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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발달장애인을 바라보는
멘탈모델을 바꾸다
글로벌 시리즈 : 평등을 향한 도전
신현상 · 김현중 · 김하은
Summary. 사회와 일터에서 발달장애인의 역할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형평성 제고의 원동력이 된다.
신체장애인, 정신장애인, 발달장애인들은 전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차별받고 소외되어 왔지만 장애로 인해 불평등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과 그로 인한 사회적 결과는 국가마다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장애를 사회로부터 분리되고, 격리된 시설에서 관리 및 치료하며 통제해야 하는, 부끄럽고 골치 아픈 것으로 인식해 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 이미지와 평판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장애인을 격리 시설에 강제 수용시킨 사건이다. 이때 시설에 수용된 장애인의 상당수는 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폭력과 강제노동 등의 인권 침해를 겪었다. 1981년 4월, 전두환 정권은 1980년 12월의 군사 쿠데타를 정당화하고, 자신들이 내세운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의제를 홍보하기 위해 장애인복지법을 제정했지만, 이 법률조차도 장애인에 대한 인권 침해 행위를 막는 데는 거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정책 개선에도 불구하고 장애에 대한 한국 사회의 차별적인 태도는 여전히 고착화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한국의 빠른 산업화 과정과 관련이 있다. 효율성과 대량 생산에 초점을 맞춘 기업들은 장애인을 비생산적이고 일하기에 부적합한 존재로 인식하며 노동시장에서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영국1과 미국2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의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동일하게 발견되며, 이는 장애인의 열악한 노동 조건과 보상 체계, 사회적 낙인 및 고립의 증가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서는 장애인들, 그 중에서도 특히 지적 장애, 자폐 스펙트럼 장애,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등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 모델이 주목을 받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주류 사회의 편견과 차별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이러한 혁신적 모델들은 발달장애인 근로자들의 자기결정과 성취감을 증진하며, 발달장애인의 사회 및 일터에서의 참여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고 있다.
문화적 맥락
다른 여러가지 사회 문제와 마찬가지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발생하는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솔루션의 출발점이 된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는 유교와 불교에 내재된 '정상성normality'의 개념에 기반한 강력한 멘탈모델mental model이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의 준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 깊이 뿌리내린 이 신념 체계는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서구 국가에 비해 아시아 지역의 장애 포용성이 증진되는 데 큰 장벽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유교의 신언서판身言書判 원칙에 따르면 군자君子, 즉 이상적인 인재는 건강한 신체, 의사소통 능력, 문장력, 판단력이라는 네 가지 특성을 갖춰야 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기준에 부합할 수 없는 장애인은 이러한 유교적 세계관에서 낮은 사회적 지위를 갖는 것이 당연해진다.
한편, 불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장애의 원인을 전생에 지은 죄의 결과 즉 업業으로 본다. 대만 국립 양밍차오퉁 대학Yang Ming Chiao Tung University의 유칭 초우Yueh-Ching Chou 교수는 일본, 태국, 베트남의 동료 연구자들과 아시아 국가간 비교 연구4를 수행한 결과, 여전히 아시아 지역의 사람들이 이러한 관점으로 장애를 이해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유칭 초우 교수의 연구에서 인터뷰 참여자들은 장애를 ’과거 또는 현재의 삶에서 쌓은 잘못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얻은 비극‘ 또는 ’개인이 과거에 지은 죄로 인한 저주‘라고 언급했다.
장애에 대한 유교 및 불교적 세계관, 그리고 동아시아 문화에서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갖는 중요성은 오랫동안 장애인들이 수치심과 실망감5을 갖고 살아가는데 큰 영향을 미쳐왔다. 이러한 감정은 그들의 가족에게까지 이어졌다. 많은 장애인 당사자의 가족들은 장애를 가진 가족 구성원 또는 친척의 존재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숨기거나, 그들이 집 밖으로 나가 직업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6 이러한 관점은 장애를 사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장애인은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발달장애에 대한 새로운 관점
한국 정부는 1988년 올림픽 이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그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여러가지 제도적 노력을 기울여 왔다. 1997년 <장애인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2001년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 재활법>, 2007년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2010년 <장애인 연금법> 등의 법안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의 복지, 교육, 고용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여전히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신체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발달장애인 역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 학교 폭력, 미세하지만 공격적인 차별적 언행microaggression, 일자리 및 기타 기회의 부족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사실 발달장애인은 의사소통의 어려움 및 인지장애로 인해 신체장애인보다 더욱 심한 차별과 따돌림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노동시장에서 발달장애인의 취업률은 28%이며, 이는 전체 장애인의 취업률 35%, 한국인 전체 취업률 60%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또한 발달장애인의 소득 수준 역시 신체장애인에 비해 현저히 낮은 실정이다.
2015년에는 발달장애인이 겪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이나 사회성 부족 등이 신체장애와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다. 2018년에는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계획>이 발표됐는데, 이는 발달장애인의 생애주기를 고려한 건강, 교육,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발달장애인 부모의 정신적, 정서적 부담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야심찬 계획은 2017년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지역 주민들에게 지역 내 특수교육 학교 설립에 대한 반대를 재고해달라며, 무릎을 꿇고 간청한 충격적인 사건에서 촉발되었다.
이와 같은 정부의 노력은 유용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발달장애인을 위한 보다 포용적이고 공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발달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문화적 규범의 변화가 필요하다. 미디어와 사회적기업은 이 변화를 위한 강력한 솔루션을 제시한다.
미디어를 통한 인식 변화
일상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서 장애인의 등장은 매우 드물다. 2019년 미디어 다양성과 관련한 한 연구에서는 주요 미디어 채널에서 방영된 한국 드라마 2,713편을 분석했다. 그 결과 장애인이 등장하는 비율은 0.7%로 나타났는데, 이는 전체 인구 중 장애인 비율인 4.9%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이다. 한편,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한국 영화 81편을 분석한 다른 연구에 따르면, 영화 속 장애인은 부정적이고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나약하고 열등한 인간으로 묘사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2022년에 방영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좋은 예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천재적인 두뇌의 젊은 변호사 우영우는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재판에서 승소하며, 결국 동료들의 인정을 받는 주인공이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이 드라마는 2022년 8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비영어권 드라마’였으며, 50개국 이상에서 시청률 상위 10위권 안에 들기도 했다.
이 드라마는 일부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발달장애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제고했다. 특히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인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지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드라마에서 조연 캐릭터들은 주인공 우영우의 한계를 규정하고 우영우가 가진 능력을 무시하는 대신, 그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취하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드라마는 우영우와 주변 인물들간의 관계를 통해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인에게 의미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시청자들이 직접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행동하도록 유도한다.
2022년에 방영된 또 다른 인기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사랑과 용서를 주제로 자살, 아동 학대, 청소년 임신, 왕따, 정신장애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다룬다. 특히 다운증후군을 가진 발달장애인 정은혜 배우는 주인공 한지민 배우의 동생으로 출연해 장애인의 감정이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드라마는 현재까지 유튜브 조회수 65만 회 이상, 넷플릭스 시청 시간 1억 5천만 시간 이상을 기록했다.
그 밖에 '내겐 너무 소중한 너(2021)', '나의 특별한 형제(2018)'와 같은 한국영화도 장애인을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처럼 장애를 다룬 한국의 영화와 TV 시리즈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발달장애에 대한 인식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 참고로 2023년 기준 2억 6천만 명의 넷플릭스 가입자 중 60% 이상이 한국 작품을 시청했다.
사회적기업을 통한 인식 변화
많은 사람에게 있어 자기 결정적인 삶의 필수 요소는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제도적 수단을 활용해 장애인 고용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이는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한계를 보였으며, 일자리의 양과 질 측면에서 장애인들의 필요를 충분히 충족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정부의 노력만으로 장애인 일자리에 대한 당사자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없음을 인식한 임팩트 지향 조직들이 여럿 등장했다. 2015년 설립된 하이테크 사회적 기업 테스트웍스Testworks는 그 중 하나이다. 인공지능 데이터 및 소프트웨어 테스트 전문 회사인 테스트웍스는 2023년 7월 기준, 17명의 발달장애인과 11명의 청각 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다. 테스트웍스는 발달장애인이 반복적인 작업 활동에 탁월한 역량을 가지고 있음에 주목해, 자율주행차량의 머신러닝 과정에 필수적인 사진 라벨링(예: 신호등, 행인 등 길거리 사진 속 개체를 식별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사진에 표시하는 작업)과 같은 반복적인 작업 과정에 발달장애인 직원을 배치했다. 실제로 발달장애인 직원들은 비장애인 직원보다 반복 작업에서 더 높은 정확도를 보였으며, 근속률 또한 비장애인 직원보다 높았다. 이는 발달장애인 직원과 회사 모두에게 시장에서의 경쟁 우위를 제공한다. 테스트웍스는 2023년 기준 매출 120억 원을 달성했으며, 이미 100억 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의 테스트웍스 창립자
윤석원 대표가 발달장애인 직원인 이준희 연구원에게 5년 근속상을 수여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을 고용해 천연비누와 같은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는 사회적기업 동구밭Donggubat도 좋은 사례이다. 동구밭은 CJ올리브영, LG생활건강, 신세계 인터내셔날, 아성 다이소 등에 제품을 납품하고 있으며, 2023년 기준 매출액 130억 원을 달성했다. 또한 동구밭은 2024년 6월 기준 총 116명의 직원 중 54명의 발달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다. 동구밭은 고급스러운 제품 디자인과 포장, 지속가능성을 위한 노력으로 5성급 호텔 워커힐과 같은 하이엔드 고객 유치에 성공했으며, 장애인 직원과 고급 럭셔리 제품 생산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있다.
'자폐인의 특별한 재능 재활autism special talents and rehabilitation'의 줄임말인 오티스타Autistar는 발달장애인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또 다른 사회적기업이다. 오티스타는 자폐성 장애인이 자신의 장애를 재능으로 인식하고, 그 재능이 산업 디자인 관련 직무와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2024년 7월, 전체 직원 21명 중 13명의 자폐 디자이너와 함께하고 있으며, 이 회사에서 일했던 자폐 디자이너 7명은 다른 회사에 디자이너로 이직을 하기도 했다. 이소현 창업자 겸 대표는 회사의 비전을 묻는 질문에 "자폐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을 찾아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답했다. 이화여자대학교 특수교육과 교수이기도 한 이소현 대표는 자폐 청소년의 예술적 재능을 살리기 위한 프로그램으로서 소셜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이소현 대표와 동료 연구자들은 심층 연구를 통해 자폐 특성이 높은 디자이너일수록 더 독특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음을 발견했다. 이는 발달장애인 직원들이 가진 높은 자폐 특성과 신경 다양성neurodiversity이 그들을 고용한 디자인 회사의 경쟁 우위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오티스타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유니클로 등 여러 대기업들과 협업을 하기도 했다.
오티스타의 장애인 디자이너들이 삼성전자와 협업하여 개발한 디자인
‘조니’(얼룩말 ‘zebra’와 조랑말 ‘pony’의 합성어)가 사용된 시계와 스마트폰 배경 디자인
더 큰 형평성을 위한 기회 만들기
한국에서는 여전히 신체장애 및 정신장애를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일하고 생활할 수 없는 상태’로 연결 짓는 경우가 많다. 장애 불평등의 근본적인 원인을 없애기 위해서는 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오고, 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혁신적인 미디어와 사회적기업 솔루션이 필요하다. 본 아티클에서는 낡고, 차별적인 기존의 멘탈모델에 직접적으로 도전하고 있는 용감하고 혁신적인 노력들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들은 발달장애에 대한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을 바꾸고 있다. 이들의 스토리가 다른 나라, 특히 한국과 유사한 사회 문화적 맥락과 경제 발전의 역사를 가진 아시아 지역의 혁신가들이 그들이 속한 사회의 장애 포용성을 높이기 위한 담대한 도전을 하는데 유용한 인사이트를 제공하기를 바란다.
1 . 버킹엄. J, 2018, 남아시아와 영국의 장애와 노동. 옥스포드 장애 역사 핸드북, 197-212.
2. 닐슨. K. E., 2012, 미국의 장애 역사 2권. 비콘 프레스.
3. 장. Y. & 로젠. S., 2018, 유교 철학과 장애인과 포용 교육에 대한 현대 중국 사회의 태도. 교육철학과 이론, 50(12), 1113-1123.
4. 추. Y. C., 우와노. T., 첸. B. W., 사라이. K., 응우옌. L. D., 추, C. J., 몽콜사와디. S. & 응우옌. T. T., 2024, 아시아 4개국의 장애인 권리 평가: 신체적, 태도적, 문화적 장벽에 대한 장애인의 관점. 정치 지리학, 108, 103027.
5. 치앙. L. H. & 하다디안. A., 2010, 중국에서 장애 아동 양육: 조기 개입의 필요성. 국제 특수 교육 저널, 25(2), 113-118.
6. 캄벨. A. & 우렌. M., 2011, "보이지 않는 사람들"... 21세기 중국의 장애. 국제 특수 교육 저널, 26(1), 12-24.
신현상
신현상(HYUN SHIN) 교수는 한양대학교 임팩트사이언스연구센터 센터장, 글로벌사회혁신단장, 한양대 SSIR Korea센터장이다. 현재 임팩트 측정 전문 기업 ㈜임팩트리서치랩의 대표를 맡고 있다.
김현중
김현중(HYUNJOONG KIM)은 스탠퍼드 소셜 이노베이션 리뷰 한국어판의 에디터 겸 콘텐츠 매니저이다. 사회혁신, 임팩트, 비영리 단체에 관한 여러 임팩트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관련 행사를 기획했다.
김하은
김하은(HAEUN KIM)은 ㈜임팩트리서치랩의 COO로 여러 임팩트 측정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사회혁신, 임팩트 측정, 임팩트 투자, 비영리단체에 관한 아티클과 보고서를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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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 일반 · 인권 · 기업가정신
[한국] 발달장애인을 바라보는
멘탈모델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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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상 · 김현중 · 김하은
Summary. 사회와 일터에서 발달장애인의 역할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형평성 제고의 원동력이 된다.
신체장애인, 정신장애인, 발달장애인들은 전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차별받고 소외되어 왔지만 장애로 인해 불평등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과 그로 인한 사회적 결과는 국가마다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장애를 사회로부터 분리되고, 격리된 시설에서 관리 및 치료하며 통제해야 하는, 부끄럽고 골치 아픈 것으로 인식해 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 이미지와 평판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장애인을 격리 시설에 강제 수용시킨 사건이다. 이때 시설에 수용된 장애인의 상당수는 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폭력과 강제노동 등의 인권 침해를 겪었다. 1981년 4월, 전두환 정권은 1980년 12월의 군사 쿠데타를 정당화하고, 자신들이 내세운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의제를 홍보하기 위해 장애인복지법을 제정했지만, 이 법률조차도 장애인에 대한 인권 침해 행위를 막는 데는 거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정책 개선에도 불구하고 장애에 대한 한국 사회의 차별적인 태도는 여전히 고착화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한국의 빠른 산업화 과정과 관련이 있다. 효율성과 대량 생산에 초점을 맞춘 기업들은 장애인을 비생산적이고 일하기에 부적합한 존재로 인식하며 노동시장에서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영국1과 미국2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의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동일하게 발견되며, 이는 장애인의 열악한 노동 조건과 보상 체계, 사회적 낙인 및 고립의 증가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서는 장애인들, 그 중에서도 특히 지적 장애, 자폐 스펙트럼 장애,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등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 모델이 주목을 받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주류 사회의 편견과 차별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이러한 혁신적 모델들은 발달장애인 근로자들의 자기결정과 성취감을 증진하며, 발달장애인의 사회 및 일터에서의 참여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고 있다.
문화적 맥락
다른 여러가지 사회 문제와 마찬가지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발생하는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솔루션의 출발점이 된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는 유교와 불교에 내재된 '정상성normality'의 개념에 기반한 강력한 멘탈모델mental model이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의 준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 깊이 뿌리내린 이 신념 체계는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서구 국가에 비해 아시아 지역의 장애 포용성이 증진되는 데 큰 장벽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유교의 신언서판身言書判 원칙에 따르면 군자君子, 즉 이상적인 인재는 건강한 신체, 의사소통 능력, 문장력, 판단력이라는 네 가지 특성을 갖춰야 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기준에 부합할 수 없는 장애인은 이러한 유교적 세계관에서 낮은 사회적 지위를 갖는 것이 당연해진다.
한편, 불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장애의 원인을 전생에 지은 죄의 결과 즉 업業으로 본다. 대만 국립 양밍차오퉁 대학Yang Ming Chiao Tung University의 유칭 초우Yueh-Ching Chou 교수는 일본, 태국, 베트남의 동료 연구자들과 아시아 국가간 비교 연구4를 수행한 결과, 여전히 아시아 지역의 사람들이 이러한 관점으로 장애를 이해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유칭 초우 교수의 연구에서 인터뷰 참여자들은 장애를 ’과거 또는 현재의 삶에서 쌓은 잘못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얻은 비극‘ 또는 ’개인이 과거에 지은 죄로 인한 저주‘라고 언급했다.
장애에 대한 유교 및 불교적 세계관, 그리고 동아시아 문화에서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갖는 중요성은 오랫동안 장애인들이 수치심과 실망감5을 갖고 살아가는데 큰 영향을 미쳐왔다. 이러한 감정은 그들의 가족에게까지 이어졌다. 많은 장애인 당사자의 가족들은 장애를 가진 가족 구성원 또는 친척의 존재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숨기거나, 그들이 집 밖으로 나가 직업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6 이러한 관점은 장애를 사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장애인은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발달장애에 대한 새로운 관점
한국 정부는 1988년 올림픽 이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그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여러가지 제도적 노력을 기울여 왔다. 1997년 <장애인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2001년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 재활법>, 2007년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2010년 <장애인 연금법> 등의 법안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의 복지, 교육, 고용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여전히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신체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발달장애인 역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 학교 폭력, 미세하지만 공격적인 차별적 언행microaggression, 일자리 및 기타 기회의 부족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사실 발달장애인은 의사소통의 어려움 및 인지장애로 인해 신체장애인보다 더욱 심한 차별과 따돌림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노동시장에서 발달장애인의 취업률은 28%이며, 이는 전체 장애인의 취업률 35%, 한국인 전체 취업률 60%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또한 발달장애인의 소득 수준 역시 신체장애인에 비해 현저히 낮은 실정이다.
2015년에는 발달장애인이 겪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이나 사회성 부족 등이 신체장애와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다. 2018년에는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계획>이 발표됐는데, 이는 발달장애인의 생애주기를 고려한 건강, 교육,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발달장애인 부모의 정신적, 정서적 부담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야심찬 계획은 2017년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지역 주민들에게 지역 내 특수교육 학교 설립에 대한 반대를 재고해달라며, 무릎을 꿇고 간청한 충격적인 사건에서 촉발되었다.
이와 같은 정부의 노력은 유용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발달장애인을 위한 보다 포용적이고 공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발달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문화적 규범의 변화가 필요하다. 미디어와 사회적기업은 이 변화를 위한 강력한 솔루션을 제시한다.
미디어를 통한 인식 변화
일상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서 장애인의 등장은 매우 드물다. 2019년 미디어 다양성과 관련한 한 연구에서는 주요 미디어 채널에서 방영된 한국 드라마 2,713편을 분석했다. 그 결과 장애인이 등장하는 비율은 0.7%로 나타났는데, 이는 전체 인구 중 장애인 비율인 4.9%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이다. 한편,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한국 영화 81편을 분석한 다른 연구에 따르면, 영화 속 장애인은 부정적이고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나약하고 열등한 인간으로 묘사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2022년에 방영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좋은 예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천재적인 두뇌의 젊은 변호사 우영우는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재판에서 승소하며, 결국 동료들의 인정을 받는 주인공이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이 드라마는 2022년 8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비영어권 드라마’였으며, 50개국 이상에서 시청률 상위 10위권 안에 들기도 했다.
이 드라마는 일부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발달장애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제고했다. 특히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인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지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드라마에서 조연 캐릭터들은 주인공 우영우의 한계를 규정하고 우영우가 가진 능력을 무시하는 대신, 그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취하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드라마는 우영우와 주변 인물들간의 관계를 통해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인에게 의미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시청자들이 직접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행동하도록 유도한다.
2022년에 방영된 또 다른 인기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사랑과 용서를 주제로 자살, 아동 학대, 청소년 임신, 왕따, 정신장애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다룬다. 특히 다운증후군을 가진 발달장애인 정은혜 배우는 주인공 한지민 배우의 동생으로 출연해 장애인의 감정이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드라마는 현재까지 유튜브 조회수 65만 회 이상, 넷플릭스 시청 시간 1억 5천만 시간 이상을 기록했다.
그 밖에 '내겐 너무 소중한 너(2021)', '나의 특별한 형제(2018)'와 같은 한국영화도 장애인을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처럼 장애를 다룬 한국의 영화와 TV 시리즈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발달장애에 대한 인식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 참고로 2023년 기준 2억 6천만 명의 넷플릭스 가입자 중 60% 이상이 한국 작품을 시청했다.
사회적기업을 통한 인식 변화
많은 사람에게 있어 자기 결정적인 삶의 필수 요소는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제도적 수단을 활용해 장애인 고용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이는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한계를 보였으며, 일자리의 양과 질 측면에서 장애인들의 필요를 충분히 충족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정부의 노력만으로 장애인 일자리에 대한 당사자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없음을 인식한 임팩트 지향 조직들이 여럿 등장했다. 2015년 설립된 하이테크 사회적 기업 테스트웍스Testworks는 그 중 하나이다. 인공지능 데이터 및 소프트웨어 테스트 전문 회사인 테스트웍스는 2023년 7월 기준, 17명의 발달장애인과 11명의 청각 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다. 테스트웍스는 발달장애인이 반복적인 작업 활동에 탁월한 역량을 가지고 있음에 주목해, 자율주행차량의 머신러닝 과정에 필수적인 사진 라벨링(예: 신호등, 행인 등 길거리 사진 속 개체를 식별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사진에 표시하는 작업)과 같은 반복적인 작업 과정에 발달장애인 직원을 배치했다. 실제로 발달장애인 직원들은 비장애인 직원보다 반복 작업에서 더 높은 정확도를 보였으며, 근속률 또한 비장애인 직원보다 높았다. 이는 발달장애인 직원과 회사 모두에게 시장에서의 경쟁 우위를 제공한다. 테스트웍스는 2023년 기준 매출 120억 원을 달성했으며, 이미 100억 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의 테스트웍스 창립자
윤석원 대표가 발달장애인 직원인 이준희 연구원에게 5년 근속상을 수여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을 고용해 천연비누와 같은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는 사회적기업 동구밭Donggubat도 좋은 사례이다. 동구밭은 CJ올리브영, LG생활건강, 신세계 인터내셔날, 아성 다이소 등에 제품을 납품하고 있으며, 2023년 기준 매출액 130억 원을 달성했다. 또한 동구밭은 2024년 6월 기준 총 116명의 직원 중 54명의 발달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다. 동구밭은 고급스러운 제품 디자인과 포장, 지속가능성을 위한 노력으로 5성급 호텔 워커힐과 같은 하이엔드 고객 유치에 성공했으며, 장애인 직원과 고급 럭셔리 제품 생산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있다.
'자폐인의 특별한 재능 재활autism special talents and rehabilitation'의 줄임말인 오티스타Autistar는 발달장애인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또 다른 사회적기업이다. 오티스타는 자폐성 장애인이 자신의 장애를 재능으로 인식하고, 그 재능이 산업 디자인 관련 직무와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2024년 7월, 전체 직원 21명 중 13명의 자폐 디자이너와 함께하고 있으며, 이 회사에서 일했던 자폐 디자이너 7명은 다른 회사에 디자이너로 이직을 하기도 했다. 이소현 창업자 겸 대표는 회사의 비전을 묻는 질문에 "자폐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을 찾아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답했다. 이화여자대학교 특수교육과 교수이기도 한 이소현 대표는 자폐 청소년의 예술적 재능을 살리기 위한 프로그램으로서 소셜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이소현 대표와 동료 연구자들은 심층 연구를 통해 자폐 특성이 높은 디자이너일수록 더 독특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음을 발견했다. 이는 발달장애인 직원들이 가진 높은 자폐 특성과 신경 다양성neurodiversity이 그들을 고용한 디자인 회사의 경쟁 우위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오티스타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유니클로 등 여러 대기업들과 협업을 하기도 했다.
오티스타의 장애인 디자이너들이 삼성전자와 협업하여 개발한 디자인
‘조니’(얼룩말 ‘zebra’와 조랑말 ‘pony’의 합성어)가 사용된 시계와 스마트폰 배경 디자인
더 큰 형평성을 위한 기회 만들기
한국에서는 여전히 신체장애 및 정신장애를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일하고 생활할 수 없는 상태’로 연결 짓는 경우가 많다. 장애 불평등의 근본적인 원인을 없애기 위해서는 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오고, 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혁신적인 미디어와 사회적기업 솔루션이 필요하다. 본 아티클에서는 낡고, 차별적인 기존의 멘탈모델에 직접적으로 도전하고 있는 용감하고 혁신적인 노력들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들은 발달장애에 대한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을 바꾸고 있다. 이들의 스토리가 다른 나라, 특히 한국과 유사한 사회 문화적 맥락과 경제 발전의 역사를 가진 아시아 지역의 혁신가들이 그들이 속한 사회의 장애 포용성을 높이기 위한 담대한 도전을 하는데 유용한 인사이트를 제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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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상
신현상(HYUN SHIN) 교수는 한양대학교 임팩트사이언스연구센터 센터장, 글로벌사회혁신단장, 한양대 SSIR Korea센터장이다. 현재 임팩트 측정 전문 기업 ㈜임팩트리서치랩의 대표를 맡고 있다.
김현중
김현중(HYUNJOONG KIM)은 스탠퍼드 소셜 이노베이션 리뷰 한국어판의 에디터 겸 콘텐츠 매니저이다. 사회혁신, 임팩트, 비영리 단체에 관한 여러 임팩트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관련 행사를 기획했다.
김하은
김하은(HAEUN KIM)은 ㈜임팩트리서치랩의 COO로 여러 임팩트 측정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사회혁신, 임팩트 측정, 임팩트 투자, 비영리단체에 관한 아티클과 보고서를 작성했다.