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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문화,
보건의료 시스템을 혁신하는 길
2023-4
WHITNEY EASTON
Summary. 보건의료 산업에 대한 신뢰 부족과 낮은 만족도는 심각한 문제이다. 환자의 의료 경험을 개선하고 보건의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보건 의료기관과 서비스 제공자는 총체적인 방식으로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보건의료서비스는 환자들로부터 신뢰와 만족을 얻는데 실패했다. 2022년 에델만 신뢰 지수Edelman Trust Barometer에서 27개국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보건의료서비스에 대한 신뢰도는 평균 66%였다. 미국에서는 대다수의 국민이 보건의료 시스템이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딜로이트 보고서에 따르면 환자의 불만족도가 사상 최고치에 달했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도는 인종과 민족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한편 시스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적 조건이 마련되었지만, 평등한 건강권이라는 목표는 과거의 방식과 도구로는 실현될 수 없다. 그래서 필자는 ‘치유의 문화cultures of healing’를 제안한다. 치유의 문화는 인간중심적이고, 총체적이며, 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보건의료 서비스를 실현하려는 비전으로, 환자들의 낮은 신뢰와 만족도를 해결하고 평등한 건강권을 구현하고자 한다.
치유의 문화라는 접근 방식을 취하려면 보건의료 업계가 문화에 대한 미묘한 관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늘날 의료업계의 문화에 대한 담론은 주로 문화적 역량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문화적 역량은 의료서비스 제공자가 훈련 과정을 통해 통과해야 할 까다로운 기준으로 인식된다. 그렇기 때문에 보건의료 기관들은 치유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는 이러한 기관들이 능동적인 문화창조자active creators of culture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능동적인 문화창조자는 환자와 가족, 의료서비스 제공자와 직원에 이르기까지 보건의료 시스템이 포괄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만약 문화가 혁신 가능한 것이라면 어떨까? 기술처럼 문화도 혁신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인류학자들은 문화를 정적이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동적이고 유연한 것으로 이해한다. 또한 의료 인류학자들medical anthropologists은 문화를 ‘다층적이고 역동적인 집단 맥락 속에서 개인들의 삶이 펼쳐지는 패턴화된 방식’으로 정의했는데, 이는 문화뿐만 아니라 집단과 정체성 또한 단일하지 않고 다원적이며 중첩되어 있음을 시사한다.1
인류학적 관점으로 문화를 바라보면, 의료적 상황에서 어떻게 의미가 형성되고, 그것이 치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의료 인류학자들은 치료자가 사용하는 도구가 어떻게 실용적인 기능과 상징적인 기능을 모두 수행하는지 밝혀냈다. 예를 들어, 의사가 입는 흰 가운은 전문성을 상징하며, 치료 대상자에게 신뢰의 감정을 이끌어낸다. 이러한 상징은 의사에 대한 환자의 믿음을 형성하고 정당화하며, 진단, 치료, 치유에 이르는 전 과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문화는 사회적으로 형성되며, 본질적으로 역동성을 지닌다는 것을 고려해 우리는 질문해 보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보건의료 시스템이 환자들에게 더 나은 경험과 결과를 제공하도록 만드는 치유의 문화를 갖출 수 있을까? 이 글에서 필자는 환자들에게 더 긍정적이고 효과적인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문화의 힘을 활용할 수 있는 네 가지 도구를 제시한다. 4가지 도구는 (1) 보건의료서비스를 인간중심적으로 만들기 위해 돌봄을 중심에 두는 것 (2) 긍정적 진료 환경을 만들기 위해 돌봄서비스 제공기관을 확대하는 것 (3) 환자와 제공자 간의 이해와 존중을 높여 만족도를 높이고 신뢰를 쌓는 것 (4) 지역적 상황과 실생활 경험을 돌봄에 통합하여 취약 계층에 다가가는 것이다. 이 네 가지 도구를 결합한다면 의료 산업을 개혁할 수 있다.
돌봄 제공을 중심에 두라
의료 인류학자 및 정신과 의사인 아서 클라인먼Arthur Kleinman은 그의 2020년 저서, <케어The Soul of Care>에서 “돌봄은 가족, 공동체, 사회를 이어주는 인간적인 접착제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돌봄은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새로운 이야기를 제공해준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돌봄의 가치는 침묵되고 축소되며, 경제와 효율을 위해 희생되고 있다”라고 덧붙인다.
클라인먼은 오늘날 의료 산업을 규정하는 환자 돌봄과 수익 사이의 위태로운 긴장을 드러낸다. 그는 자신의 아내가 조기 발병 알츠하이머를 치료받는 과정에서 겪은 경험을 기반으로 의료시스템을 비판했는데, 의료시스템에서 제외된 돌봄의 공백을 그가 직접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기관이 돌봄 제공을 외면하면, 환자의 경험이 악화될 뿐 아니라 의료진의 직업 만족도 역시 감소한다. 클라이먼의 관찰과 다른 학자 및 의료진의 연구를 활용해, 필자는 어떻게 기관이 더 나은 방식으로 돌봄시스템을 지원할 수 있는지 네 가지 조언을 제시한다.
돌봄 제공이 의료진의 중심 업무가 되어야 한다 ㅣ 의사가 수익 중심의 의료기관에서 일하면, 자신의 시간, 특히 환자와 보내는 시간에 대한 통제권이 약화된다. 미국에서 외래 의사의 평균 진료 시간은 13-16분으로, 이는 보험 회사에서 의료기관에 변제하는 최대 예약 시간이다. 이에 비해 가족 주치의는 비수술 성인 환자 1인을 진료할 때 평균 16분 이상을 건강 기록 전자 시스템electronic health record, EHR 작업에 할애한다. 이러한 행정 업무가 쌓여 의료진의 업무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고, 의사의 번아웃을 유발한다.
보건의료기관은 반드시 의료진이 환자와 충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더 많은 자원을 할당해야 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진료 시간이 길어질 때 의사는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처방 비율이 낮아지며, 처방의 질이 나아진다. 또한 의료진 연계referral 비율과 병원 재방문 비율이 낮아지고, 환자 만족도가 높아진다. 이러한 긍정 효과는 환자가 의료진에 대해 더 큰 신뢰와 유대를 느꼈음을 암시하며, 임상 심리학자 샤미니 제인의 연구에 따르면 의료진의 지지를 느끼는 환자가 더 성공적인 치료를 경험한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클라인먼과 제인은 시간 제약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임상 환경에서도 의료진이 의미 있는 순간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 환자와 눈을 맞추고, 안심을 시켜주며, 힘이 되는 제스처를 취할 수 있다. 또 환자의 말에 귀기울여 들어주고, 진단과 치료 과정에 대해 정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며, 격려할 수도 있다.
보건의료서비스는 거래가 아닌 관계여야 한다 ㅣ 보건의료 시스템과 환자의 접점을 관계가 아닌 거래로 느끼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는 형편없이 설계된 디지털 플랫폼이다. 환자는 디지털 플랫폼을 사용하는 경험에서 관심을 받는 느낌보다는 냉담하고 차가운 느낌을 받는다. 의료진은 진단과 치료에 사용되는 기술에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하게 되며, 이는 환자와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대체하거나 저해한다. 건강 기록 전자 시스템과 같은 임상 도구나 기술을 설계할 때 돌봄 제공은 간과된다. 최근까지 대부분의 EHR 버전들에는 의료진이 환자의 감정 상태를 중요한 치료 정보로 메모하거나 매일 관찰하고 기록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하지만 기술이 돌봄 제공, 관계 형성, 환자 경험과 상충될 필요는 없다. 필자가 근무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아르테팩트Artefact에서는 최근 디지털 동반자 서비스인 트래버스Traverse의 비전을 수립했다. 트래버스는 AI와 자연어 처리 기술을 활용해 환자 경험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개인에 맞춰 문화적으로 반응하는 돌봄서비스를 제공한다. 트래버스는 의료진이 임상 진료 시 비판적 자기성찰과 공감 능력을 사용해, 환자의 문화적 기준과 건강 습관, 복합적 정체성에 대해 폭넓게 듣고, 배우며, 적응하는 능력인 문화적 겸손cultural humility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트래버스 플랫폼은 의료진이 문화적으로 겸손한 접근 방식을 실현하도록 환자의 사전 정보에 실시간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제공하며, 환자는 자신의 사전 정보를 AI 기반 디지털 ID 지갑digital-identity wallet으로 제어할 수 있다. 트래버스는 의료진에게 관련 자료를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개인에 맞춘 문화 기반 반응형 서비스를 환자에게 제공하며, 의료진의 학습과 자기성찰 능력을 지속적으로 강화시킨다.
모든 돌봄 제공자는 치료 과정의 파트너다 ㅣ 지역사회 기반의 의료서비스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환자의 직접 지원 네트워크를 치료 과정에 통합하는 협력적 케어collaborative care는 대부분의 보건의료 환경에서 여전히 흔치 않다. 협력적 케어는 가족이나 다른 돌봄 제공자들을 파트너 관계로 이끌어, 서비스 질을 높이고 병원 치료와 가정 돌봄 사이의 전환을 용이하게 한다. 협력적 케어 과정을 통해 의료진은 환자의 가족과 케어 연합팀이 치료 중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 준비하게 하고, 환자를 위한 지원 네트워크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도록 돕는다. 그리고 가족이나 협력적 돌봄을 하는 팀은 환자의 집과 일상생활에서의 관찰을 토대로 임상적인 고려사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의료진을 도울 수 있다. 돌봄 제공자의 깊이있는 맥락 지식이 진료에 통합되는 간단한 방법을 설계하는 것은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돕고, 환자가 가정에서도 효과적인 처치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돌봄 서비스가 의과 교육, 수련, 실무 과정에서 기본 교육 및 실습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ㅣ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의대생의 수련 과정이 진행될수록 환자에 대한 공감은 감소한다. 이러한 상관관계는 수련 과정이 의대생의 돌봄 능력을 평가절하하거나 의대가 돌봄 서비스를 경시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사회적 의학social medicine이나 서사 의학narrative medicine 같은 대안적인 의학 연수 프로그램은 이러한 격차를 메우려 노력한다. 미국 의대의 80% 이상에서 사회적 의학이나 서사 의학 프로그램을 여러 형태로 진행하고 있는데, 인기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주류 의료 수련 과정의 문제점과 의대생들 사이의 공감적 돌봄에 대한 욕구를 보여준다. 일부 의과대학, 수련 과정, 병원에서는 의대생의 공감 및 대인 관계 능력을 입학 및 진급 요소로 평가하며 돌봄 서비스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기관이 돌봄 서비스를 중심에 두는 방향으로 변화하면, 의료진의 직업 만족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데, 특히 의료 민영화로 인해 도덕적 위기에 시달리는 의사들에게 더욱 그렇다. 최근 사회학자이자 기자인 에얄 프레스가 뉴욕 타임즈 매거진에 기고한 것처럼, 의사는 의료 산업의 비용 절감 및 이윤 추구 동기를 위해 최선의 치료를 제공한다는 직업윤리를 포기할 때 ‘도덕적 상처moral injury’를 입는다. 프레스가 인용한 한 연구에 따르면 70% 이상의 응급 의학 전문의가 보건의료서비스 민영화로 인해 치료의 질과 직무 만족도 모두 저하되었다는 데 동의했다. 시간당 생산성을 측정하며 의료진이 더 빠르게 일할 것을 요구하는 관리 방식은 직무 만족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시간당 생산성을 추적하거나, 의료진에게 더 빨리 일할 것을 요구하거나, 상대평가 측정 기준(환자와 대화하는 것보다는 검사를 처방하는 것 같은 수익성 높은 업무가 유리한 지표)으로 성과를 판단하는 것 모두 직무 만족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의료진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것은 리더십의 위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건의료계의 리더들은 효율성과 수익성을 위해 환자 진료를 희생시키는 이윤 추구 성향과 구조적 문제에 맞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또한 리더는 이같은 한계를 가진 구조를 해결해야 한다. 전자 의료 기록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하고, 보험 회사의 고집스러운 관행과 싸워야 한다.
환자의 주도성을 강화하라
돌봄을 우선순위에 둔다는 것은 또한 환자의 존엄성, 주도성, 자주성을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환자가 서비스 제공자를 선택할 수 있으면, 환자는 어느 정도 보건의료서비스 여정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환자들의 의료 접근성과 만족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데, 특히 취약 계층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환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정책도 쉽고 빠르게 적용할 수 있다. 환자가 의료 제공자를 선택하는 옵션을 제공하도록 기존 플랫폼과 프로세스를 조정해 1차 진료 환경을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선택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중요하다. 예를 들어, 환자는 문화적 동질성cultural congruence에 기반해 의료서비스 제공자를 선택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임상 진료 시 수요자가 더 편안하게 이해받는다고 느낄 수 있으며, 편견에 대한 두려움을 줄일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의료진과 인종이 동일한 환자가 의료서비스에 대해 더 크게 만족했다. 워싱턴 의과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유색 인종 환자는 백인 환자보다 백인 의사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정도가 낮았다. 따라서 의료진 선택권은 보건의료서비스에서 주된 심리적 장벽인 두려움, 불신, 불편감을 낮출 수 있는데, 특히 인종적 취약 계층에게 그럴 수 있다.
소비자 데이터와 점점 더 많이 개발되고 있는 환자-의료진 매칭 앱들은 환자들이 선택권을 점점 더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딜로이트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아시아인 및 흑인 참가자의 절반 이상은 자신과 정체성, 문화 또는 경험 면에서 유사한 의료진을 만나기 위해 장거리를 이동할 의향이 있다. 여러 종류의 앱들이 이러한 소비자 필요에 대응하고 있다. HUED라는 앱은 환자들의 리뷰를 보유하고 있으며, 사용자의 문화적, 신체적, 정신적 니즈를 다뤄본 경험이 있거나 공감할만한 의료진을 매칭해준다. 컬쳐 케어Culture Care는 흑인 여성 환자와 흑인 여성 의사를 연결해준다.
의료진 선택 권한은 두 가지 측면에서 더 효과적인 치료를 위한 발판이 된다. 첫째, 환자에게 문화적으로 유사한 의료진을 선택할 권한을 주어 잠재적 편견, 차별, 불편함의 요인을 피할 수 있도록 할 때, 환자와 의료진 사이의 연결이 강화된다. 이렇게 연결성이 강화됨으로써 파생되는 효과는 풍성하며 더 나은 결과들로 이어진다. 둘째, 환자에게 더 나은 반응을 이끌어낸다. 인간이 질병이나 부상에 대응하고 치유를 시작하는 세 가지 유형의 반응이 있는데, 이 세 가지는 자율 반응(신체가 건강 또는 균형을 되찾기 위해 작동되는 시스템), 특정 반응(의학적 치료의 효과), 의미 반응(치유의 맥락 안에서의 대인 관계 효과)이다.
의미 반응은 과소평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반응은 치유 과정에서 문화의 역할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환자는 진료를 받으러 갈 때, 의료진의 능력과 적합성에 대한 어떠한 예상을 가지고 간다. 인류학자 다니엘 모어만의 연구는 환자의 믿음이 치료 효과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모어만은 의료진이 자신의 능력과 치료 효과에 대해 가지고 있는 확신이 환자의 반응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발견했다. 모어만은 2002년 저서 <의미, 약, “플라시보 효과"Meaning, Medicine, and the “Placebo Effect”>에서 다음과 같이 관찰했다. “이러한 확신이 어떻게든 환자에게 전달되고, 그 과정에서 의사의 힘을 환자가 납득하고 나면 환자는 더 호전될 가능성(물리적 죽음이라는 한계 안에서)이 있습니다."
만약 의미 반응이 역으로도 작용해, 환자의 기대가 치료와 치유에 영향을 미친다면 어떨까? 의료진에 대한 환자의 초기 기대치(의료진 선택과 같은)에서 비롯한 총체적인 의미 반응을 통해 치료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의미 반응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 때문에 의료계는 환자들의 선택권을 지지해 주어야 한다.
또 다른 중요한 차원의 선택은 진료가 이뤄지는 장소인데,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비대면 진료virtual-care가 늘어나면서 선택지는 넓어졌다. 진료를 병원이나 집에서 혹은 비대면으로 받을 수 있는 유연성이 환자의 의료진 선택 범위를 넓혀준다. 예를 들어, 비대면 진료는 환자가 문화적으로 유사한 의료진을 만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환자가 이동 거리, 교통비, 근무 시간, 육아 등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준다. 2021년 미국에서 딜로이트가 표본 조사를 진행한 525명의 유색인종 중 절반 이상의 히스패닉과 절반에 가까운 흑인 및 아시아인이 문화적으로 유사한 의료진을 만나기 위해 비대면 진료를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기관의 리더와 보건의료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들은 환자가 높은 주도성을 가지고 의료진과 진료 장소를 선택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실행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
탑다운 방식의 ‘환자 매칭’, 문화나 언어의 동질성을 단순하게 고려한 매칭을 피하라 ㅣ 보건의료기관들은 환자와 의료진을 매칭할 때 인종이나 정체성을 기준으로 하면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다양성과 포용성을 실현하며 운영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편견에 기반한 것일 확률이 높고, 근본적으로 환자의 주도성을 없앤다. 정신 및 행동 건강 분야의 환자 매칭에 대한 연구 결과들은 외형적인 문화적 동질성에 기반해 기계적으로 환자와 의료진을 매칭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인류학적 연구 역시 일부 환자는 같은 문화권의 의료진에게 부정적으로 판단받는 것을 두려워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환자는 같은 문화권의 의료진으로부터 그 문화에서 낙인찍거나 제재하는 질병을 치료를 받을 때, 부정적으로 판단받는 것을 우려한다.
다양한 진료 환경에서 불평등이 어떻게 의료 문화로 나타나는지 직시하라 ㅣ 환자들은 문화적으로 일치하는 의료진을 선택하는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의료진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기존의 구조적 차별 때문에 치료의 질은 여전히 낮을 수 있다. 미국의 백인 의사에 비해 유색인종 의사는 혼자 진료할 가능성이 더 높고, 전문의에게 의뢰를 받을 가능성이 더 낮다. 자신의 환자를 상급 병원에 입원시키는 데도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동료 평가, 병원 홍보, 메디케이드Medicaid(감수자주: 저소득층 의료 보장 제도) 및 메디케어Medicare(감수자주: 노인 의료 보험 제도) 환급, 의료 과실 소송, 민간 보험 관리, 건강 관리 계약 보상 등에서 인종 차별을 경험한다. 이러한 인종 차별적 환경으로 인해 환자들은 문화적으로 적합한 치료와 고품질의 치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의료기관은 의료진의 직무 만족도와 경험에 대한 데이터를 주의 깊게 수집하고, 새로운 패턴을 추적해 이러한 제약을 경험하는 의료진을 지원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의료진 선택에 대한 접근 장벽 문제를 해결하라 | 의료진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서비스나 앱은 인터넷 접근성 부족, 언어나 문해력 장벽 및 다양한 능력을 이유로 환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울 수 있다.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social determinants of health과 관련된 교통 및 이동성 제약도 환자의 선택권을 제한한다. 보건의료기관은 어떻게 이러한 요인에 의해 의료서비스 선택이 제한되는지 연구해 접근성 문제를 형평성 있게 해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사회 내 비대면 진료소를 개설한다거나 환자들의 선택을 위한 교통 지원 정책을 마련하는 등의 조치가 포함되어야 한다.
환자와 돌봄 제공자 간의 관계성을 증진하라
관계는 돌봄의 핵심이다. 생물의학적biomedical 환경에서는 돌봄의 초점이 주로 질병의 진단에 맞춰져 있고, 개인의 질병 경험에 관심을 기울이는 데는 소홀하다. 그러나 치유는 단순히 생물학적인 과정이 아니다. 치유는 생물학적인 동시에 사회심리학적인 과정이며, 질병의 경험과 사회적 지지가 치료 결과를 크게 좌우한다. 즉 환자와 돌봄 제공자 간의 관계의 질이 치유 여정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질병 서사illness narratives’를 만들어내는데, 이 서사에는 질병의 원인, 진단, 치료 과정에 대한 기대가 포함된다. 클라이먼과 모어만은 문화적 소통 오류를 피하기 위해 의료진이 환자의 질병 서사를 끌어내, 공유된 이해shared understanding를 바탕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자와 가족, 의료진의 질병 서사가 상호 이해될 때, 임상적 소통, 의료서비스 관리, 환자의 순응도와 만족도가 향상된다. 향상된 환자 치료 효과는 의료진이 환자와 치료 계획을 상의하는 방식과 관련 있다. 예를 들어, 환자의 질문을 장려하고 함께 의사결정 하는 의료진은 환자의 불안도를 낮춘다.
질병 서사는 임상 진료에 통합되어 더 긍정적인 환자 경험과 치료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서사 의학narrative-based medicine, NBM은 매우 인상적이고 영감을 주는 접근방식이다. 의학 교육자 조지 자하리아스에 따르면, NBM은 ‘의사의 초점을 문제 해결에서 이해로 전환시키는 것’이며 이는 환자-의사 관계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며 의료 효과를 개선시킨다. 환자는 생물의학을 통한 생리학적 증상의 완화뿐 아니라 ‘인간적이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설명과 질병에 대한 심리사회적 치료’를 원한다고 자하리아스는 설명한다. NBM은 이러한 질적 측면을 임상 진료에 더 강력하게 적용할 수 있다. 여러 연구는 NBM이 환자의 웰빙을 증진하고, 암으로 인한 통증이나 류마티즘 관절염을 완화한다. 또 천식에서 폐 기능을 향상시키고, B형 간염 예방 접종 후 면역 반응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음을 밝혀냈다.
NBM의 여러 도구와 프레임워크는 의료진이 환자와 더 잘 소통하고, 서사를 일치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클라이먼의 여덟 질문 프레임워크Eight Questions framework는 의료진이 질병 서사를 이끌어내고, 환자가 자신의 고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도록 돕는다. 마찬가지로, 미국정신의학협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가 개발한 문화적 형성 인터뷰Cultural Formulation Interview는 환자의 문화적,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만들어진 것으로,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5에도 포함되어 있다. 이 문화적 형성 인터뷰는 다른 의료 영역에도 적용될 수 있으며, 환자의 관점을 통해 임상적 이해를 높인다. 두 도구 모두 임상의가 진료에 NBM의 요소를 도입할 수 있는 실행가능한 스크립트를 제공하며, 특히 환자의 문제점에 대해 묻고 경청함으로써 환자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에스노메트EthnoMed 및 컬처비전CultureVision 같은 의료 데이터베이스는 다양한 문화 집단의 의료 신념과 관행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그리고 질병에 대한 서사에서 드러날 수 있는 건강과 질병에 대한 특정한 문화적 신념을 맥락화하고, 문화적으로 적절한 치료를 위한 제안을 제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 아워노츠OurNotes는 환자가 확인할 수 있는 음성 메모를 의료진이 녹음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환자와 돌봄 제공자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의료기관은 의료진에게 필요한 환경과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 건강 형평성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인프라와 거버넌스가 개발되면서, 의료 시스템 차원에서 건강 형평성을 증진하려 할 때, 특정 환자의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더 긴 진료 시간과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의료기관은 위에서 의료진이 언급된 도구들을 어떻게 활용해 환자와 질 높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서사 의학에 대한 교육이나 질병 서사를 이끌어내는 훈련을 추가로 지원하면, 의대 교육 과정에서 이러한 프레임워크를 경험하지 못한 의료진도 교육할 수 있다.
질병 서사가 환자와 의료진의 오해를 줄일 수 있지만, 진료 불평등은 단순히 신념의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건강 불평등이 의료기관에서 나타는지 기관 차원에서 추적하고, 환자가 질 높은 진료를 받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벽을 파악하는 데 투자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상호유익하고 가부장적이지 않은 임상 파트너십을 다양한 지역사회 주제들과 개발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경험하는 여정의 단계별로 어떠한 권력 역학power dynamics이 나타나는지 비판적 자기성찰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팀은 ‘이 상호작용에서 어떤 권력의 차이가 존재할까?’나 ‘이 솔루션에서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의 질문을 통해 권력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설계할 수 있다. 이 질문들은 기관에서 권력이 보다 공평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유도함으로써 건강 형평성을 중심에 두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구조적 역량을 강화하라
보건의료 전문가가 질병의 사회적 결정요인을 해결해나가도록 훈련받는 경우는 드물지만, 사회적 결정요인과 구조적 요인이 건강 및 보건의료서비스 접근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점점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구조적 역량structural competency은 의료진이 의료 불평등을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의료 실무에서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보건의료 산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불신, 불만족, 의료 효과 격차와 같은 위기를 통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들 간의 상호작용을 넘어 기관과 사회의 구조를 조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종차별, 계급주의, 빈곤에 기반한 차별은 의료 격차를 발생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딜로이트 보고서의 추정에 따르면, 소득, 거주지의 위치, 사회적 지지체계 같은 사회적 결정 요인이 의료 효과의 80%를 결정한다.
지역사회 기반 의료서비스 모델Community-based health-care models은 임상 진료에서 구조적 역량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준다. 지역사회 기반 의료서비스는 다양한 의료 종사자들에 의해 제공되는 서비스를 포괄한다. 이들은 지역사회 내에서 사람 중심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의료 시스템의 회복력을 구축하기 위해 파트너십을 구축한다. 지역사회 의료 종사자Community health workers, CHW는 지역사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들로 돌봄의 지역적 맥락이나 맥락을 형성하는 사회적 권력, 사회적 격차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신뢰받는 구성원 또는 존경받는 손님이다. 지역사회 의료서비스 모델은 병원 및 의료진의 물리적 위치가 환자의 진료를 제한하는 상황을 개선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구조적 역량을 활용해 의료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선구적인 사례 두 가지를 소개한다. 비영리조직인 파트너스 인 헬스Partners in Health, PIH는 전 세계에서 가장 구조적으로 열악하고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도 치료 결과의 형평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지역사회 의료 모델을 개척했다. PIH는 10개국에서 13,000명이 넘는 지역사회 의료 종사자와 협력해왔다. 1980년대 후반, PIH는 아이티의 결핵 환자들이 회복하지 못하는 이유를 두고 극심한 빈곤으로 인해 의료서비스를 받는 것이 구조적으로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가정했다. 그러면서 무료 치료만을 받았을 때와 여러 사회경제적 지원을 함께 제공받았을 때의 치료 효과를 비교했다. 그들이 확인한 결과는 놀라웠다. 무료 치료 그룹에서는 56%가 치료되었고, 10%가 사망한 반면, 포괄적 지원을 받았던 그룹에서는 100%가 치료되었다. 고품질 의료서비스에 사회적 지원을 보충하는 것은 지역사회 의료서비스를 위한 PIH의 대표적인 방식이 되었다.
또 다른 선구적인 사례는 커먼웰스 케어 얼라이언스Commonwealth Care Alliance, CCA이다. CCA는 통합적인 돌봄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역의료 종사자들을 적절히 활용하면 의료 불평등을 얼마나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 증명한 사례이다. 비영리조직인 CCA는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유료 가입자-의료 제공자 건강 보험이다. CCA의 가입자 대부분은 기존 보건의료 산업에서 보험가입 대상이 되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메디케이드(감수자주: 저소득층 의료 보장 제도)와 메디케어(감수자주: 노인 의료 보험 제도)의 가입 대상이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저소득층이며, 트라우마와 장애를 포함해 복합적인 의료, 사회, 행동건강의 필요가 있는 계층이다.
CCA의 신념은 전인적 웰빙을 증진하는 의료서비스와 사회적 지원을 강화하고, 복합적인 필요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높은 수준의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비용이 많이 드는 응급 의료서비스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의료 시스템이 이미 질병에 걸린 환자를 치료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반면, CCA는 질병을 예방하고 만성 질환을 관리하며, 응급 치료를 생략할 수 있는 보다 포괄적인 개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CCA의 케어 모델은 일차의료를 향상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조직화된 다학제팀을 구성하고, 개인 맞춤형 치료 계획을 세우며, 행동 치료 서비스를 연계한다. 또 가정과 종합병원, 개인병원에서 상시로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팀을 운영한다. 2021년, 60%에 이르는 CCA 회원이 적어도 하나 이상의 사회적 지원 서비스를 받았다. 교통이나 주거 지원을 받았을 뿐 아니라 또래 상담, 침술, 마사지 테라피 같은 비전통적인 돌봄 서비스까지 지원을 받았다.
CCA는 그들이 제공하는 돌봄 서비스의 질과 괄목할만한 성과로 전국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최소 6개월 이상 자신의 건강 상태에 맞춘 식사를 집으로 배달받은 CCA 회원들은 응급 치료나 입원과 같이 비용이 많이 드는 의료서비스를 상당히 적게 이용했다. 이 연구는 건강을 개선하고 의료 비용을 낮추는데 식사 배달 서비스가 가진 가능성을 보여준다. CCA의 시니어 케어Senior Care 회원은 비교군의 노인-저소득층 환자보다 66% 낮은 양로원 입소율과 48% 낮은 입원 일수를 보였고, 전반적으로 급성 질환 관련 지출이 적었다.
PIH와 CCA는 지역사회에서 환자를 만나는 보건의료 기관이 어떻게 취약 계층에 높은 품질의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더 나아가 건강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보여주는 선도 사례이다. 기관은 구조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구조적 취약성 평가 도구Structural Vulnerability Assessment Tool를 도입해볼 수 있다. 이 평가 질문지는 의료진이 포괄적 의료 및 사회서비스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자를 식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보건의료 영역의 리더는 기관 내에 구조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다음 4가지를 실행해야 한다.
열망을 담은 신념과 가치를 소통하라 ㅣ 기관의 리더들과 보건의료 시스템의 설계자들은 열망을 담은 기관의 가치를 공들여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 보건의료 모델의 모범 사례들을 활용하고, 파트너십을 통해 임팩트를 극대화하며, 직원 경험에 투자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PIH의 공동창립자 폴 파머는 모든 인간이 존엄과 존중을 갖춘 질 높은 보건의료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CCA의 2021년 연차 보고서에서 회장이자 CEO인 크리스토퍼 D. 팔미에리는 “우리는 돌봄에 대한 우리의 방식을 믿습니다. 우리의 방식은 지역사회 중심적이고, 전혀 일반적이지 않습니다"라고 단언했다.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돌봄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리더십이 표방하는 가치가 직원 교육, 훈련 및 실무에 반영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CCA는 직원들에게 강력한 입사 교육과 함께 동기부여 면담, 트라우마 기반 치료, 문화적 감수성에 대한 교육 등 일상적인 교육을 제공한다.
지역 보건의료 모델의 모범 사례를 활용하라 ㅣ 지역사회 의료 종사자는 돌봄 서비스팀의 전문성을 가진 구성원이어야 한다. 의료기관은 지역사회 의료 종사자들을 기관에 포함시켜 장기적으로 지원하며, 의료 업무가 아닌 지역사회 업무를 위해 명확하게 할당된 금전적, 시간적 예산을 제공해야 한다.
가치 기반의 파트너십을 창의적으로 고안하라 ㅣ PIH와 CCA는 강력한 파트너십을 통해 임팩트를 극대화했다. PIH가 추구하는 가치에는 지역 이해관계자를 역량 강화하는 것과 진정성을 가지고 함께하는 파트너십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 통해 이들은 궁극적으로 주민들이 외부 NGO에 의존해 필요를 채우지 않고도 지역사회에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자원과 지식을 갖추게 한다. CCA는 파트너십을 통해 4개 주로 확장했고, 주립 의료서비스 시장에 존재하는 의료 격차를 줄였으며, 통합 의료서비스 모델을 강화했다. 매스 제너럴 브리검Mass General Brigham, MGB 연구진이 진행한 2022년 연구는 대학 병원 같은 대형 의학 센터가 CCA와 같은 비영리 지역사회 기반 1차 진료 기관과 어떻게 효과적인 파트너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CCA가 제공한 타깃 기반의 집중 의료서비스 관리 방식을 통해, MGB는 고비용, 고위험 메디케이드 인구의 총 의료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직원 경험 및 만족에 투자하라 ㅣ 구조적 역량을 강화하면 의료진의 번아웃을 가중하거나 경감시킬 수 있다. 대다수의 의료진에게는 전인적 진료를 제공하고, 가능한한 의료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직업적 의무가 있다. 의료진은 환자의 구조적 취약성을 줄일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가질 때, 일에서 더 큰 의미와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의료 정보 사이트 메드스케이프Medscape에 따르면, 미국 가정의학과 의사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 환자들과 관계를 맺고 환자들이 전하는 감사를 느끼는 것 다음으로 보람 있는 일이라고 답했다.
모두를 위해 더 나은 보건의료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갖춘 보건의료 서비스 기관은 모두를 포용하는 방식으로 보건의료 시스템을 대폭 개선할 수 있다. ‘치유의 문화Cultures of healing’란 돌봄을 의료의 중심에 두는 이상적 비전이다. 환자는 어떤 의료진을 만날지 선택하는 과정에서 자율성을 느끼고, 환자와 의료진은 진료실에서 상호작용할 때 모두 이해받고 존중받는다고 느낀다. 진료의 효과는 환자의 실제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 궁극적으로, 네 가지 변화의 도구는 건강 형평성을 달성하기 위해 작동한다. PIH와 CCA가 해온 것처럼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을 해결하는 것은 개인을 위한 치유의 문화에 기여할 뿐 아니라, 구조적 차별이라는 고통스러운 불의로부터 사회가 치유될 수 있도록 돕는다.
위에 제시된 변화를 위한 도구와 조언들은 기관들이 환자의 삶과 보건의료 시스템 안에 이미 존재하는 문화적 특성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기관 차원에서 대화를 시작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는다. 보건의료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은 곧 보건 문화를 만드는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가 더 건강한 사회를 위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다.
참고
1 . 캐서린 A. 메이슨과 그 외 <어떻게 ‘보건의 문화'를 만들 수 있을까? 의료 인류학에 기반한 위험과 기회 비판적 분석>, 인구 보건 관리, 23호, 6번,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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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NEY EASTON
휘트니 이스턴은 인류학자이자 아르테팩트(Artefact)의 선임 연구원이다. 아르테팩트는 인간중심 디자인 회사로 보건의료 서비스, 교육, 기술 분야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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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 일반 · 건강 · 시스템변화
치유의 문화,
보건의료 시스템을 혁신하는 길
2023-4
WHITNEY EASTON
Summary. 보건의료 산업에 대한 신뢰 부족과 낮은 만족도는 심각한 문제이다. 환자의 의료 경험을 개선하고 보건의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보건 의료기관과 서비스 제공자는 총체적인 방식으로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보건의료서비스는 환자들로부터 신뢰와 만족을 얻는데 실패했다. 2022년 에델만 신뢰 지수Edelman Trust Barometer에서 27개국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보건의료서비스에 대한 신뢰도는 평균 66%였다. 미국에서는 대다수의 국민이 보건의료 시스템이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딜로이트 보고서에 따르면 환자의 불만족도가 사상 최고치에 달했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도는 인종과 민족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한편 시스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적 조건이 마련되었지만, 평등한 건강권이라는 목표는 과거의 방식과 도구로는 실현될 수 없다. 그래서 필자는 ‘치유의 문화cultures of healing’를 제안한다. 치유의 문화는 인간중심적이고, 총체적이며, 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보건의료 서비스를 실현하려는 비전으로, 환자들의 낮은 신뢰와 만족도를 해결하고 평등한 건강권을 구현하고자 한다.
치유의 문화라는 접근 방식을 취하려면 보건의료 업계가 문화에 대한 미묘한 관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늘날 의료업계의 문화에 대한 담론은 주로 문화적 역량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문화적 역량은 의료서비스 제공자가 훈련 과정을 통해 통과해야 할 까다로운 기준으로 인식된다. 그렇기 때문에 보건의료 기관들은 치유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는 이러한 기관들이 능동적인 문화창조자active creators of culture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능동적인 문화창조자는 환자와 가족, 의료서비스 제공자와 직원에 이르기까지 보건의료 시스템이 포괄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만약 문화가 혁신 가능한 것이라면 어떨까? 기술처럼 문화도 혁신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인류학자들은 문화를 정적이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동적이고 유연한 것으로 이해한다. 또한 의료 인류학자들medical anthropologists은 문화를 ‘다층적이고 역동적인 집단 맥락 속에서 개인들의 삶이 펼쳐지는 패턴화된 방식’으로 정의했는데, 이는 문화뿐만 아니라 집단과 정체성 또한 단일하지 않고 다원적이며 중첩되어 있음을 시사한다.1
인류학적 관점으로 문화를 바라보면, 의료적 상황에서 어떻게 의미가 형성되고, 그것이 치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의료 인류학자들은 치료자가 사용하는 도구가 어떻게 실용적인 기능과 상징적인 기능을 모두 수행하는지 밝혀냈다. 예를 들어, 의사가 입는 흰 가운은 전문성을 상징하며, 치료 대상자에게 신뢰의 감정을 이끌어낸다. 이러한 상징은 의사에 대한 환자의 믿음을 형성하고 정당화하며, 진단, 치료, 치유에 이르는 전 과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문화는 사회적으로 형성되며, 본질적으로 역동성을 지닌다는 것을 고려해 우리는 질문해 보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보건의료 시스템이 환자들에게 더 나은 경험과 결과를 제공하도록 만드는 치유의 문화를 갖출 수 있을까? 이 글에서 필자는 환자들에게 더 긍정적이고 효과적인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문화의 힘을 활용할 수 있는 네 가지 도구를 제시한다. 4가지 도구는 (1) 보건의료서비스를 인간중심적으로 만들기 위해 돌봄을 중심에 두는 것 (2) 긍정적 진료 환경을 만들기 위해 돌봄서비스 제공기관을 확대하는 것 (3) 환자와 제공자 간의 이해와 존중을 높여 만족도를 높이고 신뢰를 쌓는 것 (4) 지역적 상황과 실생활 경험을 돌봄에 통합하여 취약 계층에 다가가는 것이다. 이 네 가지 도구를 결합한다면 의료 산업을 개혁할 수 있다.
돌봄 제공을 중심에 두라
의료 인류학자 및 정신과 의사인 아서 클라인먼Arthur Kleinman은 그의 2020년 저서, <케어The Soul of Care>에서 “돌봄은 가족, 공동체, 사회를 이어주는 인간적인 접착제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돌봄은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새로운 이야기를 제공해준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돌봄의 가치는 침묵되고 축소되며, 경제와 효율을 위해 희생되고 있다”라고 덧붙인다.
클라인먼은 오늘날 의료 산업을 규정하는 환자 돌봄과 수익 사이의 위태로운 긴장을 드러낸다. 그는 자신의 아내가 조기 발병 알츠하이머를 치료받는 과정에서 겪은 경험을 기반으로 의료시스템을 비판했는데, 의료시스템에서 제외된 돌봄의 공백을 그가 직접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기관이 돌봄 제공을 외면하면, 환자의 경험이 악화될 뿐 아니라 의료진의 직업 만족도 역시 감소한다. 클라이먼의 관찰과 다른 학자 및 의료진의 연구를 활용해, 필자는 어떻게 기관이 더 나은 방식으로 돌봄시스템을 지원할 수 있는지 네 가지 조언을 제시한다.
돌봄 제공이 의료진의 중심 업무가 되어야 한다 ㅣ 의사가 수익 중심의 의료기관에서 일하면, 자신의 시간, 특히 환자와 보내는 시간에 대한 통제권이 약화된다. 미국에서 외래 의사의 평균 진료 시간은 13-16분으로, 이는 보험 회사에서 의료기관에 변제하는 최대 예약 시간이다. 이에 비해 가족 주치의는 비수술 성인 환자 1인을 진료할 때 평균 16분 이상을 건강 기록 전자 시스템electronic health record, EHR 작업에 할애한다. 이러한 행정 업무가 쌓여 의료진의 업무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고, 의사의 번아웃을 유발한다.
보건의료기관은 반드시 의료진이 환자와 충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더 많은 자원을 할당해야 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진료 시간이 길어질 때 의사는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처방 비율이 낮아지며, 처방의 질이 나아진다. 또한 의료진 연계referral 비율과 병원 재방문 비율이 낮아지고, 환자 만족도가 높아진다. 이러한 긍정 효과는 환자가 의료진에 대해 더 큰 신뢰와 유대를 느꼈음을 암시하며, 임상 심리학자 샤미니 제인의 연구에 따르면 의료진의 지지를 느끼는 환자가 더 성공적인 치료를 경험한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클라인먼과 제인은 시간 제약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임상 환경에서도 의료진이 의미 있는 순간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 환자와 눈을 맞추고, 안심을 시켜주며, 힘이 되는 제스처를 취할 수 있다. 또 환자의 말에 귀기울여 들어주고, 진단과 치료 과정에 대해 정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며, 격려할 수도 있다.
보건의료서비스는 거래가 아닌 관계여야 한다 ㅣ 보건의료 시스템과 환자의 접점을 관계가 아닌 거래로 느끼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는 형편없이 설계된 디지털 플랫폼이다. 환자는 디지털 플랫폼을 사용하는 경험에서 관심을 받는 느낌보다는 냉담하고 차가운 느낌을 받는다. 의료진은 진단과 치료에 사용되는 기술에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하게 되며, 이는 환자와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대체하거나 저해한다. 건강 기록 전자 시스템과 같은 임상 도구나 기술을 설계할 때 돌봄 제공은 간과된다. 최근까지 대부분의 EHR 버전들에는 의료진이 환자의 감정 상태를 중요한 치료 정보로 메모하거나 매일 관찰하고 기록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하지만 기술이 돌봄 제공, 관계 형성, 환자 경험과 상충될 필요는 없다. 필자가 근무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아르테팩트Artefact에서는 최근 디지털 동반자 서비스인 트래버스Traverse의 비전을 수립했다. 트래버스는 AI와 자연어 처리 기술을 활용해 환자 경험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개인에 맞춰 문화적으로 반응하는 돌봄서비스를 제공한다. 트래버스는 의료진이 임상 진료 시 비판적 자기성찰과 공감 능력을 사용해, 환자의 문화적 기준과 건강 습관, 복합적 정체성에 대해 폭넓게 듣고, 배우며, 적응하는 능력인 문화적 겸손cultural humility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트래버스 플랫폼은 의료진이 문화적으로 겸손한 접근 방식을 실현하도록 환자의 사전 정보에 실시간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제공하며, 환자는 자신의 사전 정보를 AI 기반 디지털 ID 지갑digital-identity wallet으로 제어할 수 있다. 트래버스는 의료진에게 관련 자료를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개인에 맞춘 문화 기반 반응형 서비스를 환자에게 제공하며, 의료진의 학습과 자기성찰 능력을 지속적으로 강화시킨다.
모든 돌봄 제공자는 치료 과정의 파트너다 ㅣ 지역사회 기반의 의료서비스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환자의 직접 지원 네트워크를 치료 과정에 통합하는 협력적 케어collaborative care는 대부분의 보건의료 환경에서 여전히 흔치 않다. 협력적 케어는 가족이나 다른 돌봄 제공자들을 파트너 관계로 이끌어, 서비스 질을 높이고 병원 치료와 가정 돌봄 사이의 전환을 용이하게 한다. 협력적 케어 과정을 통해 의료진은 환자의 가족과 케어 연합팀이 치료 중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 준비하게 하고, 환자를 위한 지원 네트워크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도록 돕는다. 그리고 가족이나 협력적 돌봄을 하는 팀은 환자의 집과 일상생활에서의 관찰을 토대로 임상적인 고려사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의료진을 도울 수 있다. 돌봄 제공자의 깊이있는 맥락 지식이 진료에 통합되는 간단한 방법을 설계하는 것은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돕고, 환자가 가정에서도 효과적인 처치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돌봄 서비스가 의과 교육, 수련, 실무 과정에서 기본 교육 및 실습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ㅣ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의대생의 수련 과정이 진행될수록 환자에 대한 공감은 감소한다. 이러한 상관관계는 수련 과정이 의대생의 돌봄 능력을 평가절하하거나 의대가 돌봄 서비스를 경시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사회적 의학social medicine이나 서사 의학narrative medicine 같은 대안적인 의학 연수 프로그램은 이러한 격차를 메우려 노력한다. 미국 의대의 80% 이상에서 사회적 의학이나 서사 의학 프로그램을 여러 형태로 진행하고 있는데, 인기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주류 의료 수련 과정의 문제점과 의대생들 사이의 공감적 돌봄에 대한 욕구를 보여준다. 일부 의과대학, 수련 과정, 병원에서는 의대생의 공감 및 대인 관계 능력을 입학 및 진급 요소로 평가하며 돌봄 서비스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기관이 돌봄 서비스를 중심에 두는 방향으로 변화하면, 의료진의 직업 만족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데, 특히 의료 민영화로 인해 도덕적 위기에 시달리는 의사들에게 더욱 그렇다. 최근 사회학자이자 기자인 에얄 프레스가 뉴욕 타임즈 매거진에 기고한 것처럼, 의사는 의료 산업의 비용 절감 및 이윤 추구 동기를 위해 최선의 치료를 제공한다는 직업윤리를 포기할 때 ‘도덕적 상처moral injury’를 입는다. 프레스가 인용한 한 연구에 따르면 70% 이상의 응급 의학 전문의가 보건의료서비스 민영화로 인해 치료의 질과 직무 만족도 모두 저하되었다는 데 동의했다. 시간당 생산성을 측정하며 의료진이 더 빠르게 일할 것을 요구하는 관리 방식은 직무 만족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시간당 생산성을 추적하거나, 의료진에게 더 빨리 일할 것을 요구하거나, 상대평가 측정 기준(환자와 대화하는 것보다는 검사를 처방하는 것 같은 수익성 높은 업무가 유리한 지표)으로 성과를 판단하는 것 모두 직무 만족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의료진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것은 리더십의 위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건의료계의 리더들은 효율성과 수익성을 위해 환자 진료를 희생시키는 이윤 추구 성향과 구조적 문제에 맞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또한 리더는 이같은 한계를 가진 구조를 해결해야 한다. 전자 의료 기록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하고, 보험 회사의 고집스러운 관행과 싸워야 한다.
환자의 주도성을 강화하라
돌봄을 우선순위에 둔다는 것은 또한 환자의 존엄성, 주도성, 자주성을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환자가 서비스 제공자를 선택할 수 있으면, 환자는 어느 정도 보건의료서비스 여정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환자들의 의료 접근성과 만족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데, 특히 취약 계층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환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정책도 쉽고 빠르게 적용할 수 있다. 환자가 의료 제공자를 선택하는 옵션을 제공하도록 기존 플랫폼과 프로세스를 조정해 1차 진료 환경을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선택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중요하다. 예를 들어, 환자는 문화적 동질성cultural congruence에 기반해 의료서비스 제공자를 선택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임상 진료 시 수요자가 더 편안하게 이해받는다고 느낄 수 있으며, 편견에 대한 두려움을 줄일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의료진과 인종이 동일한 환자가 의료서비스에 대해 더 크게 만족했다. 워싱턴 의과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유색 인종 환자는 백인 환자보다 백인 의사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정도가 낮았다. 따라서 의료진 선택권은 보건의료서비스에서 주된 심리적 장벽인 두려움, 불신, 불편감을 낮출 수 있는데, 특히 인종적 취약 계층에게 그럴 수 있다.
소비자 데이터와 점점 더 많이 개발되고 있는 환자-의료진 매칭 앱들은 환자들이 선택권을 점점 더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딜로이트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아시아인 및 흑인 참가자의 절반 이상은 자신과 정체성, 문화 또는 경험 면에서 유사한 의료진을 만나기 위해 장거리를 이동할 의향이 있다. 여러 종류의 앱들이 이러한 소비자 필요에 대응하고 있다. HUED라는 앱은 환자들의 리뷰를 보유하고 있으며, 사용자의 문화적, 신체적, 정신적 니즈를 다뤄본 경험이 있거나 공감할만한 의료진을 매칭해준다. 컬쳐 케어Culture Care는 흑인 여성 환자와 흑인 여성 의사를 연결해준다.
의료진 선택 권한은 두 가지 측면에서 더 효과적인 치료를 위한 발판이 된다. 첫째, 환자에게 문화적으로 유사한 의료진을 선택할 권한을 주어 잠재적 편견, 차별, 불편함의 요인을 피할 수 있도록 할 때, 환자와 의료진 사이의 연결이 강화된다. 이렇게 연결성이 강화됨으로써 파생되는 효과는 풍성하며 더 나은 결과들로 이어진다. 둘째, 환자에게 더 나은 반응을 이끌어낸다. 인간이 질병이나 부상에 대응하고 치유를 시작하는 세 가지 유형의 반응이 있는데, 이 세 가지는 자율 반응(신체가 건강 또는 균형을 되찾기 위해 작동되는 시스템), 특정 반응(의학적 치료의 효과), 의미 반응(치유의 맥락 안에서의 대인 관계 효과)이다.
의미 반응은 과소평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반응은 치유 과정에서 문화의 역할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환자는 진료를 받으러 갈 때, 의료진의 능력과 적합성에 대한 어떠한 예상을 가지고 간다. 인류학자 다니엘 모어만의 연구는 환자의 믿음이 치료 효과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모어만은 의료진이 자신의 능력과 치료 효과에 대해 가지고 있는 확신이 환자의 반응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발견했다. 모어만은 2002년 저서 <의미, 약, “플라시보 효과"Meaning, Medicine, and the “Placebo Effect”>에서 다음과 같이 관찰했다. “이러한 확신이 어떻게든 환자에게 전달되고, 그 과정에서 의사의 힘을 환자가 납득하고 나면 환자는 더 호전될 가능성(물리적 죽음이라는 한계 안에서)이 있습니다."
만약 의미 반응이 역으로도 작용해, 환자의 기대가 치료와 치유에 영향을 미친다면 어떨까? 의료진에 대한 환자의 초기 기대치(의료진 선택과 같은)에서 비롯한 총체적인 의미 반응을 통해 치료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의미 반응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 때문에 의료계는 환자들의 선택권을 지지해 주어야 한다.
또 다른 중요한 차원의 선택은 진료가 이뤄지는 장소인데,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비대면 진료virtual-care가 늘어나면서 선택지는 넓어졌다. 진료를 병원이나 집에서 혹은 비대면으로 받을 수 있는 유연성이 환자의 의료진 선택 범위를 넓혀준다. 예를 들어, 비대면 진료는 환자가 문화적으로 유사한 의료진을 만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환자가 이동 거리, 교통비, 근무 시간, 육아 등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준다. 2021년 미국에서 딜로이트가 표본 조사를 진행한 525명의 유색인종 중 절반 이상의 히스패닉과 절반에 가까운 흑인 및 아시아인이 문화적으로 유사한 의료진을 만나기 위해 비대면 진료를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기관의 리더와 보건의료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들은 환자가 높은 주도성을 가지고 의료진과 진료 장소를 선택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실행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
탑다운 방식의 ‘환자 매칭’, 문화나 언어의 동질성을 단순하게 고려한 매칭을 피하라 ㅣ 보건의료기관들은 환자와 의료진을 매칭할 때 인종이나 정체성을 기준으로 하면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다양성과 포용성을 실현하며 운영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편견에 기반한 것일 확률이 높고, 근본적으로 환자의 주도성을 없앤다. 정신 및 행동 건강 분야의 환자 매칭에 대한 연구 결과들은 외형적인 문화적 동질성에 기반해 기계적으로 환자와 의료진을 매칭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인류학적 연구 역시 일부 환자는 같은 문화권의 의료진에게 부정적으로 판단받는 것을 두려워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환자는 같은 문화권의 의료진으로부터 그 문화에서 낙인찍거나 제재하는 질병을 치료를 받을 때, 부정적으로 판단받는 것을 우려한다.
다양한 진료 환경에서 불평등이 어떻게 의료 문화로 나타나는지 직시하라 ㅣ 환자들은 문화적으로 일치하는 의료진을 선택하는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의료진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기존의 구조적 차별 때문에 치료의 질은 여전히 낮을 수 있다. 미국의 백인 의사에 비해 유색인종 의사는 혼자 진료할 가능성이 더 높고, 전문의에게 의뢰를 받을 가능성이 더 낮다. 자신의 환자를 상급 병원에 입원시키는 데도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동료 평가, 병원 홍보, 메디케이드Medicaid(감수자주: 저소득층 의료 보장 제도) 및 메디케어Medicare(감수자주: 노인 의료 보험 제도) 환급, 의료 과실 소송, 민간 보험 관리, 건강 관리 계약 보상 등에서 인종 차별을 경험한다. 이러한 인종 차별적 환경으로 인해 환자들은 문화적으로 적합한 치료와 고품질의 치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의료기관은 의료진의 직무 만족도와 경험에 대한 데이터를 주의 깊게 수집하고, 새로운 패턴을 추적해 이러한 제약을 경험하는 의료진을 지원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의료진 선택에 대한 접근 장벽 문제를 해결하라 | 의료진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서비스나 앱은 인터넷 접근성 부족, 언어나 문해력 장벽 및 다양한 능력을 이유로 환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울 수 있다.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social determinants of health과 관련된 교통 및 이동성 제약도 환자의 선택권을 제한한다. 보건의료기관은 어떻게 이러한 요인에 의해 의료서비스 선택이 제한되는지 연구해 접근성 문제를 형평성 있게 해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사회 내 비대면 진료소를 개설한다거나 환자들의 선택을 위한 교통 지원 정책을 마련하는 등의 조치가 포함되어야 한다.
환자와 돌봄 제공자 간의 관계성을 증진하라
관계는 돌봄의 핵심이다. 생물의학적biomedical 환경에서는 돌봄의 초점이 주로 질병의 진단에 맞춰져 있고, 개인의 질병 경험에 관심을 기울이는 데는 소홀하다. 그러나 치유는 단순히 생물학적인 과정이 아니다. 치유는 생물학적인 동시에 사회심리학적인 과정이며, 질병의 경험과 사회적 지지가 치료 결과를 크게 좌우한다. 즉 환자와 돌봄 제공자 간의 관계의 질이 치유 여정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질병 서사illness narratives’를 만들어내는데, 이 서사에는 질병의 원인, 진단, 치료 과정에 대한 기대가 포함된다. 클라이먼과 모어만은 문화적 소통 오류를 피하기 위해 의료진이 환자의 질병 서사를 끌어내, 공유된 이해shared understanding를 바탕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자와 가족, 의료진의 질병 서사가 상호 이해될 때, 임상적 소통, 의료서비스 관리, 환자의 순응도와 만족도가 향상된다. 향상된 환자 치료 효과는 의료진이 환자와 치료 계획을 상의하는 방식과 관련 있다. 예를 들어, 환자의 질문을 장려하고 함께 의사결정 하는 의료진은 환자의 불안도를 낮춘다.
질병 서사는 임상 진료에 통합되어 더 긍정적인 환자 경험과 치료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서사 의학narrative-based medicine, NBM은 매우 인상적이고 영감을 주는 접근방식이다. 의학 교육자 조지 자하리아스에 따르면, NBM은 ‘의사의 초점을 문제 해결에서 이해로 전환시키는 것’이며 이는 환자-의사 관계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며 의료 효과를 개선시킨다. 환자는 생물의학을 통한 생리학적 증상의 완화뿐 아니라 ‘인간적이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설명과 질병에 대한 심리사회적 치료’를 원한다고 자하리아스는 설명한다. NBM은 이러한 질적 측면을 임상 진료에 더 강력하게 적용할 수 있다. 여러 연구는 NBM이 환자의 웰빙을 증진하고, 암으로 인한 통증이나 류마티즘 관절염을 완화한다. 또 천식에서 폐 기능을 향상시키고, B형 간염 예방 접종 후 면역 반응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음을 밝혀냈다.
NBM의 여러 도구와 프레임워크는 의료진이 환자와 더 잘 소통하고, 서사를 일치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클라이먼의 여덟 질문 프레임워크Eight Questions framework는 의료진이 질병 서사를 이끌어내고, 환자가 자신의 고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도록 돕는다. 마찬가지로, 미국정신의학협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가 개발한 문화적 형성 인터뷰Cultural Formulation Interview는 환자의 문화적,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만들어진 것으로,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5에도 포함되어 있다. 이 문화적 형성 인터뷰는 다른 의료 영역에도 적용될 수 있으며, 환자의 관점을 통해 임상적 이해를 높인다. 두 도구 모두 임상의가 진료에 NBM의 요소를 도입할 수 있는 실행가능한 스크립트를 제공하며, 특히 환자의 문제점에 대해 묻고 경청함으로써 환자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에스노메트EthnoMed 및 컬처비전CultureVision 같은 의료 데이터베이스는 다양한 문화 집단의 의료 신념과 관행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그리고 질병에 대한 서사에서 드러날 수 있는 건강과 질병에 대한 특정한 문화적 신념을 맥락화하고, 문화적으로 적절한 치료를 위한 제안을 제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 아워노츠OurNotes는 환자가 확인할 수 있는 음성 메모를 의료진이 녹음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환자와 돌봄 제공자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의료기관은 의료진에게 필요한 환경과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 건강 형평성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인프라와 거버넌스가 개발되면서, 의료 시스템 차원에서 건강 형평성을 증진하려 할 때, 특정 환자의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더 긴 진료 시간과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의료기관은 위에서 의료진이 언급된 도구들을 어떻게 활용해 환자와 질 높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서사 의학에 대한 교육이나 질병 서사를 이끌어내는 훈련을 추가로 지원하면, 의대 교육 과정에서 이러한 프레임워크를 경험하지 못한 의료진도 교육할 수 있다.
질병 서사가 환자와 의료진의 오해를 줄일 수 있지만, 진료 불평등은 단순히 신념의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건강 불평등이 의료기관에서 나타는지 기관 차원에서 추적하고, 환자가 질 높은 진료를 받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벽을 파악하는 데 투자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상호유익하고 가부장적이지 않은 임상 파트너십을 다양한 지역사회 주제들과 개발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경험하는 여정의 단계별로 어떠한 권력 역학power dynamics이 나타나는지 비판적 자기성찰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팀은 ‘이 상호작용에서 어떤 권력의 차이가 존재할까?’나 ‘이 솔루션에서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의 질문을 통해 권력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설계할 수 있다. 이 질문들은 기관에서 권력이 보다 공평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유도함으로써 건강 형평성을 중심에 두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구조적 역량을 강화하라
보건의료 전문가가 질병의 사회적 결정요인을 해결해나가도록 훈련받는 경우는 드물지만, 사회적 결정요인과 구조적 요인이 건강 및 보건의료서비스 접근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점점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구조적 역량structural competency은 의료진이 의료 불평등을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의료 실무에서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보건의료 산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불신, 불만족, 의료 효과 격차와 같은 위기를 통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들 간의 상호작용을 넘어 기관과 사회의 구조를 조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종차별, 계급주의, 빈곤에 기반한 차별은 의료 격차를 발생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딜로이트 보고서의 추정에 따르면, 소득, 거주지의 위치, 사회적 지지체계 같은 사회적 결정 요인이 의료 효과의 80%를 결정한다.
지역사회 기반 의료서비스 모델Community-based health-care models은 임상 진료에서 구조적 역량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준다. 지역사회 기반 의료서비스는 다양한 의료 종사자들에 의해 제공되는 서비스를 포괄한다. 이들은 지역사회 내에서 사람 중심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의료 시스템의 회복력을 구축하기 위해 파트너십을 구축한다. 지역사회 의료 종사자Community health workers, CHW는 지역사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들로 돌봄의 지역적 맥락이나 맥락을 형성하는 사회적 권력, 사회적 격차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신뢰받는 구성원 또는 존경받는 손님이다. 지역사회 의료서비스 모델은 병원 및 의료진의 물리적 위치가 환자의 진료를 제한하는 상황을 개선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구조적 역량을 활용해 의료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선구적인 사례 두 가지를 소개한다. 비영리조직인 파트너스 인 헬스Partners in Health, PIH는 전 세계에서 가장 구조적으로 열악하고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도 치료 결과의 형평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지역사회 의료 모델을 개척했다. PIH는 10개국에서 13,000명이 넘는 지역사회 의료 종사자와 협력해왔다. 1980년대 후반, PIH는 아이티의 결핵 환자들이 회복하지 못하는 이유를 두고 극심한 빈곤으로 인해 의료서비스를 받는 것이 구조적으로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가정했다. 그러면서 무료 치료만을 받았을 때와 여러 사회경제적 지원을 함께 제공받았을 때의 치료 효과를 비교했다. 그들이 확인한 결과는 놀라웠다. 무료 치료 그룹에서는 56%가 치료되었고, 10%가 사망한 반면, 포괄적 지원을 받았던 그룹에서는 100%가 치료되었다. 고품질 의료서비스에 사회적 지원을 보충하는 것은 지역사회 의료서비스를 위한 PIH의 대표적인 방식이 되었다.
또 다른 선구적인 사례는 커먼웰스 케어 얼라이언스Commonwealth Care Alliance, CCA이다. CCA는 통합적인 돌봄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역의료 종사자들을 적절히 활용하면 의료 불평등을 얼마나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 증명한 사례이다. 비영리조직인 CCA는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유료 가입자-의료 제공자 건강 보험이다. CCA의 가입자 대부분은 기존 보건의료 산업에서 보험가입 대상이 되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메디케이드(감수자주: 저소득층 의료 보장 제도)와 메디케어(감수자주: 노인 의료 보험 제도)의 가입 대상이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저소득층이며, 트라우마와 장애를 포함해 복합적인 의료, 사회, 행동건강의 필요가 있는 계층이다.
CCA의 신념은 전인적 웰빙을 증진하는 의료서비스와 사회적 지원을 강화하고, 복합적인 필요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높은 수준의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비용이 많이 드는 응급 의료서비스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의료 시스템이 이미 질병에 걸린 환자를 치료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반면, CCA는 질병을 예방하고 만성 질환을 관리하며, 응급 치료를 생략할 수 있는 보다 포괄적인 개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CCA의 케어 모델은 일차의료를 향상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조직화된 다학제팀을 구성하고, 개인 맞춤형 치료 계획을 세우며, 행동 치료 서비스를 연계한다. 또 가정과 종합병원, 개인병원에서 상시로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팀을 운영한다. 2021년, 60%에 이르는 CCA 회원이 적어도 하나 이상의 사회적 지원 서비스를 받았다. 교통이나 주거 지원을 받았을 뿐 아니라 또래 상담, 침술, 마사지 테라피 같은 비전통적인 돌봄 서비스까지 지원을 받았다.
CCA는 그들이 제공하는 돌봄 서비스의 질과 괄목할만한 성과로 전국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최소 6개월 이상 자신의 건강 상태에 맞춘 식사를 집으로 배달받은 CCA 회원들은 응급 치료나 입원과 같이 비용이 많이 드는 의료서비스를 상당히 적게 이용했다. 이 연구는 건강을 개선하고 의료 비용을 낮추는데 식사 배달 서비스가 가진 가능성을 보여준다. CCA의 시니어 케어Senior Care 회원은 비교군의 노인-저소득층 환자보다 66% 낮은 양로원 입소율과 48% 낮은 입원 일수를 보였고, 전반적으로 급성 질환 관련 지출이 적었다.
PIH와 CCA는 지역사회에서 환자를 만나는 보건의료 기관이 어떻게 취약 계층에 높은 품질의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더 나아가 건강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보여주는 선도 사례이다. 기관은 구조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구조적 취약성 평가 도구Structural Vulnerability Assessment Tool를 도입해볼 수 있다. 이 평가 질문지는 의료진이 포괄적 의료 및 사회서비스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자를 식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보건의료 영역의 리더는 기관 내에 구조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다음 4가지를 실행해야 한다.
열망을 담은 신념과 가치를 소통하라 ㅣ 기관의 리더들과 보건의료 시스템의 설계자들은 열망을 담은 기관의 가치를 공들여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 보건의료 모델의 모범 사례들을 활용하고, 파트너십을 통해 임팩트를 극대화하며, 직원 경험에 투자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PIH의 공동창립자 폴 파머는 모든 인간이 존엄과 존중을 갖춘 질 높은 보건의료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CCA의 2021년 연차 보고서에서 회장이자 CEO인 크리스토퍼 D. 팔미에리는 “우리는 돌봄에 대한 우리의 방식을 믿습니다. 우리의 방식은 지역사회 중심적이고, 전혀 일반적이지 않습니다"라고 단언했다.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돌봄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리더십이 표방하는 가치가 직원 교육, 훈련 및 실무에 반영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CCA는 직원들에게 강력한 입사 교육과 함께 동기부여 면담, 트라우마 기반 치료, 문화적 감수성에 대한 교육 등 일상적인 교육을 제공한다.
지역 보건의료 모델의 모범 사례를 활용하라 ㅣ 지역사회 의료 종사자는 돌봄 서비스팀의 전문성을 가진 구성원이어야 한다. 의료기관은 지역사회 의료 종사자들을 기관에 포함시켜 장기적으로 지원하며, 의료 업무가 아닌 지역사회 업무를 위해 명확하게 할당된 금전적, 시간적 예산을 제공해야 한다.
가치 기반의 파트너십을 창의적으로 고안하라 ㅣ PIH와 CCA는 강력한 파트너십을 통해 임팩트를 극대화했다. PIH가 추구하는 가치에는 지역 이해관계자를 역량 강화하는 것과 진정성을 가지고 함께하는 파트너십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 통해 이들은 궁극적으로 주민들이 외부 NGO에 의존해 필요를 채우지 않고도 지역사회에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자원과 지식을 갖추게 한다. CCA는 파트너십을 통해 4개 주로 확장했고, 주립 의료서비스 시장에 존재하는 의료 격차를 줄였으며, 통합 의료서비스 모델을 강화했다. 매스 제너럴 브리검Mass General Brigham, MGB 연구진이 진행한 2022년 연구는 대학 병원 같은 대형 의학 센터가 CCA와 같은 비영리 지역사회 기반 1차 진료 기관과 어떻게 효과적인 파트너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CCA가 제공한 타깃 기반의 집중 의료서비스 관리 방식을 통해, MGB는 고비용, 고위험 메디케이드 인구의 총 의료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직원 경험 및 만족에 투자하라 ㅣ 구조적 역량을 강화하면 의료진의 번아웃을 가중하거나 경감시킬 수 있다. 대다수의 의료진에게는 전인적 진료를 제공하고, 가능한한 의료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직업적 의무가 있다. 의료진은 환자의 구조적 취약성을 줄일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가질 때, 일에서 더 큰 의미와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의료 정보 사이트 메드스케이프Medscape에 따르면, 미국 가정의학과 의사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 환자들과 관계를 맺고 환자들이 전하는 감사를 느끼는 것 다음으로 보람 있는 일이라고 답했다.
모두를 위해 더 나은 보건의료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갖춘 보건의료 서비스 기관은 모두를 포용하는 방식으로 보건의료 시스템을 대폭 개선할 수 있다. ‘치유의 문화Cultures of healing’란 돌봄을 의료의 중심에 두는 이상적 비전이다. 환자는 어떤 의료진을 만날지 선택하는 과정에서 자율성을 느끼고, 환자와 의료진은 진료실에서 상호작용할 때 모두 이해받고 존중받는다고 느낀다. 진료의 효과는 환자의 실제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 궁극적으로, 네 가지 변화의 도구는 건강 형평성을 달성하기 위해 작동한다. PIH와 CCA가 해온 것처럼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을 해결하는 것은 개인을 위한 치유의 문화에 기여할 뿐 아니라, 구조적 차별이라는 고통스러운 불의로부터 사회가 치유될 수 있도록 돕는다.
위에 제시된 변화를 위한 도구와 조언들은 기관들이 환자의 삶과 보건의료 시스템 안에 이미 존재하는 문화적 특성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기관 차원에서 대화를 시작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는다. 보건의료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은 곧 보건 문화를 만드는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가 더 건강한 사회를 위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다.
참고
1 . 캐서린 A. 메이슨과 그 외 <어떻게 ‘보건의 문화'를 만들 수 있을까? 의료 인류학에 기반한 위험과 기회 비판적 분석>, 인구 보건 관리, 23호, 6번,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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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NEY EASTON
휘트니 이스턴은 인류학자이자 아르테팩트(Artefact)의 선임 연구원이다. 아르테팩트는 인간중심 디자인 회사로 보건의료 서비스, 교육, 기술 분야를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