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변화]속도를 늦춰야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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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 일반 · 시스템변화


북 리뷰 : <느린 차선>

속도를 늦춰야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다

2023-4


REVIEW BY SOPHIE BACQ



Summary. 사회적기업가 사샤 하셀마이어는 지속적인 사회변화를 위한 가장 효과적 방법으로 느림을 주장한다. 



<느린 차선: 왜 빠른 해결책이 실패하며 진정한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 내는가>

사샤 하셀마이어, 240쪽, 베렛 쾰러 출판사, 2023년


심각한 사회 문제들은 우리를 새로운 긴급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치명적인 바이러스부터 거센 산불까지, 전세계적으로 우리는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시간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생각에 쉽고, 자연스러우며, 인간적인 반응이 따라 나온다. ‘빨리빨리 행동해야만 해!’


정말 그렇게까지 급하게 움직여야 할까? 사회적기업가이자 아쇼카Ashoka 펠로우인 하셀마이어의 새 책, 《느린 차선: 왜 빠른 해결책이 실패하며 진정한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 내는가The Slow Lane: Why Quick Fixes Fail and How to Achieve Real Change》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하셀마이어는 지난 몇십 년 동안 전 세계 150개 이상 도시에서 거버넌스까지 파고든 혁신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경험하며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사회변화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 말이다.


느린 차선에서 하셀마이어는 사회변화를 이뤄내고 유지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그리고 인종차별이나 기후변화와 같은 시스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독자에게 제시한다. 그는 문제 해결에 대한 접근법이 ‘지름길을 찾아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고방식에 지배되어 왔다고 말한다. 하셀마이어는 이와 같은 접근법을 ‘빠른 차선Fast lane’이라고 일컬으며, 실리콘밸리 산업 전반에 만연한 ‘빠르게 움직이고 빠르게 혁신하라’는 신념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하셀마이어의 관찰에 의하면 스타트업 세계에는 명확한 각본이 있다. 투자자는 쉽게 이익을 늘릴 수 있는 단기적이고 ‘만능의’ 해결책에 열광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셀마이어는 느린 차선 접근법을 제안한다. 느린 차선 접근법은 경청하고 신뢰를 확장하며 관계를 발전시키고 힘의 균형을 찾아가는 방식, 즉 시스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그는 속도를 줄이는 방법이 “때론 득보다 해를 끼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빠른 해결법에 열광하는 세상”을 거스른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빠른 속도의 해결 마인드셋을 지닌 사람들과는 달리, 느린 차선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문제를 단순히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고, 실패를 지속적으로 양산하는 구조적 불의와 고장 난 시스템을 해결하는 데 목표로 둔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우리는 느림을 추구하는 다양한 운동이 시작되는 것을 목격했다. 슬로우 푸드슬로우 패션슬로우 리빙과 같은 운동 말이다. 이러한 시도들은 모두 문화와 전통 그리고 지역사회에 기반한 거래 양식을 다시 사람들의 삶에 연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셀마이어는 느린 차선 접근 방식이 적용된 100개 이상의 사회운동을 조사해, 느린 차선 접근법의 다섯 가지 원칙을 발견했다.


1. 성급하게 움직이지 않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이해하고 인내한다.

2. 의도적으로 광범위하게 듣고, 깊게 경청하며, 듣는 과정에 선입견이나 판단이 개입되지 않도록 한다.

3. 소외된 이들에게 권한과 공간을 줌으로써 아이디어를 낼 수 있게 하고, 주체성을 부여한다.

4. 지배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날 수 있도록 호기심을 키워주며,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솟아날 공간을 만든다.

5. 타인을 지배하고 침묵하게 하는 도구로 기술을 사용하는 대신 성장형 사고방식의 가치와 행동을 촉진하는 도구로 받아들인다.


하셀마이어에 따르면, 이러한 원칙들은 어디에서나 적용될 수 있고, 느린 차선을 추구하는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하셀마이어는 느린 차선의 원칙들을 예시와 함께 소개하는데, 낙태법을 바꾼 아일랜드 시민의회부터 죄수들을 문제 해결에 참여시키며 평화를 되찾은 과거 폭력적이었던 런던 감옥까지 다양한 사례가 등장한다. 40년 동안 진행된 카투체Catuche의 변화는 이 책에서 느린 변화에 대해 가장 설득력 있게 설명한 사례이다. 카투체는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Caracas의 공식적인 ‘불법’ 빈민가로 불렸지만,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로 변모했다. 40년 전, 카투체에 몇몇 가족이 비공식적으로 정착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의 존재나 주민들의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7천 명의 사람과 그들의 삶 그리고 주거지가 관료들에겐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라고 하셀마이어는 설명한다. “오랜 시간 동안 정부는 가난한 불법 정착자들에게 시스템적으로 출생증명서를 발급하지 않았습니다. 시민권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투표권과 의료 및 교육 서비스, 기본적인 사회보장 또한 받을 수 없었습니다.”


1990년대, 젊은 건축학 교수였던 유라미아 마틴 로드리게즈는여러 학자들과 건축가인 그녀의 아버지 그리고 활동가들과 협력해, 빈민가를 보다 존엄성 있는 방식으로 개선하기 시작했다. 빈민가 주민들의 삶을 힘들게 하는 비위생적인 식수 문제부터 범죄조직의 폭력 문제까지, 로드리게즈 팀은 카투체의 주민들이야말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가장 잘 알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이 문제 해결 과정에 반드시 참여하도록 했다. 한 가정의 어머니부터 범죄조직의 조직원까지 카투체의 모든 사람들이 더 나은 그리고 더 정의로운 삶에 대한 자신의 꿈을 나눌 기회를 얻었다. 로드리게즈의 팀은 주민들이 안전하다고 느낄만한 공간에서 대화하는 것을 핵심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멀리 떨어진 사무실에서 열리는 격식을 차린 미팅에 참여할 것을 강요하기보다 주민들의 집 문간에서 대화를 나눴다. “카투체 공동체는 자기결정권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했어요. 전문 컨설턴트에게 자문을 받는 방식은 아니었죠.”라고 하셀마이어는 회상한다.


카투체의 예시는 느린 차선의 4가지 원칙을 분명히 보여준다. 로드리게즈와 체인지메이커들은 시급한 문제를 가장 분명하고, 쉬우며, 값싼 방법으로 즉시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부로부터 몇십 년 간 무시당하고 차별받아 온 시민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주민들의 조언을 가치 있게 여겼다. 또한 체인지메이킹의 힘을 공유하고, 문제 해결 과정에서 호기심과 겸손한 태도를 유지했다. 이와 같은 집단적 노력은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빈곤과 가난의 고리를 끊었고, 더 나아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 어려운 결과를 만들어 냈다. 시민들이 다 잃어버렸다고 느꼈던 희망을 되찾기 시작한 것이다. 하셀마이어는 카투체를 통해 지속가능하고 통합적인 해결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문제를 재구조화하며, 실제적인 필요를 지원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실험해야 하는 것과 이를 위해 공동체의 이해관계자들을 포용하고 참여시켜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느린 차선은 시스템 변화와 공감 중심 디자인 등 사회변화에 대한 기존의 접근방식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가장 큰 특징은 인간중심이라는 점이다. 느린 차선은 사람에 대한 존중이 변화에 가장 확실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셀마이어는 우리가 반드시 인간관계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로에게 취약성을 드러낼 수 있고, 개방적일 때 우리는 멈출 수 있고, 경청할 수 있으며, 행동할 수 있고,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킬 힘을 공유할 수 있다.


하셀마이어는 이와 같은 고단한 일을 수행하려면 이익보다는 기쁨joy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각적인 이익을 얻는 데 몰두하면, 점점 더 이익을 늘리기 위한 반복적이고, 단기적이며, 빠른 해결책을 택하게 된다. 그러면 결국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한 혜택을 우선시하지 못한다. 하셀마이어는 독자들에게 “기쁨이 당신의 북극성이 되게 하라”고 조언한다. 왜냐하면 기쁨이란 우리를 “피할 수 없는 좌절을 극복하고 희망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사회변화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기쁨은 지속적인 변화를 실현하는데 필요한 참을성과 인내심을 공급해준다. 하셀마이어의 기쁨에 대한 서술은 동양의 불교철학을 상기시킨다. 불교철학에서는 기쁨이 다양한 사람과 종교를 통합하게 만들어 준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와 달라이 라마는 2016년 그들의 책, 《더 북 오브 조이The Book of Joy》에서 모든 것이 빠르고 어려운 세상에서 행복을 찾고 평화를 전파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쁨을 제시한다.


하셀마이어는 성공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시도에는 겸손과 정직함이 필수 요소임을 덧붙인다. 체인지메이커들이 겸손하고 정직하다는 것은 공동체의 필요에 대해 자기 멋대로 어림짐작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진정한 리더십이란 힘을 공유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하며, 특히 체인지메이커들이 해결하려는 사회문제로 인해 이미 영향을 받아온 사람들에게 힘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하셀마이어는 ‘진정한 사회적 진보’를 이루려면 ‘배려, 존중, 포용, 정의, 호기심, 휴머니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돌보아야 할 대상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서for the people’ 변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과 함께with the people’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지속가능한 변화를 만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셀마이어는 5장에 걸쳐 5가지 원칙을 설명한다. 그리고서 그는 6장에서 시선을 돌려, 느린 차선은 민주주의 정부의 형태를 강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제시한다. 느린 차선 접근법이 가진 정치적 잠재력을 보여주기 위해 하셀마이어는 나바호 자치국의 공중위생 및 원주민 권리 운동가이자 북반구 선진국Global North을 위한 슬로우푸드 운동의 원주민 상담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데니사 리빙스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리빙스톤은 수십 년 전 나바호 공동체의 당뇨병 유행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공동체를 조직화하고 교육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하셀마이어는 이에 대해 “보건 상황만을 개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체를 탈식민화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데에도 기여했다.”라고 설명했다. 리빙스톤은 식품 시스템을 개선함으로써 여성의 권력과 나바호의 오랜 모계 전통을 회복시켰고, ‘여성을 의사결정 과정에 포함시켰던 부족의 오랜 전통’을 회복시켰다. 포용과 힘의 공유를 통해 여성의 역량을 강화하고, 여성의 아이디어를 가치 있게 여기는 변화는 나바호 자치국 의회의 성 균형을 바꿔놓았다. 2021년에는 의회 구성원 24명 중 단 2명만이 여성이었지만, 현재는 9명까지 그 수가 늘었다. 하셀마이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지속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리빙스톤의 운동은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혹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말해줄 뿐 아니라, 지속성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이끕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셀마이어는 시간으로 정의되는 연속성이 관계를 형성하고, 신뢰를 쌓으며, 안정성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사회변화를 위해서는 피상적이지 않고 실질적인 투자, 깊이 있고 정직한 투자가 필요하다.


하셀마이어는 결론을 맺으며, 우리 모두가 직업이나 환경과 상관없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책 도입부의 내용으로 돌아간다. 그는 독자들에게 성찰을 요구하는 질문들을 던진다. 빠른 차선 사고방식이 얼마나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느린 차선 접근법을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반성을 해보라는 것이다.


당신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빠른 차선 사고방식이 있는가? 조직에서 어떻게 느린 차선 사고방식과 관행을 장려해야 할까? ‘오랫동안 지속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대상을 위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대상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도록 촉진하고 우리의 목표를 재구성할 수 있을까? … 변화에 보다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어떻게 우리의 호기심을 기를 수 있을까?


이 책은 전반적으로 큰 깨달음을 준다. 하셀마이어의 설득력 있는 주장과 행동 지침 덕분에 필자는 우리가 거대한 어려움 속에서도 길을 찾아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길은 찾는 것은 사회혁신가들뿐 아니라 시민 전체가 함께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해결책이 지속되도록 유지하는 방법, 해결책이 필요한 사람들의 주인의식을 지속시키는 방법 그리고 여러 관련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전략 등에 대해서는 하셀마이어의 책이 다룬 것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서 더 많이 분석하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필자는 속도를 늦추고 신뢰하며 경청하라는 하셀마이어의 조언이 무척 반갑다. 그의 조언은 지금도 유효하지만,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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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E BACQ

소피 바크는 스위스 로잔의 국제경영대학원 사회적기업 교수이다. 그녀의 최근 연구는 시민자산 창출, 체인지메이커, 팀플레이어, 지역 주민들이 공동체를 살리고 강화하기 위한 협력 방식을 주로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