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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이
범죄를 줄일 수 있을까?
2023-1
JACOB KUSHNER
Summary. 가상현실 기술이 범죄 예방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기술의 사용이 갖는 윤리적, 심리적 우려를 함께 짚어본다.
교도소 출소자들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몇몇은 결국 실패한다. 재범률은 전 세계적으로 높은 편이다. 출소자들은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어려울 뿐 아니라 교육 접근성도 떨어지며 주거비를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등 사회적 장벽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실업은 재범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미국 법무부에 따르면 출소자의 약 60%가 출소 후 몇 달간 무직 상태이며 4명 중 1명이 장기간 무직 상태이다. 인디애나폴리스 지역의 한 연구에 따르면, 무직 상태인 출소자의 재범률은 42%인 반면 취업 상태인 출소자의 재범률은 단 26%에 지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주거를 확보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2018년 교도소 정책 이니셔티브Prison Policy Initiative의 보고서에 따르면 출소자는 일반인에 비해 노숙자가 될 확률이 약 10배 이상 높다. 2022년 7월에 설립된 한 연구소는 범죄와 관련한 통계 수치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막스랩 프라이부르크MAXLab Freiburg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범죄, 보안, 법률을 연구하는 막스 플랑크 연구소Max Planck Institute의 범죄학 부서이다. 이 부서는 범죄를 이해하고 억제하고 예방하기 위해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하는 움직임의 최전선에 있다.
“범죄는 심각한 사회 문제입니다.” 막스랩의 수장이자 범죄학 부서의 임원인 진-루이스 반 헬더가 말한다. “우리는 범죄를 줄일 예방책을 고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막스 플랭크 과학 진흥회Max Planck Society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는 독일 최고의 연구 네트워크로서 본사는 뮌헨에 위치하며 연간 예산 약 20억 달러를 주정부와 연방정부로부터 주로 지원받는다. 이 연구기관은 2019년에 반 헬더를 범죄학 부서의 리더로 채용했다. 막스 플랭크 과학진흥회는 중앙 프라이부르크에 있는 공간을 개조하고 컴퓨터와 가상현실 헤드셋을 갖춘 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5만 유로(약 5만 달러)를 투자했다. 막스 플랭크 과학진흥회의 범죄학 부서는 심리학자, 사회학자, 그리고 1명의 통계학자를 포함한 약 25명의 연구원들을 고용했고, 이들 중 절반은 현재 막스랩에서도 일한다. 범죄학 부서는 범죄 예방 해결책을 찾기 위한 일환으로 네덜란드 교도소 출소자들을 초대해 '미래의 자신'을 만나는 가상현실에 접속하게 했다. 초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미래의 자신을 만나고 1주일 후 자기 평가를 했는데, 자신이 보호관찰 기간 동안 음주를 할 가능성이나 재범을 저지를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말했다. 또한, 청소년들도 가상현실 속에서 자기 자신을 만난 뒤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덜 하게 될 것이라 자기 평가를 했다. 그러나 이런 가상현실 체험이 실제 현실에서도 범죄 행위를 덜 하게 만들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행동 유도하기
30년 가까이 전 세계 과학자들은 행동 연구를 위해 VR 기술을 사용해왔는데, 특히 2003년 설립된 스탠퍼드 대학교의 가상 인간 상호작용 연구소에서 VR 기술을 눈에 띄게 활용했다. 반 헬더는 1990년부터 VR 기술에 매료되었지만 2009년 법과 사회 협회 컨퍼런스Law and Society Association conference에서 미래의 나이 든 자기 자신을 만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은퇴자금을 저축한다는 연구를 알게 되면서 VR 기술에 더욱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반 헬더는 선행 연구 결과들을 참고해 VR 기술이 범죄 예방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이 가설은 2013년 그의 첫 연구 ‘미래의 당신Future U’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는 '미래의 자신에게 편지를 쓴 참여자는 잘못된 선택을 할 확률이 줄어든다'는 것과 '가상현실 환경에서 미래의 나이 든 자기 자신과 상호작용한 참가자는 이후 부정행위를 할 확률이 줄어든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반 헬더의 다음 연구는 가상 절도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에서 그는 네덜란드 절도 전과자가 가상현실 마을에서 어떤 집을 침입해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훔칠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도록 요청했다. 그는 2017년 절도 전과자들이 가상현실 마을에서 절도 범죄를 저지를 때 실제 현실에서와 비슷한 결정을 내린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19년에 네덜란드 법무부는 반 헬더와 그의 팀을 초대해 마을이 절도 범죄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에 참여시켰다. 연구팀은 160명의 절도 전과자들을 모집해 네덜란드 마을을 구현한 가상현실에 접속하게 하는 실험을 했다. 그리고 절도 전과자의 움직임을 감지해 자동으로 켜지는 ‘움직임 감지 가로등’이 절도 범죄를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해 관찰했다. 연구 결과는 내년쯤 나올 예정이다.
2021년 6월에 프라이부르크팀은 가상 술집 싸움이라는 이름의 실험을 진행했다. 이 실험은 성희롱이나 성폭행이 발생할 때 사람들을 개입하게 만드는 요소 또는 방관자로 만드는 요소를 파악하기 위해 계획되었다. 연구자들은 암스테르담의 술집 하나를 빌려서 싸움으로 이어지는 대치 상태를 연출했고 성희롱하는 술집 손님을 연기하는 연기자를 고용했다. 그리고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학생이 대다수로 구성된 수백 명의 실험 참가자들을 가상현실 환경에 투입시켜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한 뒤 자기 경험을 보고하도록 요청했다. 연구팀은 현재 결과를 분석 중이며 올봄에 보고서가 출판될 것이다. 연구팀은 심장 박동, 눈의 움직임, 코르티솔 등 다양한 지표를 측정하는 가상현실을 구축하여 범죄 행위를 막기 위한 개입 행위, 신고 행위 또는 방관 행위의 가능성, 범죄에 동참할 가능성을 파악하는 새로운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보통 인간이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판단한다고 믿지만 감정이 그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VR 기술을 통해 우리는 사람들을 실제 범죄와 가능한 가까운 가상현실에 접속하게 하여 인간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막스랩의 선임 연구원인 팀 바넘이 설명한다.
예를 들어, 술집에 있던 모두가 성희롱을 목격했더라도 성희롱을 막기 위해 상황에 개입하는 것은 망설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범죄학 용어로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라고 한다. 범죄학자들은 수백만 명의 독일인들이 홀로코스트를 묵인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오랫동안 방관자 효과를 연구해왔다. 지금도, 연구실 안의 가상현실에서 참여자들이 해로운 장면을 볼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하고 있다. 이를 통해 막스랩은 사람들이 성희롱이나 괴롭힘을 막도록 개입할 방법을 찾길 희망한다.
반 헬더는 “만약 다섯 명의 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목격하고 모두 괴롭힘으로 인식했다면, 우리는 각각의 사람들이 그 상황에 개입하도록 소통하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일단 당신이 언제 그리고 어떻게 사람들이 개입하는지에 관련된 역학을 이해한다면, 사람들이 개입할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범죄 억제하기
막스랩 연구의 대부분은 범죄를 저지르는 충동이 장기적 사고가 아닌 단기적 사고에서 비롯된다는 심리학 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즉, 즉각적 만족이 먼 미래의 명백한 결과보다 우선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먹고 싶은 충동 때문에 음식을 훔칠 것이고 혹은 TV를 훔치고 싶다는 충동 때문에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가 도둑질을 한다. 그러나 범죄자는 합법성과는 관계없이 종종 빠른 결정을 내리며 장기적 대가에 대한 생각을 충분히 하지 않는다.
반 헬더는 “도둑질을 하면 당장은 이득이 되겠지만, 잡혔을 때 펼쳐질 결과는 명백합니다. 감옥에 갇히거나 퇴학을 당하는 거죠.”라고 설명한다. “'미래의 당신' 프로젝트의 핵심은 사람들이 미래의 자기 자신과 상호작용하거나 마주함으로써 자멸적 행동self-defeating behavior을 줄일 수 있다는 가설입니다.” 반 헬더의 연구팀은 2월에 발표한 최근 연구 결과에서, 가상현실 속 미래의 자신과 함께 삶의 목표에 관한 대화를 나눈 사람들 사이에서 알코올 중독이나 과소비와 같은 자멸적 행동이 감소했음을 관찰했다. 연구팀은 펜실베니아 교도소와 동일한 가상현실 환경을 구현했다. “만약 10개의 VR 세션을 참여하면, 재범률이 10% 줄어든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건 굉장한 성과일 것입니다.” 반 헬더는 말했다.
그러나 ‘미래의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만으로 현실 세계에서 다른 행동을 하도록 하는데 충분할까?
'미래의 당신' 프로젝트의 연구원이자 범죄학 박사 후보자인 아니엑 시에젠가는 네덜란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에서도 가상현실의 자기 자신과 만나는 세션 후 음주량이 감소하고 과소비가 줄어드는 결과를 도출했다고 말했다. 시에젠가는 막스랩의 '미래의 당신' 프로젝트 연구 목표는 만약 사람들이 더 미래지향적이 되면 더 목표지향적이 되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그렇게 만들 수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에젠가는 2021년에 네덜란드에서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18~19세 참가자들이 걱정, 자신감 등 깊은 고민을 공유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일부 가상환경 개입은 이미 삶을 변화시켰고 아마도 누군가의 삶을 구원하기도 할 것이다. '나를 잊지 마세요'라고 불리는 네덜란드의 연구 프로젝트는 재범률을 낮추는 방법의 일환으로 국내 가정폭력 전과자가 자신의 가정폭력 행동이 피해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도록 VR 기술을 활용한다. 이 프로그램은 2011년 진행된 연구를 토대로 기획된 것으로, 연구팀은 가정폭력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적 있는 스페인 남성이 가상현실에서는 여성이 되어 자신의 폭력적인 행동을 지켜볼 수 있도록 하였다. 참여자가 성별이 뒤바뀐 가상현실을 체험하도록 한 배경에는 친밀한 파트너 범죄를 저지른 남성들이 그의 자녀 또는 피해자의 관점을 이해하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라고 연구자들은 설명한다. 연구에 따르면 가상현실의 효과로 인해 이전에는 파트너의 두려움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몇몇 남성들이 이를 인지하게 되어 미래에 폭행을 저지를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스페인 정부는 해당 연구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보호관찰의 일환으로 가정폭력 전과자들은 아이들이 등장하는 가상현실 세계에 접속한다. 그리고 전과자들은 가상현실에서 아이들의 관점에서 폭력의 전조를 목격한다. 연구자들은 관점을 바꾸는 경험이 미래에 가정폭력을 저지를 가능성을 낮출 수 있는지 알아내고자 한다.
가정폭력에 대한 스페인의 연구나 막스랩의 가상 술집 싸움과 같은 프로그램들은 가상현실이 타인에 대한 공감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2021년에 발표된 43개 연구에 대한 메타분석 결과 “가상현실이 동정심을 유발할 수는 있지만 타인의 관점에서 상상하도록 참가자를 독려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팀 바넘 선임 연구원이 연구소의 가상 술집 싸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더 나은 당신 만들기
가상현실은 건강을 향상시키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다. 이미 미국에서는 가상현실 치료법을 참전용사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극복을 돕는 데 사용하고 있고 곧 뇌졸중 환자 재활에도 사용할 것이다. 또한 의학 전문가들은 가상현실을 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ADHD와 자폐증에도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막스랩의 초빙 연구원이자 '미래의 당신' 프로젝트 연구원인 매기 웹에 따르면 가상현실의 가장 큰 효과는 우울증 완화와 자살 예방이다.
“우울증의 한 가지 특징은 미래를 생각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입니다.”라고 웹은 말했다. “하지만 가상현실은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활성화시킬 수 있습니다.”
웹은 최근 10대 우울증 질환자들을 대상으로 미래의 긍정적인 순간-고등학교나 대학교 졸업 또는 방학과 같이-의 자기 모습을 가상현실에서 만나게 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또한 웹은 “청소년들이 자기 자신과 상호작용하면서 낙관적인 미래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생생하고 현실적인 가상현실을 긍정적으로 경험함으로써, 만약 자신이 살아 있지 않았더라면 놓쳤을 인생 경험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미래의 심리학자 상담실에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미래 모습과 대화할 수 있는 가상현실 기능이 구비되어 있을 것이라고 웹은 상상한다. 이런 경험들이 우리 일상생활 속에 스며드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이미 가상현실에 빠져 있는 비디오 게이머들은 자살 예방 광고가 아닌 가상현실 체험을 통해서 자살 예방의 효과를 경험했을 수 있다. 그러한 경험은 그들이 이미 하고 있는 게임에 통합될 수도 있다.
심리치료사들은 안전하고 통제된 환경에서 사람들을 고소공포증이나 거미공포증 등 공포증을 극복하는데 노출치료exposure therapy를 사용해왔다. 이에 대해 웹은 “심리치료뿐만 아니라 가상현실에서도 일상생활에서 본인이 두려워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가상현실을 사용해서 참여자가 빌딩 모서리 꼭대기에 서있게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빌딩에 서있지 않아도 고소공포증을 체험할 수 있는 거죠.”
미국 청소년 수감자의 정신 질환 비율은 보통 사람의 약 4배나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웹은 막스랩의 가상현실 연구를 통해 청소년 정신건강을 개선하고 재범률을 낮출 수 있는지 실험하려고 한다.
웹은 “18~24세에는 자기반성과 관련된 뇌 영역을 비롯해 뇌가 아직 발달 중이에요. 그리고 미국 교도소에 수감되는 주요 연령대이기도 하고요.”라고 말했다. 웹은 청소년 수감자들이 가상현실에서 미래의 자기 자신과 만나게 하고 대화하게 함으로써 단기적 사고방식을 고치고 더 나은 장기적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구조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들
가상현실이 정신건강을 개선하는 데 유망한 도구처럼 보일 수 있지만 범죄를 예측하고 예방하는 효과에 대해 여전히 알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면, 범죄와 범죄자의 심리상태에 대한 가상현실 적용 여부는 논쟁적이다.
범죄학은 누가 범죄를 저지르고 왜 범죄를 저지르는가를 다루는 학문으로 15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범죄학은 범죄의 원인으로 개인의 선택을 강조하는 단순화된 관점 때문에 논란을 빚어왔다. 또한 범죄학은 구조적 불평등과 인종차별을 통해 사회가 어떻게 범죄와 범죄자를 만드는지 더디게 인식해왔다. 좀 더 문자적인 의미로 설명하자면 무엇이 범죄를 구성하고 어떻게 그것을 처벌하는지에 대해 법을 제정하는 데 있어 범죄학은 더딘 인식을 보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 범죄학자들은 사람들이 비윤리적으로 행동하도록 유도될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자 했다. 그래서 정교하고 때로는 선동적인 실험 환경을 고안해 복종의 역학 또는 사람들이 비범한 또는 비윤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되는 방법을 관찰했다. 가장 유명한 실험환경으로는 1963년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이며, 이 실험에서는 다른 이들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라고 참가자들을 설득했다. 다른 하나는 필립 짐바도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며, 이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이 교도관 역할을 맡아 수용자들을 학대하는 것으로 잘 알려졌다(2018년 짐바도의 연구는 허위성이 있으며 비윤리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2006년 런던의 심리학자들은 20대와 30대 남성들을 실험 대상으로 하여 가상현실에서 전기 충격을 구현하는 방식으로 밀그램 실험을 재현하였다. 그 팀은 참가자들이 피실험자나 전기 충격이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참여했으며, 1963년 실험에 참여한 참가자들과 유사한 정도의 고통을 보였다는 것을 발견했다. 만약 다른 가상현실 연구가 대면 연구와 동일한 정확성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다면, 실제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실험들의 ‘문을 다시 여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비평가들은 오늘날의 범죄학자들이 그동안 답을 전혀 찾지 못했고, 아마 앞으로도 알 수 없는 질문들에 대해서 가상현실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워털루 대학의 가상현실 윤리학 교수인 다니엘 할리는“성격 특성과 범죄 행동을 연결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으며, 가상현실은 인간에 대한 오래된 질문들에 답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구조적인 인종차별, 식민지주의, 불평등과 같이 개인을 넘어선 구조적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도구는 문제 해결에 항상 불충분할 것입니다.”
실제로 가상현실은 경찰 감독 강화, 교도소 개혁, 제도적 인종 차별, 의료 및 주택과 같은 사회 안전망에 대한 접근성 격차와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 할리는 “개인에게 문제가 있고 기술에 해결책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라고 덧붙였다.
할리는 가상현실이 현 사법제도가 내포한 차별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한다. ‘비정상적’으로 간주되거나 ‘비정상적’ 성향을 보이는 특정 범주의 사람들을 범죄화하고 수감하기 위해 구조화된 시스템은 직업, 안정적인 주거, 식량 등 안전망이 없는 경우 재범을 막기 어렵기 때문이다. ‘구조적 인종차별과 같이 개인의 영향을 넘어서는 구조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구조적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막스랩 연구진과 다른 가상현실 범죄학자들이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가상현실이 범죄 감소로 이어져 개인에게 어떤 이득을 줄 수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범죄학자들은 범죄가 발생하는 시점에 우리가 현장에 있을 수 없다는 문제를 가상현실을 활용하여 극복해보려고 하고 있다.
반 헬더는 “가상현실의 진정한 힘은 안전하고 윤리적인 방식으로 실제 사건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연구소의 모든 연구가 막스 플랑크 학회의 윤리 위원회에서 검토되어, 연구소의 가상현실 개입이 참가자들에게 트라우마, PTSD 또는 다른 부정적인 심리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보장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부 가상현실 개입들은 유죄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윤리적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예를 들어, 목격자 증언이나 배심원의 기억이 불확실한 것을 대신하여 배심원들을 가상 버전의 범죄 현장으로 이끌고 가는 것 같은 개입들이다. 2021년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이 가상범죄 현장에 배치되었을 때, 사진 증거에 의존해야 했던 배심원들보다 물건과 증거의 위치를 더 잘 기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변호사들은 배심원들을 가상 범죄 현장을 경험하게 하면 배심원들이 피고인의 심리에 영향을 주는 모든 요소를 자신도 체험하고 있다는 잘못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배심원들에게 본질적인 맥락 단서를 놓칠 수 있다. 예를 들면 냄새와 소리뿐만 아니라 이전에 경찰과의 부정적인 상호작용 등 중요한 상황적 단서를 놓칠 수 있다.
2018년 법률학자인 마크 렘리와 유진 브룩은 펜실베니아 대학교 법률 리뷰에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은 법에 도전적인 문제를 제시할 것입니다.”라는 글을 기고했다. “가상현실의 본질적인 특성은 법이 그어놓은 경계들에 도전할 것입니다. 물리적 실제와 원격성 사이의 경계, 행위와 말 사이의 경계, 신체적 피해와 심리적 피해의 경계에 말입니다”.
하지만 법이야말로 반 헬더와 막스랩의 연구진이 가상현실을 사회적 공익을 위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하기 위해 탐구하고 있는 분야이다. “가상현실은 현실 세계를 재현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라고 반 헬더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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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OB KUSHNER
아프리카, 독일, 카리브해에서 취재하는 저널리스트이다. 그는 뉴요커(The New Yorker), 애틀랜틱(The Atlantic),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와이어드(WIRED),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등의 매체에 과학, 혁신, 이주, 법률, 테러리즘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그는 하이델베르크와 프라이부르크에 있는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2022년 저널리스트 인 레지던스(Journalist in Residence)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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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 일반 · 사회 · 기술
가상현실이
범죄를 줄일 수 있을까?
2023-1
JACOB KUSHNER
Summary. 가상현실 기술이 범죄 예방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기술의 사용이 갖는 윤리적, 심리적 우려를 함께 짚어본다.
교도소 출소자들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몇몇은 결국 실패한다. 재범률은 전 세계적으로 높은 편이다. 출소자들은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어려울 뿐 아니라 교육 접근성도 떨어지며 주거비를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등 사회적 장벽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실업은 재범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미국 법무부에 따르면 출소자의 약 60%가 출소 후 몇 달간 무직 상태이며 4명 중 1명이 장기간 무직 상태이다. 인디애나폴리스 지역의 한 연구에 따르면, 무직 상태인 출소자의 재범률은 42%인 반면 취업 상태인 출소자의 재범률은 단 26%에 지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주거를 확보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2018년 교도소 정책 이니셔티브Prison Policy Initiative의 보고서에 따르면 출소자는 일반인에 비해 노숙자가 될 확률이 약 10배 이상 높다. 2022년 7월에 설립된 한 연구소는 범죄와 관련한 통계 수치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막스랩 프라이부르크MAXLab Freiburg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범죄, 보안, 법률을 연구하는 막스 플랑크 연구소Max Planck Institute의 범죄학 부서이다. 이 부서는 범죄를 이해하고 억제하고 예방하기 위해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하는 움직임의 최전선에 있다.
“범죄는 심각한 사회 문제입니다.” 막스랩의 수장이자 범죄학 부서의 임원인 진-루이스 반 헬더가 말한다. “우리는 범죄를 줄일 예방책을 고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막스 플랭크 과학 진흥회Max Planck Society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는 독일 최고의 연구 네트워크로서 본사는 뮌헨에 위치하며 연간 예산 약 20억 달러를 주정부와 연방정부로부터 주로 지원받는다. 이 연구기관은 2019년에 반 헬더를 범죄학 부서의 리더로 채용했다. 막스 플랭크 과학진흥회는 중앙 프라이부르크에 있는 공간을 개조하고 컴퓨터와 가상현실 헤드셋을 갖춘 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5만 유로(약 5만 달러)를 투자했다. 막스 플랭크 과학진흥회의 범죄학 부서는 심리학자, 사회학자, 그리고 1명의 통계학자를 포함한 약 25명의 연구원들을 고용했고, 이들 중 절반은 현재 막스랩에서도 일한다. 범죄학 부서는 범죄 예방 해결책을 찾기 위한 일환으로 네덜란드 교도소 출소자들을 초대해 '미래의 자신'을 만나는 가상현실에 접속하게 했다. 초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미래의 자신을 만나고 1주일 후 자기 평가를 했는데, 자신이 보호관찰 기간 동안 음주를 할 가능성이나 재범을 저지를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말했다. 또한, 청소년들도 가상현실 속에서 자기 자신을 만난 뒤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덜 하게 될 것이라 자기 평가를 했다. 그러나 이런 가상현실 체험이 실제 현실에서도 범죄 행위를 덜 하게 만들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행동 유도하기
30년 가까이 전 세계 과학자들은 행동 연구를 위해 VR 기술을 사용해왔는데, 특히 2003년 설립된 스탠퍼드 대학교의 가상 인간 상호작용 연구소에서 VR 기술을 눈에 띄게 활용했다. 반 헬더는 1990년부터 VR 기술에 매료되었지만 2009년 법과 사회 협회 컨퍼런스Law and Society Association conference에서 미래의 나이 든 자기 자신을 만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은퇴자금을 저축한다는 연구를 알게 되면서 VR 기술에 더욱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반 헬더는 선행 연구 결과들을 참고해 VR 기술이 범죄 예방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이 가설은 2013년 그의 첫 연구 ‘미래의 당신Future U’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는 '미래의 자신에게 편지를 쓴 참여자는 잘못된 선택을 할 확률이 줄어든다'는 것과 '가상현실 환경에서 미래의 나이 든 자기 자신과 상호작용한 참가자는 이후 부정행위를 할 확률이 줄어든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반 헬더의 다음 연구는 가상 절도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에서 그는 네덜란드 절도 전과자가 가상현실 마을에서 어떤 집을 침입해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훔칠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도록 요청했다. 그는 2017년 절도 전과자들이 가상현실 마을에서 절도 범죄를 저지를 때 실제 현실에서와 비슷한 결정을 내린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19년에 네덜란드 법무부는 반 헬더와 그의 팀을 초대해 마을이 절도 범죄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에 참여시켰다. 연구팀은 160명의 절도 전과자들을 모집해 네덜란드 마을을 구현한 가상현실에 접속하게 하는 실험을 했다. 그리고 절도 전과자의 움직임을 감지해 자동으로 켜지는 ‘움직임 감지 가로등’이 절도 범죄를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해 관찰했다. 연구 결과는 내년쯤 나올 예정이다.
2021년 6월에 프라이부르크팀은 가상 술집 싸움이라는 이름의 실험을 진행했다. 이 실험은 성희롱이나 성폭행이 발생할 때 사람들을 개입하게 만드는 요소 또는 방관자로 만드는 요소를 파악하기 위해 계획되었다. 연구자들은 암스테르담의 술집 하나를 빌려서 싸움으로 이어지는 대치 상태를 연출했고 성희롱하는 술집 손님을 연기하는 연기자를 고용했다. 그리고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학생이 대다수로 구성된 수백 명의 실험 참가자들을 가상현실 환경에 투입시켜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한 뒤 자기 경험을 보고하도록 요청했다. 연구팀은 현재 결과를 분석 중이며 올봄에 보고서가 출판될 것이다. 연구팀은 심장 박동, 눈의 움직임, 코르티솔 등 다양한 지표를 측정하는 가상현실을 구축하여 범죄 행위를 막기 위한 개입 행위, 신고 행위 또는 방관 행위의 가능성, 범죄에 동참할 가능성을 파악하는 새로운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보통 인간이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판단한다고 믿지만 감정이 그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VR 기술을 통해 우리는 사람들을 실제 범죄와 가능한 가까운 가상현실에 접속하게 하여 인간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막스랩의 선임 연구원인 팀 바넘이 설명한다.
예를 들어, 술집에 있던 모두가 성희롱을 목격했더라도 성희롱을 막기 위해 상황에 개입하는 것은 망설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범죄학 용어로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라고 한다. 범죄학자들은 수백만 명의 독일인들이 홀로코스트를 묵인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오랫동안 방관자 효과를 연구해왔다. 지금도, 연구실 안의 가상현실에서 참여자들이 해로운 장면을 볼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하고 있다. 이를 통해 막스랩은 사람들이 성희롱이나 괴롭힘을 막도록 개입할 방법을 찾길 희망한다.
반 헬더는 “만약 다섯 명의 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목격하고 모두 괴롭힘으로 인식했다면, 우리는 각각의 사람들이 그 상황에 개입하도록 소통하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일단 당신이 언제 그리고 어떻게 사람들이 개입하는지에 관련된 역학을 이해한다면, 사람들이 개입할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범죄 억제하기
막스랩 연구의 대부분은 범죄를 저지르는 충동이 장기적 사고가 아닌 단기적 사고에서 비롯된다는 심리학 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즉, 즉각적 만족이 먼 미래의 명백한 결과보다 우선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먹고 싶은 충동 때문에 음식을 훔칠 것이고 혹은 TV를 훔치고 싶다는 충동 때문에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가 도둑질을 한다. 그러나 범죄자는 합법성과는 관계없이 종종 빠른 결정을 내리며 장기적 대가에 대한 생각을 충분히 하지 않는다.
반 헬더는 “도둑질을 하면 당장은 이득이 되겠지만, 잡혔을 때 펼쳐질 결과는 명백합니다. 감옥에 갇히거나 퇴학을 당하는 거죠.”라고 설명한다. “'미래의 당신' 프로젝트의 핵심은 사람들이 미래의 자기 자신과 상호작용하거나 마주함으로써 자멸적 행동self-defeating behavior을 줄일 수 있다는 가설입니다.” 반 헬더의 연구팀은 2월에 발표한 최근 연구 결과에서, 가상현실 속 미래의 자신과 함께 삶의 목표에 관한 대화를 나눈 사람들 사이에서 알코올 중독이나 과소비와 같은 자멸적 행동이 감소했음을 관찰했다. 연구팀은 펜실베니아 교도소와 동일한 가상현실 환경을 구현했다. “만약 10개의 VR 세션을 참여하면, 재범률이 10% 줄어든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건 굉장한 성과일 것입니다.” 반 헬더는 말했다.
그러나 ‘미래의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만으로 현실 세계에서 다른 행동을 하도록 하는데 충분할까?
'미래의 당신' 프로젝트의 연구원이자 범죄학 박사 후보자인 아니엑 시에젠가는 네덜란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에서도 가상현실의 자기 자신과 만나는 세션 후 음주량이 감소하고 과소비가 줄어드는 결과를 도출했다고 말했다. 시에젠가는 막스랩의 '미래의 당신' 프로젝트 연구 목표는 만약 사람들이 더 미래지향적이 되면 더 목표지향적이 되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그렇게 만들 수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에젠가는 2021년에 네덜란드에서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18~19세 참가자들이 걱정, 자신감 등 깊은 고민을 공유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일부 가상환경 개입은 이미 삶을 변화시켰고 아마도 누군가의 삶을 구원하기도 할 것이다. '나를 잊지 마세요'라고 불리는 네덜란드의 연구 프로젝트는 재범률을 낮추는 방법의 일환으로 국내 가정폭력 전과자가 자신의 가정폭력 행동이 피해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도록 VR 기술을 활용한다. 이 프로그램은 2011년 진행된 연구를 토대로 기획된 것으로, 연구팀은 가정폭력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적 있는 스페인 남성이 가상현실에서는 여성이 되어 자신의 폭력적인 행동을 지켜볼 수 있도록 하였다. 참여자가 성별이 뒤바뀐 가상현실을 체험하도록 한 배경에는 친밀한 파트너 범죄를 저지른 남성들이 그의 자녀 또는 피해자의 관점을 이해하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라고 연구자들은 설명한다. 연구에 따르면 가상현실의 효과로 인해 이전에는 파트너의 두려움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몇몇 남성들이 이를 인지하게 되어 미래에 폭행을 저지를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스페인 정부는 해당 연구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보호관찰의 일환으로 가정폭력 전과자들은 아이들이 등장하는 가상현실 세계에 접속한다. 그리고 전과자들은 가상현실에서 아이들의 관점에서 폭력의 전조를 목격한다. 연구자들은 관점을 바꾸는 경험이 미래에 가정폭력을 저지를 가능성을 낮출 수 있는지 알아내고자 한다.
가정폭력에 대한 스페인의 연구나 막스랩의 가상 술집 싸움과 같은 프로그램들은 가상현실이 타인에 대한 공감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2021년에 발표된 43개 연구에 대한 메타분석 결과 “가상현실이 동정심을 유발할 수는 있지만 타인의 관점에서 상상하도록 참가자를 독려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팀 바넘 선임 연구원이 연구소의 가상 술집 싸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더 나은 당신 만들기
가상현실은 건강을 향상시키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다. 이미 미국에서는 가상현실 치료법을 참전용사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극복을 돕는 데 사용하고 있고 곧 뇌졸중 환자 재활에도 사용할 것이다. 또한 의학 전문가들은 가상현실을 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ADHD와 자폐증에도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막스랩의 초빙 연구원이자 '미래의 당신' 프로젝트 연구원인 매기 웹에 따르면 가상현실의 가장 큰 효과는 우울증 완화와 자살 예방이다.
“우울증의 한 가지 특징은 미래를 생각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입니다.”라고 웹은 말했다. “하지만 가상현실은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활성화시킬 수 있습니다.”
웹은 최근 10대 우울증 질환자들을 대상으로 미래의 긍정적인 순간-고등학교나 대학교 졸업 또는 방학과 같이-의 자기 모습을 가상현실에서 만나게 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또한 웹은 “청소년들이 자기 자신과 상호작용하면서 낙관적인 미래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생생하고 현실적인 가상현실을 긍정적으로 경험함으로써, 만약 자신이 살아 있지 않았더라면 놓쳤을 인생 경험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미래의 심리학자 상담실에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미래 모습과 대화할 수 있는 가상현실 기능이 구비되어 있을 것이라고 웹은 상상한다. 이런 경험들이 우리 일상생활 속에 스며드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이미 가상현실에 빠져 있는 비디오 게이머들은 자살 예방 광고가 아닌 가상현실 체험을 통해서 자살 예방의 효과를 경험했을 수 있다. 그러한 경험은 그들이 이미 하고 있는 게임에 통합될 수도 있다.
심리치료사들은 안전하고 통제된 환경에서 사람들을 고소공포증이나 거미공포증 등 공포증을 극복하는데 노출치료exposure therapy를 사용해왔다. 이에 대해 웹은 “심리치료뿐만 아니라 가상현실에서도 일상생활에서 본인이 두려워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가상현실을 사용해서 참여자가 빌딩 모서리 꼭대기에 서있게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빌딩에 서있지 않아도 고소공포증을 체험할 수 있는 거죠.”
미국 청소년 수감자의 정신 질환 비율은 보통 사람의 약 4배나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웹은 막스랩의 가상현실 연구를 통해 청소년 정신건강을 개선하고 재범률을 낮출 수 있는지 실험하려고 한다.
웹은 “18~24세에는 자기반성과 관련된 뇌 영역을 비롯해 뇌가 아직 발달 중이에요. 그리고 미국 교도소에 수감되는 주요 연령대이기도 하고요.”라고 말했다. 웹은 청소년 수감자들이 가상현실에서 미래의 자기 자신과 만나게 하고 대화하게 함으로써 단기적 사고방식을 고치고 더 나은 장기적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구조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들
가상현실이 정신건강을 개선하는 데 유망한 도구처럼 보일 수 있지만 범죄를 예측하고 예방하는 효과에 대해 여전히 알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면, 범죄와 범죄자의 심리상태에 대한 가상현실 적용 여부는 논쟁적이다.
범죄학은 누가 범죄를 저지르고 왜 범죄를 저지르는가를 다루는 학문으로 15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범죄학은 범죄의 원인으로 개인의 선택을 강조하는 단순화된 관점 때문에 논란을 빚어왔다. 또한 범죄학은 구조적 불평등과 인종차별을 통해 사회가 어떻게 범죄와 범죄자를 만드는지 더디게 인식해왔다. 좀 더 문자적인 의미로 설명하자면 무엇이 범죄를 구성하고 어떻게 그것을 처벌하는지에 대해 법을 제정하는 데 있어 범죄학은 더딘 인식을 보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 범죄학자들은 사람들이 비윤리적으로 행동하도록 유도될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자 했다. 그래서 정교하고 때로는 선동적인 실험 환경을 고안해 복종의 역학 또는 사람들이 비범한 또는 비윤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되는 방법을 관찰했다. 가장 유명한 실험환경으로는 1963년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이며, 이 실험에서는 다른 이들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라고 참가자들을 설득했다. 다른 하나는 필립 짐바도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며, 이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이 교도관 역할을 맡아 수용자들을 학대하는 것으로 잘 알려졌다(2018년 짐바도의 연구는 허위성이 있으며 비윤리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2006년 런던의 심리학자들은 20대와 30대 남성들을 실험 대상으로 하여 가상현실에서 전기 충격을 구현하는 방식으로 밀그램 실험을 재현하였다. 그 팀은 참가자들이 피실험자나 전기 충격이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참여했으며, 1963년 실험에 참여한 참가자들과 유사한 정도의 고통을 보였다는 것을 발견했다. 만약 다른 가상현실 연구가 대면 연구와 동일한 정확성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다면, 실제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실험들의 ‘문을 다시 여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비평가들은 오늘날의 범죄학자들이 그동안 답을 전혀 찾지 못했고, 아마 앞으로도 알 수 없는 질문들에 대해서 가상현실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워털루 대학의 가상현실 윤리학 교수인 다니엘 할리는“성격 특성과 범죄 행동을 연결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으며, 가상현실은 인간에 대한 오래된 질문들에 답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구조적인 인종차별, 식민지주의, 불평등과 같이 개인을 넘어선 구조적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도구는 문제 해결에 항상 불충분할 것입니다.”
실제로 가상현실은 경찰 감독 강화, 교도소 개혁, 제도적 인종 차별, 의료 및 주택과 같은 사회 안전망에 대한 접근성 격차와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 할리는 “개인에게 문제가 있고 기술에 해결책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라고 덧붙였다.
할리는 가상현실이 현 사법제도가 내포한 차별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한다. ‘비정상적’으로 간주되거나 ‘비정상적’ 성향을 보이는 특정 범주의 사람들을 범죄화하고 수감하기 위해 구조화된 시스템은 직업, 안정적인 주거, 식량 등 안전망이 없는 경우 재범을 막기 어렵기 때문이다. ‘구조적 인종차별과 같이 개인의 영향을 넘어서는 구조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구조적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막스랩 연구진과 다른 가상현실 범죄학자들이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가상현실이 범죄 감소로 이어져 개인에게 어떤 이득을 줄 수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범죄학자들은 범죄가 발생하는 시점에 우리가 현장에 있을 수 없다는 문제를 가상현실을 활용하여 극복해보려고 하고 있다.
반 헬더는 “가상현실의 진정한 힘은 안전하고 윤리적인 방식으로 실제 사건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연구소의 모든 연구가 막스 플랑크 학회의 윤리 위원회에서 검토되어, 연구소의 가상현실 개입이 참가자들에게 트라우마, PTSD 또는 다른 부정적인 심리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보장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부 가상현실 개입들은 유죄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윤리적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예를 들어, 목격자 증언이나 배심원의 기억이 불확실한 것을 대신하여 배심원들을 가상 버전의 범죄 현장으로 이끌고 가는 것 같은 개입들이다. 2021년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이 가상범죄 현장에 배치되었을 때, 사진 증거에 의존해야 했던 배심원들보다 물건과 증거의 위치를 더 잘 기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변호사들은 배심원들을 가상 범죄 현장을 경험하게 하면 배심원들이 피고인의 심리에 영향을 주는 모든 요소를 자신도 체험하고 있다는 잘못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배심원들에게 본질적인 맥락 단서를 놓칠 수 있다. 예를 들면 냄새와 소리뿐만 아니라 이전에 경찰과의 부정적인 상호작용 등 중요한 상황적 단서를 놓칠 수 있다.
2018년 법률학자인 마크 렘리와 유진 브룩은 펜실베니아 대학교 법률 리뷰에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은 법에 도전적인 문제를 제시할 것입니다.”라는 글을 기고했다. “가상현실의 본질적인 특성은 법이 그어놓은 경계들에 도전할 것입니다. 물리적 실제와 원격성 사이의 경계, 행위와 말 사이의 경계, 신체적 피해와 심리적 피해의 경계에 말입니다”.
하지만 법이야말로 반 헬더와 막스랩의 연구진이 가상현실을 사회적 공익을 위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하기 위해 탐구하고 있는 분야이다. “가상현실은 현실 세계를 재현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라고 반 헬더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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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OB KUSHNER
아프리카, 독일, 카리브해에서 취재하는 저널리스트이다. 그는 뉴요커(The New Yorker), 애틀랜틱(The Atlantic),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와이어드(WIRED),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등의 매체에 과학, 혁신, 이주, 법률, 테러리즘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그는 하이델베르크와 프라이부르크에 있는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2022년 저널리스트 인 레지던스(Journalist in Residence)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