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평등을 위한
새로운 내러티브,
다양성과 포용성
퓨처메이커를 위한 조망과 상상
김영미
Summary.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사회혁신 조직 내에서 다양성과 포용성을 증진시키는 것이 중요하며, 이러한 노력은 사회적 고통을 줄이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오늘날 다양성은 사회혁신이 실현해야 할 핵심 가치중 하나로 여겨지는 동시에 변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역시 추구되어야 할 가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임팩트 지향 조직들은 문제해결 과정에서 다양성을 고려해 협력적인 구조를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성에 대한 관심과 시도가 늘고 있는 가운데 사회혁신 생태계가 다양성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양성은 우리 사회에 변화를 만드는 과정과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교수님의 시선을 여쭙고 싶습니다.”
좋은 질문은 사람을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SSIR 한국판 편집자로부터 위와 같은 질문을 받고 나서, 불평등을 연구하는 사회학자인 내가 왜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숙고하기 시작했다.
사회혁신가들에게 '우리 시대의 결정적 도전'를 하나 꼽으라고 하면 오바마 전 대통령처럼 경제적 불평등을 꼽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은 UN 지속가능발전목표 17개 의제들 중 하나이며 다른 목표들과 가장 많이 연관되어 있는 의제이기도 하다. 그것의 해결이 우리가 공동의 지속가능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중대한 도전이라는 의미이다. 문제가 중차대한만큼 경제적 불평등의 해소를 목표로 헌신하고 있는 사회혁신가들과 사회혁신 조직들도 많다. 이번 SSIR 20주년 기념 기고문들을 통해 그런 사회혁신가들의 생생한 고민을 알게 된 것은 새로운 수확이었다. 지난 20년 간 다양한 혁신 활동들을 통해 글로벌 빈곤과 건강 문제를 완화하는 데 공헌을 했으나 글로벌 빈부격차, 국가 내 경제적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들, 사회혁신이 평등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며 사회혁신이 평등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나 아이디어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제안에 깊이 공감했다. 다양성과 포용성의 가치는 이러한 맥락 속에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왜 다양성과 포용성이 중요한가? 첫째, 경제적 불평등이 만들어지는 구체적인 장소는 결국 조직이기 때문이다. 이번 이슈 기고가 중 한 명인 포드 재단Ford Foundation의 힐러리 페닝턴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혁신가들은 정체성 문제를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회적 정체성이 구조적 피해를 낳는 방식을 이해하고 이러한 피해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페닝턴이 말하는 구조적 피해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나는 조직 내 의사결정 과정에 주목하고 싶다. 젠더, 인종, 민족, 연령, 성정체성, 장애, 돌봄제공자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하는 조직을 생각해보자. 특정한 사회적 정체성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조직 내에서 일을 분배하고 경제적 보상을 결정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 차별과 불평등이라는 형태로 구조적인 문제가 나타나게 된다. 당사자에게 해가 갈 뿐만 아니라 그 조직에게도 피해가 간다. 공동의 일을 하기 위해 모인 모든 사람들의 역량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이른바 다양성 보너스(복잡한 문제일수록 다양한 인식을 가진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 해결책을 찾는 것이 더 나은 문제해결에 이른다는 개념)를 얻지 못한다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사회혁신 조직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고정관념이 용인되는 조직문화 속에서 사회문제 해결의 혁신적인 상상력이 나오기도 어려울 것이다. 조직이 인적 다양성을 중시하고 다양한 배경과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공정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포용적 조직 문화를 구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불평등이 만들어지고 있는 구심점에서부터 불평등을 줄여나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완화하는 데 다양성과 포용성이 중요한 또다른 이유는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적 고통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와 관련이 있다. “경제적 불평등에 이빨을 달아주고 있는 것은 기회의 상품화이다.” 스탠퍼드 빈곤과 불평등 연구소의 디렉터인 데이비드 그러스키 교수는 오늘날 빈곤층은 이중의 제약에 직면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 적은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상품, 서비스 및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교육, 의료, 돌봄, 안전과 같은 기본적인 서비스들이 과거에는 가족, 지역공동체, 종교단체, 공공서비스를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데 반해 상품화가 전면화된 사회에서는 시장을 통해 사지 않으면 누릴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 결핍은 고통으로 이어지기 쉽고 세대를 넘어 대물림되기도 쉽다. 그런데 이러한 통찰을 뒤집어 생각하면 빈곤층의 접근권을 개선함으로써 경제적 불평등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2013년 세계은행의 《포용성이 중요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포용성은 ‘개인 및 인구집단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으로 정의된다.1 기회의 상품화는 포용성을 악화시킨다. 세계은행은 경제적 결핍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의 제약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포용성에 초점을 둔 복지시스템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전통적인 복지국가가 추구했던 생존의 탈상품화(노동시장에서 근로능력의 상실에도 생존을 보장하는 복지제도들) 프레임으로 경제적 불평등 문제에 대응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오늘의 삶의 질, 내일의 기회를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교육, 의료, 돌봄, 안전 등 기본 서비스들에 대한 접근권을 개선하고 경제적 자원의 제약이, 사회적 정체성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을 제약하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기획이 필요하다. 이것을 기회의 탈상품화 기획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교육, 의료, 돌봄, 안전 등 필수/기본 서비스들이 시장과 국가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흐르고 누리고 채워질 때 불평등의 이빨이 사라질 수 있다. 기회의 탈상품화 기획에서는 사회혁신 생태계의 역할이 더욱 더 중요해질 것이다. 사회혁신가들은 이미 시장과 국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로컬에서 글로벌까지 다양한 형태로 혼종적 공간들을 개척해 왔다. 포용성에 대한 상상력이 실험되고 실현된 공간들이다. 포용성을 시도하고,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면서 축적된 지식들이 정부, 기업, 시민사회에서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확산될 필요가 있다.
다양성과 포용성이 중요한 마지막 이유는 경제적 불평등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악순환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서이다. 최근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사회에서 사는 것이 우리의 마음과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형태 지우는지에 대해 많은 사회심리학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의 규모가 사회적 관계의 질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 《평등이 답이다 : 왜 평등한 사회는 늘 바람직한가?》의 저자 케이트 피킷과 리처드 윌킨슨은 경제적 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는 신분 경쟁, 자기개발 같은 지배관계에 적합한 전략들이 좀 더 발달하고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반면 경제적 불평등이 낮은 환경에서는 협력, 상호 지원 및 호혜성 같은 사회적 전략들이 더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2
불평등이 불평등을 낳는 사회심리적 메커니즘들이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된 사회에서는 개인들이 신분 경쟁과 자기개발에 몰입하게 된다. 그것이 자신에게 가장 합리적인 전략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가 형성되면, 공동의 미래를 상상하는 에너지는 점점 더 축소된다. 포용성에 대한 상상도 어려워진다. 이처럼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혁신이 필요로 하는 신뢰, 협력, 상호지원, 호혜성 같은 사회심리적 상태를 고갈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불평등한 사회에서 불평등 해소를 목표로 헌신하는 사회혁신가들이 정서적 저항, 무관심, 백래쉬 같은 세찬 물살을 마주할 가능성이 높고 그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곤경에 처해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혁신가들의 언어도 그 사회의 지배적인 언어를 닮아 있기 쉽다. 그 속에서 혁신적 활동은 더 위축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사회혁신가들은 불평등이라는 익숙한 현상을 낯설게 보고 다르게 보게 만드는 불평등에 대한 다른 이야기, 다른 내러티브, 다른 상상력을 제공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예컨대 불평등에 대한 내러티브를 생각해보자. 경제적 불평등이 문제라는 데는 누구나 쉽게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막상 왜 경제적 불평등이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단선적으로 사고하기 쉽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경제적 결핍 그 자체가 문제의 원인인 것처럼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흔히 접하는 불평등의 서사는 돈이 없어서 ABC를 못 사기 때문에 XYZ를 못하는 것이 문제라는 식의 이야기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사회문제라 꼽히는 초저출생 문제를 예로 들어 보자. ABC 자리에 집, 사교육을 넣고 XYZ 자리에 연애, 결혼, 출산을 넣어보면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삼포세대 레파토리가 된다. 불평등의 내러티브가 앙상한 경제결정론의 틀 안에 갇혀 있을 때 문제해결의 상상력도 제한되기 마련이다. 집값을 잡고 사교육비를 낮추거나 수당, 장려금, 세제혜택 등 경제적 급부를 제공하는 것이 문제 해결책의 전부인 것처럼 상상하는 것도 본다. 사람들이 빈약한 내러티브 속에서 생각하는 한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
최근 한 사회심리학 연구는 9개의 실험 연구들을 통해 미국의 주류 집단 구성원들 사이에 평등이 자신들에게 유해하며 불평등이 이익이 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만연해 있음을 보여주었다.3 “네가 올라가면, 내가 떨어진다”는 식으로 경제적 분배를 제로섬 관계로 상상하면서, 평등한 분배로 피해를 볼 것이라는 담론에 익숙한 사람들일수록 평등의 가치를 실현시키는 제도 개혁에 반대하는 경향이 강했다.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구조적 피해가 막대하다는 것을 인식한다 해도, 그런 인식 자체가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더 풍부한 내러티브, 경제결정론적 내러티브, 제로섬 내러티브를 넘어서는 새로운 내러티브들이다. 사회혁신이 불평등에 대한 인지적 다양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때 미래를 다른 방식으로 상상할 수 있는 물고가 열릴 것이다. 물살의 방향은 그렇게 바뀐다.
참고
1 . 프리먼(Freeman), 팀(Tim) & 조디 올슨(Jody Olson), 2023, 「개발, 형평성, 포용」, SSIR 한국어판 1호에서 재인용.
2. 윌킨슨, R. G.(Richard G. Wilkinson) & 픽켓, K. E.(Kate E. Pickett). (2017). <우리 사이의 적: 불평등의 심리적, 사회적 비용>, 유럽 사회 심리학 저널(European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47(1), 11-24.
3. 브라운, N. D.(N. D. BROWN), 제이코비-셍고르, D. S.(D. S. JACOBY-SENGHOR), & 레이문도, I.(ISAAC RAYMUNDO). (2022). 「당신이 떠오르면, 나는 쇠락한다: 평등은 특권 집단에 손해를 입힌다는 오해로 방해받았다」.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s), 8(18), EABM2385.
김영미
김영미는 연세대 사회학과에서 부교수로 재직하며 고등교육혁신원 창의교육센터장을 역임하고 현재 연세대 젠더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불평등과 저출생 문제를 연구하며 성평등 관점에서의 사회혁신 교육과 다양성과 포용성 전문가네트워크 확장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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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 일반 · 사회 · DE&I
평등을 위한
새로운 내러티브,
다양성과 포용성
퓨처메이커를 위한 조망과 상상
김영미
Summary.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사회혁신 조직 내에서 다양성과 포용성을 증진시키는 것이 중요하며, 이러한 노력은 사회적 고통을 줄이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오늘날 다양성은 사회혁신이 실현해야 할 핵심 가치중 하나로 여겨지는 동시에 변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역시 추구되어야 할 가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임팩트 지향 조직들은 문제해결 과정에서 다양성을 고려해 협력적인 구조를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성에 대한 관심과 시도가 늘고 있는 가운데 사회혁신 생태계가 다양성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양성은 우리 사회에 변화를 만드는 과정과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교수님의 시선을 여쭙고 싶습니다.”
좋은 질문은 사람을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SSIR 한국판 편집자로부터 위와 같은 질문을 받고 나서, 불평등을 연구하는 사회학자인 내가 왜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숙고하기 시작했다.
사회혁신가들에게 '우리 시대의 결정적 도전'를 하나 꼽으라고 하면 오바마 전 대통령처럼 경제적 불평등을 꼽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은 UN 지속가능발전목표 17개 의제들 중 하나이며 다른 목표들과 가장 많이 연관되어 있는 의제이기도 하다. 그것의 해결이 우리가 공동의 지속가능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중대한 도전이라는 의미이다. 문제가 중차대한만큼 경제적 불평등의 해소를 목표로 헌신하고 있는 사회혁신가들과 사회혁신 조직들도 많다. 이번 SSIR 20주년 기념 기고문들을 통해 그런 사회혁신가들의 생생한 고민을 알게 된 것은 새로운 수확이었다. 지난 20년 간 다양한 혁신 활동들을 통해 글로벌 빈곤과 건강 문제를 완화하는 데 공헌을 했으나 글로벌 빈부격차, 국가 내 경제적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들, 사회혁신이 평등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며 사회혁신이 평등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나 아이디어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제안에 깊이 공감했다. 다양성과 포용성의 가치는 이러한 맥락 속에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왜 다양성과 포용성이 중요한가? 첫째, 경제적 불평등이 만들어지는 구체적인 장소는 결국 조직이기 때문이다. 이번 이슈 기고가 중 한 명인 포드 재단Ford Foundation의 힐러리 페닝턴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혁신가들은 정체성 문제를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회적 정체성이 구조적 피해를 낳는 방식을 이해하고 이러한 피해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페닝턴이 말하는 구조적 피해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나는 조직 내 의사결정 과정에 주목하고 싶다. 젠더, 인종, 민족, 연령, 성정체성, 장애, 돌봄제공자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하는 조직을 생각해보자. 특정한 사회적 정체성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조직 내에서 일을 분배하고 경제적 보상을 결정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 차별과 불평등이라는 형태로 구조적인 문제가 나타나게 된다. 당사자에게 해가 갈 뿐만 아니라 그 조직에게도 피해가 간다. 공동의 일을 하기 위해 모인 모든 사람들의 역량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이른바 다양성 보너스(복잡한 문제일수록 다양한 인식을 가진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 해결책을 찾는 것이 더 나은 문제해결에 이른다는 개념)를 얻지 못한다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사회혁신 조직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고정관념이 용인되는 조직문화 속에서 사회문제 해결의 혁신적인 상상력이 나오기도 어려울 것이다. 조직이 인적 다양성을 중시하고 다양한 배경과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공정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포용적 조직 문화를 구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불평등이 만들어지고 있는 구심점에서부터 불평등을 줄여나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완화하는 데 다양성과 포용성이 중요한 또다른 이유는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적 고통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와 관련이 있다. “경제적 불평등에 이빨을 달아주고 있는 것은 기회의 상품화이다.” 스탠퍼드 빈곤과 불평등 연구소의 디렉터인 데이비드 그러스키 교수는 오늘날 빈곤층은 이중의 제약에 직면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 적은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상품, 서비스 및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교육, 의료, 돌봄, 안전과 같은 기본적인 서비스들이 과거에는 가족, 지역공동체, 종교단체, 공공서비스를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데 반해 상품화가 전면화된 사회에서는 시장을 통해 사지 않으면 누릴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 결핍은 고통으로 이어지기 쉽고 세대를 넘어 대물림되기도 쉽다. 그런데 이러한 통찰을 뒤집어 생각하면 빈곤층의 접근권을 개선함으로써 경제적 불평등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2013년 세계은행의 《포용성이 중요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포용성은 ‘개인 및 인구집단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으로 정의된다.1 기회의 상품화는 포용성을 악화시킨다. 세계은행은 경제적 결핍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의 제약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포용성에 초점을 둔 복지시스템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전통적인 복지국가가 추구했던 생존의 탈상품화(노동시장에서 근로능력의 상실에도 생존을 보장하는 복지제도들) 프레임으로 경제적 불평등 문제에 대응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오늘의 삶의 질, 내일의 기회를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교육, 의료, 돌봄, 안전 등 기본 서비스들에 대한 접근권을 개선하고 경제적 자원의 제약이, 사회적 정체성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을 제약하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기획이 필요하다. 이것을 기회의 탈상품화 기획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교육, 의료, 돌봄, 안전 등 필수/기본 서비스들이 시장과 국가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흐르고 누리고 채워질 때 불평등의 이빨이 사라질 수 있다. 기회의 탈상품화 기획에서는 사회혁신 생태계의 역할이 더욱 더 중요해질 것이다. 사회혁신가들은 이미 시장과 국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로컬에서 글로벌까지 다양한 형태로 혼종적 공간들을 개척해 왔다. 포용성에 대한 상상력이 실험되고 실현된 공간들이다. 포용성을 시도하고,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면서 축적된 지식들이 정부, 기업, 시민사회에서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확산될 필요가 있다.
다양성과 포용성이 중요한 마지막 이유는 경제적 불평등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악순환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서이다. 최근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사회에서 사는 것이 우리의 마음과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형태 지우는지에 대해 많은 사회심리학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의 규모가 사회적 관계의 질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 《평등이 답이다 : 왜 평등한 사회는 늘 바람직한가?》의 저자 케이트 피킷과 리처드 윌킨슨은 경제적 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는 신분 경쟁, 자기개발 같은 지배관계에 적합한 전략들이 좀 더 발달하고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반면 경제적 불평등이 낮은 환경에서는 협력, 상호 지원 및 호혜성 같은 사회적 전략들이 더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2
불평등이 불평등을 낳는 사회심리적 메커니즘들이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된 사회에서는 개인들이 신분 경쟁과 자기개발에 몰입하게 된다. 그것이 자신에게 가장 합리적인 전략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가 형성되면, 공동의 미래를 상상하는 에너지는 점점 더 축소된다. 포용성에 대한 상상도 어려워진다. 이처럼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혁신이 필요로 하는 신뢰, 협력, 상호지원, 호혜성 같은 사회심리적 상태를 고갈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불평등한 사회에서 불평등 해소를 목표로 헌신하는 사회혁신가들이 정서적 저항, 무관심, 백래쉬 같은 세찬 물살을 마주할 가능성이 높고 그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곤경에 처해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혁신가들의 언어도 그 사회의 지배적인 언어를 닮아 있기 쉽다. 그 속에서 혁신적 활동은 더 위축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사회혁신가들은 불평등이라는 익숙한 현상을 낯설게 보고 다르게 보게 만드는 불평등에 대한 다른 이야기, 다른 내러티브, 다른 상상력을 제공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예컨대 불평등에 대한 내러티브를 생각해보자. 경제적 불평등이 문제라는 데는 누구나 쉽게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막상 왜 경제적 불평등이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단선적으로 사고하기 쉽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경제적 결핍 그 자체가 문제의 원인인 것처럼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흔히 접하는 불평등의 서사는 돈이 없어서 ABC를 못 사기 때문에 XYZ를 못하는 것이 문제라는 식의 이야기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사회문제라 꼽히는 초저출생 문제를 예로 들어 보자. ABC 자리에 집, 사교육을 넣고 XYZ 자리에 연애, 결혼, 출산을 넣어보면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삼포세대 레파토리가 된다. 불평등의 내러티브가 앙상한 경제결정론의 틀 안에 갇혀 있을 때 문제해결의 상상력도 제한되기 마련이다. 집값을 잡고 사교육비를 낮추거나 수당, 장려금, 세제혜택 등 경제적 급부를 제공하는 것이 문제 해결책의 전부인 것처럼 상상하는 것도 본다. 사람들이 빈약한 내러티브 속에서 생각하는 한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
최근 한 사회심리학 연구는 9개의 실험 연구들을 통해 미국의 주류 집단 구성원들 사이에 평등이 자신들에게 유해하며 불평등이 이익이 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만연해 있음을 보여주었다.3 “네가 올라가면, 내가 떨어진다”는 식으로 경제적 분배를 제로섬 관계로 상상하면서, 평등한 분배로 피해를 볼 것이라는 담론에 익숙한 사람들일수록 평등의 가치를 실현시키는 제도 개혁에 반대하는 경향이 강했다.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구조적 피해가 막대하다는 것을 인식한다 해도, 그런 인식 자체가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더 풍부한 내러티브, 경제결정론적 내러티브, 제로섬 내러티브를 넘어서는 새로운 내러티브들이다. 사회혁신이 불평등에 대한 인지적 다양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때 미래를 다른 방식으로 상상할 수 있는 물고가 열릴 것이다. 물살의 방향은 그렇게 바뀐다.
참고
1 . 프리먼(Freeman), 팀(Tim) & 조디 올슨(Jody Olson), 2023, 「개발, 형평성, 포용」, SSIR 한국어판 1호에서 재인용.
2. 윌킨슨, R. G.(Richard G. Wilkinson) & 픽켓, K. E.(Kate E. Pickett). (2017). <우리 사이의 적: 불평등의 심리적, 사회적 비용>, 유럽 사회 심리학 저널(European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47(1), 11-24.
3. 브라운, N. D.(N. D. BROWN), 제이코비-셍고르, D. S.(D. S. JACOBY-SENGHOR), & 레이문도, I.(ISAAC RAYMUNDO). (2022). 「당신이 떠오르면, 나는 쇠락한다: 평등은 특권 집단에 손해를 입힌다는 오해로 방해받았다」.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s), 8(18), EABM2385.
김영미
김영미는 연세대 사회학과에서 부교수로 재직하며 고등교육혁신원 창의교육센터장을 역임하고 현재 연세대 젠더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불평등과 저출생 문제를 연구하며 성평등 관점에서의 사회혁신 교육과 다양성과 포용성 전문가네트워크 확장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