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신뢰가 마을을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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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 일반 · 커뮤니티 · 거버넌스
신뢰가 마을을
변화시킨다

2023-4


SETH D. KAPLAN



Summary. 지역사회를 개선하려는 비영리단체는 신뢰를 얻어야 한다. 이 어려운 과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서는 함께 일할 사람을 최우선에 두고 차근차근, 끈기 있게 실천해야 한다.




학계와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사회적 신뢰는 이전에 비해 훨씬 낮아졌다. 이제 사람들은 연방정부를 비롯해 종교단체와 언론, 지향이 다른 여러 정치 집단에 이르기까지 어느 쪽으로도 그다지 신뢰를 보이지 않는다. 하버드대학교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Robert Putnam은 2000년에 저서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우리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구조 그 자체인 사회적 자본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우리의 삶과 공동체가 빈약해졌다.”


신뢰가 낮으면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개인 차원에서는 필요할 때 지원을 받기 어려워진다. 그러면 직장을 구하고 결혼하고 건강을 지키고 사업을 영위하는 기본적인 삶의 여정을 밟아나가기가 상당히 힘겨워진다. 이런 상황은 학력 및 경제력이 낮은 사람이나 유색인에게 한층 더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2019년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신뢰가 낮은 '저신뢰자'가 소득 7만 5천 달러 이상인 사람 중에서는 4분의 1, 대학원 이상 학위소지자 중에서는 5분의 1, 백인 중에서는 31%에 불과했다. 반대로 소득 3만 달러 미만인 사람 중 45%, 학력이 고등학교 이하인 사람 중 43%, 흑인 중 44%, 히스패닉 중 46%가 저신뢰자로 나타났다. 저신뢰자는 타인을 믿지 않으며 자기만 생각하고 기회가 되면 타인을 이용하려는 경향이 있다.1


하지만 개인 차원의 저신뢰 문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저신뢰 상태로 파악되는 마을에서는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개인과 공동체의 목표를 이루는 데에 협력할 주민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이렇게 협력 관계가 미약하면 위급 상황에 빠진 어린이를 돌보거나, 마을의 치안을 살피거나, 일자리를 구하거나, 하여간 무슨 일이든 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사회적 신뢰가 낮으면 주민 모두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며, 주민을 돕고자 하는 외부 단체도 초기에는 불신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정 이웃에 대한 일반적인 사회적 신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영향을 미치지만, 특히 풍부한 공동체 생활이 중요하다. 사회학자 로버트 샘슨은 지역 방범 단체, 주거협회, 주간 어린이 활동이 계획된 경우는 드물지만, 집단생활을 원활하게 하는 ‘평범한' 일상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2 이러한 역동성은 퓨 연구의 결론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지역 프로젝트에서 사람들이 함께 일함으로써 대인관계의 신뢰가 재건되고, 그 신뢰가 다른 분야의 문화로 확산될 수 있는 핵심적인 장소가 바로 이웃이라고 생각합니다."3


이처럼 한 사회에 일정 수준의 신뢰가 형성되는 데에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신뢰 수준이 사회적, 경제적 성과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조명하는 학계의 연구는 있지만, 어떻게 하면 조직이 특정 인구집단 내에서 체계적으로 신뢰를 쌓고 지켜나갈 수 있는지를 학습하는 데에 활용할 만한 자료는 별로 없다. 자선단체, 비영리단체, 공공기관 등에서 갖가지 사회 문제의 해법을 모색할 때, 신뢰라는 사안을 염두에 두는 경우는 흔치 않다. 또한 다음과 같은 질문도 대체로 던지지 않는다. ‘우리 조직과 실무자와 사업에 대해 신뢰도를 높이거나 지속시키거나 저해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 이 신뢰가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한 마을의 사회적 자본과 일정 수준의 사회적 신뢰를 확산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사업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을 던지지 않은 채 물질적 또는 기술적 시각으로 문제와 해법을 바라보는 탓에 관계와 연관된 것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맹점에 빠진다. 이후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면 그 실패의 근원이 자신들이 취한 접근방식이 아니라 대상 집단 자체에 있다고 결론짓곤 한다.


만약 어떤 조직이 지역사회에서 신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활동하려고 하면 지역사회는 그런 조직을 의심스럽게 보기 쉽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거나 권한을 공유하려 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런 상황이 이후 활동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역학 관계는 특히 주민들이 외부인에 의해 착취나 배제를 당한 전력이 있는 낙후된 지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어려움을 피하려면 접근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필자들은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기 위해 특정한 마을, 도시, 지방에서 효과가 입증된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디트로이트의 라이프 리모델드Life Remodeled와 애팔래치아의 파트너스 포 에듀케이션Partners for Education은 지역에서의 기회를 확대하고 교육 수준을 높이고 지역사회를 개선하는 데에 주력하는 비영리단체로서 신뢰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에 효과적인 접근법을 개발했다. 이들은 특히 신뢰도가 낮은 마을에서 신뢰를 쌓으려면 현지의 인재를 활용하고, 활동의 단계를 설정하고, 현지 사정에 맞추어 개선해 나가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한 사업의 물리적 목표나 기술적 세부 사항보다, 관계를 형성하고 현지의 인재를 발굴하고 신중하게 움직이며 현지 상황에 세심하게 대응하려는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허를 찔리다

라이프 리모델드Life Remodeled, LR는 2011년부터 디트로이트 안팎에서 흑인과 백인을 아울러 주택 수리, 학교 재생, 마을 정화 활동을 추진해 왔다. 1950년대에 인구가 최대치에 달했던 이 자동차의 도시Motor City는 이후 70여 년에 걸쳐 인구가 3분의 1로 감소했고 2013년 파산할 정도로 쇠락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인종과 인종이 미치는 영향력은 큰 요인이었다. 특히 인종에 따라 신뢰도, 사회적 네트워크의 성격, 권력과 자원에 대한 접근성이 달라졌다. 사람들 간의 단절된 관계는 디트로이트시 내외에서 오랫동안 발생해 온 문제들-투자 중단, 이주, 방치, 황폐화-을 대응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내부자와 외부자, 도심 거주자와 시외 거주자, 백인과 흑인 사이의 단절된 관계 말이다. 이러한 단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1941년 흑인 거주지를 백인 거주지와 분리하기 위해 설치한 0.5마일 길이의 디트로이트 에잇 마일 월Detroit’s Eight Mile Wall일 것이다.


LR은 주민들을 변화시키고 단절된 관계를 연결하기 위해 매우 실용적인 방식을 개발했다. 건물들과 기반 시설을 재생하는 작업에 출신 지역과 배경이 다양한 자원활동가들을 함께 참여시키는 방식이다. 이 단체의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크리스 램버트Chris Lambert는 이렇게 말했다. “경험상 인종, 종교, 정치 관련 사안에 정반대의 견해를 지닌 두 사람을 한 자리에 앉혀놓고 마주 보며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면, 생산적인 대화가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하지만 그 두 사람을 몸 쓰는 작업에 참여해 어깨를 맞대고 일하게 하면 마법처럼 서로 존중하는 태도가 생겨나더군요.”4


몇 년 간의 시범운영 기간동안, LR은 세 가지 주요 활동을 추진하며 여러 마을의 리더들과 선의의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그 세 가지 활동은 학교, 공원, 체육 시설 등의 마을 자산들을 개보수하는 작업, 자원활동가 수천 명이 6일간 집중적으로 도시 미화하는 작업, 주택을 수리하는 작업이었다. LR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문제를 해결하면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단절된 관계들을 연결하도록 활동을 설계했다.


그러다 2016년에는 디트로이트시 교육구school district와 협력해 중학교로 쓰던 건물 한 채를 새로운 용도로 개조하기로 했다. 비영리단체와 소기업 등 다양한 조직이 상주하며 가난한 흑인이 대부분인 주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점 공간으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적어도 LR 입장에서는 주민들이 반길만한 사업으로 보였다. 램버트에게 사업계획을 전해 들은 지역사회 리더들도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듯했다. LR은 그 거대하고 근사한 건물을 50년 동안 연간 1달러에 불과한 비용으로 임대할 수 있었다. 이런 기회는 다른 단체나 개인에게는 신청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독점적인 기회였다. 


하지만 교육구와 계약을 완료하고 지역사회에 입장을 공표한 LR은 당혹스러운 상황에 맞닥뜨렸다. 계약 해지를 요구하는가 하면 교육구를 고소하겠다고 위협하는 등 주민들의 반발이 잇따른 것이다. 두 차례 개최한 공개토론회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고 분노의 기운이 감지되었다. 왜 그렇게 좋은 기회가 흑인 주민이 아닌 백인 외부인에게 돌아갔는지, 어렵게 살고 있는 주민들을 거주지에서 몰아내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날 징조는 아닌지 묻는 이들이 많았다. LR은 디트로이트 각지에서 주민들과 성공적으로 활동해 왔고 지역사회 리더들과도 관계를 두텁게 쌓아왔지만, 부동산을 이런 방식으로 인수하는 행위는 불결한 곳을 제거하고 주택을 개보수하는 작업과는 다른, 일종의 위협으로 비쳤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하고, 아프리카 현지 활동을 펼친 경력과 수년동안 LR를 운영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램버트는 자신이 맥락을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며 소통 능력과 포용력이 있는 리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응을 통해 그가 매우 중요한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음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주민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또한 그들은 램버트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에 대해 램버트는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디트로이트를 고향으로 여기는 유색인 중 상당수가 여전히 정부와 외부인, 백인에 대한 깊은 불신을 품고 있다. 도시계획가이자 작가인 앨런 말라크Alan Mallach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디트로이트 인구 80% 이상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인데, 디트로이트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거의 모든 사항을 소수의 [교외 지역] 백인 남성이 결정한다.”5 당시 LR 부대표였고 현재 블랙 리더스 디트로이트Black Leaders Detroit의 대표인 드완 댄드리지Dwan Dandridge 또한 이러한 역학관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우리 디트로이트 사람들은 쉽게 마음을 주지 않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과거 경험을 통해 그래서는 안된다는 걸 배웠으니까요.”6


처음에 램버트는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그 사업으로 얻을 이점을 설명하려 들었다.7 하지만 댄드리지가 램버트에게 조언했다. 일단 조용히 듣고 이해하라고 말이다. 댄드리지는 당시 램버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주민들이 당신에게 와달라고 하지도 않았고,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당신이 자기들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이후 댄드리지는 일종의 통역사 역할을 했다. 댄드리지는 사업의 목적에 깊이 공감하고 램버트와 신뢰 관계가 있긴 하지만 주민들이 왜 염려하는지도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현지 주민들은 사업을 검토하기에 앞서 충분한 신뢰관계가 있기를 바랬다. 댄드리지는 램버트에게 이 상황을 견디면서 조용히 시련을 받아들이고, 필요하면 사과하고 터져 나오는 분노를 받아안으며 사회적 맥락을 읽는 법을 배우라고 조언했다. 램버트는 모든 해답이 자기에게 있지 않고, 과정과 사람을 통해 배울 수 있음을 아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목사 출신으로서 그는 신앙을 바탕으로 자기를 낮추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고자 했으며, 더욱 평등한 방향으로 관계를 진전시키는 데 필요하다면 변화할 의향이 있었다.


이런 태도 덕분에 램버트는 주민들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LR은 해당 사업의 소유권을 주민들과 공유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는 방향으로 접근했다. 램버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일로 제 삶에서 고칠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신념과 기대, 관점을 제거해야만 하더군요.”



신뢰 구축의 5단계

LR은 지역주민들을 불러 모으고 장애물을 제거하고 협력적인 공동체를 구축하려 했었다. 하지만 이같은 노력에도 LR은 사업을 개시하는 데에 필요한 신뢰를 얻지 못했었다. 결국 LR은 이 상황을 어떻게 전환할 수 있었을까?


LR은 거점 공간을 개발하면서 여러 교훈을 얻었다. 특히 신뢰를 쌓고 유지하며 특정 지역에 새로운 조직을 정착시키고 마을 내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5단계 접근법을 도출해 냈다. LR은 자신들의 동기를 신뢰하지 않는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신뢰를 쌓는 방식을 택했다. 새로운 제도와 규칙이 만들어지도록 돕고, 협력과 연대를 지향하는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렇게 종합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 LR에 대한 신뢰가 더 높아졌을 뿐 아니라 마을 전체에 촘촘하고 폭넓은 신뢰의 망이 형성되었다.


1단계, LR은 한 지역에서 꾸준히 모습을 드러내며 진지하게 듣고 배우고 변화하려는 의지를 거듭 보여주는 데에 매진한다. 주민들의 이야기, 특히 거리에서 마주치는 소규모 집단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를 경청하는 작업을 중시한다는 뜻이다. 이 단계에서는 반드시 주민들과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단체는 자신들의 계획을 홍보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군가가 질문했을 때만 의견을 이야기한다. 대규모 모임을 추진하는 데에 크게 힘을 쏟지 않는다. 그런 자리에서는 사람들이 독단적으로 행동하기 쉽고, 목소리 큰 사람이 주변을 압도해 변화에 반대하도록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2단계, LR은 마을 곳곳에서 탄탄한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주민들을 파악해 차차 그들에게 사업에 대한 영향력과 주인의식을 부여하면서 다른 주민들을 활동에 참여시킬 만한 확신을 심어준다. 그들의 의견을 포용하고 조직의 의도를 투명하게 밝히면서 정중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마을 주민을 피해자가 아닌 존엄한 존재로 대우하는 느낌을 준다. 램버트는 이렇게 말했다. “수혜자로 취급받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동등한 기회를 얻지는 못하지만, 누구나 자신만의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3단계, LR은 마을 안에서 비교적 규모가 작은 사업을 순차적으로 진행하여 주민들이 단체와 직접 만나는 경험을 통해 신뢰의 토대를 쌓아나간다. 큰 사업을 추진하기에 앞서 마을 미화 작업이나 주택 수리 작업 등을 먼저 진행한다는 뜻이다. 거점 공간 사업을 추진하던 당시 LR은 이렇게 하지 않고 소규모 사업을 재개발 사업과 동시에 진행했다. 마을 안에서 신뢰 관계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규모 사업 계획을 공표했을 때 논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4단계, LR은 신뢰를 쌓아나가며 현지 및 인근 지역 출신을 중심으로 핵심 인력을 구성한다. 이들을 통해 지역과 주민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단체가 현지의 규범과 가치에 맞게 운영되도록 한다. 영향력 있는 주민과 단체들을 자문단에 공식적으로 영입하고 정기적으로 협의함으로써 그들에게 핵심 기구의 방향을 설정하고 확장하며 신뢰 관계를 유지하고 지역사회의 협력을 요청할 권한을 부여한다. 이런 단계를 거치며 기반을 탄탄히 다진 조직은 거점 공간처럼 규모 있는 구조를 유지할 수 있게 되고 다양한 사업과 활동 공간을 운영할 역량을 갖추게 된다.


5단계, LR은 더 많은 단체와 기관이 유사한 방식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사업의 확장과 파생을 장려하여 변화의 선순환이 이어지도록 한다. 그러면 초기에 들인 노력의 성과가 더욱 커지고 해당 지역에서 사회적 활동을 펼치는 기관이 늘어난다. 모범 사례와 영향력 있는 주체를 키워 지역의 변화를 촉진하고 이러한 문화가 확산되도록 하는 것 또한 LR의 전략이다. 


종합하자면 LR은 신뢰를 그저 쌓는 게 아니라 공들여 얻어내고자 한다. 누군가 자신을 당연히 믿어주리라 기대할 수는 없고 신뢰할 만한 존재임을 스스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시간이 든다. 램버트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에게도 우리를 믿어달라고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그 상황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죠. 대신 우리가 맡기로 한 일을 책임지고 수행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LR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주민들의 요청을 기반한 사업을 하기 위해 항상 노력해 왔지만, 중학교 건물 재생 사업에 대한 반발을 경험한 후로는 이러한 방침을 더욱 확대하는 데 힘을 쏟았다. 댄드리지는 이렇게 말한다. “공동체의 필요는 외부의 그 누구보다 내부에서 더 잘 알죠. 그렇지만 자원과 관계망은 내부자에게 없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이해는 내부에만 존재하는 자원입니다······. 자선단체라든지 외부인들이 돈을 가져올 수야 있겠지만, 그 공동체 안에서만 얻을 수 있는 이해 없이는 아무 소용이 없어요.”



협력을 확산하다

LR은 주민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주민들은 마을의 일을 결정할 권한을 가진 존재이며, 그 일을 함께해 나갈 동반자들이다. 램버트는 비공식적으로 구성된 그룹과 협의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를 풀어나갔는데 이 그룹은 결국 14인으로 구성된 거점 공간 및 LR의 공식 자문기구로 발전했다. 여기에는 지역 내의 개발 사업에 오랫동안 관여해 왔으며 초기에는 LR의 사업을 반대했던 안드레 맥컬러Andre McCullough 같은 인물도 있었다. 맥컬러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지난 30, 40, 50년 동안 우리 지역을 위해 하고 싶었던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LR 덕분에 가능해진 거죠. 이제 우리는 서로 돕고 있습니다. 그러니 모두에게 좋은 일이죠.”



이뿐만 아니라, 더피 초중학교Durfee Elementary-Middle School와 센트럴 고등학교Central High School 재학생으로 구성된 청소년 자문위원회가 매달 LR 측과 만나 지역 주민과 학교 측에서 기대하고 바라는 내용을 전달하고, 결정 사항을 점검하고, 새로운 기회가 생기면 주민과 학생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한다.


LR은 마을의 성인 및 청소년 리더들과 함께 단체의 비전을 결정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신뢰, 협력, 사회적 자본을 강화하고자 노력한다. 지역사회와 학교의 리더들을 각종 시범사업단과 자문위원회에 참여시켜 이들이 지역 내에서 더 큰 인지도와 영향력을 얻게 한다. 또한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마을을 발전시킨다는 목적과 부합하는 일에 전념한다. 지역 내에서 무료 행사를 열고 자원을 배분함으로써 거점 공간 파트너 및 입주 기관과 주민 사이에 관계망이 형성되도록 한다. 거점 공간에 방문하는 마을 주민은 한 건물에서 지역 내 비영리단체들이 제공하는 다양한 활동을 모두 접할 수 있다. 무료 기저귀와 분유에서부터, 소아청소년과 치료, 보건시설, 암 환자 지원단체, 노년기 프로그램, 청소년을 위해 단기로 운영되는 바이올린, 체스, 연극, 댄스 활동까지 말이다. 한때 중학교 강당으로 쓰던 공간에서 이제는 합창단 리허설, 학교 댄스 공연, 결혼식, 영화상영회와 같은 지역 행사가 두루 열린다.


LR은 또한 주민들과 개별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마을에서 열리는 소규모 파티나 커뮤니티 행사에 참여하고 따뜻한 계절에는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지역사회를 돌아보고 관계를 형성한다. 입주 기관 모집을 통해 입주해 있는 다른 조직들과 협력하고 지역 활성화에 기여할 의지가 있는 새로운 이해관계자 집단을 확보하고, 학교들 및 시와 협력함으로써 자원을 확대하고 외부와의 사회적 연계를 강화한다. 이런 활동들은 결코 쉽지 않다. 지역의 유동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거주 기간이 긴 주민도 많지만 이주가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해마다 새로운 주민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LR이 강조하는 '사업보다 사람을 우선'으로 활동을 하는 것은 시간이 아주 많이 들고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도 매우 많이 든다. 이는 구조물 개보수나 마을 정화 같은 작업보다 훨씬 골치 아픈 일이고, 단기적으로는 운영상의 효율성을 포기해야 할 때도 많다.


LR은 5백만 달러가 넘는 비용을 투자하여 한때 학교였던 공간을 더피 이노베이션 소사이어티Durfee Innovation Society, DIS로 바꾸어놓았다. 더피라는 이름은 학교명을 따온 것으로 마을에 더 많은 기회가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학생들이 지은 이름이다. DIS에는 지역사회 봉사, 일자리 및 인력 개발, 청소년 프로그램 등을 추진하는 비영리단체 및 사회적 기업 39개 사가 입주해 있다. 그중 70% 정도가 흑인이 주도하는 조직이다. 이 조직들은 이전에는 사무실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곳이다. 하지만 이제 이곳에는 230명의 정규직 직원이 상주하며, 파트타임 직원들도 200명 이상 고용되어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지역 주민이다. 외부의 기회와 지원이 DIS를 통해 주민들과 연결되고 있기 때문에 지역 경계를 넘어서는 연결망이 형성되고 있는데 이는 이전에는 흔치 않았던 일이다. 일단 거점 공간에 입주해 DIS의 일원이 되면 입주 기관은 마을 재생 활동의 일원이 된다.


DIS에 입주한 여성 의류업체 보티키BouTiki의 대표 테리사 싱글턴Teresa Singleton은 이렇게 말했다. “지역사회의 어린이, 성인, 노인을 지원하는 활동을 다른 회사 대표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특히 좋았습니다. 저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거든요.”


또한 LR이 실시하는 주택 수리 작업과 해마다 자원활동가를 모아 추진하는 폐허 제거 작업 덕분에 거점 공간 주변 약 4제곱마일의 환경이 상당히 개선되었다. 학교 건물을 넘겨받던 때부터 LR이 마을에서 집중적으로 활동한 결과였다. 광범위한 움직임들이 디트로이트 안정화와 회복을 촉진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지만, 지역재생의 구심점으로서 DIS가 미치고 있는 영향력은 특별하다. DIS는 특정한 장소가 활동을 확장하고 연결하는 촉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연결과 제도들을 통해 더 많은 주민이 삶을 유지하고 개선할 수 있는 사회 구조에 들어갈 수 있게 되면, 주민들이 사회적 자본의 혜택을 누리고 풍요로운 삶을 살 가능성이 높아진다. LR 자문위원회의 일원인 테런스 윌스Terence Willis는 “단지 건물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에서나 다른 지역에서 사람들이 보고 익힐 만한 지역사회 재생 사례를 만들어 재생 활동이 자연스레 퍼져 나가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재생의 효과는 뚜렷하다. 거점 공간 인근 지역인 덱스터 린우드Dexter-Linwood에서는 범죄가 줄고 방과 후 학습, 기술 교습, 리더십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이 늘었고, 이전보다 더 살기 좋은 지역으로 변하면서 부동산 가격도 오르고 있다. 2021년 LR은 디트로이트 전역에 걸쳐 1,810개 구역block을 미화하고, 주택 194채를 수리하고, 건물 2,062채의 외벽을 재단장하고, 현물 포함 총 3천8백만 달러를 도시 전역의 자산에 투자했다. 이 자산은 모두 LR의 기여로 구축된 지역사회 내의 연결망과 사회적 신뢰를 통해 늘어난 것이다.



애팔래치아 지역에 적용하다

우리는 LR의 디트로이트 활동 사례를 통해 단체의 리더가 지역에서 신뢰를 구축하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신뢰에 기반한 협력의 중요성은 지리나 인구 구성이 미시간주 동부와는 크게 다른 켄터키주 동부에서도 다를 바 없다. 애팔래치아 지역에서는 겨우 몇 마일 거리에 있는 외부인도 경계의 대상이다. 카운티별로, 심지어는 한 카운티 내의 지역별로도 구분이 심하다. 이렇게 지역주의가 극심한 탓에 여기서 활동하는 조직은 각 지역의 특성에 맞추어 관계를 형성하고 접근방식을 조율해야 한다.


이런 지역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지역 리더십의 모델을 만들고 환경에 적응한 단체로 파트너스 포 에듀케이션를 꼽을 수 있다. 1995년 드리마 젠트리Dreama Gentry가 주도해 설립한 PFE는 다양한 전략을 활용하여 지역 사회의 어린이들과 그들이 자라고 있는 사회적 환경에 최대한의 영향력을 미치고자 한다.


이 지역 출신으로 베뢰아 칼리지Berea College를 졸업한 젠트리는 진학과 구직을 위해 타지로 향했다. 이런 선택은 애팔래치아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에겐 당연한 것이었다. 젠트리는 켄터키대학교 법학대학원을 나와 볼링 그린Bowling Green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하지만 젠트리는 애팔래치아 출신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고향을 향한 강한 애착이 있었고 언젠가 좋은 기회를 얻어 애팔래치아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이런 젠트리의 소망을 모교에서 이루어 주었다. 현지의 학맥과 인맥, 전략적 사고방식, 카리스마, 위험을 피하지 않는 용기를 지닌 젠트리가 베뢰아 칼리지의 특수교과과정을 담당할 적임자로 꼽힌 것이다. 래리 신 총장Larry Shinn은 젠트리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조언해 주고 믿고 격려해 주었다. 이런 신뢰 덕분에 젠트리는 인근 지역인 켄터키주 록캐슬Rockcastle 카운티에 파일럿 프로그램을 개설할 수 있었다. 


법조계에서 익힌 능력을 발휘해 젠트리는 학교와 학생에게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미국 전역의 교육자들이 발표하는 최신 기법과 연구 내용을 조사하면서 다방면으로 전문성을 쌓아나갔다. 젠트리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PFE로 발전시켰다.


PFE는 애팔래치아 지역 고등학생 중에서 대학 교육을 받기 원하지만 형편이 어렵거나 역량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기회를 얻지 못하는 학생을 더 효과적으로 발굴하려는 시도로부터 시작되었다. 내부 문건에 따르면 PFE는 “지역 내에 묻혀 있는 재능 있는 청소년들을 제대로 발굴할 뿐 아니라 이들을 성장시키고 방향을 잡아주는” 포괄적인 역할의 조직으로 빠르게 진화했다. PFE는 베뢰아에 실력 있는 지원자를 더 많이 불러들일 뿐 아니라 지역 전체의 교육 수준을 끌어올리고자 했다.8 그렇기 때문에 현재 PFE는 지역 내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 활동을 지휘하는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PFE가 다루는 문제는 투자자, 리더, 롤모델이 지역을 빠져나가면서 촉발된 사회 붕괴 현상뿐 아니라 실업, 빈곤, 약물 중독, 절망despair, 역기능 가정family dysfunction 등 광범위하다.9 경제적 사회적 위기 때문에 더욱 취약해진 가정과 학교들의 상황은 PFE의 확장을 더욱 가속화했다. PFE는 켄터키주 애팔래치아 인근 54개 카운티 중 31개에서 운영되고 있고, 420명, 4천 4백만 달러 규모의 조직으로 확장되었다.


사회적 기반이 취약한 농촌 지역에서는 학교가 유일한 공식 기구인 경우가 많은데, PFE는 바로 이 학교를 발판으로 삼아 5만여 명의 청소년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PFE는 할렘 칠드런스 존Harlem Children’s Zone, HCZ의 지역공동체학교community school 모델을 도입했는데, 이는 어린이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 내의 모든 요소에 개입하는 통합적 접근법으로, 뉴욕시 흑인 거주지역의 교육 수준을 끌어올리는 성과를 가져온 모델이었다. PFE는 이 기법을 차용하여 애팔래치아 지역에 맞는 모델을 새로 만들었다. HCZ는 장소를 기반으로place-based 영유아기부터 취업 과정까지를cradle to career 종합적으로 연계하여 청소년, 가정, 지역사회를 지원하는 체계이다. 사회적, 교육적, 경제적인 측면의 모든 지원을 제공하는 이 모델은 미국 전역에서 본보기로 삼는 모델이지만, 애팔래치아에 적용하려면 지역의 필요에 맞춰 변형할 필요가 있었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부모에게 대학 교육의 장점을 알려주는 것도 애팔래치아 지역에 필요한 활동이었다. 젠트리는 이렇게 말했다. “애팔래치아 출신인 저는 우리 집안 여성 중에서 최초로 대학에 진학했어요. 대학 학위 덕에 부모님은 상상도 못 하셨던 기회의 문이 저에게 열렸죠. 애팔래치아의 모든 학생에게 그런 문을 열어주는 것이 제 일이고 소명이에요.”10 하지만 젠트리는 부모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서 두 가지 장벽을 넘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대학 교육을 받으면 부모 세대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과 교육을 받고 나면 자녀들이 고향을 떠나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었다.11 이런 염려를 해결하기 위해 PFE는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학생과 가족의 학교 방문을 추진하고, 기대 수준을 높이고, 학생들이 대학에서 익힌 능력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PFE의 결과는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4개 지역에 속하는 이곳에서 이루어낸 성과를 보여줄 뿐 아니라 앞으로 해야 할 활동 범위를 뚜렷이 드러내 준다.12 기어업GEAR UP이라고 불리는 PFE 대표 프로그램은 대학 진학을 도와주는 6개년 프로그램인데, 기어업 프로그램을 시행한 지역에서는 고등학교 졸업률이 74%에서 94%로 상승했다. 미 교육부의 빈곤퇴치 이니셔티브인 프로미스 네이버후즈Promise Neighborhoods가 시행되는 지역에서는 PFE가 2012년에서 2017년까지 5년 동안 유치원 진학 준비율을 16%에서 36%로, 수학적 사고력을 27%에서 40%로, 영어 활용 능력을 35%에서 50%로 향상시켰다. 또한 미 주택도시개발부의 빈곤퇴치 이니셔티브 프로미스 존즈Promise Zones 시행지 8개 군에서는 PFE가 수학 및 독해 성적을 주 평균보다 더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 중 몇 가지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가 적용할 수 있었던 레슬리 카운티 고등학교에서는 PFE가 2010년 68%였던 이 학교의 졸업률을 4년 만에 97%로 끌어올려 주 내 230개 고등학교 중 224위였던 순위를 16위로 올려놓았다.



지역 안으로 더욱 깊게 들어가 힘을 실어주기

PFE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PFE는 대상 지역의 사회적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들을 펼친다. 이러한 활동들은 가족, 마을, 지역사회, 학교 등 개인을 둘러싼 여러 층위의 사회적 환경을 강화한다. 수많은 학생이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고, 굶주리며,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살기도 하고, 거처 없이 지내기도 한다. 많은 가정이 해체되었고 보금자리가 되어주지 못하며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젠트리는 이렇게 말했다. “주 양육자가 부모가 아닌 학생이 절반이 넘는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는 교장선생님들이 계셨습니다.”13 지역사회에는 기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만한 결속력과 리더십이 부족할 뿐 아니라 재원도 없다. 그리고 기금과 인력 문제에 시달리는 학교, 특히 재학생이 많고 대학 진학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고등학교들은 청소년의 필요를 전혀 채워주지 못한다.


켄터키 동부 출신인 젠트리는 애팔래치아처럼 관계지향적인 지역에서 인간관계와 신뢰가 여타 사회적 활동보다 얼마나 더 중요한지 일찌감치 깨달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PFE는 실무진을 지역사회와 결속시키는 전략을 도입했는데, 이는 현장에서 신뢰를 얻는 데 필요한 전제 조건이다. 가능한 한 지역 내에서 인재를 발굴하고 그들을 업무에 밀접하게 배치하는 데에 중점을 두어 사업과 정책을 추진한다. 또한 사업 대상 지역 출신을 최대한 많이 고용한다. 그들은 지역 내의 인간관계와 문제, 일이 돌아가는 방식에 관해 외부인은 잘 모르는 생생한 정보를 갖고 있어 계획대로 사업을 실행하려면 어떻게 조정하고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지 알고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외지에서는 쉽게 접할 수 있는 교육과 경험, 실무 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초기에 업무에 적응시키려면 교육을 더 많이 해야 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PFE는 지역에 숨은 인재들을 발굴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연방정부의 아메리코AmeriCorps 사업을 활용하기도 한다. 아메리코는 성인 대상으로 비영리단체나 공공기관에서 최장 3년까지 적정 급여를 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사업의 참여자들은 학교에 직접 투입되어 학생들의 멘토로 활동하기도 하고, 다양한 공공 프로젝트나 학교나 PFE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업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이렇게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나면 온라인으로 학사 학위를 이수하는 등 역량 강화 활동을 하도록 지원받는다. 그 결과 해당 학교의 정규직 직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아메리코는 높은 실업률을 낮추고 지역사회 전반에 봉사의 문화를 형성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PFE 전체 직원 중 5분의 4가 현지 사무소, 학교, 지역사회에서 일한다. 현재 대상 지역 내에 있는 PFE의 사무실은 총 8개이다. PFE는 학생부터 보호자, 학교 관리자, 교사, 공무원, 지역사회 리더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과 장기적인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일을 우선시함으로써, 여느 비영리단체처럼 문제에 대응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PFE는 위험을 예측할 수 있는 초기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높은 신뢰도를 유지하고 있어 문제를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동의 외모나 가정 상황, 학교 성적 등의 변화 등 위험 요소를 빠르게 파악하여 문제 발생을 예방할 수 있다. PFE는 지역사회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지역사회, 학교, 학생 차원에서 놓치기 쉬운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또한 PFE는 의사결정을 분권화한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직원과 파트너에게 권한을 부여하여 전체 인구가 4,000~5,000명(예: 오슬리 카운티)에 불과한 지역사회에서 구성원들이 업무를 주도하고, 공통 기준을 충족하는 최선의 전략을 결정하며, 퍼실리테이션, 데이터 분석, 모금과 같은 기술을 배우고, 다른 분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집단적 역량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한다. 예를 들어 지역 감독관은 담당 구역 내에서의 PFE 기금 활용 방식에 관해 상당한 발언권을 갖는다. 이렇게 현지에서 의사 결정권을 가지면 지역 내에서 합의한 내용을 반영해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결정 사항이 더 쉽게 받아들여지고 이후 실행도 더 수월할 수 있다.


또한 PFE는 자체적으로 데이터를 취합하고 분석할 뿐 아니라 데이터와 분석 도구를 실무진, 교사, 학교 리더, 공무원 등 현지의 의사결정권자들과 공유한다. 이로써 작은 변화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어 데이터에 기반해 꾸준히 개선해 나가는 문화를 장려한다. PFE는 학교를 지원하기도 한다. 학교가 데이터를 중심에 두어 최대한 많은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PFE는 결과를 중시하지만 같은 목표를 추구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아주 다른 접근법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예를 들어 유치원 진학 준비율의 수준이 낮다고 할 때, 어떤 카운티에서는 돌봄 제공자 교육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현상일 수 있지만 다른 카운티에서는 시설 미비가 원인일 수 있다.


PFE는 이중초점dual-focus 접근법을 활용한다. 이는 지역사회가 PFE의 목표를 추구하는 동시에 자체적으로도 역량을 키우도록 돕는 방법이다. 유아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가정도 강화시킨다. 멘토링 프로그램은 학생과 보호자를 모두 지원한다. 교육 프로그램은 업무 능력도 동시에 강화하도록 설계한다. 학생을 넘어 지역의 역량까지 강화하면 학생이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더 강력히 지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투자한 까닭에 그들이 졸업 후 고향과 가족을 떠나 타지로 이주하면서 발생하는 두뇌 유출의 위험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지역사회에도 도움이 된다.


녹스 카운티의 고등학생 케일린 맥도널드Cailin McDonald는 이렇게 말했다. “한 번도 제가 리더가 될 수 있다거나 진정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저희 커뮤니티에서 내가 해 볼 수 있었던 여러 종류의 일들을 떠올려보고, [PFE에서] 제가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던 것들을 생각해 보면······ 그런 경험들은 우리 지역에도 도움이 되었고 제가 성장하는 데에도 무척 유익했어요.”


PFE는 파트너십으로 일하는 편이 장기적으로 더욱 지속 가능한 방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금은 바닥날 수 있지만 파트너십으로 형성되는 관계는 씨앗과 같아서 PFE의 활동 대상지에서 다시 싹을 틔워 봉사활동이 지속되도록 만들어 준다. 그래서 PFE는 어디서든 상황이 허락하는 한 협력 단체와 학교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새로운 기회와 자금원을 알아보고 교육에 참여하도록 장려한다. PFE는 지역의 단체들이 발전하는 것이 곧 PFE의 사명을 이루는 길이라고 본다. 때로는 협력 단체가 자체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학습하여 추가적인 기금을 확보하지 않고도 이전과 동일한 수준의 사업을 운영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PFE는 실무자들이 지역사회 내의 협력 단체에 많이 들어가기를 바란다. PFE가 내부 교육에 상당한 투자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실 이런 식으로 실무자를 떠나보내면 단기적으로는 조직에 비용이 발생하지만 새로운 기술과 관점, 리더십을 지닌 인력을 공급받은 지역 내의 기관들은 더욱 탄탄해진다. 특히 실력 있는 교사, 상담사, 관리자가 부족한 협력 학교에는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증거 기반 모범 사례를 기반으로 운영하는 PFE의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이들이 현지 학교와 행정기관 내부에 점차 늘어나게 된다. 이런 식으로 PFE는 차근차근 지역사회를 강화하면서 고유의 사명을 이루어나갈 능력을 키운다.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

신뢰를 구축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조직을 확장하고, 많은 사람을 상호 발전적인 관계망과 기관에 참여시키며, 지역 전체의 기대와 기준을 높이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자본과 집단적 효능감을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신뢰를 구축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LR과 PFE는 이러한 난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함으로써 다른 지역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두 조직은 장소에 기반한 프로젝트에 관해 더 효과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일반적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는 '무엇을', '어디서' 해야 할지를 먼저 질문하지만, 우리는 '누가', '언제' 해야 할지를 질문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누구who’ 함께 할 것인가.

첫째, 반드시 현지인을 채용하고 실무진을 지역사회와 결속시켜야 한다. 이는 신뢰를 구축하고 지역사회의 필요를 반영할 수 있는 균형 잡힌 관점과 접근법을 개발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LR과 PFE는 조직의 전략에 이러한 방침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두 조직 모두 대상 지역의 지리적 위치를 고려하여 현지 출신이거나 그 지역에 익숙한 사람을 우선 채용한다. (참고로 PFE는 전 직원이 애팔래치아 출신이다.)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채용에서 끝나지 않는다. 두 조직 모두 현지 리더와 실무진에게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다. PFE는 현지 지식과 기존 관계를 가장 많이 고려할 가능성이 높은 현장 직원들에게 권한을 부여한다. 또한 LR은 활동 대상 지역 출신의 자문위원회와 실무진에게 권한을 부여한다. 두 경우 모두 현지 공무원, 파트너, 지역사회 리더, 실무진과 긴밀히 협의하여 의사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거나 기술적 지식에만 근거하여 결정을 내릴 때와는 다른 책임감이 생긴다. 이렇게 온갖 노력을 기울인 결과, 두 조직 모두 물질적 목표에만 집중하고 외부 지원에 의지하여 운영할 때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파트너와 시민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언제when’ 할 것인가

둘째, 신뢰를 얻는 과정은 느리고 점진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LR은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로운 지역에서 규모 있는 사업을 시도하려면, 작은 일부터 시작하는 편이 더 성공적이었다. 시행착오를 통해 LR은 점차 주민과 함께 일하는 방법을 개발했고, 지역사회에 뿌리내리고 주민의 신뢰를 얻는 활동의 단계를 파악했다. 또한 PFE는 점진적으로 성장하고, 모델을 먼저 실험하고, 관계와 기술을 쌓고, 지역사회 구성원의 신뢰를 얻는 것이 핵심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무엇what’을, ‘어디where’에서 할 것인가

셋째, 누군가의 노력이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는 그 시도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환경에 내재된 장애물들이 해결되었는지에 달린 경우가 많다. 지역사회의 신뢰와 사회적 자본을 강화하려는 모든 활동은 시간이 흐르면 원래의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 그 활동이 직접적인 활동이든 간접적인 활동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거점 공간을 운영하면서 LR은 단순히 입주 기관을 모집하는 수준을 벗어나 협력적인 지역사회를 구축하고 마을 재생을 위해 주민들과 함께 일할 의향이 있는 조직을 찾고자 했다. 단순히 주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고 각자의 이익을 증대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서로를 연결하려 노력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PFE는 이중초점 접근법과 같은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실무자가 파트너로 변신하는 것을 환영하는 등 활동 대상 지역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실무자, 파트너, 현지 기관을 확보해 나가고자 했다.


마지막 단계

결국 이러한 노력은 모두 현지 상황에 맞추어 조정해야 한다. 디트로이트의 경우, LR은 대규모 사업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역할을 더피 이노베이션 소사이어티DIS 같은 현지 자문단에 맡겼다. 켄터키의 경우, PFE는 각 카운티 및 교육구에 맞추어 프로그램을 변형했다. 확장도 중요하지만 꾸준히 성공을 거두려면 각각의 마을 또는 지역 상황에 맞게 모델을 변형해야 한다. PFE는 지역 리더들의 특성과 재능, 해당 지역사회 고유의 역사, 미래 방향성에 대한 결정 등을 신중하게 고려했다.



물질적 시각을 넘어서

이상의 두 가지 사례 연구 결과를 일반화하자면, 사회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우리는 물질적 필요와 손에 잡히는 성과에 집중하는 근시안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특정 집단이나 마을의 위기를 극복하거나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자 설계한 사업을 추진할 때는 먼저 관계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들에 답해보아야 한다. 이를테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만큼 신뢰가 충분히 쌓였는가, 그렇지 않다면 신뢰를 쌓기 위해 어떤 단계를 거쳐야 하는가? 사업 대상 집단의 신뢰를 얻기 어려운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지는 않은가? 좀 더 넓게 바라보면, 어떻게 해야 사회적 관계망과 신뢰를 강화하여 특정 지역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이러한 유대관계를 더 나은 사회안전망이자 변화의 동력으로 만들 수 있는가? 외부 조직들과 지역사회의 각 부문 사이의 탄탄하고 건설적인 연결고리를 맺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고려해 볼 때, 우리는 이런 연결고리를 어떻게 강화할 수 있을까?


여느 사업이나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취약한 주, 사회, 마을에서 진행하는 사업이라면 반드시 물질적 측면을 넘어 사회적 측면을 집중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주민 간의 사회적 신뢰가 대체로 낮고, 서로 의지할 만한 관계망을 형성하거나 일상 공간에서 규범을 작동시키고자 집단행동을 벌이기 어려우며 기회를 누리기에는 사회적으로 너무나 단절되어 있는 경우, 주민들은 자기 지역에, 또는 그 안에서 자기가 맡을 역할에 대한 기대 수준을 낮춘다. 이런 비관주의는 다른 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주민들을 연결하고 영향을 미치고 있는 조직들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LR과 PFE 같은 조직은 현지의 인재를 활용하고 활동과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지역의 맥락에 맞추어 사업을 조정하고 개선함으로써 이러한 역학관계를 변화시키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개인과 지역사회의 성과를 끌어올리고자 하는 조직이라면 이같은 전략을 고려해 볼 만하다.




참고

1 .     리 레이니, 스캇 키터, 앤드류 페린, <미국에서의 신뢰와 불신>, 퓨리서치센터, 2019.7.22

2.     로버트 샘슨, <위대한 미국 도시: 시카고와 지속적인 이웃 효과> 시카고, 시카고 대학 출판부, 2012

3.     레이니, 키터, 페린, <미국에서의 신뢰와 불신>

4.     앤 스나이더, <인종, 관계, 후회>, 브레이킹 그라운드, 2020.7.31

5.     앨런 말라크, <분열된 도시: 미국 도시의 빈곤과 번영>, 워싱턴 DC, 아일랜드 프레스, 2018

6.     앤 스나이더, <디트로이트 이웃, 삶을 위한 리모델링>, 비터스위트 월간, 2019.1

7.     스나이더, <인종, 관계, 후회>

8.     드리마 젠트리, J. 헌터 모건, 테리 톰슨, <성장을 위한 조건: 농촌 지역사회의 앵커 기관으로서의 대학>, 미공개 내부 문서, 2019

9.     드리마 젠트리, <대학이 농촌 학교와 지역사회를 지원하는 방법>, 접근성, 규정 준수 및 형평성, 2020. 3/4월

10.    드리마 젠트리, <교육 형평성의 급진적 성격>, TEDxCorbin 강연, 2019.3.9

11.     사라 와이즈먼, <커져가는 격차 해소>, 인사이드 하이어 에드, 2022.10.3

12.    나머지 세 곳은 아메리카 원주민 보호구역, 남부 시골 지역, 멕시코와 국경을 접한 지역이다.

13.    젠트리,  <교육 형평성의 급진적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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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H D. KAPLAN

세스 D. 케플런은 존스홉킨스 대학교 폴 H. 니체 고등국제학대학(Paul H. Nitze School of 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 SAIS)에서 강의한다. 2023년 10월 저서 <깨지기 쉬운 마을(Fragile Neighborhoods: Repairing American Society, One Zip Code at a Time)>을 출간했다. 필자는 라이프 리모델드를 소개해 준 앤 스나이더(Anne Snyder)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