는 역할을 수행했다. 예를 들어, 지역 재단을 통해 의회 투명성,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현대적인 사법부, 언론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시도들을 지원했다. 워싱턴 대학의 역사학자 다니엘 베스너Daniel Bessner는 소로스가 "동유럽의 해방된 사람들을 위해 열린사회의 관행을 모델링하며, 반공산주의 혁명의 사상을 지탱하는 영구적인 제도들을 구축했습니다"라고 평가한다. 탐킨에 따르면 소로스 커뮤니티는 포용성 있는 민주주의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자유롭고, 현실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언어 말이다. 


이는 유럽과 중동, 동유럽에서 늘어나고 있던 우파 포퓰리스트들의 생각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소로스의 장학금으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수학한 헝가리 정치인 빅토르 오르반도 그런 우파 포퓰리스트 중 하나였다. 오르반은 소로스의 지원을 받은 ‘엘리트’들의 생각이 일반 헝가리인들에게는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OSF의 지지자들보다 빨리 깨달았다. 영어를 구사할 줄 알고, 자유주의 사고를 가진 '엘리트'들은 일반 헝가리들이 겪는 고통을 모르기 때문이다. 당시 헝가리인들은 구조조정이라는 자유주의적 처방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비판은 소로스 인스티튜트의 초기 활동이 자유 시장 철학을 받아들였다는 베스너의 평가와도 일치한다. 자유 사회는 자유 시장에 의존하게 된다. 어느 정도의 규제가 존재하더라도 말이다. 1990년대 동유럽과 러시아에 자유 시장이 확산되면서 수백만 명의 평범한 사람들이 빈곤해졌고, 이는 결국 포퓰리스트의 득세로 직결되었다. 소로스가 자유방임 자본주의에 대해 여러 차례 공개적인 비판을 했지만, 베스너는 "소로스가 초자본주의의 한계를 누구보다 일찍 인식했음에도, 그의 계급적 위치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반자본주의 또는 탈자본주의 개혁을 주장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OSF의 부회장 레오나드 베나르도Leonard Benardo도 '서구가 거대한 실패'를 한 이유는 인권을 정치적이고 시민적인 요소로만 이해하고,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개념으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이러한 한계로 인해 OSF가 수혜국에서 수년 동안 쌓아온 긍정적인 에너지와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일들이 많았다. OSF가 수혜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푸틴이나 오르반, 미국 공화당원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말이다. "가장 큰 실책은 신자유주의를 당연하게 여긴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메리 칼도르는 말한다. 


다른 시각의 비판도 있다. 서구의 기부자들이 보통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자유주의 엘리트들에게 OSF가 자금을 지원한 것이 큰 실수였다는 주장이다. 헝가리 과학아카데미 정치학연구소Institute of Political Science at the Hungarian Academy of Sciences의 정치학자 다니엘 미케츠Dániel Mikecz는 "헝가리의 비영리단체가 미국의 자선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다면 더 이상 풀뿌리 단체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옥스퍼드 대학의 역사학자 티모시 가튼 애쉬Timothy Garton Ash도 비슷한 맥락에서 주장한다. 전기 작가인 그는 "소로스가 매력을 느끼고 재단의 운영을 맡긴 이들은 대도시 출신 지식인들입니다. 그들은 이미 특권층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회를 개방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모두 비슷한 사회 계층 출신이라면 과연 사회가 개방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사회 참여의 기회를 더 공평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OSF의 엘리트적인 이미지는 반유대주의나 혐오 감정과 섞여 교모하게 악용되었다. 오르반 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기반을 공고히 하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OSF 이미지를 활용하였다.  


OSF의 브랜드 이미지가 악화되자 일부 수혜자들은 결국 OSF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단체 중 한 곳은 OSF와 무관한 현재가 더 건강하다고 말한다. 한 단체의 대표는 "우리 단체는 자금처가 다양해지면서 이제 한 기관에 의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나라에서 조지 소로스나 OSF와의 관계 맺는 일은 부담스러워졌습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동유럽이나 중앙아시아의 다른 수혜자들도 공감하는 정서이다. 



영역을 넓히다

2000년에 들어서 OSF는 세 번째 단계에 접어들었다. 세 번째 단계는 유럽과 중앙아시아를 넘어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중동, 미국으로 활동 범위를 확장하는 시기였다.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OSF의 방식을 다른 지역에도 적용한다는 구상이었다. OSF는 광범위하고 매우 서구적인 아젠다들을 채택하였다. 소수자 인권과 성소수자 문제, 교육개혁에 이르기까지 진보적인 성격의 사회문제들이었다. 소로스는 마약 중독 치료, 학교 및 교도소 개혁, 청소년 비행 문제 해결을 위해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6천만 달러를 기부했다. 2004년 미국 대선에서 소로스는 조지 W. 부시의 재선에 반대하는 민주당 후보 존 케리John Kerry의 선거운동을 지원하며, 처음 공개적으로 당파 정치에 뛰어들었고, 이후에도 관련 활동을 펼쳤다.


전 노동당 하원의원이자 유엔 사무차장인 마크 말로크-브라운이 2021년 오픈 소사이어티 재단의 신임 회장으로 취임했다.


2,800만 달러의 소로스 기부금에도 불구하고 존 케리는 낙선했다. 하지만 소로스의 기부로 인해 볼티모어에서 마약 관련 프로그램이 정책화되었고, 약물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받는 치료 건수가 두 배로 늘어나는 성과를 낳았다. 이 때, OSF는 모든 자선단체가 고민할 만한 어려운 질문을 마주했다. 정부가 수행해야 할 서비스를 부유한 개인이 나서서 제공하는 것이 옳을까? 그렇다면 주정부가 가진 책임은 사라지는 걸까? 자선활동이 경찰국을 개혁하거나 형사 사법 제도의 인종 차별적 편견을 해소할 수 있을까? 


이 무렵 중앙유럽국가들Central European states, CEE의 EU 가입이 본격화되었고(2004년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 폴란드 가입) OSF는 수혜기관들을 향해 EU에 주도권이 넘어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U의 재정적 영향력이 몇 배나 크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측면에서 보면, CEE의 EU 가입은 완벽하지 않지만 성공적으로 이행된 합의로 여겨진다. 어느 정도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EU 회원국들이 개선해 갈 것이다. 전후, 독일,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유럽국가들이 강력한 파시즘의 유산을 성공적으로 종식한 것처럼 말이다.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부상을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가 '역사의 종말'이라 표현한 것처럼, 역사의 종말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폴란드의 스테판 바토리 재단Poland’s Stefan Batory Foundation과 헝가리 헬싱키 위원회HHC 같은 CEE 지역의 OSF 재단들은 경고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금을 '스핀오프’하여 개별 기금을 설립하거나 OSF의 기금뿐 아니라 다른 재원도 받는 독립 단체로 전환했다. 여러 조직들이 바토리와 HHC처럼 변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기관도 있었다.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의 재단들은 규모를 대폭 축소해야 했고, 보조금 지원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더 작은 규모로 구조조정해야만 했다.



변화이론의 결함을 발견하다

OSF는 10여 년 전부터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 시기는 전례 없는 대규모 예산(2013년 기준 8억 7,300만 달러)과 인력, 전 세계적인 연결망에도 불구하고 거시적으론 영향력이 감소하는 것처럼 보였던 때이다. OSF가 헝가리 밖에서 변화를 시작한 2010년, 헝가리에서는 오르반 총리가 포퓰리즘의 흐름 속에서 8년 만에 재집권했다. 오르반은 자유주의 진영을 경쟁자로 인식하는 것을 넘어, 헝가리 국민의 적으로 규정하였다. 현재까지 오르반은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한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발칸반도 전문가이자 비엔나 인간과학 연구소Institute for Human Sciences 총장 대행인 이반 베이보다Ivan Vejvoda는 "소로스와 OSF는 이 지역의 민주주의 발전이 선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들은 민주주의 시스템이 사람들이 원하는 번영과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며, 민주주의는 결코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소로스 자신도 OSF의 변화이론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식했다. 2016년 그는 전 세계의 선출직 지도자들이 "유권자들의 정당한 기대와 열망을 충족시키지 못했으며...이러한 실패로 인해 유권자들은 권위주의적 방식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매료되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소로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열린사회에 대한 흐름이 바뀌었다며, "이는 결국 열린사회의 가장 큰 적인 민족주의의 대두로 이어졌습니다."라고 주장한다.  


소로스는 OSF 재단이 설립자인 자신보다 더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로스는 재단의 지속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재단에 이미 기부된 50억 달러에 추가로 180억 달러를 기부하였는데 이는 그의 재산 대부분에 해당한다. 소로스가 재단의 지속성을 과소평가했었다는 사실은 OSF에 향후 활동 방향을 제시해 준다. "부를 재분배하는 정책이 부재하다는 이유를 들어 민주주의 반대자들은 대중의 불만을 부추겨 왔습니다."라고 소로스는 결론지었다.


OSF가 수십 년 동안 현장에서 활동하며 얻은 교훈은 경제적 불평등이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권위주의의 부상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교훈은 현재 진행되는 OSF 프로그램에도 반영되어 있다. 불평등한 부의 분배는 그 자체로 극단주의를 키우는 원인이 되지는 않지만, 극단주의가 성장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제공한다. 현재 OSF의 글로벌 형평성 담당 이사인 브라질 경제학자 라우라 카르발류Laura Carvalho는 "경제 정책의 혜택이 최상위 계층에게만 불균형적으로 돌아갈 때, 다른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믿을 가능성이 높습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사회 불안, 민주 정부에 대한 불신, 독재자에게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OSF는 아프리카와 남반구 국가들을 위한 새로운 전략으로 차세대 경제개발 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새로운 ‘원 아프리카One Africa’ 전략에는 "우리는 규제되지 않고 견제받지 않으면서 인간과 공동체의 안녕을 등한시하는, 신자유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개발 관점이 지닌 폭력성을 인식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OSF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거버넌스 제도와 대중의 의식 속에 고착화되어 평범한 아프리카인들이 큰 피해를 보았다고 결론내렸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사상가, 활동가, 정책입안자들이 기존의 경제 통념에 도전할 수 있도록 기회와 프로세스를 지원할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상황과 우선순위를 반영하고, 비판을 넘어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원 아프리카 전략 리뷰The One Africa strategy review는 아프리카 중심의 새로운 경제 모델의 윤곽을 개괄적으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세부적인 기획은 아프리카 대륙의 포럼들에서 논의될 수 있도록 남겨두었다. 새로운 아프리카 경제 모델은 보건과 교육에 우선적인 투자를 하고, 노동자의 협상력을 확보하며,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조세 정의를 지원하고, 부패를 방지할 것이다. 아프리카는 기존의 무역협정에서 탈피해 무역과 투자가 아프리카인들에게 혜택을 제공할 수 있도록 새로운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그 방식은 사회주의적 방식은 아닐 것이며, 수십 년간 국제개발 기관들이 추진해 온 것과도 매우 다른 종류의 자본주의일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 외에도 포퓰리즘 독재자들이 사용하는 무기들은 더욱 강력해졌다. 억압적 전술들과 자유주의에 반하는 내러티브들을 강화시킬 수 있는 정교한 정보기술 덕분에 말이다. 러시아와 이란, 중국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말로크-브라운은 열린사회의 적을 물리치려면 선거를 감시하거나 특정 정당을 지지하기보다 허위 정보에 대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OSF는 이를 위해 수십 년간 독립 저널리즘을 후원해왔으며, 시민사회를 지원하여 유럽연합의 새로운 디지털 서비스법DSA(감수자주: 디지털 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여 사용자 보호와 온라인 플랫폼의 투명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법안)이 제정되도록 촉진했다. 이 획기적인 법안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사회에서 발생시킬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함으로써 세계 최대 규모의 온라인 플랫폼들을 정화하고자 고안되었다. 이를 위해 이 법안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알고리즘을 수정하고 가짜 계정을 삭제해 허위 정보의 확산이 최소화되도록 했다. OSF는 유럽 디지털 권리European Digital Rights와 협력하는 수많은 수혜기관들에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유럽 디지털 권리는 디지털 권리와 자유를 수호하는 유럽 전역의 수십 개 시민권 단체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OSF는 암스테르담 대학에서 운영하는 DSA 천문대Digital Services Act Observatory가 디지털 서비스 법에 대한 전문 지식의 허브 역할을 하도록 초기 자금을 지원했다. 



새로운 OSF을 구상하다

OSF의 역대 리더십은 OSF를 혁신하고자 노력했지만,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는 데 그쳤다. 그들은 재단의 지원을 통해 큰 임팩트를 창출함으로써, OSF를 진정한 글로벌 재단으로 만들고자 했다. 인사이드 필란트로피Inside Philanthropy의 편집자 데이비드 칼라한David Callahan은 OSF가 수년간 무질서하게 확장되면서, ‘문어'와 같은 모습이 되고 말았다고 말한다. 거의 모든 대륙에서 다양한 진보적 이슈를 다루는 사무소와 직원, 프로젝트들이 서로 동떨어져 있으면서 말이다. 또한 상호연결성이나 더 큰 비전과의 연결성이 약화되었으며, 주제와 국경을 넘어선 협업이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또한 이니셔티브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이사회 구성원들조차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고 OSF의 퇴사자들은 말한다.


조지 소로스와 두 번째 부인, 수잔 웨버의 장남인 알렉산더 소로스는 오픈 소사이어티 재단의 의장이자 아버지의 후계자이다.


"OSF가 점점 더 내부로 집중되고 프로세스가 많아지면서 프로그램과 수혜자를 위해 노력하는 많은 직원이 지치게 되었습니다."라고 전 OSF 직원이자 뉴욕 CUNY 대학원 센터CUNY Graduate Center의 유럽연합 연구센터European Union Studies Center 부소장 메릴 소브너Merrill Sovner는 말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수뇌부에 권한이 집중되고 관료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OSF가 여타 재단들과 차별화되었던 강점이 사라진 것이다. 또한 국가 차원 혹은 지역 차원에서 운영되는 OSF의 재단들과 뉴욕에 있는 중앙집권적 전문 부서 및 예산 부서 간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었다고 직원들은 증언한다. OSF의 의사결정은 점점 더 현장보다 중앙 사무소에 의해 이뤄졌다.


말로크-브라운 팀은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통해 지역 업무가 현지 가까이에서 관리되고 현지의 지식을 근간으로 하는, 보다 간소화되고 집중적인 OSF를 만들었다. 현재 6개의 지역 센터는 2020년보다 4분의 1 이상 늘어난 5억 2,700만 달러 이상의 자금을 관리하고 있으며, 자체 프로그램 전반에 대해 더 많은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는 이전보다 더 많은 지역 자율성을 가지게 되었지만, 더 유연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중앙 자금 지원 시스템도 갖추게 되었습니다."라고 OSF의 지역 담당 부사장이자 최초의 혁신 운영 책임자 비나이퍼 노로지Binaifer Nowrojee는 말한다. 노로지는 OSF가 더 적은 운영 비용을 가지고 국경을 넘어 더 큰 규모로, 중복 없이 더 효과적으로 작동할 것이라 주장한다. 그 예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전역에 흩어져있던 8개 사무소는 현재 3개로 통합되어 단일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OSF의 로마 프로그램은 브뤼셀의 새로운 독립 법인으로 이관되어, 세계 최대 규모로 2023년 말부터 운영될 예정이다. OSF 고등교육 프로그램은 고등교육 기관들의 글로벌 네트워크인 오픈 소사이어티 대학 네트워크Open Society University Network로 이관되었다. 유럽 및 중앙아시아 프로그램과 미국 프로그램의 지원금이 줄어드는 반면 남반구 국가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지원금이 늘어날 예정이다. 2019년 이후, 라틴 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지역에 대한 지원은 50% 증가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장 많은 지원이 미국에 집중되고 있다. 미국에서 지출된 2022년 예산은 2억 3,400만 달러로, 이것은 미국 의회 중간선거 기간 중 민주당 후보 및 아젠다에 대한 후원으로 평소보다 더 큰 규모였다. 현장의 당사자들과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OSF 프로그램 직원들은 반드시 그 지역에 거주해야 한다. 이는 OSF의 1990년대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조치이다. 또한 장기적이고 규모있는 지원을 위해, 2023년부터는 전체 지원금의 4분의 1이 최소 3년 이상 지속되는 방식으로 배분이 이뤄질 예정이다. 지원금 지급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그만큼 지원금에 대한 접근도 훨씬 쉬워지는데, 이는 그동안 지원을 받지 못해 좌절한 수많은 지원자들이 반길만한 일이다.


OSF의 개혁은 구조적인 변화로 국한되지 않는다. 아직 전환기에 있지만 OSF는 새로운 계획에 이미 돌입했다. 예를 들어, 언뜻 보기에 OSF와 어울리지 않는 기후위기는 OSF가 접근하는 새로운 분야이다. 기후위기는 이미 수많은 그룹이 전념하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글로벌 자선단체들은 연간 8,010억 달러를 배분하는데, 2021년에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 예산의 단 2%만을 사용했다. OSF는 기후변화 및 완화에 따른 부담의 공정한 분담, 공유, 분배를 다루는 기후정의에 특히 집중하고 있다. 남반구 국가들은 기후파괴에 대한 책임이 가장 적지만, 기후파괴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고 있다. 그동안 기후 분야에서는 압도적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면, OSF는 ‘보다 사람 중심적이고, 통합적이며 사회경제적인 접근’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 미션을 책임지고 있는 인물은 전직 외교관이자 카리브해의 섬나라 과들루프Guadeloupe 출신인 야마데 다그넷Yamide Dagnet이다. 그는 2021년 OSF에 신설된 기후정의 이사를 맡고 있다. 기후정의는 전 세계적으로 다양해진 직원들을 반영한 또 다른 전환 목표이다. 다그넷은 국제 기후 협상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전략적 저소득 및 중간소득 국가에서 기후 및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경제적 변화’를 가속화하기 위한 전략을 고안한 바 있다. 2022년 11월 이집트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그녀는 OSF를 대표해 남반구 국가Global South 대표들과 기후파괴로 인한 빈곤국의 '손실과 피해'를 해결하기 위한 시설 건립을 요구했고, 북반구 국가Global North 대표들의 동의를 이끌어 냈다. 남반구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1995년 제1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부터 이 주제에 대해 꾸준히 노력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기다려온 승리였다. 하지만 미국과 대부분의 부유한 국가들은 기후위기가 악화될수록 보상 요구가 급증할 것이라 예상해 오랫동안 이를 반대해 왔다. 


COP27에서 OSF는 OSF와 방향성을 보여주는 다른 프로젝트를 지지하는 이들과도 뜻을 모았다. 그 프로젝트는 남반구 국가들이 주도하에 기후행동과 개발을 연결하는 것으로 더 폭넓은 확산이 가능했다. 그 프로젝트는 브리지타운 이니셔티브Bridgetown Initiative로 개발 금융, 특히 가난한 국가가 기후변화에 대처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부유한 국가의 지원 방식을 개혁하는 캠페인이다. 설립자인 바베이도스Barbados 총리 미아 모틀리Mia Mottley가 이 캠페인을 이끌고 있으며, 주정부와 비영리단체 연합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이니셔티브의 최우선 과제는 국제통화기금IMF을 설득하여 미사용 외화보유액 중 최소 1천억 달러를 도움이 필요한 국가에 재투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브리지타운 캠페인의 기획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팬데믹이나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은 국가에 대해 부채 탕감을 자동화하고, 개발은행들이 기후 회복력을 위해 1조 달러 규모로 추가 지원하며, 기후 완화에 민간 부문 투자를 유도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마련하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 모틀리는 터무니없이 높은 부채는 시대착오적인 국제 금융 구조의 일면이며, 것이며, 이는 남반구 국가들의 필요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OSF는 2023년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 다시 참여했다. 이는 말로크-브라운이 제시한 OSF의 새로운 정신과는 대치되는 것이었다. 세계경제포럼은 오랫동안 세계화의 상징이었을 뿐 아니라, 힘 있고 부유한 이들이 자유무역이 세계에 더 많은 자유를 가져다 준다고 주장하는 장이었기 때문이다. 수년 만에 처음으로 조지 소로스는 포럼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로크-브라운은 포럼에 참석했고, OSF는 45개의 단체들과 파트너 관계를 맺었다. 그 중에는 베조스 지구 기금Bezos Earth Fund, IKEA 재단, 록펠러 재단, 많은 유명 기업 및 공공부문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OSF는 그들과 '공공, 민간, 자선 파트너십'을 확대하기 위한 이니셔티브를 설립했는데, 이 이니셔티브를 통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약 3조 달러의 자금이 매년 조달될 예정이다.  


이 이니셔티브가 가진 의도는 좋지만, 대부분의 기후 전문가들은 이들보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 유엔과 같은 강대국 및 초국가 조직이 기후 문제에 있어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탄소 가격 시스템, 청정 기술에 대한 투자, 녹색 기술 부문을 활성화하기 위한 수천억 달러의 국가 지원이 세계 경제를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기후위기를 악화시킨 장본인들의 기부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결정적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전쟁은 여러 전선에서 펼쳐진다

2022년 초,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그리고 이 전쟁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는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유럽의 열린 사회에 닥친 가장 심각한 위협이며, OSF의 미션이 과연 실현되고 있는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사건이기도 하다. 2012년 말, 조지 소로스는 러시아에서 OSF가 25년 동안 펼쳐온  방향성이 옳았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2년 후,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침공했고, 1년 후 자국 영토에서 OSF를 추방했다. 소로스는 여전히 민주주의가 가진 매력이 폐쇄적인 사회에는 가장 큰 위협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우크라이나를 정복하려는 푸틴의 결심을 설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2022년 4월 1일 폴란드 흐루비쇼프에 있는 임시 대피소에 머물고 있다.


위기 상황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한 OSF의 1억 달러 규모 재량 기금은 신속하고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1990년부터 우크라이나의 시민 민주주의를 지원해 온 OSF는 2,500만 달러부터 시작하는 우크라이나 민주주의 기금을 출범시키기 위해 더 많은 기금을 모았다. OSF의 전시 임무는 시민사회를 보호하고, 의료품을 보급하며, 우크라이나의 자유 언론을 지원함으로써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고, 전후 민주주의의 토대를 마련하는 NGO들의 '시민전선civic frontline'을 구축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펀드는 슈미트 패밀리Schmidt Family, 오크 재단Oak, 포드 재단Ford foundations 등으로부터 기부를 받으며, 총 4,500만 달러를 모금했다. 


OSF의 새로운 리더들은 새로운 시대의 글로벌 우파 세력과 맞서야 하는 독특한 도전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이사회에 새로 합류한 소로스 일가는 조지 소로스의 유산을 뒤집는 것이 아니라 그 유산을 더 발전시키려는 열의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의 모든 역량을 합쳐도 조지 소로스에는 미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재단은 지금 매우 위험하고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기도 하다. 조지 소로스는 초창기부터 OSF를 정의해왔기 때문에 그가 없는 OSF를 상상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아마도 OSF는 앞으로 덜 기발하고, 덜 즉흥적이며, 더 넓게 뻗어 나가게 될 것으로 예상되며 유엔의 베테랑 말로크-브라운은 이를 우리에게 확인시켜 준다.


우크라이나의 열린사회에 대한 조지 소로스의 생각은 35년 전 그가 말했던 것과 유사하게 들린다. 사실 러시아 탱크에 맞서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동유럽 군중은 그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결국 OSF는 열린사회의 복잡성에 대해 학습하며, 포퍼의 개념을 실제로 구현한 기관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 중단, 에너지 위기, 수백만 명의 난민 유입, 인플레이션, 중국의 푸틴 편들기, 기후 목표 달성 실패, 식량 부족 등 전 세계적이고 정치·경제적인 결과는 불평등, 극단주의, 반이민 혐오를 악화시키고 있으며, 권위주의와 파시스트 운동에 불을 지피고 있다. 열린사회를 위해 투쟁하는 OSF는 이 모든 거대 이슈들과 한꺼번에 맞서게 된 셈이다. 민주주의를 어떻게 증진시킬 수 있는지를 OSF가 배울수록, 그리고 OSF가 민주주의의 해법을 거의 풀었다고 생각할 때마다, OSF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더 확장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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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HOCKENOS

폴 호케노스는 베를린에 거주하는 작가이다. ‘베를린 콜링: 무정부 상태, 음악, 장벽, 그리고 새로운 베를린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한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