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변화]의료계, 기후변화에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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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 일반 · 환경 · 시스템변화
의료계, 
기후변화에 맞서다

2024-1


JOSH KARLINER



Summary. ‘위해 없는 의료’를 통해 전 세계의 파트너들과 협력해 의료 부문의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글로벌 무브먼트가 시작됐다.




기후변화는 과학자들의 예측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어 우리를 돌이킬 수 없는 연쇄적 위기의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있다. 지금처럼 계속 화석 연료를 태워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면 이와 관련한 보건 위기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보수적으로 추정해 봐도 금세기 말까지 매년 9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기후의 영향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기후가 보건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보건 부문은 강력한 윤리적 목소리와 경제적 영향력, 정부 각 기관에 미치는 정치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여 년 전 세계 각국 정상이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에 모여 유엔기후변화협약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UNFCCC에 서명한 이후, 기후 관련 논의에서 의료 부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의료 부문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의료 부문의 기후 운동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대대적으로 시작되고 있으며, 필자가 일하고 있는 단체인 위해 없는 의료Health Care Without Harm, 이하 HCWH가 급성장하는 이 흐름의 기반을 닦는 데 일조했다. HCWH는 1996년부터 의료 부문의 환경 발자국을 줄이고, 환경 보건과 정의를 옹호하기 위해 노력해 온 국제 NGO이다. HCWH는 2019년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는데, 보건 부문을 하나의 국가로 본다면 지구상에서 다섯 번째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라는 사실이다. 이 놀라운 발견은 동기를 부여했다. 역설적이지만 보건 부문이 기후 관련 보건 문제의 원인 제공자라면 보건 부문도 해결책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통해 필자들은 시스템 차원의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포착했다. 


앞으로 이어질 글을 통해 이 운동이 어떻게 시작되고 확장되었으며, 건강한 기후를 위해 부문을 초월한 전 지구적 투쟁에 동참함으로써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무엇인지 살펴볼 것이다. 의료 부문에서 이 문제에 관한 의식과 참여가 얼마나 빠르게 늘어났는지, 나아가 이런 과정이 다른 부문과 의제에서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검토할 것이다. 또한 실존적 위기에 대처하는 데 있어 보건 부문이 직면한 도전과 결점에 대해 파고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경험을 통해 의료계의 기후 행동을 북돋고 사회의 다른 부문에서도 혁신적 변화를 촉발할 만한 교훈을 도출하고자 한다.



기후 위기가 곧 보건 위기이다

기후 위기는 코로나19 팬데믹도 사소해 보일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전 지구적 보건 위기이다. 기후변화를 체감하게 하는 심각한 폭풍과 폭염, 홍수, 가뭄이 이미 인류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온열 스트레스는 심폐 질환과 사망 위험을 높이고 임신과 출산에도 악영향을 준다. 기후로 인해 발생하는 산불은 여러 대륙의 공기를 오염시켜 호흡기 질환을 비롯한 여러 가지 질병을 유발한다. 극단적인 기상이변으로 세계 곳곳의 의료 인프라가 파괴되어 의료 서비스 제공에 차질을 빚고 있으며, 기후 공포증과 기타 정신 건강 문제도 증가하고 있다. 또한 기온 상승으로 말라리아malaria, 라임병Lyme (감수자주: 진드기가 매개하는 감염질환), 치쿤구니야병chikungunya(감수자주: 뎅기열과 유사한 바이러스 감염질환)과 같은 매개체로 인한 감염병이 이전에는 발생하지 않았던 지역이나 오랫동안 사라졌던 지역에서 나타나 수많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이와 동시에 많은 지역에서 광범위한 삼림 벌채가 진행되면서 인수공통감염병이 급증해 팬데믹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극단적인 기상 조건으로 세계 여러 지역의 농업에 문제가 발생해 식량이 부족해지고 영양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 기후 문제로 인한 인구 이동과 이주는 더 많은 보건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 모든 기후 위기의 흐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다. 지구는 과학자들이 기후변화의 폭주를 막을 임계점으로 보는 산업화 이전 기온보다 1.5도 높은 기온 상태에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탄소 배출량을 신속하고 급격하게 줄이지 않으면 파괴적 영향은 더욱 커질 것이다. 기후변화는 지난 수십 년간 이룩한 보건 및 기타 개발의 성과를 후퇴시켜 저소득 및 중산층 국가의 수억 명을 다시 빈곤에 빠뜨릴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기후변화를 이번 세기 최대의 보건 위협으로 지목한 바 있다.


전 지구적 비상사태의 명백한 원인은 화석 연료에 대한 우리 문명의 중독이다.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약 4분의 3이 석유, 석탄, 천연가스 연소로 발생하며, 이는 대기오염의 주요 원인으로서 이미 해마다 전 세계 사망자의 5분의 1인 8백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전 세계 에너지 체계를 대대적으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온실가스 배출량은 금세 지금의 곱절로 늘어날 수 있다.



글로벌 무브먼트 일으키다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 제1조 1항에서는 기후변화의 주요 잠재적 영향 중 하나로 건강에 대한 ‘심각하고 해로운 영향’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수년간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는 사이 기후 정책, 옹호, 자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건강의 중요성과 보건 부문이 지닌 잠재적 영향력을 간과했다. 최근 10년 동안에야 비로소 기후 위기가 인류의 보건에 미치는 무수한 영향과 함의를 깨달은 의사, 간호사, 병원, 의료 서비스 조직, 보건 정책 입안자, 정부 부처, 국제기구, 구호 기관, NGO, 민간단체, 보건 자선 단체 등 보건 부문의 주체들이 기후 투쟁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2015년에 필자와 HCWH 대표이자 공동 창립자인 게리 코헨Gary Cohen, 의학교수 피터 오리스Peter Orris가 공동으로 스탠퍼드 소셜 이노베이션 리뷰에 기고한 글에서 HCWH가 전 세계적으로 우려되는 지속성 오염 물질인 수은을 의료 부문에서 단계적으로 퇴출하는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이끈 사례를 소개했다. 그 글의 말미에서 그들은 수은을 통해 얻은 교훈을 기후변화 대응에 적용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그 이후로 필자들은 강력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해 기후 위기가 보건에 미치는 영향에 대응하기 위한 전 지구적 운동을 일으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필자들은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오 구테흐스António Guterres가 ‘인류에 대한 실존적 위협’이라 일컬은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보건 전문가, 병원, 보건 시스템과 단체, 지방 및 중앙 정부의 보건 담당 부처와 국제기구를 불러 모았다. 필자들은 대규모 시스템 변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먼저 해를 끼치지 말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적용하여, 필자들은 2014년 전 세계 순 탄소 배출량 중 의료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이 4.4%에서 2019년에는 5.2%로 증가함에 따라 이를 종식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2050년까지 의료 산업에서의 순 배출량 제로를 달성해 온난화를 섭씨 1.5도 이하로 제한하겠다는 2016년 파리 협정의 야심 찬 목표에 부응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필자들은 에너지, 운송, 건물, 식품 시스템, 플라스틱, 쓰레기 등 전통적인 기후 범주를 아우르는 경제 전반에 집중하여 건강 증진, 지역사회의 회복력 강화, 건강 형평성 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는 혁신적이고 포괄적인 탈탄소화 접근법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 서비스 제공 방식, 의료 시설 건설 및 운영 방식, 의료 상품 및 서비스 생산 방식을 모두 바꾸어야 한다. 이러한 야심찬 목표를 달성하려면 다른 경제 및 사회 부문과의 협력도 필요하다.


HCWH와 WHO 내부의 작지만 역동적인 팀을 포함한 몇몇 파트너들은 처음에 외로운 목소리로 이 여정을 시작했다. 점차, 기후 및 보건에 대한 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었고, 그들은 그 운동이 만들어지는 데 일조했다. HCWH는 글로벌 친환경 건강 병원Global Green and Healthy Hospitals이라는 실행 공동체를 만들어, 84개 국가에 있는 수만 개의 의료시설들이 기후 위기에 회복력 있게 대응하여 탄소배출을 줄이고, 지속가능한 의료 서비스를 구축하도록 도왔다. 그들은 각국의 지방 및 중앙 보건 담당 부처와 협력해 정책 변화에도 힘썼다. 또한  의료계의 막대한 자금력을 활용하는 지속 가능한 조달 전략을 개발했는데, 이는 전 세계 의료 시장의 제품과 유통망을 친환경적으로 바꾸어 나가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진전이 더뎠지만, 지난 10년 동안 매년 모든 대륙에서 참여가 증가했다. 수천 개의 병원, 수십억 달러의 예산, 수백만 명의 보건 전문가를 대표하는 기관들이 기후 행동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필자들은 이러한 성과에 만족할 수 없었다. 의료계가 기존의 운영 방식을 유지한다면 2050년에는 기후 발자국이 세 배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들은 2050년까지 파리 협정에 발맞추고 전 세계 보건 부문의 탈탄소화를 이루어 낼 대안적인 추진 방향과 실행 내용을 담은 로드맵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티핑 포인트1

필자들의 촉매 역할을 통해 일어난 대대적 시스템 변화에는 여러 요소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기후와 보건에 대한 행동을 신속하고도 지속적으로 퍼져나가도록 이끈, 모든 것이 변화하는 특별한 티핑 포인트가 있었다. 바로 2021년 11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Glasgow, Scotland에서 COP26 보건 계획COP26 Health Programme이 출범한 순간이다.



COP 의장국인 영국은 세계보건기구와 HCWH와 협력해 COP26 보건 계획을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이 프로그램은 최소 10개국의 보건 담당 부처로 하여금 그들이 제시한 로드맵의 주요 내용에 따라 기후변화에 강하고, 지속 가능한 저탄소 의료를 추구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결과는 빠르게 기대를 뛰어넘었다. 2021년 11월 세계 각국 지도자가 글래스고에 모였을 때, 저소득 국가에서 중간소득 국가, 고소득 국가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정부의 4분의 1에 달하는 52개국 보건 담당 부처가 서명에 참여했다. 또한 20개 이상의 국가가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이와 동시에 전 세계 14,000여 개 병원과 보건소를 대표하는 비정부 주체들은 기업, 지방 정부, 시민 사회가 파리 협약의 섭씨 1.5도 목표에 동참하게 하기 위해 고안된 이니셔티브인 UNFCC 레이스 투 제로Race to Zero에 동참하기로 서약했다.


2022년 초에는 WHO에 기반을 둔 비공식 국제기구인 ‘기후와 보건에 관한 변혁적 행동 연맹Alliance for Transformative Action on Climate and Health, ATACH이 설립되었다. 이를 통해 현재까지 COP26 서약에 참여한 83개국 보건부의 약속 이행에 대한 지원이 가능해졌다. 또한 2023년 G20 의장국 인도는 아시아개발은행Asian Development Bank, ADB의 기술 지원을 받아 G20 회원국 정상과 보건부 장관으로부터 각국의 보건 체계를 ATACH에 맞추겠다는 공식적인 서약을 받아냈다. 이는 기후와 보건에 관해 각국 정상이 집단적으로 서약한 최초의 사례였다. 더 중요한 점은 이 서약이 전체 의료 부문 배출량의 75%를 차지하는 G20 회원국 정상들의 약속이라는 사실이다. 현재 G20 의장국을 맡은 브라질은 이제 기후변화를 G20의 보건 관련 4대 우선 의제 중 하나로 삼을 것이다.


이처럼 탄소중립 의료를 향한 움직임은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지만, 다소 복잡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COP28 의장국 아랍에미리트는 12월 기후 협상에서 기후와 보건 분야에 10억 달러의 신규 자금 지원을 발표하면서 사상 최초로 보건을 최우선 의제로 삼아 보건의 날을 제정했다. 또한 WHO와 함께 50여 개국 보건 담당 장관을 불러 모아 COP 사상 최초로 보건 담당 장관급 회의를 개최했다. 이를 통해 ATACH 의제를 포함한 기후 및 보건에 관한 선언문을 발표했고 140개 이상의 국가로부터 지지를 얻어냈다.


하지만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COP28 의장국이 세계 12위 석유 생산 기업인 아부다비 국영 석유 회사Abu Dhabi National Oil Company, ADNOC의 소유주로서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와 함께 화석 연료 탐사와 생산 확대에 동참하고 있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기후변화로부터 공중 보건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화석 연료 산업의 퇴출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WHO 사무총장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Tedros Adhanom Ghebreyesus는 “각국 정부는 화석연료를 공정하고 공평하고 신속하게 퇴출하고 청정에너지를 사용하는 미래로의 전환을 이끌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COP28 현장에서 각국 정부를 향한 의료 부문의 압박이 한층 강해졌다. HCWH와 세계 기후 보건 연맹Global Climate and Health Alliance은 4천6백만 명이 넘는 보건 전문가를 대표하는 보건 단체 지도자들을 소집해 다른 사회 부문과 연대하여 COP 의장국 및 회원국 정부를 향해 석탄, 석유, 가스 퇴출을 요구하도록 했다. 보건 단체들은 두바이 협상문에 해당 내용을 추가하도록 각국 정부에 로비 활동을 벌였다. 결과는 복합적이었다. 기후 협상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화석 연료로부터의 전환을 촉구한 이 문서는 혁신적인 변화를 향한 전환점과 향후 행동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동시에 화석연료 이해관계자들의 입김으로 인해 천연가스를 과도기의 연료로 사용하는 것을 장려하고 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같이 검증되지 않은 위험한 요소를 지지하는 내용이 포함되면서 협상문에 엄청난 오점이 생겼다. 이들이 남긴 오점이 향후 몇 년간 이어질 긴 싸움의 시작이 될 것이다.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필자들은 단기간에 의료계의 기후 행동을 일으킬 모멘텀을 구축하고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전 세계 GDP의 10%를 차지하는 의료 부문이 탈탄소화의 길을 걷게 하고, 정의로운 전환의 지지자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기후 행동의 짧은 역사에는 이행되지 않은 공허한 약속과 맹세가 가득하다. 많은 정부가 의료 부문의 탈탄소화, 즉 화석 연료에서 벗어나는 전환에 동의하며 큰 관심을 표했지만 실행 계획, 목표, 일정, 자금, 책임성 평가 등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이러한 약속 자체는 별 의미가 없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들에 기대하는 일을 반복하지 않고, 의료 부문의 배출량이 증가하는 추세를 막기 위해서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보건 부문은 탄소중립을 가로막는 여러 기술적 장애물에 직면했다. 보건 부문 기후 발자국의 70% 이상이 의약품, 의료기기, 병원 장비, 식품 등 여러 물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글로벌 의료 공급망에서 발생한다. 이를 변화시키려면 의료 산업의 제조 원료와 생산 방식, 포장, 운송, 폐기 체계에 관한 규제에 큰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여러 국가에서 광범위한 경제 혁신과 민간 부문 생산자의 자발적인 프로세스 변화가 필요하며, 정부와 보건 시스템은 지속 가능한 조달 규정과 정책, 관행을 확립해야 한다.


그 밖에도 여러 과제가 있다. 경제적으로 실행 가능하고 공평한 탈탄소화 방식 모색, 의료 인력 전반을 대상으로 하는 기후 인식 및 교육 프로그램 구축, 저탄소 운영을 장려하는 환급 제도 도입을 위한 공공 및 민간 의료보험 개혁 등이 그러한 과제이다. 아직 탄소중립 보건 체계가 어떤 모습일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하며, 분명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는 무수한 실험과 발전을 통해 그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탄소 배출량이 많은 고소득 국가는 이 문제에 책임이 큰 만큼 더욱 신속하게 해결책을 적용해야 하며, 그 내용은 저소득 국가의 해결책과는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는 점이다. 저소득 국가에서는 저탄소 또는 무배출 의료 서비스와 같은 해결책이 의료의 보편적 접근성과 보건 형평성 증진에도 기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북반구와 남반구 선진국의 수천 개 병원과 의료 시스템에서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여러 방면에서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탄소중립 의료를 향한 여정On the Road Toward Zero-Emissions Health Care>의 35페이지 참고) 또한 실행 계획을 마련했거나 이미 실시하고 있는 중앙 및 지방 정부도 더러 있다. (<야망을 행동으로 옮기기Turning Ambition Into Action>의 36페이지 참고) 이러한 움직임이 계속 증가함에 따라 지구상에서 가장 큰 경제 및 사회 부문 중 하나가 점점 더 기후 스마트 대응 주체climate-smart trajectory로 거듭날 것이며, 이는 사회 전체에서 참고할 만한 모델이 될 것이다.



왜 지금인가?

의료 부문의 움직임이 단기간에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핵심적인 역할을 한 다음의 세 가지 요소를 꼽을 수 있다.


첫째, 5년 전까지만 해도 보건 부문에는 기후 문제가 그다지 긴급한 사안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최우선 과제로 꼽는 보건 전문가와 지도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기후 위기는 점점 더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병원과 의료 기관이 물에 잠기거나 불타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 어린이가 대기 오염 때문에 새까매진 폐로 병원에 방문한다. 극심한 더위에 병원으로 밀려드는 환자로 의료계의 대응력은 한계에 다다랐다. 이러한 문제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에 의료 서비스가 있다는 증거들이 드러나고 있다. 주요 과학자들과 WHO는 기후변화의 시급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 그 자체가 우리의 행동을 촉발시키고 있다.


둘째,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적 규모의 다차원적 위기가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보여주었다.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건강과 환경의 상호 연관성이 밝혀지면서 보건을 위한 기후 행동의 시급성이 더욱 분명해졌다. 코로나19로 최전선에서 대응하는 보건 부문의 모습이 부각되었고, 전 세계적인 비상사태 앞에서 국가 내, 국가 간 보건 및 의료 접근성의 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지가 드러났다. 또한 기후변화를 포함한 21세기 주요 의료 문제뿐만 아니라 미래의 팬데믹에 대비하고 예방하기 위해 의료 체계를 강화하고 혁신해야 할 필요성이 뚜렷해졌다.


전 세계 여러 지역의 보건 체계가 팬데믹의 무게로 거의 무너질 뻔했다. 그렇다면 더욱 가중된 기후 위기에서 의료 부문은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피해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팬데믹의 최전선에 있는 의사와 간호사, 병원과 의료 서비스 조직의 경영진, 보건 담당 부처 책임자들은 과중한 업무 속에서 스스로 이런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행동에 나섰다. 일례로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에 미국 서부의 52개 병원을 아우르는 의료 시스템인 프로비던스Providence는 203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기로 약속하고 이 야심 찬 목표를 이루기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셋째, 발 빠르게 나선 이들 덕분에 COP26에서 보건 부문 고위급 관료들이 내건 탈탄소화 및 회복력에 관한 서약이 널리 알려지고 구체화되었다. 예를 들어, 영국이 글래스고Glasgow에서 보여준 기후와 보건에 대한 리더십은 영국 국민 보건 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NHS를 통해 쌓은 탄탄한 경험에 기반한 것이다. NHS는 지난 20년간 보건 부문에서 탈탄소화를 추진하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고, 2045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NHS의 성과는 영국 보건 부문의 폭넓은 리더십과 함께 영국이 COP 의장국으로서 보건 문제에 관여할 자격이 있으며 그러한 변화가 전 세계적으로도 실현 가능하다는 인식을 퍼뜨렸다.


마찬가지로 COP26의 목표를 실행하고자 나선 미국 보건복지부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 HHS는 이미 과업을 잘 수행하고 있는 주요 의료 서비스 조직으로부터 격려를 받았다. HCWH가 결성한 미국 의료 기후 위원회Health Care Climate Council에는 21개 주요 의료 서비스 조직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43개 주에 있는 600개 이상의 병원을 대표하며, 130만 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하고 연간 8천1백만 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이 단체는 일관된 목소리로 기후 목표를 설정 및 추적하고 모범 사례를 공유하며, 함께 정책 옹호에 나선다. 또한, 이 단체에서는 조 바이든Joe Biden 대통령과 보건복지부 장관 하비에르 베세라Xavier Becerra에게 미국 정부의 COP26 보건 계획 참여를 지지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후 미국 정부는 목표 달성에 필요한 일련의 정책과 규제를 도입과 자발적 노력을 약속하고 실행하기 시작했다.



네 가지 교훈

우리들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도록 의료 부문을 움직이는 데 성공한 경험을 통해 많은 교훈을 얻었다. 이러한 교훈은 기후 및 보건 운동이 성장하는 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른 부문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사회 운동과 사회 변화 주체들에게도 훌륭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이제 이 교훈을 크게 네 가지 범주로 나누어 보고자 한다.


1. 팬데믹은 서막에 불과하다.

코로나19가 남긴 교훈 중 기후와 보건에 적용하기 가장 적절한 교훈은 비상사태 대비의 기본 원칙을 따르라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초기 예방, 즉 보건에 영향을 미치기 전에 개입하는 것이다. 팬데믹 예방에는 생물다양성 보존, 생물안전 규제, 동물 보건, 인수공통전염병 확산 억제와 같은 전략이 포함될 수 있다. 한편, 기후변화가 보건에 미칠 영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 에너지 체계를 대대적으로 전환해 온실가스 배출을 근본적으로 줄여야 한다.


팬데믹과 가속화되는 기후 위기를 통해 우리는 이 두 가지 글로벌 위기를 예방하는 일이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위기를 사전에 예방하려면 전 세계 열대 생태계에서 대규모로 진행되는 삼림 벌채를 중단해야 한다. 동시에 인간, 동물, 자연계의 건강을 하나의 상호 연결된 전체로 통합하는 부문 간 협력적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이른바 원헬스One Health라 불리는 이 접근법은 새로운 프레임워크로 떠오르고 있는데, 이 접근은 전 세계가 직면한, 상호 연결된 다양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글로벌, 국가, 지역 차원에서 여러 부문을 협력하게 만들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위기에 대한 더 많은 대비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주었다. 과학자와 예측가들이 머지않아 글로벌 팬데믹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명히 경고했었음에도 보건 기관들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팬데믹을 맞이했다. 현재 과학자들은 기후변화가 우리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전 세계의 병원과 의료 서비스 조직 중 일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또다시 준비되지 않은 채 위기를 맞이할 위험에 처해 있다.


우리는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정치적 의지를 결집할 수 있을까? 또한 위기 대응에 필요한 규모의 준비를 할 수 있을까? 전 세계는 두 가지를 모두 이룰 수 있는 도구와 기술, 지식을 갖추고 있다. 또한 우리는 팬데믹을 통해 신속하고 중대한 사회 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HCWH의 주요 후원자 중 하나인 이케아 재단IKEA Foundation의 리즈 맥케온Liz McKeon은 팬데믹이 남긴 교훈을 돌아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연결되어 있고 네트워크화 되어있는 세상에 실존적 위협에 대처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뒷받침되면, ‘독창성과 혁신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펼쳐질 수 있다.”


또한 코로나19는 사회에서 의사와 간호사의 목소리가 믿고 존중할 만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앞으로도 이들은 어떤 보건 비상 상황에서든 최전선에 서서 도덕적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이런저런 불신의 목소리가 의료계를 흔들어댔지만 의료 전문가들은 과학과 전문성으로 대중을 설득하고 정치적 대립을 극복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의료계 지도자들은 보건에 있어서 금세기 최대의 위협으로 다가온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대중을 결집할 힘을 갖고 있다.


2. 정의된 성과defined outcomes에 집중하는 네트워크가 시스템 변화를 가속할 수 있다.

필자들은 수은 퇴출에 성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먼저 지역 병원에서 시범 운영을 한 다음 광역 및 국가 차원의 보건 시스템으로 확대하고, 최종적으로 글로벌 정책으로 확장해가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기후 위기의 시급성과 의료 부문의 복잡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보다 정교한 전략이 필요했다. 그래서 필자들은 네트워크의 성숙도를 활용하고 그들의 무브먼트가 지닌 다층적인 활력을 발판 삼아 많은 파트너들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외부와 협력해 상향, 하향, 수평 등 다양한 방향으로 시스템을 바꾸어나가기로 했다. 필자들은 하나의 선형적 변화만을 추구하는 획일적인 집단보다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동시에 움직이는 다양한 주체의 네트워크가 서로를 북돋아 주며 더 강력해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처음부터 풀뿌리 조직과의 협력은 필자들의 핵심 전략이었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현장에서 빛나는 사례를 발굴하기도 하고, 부유층과 빈곤층, 도시와 농촌, 북반구와 남반구 등 다양한 환경에서 여러 건의 실험을 함께 기획하고 진행해 성공적인 결과를 내도록 지원했다. (<탄소중립 의료를 향한 여정On the Road Toward Zero-Emissions Health Care>의 35페이지 참고) 이를 통해 국가 내와 국경을 넘어 무엇이 가능한지를 보여주었으며, 대대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생태계, 즉 영감을 주고 추진력을 더하며 성장해온 전 지구적 실행 공동체를 구축했다. 이러한 여러 성공 사례는 진전을 이룰 수 있다는 증거가 되어 국내 및 국제적으로 최상위 정책 수준에서 과업을 수행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와 동시에 필자들은 하향식top-down 접근의 중요성 또한 깨달았다. 유엔 기후변화 고위급 핵심 담당자들Climate Change High-Level Champions과의 협력을 통해 지방정부와 민간 의료 서비스 조직이 레이스투제로에 참여하고 탄소중립을 약속하는 사례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WHO, COP 의장국 영국과의 협력은 각국 보건 담당 부처로 하여금 COP26 보건 계획과 ATACH에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이런 하향식 서약과 그로부터 나온 정책은 기후 행동을 촉구하는 풀뿌리 차원의 의료 운동이 독자적으로 이룰 수 있는 성과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성과를 가져다주었다. 결과적으로 하향식 접근을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확립할 수 있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보건의 모든 부문을 아울러 의료계의 탈탄소화와 회복력을 확대하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정의된 성과에 초점을 맞춘 네트워크 기반의 접근 방식은 하향식 접근과 상향식 접근 간의 상호작용을 촉진한다. 일례로 COP26 보건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필자들은 각기 다르면서도 접점이 있는 세 개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움직였다. COP 의장국으로서 영국은 외교 네트워크와 전 세계 대사관을 동원해 각국 정부 지도자들과 접촉했다. 동시에 WHO는 지역 및 국가 사무소 네트워크를 활성화해 보건부 장관의 참여를 독려했다. 그리고 HCWH는 이 두 단체와 협력해 글로벌 네트워크와 파트너를 통해 보건 담당 부처와 직원에게 영향을 미치고자 노력했다. 이 세 작업이 맞물리면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해 전 세계적으로 연쇄적인 서약을 이끌어냈다.


진행에 가속도가 붙은 덕분에 일련의 중요한 움직임이 연달아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었다. 예를 들어, 현재 세계은행World Bank과 아시아개발은행 같은 다자개발기구multilateral development agency에서는 해마다 400억 달러 이상을 투입하는 보건 개발원조Development Assistance for Health를 기후 행동에 연계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녹색기후기금Green Climate Fund과 같은 기후 기금 기관은 기후 회복력을 갖춘 의료 부문에 대해 수억 달러를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중이다. 앞서 언급한 기관에 기부하는 각국 정부는 모두 이 같은 노력이 가장 우선이라는 입장을 표하고 있다. 이들의 참여가 향후 몇 년에 걸쳐 저소득 및 중산층 국가의 보건 재정health financing과 보건 개발health development의 흐름을 바꾸어놓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편 의료 기기 제조사, 제약회사, 민간 의료 보험사 등을 포함한 민간 부문 주도의 의료 공급망에서는 의료계에서 발생하는 기후 발자국의 심각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운동이 확산하면서 등장하는 정책과 시장의 신호에 대응하고 있으며, 탄소중립적 제품 생산과 서비스 운영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또한 보건 부문의 리더 중 일부는 기후와 연관된 기업들의 책무성을 주장하고, 의료 서비스 공급업체와 제조사에 대한 규제 조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렇듯 다양한 수준에서 다차원적으로 일어나는 변화의 복잡성은 어느 한 개인이 완벽히 예측하거나 특정 조직이 책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전면적 시스템 변화를 위해서는 시스템 내의 여러 요소가 함께 변화에 참여해야 한다. 


3. 확장하려면, 내려놓아야 한다

HCWH 창립자 중 한 명인 샬롯 브로디Charlotte Brody는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 알 수는 없어도,  무브먼트가 진행되고 있다는 건 느껴질 겁니다”라고 말했다. 기후와 보건의 접점에서 일하는 이들은 확실히 글로벌 무브먼트의 일원이 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이 운동은 초기에 동참한 소규모 단체와 네트워크를 넘어 주요 국제기구와 수십 개 정부, 수백만 명의 보건 전문가, 백신 접종에서부터 보편적 의료 보장, 비전염성 질병 예방, 말라리아 퇴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과제를 해결하고자 활동하는 수백 개 보건 기관을 아우르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의사와 간호사가 참여하는 새로운 네트워크들이 깨끗한 공기와 기후 행동을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또한 국립 의학원, 전국 공중 보건 협회, 명문 대학의 참여도 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보건 자선단체에 속하는 웰컴 트러스트Wellcome Trust와 록펠러 재단Rockefeller Foundation에서는 기후와 보건을 위해 수억 달러를 기부했다. 


세계 기후 보건 연맹은 기후 협상에서 하나 된 목소리로 인류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와 국경없는의사회 등 인도주의적 구호단체도 기후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풀뿌리 보건단체들은 보건 부문에서의 화석 연료 퇴출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으며 전 세계 보건 활동가, 시민사회단체, 학술기관의 네트워크인 민중 건강 운동People’s Health Movement은 의료 정의와 기후 정의의 접점을 찾고 있다. 보건 제품 혁신 이니셔티브인 유니테이드Unitaid에 향후 5년간 저탄소 보건 기술에 1억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며, 국제적인 예방접종 연합 개비Gavi에서는 백신 공급망의 탈탄소화 방안을 찾고 있다. 또한 클린턴 의료 보급 이니셔티브Clinton Health Access Initiative와 같은 단체는 자신들이 시장에 영향을 미쳤던 경험과 공중 보건 캠페인을 진행한 경험을 활용하여 제약 산업의 탄소발자국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급성장하는 기후 및 보건 운동은 무수한 기회를 만들어내며 투쟁에 동참할 활동가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새롭게 펼쳐지는 현실 앞에서 필자들은 우리의 역할이 변화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제 강한 추진력을 만들어냈던 선구자의 역할을 내려놓고 활동의 상당 부분을 다른 이들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필자들은 이제는 병원 및 의료 서비스 조직과 함께 핵심 사업에 집중하면서 보건 전문가를 옹호 활동에 동원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리고 개별 병원과 의료 서비스 조직의 특정한 이니셔티브를 지원하는 일을 줄이고, 규모가 커진 실행과 옹호 활동에 도움이 될 만한 도구, 가이드, 교육, 정책을 개발하는 데 더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필자들은 더 큰 규모로 변화를 확장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WHO, ADB와 같은 대형 기관과도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이 운동에 동참하는 주류 보건 단체가 늘어남에 따라 그들과도 협력관계를 구축해 가고 있다. 그들은 퍼실리테이터, 촉매자, 지식 파트너로서 점점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프로그램과 이니셔티브를 구축해 전 세계로 확산시키고 있으며, 이런 이니셔티브가 스스로 발전하고 확장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역할을 점점 더 내려놓고 있다. 그리고 기후변화에 맞서 건강을 지키기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장애물인 화석 연료 사용 문제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4. 화석 연료에서 벗어나는 정의롭고 건강한 전환을 위한 전 사회적 운동이 절실하다.

의료 부문에서 대규모 시스템 변화가 진행중임에도, 기후 위기는 의료 부문의 혁신적 변화보다 더 급격한 속도로 변화무쌍하게 진행되고 있다. 의료 부문이 현재의 변화를 발판 삼아 탄소중립의 궤도에 오르는 것은 중요한 단계이자 엄청난 과업이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병원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의 다른 영역에서 근본적인 시스템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서는 의료 부문의 탄소중립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에 대한 확실한 답은 지난 몇 년간의 경험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 기온 상승을 섭씨 1.5 이하로 유지하려는 파리 협정의 야심 찬 목표에 맞춰 의료 서비스를 변화시키려면 기후 대응 운동이 궁극적으로 사회 전 부문이 참여하는 광범위한 다자적 노력의 일환이 되어야 한다. 보건 부문에서 성장하고 있는 기후 관련 운동은 파리협정의 이 야심 찬 목표를 수용하고 즉각적인 성과를 내어야 한다. 또한 화석 연료를 벗어나 깨끗하고, 재생 가능하며, 저렴하고, 구하기 쉽고, 탈중심적인 건강한 에너지로의 신속하고, 정의롭고, 건강한 전환을 이루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기후에 관한 의료 부문의 운동은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다. 지구의 기온이 계속 상승한다면 의료 인프라의 회복력을 확보하거나 말라리아와 같은 질병에 대응하기 위해 투자해야 할 비용은 끝없이 커질 것이다.


동시에, 기후 행동에 보건의 관점을 접목하는 것은 시스템 변화를 가속화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깨끗한 공기와 건강한 지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신뢰할 만한 보건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잘못된 정보와 화석 연료 업계의 선전에 맞서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로부터 정의롭고 건강하며 신속하게 벗어나는 것은 결국 기후변화로부터 인류와 지구의 건강을 지켜줄 것이다.


전환을 신속하게 이루어 섭씨 2~3도 수준의 기온 상승이 가져올 최악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면, 이러한 정의롭고 건강한 전환은 현시대의 가장 심각한 건강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공기를 정화할 수 있다면, 대기 오염으로 죽어가는 수백만 명의 목숨을 지키고 수조 달러의 의료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의료 부문의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다. 또한, 아직도 저소득 및 중간소득 국가의 의료 시설 중 약 59%가 기본적인 치료에 필요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분산형 재생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다면 의료 서비스 접근성을 크게 개선하여 건강 형평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정의롭고 건강한 전환은 기후변화로 발생하는 전염성 및 비전염성 질병의 부담을 줄여줄 것이고 인간과 동물, 지구 전체를 보호하고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필자들이 속한 HCWH는 의료 부문을 탄소중립의 궤도로 올려놓기 위한 혁신적인 시스템 변화의 길을 닦아왔다. 이제는 이 동력을 활용해 전 세계적인 기후와 건강 운동을 구축해나갈 때이다. 의료 부문에서 지난 150년간 공중위생, 노동자 권리 보호, 핵무기 확산 방지, HIV/AIDS 퇴치, 담배 규제 등을 추진하면서 쌓아 온 풍부한 운동의 역사가 있으며, 이제 그 역사를 확장해야 한다. 기후 위기에 맞서 공중 보건을 지키는 일은 이전보다 훨씬 더 큰 도전이겠지만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고 미래를 위해 혁신한다면 우리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탄소중립 의료를 향한 여정

전 세계 수만 개의 병원이 탈탄소화를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다음은 UNFCCC 탄소중립 목표UNFCCC Race to Zero에 동참하고 있는 병원들의 사례이다.


호주-헌터 뉴 잉글랜드 헬스Hunter New England Health

뉴캐슬의 존 헌터 병원John Hunter Hospital은 2030년까지 전체 시스템에서 탄소 및 폐기물 중립을 달성한다는 120개 시설 헌터 뉴잉글랜드 헬스 계획의 일환으로, 전 세계 병원 중 가장 큰 규모의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헌터 뉴잉글랜드는 이미 탄소 배출량을 24% 줄였으며, 145만 달러(230만 호주 달러)를 절약해 일선 임상 서비스에 재투자했다. 


브라질-상파울루 의료 발전 협회Associação Paulista para o Desenvolvimento da Medicina, SPDM

브라질에서 가장 큰 자선 의료기관인 SPDM은 17개의 병원을 운영하며 3만 천여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이 기관은 에너지 절약 전략에 대한 직원 교육, 에너지 효율성 증대, 태양광 설비 설치, 8만 개 형광등 LED 교체, 고탄소 배출 마취 가스 대체, 음식물 쓰레기 관리 프로그램 시행 등 일련의 탈탄소화 이니셔티브를 전개해왔다. 이러한 노력으로 2018년부터 2021년까지 SPDM의 탄소 배출량은 50%로 감소했으며, 에너지 비용과 마취 가스 비용을 연간 6만 2,000달러 절감할 수 있었다.


글로벌-부파Bupa

다국적 의료 보험 회사인 부파는 204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하기 위한 목표를 세웠다. 부파의 3단계 배출 범위와 투자 포트폴리오는 모두 1.5도를 위한 과학 기반 목표에 기반하고 있다. 또한 운영과 가치사슬의 측면에서 탈탄소화를 실현하기 위해 투자 펀드를 설립하기도 했다. 부파는 2022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6%(범위 1, 2) 감축했으며, 현재 전 세계 모든 사업장에서 재생가능한 전기를 84% 사용하고 있다. 인도 아라빈드 안과 시스템Aravind Eye Care System은 연간 70만 건의 수술을 진행하며 건당 6k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데, 이는 영국에서 이뤄지는 동일한 수술의 탄소 발자국 대비 약 5%에 불과하다. 아라빈드의 전략에는 수술 재료의 안전한 재사용, 수술 폐기물 재활용, 수술 시 지역 안과 센터 이용, 에너지 효율적인 조명 사용, 태양 에너지 사용, 이동거리를 줄이는 원격의료, 지속가능한 제품의 현지 조달 등이 포함된다. 이 모델은 인도와 남아시아의 다른 지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영국-NHS

스코틀랜드의 NHS 하이랜드NHS Highland와 협력하는 임상의들은 마취 전문의들의 네트워크인 그린 마취 스코트랜드Green Anaesthesia Scotland를 조직해, 마취 가스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을 크게 줄이는 한편 휘발성 의약품에 대한 예산을 50%를 줄였다. 한편, 영국 NHS의 가장 큰 신탁 중 하나인 뉴캐슬 병원 신탁Newcastle Hospitals Trust은 700개 이상의 공급업체와 협력해, 2040년까지 제품 라인을 전환하고 전체 공급망을 넷제로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같은 목표를 달성하려는 영국 NHS의 광범위한 노력에도 기여하고 있다.


미국-US 의료 기후 위원회US Health Care Climate Council

미국 의료 기후 위원회의 21개 주요 회원사 모두는 기후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 최대의 통합 비영리 의료 시스템인 카이저 퍼머넌트Kaiser Permanente는 에너지 효율, 탄소 상쇄, 태양광 발전, 360메가와트 이상의 풍력 및 태양광 발전소에 투자함으로써 탄소중립을 달성해, 미국의 최대 친환경 전력 사용자 중 하나가 되었다. 클리블랜드 클리닉Cleveland Clinic은 2027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의 일환으로 수술실을 친환경적으로 바꾸고 있다. 비수술시 시간당 환기 횟수를 줄임으로써 시간당 2,500만 킬로와트, 연간 250만 달러의 에너지 사용량을 절감하고 있다. 보스턴 메디컬 센터Boston Medical Center의 옥상 농장은 매년 6,000파운드에 가까운 농산물을 수확해 입원 환자와 구내식당에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제공하고 있으며 병원의 탄소 발자국을 줄이고 있다. 


필리핀-메리 존스턴 병원Mary Johnston Hospital

마닐라의 메리 존스턴 병원은 직원 280명을 둔 민간 시설로, 연간 1만 8천 명의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전기료로 연간 53만 9천 달러를 지출해온 이 병원은 효율화 전략과 재생 에너지원 사용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자 했다. 현재까지 1,024개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1,500개 이상의 소형 형광등을 LED로 교체했으며, 이렇게 절감된 비용은 저소득층 결핵 및 HIV/AIDS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투자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조지George

웨스턴케이프 보건복지부Western Cape Department of Health and Wellness 산하 지역병원은 넷제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웨스턴케이프의 빈곤층을 위한 조지 지역병원George Regional Hospital은 지속가능한 현장 폐기물 처리 시설을 구축해, 의료 폐기물 발생 및 처리 비용을 감소시키고, 일부 폐기물의 소각을 중단시켰다. 또한 건강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폐기물 운송과 관련한 탄소 발자국을 크게 줄였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이후 의료 시스템 내 다른 6개 병원에도 적용되었다.




목표를 행동으로 옮기다

기후변화의 최대 원인인 고소득 국가들의 의료 시스템이 탈탄소화에 빠르게 앞장서고 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는 2045년까지 공급망을 포함해 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기로 약속했다. 이 목표는 현재 법제화되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와 미국 보건복지부HHS는 여러 국가와 협력해 탈탄소화를 촉진하기 위한 조달 요건을 조정하고 있다. 1,000개 이상의 미국 병원이 보건복지부를 통해 탄소 배출을 줄이고, 기후 복원력을 강화하기로 약속했다.


미국의학한림원The US National Academy of Medicine은 보건 분야 리더들로 구성된 민관 파트너십인, 미국 의료 부문의 탈탄소화를 위한 공동 행동Action Collaborative on Decarbonizing the US Health Sector을 설립했다.


2023년, 포르투갈은 탈탄소화를 위한 국가 탄소 발자국 평가 및 실행 계획national carbon footprint assessment and action plan을 발표했다.


네덜란드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의 55% 감축하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의료에 관한 그린 딜Green Deal on Sustainable Healthcare을 수립했다.


프랑스는 지속가능한 의료 서비스를 위한 로드맵을 개발했다.


싱가포르는 자국의 의료 시스템을 탈탄소화하고, 기후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의학 센터Centre for Sustainable Medicine를 설립했다.


저소득 및 중저소득 국가에서도 보편적 건강 보장을 위해 저탄소, 기후회복력 기반의 보건 증진 전략을 발전시키고 있다.


콜롬비아는 400개의 의료 시설과 협력해 기준선을 정하고, 우선순위를 파악하며, 보건 분야의 경감 및 적응을 돕기 위한 법제화된 계획을 개발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전국 공공 의료 시설의 탄소 발자국을 측정하고, 실천 조치를 이행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칠레는 회복탄력성과 탈탄소화를 포함한 보건 부문의 기후행동을 의무화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라오스네팔은 보건의료 부문의 기후 발자국을 계산하고, 기후 회복력 및 탈탄소화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정부와 단체들은 특히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재생 에너지를 통해 의료 접근성을 강화하고 회복력을 구축하기 위한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약 10억 명의 사람들이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않는 의료 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인도 차티스가르Chhattisgarh주의 모든 1차 의료 센터와 지역 병원 및 보건소 중 90% 이상에서 태양열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셀코 재단Selco Foundation은 중앙 정부 및 주 정부와 협력해 2만 5천 개의 보건소에 추가로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설치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주도하는 파트너십인 파워 아프리카Power Africa는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정부와 협력해, 오지에 있는 1만 개의 의료 시설에 안정적인 재생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은 전 세계 사업장에 4만 대 이상의 태양열 백신 냉장고를 설치했다.


국제의약품구매기구Unitaid는 기후 보건 전략을 발표하며, 기후변화 완화와 복원력을 위한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






참고

1 .     티핑포인트(The Tipping Point): 작은 변화들이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쌓여, 이제 작은 변화가 하나만 더 일어나도 갑자기 큰 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상태가 된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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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H KARLINER

조쉬 카리너는 위해 없는 의료의 국제협력국장이다. 

이 글을 쓸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한 록펠러 벨라지오 센터(Rockefeller Bellagio Center)에 감사를 표한다. 벨라지오에 함께 머물며 글에 의견을 더해주고 아낌없이 지원해 준 이들과 위해 없는 의료의 모든 동료들, 특히 다이애나 피콘 매냐리, 게리 코헨, 닉 소프, 루실라 시치오글루, 슈웨타 나라얀에게도 감사한다. 마지막으로 스콜, 이케아, 마리슬라, 맥아더, 로버트 우드 존슨 재단을 비롯해, 변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위해 없는 의료의 비전과 역량을 믿어 준 소중한 파트너에게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